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530화 - 장승과 아전의 봉변 (有一朝官出守)
한 조정 관리가 지방 관장을 맡아
어느 고을로 부임해 갔다.
하루는 밖에 나갔다가
술에 취해 돌아오는데,
산등성이를 넘다가
문득 길가에 우뚝 서 있는
장승을 보고 소리쳤다.
"저 놈은 누군데
저렇게 거만한 게냐?
당장 잡아 무릎을 꿇려라."
이리하여 아전들이 장승을 뽑아
그 앞에 대령시켰다.
그러자 관장은 장승을 보고,
죄목을 들어 꾸짖는 것이었다.
"너는 이 고을 백성으로서
관장의 행차에 부복(俯伏)하여
송영(送迎)해야 마땅하거늘,
그 큰 키로 뻣뻣하게 서 있으니
어찌 그토록 무례하단 말이냐?"
이에 아전이 하도 답답하니,
"사또 나리!
저것은 사람이 아니옵고
장승이옵니다."
라고 말하며 깨닫게 해주는데,
관장은 더욱 화를 내면서 꾸짖었다.
"뭐라고?
비록 천 년 묵은 장생원이라 해도
관장에게 그럴 순 없느니라.
마땅히 매로 쳐야 할 것이다."
이튿날이었다.
술에서 깬 관장이 관아를 순시하다가,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장승을 보고
크게 놀라며 아전을 보고 꾸짖으니,
"어제 장승이 사또나리 행차에
무례하게 서 있은 죄로
나리께 벌을 받아 이리 되었사옵니다."
라고 아뢰는 것이었다.
이에 관장은
갑자기 화를 내면서 꾸짖고는
아전을 매로 치게 했다.
이 모습을 본 고을 사람들은
서로 돌아보며,
"뻣뻣하게 서 있던 장승이야
마땅히 주화(酒禍)를 입을 만하지만,
언제나 허리 굽혀
명령을 받드는 아전들은
또한 무슨 죄로
저렇게 벌을 받는단 말인가?"
라고 하면서 웃고 쑤군대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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