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68- 궁 없는 장기 두기 (博無宮)

옛날에 두 재상이

이웃하여 살면서 매우 친했다.

이 두 대감은

장기를 무척 좋아하면서도

그저 말들이 가는 길만

겨우 알고 있을 뿐,

규칙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고 들지 않았다.

예를 들면

포가 포를 잡아 먹을 수 없다든가,

'장군!'을 불러

궁(宮)1)을 피하지 못하면

지게 되는 규칙은 모르고 있었다.

1)궁(宮) : 漢과 楚로 왕을 상징.

하지만 두 대감은

늘 만나서 장기를 두었고,

또 이 대감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았기 때문에,

그들이 장기를 둘 때면

옆으로 몰려와 서로들 훈수를 두어,

막상 장기를 두는

두 대감은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그래서 하루는 재상이

집에서 일하는 겸인을 불러

이렇게 시켰다.

"오늘은 골방으로 들어가서

단둘이 장기를 둘 테니,

누가 보자고 해도

절대 들여서는 안 되느니라."

이러고는 둘만 골방으로 들어가

장기를 두는데,

마침 두 대감과 친분이 두터운

손님이 와서 겸인에게 물었다.

"대감은 어디 계시냐?"

"예, 우리 대감님은

골방에서 장기를 두시는데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엄명이 계셨습니다."

"뭐라고? 아니, 무슨 일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다는 게냐?"

"예, 하도 모두 훈수를 두니까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음, 그렇다면 나는 들어가도 좋겠네.

나는 장기를 둘 줄 모르니

어찌 훈수를 두겠는가.

내 어서 들어가 보겠네."

이렇게 말하고는

손님은 골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주인 대감이 눈을 흘기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도 못 들어오게 했는데

어찌 들어왔나?

훈수를 두려거든 속히 나가게."

"아, 대감!

저는 장기를 둘 줄 모릅니다.

훈수라니요?"

이러고 옆에 앉아 보고 있자니,

주인 대감 앞에는

있어야 할 궁이 없었다.

이에 그 손님은

비록 장기 둘 줄은 몰라도

옆에서 늘 봐온 것이 있는지라,

궁 없는 것이

너무 생소하게 느껴져 물었다.

"대감! 대감 앞에는

궁이 어디로 갔는지요?"

"아, 그건 말일세.

자네가 들어오기 직전,

저 친구가 자기 포하고

바꿔 먹었다네."

"옛? 궁 없이도 장기를 둡니까?

좀 이상한데요."

"왜? 난 비록 궁은 잡아먹혔지만,

아직도 차와 포가 살아 있으니

계속 둘만 하다네.

자네는 훈수 두지 말고 가만히 있게나."

이에 손님이 나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모두들 배를 잡고 뒹굴면서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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