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bQ62LBjJyPo

 

https://www.youtube.com/watch?v=tBl7_XlPKIc 

 

 

*조선 세종조에 훈민정음이 창제(1443)되고 반포(1446)되었으나 시가문학이나 국문본 고소설에서 상용되었을 뿐 기록문학으로 진가를 발휘한 것은 유길준의 <서유견문>(1894) 이후라 할 수 있습니다.

무식하다는 말은 한문을 모른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600여 편에 달하는 <고금소총>도 원문은 한문표기입니다. 말하자면 그 수용계층은 양반이나 중인 계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문을 배울 수 없던 서민들은 그저 구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짧게 구전되던 것을 양반이나 중인계층에서 한문으로 늘여 기록한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제목의 (洛中一浮浪者) 의 '洛'은 周나라의 수도인 洛陽을 뜻하므로 <서울의 한 떠돌이>로 번역할 수 있겠네요.

황하의 상류, 허난 성의  洛陽[뤄양]은 기원전 770년에 처음 주나라의 수도였습니다.

낙양성은  성주풀이에도 등장하고 四溟堂 惟政 의 시구에도 나오잖아요.

 

1544 離幻 松雲 四溟堂 惟政 任應奎(15441610)慈通弘濟尊者 豊川

 

過邙山(과망산) - 북망산을 지나며

- 四溟堂 惟政

太華山前多少塚

(태화산전다소총) 태화산 앞에는 무덤도 많구나.

洛陽城裏古今人

(낙양성리고금인) 낙양성에 살았던 옛 사람 이젯 사람.

可憐不學長生術

(가련불학장생술) 가여워라, 오래 사는 방법 못 배워

杳杳空成松下塵

(묘묘공성송하진) 아득한 세월에 덧없이 소나무 아래 티끌 되었구나.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036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성주풀이> 부분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게 누구냐.

운하춘풍(雲霞春風)은 미백년(未百年)

소년행락(少年行樂)이 편시춘(片時春) 아니 놀고 무엇 하리

 

고금소총 제499- 무식의 소치 (洛中一浮浪者)

서울에 사는 한 떠돌이 길손이

무슨 일로 멀리 산골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이에 먼 길을 걸으니 땀도 나고 목도 마른 참에,

건너편 산등성이를 보니

마침 사람들이 모여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음, 저기 가서 술이라도 한 잔 얻어 마셔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어슬렁거리며 그 쪽으로 건너갔다.

그러자 곧 하관(下棺)을 하려던 사람들이

모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 사람을 보고는 서로 웅성거리더니

상주가 묻는 것이었다.

"실례 같습니다만, 손님은 어디 사는 분이신지요?"

"아, 나는 서울에 사는 사람인데 멀리 여행을 하다가 목이 말라

탁주나 한 잔 얻어 마실까 하고 이렇게 찾아왔답니다."

이에 모두들 기뻐하면서 다시 이 사람에게 말했다.

"지금 시간이 다 되어 하관을 하려고 하는데,

함께 넣을 제주(題主)1)를 써 주실 김풍헌 어른이 오시질 않아  *1)제주(題主) : 신주에 대한 표시

이렇게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손님께서는 서울에서 오셨으니 제주를 쓸 줄 아시겠지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글공부를 하여 한자를 쓸 줄 알았지만,

실제로 제주를 써본 적은 없으니 어떻게 쓰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쓸 줄 모른다는 말도 하기 싫어,

자기가 써주겠다고 대답했다.

이에 그는 하관할 때 같이 넣는 글을 이렇게 썼다.

 

'春秋風雨 楚漢乾坤

(춘추풍우 초한건곤) 사계절 비바람만 부는 초나라와 한나라가 다투던 세상.

이 구절은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중국의 천하 패권을 두고 서로 다투던 혼돈의 시절을 상징하는 말로,

흔히 장기판의 말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제사를 모실 때 앞에 모셔 놓는 신주의 겉면에는,

 

靑山萬里一孤舟

(청산만리일고주)  푸른 산 일만 리에 떠 있는 외로운 배 한 척.

이라고 써 주었다.

그러자 상주며 여러 사람들이 감사해 하면서 기뻐하고 있을 때,

상주가 산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풍헌 어른께서 이제야 저기 오고 계시는군요."

이 말을 들은 길손은 올라오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자신이 아무렇게나 써준 제주가 탄로나서

봉변을 당할까 두려운 생각이 들어,

여차하면 도망쳐 달아나려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데 그 김풍헌이 올라와서 쓴 것을 들여다보더니,

"아아, 이거야말로 진서(眞書 : 漢文)로 쓴 제주군요."

하면서 감탄을 하고, 잘 썼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이에 길손은 안심을 하고 의젓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풍헌 양반의 제주는 언문제주(諺文題主)였군요."

곧 김풍헌은 부끄러워했고,

사람들은 제주를 써주어 고맙다면서 술상을 차려 잘 대접하니,

길손은 배불리 먹고 다시 길을 떠났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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