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21- 관원을 속이는 백문선 (文先挾糟)

조선 순조 연간에

도감포수(都監砲手)인 백문선(白文先)은,

계책을 꾸며 사람을 잘 속이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당시 백문선에게 걸리면

속지 않은 사람이 없어

모두 그를 피하면서,

어떤 일이든 걸려들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을 했다.

한편, 백문선은

교묘히 법을 피하기 때문에

큰 죄를 짓지 않아

포도청에 잡혀 들어가는 일도 없었다.

 

당시 남대문 근처에 사는

한 민가에서 몰래 소를 잡아,

은밀히 쇠고기를

팔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한 번은 소를 한 마리 잡아

밤중에 몰래 집으로 싣고 들어왔는데,

누군가 이 사실을 알고

관가에 밀고했다.

그리하여 포졸 몇 명이

이 사람 집 근처에 숨어서는,

쇠고기를 사 가지고

나가는 사람을 잡아

증거를 확보하려고

대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이 집에서도

은밀히 쇠고기를 팔고 있는지라

항시 사람을 시켜 감시하고 있었으니,

포졸들이 근처에 숨어

대문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몰래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팔지 못했고,

주인은 날짜가 지날수록

고기가 상할까 하여 마음을 졸였다.

곧 이 사람은 좋은 계책을

마련해야겠다 생각하고는,

도감포수 백문선을 찾아가 상의했다.

"이런 사정이 있으니,

당신이 무슨 수를 써서

내가 밀도살의 죄를 면하게 해주면

쇠고기를 많이 줄 것이며,

사례 또한 후히 하겠소.

어떤 계책을 강구해 보기 바라오."

이 제의에 백문선은

선뜻 허락하고,

이 사람을 따라 그 집으로 갔다.

그리고 일부러 사람들 눈에 띄도록

드러나게 그 집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만에 기름을 입힌

유지(油紙)에 술지거미를 포장하여1)

마치 쇠고기를 싼 것처럼 보이며

겨드랑이에 끼었다.

1)당시에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기름기가 있는 고기는 유지에 쌌음.

그런 다음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문을 감시하던 포졸들이

겨드랑이에 낀 꾸러미가

쇠고기인 줄 알고,

재빨리 그 뒤를 쫓았다.

백문선은 원래 도감포수라

달리기를 잘했다.

쫓아오는 포졸들과의 거리를

적당히 조절해 가며 유인하여,

뒤를 돌아보면서

남대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반송지(盤松池)에 이르러

연못을 끼고 달리니,

포졸들 역시 계속 따라왔다.

이 때 백문선이 보니

연못에 살얼음이 얼어 있어,

살짝 밟고 뛰어

못 안에 있는 작은 섬으로 건너갔다.

이에 따르던 포졸들도 얼음을 밟으니

금방 꺼질 듯하여 건너가지 못한 채

바라보고만 서서

빨리 건너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백문선은

그대로 섬에 서 있으니,

포졸들은 할 수 없이

신을 벗고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속을 걸어 섬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백문선을 붙잡아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유지 뭉치를 빼앗아 펴보니,

그것은 쇠고기가 아니라

술지거미였다.

이에 포졸들은

실망하여 투덜대면서,

"아니, 쇠고기가 아니고

술지거미잖아?

그런데 왜 이것을 가지고

그렇게 달려왔단 말이냐?"

이 말에 백문선은

시치미를 딱 떼고

이렇게 대답했다.

"쇠고기라니요?

그러면 당신들은

금도(禁屠)2) 단속

포졸들이란 말이요?

2)금도(禁屠) : 밀도살 금지

나는 또 금주(禁酒)

단속을 하는 줄 알고

열심히 달아났지요.

괜한 고생만 했구먼요."

이에 포졸들은 허탈해 했고,

밀도살을 한 사람은

그 사이 집에 있던 쇠고기를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다.

대체로 백문선의 사기 행각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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