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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제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 1431년 ~ 1492년)이 지은 제사문으로 항우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회왕 즉, 초 의제를 추모하는 글이다. 왕위를 항우에게 찬탈당하고 억울하게 살해된 의제(義帝)를 조상한다는 내용이지만,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죽게 한것을 비꼬는 것으로 여겨졌다. 김종직은 조선의 성리학자로 1459년 세조 5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1489년 성종 20년 이르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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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게 나를 죽이라” :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 칼럼 : 한겨레21

“시원하게 나를 죽이라” 영조와 맞선 김일경, ‘사초’를 위해 죽은 김일손, 상식을 뒤엎은 신채호…시대를 논리를 뛰어넘어 미래와 대화했던 역사의 선각자들을 만나보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newhis19@hanmail.net 몇 년 전 받은 전화 한 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덕일 선생님이십니까? 저 아계 후손입니다.” 필자는 선조 임금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후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분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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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 지킨 ‘조의제문’

연산군 때의 사관 김일손(金馹孫)은 사림 영수 김종직의 제자였다. 그는 이미 죽은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성종실록에 실으려다가 화를 입게 된다. 항우에게 죽임을 당한 의제를 단종에 비유하고 수양대군을 항우에 비유한 ‘조의제문’은 “신하(수양대군)가 임금(단종)을 찬시(簒弑·자리를 빼앗고 죽임)했다”는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김일손은 ‘조의제문’에 “충분(忠憤)이 깃들어 있다”고 덧붙였는데, 이것이 유자광 같은 훈구 공신들에게 간파되면서 무오사화가 발생한다. 사화(士禍)는 ‘선비가 화를 입었다’는 뜻이지만 무오사화를 사화(史禍)라고도 쓰는 이유는 김일손·권경유·권오복 같은 사관들이 사지가 찢겨 죽는 능지처참을 당했기 때문이다. 경상도 청도군에서 지병인 풍병을 치유하다 의금부에 체포된 김일손은 “내가 잡혀가는 것이 사초(史草·실록의 기초기록) 때문이라면 반드시 큰 옥사(獄事)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사초는 사관의 목숨을 걸고 후대에 전해야 할 진실이었다. 김일손 역시 김일경처럼 모든 자손들이 연좌돼 멸절됐다. 김일경의 핏줄은 우여곡절 끝에 보존됐지만 김일손의 핏줄은 폭군 연산의 거듭된 추적으로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자식보다 소중하게 전하고자 했던 ‘조의제문’은 <연산군일기>에 그의 국문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단재 신채호는 식민사관의 틀을 깨고 우리 역사의 무대가 얼마나 넓고 광활한지를 가르쳐준 역사가이다. 게다가 그는 역사 기록의 한자 한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제의 실증사학자들 이상으로 입증한 사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평양패수고’(平壤浿水考)에서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던 평양의 ‘한사군 낙랑군’을 최씨의 낙랑국과 구별해 부정한 기록을 보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료를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사기>를 쓰기 위해 살아남은 사마천, ‘사초’를 전하기 위해 죽어야 했던 김일손, 상식을 뒤엎었던 신채호! 이 세 역사가의 공통점은 그 시대가 아니라 다음 시대와 대화한 데 있다. 그 시대의 논리를 뛰어넘는 역사 인식이 세 역사가에게는 있었다. 역사의 진정한 몫은 이렇게 다음 시대와 대화하는 것이리라. 과거를 가지고 미래와 대화하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이다. 필자 역시 다음 시대와 대화하는 기분으로 과거의 역사 인물들을 초대하고 과거의 사건들을 되새겨볼 것이다. 이를 통해 시대와 불화했던, 그래서 그 시대에는 버림받았던 인물들이 미래와 화해할 수 있다면 감히 바랄 수 없는 망외의 소득일 것이다.

 

무오사화 05

무오사화 04  

무오사화 03  

무오사화 02  

무오사화 01  

무오사화 사적  

김종직 - 조의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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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 - 조의제문

조의제문 [弔義帝文 ] http://100.naver.com/100.nhn?docid=139167 조선 전기의 학자 김종직(金宗直)이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纂奪)을 비난한 글. 김종직은 항우(項羽)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懷王), 즉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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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제문 [弔義帝文 ]

http://100.naver.com/100.nhn?docid=139167

조선 전기의 학자 김종직(金宗直)이 수양대군(세조)의 왕위 찬탈(纂奪)을 비난한 글.

김종직은 항우(項羽)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懷王), 즉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을

지었는데, 이것은 세조에게 죽음을 당한 단종(端宗)을 의제에 비유한 것으로 세조의

찬탈을 은근히 비난한 글이다.

정축년(丁丑年) 10월 밀양에서 경산으로 가다가 답계역(踏溪驛)에서 잠을 잤다.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서

"나는 초나라 회왕(懷王: 의제) 손심인데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에게 살해되어 빈강(彬江)에 버려졌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회왕은 중국 초나라 사람이고,

나는 동이 사람으로 거리가 만리(萬里)나 떨어져 있는데

꿈에 나타난 징조는 무엇일까?

역사를 살펴보면 시신을 강물에 버렸다는 기록이 없으니

아마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회왕을 죽이고 시체를 강물에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야 글을 지어 의제를 조문한다. - (연산군 일기 4년 7월 17일)

이 글을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金馹孫)이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사초(史草)에 적어

넣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편찬책임자는 이극돈(李克墩)으로 이른바 훈구파(勳舊派)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일손의 사초 중에 이극돈의 비행(非行)이 기록되어 있어 김일손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던 중,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 중에서 발견한 이극돈은 김일손이 김종직의 제자임을 기화(奇貨)로 하여

김종직과 그 제자들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士林派)를 숙청할 목적으로,

‘조의제문’을 쓴 김종직 일파를 세조에 대한 불충(不忠)의 무리로 몰아 선비를 싫어하는 연산군을 움직여,

큰 옥사(獄事)를 일으켰다. 이것이 무오사화(戊午史禍)인데,

그 결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고,

김일손·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허반(許盤) 등이 참수(斬首)되었다.

http://blog.naver.com/bhjang3/140034469576

 

조의제문(弔義帝文)

의제를 조문하는 글

-김종직(金宗直)

 

丁丑十月日 : 정축 10월 어떤 날

정축십월일

余自密城道京山 : 나는 밀성으로부터 경산으로 향하여

여자밀성도경산

宿踏溪驛 : 답계역에서 숙박하는데

숙답계역

夢有神披七章之服 : 꿈에 신(神)이 칠장의 의복을 입고

몽유신피칠장지복

頎然而來 : 헌칠한 모습으로 와서

기연이래

自言 : 스스로 말하기를

자언

楚懷王孫心爲 : “나는 초나라 회왕인 손심(孫心)인데

초회왕손심위

西楚霸王所弑 : 서초패왕에게 살해 되어

서초패왕소시

沈之郴江 : 빈강(郴江)에 잠겼다.”

침지침강

因忽不見 : 그래서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인홀불견

余覺之 : 나는 꿈을 깨어

여각지

愕然曰 : 놀라며 이르기를

악연왈

懷王南楚之人也 : “회왕은 남초 사람이요,

회왕남초지인야

余則東夷之人也 : 나는 동이 사람으로

여칙동이지인야

地之相距 : 지역의 서로 떨어진 거리가

지지상거

不啻萬有餘里 : 만여 리가 될 뿐이 아니며

불시만유여리

而世之先後 : 세대의 선후도

이세지선후

亦千有餘載 : 또한 천 년이 넘는데

역천유여재

來感于夢寐 :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래감우몽매

玆何祥也 : 이것이 무슨 상서로움일까

자하상야

且考之史 :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차고지사

無沈江之語 :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무침강지어

豈羽使人密擊 : 어찌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기우사인밀격

而投其屍于水歟 :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이투기시우수여

是未可知也 : 이것을 알 수 없으니

시미가지야

遂爲文以弔之 : 마침내 문을 지어 조문한다.

수위문이조지

惟天賦物則以予人兮 : 하늘이 사물의 법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유천부물칙이여인혜

孰不知尊四大與五常 : 어느 누가 사대와 오상을 높일 줄 모르리오.

숙불지존사대여오상

匪華豐而夷嗇( : 중화라서 풍부하고 오랑캐라서 인색한 바 아니니

비화풍이이색

曷古有而今亡 :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겠는가

갈고유이금망

故吾夷人 : 그러기에 나는 오랑캐요

고오이인

又後千載兮 : 또 천 년을 뒤졌건만

우후천재혜

恭弔楚之懷王 :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한다

공조초지회왕

昔祖龍之弄牙角兮 : 옛날 조룡이 아각을 가지고 노니

석조룡지롱아각혜

四海之波 : 사해(四海)의 물결이

사해지파

殷爲衁 : 붉어 피가 되었어라

은위황

雖鱣鮪鰍鯢 : 비록 전유와 추애일지라도

수전유추예

曷自保兮 : 어찌 보전하겠는가

갈자보혜

思網漏而營營 : 그물 벗을 생각에 급급했으니

사망루이영영

時六國之遺祚兮 : 당시 육국의 후손들은

시륙국지유조혜

沈淪播越 : 숨고 도망가서

침륜파월

僅媲夫編氓 : 겨우 편맹과 짝이 되었다오.

근비부편맹

梁也南國之將種兮 : 항량(項梁)은 남쪽 나라의 장군의 자손으로

량야남국지장종혜

踵魚狐而起事 : 어호(魚狐)를좇아 일을 일으켰네.

종어호이기사

求得王而從民望兮 :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랐어라

구득왕이종민망혜

存熊繹於不祀 : 끊어졌던 웅역(熊繹)의 제사를 보존하였도다.

존웅역어불사

握乾符而面陽兮 : 건부(乾符)를 쥐고 임금이 됨이여

악건부이면양혜

天下固無大於芉氏 : 천하에는 진실로 미씨보다 큰 것이 없었다.

천하고무대어간씨

遣長者而入關兮 :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에 들어가게 함이여

견장자이입관혜

亦有足覩其仁義 : 역시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았도다.

역유족도기인의

羊狠狼貪 : 양흔낭탐이

양한랑탐

擅夷冠軍兮 : 관군(冠軍)을 마음대로 평정하였구나

천이관군혜

胡不收而膏齊斧 :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호불수이고제부

嗚呼 : 아아,

오호

勢有大不然者兮 :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이여

세유대불연자혜

吾於王而益懼 : 나는 왕에게 더욱 두렵게 여겼어라

오어왕이익구

爲醢腊於反噬兮 : 반서(反噬)를 당하여 해석(醢腊)이 됨이여

위해석어반서혜

果天運之蹠盭 :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나

과천운지척려

郴之山磝以觸天兮 : 빈의 산이 우뚝하여 하늘에 닿음에야

침지산오이촉천혜

景晻愛以向晏 :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을 향하고

경엄애이향안

郴之水流以日夜兮 :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흘러가는구나

침지수류이일야혜

波淫泆而不返 :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른다.

파음일이불반

天長地久 : 천지가 장구한들

천장지구

恨其可旣兮 : 한이 어찌 다할까

한기가기혜

魂至今猶飄蕩 : 넋은 지금도 표탕하다.

혼지금유표탕

余之心貫于金石兮 : 내 마음이 금석을 꿰뚫음이여

여지심관우금석혜

王忽臨乎夢想 :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구나

왕홀림호몽상

循紫陽之老筆兮 : 자양의 노필을 따라감이여

순자양지로필혜

思螴蜳以欽欽 : 생각이 초조하여 흠흠하다

사진윤이흠흠

擧雲罍以酹地兮 :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여

거운뢰이뢰지혜

冀英靈之來歆 : 바라기는 영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기영령지래흠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939?category=48674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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