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77- 교활한 종의 흉계 (外愚內凶)

한 시골 선비가

매우 교활하고 맹랑한

종을 데리고 있었다.

선비는 그 종을

영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음흉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루는 서울에 볼일이 있어,

이 종에게 말을 몰게 하여

길을 나섰다.

서울에 도착해

마침 친척집 근처를 지나게 되자,

선비는 잠시 그곳에 들러

인사를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을 매둘 만한 곳이

마땅치 않으니

종에게 말했다.

"내 잠시 다녀올 테니

말과 함께 이 자리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야 한다.

서울 인심은 고약하여

눈만 감아도 코를 베어 가는 곳이니,

특별히 조심해야 하느니라."

선비는 이렇게 단단히 일러 놓고

친척집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종은 말을 몰고

시장으로 가서

안장을 팔아

돈을 받고는 단단히 감추었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몰고

본래 자리로 돌아와

말고삐를 잡고 길가에 앉아서는,

두 팔로 눈을 가린 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이에 선비가 나와서 보니

안장이 보이지 않고,

종은 길가에 앉아

고개를 쳐박고 있기에 물었다

"이 놈아!

말안장은 어디 두고,

왜 그렇게 고개는

쳐박고 앉았느냐?

어디가 아파서 그러느냐?"

이 때 종은

주인의 목소리인 줄 알면서도,

마치 모르는 사람인 양

여전히 얼굴을 들지 않은 채

대꾸했다.

"뭐요?

내가 고개를 들면

코를 베어 가려고

그러는 거지요?

내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으니,

날 속일 생각일랑 마시오."

"이 놈아!

무슨 소리냐? 나야 나!"

그러자 종이 비로소

놀라는 듯이 머리를 드니

선비가 물었다.

"얘야, 말안장은 어디 있느냐?

왜 안장이 안 보이느냐?"

"옛? 안장이라고요?

소인은 코를 베어 갈까봐

머리를 파묻고 있었을 뿐,

안장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놈아! 어찌된 일이냐?

서울 인심이 고약하다고

내 단단히 일렀거늘,

그게 무슨 소리냐?"

"주인어른께서 코를 베어 간다고

조심하라는 분부만 하셨지,

다른 것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어셔서

그저 코만 챙겼습니다요."

이에 선비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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