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18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0. 청정한 행 ⑤

그 때에 세존이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아사세가 기절하여 땅에 쓰러짐을 보고 대중에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이 임금을 위하여 한량없는 겁 동안 세상에 있으면서 열반에 들지 아니하리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으실 터이온데, 어찌하여 아사세왕만을 위한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야, 이 대중에는 한 사람도 내가 끝까지 열반에 들리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지만, 오직 아사세왕이 내가 끝까지 열반에 들리라 하여 기절하고 땅에 쓰러졌느니라. 선남자야, 내가 말한 바 아사세를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비밀한 뜻이어서 그대들은 알지 못하리라. 왜냐 하면 나의 말에 위한다 함은 온갖 범부요, 아사세라 함은 5역죄를 지은 모든 사람들이니라. 또 위한다는 것은 모든 함이 있는 중생이니, 나는 언제나 함이 없는 중생을 위해서는 세상에 머물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함이 없는 이는 중생이 아니며, 아사세라 함은 번뇌를 구족한 것이니라. 또 위한다 함은 불성을 보지 못하는 중생이니라. 만일 불성을 보았다면 나는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지 아니하리니, 왜냐 하면 불성을 본 이는 중생이 아니며, 아사세라 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지 못한 온갖 중생들이니라.
또 위한다 함은 아난과 가섭 두 대중이요, 아사세라 함은 아사세왕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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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는 후비들과 왕사성의 모든 여인들이니라. 또 위한다 함은 이름이 불성이요, 아사는 나지 않음이요, 세는 원수니, 불성이 나지 않았으므로 번뇌인 원수가 생겼고, 번뇌인 원수가 생겼으므로 불성을 보지 못하는데, 번뇌가 생기지 아니하면 불성을 볼 것이며, 불성을 보았으므로 대반열반에 편안하게 머물 것이니, 그러므로 나지 않았다 이름하며, 그러므로 아사세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아사는 나지 않았다는 것이요, 나지 않은 것은 열반이며, 세는 세상법이요, 위한다 함은 더럽히지 않음이니, 세상의 여덟 가지 법으로는 더럽힐 수 없는 것이므로,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에 열반에 들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아사세를 위하여 한량없는 억겁을 열반에 들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선남자야, 여래의 비밀한 말이 불가사의며, 부처님·교법·승가도 불가사의며, 보살마하살도 불가사의며, 대반열반경도 불가사의니라.”
이 때에 자비하신 세존 도사(導師)께서 아사세왕을 위하여 월애(月愛) 삼매에 드시고, 삼매에 듣고는 큰 광명을 놓으니, 그 광명이 청량하여 왕의 몸에 비치매 대풍창병이 즉시 나았고, 답답하고 뜨거운 증세가 스러지고 말았다.
왕은 병이 나았고 몸이 시원함을 느끼면서 기바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겁말(劫末)에는 달 셋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이 때에는 모든 중생의 근심과 고통이 없어진다 하더니,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는데, 이 광명이 어디서 와서 나의 몸에 비치며, 창병의 고통이 나아져서 몸이 편안하여지는가.”
기바는 대답하였다.
“이것은 겁이 다하여 달 셋이 한꺼번에 비친 것도 아니고, 불해[火日]나 별이나 약초나 보배 구슬이나 하늘 빛도 아닙니다.”
“이 광명이 달 셋이 한꺼번에 비치는 것도, 보배 구슬의 광명도 아니하면 누구의 광명인가.”
“대왕이시여, 이것은 하늘 중의 하늘이 놓는 광명이니, 이 광명은 근본이 없고 가가 없어서, 더운 것도 아니고 찬 것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없어짐도 아니며, 빛도 아니고 빛 없는 것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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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아니며, 푸른 것도 아니고 누른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니지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모양이 있어 볼 수 있으며, 근본이 있고 가가 있고 덥고 차고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희어서 말할 수 있나이다. 대왕이시여, 이 광명이 비록 그러하나, 진실로 말할 수 없고 볼 수 없으며, 나아가 푸르고 누르고 붉음이 없나이다.”
“기바여, 그 하늘 중의 하늘이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을 놓으시는가?”
“이 상서는 대왕을 위한 것이니, 대왕이 먼저 말씀하기를 ‘이 세상에는 몸과 마음을 치료할 용한 의원이 없다’ 하셨으므로 이 광명을 놓아서 먼저 왕의 몸을 다스리고, 그런 뒤에 마음을 다스리니이다.”
“기바여, 여래 세존께서 나를 생각하시는가?”
“어떤 사람이 아들 일곱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한 아들이 병이 났다고 한다면, 부모의 마음은 평등하건만 병난 아들에게 마음이 치우치게 되는 것이오니, 대왕이시여, 여래도 그와 같아서 여러 중생에게 평등하지 않음이 없건만, 죄 있는 이에게 마음이 치우치게 되는 것이오매, 방일한 이는 부처님께서 자비로 염려하시고, 방일하지 않는 이는 마음을 놓는 것이오니, 방일하지 않는 이는 6주(住) 보살이니이다.
대왕이시여, 부처님 세존은 중생들에 대하여 문벌이나 늙고 젊음이나 빈부나 시절이나 해나 달이나 별이나 공교롭거나 미천하거나 하인이나 종이나를 보는 것이 아니고 선심 있는 중생만을 보오며, 선심이 있으면 문득 자비하게 생각하나이다. 대왕이시여, 이 상서는 여래께서 월애삼매에 들어서 놓으시는 삼매인 줄로 아십시오.”
“어떠한 것을 월애삼매라 하는가?”
“마치 달빛이 모든 우발라꽃을 곱게 피게 하듯이,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선한 마음을 피게 하므로 월애삼매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달빛이 모든 길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듯이,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열반의 길을 닦아 익히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므로 월애삼매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달빛이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형상과 빛이 점점 늘어나나니,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처음 마음을 낸 이로 하여금 선한 근본이 점점 늘게 하며, 나아가 대반열반을 구족케 하므로 월애삼매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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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달빛이 16일부터 그믐까지 형상과 빛이 점점 덜어지나니,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빛이 비치는 곳마다 모든 번뇌를 점점 덜어지게 하나니, 그러므로 월애삼매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한창 무더울 때에 모든 중생이 항상 달빛을 생각하고 달빛이 비치면 찌는 듯하던 더위가 감하여지듯이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탐욕과 번뇌의 더위를 덜어지게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보름달이 여러 별들 중에 왕이며 감로맛이 되어 모든 중생의 사랑을 받듯이, 월애삼매도 그와 같아서 여러 선한 일 중의 왕이며, 감로맛이 되어 모든 중생의 즐거움이 되나니, 그러므로 월애삼매라 하나이다.”
“기바여, 내가 들으니, 여래는 바쁜 사람과 함께 앉지도 섰지도 일어나지도 말도 의논도 하지 아니함이, 마치 바다가 송장을 묵히지 아니하고, 원앙이 뒷간에 머물지 아니하고, 제석천왕이 귀신과 함께 있지 아니하고, 구시라새가 죽은 나무에 깃들지 않는 것 같아서, 여래도 그러하다 하나니, 내가 어떻게 가서 뵈오며, 설사 뵈온들 내 몸이 장차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는가. 내가 보건대 여래께서 차라리 술 취한 코끼리·사자·호랑이나 맹렬한 불꽃을 가까이할지언정 막중한 죄업을 지은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소. 그러므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으니 무슨 마음으로 여래를 가서 뵈옵겠는가?”
“대왕이시여, 마치 목마른 사람은 샘으로 가고, 굶주린 이는 밥을 찾고, 두려워하는 이는 구원을 청하고, 병난 이는 약을 구하고, 더위에 지친 이는 서늘한 그늘을 구하고, 추워 떠는 이는 불을 구하나니, 대왕이 지금 부처님을 찾으심도 그와 같이 하여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여래는 일천제 따위를 위하여서도 법을 연설하시거늘, 하물며 대왕은 일천제가 아니온즉 마땅히 자비로 구제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기바여, 예전에 내가 들으니 일천제는 믿지도 않고 듣지도 못하고 관찰하지도 못하고 이치도 얻지 못한다 하던데, 어찌하여 여래가 그에게 법을 말하시는가?”
“대왕이시여, 어떤 사람이 중병이 들렸는데, 밤에 꿈을 꾸니, 기둥이 하나만 세워진 전당에 올라가서 생소와 기름을 먹기도 하고 몸에 바르기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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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재에 눕고 재를 먹기도 하고 마른 나무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혹은 원숭이와 함께 다니고 않고 눕기도 하고, 물에 잠기고 진흙에 빠지기도 하며, 누각과 높은 산과 나무와 코끼리와 말과 소와 양 따위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몸에 푸르고 누르고 붉고 검은 옷을 입고 웃으며 노래하고 춤추기도 하며, 혹은 까마귀·독수리·여우·살쾡이 따위를 보기도 하고, 이가 빠지고 머리카락이 떨어지며, 벗은 몸에 개[狗]를 베고 더러운 가운데 누워 보기도 하며, 또 죽은 사람과 함께 가고 서고 앉고 일어나면서 손을 잡고 음식을 먹기도 하며, 독사가 가득한 길로 걸어가기도 하며, 또 혹은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과 서로 껴안기도 하고, 다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기도 하며, 부서진 나귀 수레를 타고 남방으로 가기도 하였나이다.
이 사람이 이런 꿈을 꾸고는 마음으로 수심하며, 수심한 까닭으로 병이 더하였고, 병이 더한 까닭으로 집안 친속들이 사람을 보내어 의원을 청하였습니다.
심부름 간 사람이 키가 작고 불구자로서 머리에는 먼지를 쓰고, 헌옷을 입고 낡고 깨어진 수레를 타고 가서 의원을 보고 빨리 수레를 타라고 청하였습니다.
이 때에 의원이 생각하기를 ‘심부름 온 사람의 모양이 불길하니 환자의 병을 고치기 어려우리라’ 하였고, 다시 생각하기를 ‘심부름꾼은 비록 불길하지만, 다시 날짜를 점쳐서 병을 다스릴 수 있는가 보리라. 4일, 6일, 8일, 12일, 14일과 같은 이런 날에는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겠구나’ 하였습니다.
또 생각하기를 ‘날짜는 비록 불길하나, 다시 별로 점을 쳐서 치료할 수 있는가 보리라. 만일 화성, 금성, 묘성(昴星)·염라왕성·습성(濕星)·만성(滿星) 이런 별들을 본다면 병을 고치기 어려우리라’ 하였습니다. 또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별점은 비록 불길하나 다시 때를 살펴보리라. 만일 가을이나 겨울이나 해가 질 때나 한밤중이나 달이 질 때면 이 병이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생각하기를 ‘이렇게 여러 가지가 죄다 불길하거니와 혹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리니, 마땅히 병인을 보아야 할 것이다. 병인이 만일 복덕이 있으면 다스릴 수 있을 것이요, 복덕이 없다면 비록 길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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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고는 심부름꾼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길에서 다시 생각하기를 ‘저 병인이 장수할 상이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요, 단명할 상이면 치료할 수 없으리라’ 하였는데, 앞길에서 두 아이가 서로 붙들고 싸우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머리카락을 뽑고 기왓장과 돌과 칼과 작대기로 때리는 것을 보았으며, 어떤 사람이 불을 들고 가던 것이 저절로 꺼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무를 찍고, 어떤 사람이 가죽을 끌고 길을 따라 가는 것을 보았으며, 혹은 길에 떨어진 물건을 보며, 어떤 사람은 빈 그릇을 들었고, 혹은 사문이 혼자 가는 것을 보며, 혹은 범·이리·까마귀·독수리·여우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고는 또 생각하기를, ‘심부름꾼이나 길에서 보는 것이 모두 상서롭지 못하니 이 병인은 결정코 치료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였으며,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가기 않으면 용한 의원이 아니요, 만일 가더라도 치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고, 또 생각하되, ‘이렇게 여러 가지가 상서롭지 못하지만 우선 그냥 두고 병인에게 가 보리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때에 앞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없어졌다, 죽었다, 무너졌다, 꺾어졌다, 깍아버렸다, 떨어졌다, 타버렸다, 오지 말라, 치료할 수 없다, 구제할 수 없다.’
또 남쪽에서 짐승의 소리가 들리니, 까마귀·독수리·사리새의 소리와 개·쥐·여우·멧돼지·토끼의 소리였습니다.
이런 소리를 듣고는 병인은 진실로 치료하기 어려우리라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인이 있는 집에 들어가서 병인을 관찰하니, 찼다 더웠다가 하고, 골절이 아프고 눈이 붉고 눈물이 흐르고 귀 우는 소리[耳聲]가 밖에까지 들리며, 목구멍이 아프고 혓바닥이 터져 그 빛이 검고, 머리를 바로 들지 못하고, 몸은 말라서 땀이 나지 않고, 대소변이 막혀서 통하지 못하며, 몸이 갑자기 비대하여 뻘겋고 이상하며, 말이 고르지 못하여 컸다 작았다 하고 온몸이 얼룩얼룩하여 푸르고 붉고 하며, 배가 부었고 말이 분명치 못하였습니다.
의원은 병세를 살피고는 간병하는 이에게 ‘병인의 정신상태가 요사이에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이 사람이 본래는 삼보와 하늘을 믿고 존경하더니, 지금은 변하여 공경하고 믿는 마음이 없으며, 본래는 보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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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더니 지금은 인색하며, 본래는 밥을 적게 먹더니 지금은 많이 먹으며, 본래는 성품이 폐악(敝惡)하더니 지금은 온화하고 선하며, 본래는 성품이 인자하여 부모에게 공경하더니 지금은 부모에게 공경하는 마음이 없나이다’하였습니다.
의원이 이 말을 듣고는 병자에게 가까이 가서 맡아보니, 우발라향 내음, 침수향 내음, 필가다향 내음, 다가라향 내음, 울금향 내음, 바마라발향 내음, 전단향 내음과 고기 굽는 냄새, 포도주 냄새, 뼈 타는 냄새, 생선 냄새, 똥 냄새가 났습니다.
향내와 구린내를 알고는 또 몸을 만져보았더니 보드랍기는 비단이나 목화와 같았고, 굳기는 돌과 같고, 얼음처럼 차기도 하고, 불처럼 뜨겁기도 하고, 모래처럼 깔깔하기도 하였습니다. 의원은 이러한 가지가지 형편을 보고 병자가 반드시 죽을 것을 알았지만, 꼭 죽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간병하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바쁜 일이 있어서 갔다가 내일 다시 올 터이니, 병인이 찾는 대로 무엇이나 주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심부름꾼이 또 의사에게 갔으나, 의사의 말은 ‘나의 볼일이 아직 끝나지 못하였고 약도 마련하지 못하였노라’ 하였습니다. 이만하면 지혜 있는 이는 병자가 반드시 죽을 줄을 알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세존도 그러하여 일천제들의 근성을 잘 알아서 법을 말하나이다. 왜냐 하면 만일 그를 위하여 말하지 아니하면, 범부들은 말하기를 ‘여래가 자비한 마음이 없도다. 자비한 마음이 있으면 온갖 지혜를 가진 이라 하련만, 자비한 마음이 없다면 무엇으로 온갖 지혜를 가진 이라 말하랴’ 할 것이므로, 여래는 일천제를 위하여서 법을 연설하나이다. 대왕이시여, 여래 세존은 병자를 보는 대로 늘 법약을 주건만 병자가 먹지 않는 것은 여래의 허물이 아니옵니다.
대왕이시여, 일천제를 분별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의 선근을 얻을 이요, 하나는 후세의 선근을 얻을 이입니다. 여래는 일천제들을 잘 아시어서 현재에 선근을 얻을 이에게는 법을 말씀하시고, 후세에 얻을 이에게도 법을 말씀하나니, 지금에 이익이 없어도 후세의 인을 짓기 위하시므로 여래는 일천제에게도 법을 말씀하나이다. 일천제는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영리한 이요 하나는 중품 근성입니다. 영리한 사람은 현재에 선근을 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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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요, 중품 사람은 후세에 얻을 터이므로 부처님의 설법이 헛되지 않나이다. 대왕이시여, 어떤 깨끗한 사람이 뒷간에 빠진 것을 선지식이 보고는 딱하게 여기어 나아가 머리카락을 붙들고 끌어내나니, 부처님 여래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이 3악도에 떨어짐을 보고는 방편으로 구제하여 벗어나게 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일천제를 위하여서도 법을 연설하나이다.”
“기바여, 여래가 참으로 그러하시다면 길한 날을 택하여 가서 뵈오리라.”
“대왕이시여, 여래의 법에는 길한 날을 택하는 일이 없나이다. 대왕이시여, 마치 중병에 걸린 사람은 날을 보고 길흉을 가리지 못하고 용한 의원을 구할 뿐이니, 대왕은 지금 병이 중하시오니, 부처님 의원을 구하실 뿐이옵고, 좋은 날을 택하실 것 아닌가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전단나무에 타는 불이나 이란(芛蘭)에 타는 불이 타기는 마찬가지오니, 길한 날 흉한 날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께 가시기만 하면 죄를 멸할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대왕은 오늘 곧 가사이다.”
이 때에 대왕은 길상이란 신하에게 말씀하였다.
“경은 내가 지금 부처님 계신 데 가려 하니, 공양하기에 필요한 물건들을 마련하라.”
길상은 여쭈었다.
“대왕이시여, 좋사옵니다. 필요한 공양거리가 모두 준비되었나이다.”
아사세왕은 부인과 더불어 타고 가는 수레가 1만 2천이요 살찌고 건장한 코끼리가 5만이니, 코끼리마다 세 사람씩 타고, 가지고 가는 깃발·일산·꽃·향·풍류 여러 가지 공양거리가 모두 구족하였고, 따라가는 인마들이 18만이요, 마가다국 백성들로 왕을 따라가는 이가 58만이었다. 이 때에 구시나성에 있는 대중이 12유순에 가득하여, 아사세왕과 그 권속들이 길을 찾아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운 인연이 될 것은 착한 벗이 제일이니라. 왜냐 하면 아사세왕이 만일 기바의 말을 따르지 아니하였더라면 내달 7일에는 목숨이 마치어 아비지옥에 떨어질 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가까운 인연은 착한 벗이 제일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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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세왕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사바제의 비유리왕은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화재를 만나 죽었다 하고, 구가리 비구는 산 채로 땅에 들어가 아비지옥에 갔다 하고, 수나찰다는 가지가지 나쁜 짓을 하고는 부처님 계신 데 가서 모든 죄가 소멸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기바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이런 두 가지 이야기를 들었으나 결정할 수 없으니, 경은 와서 나와 함께 한 코끼리를 탑시다. 내가 만일 아비지옥에 들어가게 되거든, 경이 나를 붙들어 떨어지지 않게 하시오. 왜냐 하면 내가 들으니 도를 얻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오.”
이 때에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아사세왕이 지금 의심이 있으니 내가 이제 그를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하리라.”
그 때에 모인 가운데 한 보살이 있으니 이름은 지일체(持一切)라 하는데,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일정한 모습이 없나니, 빛도 일정한 모습이 없고 나아가 열반도 일정한 모습이 없다 하였사온데, 지금 여래께서 어찌하여 아사세왕을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좋은 말이다. 선남자야, 내가 이제 결정코 아사세왕에게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하리라. 왜냐 하면 만일 왕의 의심을 깨뜨린다면 모든 법이 일정한 모습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아사세왕을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하리니, 이 마음이란 일정함이 없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야, 만일 저 왕의 마음이 일정하다면 왕의 역죄를 어떻게 벗게 하리요만, 일정한 모습이 없으므로 그 죄를 파괴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아사세왕을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니라.”
이 때에 대왕은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이르러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여래를 뵈오니, 32상과 80종호가 마치 미묘한 황금산 같았다.
이 때에 세존이 여덟 가지 음성으로 ‘대왕이여!’ 하였다. 아사세왕은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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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돌아보면서, 이 대중에 누가 대왕인가. 나는 이미 역적죄를 지었고, 또 복덕도 없으니 여래께서 나를 대왕이라고 부르지는 아니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이 때에 여래는 ‘아사세대왕!’ 하고 다시 불렀다. 이 말을 왕이 듣고는 마음이 즐거워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오늘날 인자하게 돌아보아 말씀하시니, 여래의 중생에게 대하여 대비로 가엾이 여기심이 차별이 없음을 알겠도다.’
그리고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의심이 아주 없어졌사오니, 여래는 참으로 중생의 위없는 대도사이심을 알겠나이다.”
이 때에 가섭보살은 지일체보살에게 말하였다.
“여래는 벌써 아사세왕을 위하여 결정한 마음을 가지게 하였나이다.”
아사세왕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가령 내가 범천왕이나 제석천왕과 함께 앉고 일어나고 먹고 하더라도 오히려 기쁠 것이 아니지만 여래께서 한 말씀으로 인자하게 말씀하심을 듣자옴은 매우 기쁘고 경사스럽나이다.”
그리고 아사세왕은 가지고 왔던 깃발·일산·향·꽃·풍류로 공양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을 돌고는 한 곁에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아사세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이제 대왕을 위하여 바른 법을 말하리니 일심으로 자세히 들으라. 범부들이 마땅히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살펴보는 데 스무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나의 이 몸에는 공하여 무루가 없고, 둘째는 선근의 근본이 없고, 셋째는 나의 생사는 아직 조복되지 못하였고, 넷째는 깊은 구렁에 빠져서 간 데마다 두렵고, 다섯째는 무슨 방편으로 불성을 보게 되겠는가. 여섯째는 어떻게 선정을 닦아야 불성을 볼 수 있을까. 일곱째는 생사가 늘 괴로워서 항상함과 나와 깨끗함이 없고, 여덟째는 8난(難)의 액난은 여의기 어렵고, 아홉째는 항상 원수가 따라다니고, 열째는 한 가지 법도 유(有)를 막을 수 없고, 열한 번째는 3악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두 번째는 가지가지 나쁜 소견을 구족하고, 열세 번째는 5역죄의 나루를 건너갈 일을 마련하지 못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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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열네 번째는 나고 죽는 일이 그지없는데 그 끝을 얻지 못하고, 열다섯 번째는 업을 짓지 않고는 과보를 얻을 수 없고, 열여섯 번째는 내가 짓고 다른 이가 과보를 받을 수 없고, 열일곱 번째는 즐거운 인을 짓지 못하였으니, 즐거운 과보가 없고, 열여덟 번째는 업을 지었으면 과보가 없어지지 않고, 열아홉 번째는 무명으로 인하여 났으니 무명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요, 스무 번째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항상 방일을 행함이니라.
대왕이여, 범부들은 이 몸에 대하여 항상 이렇게 스무 가지 관찰을 하여야 하며, 이러한 관찰을 하게 되면 생사를 좋아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사를 좋아하지 아니하면 지(止)와 관(觀)을 얻을 것이니, 그 때에는 차례차례 마음의 나는 모양, 머무는 모양, 없어지는 모양을 관찰하며, 차례차례 마음의 나고 머물고 없어지는 모양을 관찰하면 선정·지혜·정진·계율도 그와 같이 하며, 나고 머물고 없어지는 모양을 관찰하면, 마음의 모양과 나아가 계율의 모양을 알아서 마침내 나쁜 짓을 하지 아니하며, 죽는 두려움과 3악도의 두려움이 없으리라. 만일 마음을 가다듬어 이 스무 가지를 관찰하지 아니하면 마음이 방일하여 온갖 나쁜 짓을 하게 되리라.”
아사세왕이 여쭈었다.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이치를 이해하기로는 저는 애초부터 이런 스무 가지 일을 관찰하지 못하여서 여러 가지 나쁜 짓을 지었사오며, 나쁜 짓을 많이 지었으므로, 죽음의 두려움과 3악도의 두려움이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재앙을 받으려고 중대한 죄악을 지어 아무 허물 없는 부왕을 역해하였사오니, 이런 스무 가지를 관찰하거나 않거나 간에 결정코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대왕이여, 온갖 법의 성품과 모양이 항상하지 아니하여 결정한 것이 없는 것이거늘, 왕은 어찌하여 결정코 아비지옥에 떨어지리라 하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이 일정한 모양이 없다면 나의 살생한 죄도 결정적이 아닐 것이옵고, 만일 살생한 죄가 결정적이라면, 모든 법도 결정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왕이여, 좋은 말이오.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는 ‘모든 법이 일정한 모양이 없다’ 하였는데, 왕도 살생이 결정적이 아니라고 아시니, 그러므로 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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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정한 모양이 없음을 알 것이오. 대왕이여, 왕의 말이 허물이 없는 부왕을 억울하게 역해하였다 하는데 무엇을 아버지라 하는가. 이름만 빌린[假名] 중생의 5음에 대하여 허망하게 아버지란 생각을 내는 것이오. 12입이나 18계 가운데서 무엇을 아버지라 하겠는가. 만일 색음이 아버지라면 다른 4음은 아버지가 아닐 것이고, 만일 4음이 아버지라면 색음은 아버지가 아닐 것이며, 만일 색음과 색음 아닌 것이 화합하여 아버지가 되었다 하여도 그럴 이치가 없으니, 왜냐 하면 색음과 색음 아닌 것은 성질이 화합할 수 없는 까닭이오.
대왕이여, 범부 중생들이 색음에 대하여 아버지란 생각을 낸다 하여도 이러한 색음을 해할 수도 없나니, 왜냐 하면 색에는 열 가지가 있거니와, 이 열 가지 중에서 색진(色塵) 한 가지만을 볼 수 있고 잡고 저울질하고 헤아리고 끌고 속박할 수 있소. 비록 보고 속박할 수 있더라도 그 성품이 머물지 아니하나니, 머물지 아니하므로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고 측량할 수 없고 끌고 속박할 수 없는 것이오. 색의 모양이 이러하거늘, 어떻게 살해할 수 있겠소. 만일 색진인 아버지를 살해하여서 죄보를 얻는다면, 다른 아홉 가지는 아버지가 아닐 것이고, 그 아홉 가지는 아버지가 아니라면, 살해하더라도 죄가 없을 것 아니겠소. 대왕이여, 색에 세 가지가 있으니 과거와 미래와 현재요. 과거와 현재는 살해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과거는 지나간 연고며 현재는 찰나찰나 멸하는 연고요, 미래의 색은 계속하지 못하게 하므로 죽인다 하는 것인즉, 같은 색에도 어떤 것은 죽일 수 있고 어떤 것은 죽일 수 없소. 죽일 수 있는 것과 죽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색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고, 색이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죽이는 것도 일정하지 않을 것이니, 죽이는 일이 일정하지 않으면 과보 받는 것도 일정하지 않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결정코 지옥에 들어가리라 말하는가.
대왕이여, 모든 중생의 짓는 죄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가벼운 죄고, 하나는 중대한 죄요. 만일 마음과 입으로만 지은 것은 가벼운 죄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것은 중한 죄라 하는 것이오. 대왕이여,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을 하였으나 몸으로 짓지 아니하였으면 받는 보가 가벼운 것이오. 대왕이 예전에 입으로 죽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발을 끊으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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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뿐이오. 대왕이 만일 신하에게 명령하여 ‘섰을 적에 부왕의 머리를 베라’ 한 것을 앉았을 적에 베었더라도 죄가 되지 아니할 것인데, 하물며 왕은 베라고 말하지 아니하였으니 무슨 죄를 얻겠소. 왕이 만일 죄를 얻는다면 부처님 세존도 죄를 얻어야 하리니, 왜냐 하면 왕의 부왕인 빈바사라왕이 일찍부터 여러 부처님께 선근을 심은 까닭으로 금생에 임금이 되었나니, 부처님들이 만일 그의 공양을 받지 않았더라면 임금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오. 만일 임금이 되지 아니하였으면 대왕이 나라를 위하여 살해하지 않았을 터이오. 그러니까, 왕이 아버지를 살해하여 죄가 있다면 우리 부처님들도 죄가 있을 것이고, 만일 부처 세존이 죄가 없다면 어찌하여 대왕만이 죄를 얻게 된다는 말이오.
대왕이여, 빈바사라왕도 과거에 나쁜 마음이 있었소. 비부라산에서 사냥할 적에 넓은 들을 두루 다녔으나 짐승을 잡지 못하였고, 오직 5신통을 얻은 신선이 있는 것을 보았소. 보고는 나쁜 마음으로 성을 내어 ‘내가 사냥하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은 이 사람이 모두 쫓아보낸 탓이라’ 하고, 시중들에게 명령하여 죽이라 하였소. 그 사람이 죽을 적에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으므로 신통을 잃어버리고 맹서하기를 ‘나는 아무 죄도 없건만 네가 마음과 입으로 억울하게 나를 죽이니, 나도 오는 세상에 그와 같이 마음과 입으로 너를 죽이리라’ 하였소.
그 때에 빈바사라왕은 그 말을 듣고 뉘우치는 마음을 내어 죽은 송장에게 공양하였소. 그 왕은 그러하여 과보를 가볍게 받고 지옥에는 떨어지지 아니하였는데, 대왕은 죽이라고도 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 지옥에서 과보를 받겠소. 선왕은 자기가 지은 업으로 자기가 받은 것이거늘 대왕이 어찌하여 살생죄를 받게 되겠소. 대왕은 부왕이 허물이 없다 하거니와, 어찌 허물이 없다 하겠는가. 죄가 있으면 죄의 갚음이 있고, 나쁜 업이 없으면 죄의 갚음이 없는 법이오. 왕의 부왕이 만일 허물이 없었으면, 왜 죄의 갚음이 있었겠소. 빈바사라왕은 현세에도 선한 과보를 얻고 나쁜 과보도 얻었소. 그러므로 선왕도 일정하지 않았으니, 일정하지 않았으므로 살해함도 일정하지 않았으며, 살해함이 일정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결정코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하겠소.
대왕이여, 중생이 미치는 데는 네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탐심으로 미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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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고, 둘은 약으로 미치는 것이고, 셋은 주문으로 미치는 것이고, 넷은 본래 지은 업의 인연으로 미치는 것이오. 대왕이여, 나의 제자 중에 이 네 가지 미친 이가 있어 나쁜 짓을 많이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이 계율을 범한다고 치지 아니하나니, 이 사람의 짓는 것이 3악도에 이르지 아니하며, 도로 본마음을 얻어도 범하였다 말하지 아니하는 터이오. 대왕이 본래 나라를 탐하여서 부왕을 역해하였으니, 탐심으로 미치어서 지은 것이거늘, 어찌 죄를 얻으리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술이 취하여 어머니를 역해하고 깨어서는 후회하는 마음을 낸다면, 이런 업으로는 죄보를 받지 아니하오. 왕은 지금 탐욕에 취하였고, 본마음으로 지은 것이 아니니, 만일 본마음이 아니라면 무슨 죄를 얻겠는가. 마치 환술하는 사람이 네거리에서 환술로 가지가지 남자 여자와 코끼리·말·영락·의복을 만든다면, 어리석은 사람은 참인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사람이면 참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니, 살해하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산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를 어리석은 사람은 참말 소리인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참이 아닌 줄을 아나니,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원수 맺힌 사람이 와서 친한 양 하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참으로 친하는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이는 거짓인 줄을 아나니, 죽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범부는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사람이 거울을 들고 얼굴을 볼 적에 어리석은 사람은 참말 얼굴이라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참 얼굴이 아닌 줄을 아나니, 죽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범부는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더울 때의 아지랑이를 어리석은 사람은 물이라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물이 아닌 줄을 아나니,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지만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마치 건달바성을 어리석은 사람은 참인 줄 알지만 지혜로운 이는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처럼,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거니와,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5욕락을 누리었거든, 어리석은 사람은 참인 줄 알지만 지혜 있는 이는 참이 아닌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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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아나니,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범부들은 참이라 하거니와 부처님 세존은 참이 아닌 줄을 아는 것이오.
대왕이여, 죽이는 방법·죽이는 업·죽이는 사람·죽이는 과보와 해탈을 내가 다 아는 것이매 죄가 없거늘, 왕이 비록 죽임을 안다 한들 어찌 죄가 있겠는가.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술 붓는 책임을 맡았더라도 마시지 아니하면 취하지 않듯이, 비록 불인 줄 알아도 타지 않는 것이니, 대왕도 그와 같아서 비록 죽임을 안다 한들 어찌 죄가 있겠는가. 대왕이여, 중생들이 해가 났을 적에 가지가지 죄를 짓고, 달이 떴을 적에 도둑질을 하다가도, 해와 달이 뜨지 아니하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면, 비록 해와 달을 인하여 죄를 지었더라도 해와 달은 죄를 받지 아니하나니, 죽이는 일도 그와 같아서 비록 왕을 인하였다 하나 왕은 실로 죄가 없는 것이오.
대왕이여, 대왕이 궁중에서 매양 양을 잡으라 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없거늘, 어찌하여 부왕에 대하여서만 두려운 마음을 내는가. 비록 사람과 짐승이 높고 낮은 차별은 있지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일반이거늘, 무슨 까닭으로 양에게는 가볍게 여겨 두려움이 없고 부왕은 소중히 여겨 근심을 하는가. 대왕이여, 세상 사람들이 애정의 종이 되어 자재하지 못하며, 애정의 시킴을 받아 살해하는 일을 한 것인즉, 설사 과보가 있더라도 이는 애정의 죄일 것이니 자재하지 못한 왕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대왕이여, 마치 열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도 있는 것처럼, 죽이는 일도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있는 것이니,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 아니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 아니나, 과보를 받는 이는 있다고 이름하며, 공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있는 것이 아니고, 있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없는 것이 아니나, 있다는 소견이 있는 이는 있다고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있다는 소견이 있는 이는 과보를 얻는 연고이나, 있다는 소견이 없는 이는 과보가 없는 것이오. 항상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없는 것이 아니고, 항상하다는 소견이 없는 이에게는 있는 것이 아니나, 늘 항상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없을 수가 없나니, 왜냐 하면 늘 항상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는 나쁜 업의 과보가 있는 연고며, 그러므로 늘 항상하다는 소견을 가진 이에게는 없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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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기 때문이오. 이런 이치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있는 것이오. 대왕이여, 중생이라 함은 숨을 쉬는 이라 이름하고, 숨 쉬는 것을 끊으므로 죽였다 이름하거든, 부처님도 세상을 따라서 죽였다 이름하는 것이오. 대왕이여, 색은 무상한 것이고 색의 인연도 무상한 것이니, 무상한 인으로 좇아 난 색이 어떻게 항상하며, 내지 식(識)은 무상한 것이고 식의 인연도 무상한 것이니, 무상한 인으로 좇아난 식이 어떻게 항상하겠는가. 무상한 연고로 괴롭고 괴로운 연고로 공하고 공한 연고로 내가 없나니, 만일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면 무엇이 죽일 바가 되겠는가. 무상함을 죽이면 항상한 열반을 얻고, 괴로움을 죽이면 즐거움을 얻고, 공함을 죽이면 참됨을 얻고 내가 없음을 죽이면 참나를 얻을 것이니, 대왕이여, 만일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 없음을 죽인 이는 나와 같을 것이오. 나도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 없음을 죽이었으나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는데, 당신인들 어찌 지옥에 들어가리오.”
이 때에 아사세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색을 관하며, 나아가 식을 관하고 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색이 무상하며, 나아가 식이 무상함을 알았나이다. 제가 본래부터 이런 줄을 알았으면 죄를 짓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일찍 듣사온즉 부처님 세존은 항상 중생에게 부모가 된다 하였습니다. 비록 이런 말을 들었으나 분명하게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서야 확실히 알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 수미산이 네 가지 보배로 되었다고 들었으니 이른바 금과 은과 유리와 파리며, 모든 새들이 모이는 곳을 따라 빛이 같다 하였습니다. 비록 이런 말을 들었으나 역시 분명하게 알지 못하였더니, 이제 부처님 수미산에 오르매 곧 빛이 같사오니, 빛이 같다는 것은 모든 법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세간에서는 이란의 씨에서 이란나무가 나는 것만 보옵고, 이란의 씨에서 전단나무가 나는 것을 보지 못하였더니, 지금에야 비로소 이란의 씨에서 전단나무가 나는 것을 보았사오니, 이란의 씨는 나의 몸이고 전단나무는 곧 믿음의 뿌리가 없는 나의 마음입니다. 뿌리가 없다 함은, 나는 애초에 여래를 공경할 줄도 모르고 교법과 승가를 믿지 않았사오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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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뿌리가 없다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마땅히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큰 지옥에서 끝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온데, 저는 지금 부처님을 뵈었사오니, 이 부처님을 뵈온 공덕으로써 중생들의 온갖 번뇌와 나쁜 마음을 파괴하게 되나이다.”
“대왕이여, 대단히 좋은 일이오. 나는 이제 대왕이 반드시 중생의 나쁜 마음을 파괴할 줄을 압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중생의 나쁜 마음을 파괴할 수 있다면, 설사 제가 아비지옥에 항상 있어서 한량없는 세월에 중생들을 위하여 크나큰 고통을 받더라도 괴롭다 하지 않겠나이다.”
이 때에 마가다국의 한량없는 사람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으며, 이렇게 한량없는 사람이 큰 마음을 내었으므로, 아사세왕의 모든 중죄가 곧 소멸되었고, 왕과 부인과 후궁의 채녀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다.
이 때에 아사세왕은 기바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기바여, 나는 지금 죽기도 전에 하늘의 몸을 얻었고, 단명한 것을 버리고 장수함을 얻었고, 무상한 몸을 버리고 항상한 몸을 얻었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게 하였으니, 이것이 곧 하늘의 몸이며 장수함이며 항상한 몸이며, 곧 여러 부처님의 제자라 하겠소.”
이렇게 말하고는 가지각색 보배 당과 번과 일산과 향과 꽃과 영락과 아름다운 풍류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다시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진실하고 현미하고 묘하온 말씀
구절이나 이치에도 공교하시니
오묘하고 깊고 깊은 비밀한 법장
중생들을 위하여서 나타내시네.

법장 속에 들어 있는 넓으신 말씀
중생들을 위하여서 말씀하시니
이와 같은 참된 말씀 구족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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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의 번뇌 병을 치료하시네.

삼계에서 헤매이던 여러 중생들
이와 같은 좋은 말씀 얻어들으면
믿거나 안 믿거나 물을 것 없이
부처님의 말씀인 줄 알게 되오리.

어느 때나 여래 말씀 부드럽다도
중생들을 위하여서 억세거니와
부드러운 말씀이나 억센 말씀이
모두가 제일의로 돌아가나니.

내가 지금 세존께 귀의합니다.
여래 말씀 한결같아 바닷물처럼
그러므로 제일의라 이름하나니
이치 아닌 말씀이란 조금도 없네.

여래께서 오늘날에 말씀하시는
가지가지 한량없는 미묘한 법문
남녀노소 누구라도 듣기만 하면
한 가지로 제일의를 얻게 되오리.

인도 없고 결과도 없는 것이며
나도 않고 멸하지도 아니하는 일
이를 일러 열반이라 이름하나니
듣는 이는 모든 결박 벗어나리라.

부처님께서는 어디서나 우리들에게
자비하신 부모님이 항상 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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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어다, 한량없는 우리 중생들
모두 다 부처님의 아들 딸임을.

자비하고 자상하신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하여서 고행하오심
허깨비에 들린 이가 정신 없어서
이것 저것 되는 대로 하는 것같이.

내가 지금 부처님을 뵈옵고 나서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선근들
바라건대 이 공덕을 회향하여서
위없는 보리에로 돌려지이다.

부처님과 법보와 승가에게
내가 지금 공경하여 공양하온 일
바라건대 이러한 공덕으로써
삼보가 이 세상에 항상 있고자.

내가 지금 부처님께 예경하옵고
얻게 되는 가지가지 공덕으로써
중생들의 네 가지 마군들을
여지없이 깨뜨려 없애지이다.

이내 몸이 나쁜 동무 만날 적마다
지난 세상 오는 세상 많은 죄업을
지성으로 부처님께 참회하오니
이 뒤에는 다시 짓지 말아지이다.

원하건대 생사고해 모든 중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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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 보리심을 모두 내어서
한결같이 정성스런 참된 맘으로
시방 삼세 부처님을 생각하오며

원하건대 여섯 갈래 모든 중생들
영원하게 모든 번뇌 없애 버리고
부처님의 참성품을 분명히 보고
문수사리보살들과 같아지이다.

이 때에 세존은 아사세왕을 찬탄하셨다.
“대왕이여, 잘하는 일이오. 만일 어떤 사람이 보리심을 낸다면 이 사람은 부처님의 대중을 장엄하는 것이오. 대왕은 지나간 옛적 비바시부처님에게서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그 때부터 내가 출세할 때까지, 한 번도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은 일이 없었소. 대왕이여, 보리의 마음은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하오. 대왕은 이제부터는 항상 보리의 마음을 닦을지니, 왜냐 하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한량없는 죄악을 소멸할 수 있는 까닭이오.”
이 때 아사세왕과 마가다 나라의 온 백성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 번 부처님을 돌고는 하직하고 궁중으로 돌아갔다.
[천행품(天行品)은 잡화(雜花)에서 말한 것과 같다]2)

21. 어린아기 행(嬰兒行品)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어찌하여 어린아기의 행이라 하는가. 선남자야, 일어나거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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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11권 처음 부분에 다섯 가지 행을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거룩한 행[聖行]이고, 둘째는 청정한 행[梵行]이며, 셋째는 하늘의 행[天行]이고, 넷째는 어린아기의 행[嬰兒行]이고, 다섯째는 병 고치는 행[病行]이다. 천행품은 잡화경에서 말한 것과 같아 생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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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나 오거나 가거나 말하거나 하지 못함을 어린아기라 하나니, 여래도 그러하니라. 일어나지 못한다 함은 여래가 마침내 모든 법의 모양을 일으키지 않음이요, 머물지 못한다 함은 여래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아니함이요, 오지 못한다 함은 여래의 몸과 행동이 동요하지 않음이요, 가지 못한다 함은 여래가 이미 대반열반에서 이름이요, 말하지 못한다 함은 여래가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거니와, 실로 말하는 것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말할 바 있는 것은 함이 있는 법이라 하나니, 여래 세존은 함이 있는 법이 아니므로 말하는 것이 없느니라. 또 말함이 없다 함은, 마치 어린아기의 말이 분명치 못하므로 비록 말을 하더라도 실로는 말이 없는 것이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말이 분명치 아니한 것은 부처님의 비밀한 말씀이니, 비록 말씀을 하더라도 중생들이 알지 못하므로 말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어린아기는 이름과 물건이 한결같지 아니한데 바른 말을 알지 못하나니, 비록 이름과 물건이 한결같지 아니한데 바른 말을 알지 못하나, 이것으로 인하여 물건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의 종류가 각각 다르고 말이 같지 않지만 여래는 방편으로 그들을 따라 말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말로 인하여 알게 하느니라. 또 어린아기는 큰 자[大字]를 말하는데, 여래도 그러하여 큰 자를 말하나니 이른바 바(婆)와 화(▩)니라. 화는 함이 있는 것이요, 바는 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어린아기라 하느니라. 화는 무상이라 하고 바는 항상하다 하나니, 여래가 항상함을 말할 때 중생들이 듣고는 항상한 법을 위하여서 무상을 끊나니, 이것을 어린아이의 행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린아기는 괴로움과 즐거움과 낮과 밤과 부모를 알지 못하나니,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위하므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보지 아니하고 낮과 밤이 없으며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므로 아버지 어머니라 친하다, 소원하다라는 생각이 없느니라. 또 어린아기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을 짓지 못하는데,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는 업을 짓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큰 일을 짓지 아니하는 것이며, 큰 일은 5역죄니, 보살마하살은 5역죄를 짓지 아니하고, 작은 일은 2승의 마음이니, 보살은 보리심을 퇴타하여 성문·벽지불승을 짓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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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린아이의 행이라 함은 어린아기가 울 때에는, 그 부모가 누른 버들잎을 주면서 달래기를 너에게 돈을 줄 터이니 울지 말라 하는데, 아기가 보고는 참말 돈인 줄 생각하고 울지 않으니 그것은 참말 돈이 아니니라. 나무로 만든 소와 나무 말과 나무 남자와 나무 여자를 어린아이가 보고는 참으로 남자나 여자인 줄 생각하고 울지 않는데 참으로 남자와 여자가 아닌 것을 남자와 여자인 줄 생각하므로 어린아기라 이름하느니라.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만일 중생들이 나쁜 업을 지으려 하면, 여래는 그들을 위하여 33천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단정하고 자재하여 훌륭한 궁전에서 5욕락을 받는 일과, 6근으로 상대하는 것이 모두 즐거운 일이라 말하는데, 중생들은 이러한 즐거움을 들은 까닭으로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하고 33천에 태어날 선한 업을 짓거니와 실제로는 나고 죽는 것이며 무상하고 낙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않건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방편으로 말하는 것이니라.
또 어린아이라 함은 어떤 중생이 나고 죽음을 싫어할 때에는 여래가 2승의 도를 말하거니와, 실제로는 2승의 실상이 없는 것이며, 2승의 법으로 인하여서 나고 죽는 허물을 알고 열반의 낙을 보는 것이며, 이런 소견으로 말미암아 끊을 것과 끊지 못할 것이 있으며, 참된 것과 참되지 않은 것이 있으며 닦을 것과 닦지 않을 것이 있으며, 얻을 것과 얻지 못할 것이 있음을 아느니라.
선남자야, 저 어린아기가 돈이 아닌데 돈이란 생각을 내듯이, 여래도 그러하여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하다 말하거니와, 여래는 제일의를 얻었으므로 허망함이 없느니라. 어린아기가 소와 말이 아닌데 소와 말이라 생각하듯이 어떤 중생이 도가 아닌데 도라는 생각을 하는데, 여래도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말하나니 도가 아닌 데에 실로 도가 없지만 능히 도를 내는 작은 인연이 되는 것이므로, 도가 아닌 것을 말하여 도라고 하느니라. 어린아기가 나무로 된 남자와 여자에게 참말 남자와 여자인 생각을 내듯이 여래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중생이라 말하지만 실로는 중생이란 모양이 없느니라. 만일 부처님 여래가 중생이 없다고 말하면 모든 중생이 잘못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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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에 떨어질 것이므로 여래가 중생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중생에 대하여 중생이란 모양을 지으면 곧 중생의 모양을 깨뜨리지 못하나니 중생에 대하여 중생의 모양을 깨뜨리는 이라야 능히 대반열반을 얻을 수 있느니라. 이렇게 대반열반을 얻으므로 울음을 그치는 것을 어린아기의 행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야, 남자나 여인이 이 다섯 가지 행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는 이가 있으며, 이 사람은 반드시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행을 얻은 줄을 알지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저도 결정코 이 다섯 가지 행을 얻겠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야, 홀로 너만이 이 다섯 가지 행을 얻을 것이 아니라, 이 회중에 있는 93만 사람이 너와 같이 이 다섯 가지 행을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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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19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 ①

이 때에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 열 가지[十事] 공덕을 얻어 성문·벽지불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라. 생각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어서 듣는 이가 놀라고 이상하게 여기리니,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닌 것도 아니며, 세상법도 아니고 형상도 없고 세간에는 없는 것이니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하나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듣지 못한 것을 들음이요, 둘째 듣고는 이익이 됨이요, 셋째 의혹하는 마음을 끊음이요, 넷째 지혜의 마음이 곧고 굽지 아니함이요, 다섯째 능히 여래의 비밀한 법장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듣지 못한 것을 들음인가. 깊고 비밀한 법장을 말함이니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고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가 차별이 없으며, 삼보의 성품과 모양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며, 모든 부처님이 필경까지 열반에 드시는 이가 없고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어서, 여래의 열반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함이 있는[有爲] 것도 아니고 함이 없는 것도 아니며, 새는 것[有漏]도 아니고 샘이 없는 것도 아니며, 빛도 아니고 빛 아님도 아니며, 이름[名]도 아니고 이름 아님도 아니며,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고 있지 않음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고 물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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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아니며,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며, 기다림도 아니고 기다리지 않음도 아니며, 밝음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며, 나옴도 아니고 나오지 않음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니며, 끊음도 아니고 끊지 않음도 아니며, 처음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며, 음(陰)도 아니고 음 아님도 아니며, 입(入)도 아니고 입 아님도 아니며, 계(界)도 아니고 계 아님도 아니며, 12인연도 아니고 12인연 아님도 아니어서, 이런 법이 깊고 비밀하여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능히 듣느니라. 또 듣지 못함도 있으니, 모든 외도들의 경전으로서 4비타론(毗陀論)·비가라론(毗伽羅論)·위세사론(衛世師論)·가비라론(迦毗羅論)·모든 주문·의방(醫方)·기예(伎藝)·일식과 월식과 별들의 운행·도참서 따위니라. 이러한 경들에 대해 애초부터 듣지 못하면, 비밀의 뜻을 이 경전에서 들으며, 또 비불략(毗佛略)을 제외한 11부 경에도 없던 비밀한 이치를 이 경전으로 인하여 알게 된 것이니, 선남자야, 이것을 이름하여 듣지 못한 것을 얻어 듣는다 하느니라.
듣고는 이익이 된다 함은, 만일 이 대열반경을 들으면 온갖 방등 대승경전의 깊은 이치를 모두 아는 것이니라. 마치 남자나 여자나 밝은 거울 속에서 자기의 형상을 분명하게 보듯이 대반열반경의 거울도 그와 같아서 보살들이 붙잡으면 대승경전의 깊은 이치를 모두 보게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방에서 횃불을 들면 모든 물건들을 다 볼 수 있듯이, 대반열반의 횃불도 그러하여 보살이 들면 대승의 깊은 뜻을 보느니라. 또 해가 뜨면 밝은 광명이 모든 산의 깊고 어두운 데를 비치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물건을 보게 하듯이 대반열반경의 지혜의 해도 그와 같이 대승의 깊은 이치를 비치어서 2승들로 하여금 부처님 도를 보게 하나니, 그 이유는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듣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모든 법의 이름을 들으며, 만일 쓰고 읽고 외우고 통달하여 다른 이에게 말하여 주고 뜻을 생각하면 모든 법의 이치를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듣기만 하는 이는 이름만 알고 뜻을 모르거니와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그 뜻을 생각하면 그 이치를 알게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이 경전을 듣는 이는 불성이 있음을 듣기만 하고 보지는 못하거니와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하는 이는 보게 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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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이 경을 듣기만 하는 이는 보시의 이름을 알기만 하고 보시바라밀을 보지는 못하거니와, 쓰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한다면 보시바라밀을 보게 되며, 내지 반야바라밀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법도 알고 뜻도 알며 두 가지 걸림없음을 갖추어서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하늘이나 마군이나 범천 등 모든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12부경을 열어 보이고 분별하며 그 뜻을 연설하는 데 잘못됨이 없을 것이며, 다른 이에게서 듣지 않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가까움을 스스로 알 것이니, 선남자여, 이것을 말하여 듣고는 이익이 된다고 하느니라.
의혹하는 마음을 끊는다 함은, 의혹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이름을 의심함[疑名]이요, 다른 하나는 이치를 의심함[疑義]이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름을 의심하는 마음을 끊고, 뜻을 생각하는 이는 이치를 의심하는 마음을 끊을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의심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부처님이 반드시 열반하는가 의심하고, 둘째 부처님이 항상 계시는가 의심하고, 셋째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즐거운가 의심하고, 넷째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깨끗한가 의심하고, 다섯째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내[我]가 있는가 의심함이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열반하는가 하는 의심을 영원히 끊게 되고, 쓰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하는 이는, 네 가지 의심을 영원히 끊게 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의심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성문이 있는가 없는가, 둘째 연각이 있는가 없는가, 셋째 불승(佛乘)이 있는가 없는가 함이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세 가지 의심을 영원히 끊어 남음이 없고, 쓰고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말하고 뜻을 생각하면 온갖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아느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중생들이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면 의심이 매우 많으니, 항상한가 무상한가,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 깨끗한가 깨끗하지 못한가, 내가 있는가 내가 없는가, 수명인가 수명이 아닌가, 필경인가 필경이 아닌가, 다른 세상인가 지나간 세상인가, 있는가 없는가, 고통인가 고통이 아닌가, 집(集)인가 집이 아닌가, 도인가 도가 아닌가, 멸인가 멸이 아닌가, 법인가 법이 아닌가, 선인가 선이 아닌가, 공한가 공하지 않은가 따위니라.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들이 아주 끊어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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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남자여, 이런 경을 듣지 못한 이는 가지가지 의심이 많으니, 색이 나인가, 수(受)·상(想)·행(行)·식(識)이 나인가, 눈이 보는가 내가 보는가, 내지 식이 아는가 내가 아는가, 색이 과보를 받는가 내가 과보를 받는가, 내지 식이 과보를 받는가 내가 과보를 받는가, 색이 다른 세상에 가는가 내가 다른 세상에 가는가, 내지 식도 그와 같으며, 나고 죽는 법이 처음이 있고 나중이 있는가, 처음이 없고 나중이 없는가 하거니와,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이 아주 없느니라. 또 어떤 이는 의심하기를, 일천제들이 4중금(重禁)을 범하고 5역죄를 지으며, 방등경전을 비방하나니, 이런 무리들은 불성이 있는가 불성이 없는가 하거니와,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이 모두 끊어지느니라. 또 어떤 이는 의심하기를, 세간이 끝[邊]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시방세계가 있는가 시방세계가 없는가 하거니와, 이 경을 들은 이는 이런 의심들이 아주 없어지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의혹하는 마음을 끊는다 하느니라.
지혜 마음이 곧고 굽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의심이 있으면 소견이 바르지 못하나니, 모든 범부들이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을 듣지 못하면 소견이 삿되어지고, 내지 성문·연각들도 소견이 잘못되느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모든 범부들의 소견이 잘못됐다 하는가. 샘이 있는[有漏] 속에서 항상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로 보고, 여래에게는 무상하고 고통이고 깨끗하지 않고 내가 없는 줄을 보며, 중생과 수명과 지견(知見)이 있는 줄로 보며, 비유상비무상천을 열반이라 억측하며, 자재천에 8성도(聖道)가 있는 줄로 보며, 있다는 소견·없다는 소견 따위를 잘못됐다 하거니와,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듣고 거룩한 행[聖行]을 닦으면 이렇게 잘못된 소견을 끊게 되느니라.
어떤 것을 성문·연각의 잘못된 소견이라 하는가. 보살이 도솔타천에서 내려와 흰 코끼리를 변화해내어 타고 어머니의 태에 드시니, 아버지는 정반왕이요 어머니는 마야부인이었다. 가비라(迦毗羅)성에서 태중에 있다가 열 달이 차 태에서 나올 때에, 땅에 닿기 전에 제석천왕이 받들어 모시고, 난다용왕과 우바난다용왕은 물을 뿜어 몸을 씻기고, 마니발다 대귀신왕은 보배 일산을 받들고 뒤에 모시고 섰으며, 지신(地神)은 연꽃을 변화로 지어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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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들매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고, 천신의 사당에 이르니 천신의 상[天像]들이 일어나 맞았다. 아사타 선인이 와서 태자를 안고 상(相)을 보았으며, 상을 보고 나서는 슬픈 생각을 내어 부처님이 출현함을 보지 못할 것을 스스로 서러워하였다. 스승에게 나아가 글과 산수와 활쏘기, 말타기와 참서와 기예를 배웠으며, 깊은 궁전에 있어서는 6만 채녀와 더불어 즐거이 향락하였고, 네 군데 문으로 나가 유람하다가 가비라 동산에 이르는 도중에 노인과, 내지 법복을 입고 가는 사문을 보았다. 궁중에 돌아와서는 채녀들을 보니, 형상은 마치 송장과도 같고 궁전은 무덤 속인 듯하였다. 그것이 싫어져서 집을 떠나 밤중에 성을 넘었으며, 울타가(鬱陀伽)와 아라라(阿羅邏) 신선에게 가서는 식처천(識處天)과 비상비비상천의 이야기를 들었고, 듣고는 그런 곳들이 무상하고 괴롭고 부정하고 내가 없음을 관찰하였으며, 거기를 버리고 나무 아래 가서 6년 동안 고행을 닦으면서 이런 고행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할 줄을 알았다.
그 때에 다시 아이라발제(阿夷羅跋提)강에 이르러 목욕하고, 마침 소 기르는 여자가 받드는 우유죽을 받고는, 보리수 아래로 가서 마왕 파순을 깨뜨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 바라나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처음으로 법수레를 굴리었고, 내지 구시나성에서 열반에 드는 것을 보는 것이니, 이런 소견을 말하여 성문·연각의 잘못된 소견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면 이러한 소견들을 끊어 버리게 되며, 만일 쓰고 읽고 외우고 통달하여 다른 이에게 연설하고 뜻을 생각하면, 올바른 소견을 얻어 잘못된 소견이 없어지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의 가르침[諦]을 수행하면, 보살이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도솔타천에서 내려와서 어머니의 태에 들며, 내지 구시나성에서 반열반에 들지 아니하는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올바른 소견이라 하느니라.
여래의 비밀한 뜻을 능히 안다 함은 곧 대반열반이니,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어서, 네 가지 중대한 계율 범한 것을 참회하고, 법을 비방한 죄를 없애고, 5역죄를 끝내고, 일천제를 멸하며, 그런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깊고 비밀한 뜻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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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깊은 이치라 하는가. 비록 중생에게 내가 없음을 알지만, 세상에 업과 과보를 잃지 아니하며, 비록 5음이 여기서 소멸함을 알지만 선악의 업은 마침내 없어지지 아니하며, 비록 여러 가지 업이 있지만 짓는 이가 없으며, 비록 이르는 곳이 있으나 가는 이가 없으며, 비록 속박이 있으나 속박 받을 이가 없으며, 비록 열반이 있으나 열반할 이가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깊고 비밀한 뜻이라 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 듣고 듣지 못한다는 뜻을 해석하기로는, 그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법이 만일 있다면 결정코 있을 것이고, 법이 만일 없다면 결정코 없을 것이니, 없는 것이면 생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면 멸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일 들을 것이면 곧 들었을 것이요, 만일 듣지 못할 것이면 곧 듣지 못하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하오리까? 세존이시여, 만일 들을 수 없는 것이면 그것은 듣지 못하는 것이요, 만일 이미 들었으면 다시 듣지 아니할 것이니, 이미 들은 까닭이거늘 어찌하여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하나이까? 마치 가는 이가 이르렀으면 가지 아니할 것이요 간다면 이르지 못한 것과 같으며, 또한 났으면 나지 아니할 것이요, 나지 않은 것이면 나지 못하는 것과 같고, 얻었으면 얻지 아니할 것이요, 얻지 못하는 것이면 얻지 못할 것과도 같나니, 들었으면 듣지 아니할 것이요 듣지 못하는 것이면 듣지 못할 것도 그와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면, 모든 중생이 보리를 소유(所有)하지 못한 것을 마땅히 소유할 것이요, 열반을 얻지 못한 것을 마땅히 얻을 것이며,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나 마땅히 볼 것이온데, 어찌하여 10주(住) 보살이 비록 불성을 보아도 분명하지 못하다 말씀하시었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면, 여래께서는 옛적에 누구에게서 들었사오며, 만일 듣는다 하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아함 가운데에서 스승이 없다 말씀하셨나이까? 만일 듣지 못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도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셨다면, 모든 중생들도 듣지 못한 것을 듣지 못하고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오며, 여래께서 만일 이 대반열반경을 듣지 못하고 불성을 보았다면, 모든 중생들이 이 경을 듣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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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으나 역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빛이란 것은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볼 수 없는 것도 있사오며, 소리도 그와 같아서 들을 것도 있고 듣지 못할 것도 있거니와 이 대반열반은 빛도 아니고 소리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보고 들을 수 있다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과거는 이미 없어졌으므로 들을 수 없고, 미래는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들을 수 없으며, 현재는 들을 때에는 들었다 이름하지 못할 것이요, 들었으면 소리는 이미 없어졌으니 다시 들을 것 아니거니와, 이 대반열반은 또한 과거·미래·현재가 아니오니, 만일 삼세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 들을 수가 없삽거늘, 어찌하여 보살이 이 대반열반경을 닦으면,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는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을 찬탄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온갖 법이 환술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건달바성과 같고 물에 번진 파문과 같으며, 물거품 같고 파초나무가 공하여 실속이 없는 것 같으며, 수명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괴롬과 즐거움이 없음을 알았으니, 10주 보살의 지견과 같으니라.”
이 때에 대중 가운데에 별안간 큰 광명이 있었으니, 푸른 것이 아닌데 푸른 것을 보고, 누른 것이 아닌데 누른 것을 보고 붉은 것이 아닌데 붉은 것을 보고, 흰 것이 아닌데 흰 것을 보며, 빛이 아닌데 빛을 보고, 밝음이 아닌데 밝음을 보고, 보는 것이 아닌데 보게 되었다. 그 때 대중들이 이 광명을 만나고는 몸과 마음이 쾌락하기가, 마치 비구들이 사자왕정(師子王定)에 든 듯하였다.
이 때에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광명은 누가 놓나이까?”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말씀하지 아니하셨다.
가섭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대중에게 비치는 것입니까?”
문수보살 역시 잠자코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다시 무변신(無邊身)보살이 가섭보살에게 이 광명은 누구의 것인지를 물었으나, 가섭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아니하였고, 정주왕자(淨住王子)보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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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신보살에게 무슨 인연으로 대중 가운데 이 광명이 있는가를 물었으나, 무변신보살도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5백 보살이 서로 물었으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이 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슨 인연으로 대중 가운데 이 광명이 있는가?”
문수사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런 광명은 지혜라 이름하오며, 지혜는 항상 머무는 것이옵고,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이 없삽거늘,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느냐’고 물으시나이까? 이 광명은 대열반이라 이름하고 대열반은 항상 머문다 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느냐’고 하시나이까? 이 광명은 곧 여래요 여래는 항상 머무는 것이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광명은 대자대비라 하고 대자대비는 항상 머무는 것이라 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광명은 곧 염불이요 염불은 항상 머무는 것이라 이름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광명은 모든 성문·연각과 함께하지 아니하는 도며, 모든 성문·연각과 함께하지 아니하는 도는 항상 머무는 것이라 이름하며, 항상 머무는 법은 인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을 물으시나이까? 세존이시여, 역시 인연이 있사오니, 무명이 없어짐을 인하여 환하게 치성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등불을 얻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그대는 모든 법의 깊고 깊은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들어가지 말고, 세상법[世諦]으로써 해설하라.”
문수사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동쪽으로 20항하의 모래 수 세계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부동(不動)이라 합니다. 그 부처님 계시는 곳은 가로와 세로가 꼭 같아서 1만 2천 유순이요, 땅은 7보로 되어 흙이나 돌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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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고 단정하고 부드러워 구렁이 없으며, 나무들은 네 가지 보배로 되었으니 금과 은과 유리와 파리요, 꽃과 열매가 무성하여 없는 때가 없나이다. 만일 중생이 그 꽃향기를 맡으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여, 마치 비구가 3선천에 든 듯하며, 그 주위에 다시 3천의 강이 있는데 물이 미묘하여 여덟 가지 맛이 갖추어졌으며, 만일 중생이 그 물에서 목욕하면, 즐겁기가 2선천에 들어간 비구와 같습니다. 그 물에 가지각색 꽃이 있으니 우발라꽃·파두마꽃·구물두꽃·분다리꽃·향화·대향화·미묘항화와 모든 중생들의 애호하는 꽃이며, 그 강의 양쪽 언덕에도 여러 가지 꽃이 있으니 아제목다가화·점파화·파타라화·파사라화·마리가화·대마리가화·신마리가화·수마나화·유제가화·단누가리화·상화 등 모든 중생들이 애호하는 꽃입니다. 바닥에는 금 모래가 깔리고, 네 가지 계단이 있으니 금·은·유리와 잡색 파리며, 여러 가지 새들이 그 가운데 모여들고, 또 한량없는 범·이리·사자 등 사나운 짐승들이 있으나, 마음이 유순하여 어린아기들처럼 서로 어울립니다.
그 세계에는 중대한 계율을 범한 자나 바른 법을 비방하는 자나 일천제(一闡提)나 5역죄를 짓는 자가 없으며, 그 토양이 조화롭고 기후가 알맞아 춥고 덥고 굶주리고 목마른 고통이 없고, 탐욕과 성내는 일과 방일하고 질투하는 일이 없고, 해와 달과 밤과 낮이 없는 것이 도리천과 같습니다. 그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광명이 있고 교만한 마음이 없어서 모든 사람이 다 보살들이며, 모두 다 신통을 얻었고, 큰 공덕을 구족하였으며, 마음으로 바른 법을 존중하여, 대승을 타며 대승을 사랑하며, 대승을 즐거워하며 대승을 애호하며, 큰 지혜를 이룩하여 큰 총지(摠持)를 얻었고, 마음으로는 항상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깁니다. 부처님 명호는 만월광명(滿月光明) 여래·응공·전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며 계시는 곳을 따라 법을 강설하시니, 그 나라의 중생들은 그 부처님께서 유리광(琉璃光)보살마하살을 위하여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나이다.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만일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 듣지 못한 것을 모두 듣느니라’ 하셨고, 저 유리광보살마하살이 만월광명부처님께 여쭌 것도, 여기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물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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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다름이 없었나이다.
저 만월광명부처님께서 유리광보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여, 여기서 서쪽으로 20항하의 모래 수 세계를 지나서 거기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사바(娑婆)인데, 그 세계에는 산과 구릉이 많고, 흙·모래·자갈·돌·가시 등이 가득하며, 항상 기갈과 춥고 더운 고통이 있으며, 그곳 사람들은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부모나 스승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법답지 아니한 것을 탐하며 잘못된 법을 욕구하여, 삿된 법을 행하고 바른 법을 믿지 아니하며, 수명이 짧고 간사한 짓을 행하므로 국왕이 그것을 다스리며, 국왕이 나라를 가지었어도 만곡한 줄 모르고, 다른 임금이 가진 토지에 탐심을 내어서 군대를 일으켜 서로 싸우매 억울하게 죽는 이가 한정이 없으며, 임금의 행하는 일이 이렇게 옳지 못하므로, 사천왕과 선신들이 환희한 마음이 없고, 그리하여 가뭄과 재앙을 내려 곡식이 풍년 들지 못하고 괴질이 유행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한량이 없느니라.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니, 이름은 석가모니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신데,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순후하며 중생을 불쌍하게 여기시어,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대중을 위하여 이와 같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시며, 거기 보살이 있으니 이름은 광명변조고귀덕왕이라, 이미 이 일을 물은 것이 그대와 다름이 없거늘, 부처님께서 지금 대답하시나니, 그대가 빨리 가면 들을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유리광보살이 이 말을 듣고, 8만 4천 보살마하살과 더불어 이곳으로 오려 하므로 이런 상서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런 인연으로 이 광명이 있사오니, 이것은 인연이라고도 하고 인연이 아니라고도 하나이다.”
이 때에 유리광보살이 8만 4천 보살과 함께 모든 깃발과 일산과 향과 꽃과 영락과 가지가지 풍악이 앞엣 것보다 갑절이나 훌륭한 것을 가지고,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 와서는, 가지고 온 공양거리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얼굴을 부처님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았으며, 그렇게 공경하고는 물러가서 한쪽에 앉았다.
이 때에 세존께서 그 보살에게 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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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이르러서 왔는가, 이르지 않고서 왔는가?”
“세존이시여, 이르러서 오지도 않았고, 이르지 않고서 오지도 않았사오니, 제가 이 뜻을 관찰하건대 도무지 오는 일이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모든 행(行)이 항상하더라도 오지 아니하고, 무상하더라도 오지 않나이다. 만일 사람이 중생의 성품이 있는 줄로 보면 오고 오지 아니함이 있으려니와, 저는 지금 중생의 결정된 성품을 보지 아니하거늘, 어찌 오고 오지 않음이 있사오리까? 교만이 있는 이는 가고 오는 일이 있음을 보거니와, 교만이 없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집착하는 행[取行]이 있는 이는 가고 옴이 있음을 보거니와, 집착하는 행이 없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만일 여래가 필경에 열반하는 줄로 보면 가고 옴이 있거니와, 여래가 필경에 열반하는 줄로 보지 아니하면 가고 옴이 없나이다. 불성을 듣지 못한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불성을 들은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성문·벽지불에게 열반이 있는 줄로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성문·벽지불에게 열반이 있는 줄로 보지 않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성문·벽지불에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보지 않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여래에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는 줄로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있거니와, 여래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로 보는 이는 가고 옴이 없나이다. 이 일은 그만두고 여쭐 일이 있사오니, 가엾이 여기시어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음대로 물으라. 지금이 물을 때니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하나하나 설명해 주겠다. 그 까닭을 말하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려움이 우담꽃과 같고, 법도 그러하여 듣기 어려우며, 12부 경전에서 방등경이 더욱 어려우니, 그러므로 전일한 마음으로 들어야 하느니라.”
이 때에 유리광보살마하살은 이미 허락을 받았고, 또 경계하심을 받자왔으므로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경을 수행하면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나이까?”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 대승 대열반의 바다를 다하고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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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또 나를 만났으니 잘 해설하리라. 그대에게 있는 의심과 독화살은, 내가 큰 의원으로서 뽑아줄 것이며, 그대가 불성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였으니, 내가 지혜의 횃불이 되어 밝게 비쳐줄 것이며, 그대가 나고 죽는 바다를 건너려 하니, 내가 뱃사공이 되어 줄 것이며, 그대가 나를 부모같이 생각하니, 나도 그대를 아들처럼 생각할 것이며, 그대가 마음으로 법보를 탐구하니, 나에게 있는 것을 보시하여 주리라. 자세하게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그대에게 분별하여 해석하리라.
선남자여, 법을 들으려면 지금이 좋은 때니라. 법을 듣고는 마땅히 공경하고 믿음을 내어 지성으로 듣고 공경하고 존중하라. 바른 법에 대하여 허물을 찾지 말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생각지 말며, 법사의 문벌이 높고 낮음을 보지 말며, 법을 듣고는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며, 공경과 명예와 이양을 위하지 말고 세상을 건지는 감로법이 되어야 하며, 또 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나니 ‘내가 법을 듣고는 먼저 내 몸을 제도하고, 그런 뒤에 남을 제도하리라. 먼저 내 몸을 해탈하고 그런 뒤에 남을 해탈케 하리라. 먼저 내 몸을 편안케 한 뒤에 남을 편안케 하리라. 먼저 내가 열반한 뒤에 다른 이도 열반을 얻게 하리라’ 하지 말며,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에 평등한 생각을 내며, 나고 죽는 데는 괴로운 생각을 내며, 대열반에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생각을 내며, 먼저 다른 이를 위하고 나중에 나를 위하며, 대승을 위하고 2승을 위하지 말며, 모든 법에 머무는 바가 없어야 하며, 모든 법의 모양만을 집착하지 말며, 모든 법에 대하여 탐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항상 법을 알고 법을 보려는 생각을 내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능히 이렇게 지성으로 법을 들으면 이것을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듣지 못하면서 들음이 있고, 듣지 못하면서 듣지 못함이 있고, 들으면서 듣지 못함이 있고, 들으면서 들음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나지 않으면서 나고, 나지 않으면서 나지 않고, 나면서 나지 않고, 나면서 나는 것과 같으며, 또 이르지 않으면서 이르고, 이르지 않으면서 이르지 않고, 이르면서 이르지 않고, 이르면서 이르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나지 않으면서 나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세제(世諦)에 편안히 머물러서 처음 태에서 나올 때를 이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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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나지 않으면서 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지 않으면서 나지 않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이 대열반은 나는 모습이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지 않으면서 나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면서 나지 않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세제에서 죽는 때를 이름하여 나면서 나지 않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나면서 난다 하는가. 선남자여, 온갖 범부들을 이름하여 나면서 난다 하느니라. 왜냐 하면 나고 나는 것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며, 온갖 유루(有漏)들이 찰나찰나 나는 까닭으로, 이것을 이름하여 나면서 난다 하느니라. 4주(住) 보살을 이름하여 나는 것이 나지 않는다 하나니, 왜냐 하면 나는 것이 자재한 까닭으로 나면서 나지 않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은 안엣 법이라서 하거니와, 무엇을 바깥 법이라 하는가. 나지 못하는 것이 나며, 나지 못하는 것이 나지 못하며, 나는 것이 나지 못하며, 나는 것이 남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종자에서 싹이 나지 못할 때에 4대가 화합하고 사람이 공들여 가꾸면 나게 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지 못하는 것이 난다 하느니라. 무엇을 나지 못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는가. 마치 썩은 종자가 연(緣)을 만나지 못한 것 같음이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나지 못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느니라. 무엇을 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는가. 마치 싹이 나고도 자라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나는 것이 나지 못한다 하느니라. 무엇을 나는 것이 난다 하는가. 마치 싹이 나서 자라는 것 같음이거니와, 만일 나는 것이 나지 못하면 자라는 일이 없나니, 이러한 모든 유루법을 이름하여 바깥 법의 나는 것이 난다 하느니라.”
유리광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유루의 법이 만일 난다면 항상함이 되나이까, 무상함이 되나이까? 나는 것이 만일 항상하다면, 유루의 법은 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요, 나는 것이 만일 무상하다면 유루의 법이 항상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나는 것이 능히 스스로 난다면 나는 것이 제 성품이 없을 것이며, 만일 능히 다른 것을 낸다면, 무슨 인연으로 무루(無漏)는 내지 못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나지 않았을 적에 나는 일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이제서야 났다 이름하나이까? 만일 나지 않았을 적에 나는 일이 없었다면, 어찌하여 허공이 났다고는 말하지 않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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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나지 않는 것이 난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는 것이 난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는 것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지 않는 것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나지 않는 것도 말할 수 없거니와, 인연이 있으므로 말할 수 있느니라. 어찌하여 나지 않는 것이 난다는 것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지 않는 것을 난다고 이름하니,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 왜냐 하면 그가 났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나는 것이 난다는 것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는 것이 나는 까닭으로 나고, 나는 것이 나는 까닭으로 나지 아니하므로 역시 말할 수 없느니라. 어찌하여 나는 것이 나지 아니함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는 것은 났다고 이름하거니와, 나는 것이 스스로 나지 아니하므로 말할 수 없느니라. 어찌하여 나지 않는 것이 나지 아니함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지 않는 것은 이름하여 열반이라 하는데, 열반은 나지 아니하므로 말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도를 닦아서야 얻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나는 것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찌하여 나지 않는 것도 말할 수 없다 하느냐. 얻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어떤 것이 인연이 있으므로 말할 수도 있다 하느냐. 열 가지 인연법이 나는 것의 인이 되나니, 그런 이치로 말할 수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깊고 깊은 공한 정[空定]에 들어가지 말지니 대중이 둔한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함이 있는 법은 나는 것이 항상하지만, 머무는 것[住]이 무상하므로 나는 것도 무상하며, 머무는 것이 항상하지만, 나는 것으로 내게 되므로 머무는 것도 무상하며, 달라지는 것[異]이 항상하지만, 법이 무상하므로 달라지는 것도 무상하며, 무너지는 것[壞]이 항상하지만,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으므로 무너지는 것도 무상하니라. 선남자여, 성품인 까닭으로 나고 머물고 달라지고 무너지는 것이 모두 항상하거니와, 찰나찰나 멸하는 까닭으로 항상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대열반으로써 끊어 없앨 수 있으므로 무상하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유루의 법은 나지 않았을 때에 벌써 나는 성품이 있으므로 나는 것이 능히 내거니와, 무루의 법은 본래 나는 성품이 없으므로 나는 것이 능히 내지 못하느니라. 마치 불은 본래 성품이 있으므로, 연을 만나면 불이 나는 것이요, 눈은 본래 보는 성품이 있으므로, 빛을 인하고 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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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인하고 마음을 인하여서 보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나는 법도 그와 같아서, 본래 성품이 있으므로 업의 인연과 부모가 화합함을 만나면 나는 것이니라.”
이 때에 유리광보살마하살과 8만 4천 보살마하살들이 이 법문을 듣고는 공중으로 다라나무의 7배 높이까지 솟아올라서 합장하고 공경하여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의 은근하게 가르침을 입사와 대열반을 인하여 비로소 깨닫고, 듣지 못한 바를 들었사오며, 8만 4천 보살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나지 않으면서 나는 것들을 깊이 알게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알고서 의심을 끊었사오나, 이 회상에 한 보살이 있으니 이름을 무외(無畏)라 하옵는데, 부처님께 여쭙고자 하오니 허락하시옵소서.”
이 때에 세존은 무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음대로 물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해설하리라.”
이 때에 무외보살이 6만[어떤 판본에서는 8만이라 함] 4천 보살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로하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세계의 중생들은 무슨 업을 지어야 저 부동(不動)세계에 가서 날 수 있나이까? 그 세계의 보살들은 어찌하여 지혜가 성취되었사오며, 사람 중의 코끼리 왕으로서 큰 위덕이 있사오며, 모든 행을 갖추어 닦아서 영리한 지혜가 빠르며, 듣고는 곧 이해하나이까?”
이 때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중생들의 모든 생명 해하지 않고
여러 가지 계율을 굳게 지키며
부처님의 미묘한 법 받아 지니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다른 이의 귀한 재물 빼앗지 말고
언제라도 중생들에 늘 보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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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스님 모여 있을 절을 지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다른 이의 여자들을 범하지 않고
때 아니면 자기 처도 범하지 말며
계행 갖는 니사단을 보시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나와 남의 이익을 위하여서나
아무리 두려운 일 닥치더라도
입 다물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언제라도 선지식을 헐뜯지 말고
좋지 못한 권속들을 멀리 여의며
입으로는 화합한 말 항상 말하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저 모든 보살마하살처럼
나쁜 말은 입 안에서 멀리 여의고
다른 이가 즐겨 듣는 말만 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희롱으로 웃는 말을 할 때에라도
말할 때가 아닌 말은 말하지 않고
조심조심 말할 때만 말을 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다른 이가 이양을 얻는 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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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나 즐거운 마음을 내어
시기하고 질투하는 생각 없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중생들을 시끄럽게 굴지도 않고
어느 때나 인자한 마음을 내며
방편으로 짓는 악도 내지 않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잘못된 소견으로 보시도 없고
부모도 과거 미래 없다고 하는
이러한 나쁜 소견 내지 않으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넓은 벌판 먼 길에는 우물을 파고
간 데마다 과실 나무 많이 심으며
거지에겐 좋은 음식 항상 준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부처님과 법보와 스님들에게
향 한 개나 등불 하나 공양하거나
하다못해 꽃 한 송이 바치더라도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두려움을 모면하기 위하여서나
이양이나 복덕을 얻기 위하여
이 경전을 한 게송만 쓴다 하여도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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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가 복덕·이양 얻기 위하여
여러 날은 그만두고 하루 동안만
이 경전을 외우고 읽는다 하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어떤 이가 무상도를 얻기 위하여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이라도
정성으로 8재계를 받아 지니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크고 중한 계율을 범한 사람과
한 곳에서 한가지로 있지 않거나
방등경전 훼방한 이 꾸짖는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어떤 이가 병난 사람 살펴보거나
맛난 과실 한 개라도 보시하거나
즐거운 마음으로 간호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스님들의 쓰는 물건 범하지 않고
부처님의 상주(常住)물을 수호 잘하며
절 도량을 잘 치우고 소제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부처님 형상이나 부처님 탑을
엄지손가락만치라도 조성해 놓고
어느 때나 즐거운 맘 항상 낸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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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 이 경전을 위하는 마음
내 몸이나 재물 보배 아끼지 않고
설법하는 법사에게 보시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부처님의 비밀한 이런 법장을
듣거나 배우거나 읽고 외우며
쓰거나 통달하여 해설한다면
이런 이는 부동국에 태어나리라.

이 때에 무외보살마하살은 이렇게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짓는 업을 따라서 저 세계에 태어나게 되는 일을 알았나이다. 이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먼저 여쭌 바를 여래께서 해설하시면, 세간 사람·천상 사람·아수라·건달바·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들을 이익하고 안락케 하리이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여기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낱낱이 말해 주리라. 인연이 있으므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지 못하고, 인연이 있으므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고, 인연이 있으므로 이를 데에 이르지 아니하고, 인연이 있으므로 이를 데에 이르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지 못하는가. 선남자여, 이르지 못할 데는 대열반인데, 범부는 이르지 못하나니,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있는 탓이며, 몸으로 짓는 짓과 입으로 짓는 짓이 깨끗지 못한 탓이며, 모든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받아 둔 탓이며, 4중금(重禁)을 범한 탓이며, 방등경을 비방한 탓이며, 일천제인 탓이며, 5역죄를 지은 탓이니, 이런 이치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지 못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는가. 이르지 못할 데는 대열반인데, 어떠한 뜻으로 이르는가.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과 몸과 입으로 짓는 나쁜 짓을 아주 끊은 까닭이며,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지 않는 까닭이며, 4중금을 범하지 아니한 까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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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방등경전을 비방하지 아니한 까닭이며, 일천제가 되지 아니한 까닭이며, 5역죄를 짓지 아니한 까닭이니, 이런 뜻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른다 이름하며, 수다원은 8만 겁에 이르고 사다함은 6만 겁에 이르고, 아나함은 4만 겁에 이르고 아라한은 2만 겁에 이르고 벽지불은 10천 겁에 이르나니, 이런 뜻으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른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를 데에 이르지 않는다 이름하는가. 이를 데라 함은 25유(有)인데, 모든 중생이 한량없는 번뇌에 덮인 바가 되어 갔다 왔다 하면서 여의지 못함이 마치 수레바퀴가 도는 것 같나니, 이것을 이른다 하며, 성문과 연각과 보살들은 이미 여의었으므로 이르지 않는다 하며,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그 가운데 일부러 있으므로 이른다고도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이를 데에 이른다 이름하는가. 이를 데라 함은 25유인데, 온갖 범부들과 수다원, 내지 아니함은 번뇌의 인연으로 이를 데에 이른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듣지 못할 것을 듣는 일도 있고, 듣지 못할 것을 듣지 못하는 일도 있고, 듣는 것을 듣지 않는 일도 있고, 듣는 것을 듣는 일도 있느니라. 어찌하여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하는가. 선남자여, 듣지 못할 것을 대열반이라 하나니, 어찌하여 듣지 못한다 하는가. 함이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며, 음성이 아닌 까닭이며,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니라. 어찌하여 듣는다 하는가. 이름을 들을 수 있는 까닭이니 이른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니라. 이런 이치로 듣지 못할 것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대열반을 들을 수 없다면, 어찌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들을 수 있다’ 하나이까?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번뇌를 끊은 이는 열반을 얻었다 이름하고, 번뇌를 끊지 못한 이는 얻지 못하였다 이름하나니, 이런 이치로 열반의 성품은 본래는 없으나 지금은 있다 하나이다. 만일 세간의 법이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다면 무상하다 이름하나니, 마치 병(甁) 따위가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으니 이미 있다가는 도로 없어지므로 무상하다 하거늘, 열반이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겠습니까? 또 세존이시여, 무릇 장엄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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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무상하다 하나니 열반이 만일 그러하면 으레 무상하다 하겠습니다. 무엇을 인연이라 하나이까? 37품(品)과 6바라밀과 4무량과 뼈의 모양을 관함[骨相觀]과 아나파나(阿那波那)와 6념처(念處)와 6대(大)를 분석하는 것이니, 이런 법들은 모두 열반을 성취하는 인연이므로 무상하다 이름하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있는 것을 무상하다 하나니, 만일 열반이 있는 것이라면 역시 무상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예전에 아함에서 말씀하시기를, 성문과 연각과 부처가 다 열반이 있다 하였사오니, 이런 뜻으로 무상하다 하겠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볼 수 있는 법을 무상하다 하나니,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열반을 보는 이는 온갖 번뇌를 끊는다 하셨습니다. 또 세존이시여, 마치 허공이 중생들에게 평등하여 장애가 없으므로 항상하다 이름하는 것과 같나니, 만일 열반이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중생이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하나이까? 열반이 그와 같이 중생들에게 불평등하다면 항상하다고 이름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백 사람에게 공통한 한 사람의 원수가 있을 때에 그 원수를 살해하면, 여러 사람이 즐거울 것입니다. 만일 열반이 평등한 법이라면, 한 사람이 얻을 때에 여러 사람이 함께 얻을 것이니, 한 사람이 번뇌를 끊으면 여러 사람도 번뇌를 끊을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겠나이까? 어떤 사람이 임금이나 왕자나 부모나 스승에게, 공경하고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고 이양을 얻으면, 이것은 항상하다 하지 않나이다. 열반도 그러하여 항상하다고 이름하지 못할지니,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예전에 아함 가운데에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람이 열반을 공경하면 번뇌의 결박을 끊고 한량없는 즐거움을 받는다 하였기 때문이오니, 이런 뜻으로 항상하다 이름하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열반에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는 이름이 있으면 항상하다고만 이름하지 못할 것이요, 만일 없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열반의 자체는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니라. 만일 열반의 자체가 본래 없다가 지금 있다면, 무루의 항상 머무는 법이 아니리라. 부처가 있거나 없거나 성품과 모양이 항상 있건만, 중생들은 번뇌에 가리웠으므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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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을 보지 못하고 없다 하며, 보살마하살은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써 마음을 닦아 번뇌를 끊었으므로 문득 보는 것이니, 열반은 항상 머무는 법으로서, 본래는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두운 우물 속에 가지가지 7보가 있는 것을 사람들도 알지만 어두워서 보지 못하거든, 지혜 있는 사람이 방편을 알고서 등불을 켜 가지고 가서 비치면 모두 보는 것이며, 이 사람들이 여기서 생각하기를 ‘물과 7보가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다’고 하지 않느니라. 열반도 그와 같아서 본래부터 있는 것이요, 지금에 비로소 있는 것이 아니며, 번뇌가 어두워서 보지 못하거든, 큰 지혜인 여래가 알맞은 방편으로 지혜의 등을 켜서 보살들로 하여금 열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보게 하나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장엄을 인하여서 보리를 이루는 것이매, 무상하리라’ 함은, 그 이치가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는 나는 것도 아니요 나오는 것도 아니며 진실한 것도 아니요 빈 것도 아니며 업을 지어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유루인 함이 있는 법이 아니며, 들을 것도 아니요 볼 것도 아니요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다른 모양도 아니요 같은 모양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요 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요 여럿도 아니요 긴 것도 아니요 짧은 것도 아니며, 둥근 것도 아니요 모난 것도 아니며, 뾰족한 것도 아니요 비낀 것도 아니며, 있는 모양도 아니요 없는 모양도 아니며, 이름도 아니요 빛도 아니며, 인도 아니요 과도 아니며, 나와 나의 것도 아니니, 이런 이치로 열반은 항상한 것이며 영원히 변역하지 아니하는 것이건만,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선한 법을 닦아 모아서 스스로 장엄한 뒤에야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땅밑에 여덟 가지 맛을 가진 물이 있는 것을 모든 중생들이 얻지 못하거든, 지혜 있는 사람이 공력을 들여서 파면 얻게 되나니, 열반도 그와 같으니라. 마치 눈먼 사람이 해와 달을 보지 못하다가 용한 의원이 눈을 치료하여 고치면 보게 되거니와, 해와 달은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니, 열반도 그와 같아서 원래 있었던 것이요 지금에야 있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죄가 있어 옥에 갇히었다가 오랜 뒤에 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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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집에 돌아가면, 부모·형제·처자·권속들을 보게 되나니, 열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인연인 까닭으로 열반의 법이 무상하리라’ 함도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 내는 인[生因]이요, 둘째 화합하는 인[和合因]이요, 셋째 머무는 인[住因]이요, 넷째 자라는 인[增長因]이요, 다섯째 먼 인[遠因]이니라. 무엇을 내는 인이라 하는가. 내는 인이란 곧 업과 번뇌며, 밖으로는 초목의 종자들이니, 이것을 내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화합하는 인이라 하는가. 선한 것은 선한 마음과 화합하고, 선하지 못한 것은 선하지 못한 마음과 화합하고 기억이 없는 것[無記]은 기억이 없는 마음과 화합하는 것이니, 이것을 화합하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머무는 인이라 하는가. 마치 아래에 기둥이 있으면 집이 무너지지 아니하고, 산과 강과 초목은 땅을 인하여 머물러 있는 것같이 안으로 4대와 한량없는 번뇌가 있으므로 중생이 머물러 있나니, 이것을 머무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자라는 인이라 하는가. 의복과 음식 따위를 인연하여 중생이 자라는 것이니, 마치 종자가 불에 타지 아니하고 새가 먹지 아니하면 자라는 것 같으며, 사문(沙門)이나 바라문들이 화상(和上)이나 선지식을 의지하여 자라는 것 같으며, 부모를 인하여 아들이 자라는 따위니, 이것을 자라는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먼 인이라 하는가. 마치 주문을 인하여 귀신이 침로하지 못하고 독이 해하지 못하며, 임금을 의지하여 도적이 없으며 싹이 땅과 물과 더운 것과 바람을 인하며, 물과 젓는 것과 사람의 노력이 생소[酥]의 먼 인이 되며, 밝음과 빛이 식(識)의 먼 인이 되며, 부모의 정기와 피가 중생의 먼 인이 되나니, 시절 같은 것을 이름하여 먼 인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는 이러한 다섯 가지 인으로 이룬 것이 아니어늘, 어찌하여 무상의 인이라 말하겠는가.
또 선남자여, 다시 두 가지 인이 있으니, 짓는 인[作因]과 아는 인[了因]이니라. 마치 옹기장이의 물레와 노끈 따위는 짓는 인이라 하고, 등촉으로 어두운 데 물건을 비치는 것은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대열반은 짓는 인을 따라 있는 것이 아니고, 아는 인으로 좇아 있는 것이니, 아는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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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함은 37조도법과 6바라밀 등으로 이것을 아는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시는 열반의 인이요, 대열반의 인은 아니니, 보시바라밀이라야 대열반의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37품은 열반의 인이요, 대열반의 인은 아니니,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기겁 동안의 도를 돕는 법이라야 대열반의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보시는 보시바라밀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어떠한 보시는 보시바라밀이라 이름하오며, 내지 반야는 어찌하면 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어찌하면 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합니까? 어떤 것은 열반이라 이름하고, 어떤 것은 대열반이라 이름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방등한 대반열반을 수행함에는 보시를 듣지 못하고 보시를 보지 못하며, 보시바라밀을 듣지 못하고 보시바라밀을 보지 못하며, 내지 반야를 듣지 못하고 반야를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듣지 못하고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며, 열반을 듣지 못하고 열반을 보지 못하며, 대열반을 듣지 못하고 대열반을 보지 못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 법계를 알고 보며 실상을 이해하여, 공하여 있는 것이 없고 화합하여 깨닫는 모양이 없으며, 무루의 모양과 짓는 일이 없는 모양과 환술과 같은 모양과 더울 때의 아지랑이 같은 모양과 건달바성 따위의 비고 공한 모양을 얻게 되리니, 보살이 이러한 모양을 얻으면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이 없어서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할 것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진실한 모습이며, 실상에 머문다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그 때에는 이것은 보시요 이것은 보시바라밀이며, 내지 이것은 반야요 이것은 반야바라밀이며, 이것은 열반이요 이것은 대열반임을 스스로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어찌하여 이것은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라 하는가. 달라는 이가 있음을 보고야 주는 것은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거니와, 달라는 이가 없는데, 마음을 내어 스스로 주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때때로 주는 것은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거니와, 항상 주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다른 이에게 주고는 도로 후회하는 마음을 내면, 이것은 보시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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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밀이 아니거니와, 주고는 후회하지 아니하면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재물에 대하여 임금·도둑·수재·화재의 네 가지 공포한 마음을 내어 기쁘게 보시하면 이름을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과보를 희망하여 주는 것은 이름이 보시요 바라밀이 아니며, 주고도 갚음을 바라지 않는 것은 보시바라밀이라 하느니라. 만일 공포(恐怖)나 명예나 이양이나 집의 규모[家法]를 상속하거나 천상의 5욕락을 위한다면, 교만을 위함이고, 아는 동무[知識]를 위함이고 오는 세상의 과보를 위하는 것이므로, 장사하는 법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서늘한 그늘을 위하고 꽃과 과실과 재목을 얻기 위하여 사람이 나무를 심는 것과 같나니, 만일 이런 보시를 행한다면 그것은 보시라 이름하거니와 바라밀은 아니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대열반을 수행하는 이는 보시하는 이· 받는 이·주고 받는 재물을 보지 아니하며, 시절을 보지 아니하며, 복밭과 복밭 아님을 보지 아니하며, 인을 보지 않고 연을 보지도 않고 과보도 보지 아니하며, 짓는 이도 보지 아니하고 받는 이도 보지 아니하며, 많음도 보지 않고 적음도 보지 않고, 깨끗함도 보지 않고 부정함도 보지 아니하며, 받는 이와 자기와 재물을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며, 보는 이도 보지 아니하고 보지 않는 이도 보지 아니하며, 자기와 남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다만 방등한 대반열반의 항상 머무는 법을 위하므로 보시를 수행하고 모든 중생을 이익하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며, 온갖 중생의 번뇌를 끊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며,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받는 이·주는 이·재물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보시를 행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큰 바다에 빠졌을 때에 송장이라도 붙들면 벗어나게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할 때에도 그와 같아서 송장과 같이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옥에 갇히면, 문이 굳게 잠기고 뒷간 구멍만이 있는데, 그리로 나와서라도 자유로운 곳에 가려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할 때에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존귀한 사람이 위급하고 무서울 때에 의지할 데가 없으면 전다라에게라도 의지하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병난 사람이 병고를 소멸하고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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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얻기 위하여서는 부정한 것이라도 먹는 것과 같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바라문들이 곡식이 귀할 적에는 목숨을 위하여서 개고기라도 먹나니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보시를 행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대열반 중에서는 이러한 일을 한량없는 겁 동안에 듣지 못하던 것을 듣는 것이니, 지계와 지계바라밀과, 내지 반야와 반야바라밀은 부처님의 『잡화경(雜花經)』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열반을 닦으면서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는가. 12부 경전은 뜻이 매우 깊어서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인데, 이제 이 경을 인하여 구족하게 들으며, 먼저 들었다 하더라도 이름만 듣다가 이제 이 대반열반경에서 뜻을 들었으며, 성문·연각도 12부 경전의 이름만 듣고 뜻을 듣지 못하였다가 이 경에서 갖춰 들었으니, 이것을 일러서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성문·연각의 경에서는 부처님에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는 것과 필경에 멸하지 않는다는 것과 삼보의 불성에 차별이 없다는 것과 4중금을 범하였거나, 방등경을 비방하였거나, 5역죄를 지었거나, 일천제들이 모두 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다가, 지금 이 경에서 듣는 것을 이름하여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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