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70- 볼기가 아프다고 문자를 쓰다 (痛臀以文)

옛날에 한 사람이 어릴 때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여,

한문 문장에 대한 기초를 터득했다.

그리하여 읽은 책에 나오는 짧은 구절이나

또는 한자를 결합해 문장을 만들어 쓰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며,

대화를 할 때에도

항상 문자(文子)1)를 사용하니,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1)문자(文子) : 글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한문 투의 언어.

한데 이 사람은

남들이 잘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으면,

그 문자를 풀이해 주면서

자기가 유식하다는 것을 뽐내고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능숙하지도 않은 한문 실력으로

아는 체한다고 비웃었으며,

이 사람이 문자로 뭐라 이야기하면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어느 날 하루 밤에는

이 사람 집에 호랑이가 나타나

장인어른을 물고 갔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다음과 같이 외쳤다.

"호입가중(虎入家中)하여 오지장인착거(吾之丈人捉去)라,

유총창자(有銃槍者)는 지총창이래(持銃槍而來)하고,

유철추자(有鐵椎者)는 지철추이래(持鐵椎以來)하라."1)

1)호랑이가 집안으로 들어와서 나의 장인을 잡아갔다.

총과 창이 있는 사람은 총과 창을 가지고 나오고,

쇠망치가 있는 사람은 쇠망치를 가지고 나오라.)

 

이렇게 밤새도록 외쳐 댔지만,

동네 사람들은

또 무슨 문자를 쓴다고 하면서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이 사람은 관아로 달려가,

호랑이에게 사람이 물려갔다고

밤새 외쳤지만

아무도 나와 주지 않더라고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고소했다.

이 말을 들은 관장은

화를 내면서 이렇게 명령했다.

"한 마을 사람들이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이웃의 어려움을

구제해 주지 않은 죄를 물을 것이니,

즉시 잡아들이라."

이에 사령들이 달려가서

마을의 젊은이들을 잡아끌고 왔다.

"들어라!

너희들은 의리가 없도다.

사람이 호랑이에게

물려간다고 소리치는데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으니,

태장을 맞아 마땅한 것이니라.

무슨 이의가 있으면 속히 아뢰어라."

"아뢰옵니다.

저 사람은 항상

문자를 써서 말을 하는데,

소인들 중에는

글공부를 한 사람이 없어,

평소에도 저 사람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옵니다.

그리고 간밤에도 뭐라 문자를 써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사오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여

나가보지 않았사옵니다."

"여봐라!

저런 고얀 놈이 있나?

뭐가 그리 유식하다고

일상생활에 문자를 써서

알아듣지 못하게 했단 말이냐?

저놈에게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 죄를 물어

태장을 치도록 하고,

그 대신 죄 없는 마을 사람들은

물러가게 할지어다."

관장의 판결에 따라

이 사람을 엎어 놓고 볼기를 치니,

아프다는 소리 역시

문자를 써서 하는 것이었다.

곧 '아프구나, 볼기여!'라는 말을,

"통의(痛矣)라, 둔야(臀也)여!"

하고 소리치니

듣는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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