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원경에 의거 추가함.

 

 

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t=315s

 

www.youtube.com/watch?v=sdwC-KQ_qDo

 

 

www.youtube.com/watch?v=LMRpDIN8C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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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혜 삼학은 곧 팔정도 수행법 - 현대불교신문

부처님은 40년간의 오랜 세월에 걸쳐 사부대중에게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다양한 수행법을 설했다. 이 수행법을 모두 포괄해서 정리해 놓은 것이 계학(戒學)ㆍ정학(定學)ㆍ혜학(慧學)의 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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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경전 - 열반경 涅槃經]- 대반 열반경 大般涅槃經 해제

[열반경 涅槃經]- 대반 열반경 大般涅槃經 해제 1. 성립과 한역(漢譯) 열반경은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娑羅雙樹)에서 열반에 들기 직전 하루 낮과 밤 동안에 설하신 최후의 설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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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경 涅槃經]- 대반 열반경 大般涅槃經 해제

 

1. 성립과 한역(漢譯)

열반경은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娑羅雙樹)에서 열반에 들기 직전 하루 낮과 밤 동안에 설하신 최후의 설법이라고 한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열반경에는 북본(北本)과 남본(南本)의 두 가지 외에도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이 있다.

이 『대반니원경』은 동진(東晉)의 법현(法顯)이 418년에 남본과 북본 열반경의 앞 9권에 해당하는 부분을 6권 18품(品)으로 나누어 한역한 것이다.

북본 열반경은 421년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이 한역한 것으로서 40권 13품으로 되어 있다. 이 북본 열반경이 번역된 지 오래지 않아 북량(北涼)이 망하자 열반경의 학자들은 강남으로 옮겼고, 이들을 중심으로 열반경 연구가 성행하면서 북본의 번역에 대한 결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에 동안사(東安寺)의 혜엄(慧嚴)과 도량사(道場寺)의 혜관(慧觀)은 사영운(謝靈運) 등과 함께 북본을 바탕으로 하고 법현(法顯)이 한역한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과 대교(對校)하여 36권 25품의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남쪽에서 이루어졌다 해서 남본이라고 불리며, 후세의 열반경 연구는 대개가 이 남본을 기초로 하고 있고 여기 번역한 열반경도 이 남본을 옮긴 것이다.

법현의 『대반니원경』을 비롯하여 북본과 남본의 열반경을 대승열반경(大乘涅槃經)이라고 부르며, 소승열반경(小乘涅槃經)으로부터 발달한 이 경은 또 여러 가지 대승경전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 예로 열반경이 인용하고 있는 초기 대승경전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수릉엄경(首楞嚴經)』·『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화엄경(華嚴經)』 등은 열반경의 성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경들이다.

대승열반경의 성립은 용수(龍樹 150∼250년 경) 이후라고 보지만 경의 태동(胎動)은 소승열반경에 속하는 경들이 성립된 시기로 거슬로 올라간다. 이 시기는 또 보살 집단에 의한 대승운동(大乘運動)의 초기를 지난 기원전후라고 보아지며, 이후 4세기 중반 경까지 내려가면서 몇 차례의 증보(增補) 과정을 거쳐 오늘의 열반경이 완성되었으리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2. 줄거리와 의도(意圖)

열반(涅槃)이란 범어 nirv a의 음사(音寫)로서 반열반(般涅槃)parin- iv a라고도 하며 멸도(滅度)라고 한역한다. 그러므로 열반에 든다고 하는 것을 멸도(滅度)에 든다고 하며, 줄여서 입멸(入滅)이라고도 한다. 열반경은 구시나성(拘尸那城, ku inagara) 가까이를 흐르는 아리라발제하(阿利羅跋提河 Ajitavat )의 강가에 서 있는 사라쌍수 사이에서 2월 15일, 입멸에 드시기 직전 석존(釋尊)께서 설하신 법이다. 그러므로 열반경은 부처님의 최후의 유교(遺敎)라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경은 부처님 입멸시의 슬픈 정경이 장엄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석가 부처님 입멸의 예고를 받고 슬퍼하는 대중이 모여들고, 사라수(娑羅樹)의 숲은 색이 변하여 백학(白鶴)과 같이 희어졌으며, 사방의 부처님 나라에서는 무변신(無邊身) 보살이 향반(香飯)을 가져와 공양하고자 모여들고, 그밖에도 독사나 악업(惡業)을 지은 자까지 모여 슬퍼한다. 그럼에도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아난(阿難)과 아사세왕(阿闍世王)과 일천제(一闡提)의 무리들은 오지 않고 있었다.

그 때 석가 세존은 재가신도(在家信徒)인 순타(純陀)가 바치는 공양을 최후의 공양으로 받으셨으며, 순타 이외의 대중이 바치는 공양은 화현(化現)한 부처와 비구들이 받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문수(文殊)보살에게 법을 부촉(付囑)하고 중생을 조복(調伏)하기 위하여 몸에 병을 나타내 보였다.

 이어 경의 끝에 이르러서는 열의 외도(外道)를 꺾어 귀의하게 하고 악마의 무리에게 시달리고 있는 아난을 구출하신 다음 최후의 제자가 된 범지(梵志)

그러나 대승에 의하면 신체, 즉 물체와 마음은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부처가 무여열반에 드는 것이 마치 장작이 다 타서 불이 꺼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처를 신체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이다. 부처를 업(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신체적 존재라고 보는 자에게 부처의 죽음은 무상(無常)하고 괴로운 것이며, 무아(無我)며 부정(不淨)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처는 육신(肉身)이 아니며 업에 속박되는 무명(無明)의 존재가 아니다. 부처로 하여금 부처이게 하는 것은 진실로 깨달음인 것이다. 열반경은 그 깨달음을 대열반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처의 본질인 그 깨달음을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밝히고자 한다.

열반경에 따르면 대열반이란 법신(法身)과 반야(般若)와 해탈(解脫)의 3법(法)으로써 이루어지며 이 셋을 열반의 3덕(德)이라고 한다. 법신이란 때와 장소라고 하는 제약을 넘어 보편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우주의 진실한 이법(理法)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지혜가 반야며 그것을 깨달았을 때 얻는 자유의 경지가 해탈이다. 이 3자는 상호 의지하여 존립함으로써 비로소 각각의 의의를 완성할 수 있으며 각각 떨어져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부처의 본질인 대열반이 이와 같은 법신과 반야와 해탈의 셋을 내용으로 한다고 하면 부처는 법신이므로 무상(無常)한 육신이 아닌 상주(常住)며 해탈이므로 고(苦)가 아니라 낙(樂)이며 반야이므로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에 속박되지 않는 절대 자유의 대아(大我)다. 결국 그것은 청정하며 번뇌가 없는 존재이다. 석가모니불의 무상을 나타낸 입멸을 계기로 열반경은 이 대아를 밝히며 진실한 부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인 삼덕(三德)을 갖춘 열반으로서 본질을 삼기 때문에 불신(佛身)은 상주(常住)인 것이다.

그러나 석존이 80세에 입멸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대승의 입장에서 보면 80세에 입멸한 부처는 진실한 부처가 아니며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진실한 부처가 응현(應現)한 부처며, 그 응현의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과 한가지로 입멸을 보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석존의 성도(成道)와 마찬가지로 진실한 부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진실한 부처에게는 성도라든가 병에 걸린다고 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성도와 병과 입멸의 그 모두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열반경은 「장수품(長壽品)」에서 입멸이 그러한 시현(示現)임을 설하고 「현병품(現病品)」에서 병 또한 시현임을 설하고 있다. 그래서 열반경은 "선남자야,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의 몸은 곧 금강신(金剛身)이다. 그대는 오늘부터 항상 전심으로 이 뜻을 마땅히 사유해야 한다. 식신(食身)을 염하지 말라. 또한 사람을 위하여 여래의 몸은 곧 법신이라고 설하느니라" 한다.

열반경의 이와 같은 불신관(佛身觀)은 『반야경』이나 『유마경』에서 부처는 법신(法身)으로서 생신(生身)이 아니라고 하는 사상을 계승한 것이며, 『법화경』 「수량품(壽量品)」에서 설하고 있는 부처의 수명은 구원(久遠)하며 본지불(本地佛)은 구원의 옛날에 성불(成佛)하였다고 하는 『법화경(法華經)』 의 설과도 서로 통한다.

열반경은 또 부처의 수명에 대해서 처음에는 장수(長壽)라고 설하고, 이어 장수란 진실 상주(常住)라고 하는 초시간적(超時間的)인 의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열반경은 불신(佛身)에 대해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이원적(二元的) 실재론(實在論)을 결정적으로 불식시켰다. (2)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다

불성(佛性)은 부처의 성품이란 뜻으로서 부처의 본질을 말한다. 불성이란 3덕(德)을 내용으로 하며, 그 3덕은 보편(普遍)하며 상주(常住)하는 것이므로 모든 중생은 이 불성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로 하여금 부처이게 하는 본질은 성불할 때 처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입멸과 함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처가 되는 것은 중생이 불성 안에 있음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이며, 부처가 된다고 하는 것은 불성을 현현(顯現)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범부(凡夫)는 불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범부에게 있어서 불성은 번뇌에 덮여 있어 아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번뇌에 덮이고 가리워진 상태에 있는 불성·여래성(如來性)을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불성·여래성이 그를 덮고 있는 번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 즉 자각한 불성을 법신(法身)이라고 한다. 범부가 자각한 불성을 법신이라고 함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사람이 특별히 정해졌거나 제한되지 않음을 뜻한다.

소승에 따르면 부처가 될 수 있는 자는 보살이라고 하는 특정한 사람에 한정되어 있고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3승(乘)의 차별론(差別論)이 있다. 그러나 대승에 따르면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자기와 같은 부처가 되게 하고자 법을 설하고 있으므로 부처가 되는 것은 선천적으로 제한된 소질이나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추구될 수 있는 이상인 것이다. 때문에 열반경은 이것을 '일체의 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고 강하게 주장한다.

열반경의 불성론(佛性論)은 처음부터 일정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품(品)을 거듭하면서 그 심도(深度)를 더하고 있다. 즉 처음에는 불성을 단 일천제(一闡提)는 범어 icchantica의 음사로서 천제(闡提)라고도 하며, 단선근(斷善根), 신불구족(信不具足)이라고 한역한다. 열반경에서는 시종 이 일천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가 문제되어 있고 그가 불성이 있다면 성불(成佛)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열반경에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설한 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방일하지 않고 꾸준히 불성을 개발하는 노력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석존의 입멸 때 스승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비구들이 있었다. 열반경으로서는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한 것에 근거하여 만인(萬人)의 평등과 성불을 주장하였으나 현실적으로는 이 불성론을 믿지 않는 그러한 비구들이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한 부류의 성불에 대한 문제는 매우 심각하였을 것이다.

열반경은 여래성품(如來性品)에서 일천제에게 불성이 있음을 인정하였으나 그 성불에 대해서는, 일천제는 불성은 있으나 무량한 죄업(罪業)에 얽매여 있으므로 보리(菩提)의 인(因)을 낳을 수 없어 생사의 유전이 끊어지지 않고, 비록 4중죄(重罪)와 5역죄(逆罪)를 범한 자까지도 보리심(菩提心)을 내게 할 수는 있어도 생맹(生盲)과 같은 일천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에 이르면 일천제의 성불을 인정하게 된다. 그것은 일체 중생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열반경으로서는 비록 일천제라 하더라도 불성(佛性) 밖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일천제가 만약 불성을 믿는다면 그 믿음에 의해서 성불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믿음이 없는 상태로는 성불할 수 없다는 원칙을 그대로 두고, 실제로는 일천제의 성불을 주장하여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는 설과의 논리적 통합을 이룬다.

이러한 열반경의 주장은 실로 불교의 종교적 의의를 현실적인 것으로 정착시키는 기초가 되었으나 상당한 파란과 오랜 고심(苦心) 끝에 얻어진 것이다. 어떠한 사람이든, 아무리 극악한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믿음을 갖고 뉘우칠 때, 그의 갱생을 돕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열반경은 정법(正法)의 호지(護持)와 정법이 멸한 뒤에 일어날 여러 가지 악한 일과 상황에 대해서 설하고 올바른 계율관(戒律觀)을 설하고 있다.

3. 일천제(一闡提)의 성불(成佛)

열반경은 또 불성(佛性)의 현현을 위해서는 지계(持戒)에 의지해야 하고 공(空)을 닦음으로써 불성을 본다고 설하면서 6바라밀(婆羅蜜)과 8정도(正道)에 의한 발심수행(發心修行)을 엄격하게 요구한다. 따라서 「가섭보살품(迦葉菩薩品)」에 이르면 발심과 수행으로 불성을 덮고 있는 무명과 번뇌를 걷고 불성을 현현해야 하므로 무명(無明)과 번뇌야말로 불성이라고 하기에까지 이른다. 그것은 무명과 번뇌에 의하여 선(善)의 5음(陰), 즉 심신(心身)이 생기고 그 선의 5음에 의하여 성도에 이르므로 결국 불성과 법성이라고 하여도 현실의 무명과 번뇌를 벗어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주장한 것이다.

순히 법성(法性)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에 이르면 불성이란 공(空)과 불공(不空)을 보는 제일의공(第一義空)이므로 중도(中道)라고 설하며, 또 12인연을 관조하는 지혜를 불성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서는 12인연 그 자체를 불성이라고 하기에 이르며, 12인연을 바탕으로 한 열반경의 불성사상(佛性思想)의 전개는 불성의 인(因)은 12인연이며 그 인(因)의 인은 지혜며, 불성의 과(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며 그 과의 과는 무상(無上)의 대반열반(大般涅槃)이라고 설한다. 이것은 석존이 12인연을 관하여 성도(成道)한 사실(史實)에 유래하는 것으로서 12인연을 보는 것은 법을 보는 것이며, 법을 보는 것은 부처를 보는 것이라는 논리다.

 (1) 상주(常住)하는 불신(佛身)

부처의 불멸성(不滅性)을 불신상주(佛身常住)라고 한다. 소승불교의 일반적인 이해에 따르면 신체의 유무(有無)를 따져 열반을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둘로 나누었다. 괴로움의 원인[苦因]인 정신상의 번뇌가 없어졌어도 괴로움의 결과[苦果]인 육체가 남아 있는 동안은 유여열반이며 육체까지 없어져 심신(心身)이 함께 공무(空無)로 돌아간 것을 무여열반이라고 한다.

4. 열반경의 사상

이 경이 부처님의 입열반(入涅槃)의 장면을 서술하지 않고 부처의 본질을 이루는 대열반을 보편화하여 불멸(不滅)함을 밝히고 있는 점은 곧 이 경의 뜻이다. 또한 부처의 불멸성과 함께 특히 이 경이 밝히고자 한 것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한 점이다. 그러한 것은 다음에 말하는 열반경의 사상에서 살펴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열반경의 줄거리는 그 소재를 아함(阿含) 중의 「유교경(遺敎經)」 등에 전하는 석존의 입멸 당시의 광경에서 빌려왔으나 석존의 입멸 당시 광경을 역사적으로 바르게 기술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대승적인 수식이 현저한 것을 볼 수 있다. 수발타(須跋陀)를 도(道)에 들게 한 것으로 대단원을 맺고 있다.

출처 : 나를 찾는 불공

 

www.youtube.com/watch?v=EHHP4VVJ0eE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총목차  

대반열반경 제 1 권

1. 서품(序品)/ 1  

2. 순타 이야기[純陀品]/ 25

3. 슬픈 탄식[哀歎品]/ 42

 

대반열반경 제 3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4. 오래 사는 이야기[長壽品]/ 57

5. 금강 같은 몸[金剛身品]/ 72

 

6. 경 이름의 공덕[名字功品]/ 80

7. 네 가지 모양[四相品] ①/82

7. 네 가지 모양 ②/ 100

8. 네 군데 의지함[四依品]/ 121

9. 정도와 사도[邪正品]/ 142

10. 네 가지 진리[四諦品]/ 152

 

11. 네 가지 뒤바뀜[四倒品]/ 155

12. 여래의 성품[如來性品]/ 157

13. 문자에 대해서(文字品)/ 176

14. 새 비유[鳥喩品]/ 183

15. 달 비유[月喩品]/ 189

 

16. 보살에 대해서[菩薩品]/194

17. 대중의 물음[一切大衆所問品] / 216 니원경

18. 병을 나타냄[現病品]/ 236

19. 거룩한 행[聖行品] ① /250

19. 거룩한 행 ②/278

19. 거룩한 행 ③/ 299

20. 청정한 행[梵行品]①/321

 

20. 청정한 행 ②./348

20. 청정한 행 ③/ 375

20. 청정한 행 ④/ 404

20. 청정한 행 ⑤ 18권  

 

21. 어린아기 행(嬰兒行品)/451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 ①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② 20권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③/ 502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 ④ 제22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 ⑤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 ⑥ 24권

 

23. 사자후보살품(師子吼菩薩品) ①

23. 사자후보살품 ②/ 26권

23. 사자후보살 ③/ 633

23. 사자후보살품 ④ /28권

23. 사자후보살품 ⑤/ 683

 

24. 가섭보살품 ②/ 32권

24. 가섭보살품 ③/ 799

24. 가섭보살품 ④/ 34권

 

25. 교진여품(憍陳如品) ①/ 853

25. 교진여품 ②/36권

 

대반열반경 제 36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5. 교진여품 ②

또 범지(梵志)가 있으니, 이름은 청정부(淸淨浮)라.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모든 중생들은 무슨 법을 알지 못하여서 세간이 항상하다,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아니함도 아니라 보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색을 알지 못하는 연고며, 나아가 식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느니라.”
범지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중생들이 무슨 법을 알면,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지 않겠나이까?”
“선남자여, 색을 아는 연고며, 나아가 식을 아는 연고로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세간이 항상함과 무상함을 분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선남자여, 만일 사람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이 사람이 항상하고 무상함을 아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고 보았나이다.”

[883 / 909] 쪽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보았는가?”
“세존이시여, 낡은 것은 무명과 애라 하옵고, 새것은 취(取)와 유(有)라 하나니, 사람이 만일 무명과 애를 멀리 여의고, 취와 유를 짓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진실하게 항상함과 무상함을 아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바른 법의 깨끗한 눈을 얻삽고 3보에 귀의하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제가 출가함을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이 범지가 출가하여 계를 받음을 허락하여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에게로 데리고 가서 갈마(羯磨)를 행하여 출가하게 하였더니, 보름 후에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독자(犢子) 범지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물으려는데 허락하겠습니까?”
여래는 잠자코 계셨고, 두 번째 세 번째도 그리하셨다.
독자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여, 저는 오래전부터 당신의 친구가 되었으며, 당신은 나와는 둘이 아닌데, 내가 묻는 것에 어찌 잠자코 계십니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범지는 성품이 선비답고 아담하며 착하고 질직(質直)하여서 매양 알기 위하여 묻는 것이요, 남을 시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 저가 물으면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독자여, 훌륭한 일이다. 의심나는 대로 물으면 내가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세상에 선(善)이 있는가?”
“그러니라, 범지여.”
“불선이 있는가?”
“그러니라, 범지여.”
“구담이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말하여서 저로 하여금 선과 불선의 법을 알게 하소서.”
“선남자여, 나는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하여 말할 수 있거니와, 이제 그대를

[884 / 909] 쪽
위하여 간략히 말하리라. 선남자여, 탐욕을 불선이라 하고, 탐욕에서 해탈함을 선이라 하며,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으니라. 살생을 불선이라 하고, 살생하지 않음을 선이라 하며, 나아가 삿된 소견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하여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으며, 또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노라. 만일 나의 제자가 이러한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 나아가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능히 분별하면, 이 사람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온갖 번뇌를 다하였고 온갖 유를 끊은 것이니라.”
“구담이여, 불법 가운데 한 비구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다한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비구들이 이러한 탐욕과 생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하였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는 한 비구니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한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비구니들이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와 한 비구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한 우바새(優婆塞)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고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새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오하분결(五下分結)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 한 우바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서 한 우바이(優婆夷)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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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이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5하분결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가 온갖 번뇌를 다하거나, 한 우바새, 한 우바이가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을 끊은 이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우바새로 5욕락을 받으면서 마음에 의심이 없는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새가 세 가지 결박을 끊고 수다원을 얻었으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을 얻었으며, 우바새와 같이 우바이도 그러하니라.”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비유를 말하려 하나이다.”
“좋은 말이다. 말하려거든 말하여 보아라.”
“세존이시여, 마치 난타(難陀)와 바난타(婆難陀) 용왕들이 큰비를 내리듯이 여래의 법비도 그와 같아서 우바새·우바이에게 평등하게 내리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들이 와서 출가하려 하오면, 여래께서는 몇 달 동안이나 시험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다 넉 달씩 시험하거니와, 한결같지는 아니하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한결같지 않사오면, 바라건대 대자대비로 제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이 때에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독자가 출가하여 계를 받는 것을 허락하라.”
그 때에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 가운데서 갈마를 하였더니, 보름이 찬 뒤에 수다원과를 얻었다. 수다원과를 얻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혜를 배워서 얻을 것은 내가 이미 얻었으니, 이제는 부처님을 뵈올 만하다.’
곧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예경을 마치고는 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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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배워서 얻을 모든 지혜를 제가 이미 얻었나이다.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다시 분별하여 말씀하시어, 저로 하여금 무학의 지혜를 얻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두 가지 법을 닦을지니, 하나는 사마타(奢摩他)요, 또 하나는 비바사나(毘婆舍那)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수다원과를 얻으려면, 이 두 법을 부지런히 닦아야 하고, 사다함과나 아나함과나 아라한과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4선정·4무량심·6신통·8배사(背捨)·8승처(勝處)·무쟁지(無諍智)·정지(頂智)·필경지(畢竟智)·4무애지(無礙智)·금강삼매·진지(盡智)·무생지(無生智)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10주지(住地)·무생법인(無生法忍)·무상법인(無相法忍)·불가사의법인(不可思議法忍)·성행(聖行)·범행(梵行)·천행(天行)·보살행·허공삼매·지인삼매(智印三昧)·공(空)삼매·무상(無相)삼매·무작(無作)삼매·지(地)삼매·불퇴(不退)삼매·수릉(首楞)삼매·금강삼매·아뇩다라삼먁삼보리·불행(佛行)을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독자가 듣고는 예배하고 나와서 사라숲 속에서 이 두 법을 닦더니,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 때에 또 한량없는 비구들이 부처님 계신 데 가려고 하는 것을 독자가 보고 물었다.
“큰스님들 어디로 가십니까?”
“부처님 계신 데 가렵니다.”
“큰스님들, 부처님께 가시거든 원컨대,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하여 반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어 주십시오.”
비구들은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독자 비구가 저희들에게 부탁하기를 ‘세존이시여,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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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라 하더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독자 범지가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너희들은 함께 가서 그 몸에 공양하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그 시신이 있는 데 가서 크게 공양을 베풀었다.
납의(納衣) 범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의 말과 같이 ‘한량없는 세상에서 선과 불선을 지었으므로 오는 세상에서 선한 몸과 불선한 몸을 얻는다’ 하였으나,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구담이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이 몸을 얻는다’ 하였으니, 번뇌로 인하여 몸을 얻는다면, 몸이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다면, 누가 지었으며 어디 머물러 있었던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면, 어떻게 번뇌로 인하여 얻는다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번뇌가 먼저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고, 몸이 먼저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고, 한꺼번에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니라. 먼저 있었다, 나중에 있었다, 한꺼번에 있었다 함이 모두 옳지 못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는 것이고,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 하오.
또 구담이여, 굳은 것은 땅의 성품이요, 젖는 것은 물의 성품이요, 더운 것은 불의 성품이요, 동함은 바람의 성품이요, 걸림이 없는 것은 허공의 성품이니, 이 5대의 성품은 인연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만일 세간에서 한 가지 법의 성품이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법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니라. 만일 한 가지 법이라도 인연으로 있는 것이라면, 무슨 연고로 5대의 성품은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는가.
구담이여, 중생들이 선한 몸으로나 불선한 몸으로나 해탈을 얻는 것은 모두 자기의 성품이요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법들이 제 성품으로 있는 것이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오.
구담이여, 세간의 법들이 일정하게 쓰는 곳이 있나니, 마치 목수는 말하기를 ‘이 나무로는 수레를 만들고, 이 나무로는 창호나 책상을 만들 것이라’ 하며, 금사(金師)가 만드는 것도 이마에 두르는 것은 화만[鬘]이라 하고, 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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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뜨리는 것은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은 팔찌라 하고, 손가락에 끼는 것은 가락지라 하듯이, 쓰는 곳이 일정한 연고로 결정된 성품이라 합니다. 구담이여,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5도의 성품이 있으므로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하여 인연을 따른다 하겠는가.”
구담이여, 모든 중생의 성품이 제각기 다르므로 온갖 가지 제 성품이라 합니다. 구담이여, 거북은 육지에 나서도 스스로 물에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젖을 먹을 수 있고, 물고기가 낚시의 미끼를 보고는 스스로 삼키며, 독사가 나서는 자연히 흙을 먹나니, 이런 것은 아무도 가르치는 이가 없는 것이며, 가시는 나면서 끝이 뾰족하고, 나는 새는 털빛이 제각기 다르나니, 세간의 중생들도 그러하여 영리한 이도 있고 둔한 이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이도 있고, 잘난 이도 있고 못난 이도 있으며,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나쁜 데 사는 이도 있나이다. 그러므로 온갖 법 중에는 제각기 제 성품이 있는 것이오.
또 구담이 말하기를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인연으로 생긴다’ 하며, 이 3독(毒)이 5진(塵)을 인연한다 하거니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합니다. 왜냐 하면 중생들이 잘 때에는 5진을 멀리 여의었지만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고, 태 속에 있을 때도 그러하며, 태에서 처음 나와서는 5진이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신선이나 성현들이 한적한 곳에 있을 때에는 5진이 없지만 그래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어떤 이는 5진으로 인하여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음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인연으로부터 온갖 법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제 성품이 있는 까닭입니다.
또 구담이여, 제가 보건대 세상 사람들이 5근을 구족하지 못하고도 재물이 많고 자재한 이가 있으며, 5근을 구족하고도 빈궁하고 하천하여 자재로 하지 못하고 남의 하인이 되는 이가 있으니, 만일 인연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이러합니까?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인연을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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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구담이여,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5진을 분별할 줄 모르면서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웃을 때에는 기쁜 줄 알고, 울 때에는 걱정하는 줄 아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모두 제 성품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또 구담이여, 세상 법이 두 가지니, 하나는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없는 것입니다. 있는 것은 허공이요, 없는 것은 토끼의 뿔이니, 이 두 가지 법에서 하나는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고, 또 하나는 없는 것이므로 인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이 5대의 성품과 같아서 모든 법도 그러하다 하거니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그대의 법에서 5대가 항상한 것이라면, 무슨 인연으로 온갖 법이 모두 항상하지 아니하며, 만일 세상 물건이 무상하다면, 5대의 성품은 무슨 인연으로 무상하지 아니한가. 만일 5대가 항상하다면, 세상 물건도 항상하여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5대의 성품은 제 성품이 있으므로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여 온갖 법으로 하여금 5대와 같게 하리라’ 함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쓰는 곳이 일정하므로 제 성품이 있다’는 것도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모두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 연고니라. 만일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면, 역시 인연으로부터 뜻을 얻어야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 하는가. 마치 이마 위에 있는 것을 화만이라 이름하고, 목에 있는 것을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을 팔찌라 하고, 수레에 있는 것을 바퀴라 하고, 초목에 불이 있는 것을 초목의 불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거니와, 선남자여, 나무가 처음 날 때에는 화살이나 창대의 성품이 없었지만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살을 만들고,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창대를 만드는 것이니,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거북은 육지에서 났으나 성품이 물로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먹을 수 있다 함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물에 들어가는 것이 인연이 아닐진댄 마찬가지 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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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어찌하여 불에는 들어가지 않는가. 송아지가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빨 수 있는 것이 인연이 아닐진댄 마찬가지 인연이 아닌데 어찌하여 뿔은 빨지 않는가. 선남자여, 만일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으므로 가르칠 필요도 없고 증장할 것도 없다’ 하는 것은,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지금 보건대 가르침이 있으며, 가르침으로 인하여 증장하나니, 그러므로 제 성품이 없음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바라문들이 마땅히 청정한 몸을 위하여 양을 잡아서 제사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일 몸을 위하여 제사한다면, 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간에서 말하는 법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으려 함이요, 둘은 짓는 때요, 셋은 지어 마친 때니라.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세상에 세 가지 말이 있겠는가. 세 가지 말이 있으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없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법이 각각 일정한 성품이 있을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사탕수수라는 한 물건이 무슨 연고로 즙이 되고, 꿀이 되고 얼음사탕[石蜜]이 되고 술이 되고 초[苦酒]가 되는가. 만일 한 가지 성품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여러 가지 맛이 되는가. 만일 한 물건 가운데서 이런 것들이 난다면, 모든 법은 일정하게 각각 한 성품이 있지 아니한 줄을 알 것이다.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성인이 무슨 연고로 사탕수수 즙이나 얼음사탕이나 흑설탕은 먹고, 술이었을 때에는 먹지 않다가, 초가 된 뒤에는 다시 먹는가. 그러므로 일정한 성품이 없는 줄을 알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인연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 하거니와, 어떻게 비유를 말하겠는가. 만일 비유할 것이 있다면,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며,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비유가 없음을 알지니라. 세간에 지혜 있는 이는 모두 비유를 말하는 터인즉,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으며 일정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몸이 먼저 있는가, 번뇌가 먼저 있는가’ 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내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고 말하였다면, 그대가 그렇게 문난할 수 있거니와, 그대도 나와 같아서 몸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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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있던 것이 아니거늘, 무슨 인연으로 그런 문난을 짓는가.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몸과 번뇌가 다 먼저 있던 것도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시에 있는 것이며, 일시에 있더라도 반드시 번뇌로 인하여 몸이 있는 것이요, 마침내 몸으로 인하여 번뇌가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대가 생각하기를, ‘마치 사람의 두 눈이 일시에 있던 것이요 서로 인한 것이 아니니, 왼 눈이 오른 눈을 기다리지 않았고, 오른 눈이 왼 눈을 기다리지 않은 것처럼, 번뇌와 몸도 그와 같다’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볼 때에는 심지와 광명이 비록 일시이지만, 광명이 심지로 인하여 있고 광명으로 인하여 심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몸이 먼저 있지 아니하였으므로 인이 없는 줄을 안다’ 하면,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몸보다 먼저는 인연이 없으므로 없다고 이름한다면, 그대도 온갖 법이 다 인연이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보지 못하였으므로 말하지 못한다 할진대, 지금 병(甁) 등이 인연으로 생긴 줄을 보거늘, 어찌하여 병과 같이 몸보다 먼저의 인연도 그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선남자여, 보거나 보지 않거나, 온갖 법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요, 제 성품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다 제 성품이 있고, 인연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왜 인연으로 5대를 말하는가. 이 5대의 성품이 곧 인연이니라. 선남자여, 5대의 인연이 비록 이러하지만 역시 모든 법이 다 5대의 인연과 같다고도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마치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출가한 이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지나니, 전다라들도 그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5대가 결정코 굳은 성품이 있다고 말하거니와, 나는 그 성품이 변하는 것이어서 일정하지 않다고 보느니라. 선남자여, 소랍(酥蠟)과 호교(胡膠)를 그대의 법에서는 지대라 하지만 이 지대[地]란 것이 일정치 아니하여 혹은 물과도 같고, 혹은 땅과도 같으므로 제 성품이 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백랍(白鑞)과 납과 땜납[錫]과 동과 철과 금과 은을 그대의 법에서는 화대[火]라 말하지만 이 화대가 네 가지 성품이 있으니, 흐를 때에는 물의 성품이요, 동할 때에는 바람의 성품이요, 더울 때에는 불의 성품이요, 굳을 때에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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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품이거늘, 어떻게 결정코 화대의 성품이라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물의 성품은 흐르는 것이라 하면서 물이 얼었을 때에도 땅이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물이라 한다면, 무슨 인연으로 파도가 동할 때를, 바람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만일 동하는 것을 바람이라 이름하지 않는다면, 얼었을 때도 물이라고 이름하지 말아야 할지니라. 만일 이 두 가지 뜻이 인연을 따르는 것이라 할진댄 무슨 연고로 온갖 법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선남자여, 만일 5근의 성품이 능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감촉하는 것이므로 모두 제 성품이요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 하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제 성품이란 성품은 변동할 수 없는 것이니, 만일 눈의 성품이 보는 것이라면 항상 보아야 할 것이요, 보는 때도 있고 보지 못할 때도 있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인연을 따라서 보는 것이요,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닌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함은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5진의 인연으로 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쁜 각관(覺觀)인 연고로 탐욕을 내고, 선한 각관인 연고로 해탈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안의 인연으로 탐욕과 해탈을 내고, 바깥 인연으로 증장케 하나니,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각각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모든 근을 구족하고도 재물이 없어 자재하지 못하기도 하고, 모든 근을 구족하지 못하였는데도 재물이 많고 자재하기도 한다’고 하며, 이런 것으로써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중생들이 업을 따라서 과보를 받거니와, 이 과보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에 받는 과보요, 둘은 다음 생에 받는 과보요, 셋은 후생에 받는 과보니라.
빈궁하거나 부자거나 근을 구족하였거나 구족하지 못한 것은 업이 각각 다른 까닭이니라.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근을 구족한 이가 마땅히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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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부유하고, 재물이 부유한 이는 마땅히 근을 구족할 것이나, 이제 그렇지 아니하므로 결정코 제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요,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5진의 인연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제 성품이라면 웃는 이는 항상 웃고, 우는 이는 항상 울어야 할 것이요, 한 번 웃고 한 번 울지 않을 것이니라. 만일 한 번 웃다가 한 번 운다면 이것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어서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범지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법이 인연으로 있다면, 이 몸은 무슨 인연이오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몸의 인연은 번뇌와 업이니라.”
“세존이시여, 이 몸이 번뇌와 업을 따른 것이라면, 이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나이까?”
“그러하니라.”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여 말씀하시어서 제가 듣고 이 자리에서 모두 끊게 하시옵소서.”
“선남자여, 만일 두 끝과 중간이 장애되지 않는 줄을 알면 이 사람은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았사옵고 바른 법의 눈을 얻었나이다.”
“너는 어떻게 알았느냐?”
“세존이시여, 두 끝은 색과 색의 해탈이옵고, 중간은 8정도(正道)이오며,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러하나이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선남자여, 두 끝을 잘 알아서 번뇌와 업을 끊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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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제가 출가하여 계를 받을 것을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 비구여” 하시니, 즉시에 삼계의 번뇌를 끊어 버리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 때에 다시 홍광(弘廣) 바라문이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지금 생각하는 것을 아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열반은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요, 곧은 것은 성인의 도니라.”
“구담이여, 무슨 인연으로 이런 말씀을 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대가 항상 생각하기를, ‘걸식은 항상하고 별청(別請)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자물쇠[戶鑰]요, 곧은 것은 제석의 짐대’라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열반이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이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요, 곧은 것은 8정도니라’라고 하였나니, 그대가 먼저 생각하던 것은 법에 맞지 않느니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이여, 진실로 제 마음을 아시나이다. 이 8정도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멸하게 할 수 있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께서는 이미 저의 마음을 아셨나이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은 무슨 연고로 잠자코 대답하지 않나이까?”
이 때에 교진여가 말하였다.
“대바라문이여, 만일 세상의 가가 있고 가가 없음을 물으면, 여래께서는 항상 잠자코 계시고 대답하지 않으시오. 8정도는 곧은 것이요, 열반은 항상한 것이니, 8정도를 닦으면 곧 멸진(滅盡)함을 얻으려니와, 닦지 아니하면 얻지 못하는 것이오. 대바라문이여, 마치 큰 성이 있는데, 사면 성벽에는 모두 구멍이 없고, 오직 한 문이 있으며, 그 문지기가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분별하여서 출입할 이는 출입하게 하고 거절할 이는 거절하는데, 출입하는 이가 얼마인지는 알지 못하거니와, 모든 출입하는 이는 반드시 이 문으로만 드나드는 것처럼, 선남자여, 여래도 그와 같나니, 성은 열반에 비유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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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은 8정도에 비유한 것이고, 문지기는 여래에게 비유한 것이오. 선남자여, 여래께서 지금 그대에게 멸진하고 멸진하지 아니함을 대답하지 아니하셨으나, 멸진하는 이는 모름지기 8정도를 닦아야 하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대덕 교진여여, 여래께서 미묘한 법을 잘 말씀하셨사오며, 저는 지금 성(城)을 알고 도(道)를 알며 스스로 문지기가 되려 하나이다.”
교진여가 말하였다.
“훌륭한 일이오. 그대 바라문이 능히 위없고 넓고 큰 마음을 내었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교진여여. 이 바라문은 오늘에만 이런 마음을 낸 것이 아니니라. 지나간 세상 한량없는 겁에 부처님 세존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보광명(普光明)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니라. 이 사람이 그 부처님 계신 곳에서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이 현겁에서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며, 오래전부터 법의 행상을 통달하여 분명하게 알았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현재 외도에 있으면서 알지 못하는 척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교진여여, 그대는 ‘훌륭한 일이오. 그대가 능히 이러한 큰 마음을 내었소’라고 칭찬할 것이 아니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아시면서도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아난 비구가 지금 어디 있느냐?”
교진여가 여쭈었다.
“아난 비구는 사라숲 밖에 있사온데, 이 대회에서 12유순이 되오며, 6만 4천억 마군의 요란함을 받나이다. 이 마군들은, 모두 여래의 형상처럼 몸을 변화하고서, 혹은 말하되, 온갖 법이 인연으로 생긴다 하고, 혹은 온갖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 하고, 혹은 온갖 인연이 다 항상한 법이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은 모두 무상하다 하고, 혹은 5음이 진실한 것이라 하고, 혹은 허망한 것이라 하며, 6입과 18계도 그러하다 하고, 혹은 12인연이 있다 하고, 혹은 네 가지 인연이라 하고, 혹은 모든 법이 환술 같고 변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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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고 아지랑이 같다 하고, 혹은 들음[聞]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생각함[思]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닦음[修]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부정관(不淨觀)하는 법을 말하고, 혹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법을 말하고, 혹은 4념처관(念處觀)을 말하고, 혹은 세 가지 관하는 뜻과 일곱 가지 방편을 말하고, 혹은 난법(煖法)·정법(頂法)·인법(忍法)·세제일법(世第一法)·학지(學地)·무학지(無學地)와 보살의 초주(初住)로부터 10주까지를 말하고, 혹은 공(空)·무상(無相)·무작(無作)을 말하고, 혹은 수다라(修多羅)·기야(祇夜)·비가라나(毗伽羅那)·가타(伽陀)·우타나(憂陀那)·니타나(尼陀那)·아파타나(阿波陀那)·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사타나(闍陀伽)·비불략(毗佛略)·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우바제사(優波提舍)를 말하고, 혹은 4념처·4정근(正勤)·4여의족(如意足)·5근·5력·7각분(覺分)·8성도를 말하고, 혹은 내공(內空)·외공(外空)·내외공(內外空)·유위공(有爲空)·무위공(無爲空)·무시공(無始空)·성공(性空)·원리공(遠離空)·산공(散空)·자상공(自相空)·무상공(無相空)·음공(陰空)·입공(入空)·계공(界空)·선공(善空)·불선공(不善空)·무기공(無記空)·보리공(菩提空)·도공(道空)·열반공(涅槃空)·행공(行空)·득공(得空)·제일의공(第一義空)·대공(大空)을 말하고, 혹은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몸에서 물과 불을 내되, 몸 위로는 물을 내고 몸 아래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몸 아래로는 물을 내고 몸 위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왼 옆구리가 아래 있고 오른 옆구리에서 물을 내며, 오른 옆구리가 아래 있고 왼 옆구리에서 물을 내기도 하며, 한 옆구리로는 천둥을 내고 한 옆구리로는 비를 내리며, 혹은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나타내고, 혹은 보살이 처음 탄생하여 일곱 걸음을 걷는 때와, 깊은 궁궐에서 5욕락을 받는 때와, 처음 출가하여 고행을 닦는 때와, 보리수 아래 나아가 삼매에 들던 때와 마(魔)의 군중을 항복받고 법수레를 굴릴 때와, 대신통을 보여 열반에 들 때를 나타내기도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비구는 이런 일들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러한 신통 변화는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인데, 누가 짓는 것인가. 석가세존께서 지으시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일어나려 하여도 말을 하려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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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 아난 비구는 마군의 그물에 들었으므로 생각하기를 ‘여러 부처님의 말씀이 각각 같지 아니하시니, 나는 이제 누구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은 지금 엄청난 고통을 받사오며, 아무리 여래를 생각하오나 구원할 이가 없나이다. 이런 인연으로 이 대중 가운데 오지 못하였나이다.”
이 때에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대중 속에 있는 모든 보살들은 이미 한 생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나아가 한량없는 생에서 보리의 마음을 내어 이미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사오며, 마음이 견고하여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까지를 구족하게 수행하여 공덕을 성취하였사오며, 오래전부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고 범행을 깨끗이 닦았으며, 물러나지 않는 보리의 마음을 얻었으며, 불퇴인(不退忍)과 불퇴전지(不退轉持)를 얻었으며, 여법인(如法忍)과 수릉엄(首楞嚴) 등의 한량없는 삼매를 얻었나이다.
이런 무리들이 대승 경전을 듣고도 의심을 내지 아니할 것이며, 3보가 한 가지 성품과 모양이어서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함을 잘 분별하여 해설할 것이며, 부사의한 것을 듣고도 놀라지 아니할 것이며, 가지가지 공(空)함을 듣고도 마음으로 무서워하지 아니하며, 모든 법의 성품을 분명하게 통달하고, 모든 12부경을 능히 지니고 뜻을 자세히 해설하며, 한량없는 부처님의 12부경이라도 능히 받아 지닐 것이옵거늘, 이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는 것이야 무엇이 근심되오리까? 무슨 인연으로 교진여에게 아난이 있는 데를 물으시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들으라. 선남자여, 내가 성불한 지 20년쯤 지나서 왕사성에 있었더니, 그 때에 내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이여, 이 대중 가운데서 누가 능히 나를 위하여 여래의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좌우에서 필요한 일을 공급하여 주며, 그러고도 자기의 좋은 이익을 잃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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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교진여가 대중 속에 있다가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제가 능히 12부경을 받아 지니며, 좌우에서 시봉하면서 저에게 이익될 일을 잃지 않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노라.
‘교진여여,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할 터인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겠느냐?’
이 때에 사리불이 또 말하였다.
‘제가 능히 부처님의 온갖 말씀을 받아 지니오며, 필요하신 대로 시중들겠사옵고, 저에게 이익된 일을 하는 것도 잃지 않겠나이다.’
나는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고자 하느냐?’
이리하여 나아가 5백 아라한들까지도 모두 이렇게 말하였으나, 나는 모두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 때에 목련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이제 5백 비구들이 시중하려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니, 부처님 뜻에 누구를 시중을 들게 하시려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문득 선정에 들어서 여래를 관하니, 마음이 아난에게 있는 것이, 마치 해가 처음으로 뜰 때에 빛이 서쪽 벽에 비치는 것과 같았다. 이런 것을 보고, 선정에서 일어나 교진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제가 여래를 뵈오니 아난으로 하여금 좌우에서 시중들게 하려 하더이다.’
그 때에 교진여는 5백 아라한과 함께 아난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이 이제 여래의 시중을 들어야 하겠으니, 이 일을 승낙하라.’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큰스님들이시여, 저는 참으로 여래의 시중을 들 수가 없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존종하시기 사자왕 같사옵고 용과 불과 같사온데, 저는 더럽고 미약하오니, 어떻게 책임을 감당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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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은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은 우리 말을 듣고, 여래를 모시면 큰 이익을 얻을 것이오.’
두 번 세 번 이렇게 말하였으나, 아난은 말하였다.
‘여러 큰스님들이여, 저는 큰 이익을 구함도 아니오며, 진실로 좌우에서 시중드는 일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이 때에 목련은 또 아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그대는 아직 모르는구나.’
‘큰스님, 바라건대 말씀하십시오.’
‘여래께서 저번에 대중 가운데서 시중들 사람을 구하시기에 5백 아라한이 모두 시중을 들려 하였으나, 여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였소. 내가 정에 들어서 여래의 뜻을 살펴뵈오니, 그대로 하여금 시자를 삼으려 하시는 것인데, 그대가 어찌하여 받들지 않는가?’
아난이 이 말을 듣고는 합장하고 꿇어앉아 말했다.
‘여러분 큰스님들, 일이 그러하다면, 여래 세존께서 저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시면, 승가의 명령을 받들어 좌우에서 모시겠나이다.’
목련이 말하였다.
‘세 가지 소원이 무엇인가?’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는 여래께서 설사 낡은 옷을 저에게 주셔도 제가 받잡지 아니함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둘은 여래께서 단월의 별청(別請)을 받게 될 때에 제가 따라가지 아니함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셋은 저의 출입이 일정한 시간이 없음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부처님께서 허락하시면 승가의 명령을 따르겠나이다.’
교진여 등 5백 비구는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아난 비구에게 권하였더니,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서 부처님께서 들어주시면 대중의 명을 따르겠노라 하였습니다.’
문수사리여, 나는 그 때에 아난을 이렇게 칭찬했노라.
‘훌륭하도다.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여 미리 혐의가 있을 것을 보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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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의식을 위하여 여래의 시중을 드는 것이냐?’ 하겠으므로, 먼저 낡은 옷이라도 받지 않고 별청에 따라가지 않겠다 한 것이니라. 교진여여,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였으니, 들고 나는 시간이 한정되면 4부 대중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널리 지을 수 없으므로, 출입하는 시간이 제한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니라.
교진여여, 내가 아난을 위하여 그 세 가지 일을 허락하여 그 소원을 따르리라.’
이 때에 목련은 아난에게 가서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말대로 세 가지 일을 여쭈었더니, 여래께서 대자비로 모두 들어 주셨느니라.’
아난이 대답하였다.
‘큰스님이여, 만일 부처님께서 허락하셨으면 가서 모시겠나이다.’
문수사리여, 아난이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에 여덟 가지 불가사의한 것을 구족하였느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나는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에 한 번도 나를 따라서 별청식(別請食)을 받지 아니한 것이고, 둘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한 번도 나의 옷을 받지 아니한 것이고, 셋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마침내 때 아닌 때에 나에게 온 적이 없는 것이고, 넷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번뇌를 구족하였으면서도 나를 따라서 임금과 찰리와 훌륭한 대갓집에 드나들면서 여러 여인과 천녀·용녀들을 보았지만 탐욕을 내지 아니한 것이고, 다섯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내가 말한 12부경을 받아 지니되, 한번 들은 것은 다시 묻지 아니하고도 병에 든 물을 다른 병에 붓듯이 한 것이다. 다만 한 번 물은 적이 있었으니, 선남자여, 유리(琉璃) 태자가 석씨들을 모두 죽이고 가비라성을 파괴할 때에 아난이 걱정하여 울면서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여래와 제가 함께 이 성에서 태어났고, 같은 석가 종족이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화평한 얼굴이 평상시와 같으신데, 저는 초조하나이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난아, 나는 공정(空定)을 닦았으므로 너와는 같지 아니하니라.’
3년이 지난 뒤에 다시 와서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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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번 가비라성에 있을 때에, 여래께서 공삼매를 닦으신다는 말씀을 들었사온데, 그 일이 진실하오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아난아, 그렇다. 네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여섯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얻지 못하였으나, 여래가 드는 선정을 항상 안 것이고, 일곱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소원대로 아는 지혜[願智]는 얻지 못하였으나, 여러 중생들이 여래에게 와서는, 현재에 네 가지 사문의 과를 얻기도 하고, 나중에 얻는 이도 있고, 사람의 몸을 얻을 이와 천인의 몸을 얻을 이들을 분명하게 안 것이고, 여덟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여래의 비밀한 말을 다 안 것이니라. 선남자여, 아난 비구가 이렇게 여덟 가지 부사의한 일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아는 광[多聞藏]이라고 칭찬하는 바니라.
선남자여, 아난 비구는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여 12부경을 갖추어 지녔으니, 무엇이 여덟인가. 하나는 신심이 견고한 것이고, 둘은 마음이 질직(質直)하고, 셋은 몸에 병고가 없는 것이고, 넷은 항상 부지런히 정진한 것이고, 다섯은 기억하는 마음을 구족한 것이고, 여섯은 교만한 마음이 없는 것이고, 일곱은 선정과 지혜를 성취한 것이고, 여덟은 들음을 따라 생기는 지혜를 구족한 것이니라.
문수사리여, 비바시(毘婆尸)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아숙가(阿叔迦)인데, 역시 이런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고, 시기(尸棄)여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차마가라(差摩迦羅)요, 비사부(毗舍浮)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우파선타(優波扇陀)요, 가라구촌타(迦羅鳩村馱)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발제(跋提)요, 가나함모니(迦那含牟尼)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소지(蘇坁)요, 가섭(迦葉)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섭파밀다(葉婆蜜多)인데, 모두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는데, 지금 나의 아난도 이와 같이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아는 광이라고 칭찬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이 대중 중에서 한량없는 보살들이 있으나, 이 보살들은 다 중대한 책임이 있나니, 이른바 대자대비니라. 이 대자대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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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으로 각각 일이 바쁘고 권속을 조복하고 몸을 장엄하여야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내가 열반한 뒤에 12부경을 선전하고 유통할 수 없으며, 어떤 보살이 혹시 연설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으리라.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는 나의 동생이고, 나를 시중한 지 20여 년에 들을 만한 법은 모두 구족하게 지니었으매, 마치 물을 부어 한 그릇에 담는 듯하느니라. 그래서 내가 지금 아난이 어디 있는가 물은 것은, 이 열반경을 받아 지니게 하려는 것이로다.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후에 아난 비구가 듣지 못한 것은 홍광(弘廣)보살이 유포할 것이요, 아난이 들은 것은 스스로 유통하리라.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가 지금 다른 곳에 있는데, 이 회상에서 12유순이 된다고 하며, 6만 4천억 마군에게 시달린다 하니, 그대는 그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라.
‘모든 마군들은 자세히 들으라. 여래께서 지금 대다라니(大陀羅尼)를 말씀하시나니, 모든 천인·용·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사람·사람 아닌 이[非人]와 산신·목신·수신·해신·가택신 들이 이 지명(持名)을 듣고는 공경하여 받아 지니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이 다라니는 10항하사 부처님 세존들이 함께 말씀하시는 것이어서 여인의 몸을 전환시킬 수 있으며, 스스로 숙명(宿命)을 알게 하느니라.
만일 다섯 가지 일을 받되, 하나는 범행이요, 둘은 어육을 끊는 것이고, 셋은 술을 끊는 것이고, 넷은 5신채(辛菜)를 끊는 것이고, 다섯은 고요한 데 있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를 받고 지성으로 이 다라니를 믿으며 읽고 외우고 쓰면, 이 사람은 즉시에 77억 더러운 몸을 초월하게 되느니라.'”
이 때에 세존께서 다라니를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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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다라니를 받잡고, 아난이 있는 곳에 이르러 마군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마와 권속들아,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다라니주를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들으라.”
마왕들이 이 다라니를 듣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마의 업을 버리고 아난을 놓았다. 문수사리가 아난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니, 아난은 부처님을 뵈옵고 지성으로 예경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분부하셨다.
“이 사라숲 밖에 수발타라는 범지가 있는데, 나이는 120세이다. 비록 5통(通)을 얻었으나 교만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을 얻고는 일체지(一切智)라는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는 생각을 일으켰느니라. 네가 거기 가서 수발타에게 말하였다.
‘여래가 세상에 나심이 우담바라꽃과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들리니, 만일 하려는 일이 있거든 이 때에 하고,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
아난아, 너의 말이면 그가 믿을 것이니, 왜냐 하면 네가 지나간 옛적 5백 세 동안에 수발타의 아들이 되었는데, 그 사랑하는 애정이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인연으로 너의 말을 믿을 것이니라.”
그 때에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수발타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마땅히 알라. 여래께서 세상에 나심이 우담바라꽃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드실 것이니, 하려는 일이 있거든 이 때에 하고,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아난이여. 제가 지금 여래께서 계신 곳에 가겠습니다.”
아난은 수발타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이 때에 수발타는 문안을 여쭙고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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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이여, 제가 지금 물으려 하오니, 제 뜻을 따라 대답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발타여, 지금이 바로 그 때니, 그대의 마음대로 물으라. 나는 방편으로 그대의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여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온갖 중생들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음은 모두 지난날에 지은 업의 인연이니, 만일 계행을 지니고 정진하여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받으면 본래의 업이 없어지고, 본래의 업이 다하면 모든 고통이 멸하고, 고통이 멸하면 곧 열반을 얻는다’ 하오니, 이 이치가 어떠하오니까?”
“선남자여,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런 사람에게 갈 것이요, 가서는 물을 것이다.
‘당신이 참으로 이런 말을 하였는가?’
그 사람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였소. 왜냐 하면 구담이여, 내가 보니 중생들이 나쁜 짓을 행하면서도 재물이 넉넉하고 몸이 자재한 이가 있으며, 또는 선한 일을 닦으면서도 빈궁하고 자재하지 못한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갖은 애를 써서 재물을 구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구하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얻는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을 하지 아니하여도 도리어 단명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살생을 좋아하여도 장수하는 이가 있으며, 또 어떤 이는 범행을 깨끗이 닦고 정진하며, 계행을 지니면서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얻지 못하는 이도 있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중생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은 다 지난날의 본래 업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수발타여, 나는 다시 묻을 것이다.
‘당신은 참으로 과거의 업을 보았는가? 만일 과거의 업이 있다면 얼마나 되는가. 현재의 고행으로 얼마나 깨뜨릴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하고 다하지 못함을 알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한다면 온갖 것이 다하느냐?’
저 사람이 ‘나는 진실로 알지 못하노라’라고 대답하면,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비유를 말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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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몸에 독한 화살을 맞았을 때에 집안 권속들이 의사를 청하여 살을 뽑게 하였고, 살을 뽑은 후에 몸이 편안해졌다면 10년 후에도 이 사람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오. 이 의사가 나의 독한 살을 뽑고 약을 붙여 주었으므로 나의 살 맞은 자리가 나아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당신은 과거의 본래 업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현재의 고행으로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아는가?’
저가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당신도 지금 과거의 본래 업이 있다고 하면서, 무슨 연고로 나의 과거 업을 책망하는가? 구담의 경전에서도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호화롭게 자재함을 보거든, 이 사람은 지난 세상에서 보시하기를 좋아한 줄을 알라 하였으니, 이런 것이 과거의 업이 아닌가?’ 하면,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하리라.
‘그대여, 그렇게 아는 것은 비겨서 아는 것[比知]이요, 참으로 아는 것[眞知]이라 하지 않느니라. 나의 불법에는 혹은 인으로 말미암아 과를 알기도 하고, 혹은 과를 따라서 인을 알기도 하는 것이며, 나의 불법 중에는 과거의 업도 있고 현재의 업도 있거니와, 그대는 그렇지 아니하여 오직 과거의 업뿐이요 현재의 업은 없으며, 그대들의 법에는 방편을 따라서 업을 끊지 않거니와, 나의 법은 그렇지 아니하며, 방편으로 끊느니라. 그대는 업이 다하면 곧 괴로움이 다한다 하거니와, 나는 그렇지 아니하여 번뇌가 다하여야 업과 고가 다한다 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지금 그대의 과거의 업을 책망하는 것이라.’
저 사람이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나는 실로 알지 못하거니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요, 스승이 이런 말을 한 것이므로 나는 허물이 없노라’ 하면, 나는, ‘그대의 스승이 누구냐?’ 하겠고, 저가 대답하기를 ‘부란나요’ 하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은 과거의 업을 아느냐고 낱낱이 묻지 않았느냐. 그대의 스승이 만일 나는 알지 못하노라 한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의 말을 믿으며, 만일 내가 아노라 하거든, 다시 묻기를 (하품 고[下苦]의 인연으로 중품과 상품의 고도 받나이까? 중품 고의 인연으로 하품과 상품의 고도 받나이까? 상품 고의 인연으로 중품과 하품의 고도 받나이까?) 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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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아니라 하거든, 다시 묻기를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는 오직 과거의 업뿐이요, 현재가 아니라고 하나이까?) 할 것이며, 또 묻기를 (이 현재의 괴로움이 과거에 있었나이까? 만일 과거에 있었다면, 과거의 업은 다 없어졌을 것이요, 만일 다 없어졌다면, 어찌하여 또 오늘의 몸을 받나이까? 만일 과거에는 없었고 현재에만 있다면, 어찌하여 중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과거의 업이라 하나이까?) 할 것이니라.
그대여, 만일 현재의 고행이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안다면, 현재의 고행은 또 무엇으로 깨뜨리겠는가. 만일 깨뜨리지 못한다면 괴로움이 항상할 것이요, 괴로움이 만일 항상하다면, 어떻게 괴로움에서 해탈함을 얻는다 하겠는가. 만일 다른 행이 고행을 깨뜨릴수 있다면 과거에 이미 다하였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괴로움이 있는가.
그대여, 이런 고행은 즐거운 업으로 하여금 괴로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또 괴로운 업으로 하여금 즐거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업으로 하여금 받지 않는 과를 짓게 할 수 있는가. 현재의 업보로 하여금 다음 생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다음 생의 업보로 하여금 현재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업보로 하여금 없는 보[無報]를 짓게 할 수 있는가. 결정된 보로 없는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없는 보로 결정된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할 것이니라.’
저가 만일 ‘구담이여, 그러할 수가 없노라’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여, 만일 그러할 수 없다면, 무슨 인연으로 이 고행을 받는가. 그대는 결정코 과거의 업과 현재의 인연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할지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업을 내고, 업으로 인하여 보를 받는다고 했느니라. 그대여, 모든 중생이 과거의 업이 있고, 현재의 인이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중생이 비록 과거에 장수할 업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현재에 음식의 인연을 힘입어야 하느니라.
그대가 만일 말하기를, 중생이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음이 결정코 과거의 본래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는다 하면, 그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대여, 마치 어떤 사람이 왕을 위하여 원수를 없애고, 그 인연으로 재물을 많이 받았다면, 이 재물로 인하여 현재의 즐거움을 받는 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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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 이런 사람은 현재에 즐거운 인을 짓고, 현재에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또 어떤 사람이 왕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고, 그 인연으로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이 사람은 현재에 괴로운 인을 짓고, 현재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그대여, 모든 중생들이 현재에 4대(大)와 시절과 토지와 인민들로 인하여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중생이 모두 과거의 본업만으로 인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였노라.
만일 업을 끊는 인연의 힘으로 해탈을 얻는다 할진대, 모든 성인이 해탈을 얻지 못함은 무슨 까닭인가. 모든 중생의 과거의 본래 업이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성인이 도를 닦을 때에, 이 도가 능히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업을 막는다 했느니라. 만일 고행을 받는 것으로 도를 얻는다 하면, 온갖 축생들이 다 도를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할 것이요, 몸을 조복할 것이 아니니라. 이런 인연으로 나의 경전에서 말하기를, 숲을 찍을 것이언정 나무를 찍을 것이 아니라 하였으니, 왜냐 하면 숲으로부터 공포가 생길지언정 나무로부터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몸을 조복하려면 먼저 마음을 조복할 것이라 하나니, 마음은 숲에 비유한 것이고, 몸은 나무에 비유한 것이니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나는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나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마음을 먼저 조복하였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먼저 생각하오니, 욕계는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지 아니하옵기에 색계가 항상하고 즐겁고 깨끗한 줄을 관찰하였사오며, 이런 관찰을 하여 마치니, 욕계의 결박이 끊어졌고 색처(色處)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 이름하였나이다. 다음에 또 색계를 관찰하니, 색계가 무상하여 등창과 같고 창질과 같고 독약과 같고 화살과 같사오며, 무색계가 항상하고 청정하고 고요하더이다. 이렇게 관찰하여 마치니, 색계의 결박이 다하였고 무색계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 이름하였나이다. 다음에 또 생각[想]을 관찰하니, 곧 무상하고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더이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비상비비상처를 얻었사오니, 이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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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상처는 곧 일체지며 고요하며 청정하여 타락함이 없고,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오매, 그러므로 제가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가 어찌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다 하겠느냐. 그대가 얻은 비상비비상정도 오히려 생각이라 이름하는 것이요, 열반이라야 생각이 없는 것이거늘, 그대가 어떻게 열반을 얻었다 말하겠느냐. 선남자여, 그대가 먼저는 능히 거친 생각을 꾸짖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미세한 생각에 애착하느냐. 이 비상비비상처를 꾸짖을 줄을 알지 못하므로, 생각을 이름하여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스승인 울두람불은 영리하고 총명하지만 그래도 이 비상비비상처를 끊지 못하고 나쁜 몸을 받았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일까 보냐.”
“세존이시여, 어찌하오면 모든 유를 능히 끊겠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실상(實相)을 관찰하면, 이 사람이 능히 모든 유를 끊게 되느니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실상이라 이름하나이까?”
“선남자여, 모양이 없는 모양[無相之相]을 실상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모양이 없는 모양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법이 제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고, 저와 남의 모양도 없고 인이 없는 모양도 없으며, 짓는 모양도 없고 받는 모양도 없고, 짓는 이의 모양도 없고 받는 이의 모양도 없으며, 법의 모양도 없고 법 아닌 모양도 없으며, 남녀 모양도 없고 장정 모양도 없으며, 티끌 모양도 없고 시절 모양도 없으며, 자기를 위하는 모양도 없고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고, 자기와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으며, 있는 모양도 없고 없는 모양도 없으며, 나는 모양도 없고 내는 이 모양도 없으며, 인(因) 모양도 없고 인의 원인 모양도 없고, 과(果) 모양도 없고 과의 결과 모양도 없고, 낮과 밤의 모양도 없고 어둡고 밝은 모양도 없으며, 보는 모양도 없고 보는 이 모양도 없으며, 듣는 모양도 없고 듣는 이 모양도 없으며, 깨닫는 모양도 없고 깨닫는 이 모양도 없으며, 보리의 모양도 없고 보리를 얻은 이 모양도 없으며, 업 모양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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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주인 모양도 없으며, 번뇌 모양도 없고 번뇌 주인 모양도 없나니, 선남자여, 이런 모양들이 멸한 곳을 진실한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이 모두 헛된 가짜이거든, 그것이 없어진 데를 참이라 하나니 이것을 실상(實相)이라 하고, 법계(法界)라 하고, 필경지(畢竟智)라 하고,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고,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실상·법계·필경지·제일의제·제일의공을 하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성문보리(聲聞菩提)를 얻고, 중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연각보리(緣覺菩提)를 얻고, 상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느니라.”
이 법을 연설할 때에, 10천 보살이 1생에 실상을 얻었고, 1만 5천 보살이 2생에 법계를 얻었고, 2만 5천 보살이 필경지를 얻었고, 3만 5천 보살이 제일의제를 깨달았으니, 이 제일의제를 제일의공이라고도 하고, 수릉엄삼매라고도 하느니라. 4만 5천 보살이 허공삼매를 얻었으니, 이 허공삼매를 광대(廣大)삼매라고도 하고, 지인(智印)삼매라고도 하느니라. 5만 5천 보살이 불퇴인(不退忍)을 얻었으니, 이 불퇴인을 여법인(如法忍)이라고도 하고, 여법계(如法界)라고도 하느니라. 6만 5천 보살이 다라니를 얻었으니, 이 다라니를 대염심(大念心)이라고도 하고, 걸림없는 지혜라고도 하느니라. 7만 5천 보살이 사자후(師子吼)삼매를 얻었으니, 이 사자후삼매를 금강삼매라고도 하고, 오지인(五智印)삼매라고도 하느니라. 8만 5천 보살이 평등삼매를 얻었으니, 이 평등삼매를 대자대비라고도 하느니라.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연각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성문의 마음을 내었고, 세간의 여자와 천상의 여자 2만억 사람들이 현재에서 여인의 몸을 변하여 남자의 몸을 얻었고, 수발타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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