고금소총 제498- 빌린 고기로 제사를 지내다 (貸肉禱神)

한 선비가 여름철에

삿갓을 쓰고 길을 가는데,

마침 공중을 방글빙글 돌며

날던 소리개가 싼 똥이

그 삿갓 위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에 선비는 불쾌하게 여기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무슨 불길한 징조인고.

자고로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떤 재앙이 닥칠

조짐으로 여기는데...

그렇다면 내가 먼저

재앙이 물러가게

신당(神堂)에 가서

제사를 올려야겠다.

한데 제사를 지내려면

돼지머리가 있어야겠지?'

이러면서 푸줏간을 찾아가니,

마침 돼지머리 하나가

시렁 위에 얹혀 있어

주인에게 요청했다.

"내 신당에 가서

제사 모실 일이 좀 있으니,

저 돼지머리를

외상으로 빌려 주구려.

지금 돈이 없어

나중에 그 값을 계산하리라."

이리하여 외상으로

돼지머리를 가져다가 제사를 모셨다.

 

그 뒤로 여러 날이 지나도록

선비는 돼지머리 값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에 푸줏간 주인은

그 선비를 만나면

반드시 독촉해서 받아내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가 푸줏간으로 찾아왔다.

주인은 돼지머리 값을 주려니

하고 기다리는데,

선비는 무슨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 듯

푸줏간 주인의 귀를 끌어당겨 말했다

"당신은 본래 그 돼지를 사올 때

머리가 없는 걸 알고 사온 것이니,

돼지머리 값은 줄 수가 없네."

이에 푸줏간 주인은 펄쩍 뛰면서,

"무슨 말입니까?

내 분명히 살아 있는

돼지를 사다 잡은 것인데,

어찌하여 돼지가 머리 없이

살아 있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 돼지는 비싸게 사온 것이니,

내가 어찌 손해를 봐서야

되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돼지머리 값을

속히 내주십시오."

라고 말하니,

선비는 한참 있다가

다시 푸줏간 주인의 손을 잡으면서

다정하게 말소리를 낮추어

이르는 것이었다.

 

"지금 이 한마디로 끝내겠네.

날아다니는 소리개가

내 삿갓에 오물을 떨어뜨렸지만,

그건 당신 삿갓에 떨어뜨렸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랬다면 당신이 돼지머리로

제사를 올렸을 터,

그와 같이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게나."

하고는 기어이 돈을 주지 않고 떠나갔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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