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wR4xUz_ls10
시각 진행바 5:00 이후의 문경 사람들의 멋진 유머가 돋보이네요.
"낙동강 칠백리에 홍수가 다 났네."
라는 이처럼 재담의 스케일이 큰 것은 아마도 주흘산과 새재 덕분이겠지요. 노래 들으니 갑자기 방뇨하는 춘자의 오줌줄기를 보고 싶네뇨. 어떻게 쌌길래 낙동강 칠백리에 홍수가 다 났는지.
"아리랑 춘자가 버리(보리)쌀을 씻다가
이도령 피리소리에 오줌을 퍽 쌌네.
오좀을 쌌으면 적게나 쌌나
낙동강 칠백리에 홍수가 다 났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125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blog.daum.net/kieury/11302851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7Klo&articleno=8991827
宿鳥嶺[숙조령] 栗谷 李珥[율곡 이이]
조령(새재)에서 묵다.
登登涉險政斜暉[등등섭험정사휘] : 오르고 올라 험한곳 이르니 확실히 빛은 기울고
小店依山汲路微[소점의산급로미] : 우거진 산속 작은 주막 어렴풋한 길로 이끄네.
谷鳥避風尋樾去[곡조피풍심월거] : 골짜기 새들은 바람을 피해 나무그늘 찾아 가고
邨童踏雪拾樵歸[촌동답설습초귀] : 시골 아이 눈을 밟고 땔나무 주워 돌아오네.
羸驂伏櫪啖枯草[리참복력담고초] : 지친 곁말은 말구유에 머리숙여 마른 풀을 씹고
倦僕燃松熨冷衣[권복연송위랭의] : 고달픈 종은 소나무 불붙여 찬 옷을 따뜻이하네.
夜久不眠羣籟靜[야군불면군뢰정] : 긴 밤 잠못들고 무리들 소리도 고요한데
漸看霜月透柴扉[점간상월투시비] : 점점 사립문에 새드는 서릿 달을 바라보네.
栗谷先生全書卷之一[율곡선생전서1권] 詩[시] 上 1814년 간행본
宿鳥嶺村店-서애 유성룡
숙조령촌점-새재에서 묵다
悄悄林風起 초초임풍기
泠泠溪響生 령령제향생
幽懷正迢遞 유회정초최
山月自分明 산월자분명
浮世身如寄 부세신여기
殘年病轉嬰 잔년병전영
南來還北去 남내완북거
簪笏愧虛名 참홀괴어명
살랑살랑 솔바람 불어오고
졸졸졸 냇물 소리 들려오네.
나그네 회포는 끝이 없는데
산 위에 뜬 달은 밝기도 해라.
덧없는 세월에 맡긴 몸인데
늘그막 병치레 끊이질 않네.
고향에 왔다가 서울로 가는 길
높은 벼슬 헛된 이름 부끄럽구나.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9D%B4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1546
https://ko.wikipedia.org/wiki/%EB%A5%98%EC%84%B1%EB%A3%A1
http://blog.daum.net/kieury/11302851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7Klo&articleno=8991827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88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화담 서경덕의「독서」(花潭徐敬德의「讀書」) : 새재박물관 아래 소재
讀書當日志經綸 오늘에 독서함은 세상경륜 큰 뜻 품음이라 歲暮還甘顔氏貧 한해가 저물도록 가난을 달게 여겼네 富貴有爭難下手 부귀를 다투는 일에야 내 어찌 끼여들랴 林泉無禁可安身 물흐르는 숲속에 이 한몸 맡기려네 |
지봉 이수광의「도중」(芝峯李粹光의「途中」) : 새재박물관 아래 소재
景入詩中畵 산길 접어드니 경치는 시속의 그림이요 泉鳴譜外琴 냇물 소리는 악보에 없는 거문고 가락이라 路長行不盡 길은 멀어 가도 가도 끝이 없는데 西日破遙岺 해는 멀리 서산마루에 걸려 있네 |
율곡 이이의「석갈」(栗谷李珥의「釋褐」) : 새재박물관 아래 소재
沽玉總看朝衆魏 소중한 인재들 조정에다 모였거니 考槃誰復老林泉 그 누가 초야에서 늙으려드랴 孤臣早綴窮民籍 보잘것 없는 이 신하 곤궁한 백성으로 태어나서 下學從硏두簡編 낡은 책들을 골돌히 뒤적여 왔네 |
다산 정약용의「탐진촌요」: 새재박물관 아래 소재
水田風起麥波長 무논에 바람 불면 보리물결 장관이고 麥上場時稻揷秧 보리타작 할 무렵 그 자리에 모를 심네 崧菜雪天新葉綠 배추는 눈 속에서 새잎이 파랗고 鷄雛酷月嫩毛黃 병아리는 섣달에 솜털이 노랗다네 |
퇴계 이황의「도산월야영매」(退溪李滉의「陶山月夜詠梅」) : 새재박물관 아래 소재
步犀中庭月越人 뜨락을 거닐자니 달이 사람 따라오네 梅邊行驍幾回巡 매화꽃 언저리를 몇 차례나 돌았던고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 옷깃에 향내 머물고 꽃그림자 몸에 가득해라 |
면암 최익현의「일옥중묵회」(勉菴崔益鉉의「日獄中默會」) : 새재박물관 아래 소재
皓首奮犬畝 백발 휘날리며 밭이랑에서 뛰쳐 나옴은 草野願忠心 초야 백성의 충성심을 바치고자 亂敵人皆討 나라 어지럽히는 외적을 모두가 나서 토벌해야지 何須問古今 예와 이제 다르랴 물어 무엇하리 |
조선시대 10대 간선대로
1로(一路)는 한양-고양-파주-평양-정주를 거쳐 국경 의주(義州)에 이르는 길
2로(二路)는 한양-원산-영흥-함흥을 거쳐 국경 두만강 하구 서수라(西水羅: 우리땅 山經 長白正幹의 종점)에 이른다.
3로(三路)는 한양-원주- 동해안 강릉을 거쳐 평해(平海: 현 경북 울진군 평해읍)에 이르는 소위 관동로(關東路)
4로(四路)는 한양-판교-용인-양지(陽智: 현 용인시 양지면)-광암-달내(達川;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충주로 흘러 남한강에 합수, 삼대 名水의 하나)-충주-조령-문경-유곡역(幽谷驛: 문경시 남쪽에 있음) - 낙원역-낙동진(洛東鎭: 현 상주시 낙동면)-대구-청도-밀양-황산역을 거쳐 동래(東萊), 부산(釜山)에 이르는 길,
5로(五路)는 한양—유곡역은 4로(四路)와 같고, 유곡역-상주-성주-현풍-칠원-함안-진해-고성을 지나 통영(統營)에 이르는 길.
6로(六路)는 한양-동작나루-과천-수원-천안-공주-여산-삼례역-전주-남원-함양-진주를 거쳐 통영(統營)에 이르는 길인데 한양에서 봐서 경상도로 가는 길 3개 중에서 오른쪽에 있다 하여 ‘경상우로(慶尙右路)’라 하였다.
7로(七路)는 한양—삼례역은 6로(六路)와 같고, 삼례역-태인-정읍-장성-나주-영암-해남을 거쳐 수로로 제주(濟州)에 이 르는 길.
8로(八路)는 한양-평택-소사를 거쳐 충청수영(忠淸水營: 현 충남 보령시 오창에 있었음)에 이르는 길
9로(九路)는 한양에서 강화(江華)에 이르는 길.
10로(十路)는 한양-충주를 지나 안동(安東)과 봉화(奉化)에 이르는 길
「목계장터」
ㅡ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허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천치로 변해 뒤에 붙으라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농무』이래 민중의 생활에 밀착한 현실인식과 빼어난 서정성, 친숙한 가락을 결합한 시세계로 한국시의 물줄기를 바꾸며 새 경지를 열었다. 70년대 이후 문단의 자유실천운동·민주화운동에 부단히 참여하여 당대적 현실 속에 살아숨쉬는 시편들로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시집으로 『농무』『새재』 『달 넘세』 『가난한 사랑노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낙타』, 장시집 『남한강』, 산문집 『민요기행』1·2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1·2 『바람의 풍경』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만해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로 있다.
https://kydong77.tistory.com/18865
https://kydong77.tistory.com/18866?category=485846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A%B2%BD%EB%A6%BC
- 《새재》(창작과비평사, 1979)
( 長詩 장시 '새재'의 일부)
'1913년 새재에서 싸우다가 [ * 1905 한국 주권상실, 1910 - 1945.8.15 일제 식민통치.
원통하게 목 잘려
원귀로 객지를 떠돈 지 그 몇 해
이제사 고향땅에 돌아와
잠들다, 병진년*에'
*임란후 병진년은 1616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선조 25)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어 1598년(선조 31)까지 이어진 7년 전쟁이었다.
[참조] 관문의 석벽은 외적의 방어벽. 신립 장군이 한양 부근에서 기마전을 건의했으나 거절당해 부득이 탄금대로 후퇴하여 배수진을 쳤지만 신무기 조총을 대적할 수 없어 왜적에 패하고 자결함.
[참고] 충주 탄금대 전투 - 신립 장군의 오판, 8천 기마부대의 전멸
https://www.youtube.com/watch?v=wFg8U7Gf7hs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9131443018569
신립 장군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패했다. 두고두고 비판받는 선택이다. 천혜의 요충지 조령을 버리고 왜 탄금대를 택했느냐, 북쪽 여진과의 싸움에서 올린 무공 때문에 우쭐대다 망한 것 아니냐는 평이다. 저자의 해석은 다르다. 조령을 막는다 해도 죽령과 추풍령을 통과하는 가토 기요마사와 구로다 나가마사의 2군, 3군은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신립은 수도 방위를 하려면 차라리 조령, 죽령, 추풍령 다 포기하고 한양 인근에서 결전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가 탄금대 전투다. 전쟁사 연구자인 저자는 흔히 알려진 전쟁의 이면에 있는 이런 이야기들을 고조선부터 한국전쟁까지 뽑아낸다. 연개소문이 지었다는 ’김해(金海)병서’의 진실, 당나라에 대한 신라의 요동선제공격, 몽골 수군이 약해 강화도에서 고려가 버텼다는 이야기의 속사정, 일제 때 ‘조선총독부’가 아니라 ‘고려총독부’가 될 뻔한 사연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신경림 ㅡ 고향길
https://www.youtube.com/watch?v=6KNC7ufEK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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