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69화 - 과장 표현의 두 스님이 서로 만나다 (大風相逢)
세상에 알려지기로
합천 해인사(海印寺)는
가마솥이 크기로 유명하고,
안변의 석왕사(釋王寺)는
측간(厠間)이 깊기로 소문나 있었다.
하루는 해인사 스님이,
'도대체 석왕사의 측간이 얼마나 깊기에
사람들이 그리 말하는지
내 한번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석왕사의 스님 한 분도,
"내 해인사에 가서
그 가마솥을 한번 보고 와야겠다."
라고 말하면서,
해인사 스님이 길을 나선
바로 그 무렵에
절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그래서 여러 날 만에
두 스님이 길에서 딱 만나니,
석왕사 스님이 보고서
합장 배례하고 물었다.
"대사께서는 어느 절에 계시며
어디로 가시는 길인지요?"
"예, 소승은
합천 해인사에 거주하옵는데,
안변 석왕사의 측간이
얼마나 깊기에 그러는지
확인하고자 가는 중이옵니다."
"아, 소승은
안변 석왕사에 거주하옵는데,
해인사의 가마솥이 얼마나 크기에
그렇게 소문이 났는지,
눈으로 확인하고자 가는 길이옵니다.
그러니 이렇게 중도에서 만난 것은
아마도 부처님의 영험이 계셨나 봅니다."
이렇게 해서 두 스님은
길옆 잔디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자 석왕사 스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체 스님 절의 가마솥은
얼마나 큰지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해인사의 가마솥이
얼마나 큰지
말로 설명하기는 좀 어렵군요.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지난 동지 때
거기에 팥죽을 쑤었는데,
상좌스님이 그 솥 안에
배를 띄워
팥죽을 젓고 다니셨답니다.
한데 소승이 절을 떠날 그 때까지
아직 한 바퀴를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아! 그렇게 큰가요?
아마 동해보다 더 큰 모양입니다."
"뭐, 동해보다 크기야 하겠습니까?
그보다는 작을 겁니다."
두 스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이번에는 해인사 스님이 물었다.
"들으니 스님 절의 측간이
깊다고 하던데,
얼마나 깊은지요?"
"예, 그 깊이를
말로써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소승이 절을 떠날 때
주지 스님께서
측간에 들어가 일을 보셨는데,
아마도 그 대변 덩어리가
아직 바닥에 닿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 역시 참으로 깊군요.
그렇다면 그 깊이가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벌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뭐,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야
되겠습니까?
그 정도는 아니랍니다.
이와 같이 서로 문답한 두 스님은
함께 일어서면서 말했다.
"오늘 이렇게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알 만하니,
구태어 가서
눈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면서 두 스님은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각자 자기 절로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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