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 제 32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4. 가섭보살품 ②

“선남자여, 이러한 쟁론[諍訟]은 부처님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이 알 바가 아니니, 어떤 사람이 여기에 의심을 내더라도 오히려 한량없는 번뇌의 수미산 같은 것을 끊으려니와, 이 가운데 결정을 내는 이는 집착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집착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런 사람이 다른 이에게서 듣거나 스스로 경을 보거나 다른 이가 짐짓 가르칠 때에, 그런 일에 놓아 버리지 못하는 것을 집착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집착을 선이라 하오리까, 선이 아니라 하오리까?”
“선남자여, 이런 집착은 선이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능히 의심을 깨뜨리지 못하는 연고니라.”
“세존이시여, 이런 사람이 본래 스스로 의심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의심을 깨뜨리지 못한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대개 의심하지 않는 것이 곧 의심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수다원이 3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면, 이 사람도 집착이라 이름하며, 의심이라 이름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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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그것은 결정함이라 이름할 것이요, 의심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먼저 인수(人樹)를 보고, 그 뒤에 밤에 다니다가 우죽(우두머리 가지)이 무지러진 나무를 보았으면, 의심하기를 사람인가 나무인가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먼저 비구와 범지를 보고 뒤에 길을 가다가 멀리서 비구를 보았으면, 의심하기를 사문인가 범지인가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먼저 소와 물소를 보고, 뒤에 멀리서 소를 보았으면, 의심하기를 저것이 소인가 물소인가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이 먼저 두 물건을 보았으면, 뒤에 의심을 내나니, 왜냐 하면 마음에 분명치 않은 연고니라. 나는 수다원이 3악도에 떨어지기도 하고, 떨어지지 않기도 한다고 말하지 않았거늘,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의심을 냈는가?”
가섭보살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본 뒤에야 의심한다’ 하옵거니와, 어떤 사람은 두 가지 물건을 보지 않고도 의심을 내는 때가 있사오니, 무엇이냐 하면 열반이니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이가 길가다가 흐린 물을 만나면 미리 보지 않았건만 역시 의심하기를 이 물이 깊은가 얕은가 하는 것 같사오니, 이 사람이 일찍 보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의심을 내나이까?”
“선남자여, 열반은 괴로움을 끊은 것이요, 열반 아닌 것은 괴로움이니라. 모든 중생이 두 가지 있음을 보았나니 괴로움과 괴롭지 않음을 보았느니라. 괴로움과 괴롭지 않음이라 함은 곧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성냄과 기쁨, 병남과 평안, 늙음과 건강함, 속박과 해탈, 사람과 이별함과 원수를 만남이니라. 중생이 보고는 의심하기를, 필경에 이런 괴로움을 멀리 여의는 수가 있을까 없을까 하나니, 그러므로 중생이 열반에 대하여 의심을 내느니라. 그대의 생각에 그 사람이 먼저 흐린 물을 보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의심하는가 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 사람이 먼저 다른 데서 보았으므로, 아직 이르지 않았던 여기에서 의심을 내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먼저 깊고 얕은 데를 보았을 때에는 의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어째서 의심을 내나이까?”
“선남자여, 본래 다녀 보지 않았으므로 의심을 내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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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를 분명히 알지 못하므로 의심한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의심이 곧 집착이요, 집착이 곧 의심이라 함은, 어떤 이를 가리키나이까?”
“선남자여, 선근을 끊은 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무리들이 선근을 끊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총명하고 잔꾀 있고 근성이 영리하고 잘 분별하면서 선지식을 멀리 떠나고, 바른 법을 듣지 않고, 잘 생각하지 않고, 법답게 머물지 않으면, 이런 사람이 선근을 끊느니라. 이 네 가지를 떠나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보시하는 물건이 없나니, 왜냐 하면 보시한다는 것은 재물을 버리는 것이매, 만일 보시한 과보가 있다면, 시주는 항상 빈궁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종자로부터 생긴 과보[子果]와 같은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나니,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것이 곧 선근을 끊는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시주와 받는 이와 재물의 세 가지가 무상하여 머물지 않는 것이니, 만일 머물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시주라 받는 이라 재물이라고 말하겠는가. 만일 받는 이가 없다면 어떻게 과보를 얻으리요. 이런 이치로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나니,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줄을 알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시주가 보시할 때에 다섯 가지로 보시하거든, 받는 이가 받고는 혹은 선한 일을 짓고, 혹은 선하지 아니한 일을 짓거니와 시주는 선한 과보나 선하지 않은 과보를 얻지 않느니라. 마치 세간법이 씨로부터 열매가 생기고, 열매는 다시 씨를 내는 것과 같나니, 인은 시주요, 과는 받는 이지만 받는 이가 능히 선한 법과 선하지 않은 법으로써 시주로 하여금 얻게 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런 이치로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나니,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줄을 알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보시하는 물건이 없나니, 왜냐 하면 보시하는 물건은 무기(無記)라, 무기라면 어떻게 선한 과보를 얻으리요. 선과 악의 과보가 없으면 곧 무기요, 재물이 무기라면 선과 악의 과보가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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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없고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느니라.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줄을 알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보시한다는 것은 뜻이니, 만일 뜻이라면 볼 것도 없고 상대도 없으므로 색법(色法)이 아니리니, 색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보시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보시도 없고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느니라.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시주가 만일 불상(佛像)이나 천상(天像)이나 목숨을 마친 부모를 위하여 보시를 행한다면 곧 받을 이가 없고, 만일 받을 이가 없다면 마땅히 과보가 없는 것이며, 만일 과보가 없으면 이것은 인이 없는 것이니, 만일 인이 없으면 이는 과가 없음이라 말하느니라.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줄을 알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나니, 만일 부모가 중생의 인이어서 중생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마땅히 항상 낳아서 끊어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인이 항상 있는 연고니라. 그러나 항상 낳는 것이 아니므로 마땅히 부모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나니, 왜냐 하면 만일 중생의 몸이 부모를 인하여 있는 것이라면, 한 사람이 남근(男根)과 여근(女根)을 갖추어야 할 것이건만, 그러나 갖춘 이가 없으니, 중생은 부모를 인한 것이 아님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부모를 인하여 중생을 낳는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지금 보건대 중생이 부모와 같지 아니하니, 몸과 빛깔과 마음과 위의(威儀)와 행동 등이니라. 그러므로 부모가 중생의 인이 아니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세간에 네 가지 없는 것이 있나니, 하나는 생기지 않음을 없다 하나니, 흙반죽[泥團] 때에는 질그릇의 작용이 없음과 같고, 둘은 멸한 뒤에는 없다 하나니 질그릇이 깨어진 뒤에는 없다는 것과 같고, 셋은 각각 다른 것을 제각기 없다 하나니, 소에는 말[牛]이 없고 말에는 소가 없음과 같고, 넷은 끝까지 아주 없음이니, 토끼의 뿔, 거북의 털과 같음이니라. 중생의 부모도 그러하여 이 네 가지 없는 것과 같으며, 만일 부모가 중생의 인이라면 부모가 죽을 때에 자식은 반드시 죽지 않아야 할 것이니, 그러므로 부모는 중생의 인이 아니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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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생각하기를, 만일 부모가 중생의 인이라면 마땅히 부모를 인하여 항상 중생을 낳아야 할 것이건만, 그러나 다시 화생(化生)과 습생(濕生)도 있으니, 그러므로 부모를 인하여 중생을 낳는 것이 아니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어떤 중생은 부모를 인하여 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공작이 천둥 소리를 듣고 새끼를 배는 것과, 청작(靑雀)이 수컷의 눈물을 먹고 새끼를 배는 것과, 명명조(命命鳥)가 수컷이 춤추는 것을 보고 새끼를 배는 것과 같다 하느니라. 이런 생각을 할 때에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이 사람은 선근을 끊는 줄을 알지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세간에 선과 악의 과보가 없나니, 왜냐 하면 어떤 중생들은 열 가지 선한 법을 갖추고, 보시하기를 좋아하면 좋아하며 공덕을 부지런히 닦지만 이 사람도 병이 들어서 일찍 죽기도 하고, 재물이 손실되어 고생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열 가지 나쁜 짓을 하고 간탐하고 질투하고 게을러서 선한 일을 행하지 않지만, 몸이 편안하고 무병하고 장수하며 재물이 많고 걱정이 없나니, 그러므로 선과 악의 과보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나도 일찍 성인의 말씀을 들으니, 어떤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고도 죽어서 3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있고, 어떤 사람은 나쁜 일을 행하고도 죽어서 인간에나 천상에 나는 일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선과 악의 과보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성인들이 두 가지 말이 있으니, 혹은 살생을 하고도 선한 과보를 얻는다 하고, 혹은 살생을 하면 나쁜 과보를 얻는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도 일정하지 않음을 알 것이니, 성인이 일정치 않다면 내가 어떻게 일정하겠는가. 그러므로 선과 악의 과보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세간에 성인이 없나니, 왜냐 하면 만일 성인이라면 마땅히 바른 도를 얻는다 할진대, 모든 중생이 번뇌를 구족하였을 때에 바른 도를 닦는 이는, 이 사람은 바른 도와 번뇌가 동시에 갖추어져 있을 것이요, 만일 동시에 갖추어져 있다면 바른 도가 번뇌를 깨뜨리지 못할 것을 알 것이며, 만일 번뇌가 없으면서 바른 도를 닦는다면 이런 도는 무슨 작용을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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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가. 그러므로 번뇌를 갖추었다면 바른 도가 깨뜨리지 못하고, 번뇌를 갖추지 않았다면 바른 도가 소용이 없으리니, 그러기에 모든 세간에 성인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무명(無明)은 행의 반연이 되고, 나아가 나는 것[生]은 늙고 죽음의 반연이 되나니, 이 12인연은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가졌고, 8성도가 그 성품이 평등함도 이와 같을 터인즉, 한 사람이 도를 얻을 때에 모든 사람이 마땅히 얻을 것이요, 한 사람이 닦을 때에도 모든 사람의 괴로움이 멸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번뇌가 평등한 까닭이니라. 그러나 이제 그렇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바른 도가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성인들도 모두 범부와 같은 법이 있나니, 마시고 먹고 가고 서고 앉고 눕고 자고 웃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덥고 근심하고 두려워함이니라. 이런 일이 범부와 같을진대, 성인이 성스런 도를 얻지 못한 것임을 알 것이요, 만일 성스런 도를 얻었으면 마땅히 이런 일을 끊었을 것인데, 이런 일을 끊지 못하였으니 바른 도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성인도 몸이 있어 5욕락을 받기도 하고, 또 사람을 꾸짖고 때리며, 질투하고 교만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선한 업과 악한 업을 짓나니, 이런 인연으로 성인이 없음을 알 것이며, 만일 도가 있다면, 이런 일을 끊을 터인데, 이런 일을 끊지 못하니 도가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가엾이 여기는 생각이 많은 이를 성인이라 이름하거니와, 무슨 인연으로 성인이라 하는가. 도의 인연으로 성인이라 하는 것이다. 도의 성품이 가엾이 여김이라면, 마땅히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길 것이니, 반드시 닦은 뒤에야 얻어질 것이 아니며, 만일 가엾게 여기는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성인이 성스런 도를 얻고야 가엾이 여기느냐. 그러므로 세상에 성인의 도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4대는 인으로부터 나지 아니하고 중생에게 평등하게 4대의 성품이 있으므로, 중생의 여기에는 마땅히 이르고, 저기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느니라. 만일 성인의 도가 있다면 성품이 그와 같을 것인데 이제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으로 세상에 성인이 없음을 알겠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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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만일 여러 성인에게 한 열반이 있다면 이것은 성인이 없다는 것임을 알지니, 왜냐 하면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항상 머무는 법은 얻을 수 없으며, 취하고 버리지 못할 것이요, 만일 여러 성인에게 열반이 여럿이라면 이것은 무상한 것이니, 왜냐 하면 셀 수 있는 법인 연고니라. 열반이 하나라면 한 사람이 얻었을 때에 모든 사람이 얻을 것이며, 열반이 많다면 이는 끝이 있는 것이요, 끝이 있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열반의 자체는 하나이나 해탈이 많은 것이니, 마치 일산은 하나이나 아설(牙舌)이 많은 것 같다 하면,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하나 하나씩 얻는 것은 모두가 얻는 것이 아니며, 또 끝이 있으므로 무상할 것이요, 만일 무상하다면 어떻게 열반이라 이름하며, 열반이 만일 없다면 누가 성인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이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성인의 도는 인연으로 얻을 것이 아니며, 만일 성인의 도가 인연으로 얻을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지 못하는가. 만일 모든 사람이 성인이 아니라면, 이는 성인과 성인의 도가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성인의 바른 소견이라고 말하는 것이 두 인연이 있으니, 하나는 다른 이에게서 법을 들음이요, 둘은 안으로 스스로 생각함이니라. 이 두 인연이 만일 인연으로부터 생긴다면, 생길 그것도 또 인연으로부터 생길 것이니, 그렇다면 점점 미루어서 끝이 없는 허물[無窮過]이 있을 것이며, 만일 이 두 가지가 인연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면, 모든 중생들은 어찌하여 얻지 못하는가. 이런 관찰을 할 때에 능히 선근을 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이렇게 인연이 없고 과가 없음을 깊이 본다면, 이 사람은 신(信) 등의 5근을 끊음이니라. 선남자여, 선근을 끊는 사람은 하열(下劣)하고 우둔(愚鈍)한 사람이 아니며, 천상이나 3악도의 중생도 아니니, 승가를 파괴[破僧]하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런 사람은 어느 때에 선근이 도로 생겨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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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이 사람은 두 때에 선근이 도로 생기나니, 처음 지옥에 들어갈 때와 지옥에서 나올 때니라. 선남자여, 선에 세 가지가 있으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니라. 과거인 것은 그 성품이 스스로 멸하는 것이며, 인은 비록 멸하였지만 과보가 성숙하지 못하였으므로 과거의 과보를 끊는다고 이름하지 않거니와, 3세의 인을 끊으므로 끊었다 이름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3세의 인을 끊으므로 선근을 끊는다 이름하오면, 선근을 끊은 사람도 불성이 있을 것이니, 이 불성은 과거라 하오리까, 현재라 하오리까, 미래라 하오리까? 3세에 두루하였다 하오리까? 만일 과거라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오리까? 불성은 항상한 것이오매 과거가 아닌 줄을 알겠나이다. 만일 미래라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오며, 무슨 연고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이 반드시 결정코 얻으리라 하였나이까? 만일 결정코 얻는다면 어찌하여 끊었다 하나이까? 만일 현재라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오며, 무슨 연고로 반드시 결정코 본다고 하였나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성이 여섯 가지니, 항상함과 참됨과 진실함과 선함과 깨끗함과 볼 수 있음이라 하였나이다. 만일 선근을 끊었어도 불성이 있다면, 선근을 끊었다고 이름할 수 없으며, 만일 불성이 없다면 어찌하여 다시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 하나이까? 만일 불성이 있기도 하고 끊기도 한다면,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항상하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여, 여래 세존이 중생을 위하여 네 가지로 대답하였으니, 하나는 결정한 대답이요, 둘은 분별하는 대답이요, 셋은 물음을 따르는 대답이요, 넷은 두는 대답[置答]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결정한 대답이라 하는가. 만일 묻기를 ‘악한 업이 선한 과보를 얻는가? 불선한 과보를 얻는가?’ 하면, 이것은 마땅히 불선한 과보를 얻는다고 결정하여 대답할 것이며, 선한 업도 이와 같으니라. 만일 묻기를 ‘여래께서는 일체지(一切智)신가?’ 하면, 이것은 마땅히 일체지라고 결정하여 대답할 것이니라. 만일 묻기를 ‘부처님 법이 청정하냐?’ 하면, 이것은 반드시 청정하다고 결정하여 대답할 것이니라. 만일 묻기를 ‘여래의 제자는 법답게 머무느냐[如法住]?’ 하면, 이것은 마땅히 법답게 머문다고 결정하여 대답할 것이니, 이런 것을 결정한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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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하는가. 내가 4진제법(眞諦法)을 말하는데, 무엇이 네 가지인가. 고·집·멸·도니라. 어떤 것을 고제라 하는가. 여덟 가지 괴로움이 있으므로 고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집제라 하는가. 5음의 인이므로 집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멸제라 하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끝까지 없어졌으므로 멸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도제라 하는가. 37조도법(助道法)을 도제(道諦)라 함과 같은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물음을 따르는 대딥이라 하는가. 내가 온갖 법이 무상하다 말하였는데, 다시 묻기를 ‘여래 세존께서 무슨 법을 위하여서 무상하다 말씀하시나이까?’ 하면, 대답하되 ‘여래는 함이 있는 법을 위하여 무상하다 말한다’ 하나니, 내가 없다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내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저것을 태운다’ 하였는데, 또 묻기를 ‘여래 세존께서는 무슨 법을 위하므로 온갖 것이 태운다 하나이까?’ 하매, 대답하기를 ‘여래는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을 위하여서 온갖 것이 태운다 하느니라’ 한 것과 같은 것이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10력(力), 4무소외(無所畏), 대자대비, 3념처(念處), 수릉엄(首楞嚴) 등 8만억 삼매문, 32상(相), 80종호(種好), 5지인(智印) 등 3만 5천 삼매문, 금강정(金剛定) 등 4천 2백 삼매문, 방편삼매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것 등의 법은, 이것이 부처님의 불성이니라. 이와 같은 불성은 일곱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항상함[常], 둘은 나인 것[我], 셋은 즐거움[樂], 넷은 깨끗함[淨], 다섯은 참됨[眞], 여섯은 진실함[實], 일곱은 선함[善]이니라. 이런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후신(後身) 보살의 불성은 여섯 가지니, 항상함·깨끗함·참됨·진실함·선한 것·조금 보는 것[少見]이라,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대가 먼저 묻기를, 선근을 끊은 사람이 불성이 있느냐?’ 한 것은, 이 사람은 여래의 불성도 있고, 후신 보살의 불성도 있거니와, 이 두 불성은 미래를 장애하는 연고로 없다고 이름하고, 필경에는 얻는 연고로 있다고 이름한다 하나니,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여래의 불성은 과거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요, 후신 보살의 불성은 현재며 미래니 조금 볼 수 있으므로 현재라 하고, 구족하게 보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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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므로 미래라 하느니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때의 불성은, 인인 연고로 또한 과거요 현재요 미래거니와 과(果)는 그렇지 아니하매, 이것은 3세이기도 하고 3세가 아니기도 하니라. 후신 보살의 불성은 인인 연고로 또한 과거요 현재요 미래이며, 과도 그와 같으니라. 이런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9주(住) 보살의 불성은 여섯 가지니, 항상함·선함·참됨·진실함·깨끗함·볼 수 있음이며, 불성이 인인 연고로 또한 과거요 현재요 미래며, 과도 그러하니,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8주 보살에서 6주 보살까지의 불성은 다섯 가지니, 참됨·진실함·깨끗함·선함·볼 수 있음이며, 불성이 인인 연고로 역시 과거요 현재요 미래며, 과도 그러하니,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5주 보살에서 초주(初住) 보살까지의 불성은 다섯 가지니, 참됨·진실함·깨끗함·볼 수 있음·선과 불선이니라. 이 다섯 가지 불성과 여섯 가지 불성과 일곱 가지 불성은, 선근을 끊은 사람이 마땅히 얻을 것이므로 있다고 이름할 수 있나니,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만일 말하되 선근을 끊은 이는 결정코 불성이 있다, 결정코 불성이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두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듣기로는 대답하지 아니함을 두는 대답이라 이름한다 하였사온데, 여래께서 지금은 무슨 인연으로 대답하시면서 두는 대답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나는 두고 대답하지 아니함을 두는 대답이라 한다고 말하지 않았노라. 선남자여, 이 두는 대답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막는 것이요, 또 하나는 집착하지 말게 함이다. 이런 뜻으로 두는 대답이라 할 수 있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어찌하여 인은 과거요 현재요 미래며, 과는 과거·현재·미래이기도 하고, 과거·현재·미래가 아니기도 하다고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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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5음이 두 가지니, 하나는 인이요 하나는 과니라. 이 인의 5음은 과거요 현재요 미래며, 과의 5음은 과거·현재·미래이기도 하고, 과거·현재·미래가 아니기도 하니라. 선남자여, 모든 무명 번뇌 등의 결박이 모두 불성이니, 왜냐 하면 불성의 인인 연고니라. 무명·행과 모든 번뇌로부터 선의 5음을 얻는 것을 불성이라 하며, 선의 5음으로부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 얻나니, 그러므로 내가 경에서 먼저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은 피 섞인 젖과 같다’ 하였느니라. 피는 곧 무명·행 등의 모든 번뇌요, 젖은 곧 선의 5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모든 번뇌와 선의 5음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를 얻음이, 마치 중생의 몸이 모두 정기와 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하였으며, 불성도 그러하니라. 수다원이나 사다함이 일부분의 번뇌를 끊은 불성은 젖과 같고, 아나함의 불성은 타락[酪]과 같고, 아라한은 생소(生酥)와 같고, 벽지불로부터 10주 보살까지는 숙소(熟酥)와 같고, 여래의 불성은 제호(醍醐)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현재의 번뇌가 장애를 짓는 연고로, 중생으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치 향산 속에 있는 인욕초(忍辱草)는 모든 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불성도 그러하니라. 이런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불성, 여섯 가지 불성, 일곱 가지 불성이 만일 미래에 있다면, 어찌하여 선근을 끊은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모든 중생이 과거의 업이 있고, 이 업으로 인하여 중생이 현재에 과보를 받는 것이며, 미래의 업은 아직 생기지 않았으므로 과를 내지 못하거니와, 현재의 번뇌가 있나니, 만일 번뇌가 없으면, 모든 중생들이 마땅히 현재에 불성을 분명하게 보리라. 그러므로 선근을 끊은 사람은 현재의 번뇌 인연으로 능히 선근을 끊고, 미래세의 불성의 힘인 인연으로 선근을 도로 내느니라.”
가섭보살이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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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미래에 어떻게 능히 선근을 내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등불이나 해가 비록 나오지 않았더라도, 능히 어둠을 깨뜨릴 수 있는 것처럼, 미래에 나올 것이 능히 중생의 미래의 불성을 내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분별하는 대답이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5음이 불성이라면, 어찌하여 중생의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뜻을 잃어버리느냐? 내가 먼저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이 중도(中道)라고 하지 않았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실로 뜻을 잃어버리지 않았사오나, 중생이 이 중도에서 이해하지 못하겠기에 이렇게 물었나이다.”
“선남자여, 중생이 이해하지 못함이 중도니, 어떤 때는 이해하고 어떤 때는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중생들이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서 불성이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라고 말하였느니라. 왜냐 하면 범부 중생이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5음 가운데 있음이, 마치 그릇 가운데 과실이 있는 것과 같다’ 하며, 혹은 말하기를 ‘5음을 여의고 있음이, 마치 허공과 같다’ 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중도를 말하되 ‘중생의 불성이 안의 6입도 아니며 밖의 6입도 아니고, 안과 밖이 화합함을 중도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불성이 곧 중도니,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므로 중도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라 이름하는가. 선남자여,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곧 외도(外道)니,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한량없는 겁 동안에 외도 중에 있어서 번뇌를 끊고 마음을 조복하고 중생을 교화한 연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불성이 외도라고 한다’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곧 내도(內道)니, 왜냐 하면 보살이 비록 한량없는 겁 동안에 외도를 닦았다 하더라도, 내도를 여의었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것이므로, 불성이 내도라고 한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역시 안과 밖이라고 하나니, 이것을 중도라 이름한다고 말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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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대답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곧 여래의 금강 같은 몸인 32상과 80종호니, 왜냐 하면 허망하거나 속이지 않는 연고다’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곧 10력 4무소외, 대자대비, 3념처, 수릉엄 등의 모든 삼매니, 왜냐 하면 이 삼매로 인하여 금강 같은 몸인 32상과 80종호를 내는 연고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역시 안과 밖이라고도 하나니, 이것을 중도라 이름한다고 말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분별하는 대답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혹은 말하기를 ‘불성은 곧 안으로 잘 생각하는 것[內善思惟]이니, 왜냐 하면 잘 생각함을 여의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불성은 곧 안으로 잘 생각함이다’라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은 곧 다른 이로부터 법을 들음이니, 왜냐 하면 다른 이로부터 법을 듣고야 안으로 잘 생각할 것이니, 만일 법을 듣지 않고서는 생각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불성은 곧 다른 이로부터 법을 들음이다’라 하느니라. 그래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역시 안과 밖이라고도 하나니, 이것을 중도라 이름한다고 말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이는 말하기를 ‘불성은 바깥이니 단바라밀(檀波羅蜜)을 말함이라. 단바라밀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나니, 그러므로 단바라밀이 불성이다’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은 안이니, 다섯 가지 바라밀을 말함이니라. 왜냐 하면 이 다섯 가지를 여의고는 불성의 인과 과가 없는 줄을 알지니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다섯 가지 바라밀이 불성이다’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하다고 말하나니, 이것을 중도라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혹은 말하기를 ‘불성은 안에 있는 것이 비유하면 역사의 이마 위에 있는 보배 구슬과 같나니, 왜냐 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보배 구슬과 같은 연고니라. 그러므로 불성이 안에 있다’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밖에 있음이 가난한 이의 보물 광과 같나니, 왜냐 하면 방편으로 보는 연고니라. 불성도 그와 같아서 중생의 밖에 있나니, 방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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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음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하다’고 말하나니, 이것을 중도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불성이 비록 있으나 허공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세간의 허공은 한량없는 공교한 방편으로도 볼 수 없거니와, 불성은 볼 수 있나니, 그러므로 비록 있으나 허공과는 같지 않다 하느니라. 불성이 비록 없으나 토끼의 뿔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은 한량없는 공교한 방편으로도 낼 수 없거니와, 불성은 낼 수 있나니, 그러므로 비록 없으나 토끼의 뿔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라. 어찌하여 있다고 하는가. 온갖 것에 모두 있나니, 모든 중생들이 끊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음이 불꽃과 같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므로 있다고 하느니라. 어찌하여 없다고 하는가. 모든 중생들이 현재에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부처님 법이 있지 아니하므로 없다고 하느니라. 있음과 없음이 합하므로 중도라 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묻기를 ‘이 종자 속에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하면, 결정코 대답하기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하리니, 왜냐 하면 종자를 떠나서는 열매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있다 하고, 종자에서 싹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 하리니, 이런 뜻으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라. 무슨 까닭이냐. 시절은 다르나 그 자체는 하나이니, 중생의 불성도 이와 같으니라. 만일 중생 중에 따로 불성이 있다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무슨 까닭이냐. 중생이 곧 불성이요, 불성이 곧 중생이지만 다만 시절이 다르므로 깨끗하고 깨끗지 못할 뿐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묻기를 ‘이 종자가 열매를 내겠는가, 이 열매가 종자를 내겠는가?’ 하면, 결정코 대답하기를 ‘내기도 하고 내지 않기도 한다’ 하리라.”
“세존이시여, 세상 사람이 젖 속에 타락[酪]이 있다 말한다면 그 이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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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합니까?”
“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타락이 있다고 말하면 이것은 집착이요, 타락이 없다고 말하면 이것은 허망함이니, 이 두 가지를 떠나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하여야 하느니라. 어째서 있다 하는가. 젖으로부터 타락을 내나니, 인은 젖이요 과는 타락이니라. 그래서 있다 하느니라. 어째서 없다 하는가. 빛과 맛이 각각 다르고, 쓰는 데도 같지 아니하니, 열이 나는 병에는 젖을 쓰고 냉한 병에는 타락을 쓰며, 젖은 냉병을 일으키고 타락은 열병을 일으키느니라.
선남자여, 젖 속에 타락의 성질이 있다고 말한다면 젖이 곧 타락이요 타락이 곧 젖이어서 그 성품이 하나일 것이거늘, 무슨 인연으로 젖이 먼저 나고 타락은 먼저 나지 못하느냐. 만일 인연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찌하여 말하지 못하며, 만일 인연이 없다면 어찌하여 타락이 먼저 나지 못하는가. 만일 타락이 먼저 나지 못한다면, 누가 차례차례로 젖과 타락과 생소와 숙소와 제호를 짓는가. 그러므로 타락이 먼저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니, 만일 먼저는 없다가 지금에 있다면, 이것은 무상한 법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말하기를 젖에는 타락의 성질이 있어서 타락을 내고, 물에는 타락의 성질이 없어서 타락을 내지 못한다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물과 풀에도 젖과 타락의 성품이 있나니, 무슨 까닭인가. 물과 풀로 인하여 젖과 타락이 나느니라. 만일 젖에는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고, 물과 풀에는 없다고 말하면 이는 허망한 것이니, 왜냐 하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므로 허망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타락에도 역시 결정코 젖의 성품이 있을 것이거늘, 무슨 인연으로 젖에서는 타락을 내는데, 타락은 젖을 내지 못하는가. 만일 인연이 없다면 이 타락이 본래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말하기를 ‘젖 속에는 타락의 성품이 있지도 않고 타락의 성품이 없지도 않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여래가 이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결정코 불성이 있다 하면 이는 집착함이요, 만일 불성이 없다 하면 이는 허망한 것이니,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중생의 불성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할 것이니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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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네 가지가 화합하여 안식(眼識)을 내나니,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눈과 빛과 밝음과 의욕[欲]이니라. 이 안식의 성품은 눈도 아니요 빛도 아니요 밝음도 아니요 의욕도 아니나, 화합함을 따라서 생기게 되느니라. 이와 같은 안식이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으며 있다가는 도로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본래의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며, 젖 속의 타락 성품도 그와 같으니라. 만일 말하기를 ‘물에는 타락의 성품이 없으므로 타락을 내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젖 속에는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고 한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모든 법들이 인이 다르고 과가 다르니, 한 인에서 모든 과가 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과가 한 인에서 나는 것도 아니니라. 선남자여, 네 가지로부터 안식이 생긴다고 하여 또 이 네 가지로부터 이식(耳識)이 생기리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설사 방편을 여의고 젖 속에서 타락을 얻더라도 타락에서 생소가 생기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여, 반드시 방편을 요구하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면 방편을 여의고 젖으로부터 타락 얻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생소를 얻는 것도 이와 같이 방편을 여의고 얻으리라’고 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경에서 인이 나므로 법이 있고 인이 멸하므로 법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소금의 성품이 짬으로 해서 짜지 않은 물건을 짜게 하나니, 만일 짜지 아니한 물건에 먼저 짠 성품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무슨 연고로 소금을 구하겠느냐. 만일 먼저 짠 성품이 없었다면, 먼저는 없다가 지금에 있음을 알 것이니, 다른 인연으로 짜게 되는 것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모든 짜지 아니한 물건들이 모두 짠 성품이 있지만 미미한 연고로 알지 못하나니, 이 미미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소금이 능히 짜게 하거니와, 만일 본래 짠 성품이 없다면 비록 소금이 있더라도 짜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치 종자에 스스로 4대가 있기 때문에 바깥 4대로 말미암아 움과 줄기와 가지와 잎이 자라는 것처럼 소금의 성품도 그렇다’ 하면,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무슨 까닭이냐. 짜지 아니한 물건에 먼저 짠 성품이 있었다면, 소금에도 미미하게 짜지 아니한 성품이 있을 것이니, 소금에 만일 이런 두 성품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짜지 아니한 물건을 여의고는 혼자 작용하지 못하는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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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므로 소금에 본래 두 성품이 없음을 알지니라. 소금과 같아서 온갖 짜지 아니한 물건도 모두 그와 같으니라.
만일 바깥 4대의 힘으로 안의 4대를 자라게 한다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차례로 말하는 연고로 방편을 따르지 않음이니, 젖 속에서 타락과 생소를 얻으나, 나아가 모든 법이 다 그와 같지 아니하여 방편으로 얻는 것이 아니니, 4대도 그와 같으니라. 만일 바깥 4대로부터 안의 4대를 자라게 한다 하여도 안의 4대로부터 바깥 4대를 자라게 함을 보지 못하느니라. 마치 시리사 열매는 먼저는 형체가 없다가 좀생이별[昴生]을 볼 때에 열매가 생겨서 다섯 치나 자라나니, 이런 과실은 바깥 4대로 인하여 커지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내가 말한 12부경은 혹은 자기 뜻을 따라 말하고, 혹은 남의 뜻을 따라 말하고, 혹은 자기 뜻과 남의 뜻을 따라 말하였느니라. 어떤 것을 자기 뜻을 따라 말한 것이라 하는가. 마치 다음과 같다.
5백 비구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큰스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몸의 인(因)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이 옳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스님들이여, 당신들도 각각 바른 해탈을 얻었은즉, 스스로 알 터인데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묻는가?’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가 바른 해탈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무명이 몸의 인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관찰하다가 아라한과를 얻었나이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큰스님, 제가 바른 해탈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애(愛)와 무명이 몸의 인이리라 생각하고, 이렇게 관찰하다가 아라한과를 얻었나이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행(行)·식(識)·명색(名色)·6입(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음식·5욕락이 곧 몸의 인이겠나이다.’
그래서 5백 비구가 각각 자기가 아는 소견을 말하고는 함께 부처님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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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서 예배를 마치고 한쪽에 물러가 앉았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대로 자기가 이해한 뜻을 부처님께 말하였다.
사리불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여러 사람의 말이 누구의 것이 옳은 말이옵고 누구의 것이 옳지 않은 말이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한 말이다. 여러 비구들의 말이 하나도 옳은 말 아닌 것이 없느니라.’
사리불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뜻은 어떠하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욕계의 중생을 위하여서는 부모가 몸의 인이라 말하였노라.’
이런 경전을 자기 뜻을 따라 말한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남의 뜻을 따라 말한 것이라 하는가. 마치 다음과 같다. 파타라(巴吒羅) 장자가 내게 와서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당신이 환술을 아는가? 만일 환술을 안다면 곧 대환인(大幻人)이요, 만일 모른다면 온갖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가 아니외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장자여, 환술을 아는 사람을 환인이라 하는가?’
‘옳소, 환술을 아는 사람이 환인이오.’
나는 이렇게 말하였노라.
‘장자여, 사위국의 바사닉왕에게 기허(氣噓)라는 전다라가 있는데, 그대가 아는가?’
‘구담이시여, 제가 벌써부터 알았소.’
나는 또 물었다.
‘그대가 벌써부터 알았다면, 그대도 전다라이겠구려.’
‘구담이시여, 제가 그 전다라를 알지만 제 몸은 전다라가 아니오.’
‘장자여, 그대는 전다라를 알아도 전다라가 아닌 이치를 알았으니, 나는 어찌하여 환술은 알면서도 환인이 아닐 수가 없겠는가. 장자여, 나는 환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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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환인도 알고 환술의 과보도 알고 환술하는 기술도 아노라. 나는 죽이는 것도 알고, 죽이는 사람도 알고, 죽인 과보도 알고, 죽이고 해탈함도 아노라. 나아가 나쁜 소견도 알고, 나쁜 소견을 가진 사람도 알고, 나쁜 소견의 과보도 알고, 나쁜 소견에서 해탈함도 아노라. 장자여, 만일 환술 아닌 사람을 환인이라 말하거나, 나쁜 소견 아닌 사람을 나쁜 소견 가진 사람이라 말하면, 한량없는 죄를 얻느니라.’
‘구담이시여, 당신의 말과 같을진댄 저는 큰 죄를 지었고, 제가 가진 물건을 모두 드릴 터이니, 바라건대 바사닉왕으로 하여금 저의 이 일을 알지 않게 하여 주소서.’
‘장자여, 그 죄로 인하여 재물을 잃을 것까지는 없고, 마땅히 3악도에 떨어질 것이오.’
이 때에 장자는 나쁜 갈래라는 말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내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성인이시여, 제가 잘못하여서 큰 죄를 얻게 되었는데, 성인께서는 온갖 지혜를 가진 어른이시니, 해탈을 얻는 일도 아실 것이오. 제가 어떻게 하면 지옥·아귀·축생에서 해탈하겠나이까?’
내가 그 때에 4진제를 말하여 주었더니, 장자가 듣고는 수다원과를 얻었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부처님께 참회하였다.
‘제가 본래 어리석어서 환인이 아니신 부처님을 환인이라 말하였사오니, 저는 오늘부터 3보에 귀의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일이오, 장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남의 뜻을 따라서 말한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자기 뜻과 남의 뜻을 따라서 말한 것이라 하는가. 내가 말한 바와 같다. 만일 모든 세간의 지혜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 나도 있다고 말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나도 없다고 말하며, 세간의 지혜 있는 사람이 말하되, 5욕락에는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는 것을 끊어야 한다고 하면, 나도 그렇다 말하고, 세간의 지혜 있는 사람이 말하되, 5욕락에는 항상하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다는 것이 그럴 리가 없다 하면, 나도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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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말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기와 남의 뜻을 따라서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말한 바 10주(住) 보살이 조그만큼 불성을 본다 함은, 남의 뜻을 따라서 말한 것이라 하나니, 어찌하여 조금 본다고 하는가. 10주 보살은 수릉엄삼매와 3천 법문을 얻었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줄을 분명하게 알지만 모든 중생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줄은 보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10주 보살은 불성을 조그만큼 본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항상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한 것은,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한 말이요, 모든 중생이 끊지도 않고 멸하지도 아니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한 것은,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한 말이며,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지만, 번뇌에 가렸으므로 보지 못한다 하여 나의 말도 이러하고 그대의 말도 그러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기의 뜻과 남의 뜻을 따라서 한 말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어떤 때에는 한 법을 위하여 한량없는 법을 말하나니, 경에서 말하기를 ‘온갖 범행(梵行)의 인은 선지식이라’ 하였으니, 온갖 범행의 인이 한량없지만 선지식을 말하면 모두 그 속에 들었고, 내가 말하기를 ‘온갖 나쁜 행은 삿된 소견이 인이 된다’ 하였으니, 온갖 나쁜 행의 인이 한량없지만 삿된 소견이라 말하면 그 속에 모두 들었느니라. 혹은 말하기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신심이 인이 된다’ 하였으니, 보리(菩提)의 인이 한량없지만 신심이라 말하면 그 속에 모두 들었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비록 한량없는 법을 말하여 불성이라 하였으나, 5음·6입·18계를 여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법을 말함이 중생을 위하므로 일곱 가지 말이 있으니, 하나는 인에 대한 말[因語], 둘은 과에 대한 말[果語], 셋은 인과 과에 대한 말[因果語], 넷은 비유하는 말[喩語], 다섯은 안 맞는 말[不應說語], 여섯은 세상에 퍼뜨리는 말[世流布語], 일곱은 뜻대로 하는 말[如意語]이니라.
어떤 것을 인에 대한 말이라 하는가. 현재의 인에서 미래의 과를 말하는 것이니, 내가 말하기를 ‘선남자여, 네가 중생들이 살생을 좋아하고, 나아가 나쁜 소견을 행하기를 좋아함을 보거든, 이 사람이 곧 지옥 사람인 줄로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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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하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살생이나 나아가 삿된 소견을 좋아하지 않거든, 이 사람이 곧 천상 사람인 줄로 관찰하라’ 한 것은, 인에 대한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과에 대한 말이라 하는가. 현재의 과에서 과거의 인을 말하는 것이니, 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네가 만일 빈궁한 중생으로서 얼굴이 누추하고, 자재하지 못한 이를 보거든, 이 사람은 결정코 파계(破戒)하고 시기하고 성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마음이 있는 줄을 알 것이며, 어떤 중생이 재물이 거부인데다가 모든 근을 구족하여 위엄과 덕이 자재한 것을 보거든, 이 사람은 결정코 계를 지키고 보시하고 정진하고 부끄러움을 알며, 질투하거나 성내는 마음이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한 것은 과에 대한 말이니라.
어떤 것을 인과 과에 대한 말이라 하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중생들의 현재의 6입은 촉(觸)의 인이며, 과거의 업의 과보라 하나니, 여래도 업이라고 말하며, 이 업의 인연으로 미래의 과를 얻는다’ 한 것은, 인과 과에 대한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비유하는 말이라 하는가. 마치 사자왕을 내 몸에 비유한 것과 같은 것이니, 대상왕(大象王)·대용왕·파리질다라나무·7보 더미·큰 바다·수미산·땅덩이·큰비·뱃사공[船師]·도사(導師)·조어장부(調御丈夫)·역사(力士)·우왕(牛王)·바라문·사문·큰 성(城)·다라(多羅)나무 따위로 비유한 것은, 비유하는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안 맞는 말이라 하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합할 수 있다,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과 바사닉왕을 위하여 사방에서 산이 온다는 것과, 녹모(鹿母) 우바이를 위하여 사라수(婆羅樹)가 8계를 받으면 인간이나 천상의 낙을 받으리라 한 것과, 10주 보살이 퇴전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할지언정, 여래는 두 가지 말씀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수다원이 3악도에 떨어진다고 말할지언정, 10주 보살이 퇴전할 마음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 등은 안 맞는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세상에 퍼뜨리는 말이라 하는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남자·여자·큰 것·작은 것·가는 것·오는 것·앉는 것·눕는 것·수레·집·질그릇·옷·중생·항상함·즐거움·나·깨끗함·군대·숲·성·동리·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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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幻]·화신[化]·모임·흩어짐 등을 세상에 퍼뜨리는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뜻대로 하는 말이라 하는가. 내가 계율을 깨뜨린 사람을 꾸짖어서 그로 하여금 스스로 책망하고 계율을 보호하도록 하는 것과, 수다원을 찬탄하여 범부들로 하여금 선한 마음을 내게 하는 것과, 보살을 찬탄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는 것과, 3악도의 고통을 말하여 선한 법을 닦게 하는 것과, 온갖 것이 탄다고 말한 것은 오직 모든 함이 있는 법을 말하는 연고니, 내가 없다는 것도 그와 같으며,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방일하지 못하게 한 것 등은 뜻대로 하는 말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또 자기의 뜻을 따르는 말이 있느니라. 여래의 불성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있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없다는 것이니라. 있다는 것은 32상과 80종호와 10력과 4무소외와 3념처와 대자대비와 수릉엄 등의 한량없는 삼매와, 금강 등 한량없는 삼매와, 방편 등 한량없는 삼매와 5지인(智印) 등 한량없는 삼매는 있는 것이라 하고, 없다는 것은, 여래의 지난 세상의 선과 불선과 무기(無記)와 업과 인과 과와 보(報)와 번뇌와 5음(陰)과 12인연 등이니, 이것을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유·무·선·불선·유루(有漏)·무루·세간·비세간(非世間)·성인·비성인·유위(有爲)·무위·진실함·진실치 못함·고요함·고요하지 아니함·다툼·다투지 않음·계(界)·비계(非界)·번뇌·비번뇌·취(取)·비취·수기(受記)·비수기·유·비유·삼세·비삼세·시(時)·비시·항상함·무상·나·내가 없음·즐거움·즐겁지 않음·깨끗함·깨끗하지 않음·색·수·상 행·식·비색·비수·비상·비행·비식·내입(內入)·비내입·외입(外入)·비외입·12인연·비12인연들을, 여래의 불성이 있는 것, 없는 것이라 이름하며, 나아가 일천제 불성이 있는 것, 없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내가 비록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지만 중생들은 부처님의 이러한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말은 후신 보살도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2승이나 다른 보살들이겠느냐. 선남자여, 내가 지나간 어느 때에 기사굴산(耆闍崛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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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미륵보살과 더불어 세제(世諦)를 의논할 때에, 사리불 등 5백 성문은 이런 일을 전혀 알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출세간의 제일의제(第一義諦)이랴.
선남자여, 어떤 불성은 일천제에게는 있고 선근인(善根人)에게는 없으며, 어떤 불성은 선근인에게는 있고 일천제에게는 없으며, 어떤 불성은 두 사람에게 모두 있고, 어떤 불성은 두 사람에게 모두 없느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로서 이와 같은 네 글귀의 뜻[四句義]을 아는 이는, 마땅히 논란하기를 일천제가 결정코 불성이 있느냐, 결정코 불성이 없느냐 하지 아니 하리라. 만일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여래가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하는 말이니, 여래의 이러한 자기의 뜻을 따라 하는 말을 중생이 어떻게 한결같이 이해하겠는가.
선남자여, 마치 항하 속에 일곱 가지 중생이 있는데, 하나는 항상 잠겨 있고, 둘은 잠깐 나왔다가 도로 잠기고, 셋은 나와서는 곧 머물고, 넷은 나와서는 사방을 두루 살피고, 다섯은 살펴보고는 가고, 여섯은 가다가 다시 머물고, 일곱은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느니라. 항상 잠겨 있는 것은 큰 고기니, 크고 나쁜 업보를 받아 몸이 무거워서 깊은 데 있고, 이 때문에 항상 잠겨 있는 것이다. 잠깐 나왔다가 도로 잠기는 것은 이 큰 고기가 나쁜 업보로 몸이 무거우나 옅은 데 있으면서 잠깐 광명을 보며, 광명을 인하여 잠깐 나오고, 무거우므로 도로 잠기는 것이다. 나와서 곧 머무는 것은 지미어(抵彌魚)가 얕은 물에 있으면서 광명을 좋아하므로 나와서는 머무는 것이다. 사방을 두루 살피는 것은 상어[▩魚]가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사방을 살피느라고 이리저리 보는 것이다. 살펴보고 가는 것은 상어가 멀리 있는 물건을 보고 먹을 것인가 하여 빨리 따라가느라고 보고는 가는 것이다. 가다가 다시 머무는 것은 이 고기가 따라가서 먹이를 얻고는 즉시 정지하므로 가다가 머무는 것이다.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는 것은 거북이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이 미묘한 대열반의 강에도 일곱 가지 중생이 있으니, 처음의 항상 잠겨 있는 것으로부터 일곱째까지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니라. 항상 잠겨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니, ‘여래는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아니하며,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아니하며,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고, 일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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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방등경을 비방하고, 5역죄를 짓고, 4중죄를 범하고도 반드시 보리를 이루며,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들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는 믿지 아니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는 말하기를, ‘이 열반경은 외도의 글이요 부처님 경전이 아니라’ 하며, 그래서 선지식을 멀리하고 바른 법을 듣지 아니하며, 비록 듣더라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설사 생각하더라도 선한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선한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나쁜 법에 머무느니라. 나쁜 법에 머무는 것이 여섯 가지니, 하나는 악함이요, 둘은 선이 없음이요, 셋은 더러운 법이요, 넷은 업보를 더함이요[增有], 다섯은 번열함[熱]이요, 여섯은 나쁜 과보를 받음이니, 이것을 잠긴다 하느니라.
어째서 잠긴다 이름하는가. 선한 마음이 없는 연고며, 나쁜 짓을 항상 행하는 연고며, 다스릴 것을 닦지 아니하므로 잠긴다 하느니라. 악하다 함은 성인이 꾸짖는 연고며, 마음에 두려운 연고며, 선한 사람이 멀리 떠나는 연고며, 중생을 이익케 하지 못하는 연고로 악하다 하느니라. 선이 없다 함은 한량없는 나쁜 과보를 내는 연고며, 항상 무명에 얽히는 연고며, 나쁜 사람과 동무하기를 좋아하는 연고며, 선한 일을 닦는 방편이 없는 연고며, 마음이 뒤바뀌어 항상 잘못되므로 선이 없다 하느니라. 더러운 법이라 함은 몸과 입을 항상 더럽히는 연고며, 깨끗한 중생을 더럽히는 연고며, 불선한 업을 더하는 연고며, 선한 법을 멀리 하는 연고로 더러운 법이라 하느니라.
업보를 더한다 함은 위에 말한 세 사람이 행하는 법이 지옥·축생·아귀의 업을 더하고 해탈하는 법을 닦지 못하며, 몸과 입과 마음의 업으로 생사를 싫어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업보를 더한다 하느니라. 번열이라 함은 이 사람이 위에 말한 네 가지 짓을 모두 행하여 몸과 마음을 시끄럽게 하나니, 고요함을 멀리 떠남을 번열이라 하고, 지옥의 보를 받으므로 번열이라 하고, 중생들을 태우므로 번열이라 하고, 선한 법을 불사르므로 번열이라 하나니, 선남자여, 신심의 서늘함을 이 사람이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번열이라 하느니라. 나쁜 과보를 받는다 함은 이 사람이 위에 말한 다섯 가지를 구족하게 행하였으므로 죽어서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느니라. 선남자여, 세 가지 나쁜 일이 있으므로 나쁜 과보라 하나니 하나는 번뇌가 나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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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업이 나쁘고, 셋은 과보가 나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쁜 과보를 받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사람이 위에 말한 여섯 가지를 갖추었으므로, 선근을 끊고, 5역죄를 짓고, 4중죄를 범하고, 3보를 비방하며, 승가의 물건을 사용하며, 여러 가지 법답지 못한 일을 지었으므로 이 인연 때문에 아비지옥에 빠지는 것이며, 받는 몸은 가로 세로가 8만 4천 유순[由延]이요, 이 사람의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죄업이 중하여서 나올 수가 없느니라. 왜냐 하면 마음에 선한 법을 내지 못하므로 한량없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더라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므로 항상 잠겨 있다 하나니, 항하의 큰 고기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내가 비록 일천제들을 항상 잠겨 있다 말하였으나, 일천제가 아니면서 항상 잠겨 있는 이가 있으니, 무엇이냐 하면, 어떤 사람이 생사를 위하여 보시와 계율의 선한 일을 닦으면, 항상 잠겨 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네 가지 선한 일이 있으면 나쁜 과보를 얻나니,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남을 이기려고 경전을 읽음이요, 둘은 이양(利養)을 위하여서 계율을 가짐이요, 셋은 다른 이에게 붙기 위하여 보시를 행함이요, 넷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위하여 마음을 두어 생각함이니, 이 네 가지 일로는 나쁜 과보를 얻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런 네 가지를 닦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빠졌다가 나오고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 하느니라. 어찌하여 빠진다 하는가. 3유(有)를 즐거워하는 연고요, 어찌하여 나온다 하는가. 광명을 보는 연고니라. 광명이라 함은 계율과 보시와 선정을 들음이니라. 어찌하여 도로 빠지는가. 나쁜 소견이 늘고 교만을 내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경전에서 이런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어떤 중생 생사 업을 좋아하면서
생사를 위해 선업 악업 짓는다 하면
이 사람은 열반 길을 잃게 되나니
이를 일러 나왔다가 빠진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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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생사 바다 돌아다니며
해탈을 얻더라도 번뇌 섞이면
이 사람은 나쁜 과보 다시 받나니
이를 일러 나왔다가 빠진다 하네.

선남자여, 저 큰 고기가 광명을 보기 위하여 잠깐 나왔다가도 몸이 무거워서 도로 빠지듯이 위의 두 사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3유(有)를 좋아하면 빠진다 하고, 이 대반열반경을 듣고 신심을 내면 나온다 하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나온다 하는가. 이 경을 듣고는 나쁜 법을 멀리 여의고 선한 법을 닦으므로 나온다 하느니라. 이 사람이 비록 믿으나 구족하지는 못하니, 무슨 인연으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는가. 이 사람이 비록 대반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을 믿지만 여래의 몸은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여래에게 두 가지 열반이 있으니, 하나는 함이 있음이요, 또 하나는 함이 없음이라. 함이 있는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고, 함이 없는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다 하며, 비록 불성이 중생에게 있음을 믿으나 반드시 온갖 중생에게 다 있는 것은 아니라 하나니, 그러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믿음이 두 가지니, 하나는 믿음이요, 또 하나는 구함이니라. 이런 사람은 믿음은 있으나 능히 구하지 못하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믿음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들음으로부터 생기고, 또 하나는 생각함으로부터 생기느니라. 이 사람의 신심은 들음으로부터 생겼고, 생각으로부터 생기지 아니하였으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도가 있음을 믿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얻는 이를 믿는 것이니라. 이 사람의 신심은 도가 있는 것만 믿고, 도를 얻는 사람이 있는 것을 믿지 아니하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바른 것을 믿고 하나는 삿된 것을 믿음이라. 인과 과가 있음을 믿고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가 있음을 믿는 것은 바른 것을 믿는다 하고, 인도 과도 없고, 3보의 성품이 다르다 말하며, 부란나(富蘭那) 등의 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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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말을 믿는 것은 삿된 것을 믿는다 하느니라. 이 사람은 비록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를 믿으나 3보가 동일한 성품인 줄은 믿지 아니하며, 인과 과는 믿으나 얻는 이는 믿지 아니하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이 사람이 구족하지 못한 신심을 구족하였으므로 받은 계율도 구족하지 못하였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는가. 인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얻은 계율도 구족하지 못하였느니라. 또 무슨 인연으로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는가. 계율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위의계(威儀戒)요, 또 하나는 종계계(從戒戒)니라. 이 사람은 위의계만 구족하였고, 종계계는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짓는 계[作戒]요, 또 하나는 지음이 없는 계[無作戒]니라. 이 사람은 짓는 계만 구족하였고, 지음이 없는 계는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몸과 입으로 좇아 정명(正命)을 얻음이요, 또 하나는 몸과 입으로 좇아 정명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 사람은 비록 몸과 입을 좇으나 정명을 얻지 못하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이름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구하는 계요, 또 하나는 버리는 계니라. 이 사람이 구하는 계만 갖추었고, 버리는 계는 얻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유를 따름[隨有]이요, 또 하나는 도를 따름[隨道]이니라. 이 사람이 유를 따르는 계만 갖추었고, 도를 따르는 계는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계요, 또 하나는 악한 계니라. 몸과 입과 뜻이 선한 것을 계요 하나는 악한 계니라. 몸과 입과 뜻이 선한 것을 선한 계라 하고, 우계(牛戒)·구계(狗戒)를 악한 계라 하나니, 이 사람이 이 두 가지 계가 모두 선한 과가 있다고 믿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이 사람이 믿음과 계율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닦는 바 들음[多聞]도 구족하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는가. 여래가 말한 12부경에서 6부만 믿고 6부는 믿지 아니하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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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고 이름하며, 비록 이 6부경을 받아 가지면서도 읽거나 외우거나,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설하지 못하며 이익됨이 없으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이름하며, 비록 이 6부경을 받았더라도, 논의(論議)하기 위하고, 남을 이기기 위하고, 이양을 위하고, 모든 유를 위하여서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전 중에서 들음이 구족함을 말하였으니, 어떤 것을 구족하였다 하는가. 만일 비구가 몸과 입과 뜻이 선하고, 예전부터 화상과 스님들과 덕이 있는 이를 공양하였으며, 이 스님들이 이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이런 인연으로 경을 가르쳐 주거든, 이 사람이 이 지성으로 받아 지니고 외우며, 외워서 익히고는 지혜를 얻으며, 지혜를 얻고는 잘 생각하고 법답게 머물며, 잘 생각하고는 바른 이치를 얻으며, 바른 이치를 얻고는 몸과 마음이 고요하며,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는 기쁜 마음을 내며, 기쁜 마음의 인연으로 마음에 선정을 얻고, 선정을 얻었으므로 바른 지견(知見)을 얻으며, 바른 지견을 얻고는 모든 생사 업과에 대하여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뉘우치는 연고로 해탈을 얻느니라.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러한 일이 없으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이 사람이 이렇게 세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보시도 구족하지 못하느니라. 보시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재물 보시요, 또 하나는 법 보시니라. 이 사람이 비록 재물 보시는 행하지만 구함이 있는 연고며, 비록 법으로 보시하지만 구족하지 못하니, 왜냐 하면 비밀이고 모두 다 말하지 아니하며, 다른 이가 이길까 두려워하므로 보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하느니라. 재물 보시와 법 보시에 각각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스럽고 또 하나는 성스럽지 못함이니라. 성스러운 것은 보시하고는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이요, 성스럽지 못한 것은 보시하고는 과보를 바라는 것이며, 성스러운 것은 법 보시가 법을 증장하기 위함이요, 성스럽지 못한 것은 법 보시가 유(有)를 증장하기 위함이니라. 이 사람은 재물을 늘리기 위하여 재물을 보시하고, 유를 증장하기 위하여 법을 보시하는 것이므로 보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이 사람이 6부경을 받고서도, 법을 받는 이를 보고는 이바지하고, 법을 받지 않은 이에게는 이바지하지 아니하므로 보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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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니라.
이 사람이 위에 말한 네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였므로 닦는 지혜도 구족하지 못하느니라. 지혜의 성품은 분별하는 것이거늘, 이 사람은 여래가 항상한지 무상한지를 분별하지 못하며, 여래는 이 열반경에서 말하기를 ‘여래가 곧 해탈이요, 해탈이 곧 여래며, 여래가 곧 열반이요, 열반이 곧 해탈이라’ 하였거늘, 이런 이치를 능히 분별하지 못하느니라. 범행(梵行)이 곧 여래요, 여래가 곧 자비희사(慈悲喜捨)요, 자비희사가 곧 해탈이요, 해탈이 곧 열반이요, 열반이 곧 자비희사라 하였거늘, 이런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이름하느니라.
또 불성을 분별하지 못하나니, 불성이 곧 여래요, 여래가 곧 함께하지 않는 법이요, 함께하지 않는 법이 곧 해탈이요, 해탈이 곧 열반이요, 열반이 곧 함께하지 않는 법이거늘, 이런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고·집·멸·도의 4제를 분별하지 못하나니, 4진제(眞諦)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성인의 행을 알지 못하고, 성인의 행을 알지 못하므로, 여래를 알지 못하고, 여래를 알지 못하므로 해탈을 알지 못하고, 해탈을 알지 못하므로 열반을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이 사람이 이러한 다섯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법을 증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악한 법을 증장하는 것이니라. 어찌하여 악한 법을 증장한다 하는가. 이 사람이 자기가 구족하지 못함을 보지 못하므로, 스스로 구족하였노라 말하면서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 동등한 이에게 자기가 수승하다 하며, 자기와 같은 나쁜 동무를 가까이하며, 가까이하고는 다시 구족하지 못한 법을 들으며, 듣고는 마음이 기쁘고, 거기에 마음이 물들어서 교만을 일으키고, 방일한 짓을 행하며, 방일함을 인하여 집에 있는 이를 친근하고, 집에 있는 이의 일을 듣기를 좋아하며, 청정하게 출가한 법을 멀리 여의느니라. 이런 인연으로 나쁜 법을 증장하고 나쁜 법이 증장하므로, 몸과 입과 뜻 등에 부정한 업을 짓고, 3업이 부정하므로 지옥·축생·아귀를 증장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진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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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진다 함은, 나의 불법 가운데서 누구인가. 제바달다와 구가리(瞿伽離) 비구와 완수(惋手) 비구와 선성 비구와 저사(低舍) 비구와 만수(滿宿) 비구와 자지(慈地) 비구니와 광야(曠野) 비구니와 방(方) 비구니와 만(慢) 비구니와 정결(淨潔) 장자와 구유(求有) 우바새와 사륵(舍勒) 석종(釋種)과 상(象) 장자와 명칭 우바이와 광명 우바이와 난타 우바이와 군(軍) 우바이와 영(鈴) 우바이 등이니라. 이런 사람을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진다 하나니, 마치 큰 고기가 광명을 보려고 나왔다가 몸이 무거워서 빠지는 것과 같으니라.
둘째 사람은 행을 구족하지 못한 줄을 깊이 깨닫고,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선지식을 친근하려 하고, 선지식을 친근하므로 듣지 못한 것을 즐겁게 물으며, 듣고는 받아 가지기를 좋아하고, 받고는 잘 생각하기를 좋아하며, 잘 생각하고는 법답게 머무르므로 선한 법이 증장하고, 선한 법이 증장하므로 다시는 빠지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머문다 이름하나니, 나의 불법 가운데서는 누구일까. 이른바 사리불·대목건련·아야교진여 등 다섯 비구, 야사 등 5백 비구, 아누루타(阿·樓陀)·동자 가섭·마하가섭·십력 가섭·수구담미(瘦瞿曇彌) 비구니·파타라화(波吒羅花) 비구니·승(勝) 비구니·실의(實義) 비구니·의(意) 비구니·발타(跋陀) 비구니·정(淨) 비구니·불퇴전 비구니·빈바사라왕·욱가(郁伽) 장자·수달다(須達多) 장자·석마남(釋摩男)·빈(貧) 수달다·서랑장자자(鼠狼長者子)·명칭 장자·구족(具足) 장자·사자(師子) 장군·우바리(優波離) 장자·도(刀) 장자·무외(無畏) 우바이·선주(善住) 우바이·애법(愛法) 우바이·용건(勇建) 우바이·천득(天得) 우바이·선생(善生) 우바이·구신(具身) 우바이·우득(牛得) 우바이·광야(曠野) 우바이·마하사나(摩訶斯那) 우바이 등이니, 이러한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들은 머문다 이름할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을 머문다 하는가. 선한 광명을 항상 보기 좋아하는 연고니라. 이 인연으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거나 나시지 않거나 간에, 이런 사람은 끝내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하니라. 이것을 머문다 이름하나니, 마치 저미어(低彌魚)가 광명을 보기 좋아하여 잠기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이런 대중들도 그와 같으므로 내가 경전 중에서 게송을 말하였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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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어떤 사람 바른 뜻을 잘 분별하여
지성으로 사문 과보 항상 구하며
일체의 생사 업보 꾸짖는다면
그 사람은 법답게 머문다 하리.

한량없는 부처님께 늘 공양하고
한량없는 오랜 세월 도를 닦으며
세상락을 받더라도 방일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법답게 머문다 하리.

선지식을 친근하여 바른 법 듣고
속으로 잘 생각하며 법답게 있어
광명을 즐겨 보고 도를 닦으면
해탈을 얻고 나서 편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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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3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4. 가섭보살품 ③

“선남자여, 지혜를 구족하지 못함이 무릇 다섯 가지가 있거니와, 이 사람이 그것을 알고 선지식을 친근하면, 그 선지식은, 이 사람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생각 중 어느 것에 치우쳐 많은가를 관찰하느니라. 만일 이 사람이 탐욕이 많은 줄을 알면 부정관(不淨觀)을 말하여 주고, 성내는 일이 많은 줄을 알면 자비관(慈悲觀)을 말하여 주고, 어리석은 생각이 많은 줄을 알면 수식관(數息觀)을 가르쳐 주고, 나에 집착함이 많은 줄을 알면 18계(界) 등을 분석하여 주나니, 이 사람이 듣고는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지니며, 마음으로 받아 지닌 뒤에는 법답게 수행하고, 법답게 수행하여서는 몸[身]과 받음[受]과 마음[心]과 법[法]의 4념처관(念處觀)을 차례로 얻고, 이 관(觀)을 얻고는 차례차례 12인연을 관찰하나니, 이렇게 관찰하여서는 다음에 난법(煖法)을 얻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다 난법이 있사오니,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법이 화합한 것을 중생이라 이름하나니, 수명[壽]과 난기[煖]와 알음알이[識]라’ 하셨나이다. 만일 이 뜻을 따른다면 모든 중생이 먼저부터 난법이 있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난법이 선지식으로 인하여 생긴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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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그대가 물은 난법은 모든 중생과 일천제까지 모두 있다 하는 것이거니와 내가 말하는 난법은 방편으로 인하여 얻는 것이니,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니라.
이런 이치로 모든 중생들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니까 그대는 모든 중생에게 모두 난법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난법은 색계의 법이요 욕계에 있는 것이 아니니, 만일 모든 중생이 모두 있다고 말하면 욕계의 중생에게도 있어야 하련만 욕계에는 없는 것이므로 모든 중생에게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님을 알라. 선남자여, 색계에는 비록 있더라도 모든 중생에게 있는 것은 아니니라. 왜냐 하면 내 제자에게는 있고 외도에게는 없나니, 이런 뜻으로 모든 중생에게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모든 외도들은 6행(行)만 보거니와, 나의 제자는 16행을 구족하였으니, 이 16행은 모든 중생에게 반드시 다 있는 것이 아니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시는 난법은 어째서 난이라 하나이까? 제 성품이 따뜻하나이까, 다른 것 때문에 따뜻하나이까?”
“선남자여, 이 난법은 제 성품이 따뜻한 것이요, 다른 것 때문에 따뜻한 것이 아니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마사(馬師)와 만수(滿宿)는 난법이 없나니, 왜냐 하면 3보에게 신심이 없는 탓으로 난이 없다’고 하였사오니, 신심이 난법인가 하나이다.”
“선남자여, 신심이 난법이 아니다. 왜냐 하면 신심으로 인하여 그 뒤에 난법을 얻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난법이라 함은 곧 지혜니, 왜냐 하면 4제를 관찰하는 연고로 16행이라 하나니, 행은 곧 지혜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난이라 하느냐 했거니와, 선남자여, 난법은 곧 8성도(聖道)의 불 모습[火相]이므로 난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나무를 비벼서 불을 낼 때에, 먼저 따뜻한 기운이 있고 다음에 불이 나고 나중에 연기가 나듯이 무루의 도도 그와 같으니라. 따뜻하다 함은 16행이요, 불은 수다원과요, 연기는 도를 닦는 자리에서 번뇌를 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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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라.”
가섭보살은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난법은 역시 유(有)의 법이요, 함이 있는 법이오니, 이 법은 과보로 색계의 5음을 얻으므로 유라 하고, 인연인 연고로 함이 있는 것이라 하겠사오니, 만일 함이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무루의 도가 되겠나이까?”
“선남자여, 그러하니라. 그대의 말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난법이 비록 함이 있는 법이요 유의 법이지만 도리어 함이 있는 법과 유의 법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무루도의 모습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말을 탔을 때에 사랑하면서도 채찍질하듯이 따뜻한 마음도 그와 같아서 사랑하는 연고로 태어나고, 싫어하는 연고로 행을 관찰하느니라. 그러므로 비록 유의 법이며 함이 있는 법이지만 바른 도의 모습이 되느니라. 난법을 얻는 사람이 일흔세 종류로서 욕계가 열 가지니, 이 사람이 온갖 번뇌를 구족하고 1분을 끊기 시작하여 9분까지 이르며, 욕계와 같이 초선(初禪)으로부터 무소유처(無所有處)까지도 그와 같나니, 이것을 일흔세 종류라 하느니라. 이런 사람들이 난법을 얻고는, 다시 선근을 끊거나 5역죄를 짓거나 4중죄를 범하지 않느니라.
이 사람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동무를 만나는 것이요, 둘은 나쁜 동무를 만나는 것이니라. 나쁜 동무를 만난 이는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지고, 선한 동무를 만난 이는 사방을 두루 살피나니, 사방을 살피는 것은 곧 정법(頂法)이니라. 이 법이 비록 성품은 5음이나 4제를 반연하므로 사방을 두루 살핀다고 이름하느니라. 정법을 얻고는 다음에 인법(忍法)을 얻나니, 인법도 그와 같아서 성품이 5음이며, 4제를 반연하느니라. 이 사람이 다음에는 세제일법(世第一法)을 얻나니, 이 법도 비록 성품이 5음이나 4제를 반연하느니라. 이 사람이 다음에는 고법인(苦法忍)을 얻나니, 인(忍)의 성품은 지혜며, 1제를 반연하느니라. 이 인법이 1제를 반연하고는 나아가 견도위(見道位)에서 번뇌를 끊고 수다원과를 얻으며, 이것을 이름하여 넷째의 사방을 두루 살핀다 하나니, 사방은 곧 4제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수다원이 끊은 번뇌는 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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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길이가 40리 되는 물과 같고, 남아 있는 것은 털 한 개로 찍어 낸 물방울과 같다 하시더니, 여기서는 어찌하여 세 가지 결박[三結]을 끊은 것을 수다원이라 한다’고 말씀하시나이까? 하나는 나라는 소견[我見]이요, 둘은 인이 아닌 것을 인으로 봄이요, 셋은 의심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이 사방을 살핀다 하오며, 또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이라 하오며, 또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을 상어[▩魚]에 비유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수다원이 비록 한량없는 번뇌를 끊지만 이 셋이 중대한 연고며, 또 모든 수다원들이 끊을 결박을 포함한 연고니라. 선남자여, 마치 대왕이 순행할 때에 네 가지 군병이 따르지만, 세상 사람들이 ‘왕이 오셨다, 왕이 가셨다’ 말하나니, 왜냐 하면 세간에서 소중한 연고니라. 이 세 가지 번뇌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인연으로 중대하다 하는가. 온갖 중생들이 항상 일으키는 연고며, 미세하여 알기 어려운 연고로 중대하다 하는 것이요, 이 세 결박을 끊기 어려운 연고며, 모든 번뇌의 원인이 되는 연고며, 이것이 세 가지로 다스릴 대적인 연고니, 계율과 선정과 지혜니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들은 수다원이 한량없는 번뇌를 끊는다는 말을 듣고는, 물러나는 마음을 내어 말하기를, ‘중생이 어떻게 이러한 한량없는 번뇌를 끊으리요’ 하기에, 여래가 방편으로 셋을 말하였느니라.
그대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을 사방을 살피는 데 비유하였습니까?’ 하였으니, 선남자여, 수다원이 4제를 관찰하여 네 가지를 얻나니, 하나는 견고한 도에 머무는 것, 둘은 두루 살피는 것, 셋은 실상과 같이 보는 것, 넷은 원수를 깨뜨림이니라. 견고한 도라 함은, 수다원이 가지는 5근(根)을 흔드는 이가 없으므로 이것을 견고한 도에 머문다 하고, 두루 살핀다 함은, 안팎 번뇌를 능히 꾸짖음이요, 실상과 같이 본다 함은, 곧 인(忍)과 지(智)요, 원수를 깨뜨린다 함은 4전도(顚倒)를 말하는 것이니라. 또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이라 이름하였습니까?’ 함은 선남자여, 수(須)는 무루요, 다원(陀洹)은 닦음이니, 무루를 닦으므로 수다원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또 수는 흐른다는 뜻이라, 흐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흐름을 따르는 것이요, 또 하나는 흐름을 거스름이니라. 흐름을 거스르므로 수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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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 뜻을 따른다면, 무슨 인연으로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은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수다원으로부터 부처님까지도 수다원이라 이름할 수 있느니라. 만일 사다함으로부터 부처님까지 수다원이 없다면, 어떻게 사다함으로부터 부처님까지라 이름하겠는가. 모든 중생의 이름이 두 가지니, 하나는 옛 것[舊]이요, 또 하나는 객(客)이라. 범부인 때에는 세간의 이름이 있고, 도를 얻은 뒤에는 다시 이름하여 수다원이라 하느니라. 먼저 얻었으므로 수다원이라 하고, 뒤에 얻었으므로 사다함이라 하나니, 이 사람은 수다원이라고도 하고 사다함이라고도 하며, 나아가 부처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흐르는 것이 두 가지니, 하나는 해탈이요, 또 하나는 열반이라. 모든 성인들이 다 이 두 가지가 있으므로 수다원이라고도 하고, 사다함이라고도 하며, 나아가 부처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수다원을 보살이라고도 하나니, 왜냐 하면 보살은 곧 다 끊은 지혜[盡智]와, 나지 않는 지혜[無生智]니라. 수다원도 이 두 가지 지혜를 구하는 것이므로, 수다원을 보살이라 이름할 수 있느니라. 수다원을 각(覺)이라고도 이름할 수 있으니, 왜냐 하면 도를 보고 번뇌를 끊음을 바로 깨달은 연고며, 인과 과를 바로 깨달은 연고며, 공도(共道)와 불공도를 바로 깨달은 연고니, 사다함으로부터 아라한까지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수다원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영리한 근성이요, 하나는 둔한 근성이라. 둔한 근성의 사람은 인간과 천상에 일곱 번 오고 가느니라. 둔한 근성의 사람은 또 다섯 가지가 있으니, 혹 여섯 번, 다섯 번, 네 번, 세 번, 두 번 오고 가며, 영리한 근성의 사람은 현재에 수다원과로부터 아라한과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을 상어에 비유하였습니까?’ 하였거니와, 선남자여, 상어에 네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뼈가 가늘어서 가벼운 것이고, 둘은 지느러미가 있어서 가벼운 것이고 셋은 광명을 보기 좋아하는 것이고, 넷은 물건을 물고 놓지 않는 것이니라. 수다원도 네 가지가 있으니, 뼈가 가는 것은 번뇌가 경미한 데 비유한 것이고, 지느러미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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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에 비유한 것이고, 광명을 보기 좋아함은 도를 보는 데 비유한 것이고, 물건을 물고 놓지 않음은 여래가 말하는 무상과 괴로움과 내가 없음과 부정함을 듣고 꼭 가지고 놓지 않는 데 비유한 것이니라. 마치 마왕(魔王)이 부처님 모양으로 변화한 것을 수라(首羅) 장자가 보고 놀라거늘, 마왕은 장자의 마음이 동요함을 보고 장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먼저 말한 4제는 진실하지 못한 것이니, 이제 다시 너에게 5제, 6음(陰), 13입(入), 19계(界)를 말하리라 하였으나, 장자가 듣고는 법상(法相)을 자세히 생각하니, 그럴 리가 없으므로 굳게 가지고 마음이 동하지 아니한 것과 같으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수다원은 먼저 도를 얻었으므로 수다원이라 이름하나이까, 초과(初果)인 연고로 수다원이라 이름하나이까? 만일 먼저 도를 얻었으므로 수다원이라 한다면, 고법인(苦法忍)을 얻었을 때에는 어찌하여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수다원향(須陀洹向)이라 하나이까? 만일 초과이므로 수다원이라 한다면, 외도들이 먼저 번뇌를 끊고 무소유처에 이르러서 무루도를 닦아 아나함과를 얻은 것은, 어찌하여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초과인 연고로 수다원이라 하느니라. 그대가 묻기를 ‘외도들이 먼저 번뇌를 끊고 무소유처에 이르러서 무루도를 닦아 아나함과를 얻는 것은, 어찌하여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않습니까?’ 하였지만 선남자여, 초과인 연고로 수다원이라 이름하는 것은, 이 사람이 그 때에 8지(智)와 16행(行)을 구족하기 때문이니라.”
“세존이시여, 아나함을 얻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8지와 16행을 구족하옵거늘, 어찌하여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유루(有漏) 16행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함께함이요, 또 하나는 함께하지 않음이니라. 무루 16행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향하는 과[向果]요, 또 하나는 얻는 과니라. 8지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향하는 과요, 또 하나는 얻는 과니라. 수다원은 함께하는 16행을 버리고 함께 하지 않는 16행을 얻으며, 향하는 과의 8지를 버리고 얻는 과의 8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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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거니와 아나함은 그렇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초과를 수다원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수다원은 4제를 반연하고 아나함은 1제만 반연하나니, 그러므로 초과를 수다원이라 하느니라. 이런 인연으로 상어에 비유하느니라. 두루 살피고 가는 것은, 곧 사다함이 마음을 두어 도를 닦음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교만을 끊기 위함이니, 저 상어가 사방을 두루 살피고는, 먹이를 위하여 가는 것과 같으니라.
가서는 다시 머무는 것은 아나함에 비유한 것이니, 먹을 것을 얻고는 머무는 것이니라. 이 아나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에 아나함을 얻고 닦아 나아가서 아라한과를 얻음이요, 또 하나는 색계와 무색계의 적정(寂靜)삼매에 탐착함이니, 이 사람은 욕계의 몸을 받지 아니하므로 아나함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아나함에 또 다섯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중반열반(中般涅槃)이요, 둘은 수신(受身)반열반이요, 셋은 행(行)반열반이요, 넷은 무행(無行)반열반이요, 다섯은 상류(上流)반열반이니라. 또 여섯 가지가 있으니, 다섯 가지는 위와 같고, 여섯은 현재(現在)반열반이니라. 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여섯은 위와 같고, 일곱은 무색계(無色界)반열반이니라. 행반열반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혹은 두 몸을 받고, 혹은 네 몸을 받느니라. 만일 두 몸을 받았다면 영리한 근성이라 하고, 네 몸을 받았다면 둔한 근성이라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진하고 자재한 선정이 없음이요, 또 하나는 게으르고 자재한 선정이 있음이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진과 선정을 갖춤이요, 또 하나는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함이니라.
선남자여, 욕계 중생에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짓는 업이요, 또 하나는 태어나는 업이니라. 중열반(中涅槃)은 짓는 업만 있고 태어나는 업은 없나니, 그러므로 중간에서 반열반하느니라. 욕계의 몸을 버리고 색계까지 이르기 전에 영리한 근성이므로 중간에서 열반하나니, 이것을 중열반이라 하느니라. 아나함에 네 가지 마음이 있으니, 하나는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이요, 둘은 학(學)이요, 셋은 무학이요, 넷은 비학비무학으로 열반에 드는 것이니라. 어찌하여 중반열반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이 아나함의 네 가지 마음 중에서 두 가지는 열반이요, 두 가지는 열반이 아니니, 그러므로 중반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수신열반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짓는 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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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또 하나는 나는 업이니라. 이 사람이 욕계의 몸을 버리고 색계의 몸을 받아서 부지런히 도를 닦다가 수명이 다한 뒤에 열반에 드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수명이 다하여 열반에 든다면 어찌하여 수신열반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이 사람이 몸을 받은 뒤에야 삼계의 번뇌를 끊나니, 그러므로 수신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행반열반은 항상 도를 수행하여 함이 있는 삼매의 힘으로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드나니, 이것을 행반열반이라 하느니라. 무행반열반은 이 사람이 열반을 얻을 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게으르지만 역시 함이 있는 삼매의 힘으로 수명이 다하면 열반에 드나니, 이것을 무행반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상류반열반은 어떤 사람이 제4선을 얻고는, 초선천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그 인연으로 물러나 초선천에 나느니라. 여기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번뇌류(煩惱流)요, 또 하나는 도류(道流)니, 도류인 연고로 이 사람이 수명이 다하면 2선천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사랑하는 인연으로 2선천에 태어나며, 나아가 제4선도 그와 같으니라. 이 4선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색계에 들어가고, 또 하나는 5정거천(淨居天)에 들어가느니라. 이 두 사람이 하나는 삼매를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지혜를 좋아하나니, 지혜를 좋아하는 이는 5정거천에 들어가고, 삼매를 좋아하는 이는 무색계에 들어가느니라.
이 두 사람에서 하나는 4선정을 닦는 데 다섯 가지 계급이 있고, 또 하나는 닦지 않나니, 무엇이 다섯인가. 하(下)와 중(中)과 상(上)과 상중(上中)과 상상(上上)이니라. 상상을 닦는 이는 무소천(無小天)에 있고, 상중을 닦는 이는 선견천(善見天)에 있고, 상품(上品)을 닦는 이는 선가견천(善可見天)에 있고, 중품을 닦는 이는 무열천(無熱天)에 있고, 하품을 닦는 이는 소광천(少廣天)에 있느니라. 이 두 사람에서 하나는 논의를 좋아하고, 또 하나는 고요함을 좋아하나니, 고요함을 좋아하는 이는 무색계에 들어가고, 논의를 좋아하는 이는 5정거천에 있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훈선(熏禪)을 닦고, 또 하나는 훈선을 닦지 않으며, 훈선을 닦는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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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거천에 들어가고, 훈선을 닦지 않는 이는 무색계에 났다가 그 수명이 다하면 반열반하나니, 이것을 상류반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만일 무색계에 들고자 하는 이는 4선의 다섯 계급을 닦지 못하거니와, 만일 다섯 계급을 닦으면 무색계정을 꾸짖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열반하는 이가 영리한 근성이라 하나니, 만일 영리한 근성이라면, 어찌하여 현재에 열반에 들지 아니하오며, 무슨 연고로 욕계에는 중열반이 있고 색계에는 없나이까?”
“선남자여, 이 사람이 현재에는 4대(大)가 쇠약하여서 도를 닦지 못하느니라. 어떤 비구가 4대가 건강하더라도 집과 음식과 의복과 와구와 의약이 없으면, 모든 연(緣)을 구족하지 못하였므로 현재에 열반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예전 어느 때에 사위국 아나빈저(阿那邠低 : 給孤獨) 정사에 있을 때에 어떤 비구가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항상 도를 닦지만 수다원과로부터 내지 아라한과까지를 얻지 못하나이다.’
내가 아난에게 말하여 이 비구를 위하여 모든 필요한 용품을 준비하여 주라 하였더니, 아난이 그 비구를 데리고 기타숲에 가서 좋은 방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 때에 비구가 아난에게 말하였다.
‘스님이여, 바라건대 나의 방을 훌륭하게 장엄하고 정결하게 치우며, 7보로 꾸미고 비단 번[繪幡]과 일산을 달아 주시오.’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가 사문이온데,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마련하겠는가?’
비구가 말하였다.
‘스님이 나를 위하여 이런 것을 마련하면 좋겠으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세존께서 계신 데로 도로 가겠노라.’
이 때에 아난은 부처님께 이를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지난번에 그 비구가 저에게 요구하기를 여러 가지 장엄과 7보로 된 번과 일산을 달라 하오니,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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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난에게 일렀다.
‘너는 도로 가서 그 비구가 달라는 대로 이바지하라.’
아난이 도로 그 방에 가서 그 비구를 위하여 온갖 것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 비구는 그런 것을 얻은 뒤에는 마음을 전심하여 도를 닦다가 오래지 않아서 수다원과로부터 아라한과까지를 얻었느니라.
선남자여, 한량없는 중생들이 마땅히 열반에 들 것이지만, 궁핍한 것이 많아 마음을 산란케 하므로 얻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또 어떤 중생들은 교화하기를 좋아하면서도, 마음이 분주하여서 선정을 얻지 못하며, 그래서 현재에 열반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무슨 연고로 욕계의 몸을 버리고는 중열반하는 이가 있고, 색계에는 없습니까?’ 하였거니와 선남자여, 이 사람이 욕계의 번뇌 인연을 관찰하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이요, 또 하나는 밖이나 색계에는 바깥 인연이 없으며, 욕계에 또 두 가지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하나는 탐욕하는 사랑이요, 또 하나는 먹는 사랑이니라. 이 두 가지 사랑을 관찰하고 지성으로 꾸짖으며, 꾸짖기를 마치고는 열반에 드느니라.
이 욕계 중에서 모든 거친 번뇌를 꾸짖게 되나니, 아끼고 탐하고 성내고 질투하고 부끄럼 없고 수줍은 줄 모르는 것이라. 이런 인연으로 열반을 얻느니라. 욕계의 도는 성품이 용맹하니, 왜냐 하면 4과를 얻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욕계에는 중열반이 있고 색계에는 없느니라.
선남자여, 중열반에 세 가지가 있으니, 상과 중과 하니라. 상은 몸을 버리고서 욕계를 떠나지 않고 열반을 얻고, 중은 처음 욕계를 떠나서 색계에 이르기 전에 열반을 얻고, 하는 욕계를 떠나고 색계의 끝에 이르러서야 열반을 얻나니, 상어가 먹이를 얻고는 머무는 데 비유하였으니, 이 사람도 그러하니라. 어떤 것을 머문다 이름하는가. 색계와 무색계에 처해 있으면서 몸을 받는 것이니, 그러므로 머문다 하며, 욕계의 인간·천상·지옥·축생·아귀의 몸을 받지 아니하므로 머문다 하며, 이미 한량없는 번뇌의 결박을 끊고 조금만 남았으므로 머문다 하느니라. 다시 무슨 인연으로 머문다 이름하는가. 마침내 범부와 함께하는 일을 짓지 아니하므로 머문다 하며, 스스로 두려움이 없고 다른 이도 두려움이 없게 하므로 머문다 하며, 두 가지 애욕인 간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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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는 일을 멀리 여의었으므로 머문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저 언덕에 이른다 함은 아라한·벽지불·보살·부처님을 비유한 것이니, 마치 거북이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는 것과 같으니라. 무슨 인연으로 거북에 비유하는가. 다섯 가지를 잘 감추는 연고니, 아라한으로부터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아서 5근을 잘 가리므로 거북에 비유하였고, 물과 육지라 함에서 물은 세간에 비유하였고, 육지는 출세간에 비유하였으며, 여러 성인들도 또한 이와 같이 능히 모든 나쁜 번뇌를 능히 관찰하므로 저 언덕에 이른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닌다고 비유하였느니라.
선남자여, 항하 속의 일곱 가지 중생이 비록 고기라 거북이라 하는 이름은 다르나 물을 떠나지 아니함과 같이 이 미묘한 대열반 가운데도 일천제로부터 위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이름은 비록 다르나 불성이란 물을 떠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 일곱 중생이 선한 법이거나 선하지 않은 법이거나 방편도(方便道)거나 해탈도(解脫道)거나 차제도(次第道)거나 인이거나 과거나 모두 불성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여래가 자기의 뜻을 따르는 말이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인이 있으면 과가 있고, 인이 없으면 과가 없을 것입니다. 열반을 과라고 한다면 항상한 연고로 인이 없을 것이오니, 만일 인이 없다면 어떻게 과라고 이름하오며, 이 열반을 사문이라 이름하며 사문과(沙門果)라 이름하오니, 어찌하여 사문이오며 어찌하여 사문과입니까?”
“선남자여, 모든 세간에 일곱 가지 과보가 있나니, 하나는 방편의 과보[方便果]요, 둘은 은혜 갚는 과보[報恩果]요, 셋은 친근한 과보[親近果]요, 넷은 남은 과보[餘殘果]요, 다섯은 평등한 과보[平等果]요, 여섯은 과보의 과보[果報果]요, 일곱은 멀리 여읜 과보[遠離果]니라. 방편의 과보라 함은 세상 사람들이 가을에 곡식을 많이 거두면, 말하기를 방편의 과보를 얻었다 하나니, 방편의 과보는 업행(業行)의 과보라 이름하며, 이런 과보에는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종자를 말함이요, 먼 인은 물과 거름과 사람의 공력이니, 이것을 방편의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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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느니라. 은혜 갚는 과보라 함은 세상 사람이 부모에게 공양하면, 부모가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 낳아 길러 준 과보를 받는다’ 하며, 자식이 능히 은혜를 갚으므로 과보라 하느니라.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니라. 가까운 인은 부모의 과거의 선한 업이요, 먼 인은 곧 낳은 바 효자니, 이것을 은혜 갚는 열매라 하느니라.
친근한 과보라 함은 마치 어떤 이가 선지식을 친근하면 수다원과으로부터 아라한과까지를 얻나니, 이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지금 친근한 과보를 얻었노라’ 하느니라.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믿는 마음이요, 먼 인은 선지식이니, 이것을 친근한 과보라 하느니라. 남은 과보라 함은 살생하지 않음을 인하여 셋째 번 몸에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남은 과보라 하며, 이런 과보에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함이요, 먼 인은 장수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남은 과보라 하느니라. 평등한 과보라 함은, 세계란 그릇[世界器]을 말함이니라.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중생들이 열 가지 선한 업을 닦음이요, 먼 인은 3재(災)를 말함이니, 이것을 평등한 과보라 하느니라.
과보의 과보라 함은 마치 사람이 청정한 몸을 얻고는 몸과 입과 마음의 청정한 업을 닦음과 같나니, 이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과보의 과보를 얻었노라’ 하느니라.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현재의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함이요, 먼 인은 과거의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함이니, 이것을 과보의 과보라 하느니라.
멀리 여읜 과보라 함은 곧 열반이니, 모든 번뇌를 여읜 온갖 선한 업은 열반의 인이니라. 이 인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곧 3해탈문이요, 먼 인은 한량없는 세월에서 닦은 선한 법이니라.
선남자여, 세간의 법에서 혹은 내는 인[生因]을 말하고, 혹은 나타내는 인[了因]을 말하는 것처럼 출세간의 법도 그와 같아서 내는 인도 말하고, 나타내는 인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3해탈문과 37품(品)은 모든 번뇌를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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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나지 않는 내는 인[不生生因]이 되고, 열반을 위하여는 나타내는 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번뇌를 멀리 여의면 분명하게 열반을 보게 되나니, 그러므로 열반에는 나타내는 인만 있고 내는 인은 없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어찌하여 사문나(沙門那)며, 어찌하여 사문과입니까?’ 하였나니, 선남자여, 사문나는 곧 8정도(正道)요, 사문과는 도로부터 필경에 모든 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음을 영원히 끊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문나라 사문과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8정도를 사문나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세상에서 말하기를 사문(沙門)은 궁핍이라 하고, 나(那)는 도라 하나니, 도라는 것은 온갖 궁핍을 끊고 온갖 도를 끊음이니라. 이런 뜻으로 8정도를 사문나라 하며, 이 도로부터 과를 얻으므로 사문과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또 사문나라 함은 세상 사람으로서 고요한 데를 좋아하는 이도 사문나라 하나니, 도라는 것도 그러하여 행자(行者)로 하여금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일과 삿된 목숨[邪命]을 여의고 고요함을 즐기게 하므로 사문나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세상에서 하등 사람으로서 상등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사문나라 하나니, 도라는 것도 그와 같아서 하등 사람으로 하여금 상등 사람이 되게 하므로 사문나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아라한으로서 이 도를 닦는 이는 사문과를 얻나니, 그러므로 저 언덕에 이르렀다고 이름하느니라. 아라한과는 곧 무학(無學)의 오분법신(五分法身)이니,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니라. 이 다섯 가지로 인하여 저 언덕에 이를 수 있으므로 저 언덕에 이른다 이름하며, 저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태어나는 일이 끝났고, 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이미 마쳤고, 다시 생사[有]를 받지 않노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아라한은 3세(世)에 태어나는 인연을 영원히 끊었으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태어나는 일이 끝났다’ 하고, 삼계의 5음으로 이루는 몸을 끊었으므로 ‘나는 태어나는 일이 끝났다’ 하고, 닦는 범행을 마쳤으므로 ‘범행이 이미 섰다’ 말하고, 또 도를 배움을 버렸으므로 ‘이미 섰다’고 이름하며, 본래 구하던 일을 오늘 얻었으므로 ‘할 일을 이미 마쳤노라’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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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도를 닦아서 과를 얻었으므로 ‘이미 마쳤노라’ 말하며, 다하는 지혜[盡智]와 나지 않는 지혜를 얻었으므로 말하기를 ‘나는 태어나는 일이 이미 끝났고 모든 유[有]의 결박을 다하였다’ 하나니, 이런 뜻으로 아라한을 이름하여 저 언덕에 이르렀다[到彼岸] 이름하느니라. 아라한과 같이 벽지불도 그러하며, 보살과 부처님께서는 6바라밀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므로 저 언덕에 이르렀다 이름하느니라. 이 부처님과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6바라밀을 구족하였다 하나니, 왜냐 하면 6바라밀의 결과를 얻은 까닭이며, 결과를 얻었으므로 구족하였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일곱 중생은 몸을 닦지 아니하고 계행을 닦지 아니하고 마음을 닦지 아니하고 지혜를 닦지 아니하나니, 이 네 가지 일을 닦지 아니하면, 5역죄를 지으며 선근을 끊으며 4중죄를 범하며 3보를 비방하나니, 그러므로 항상 빠진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일곱 사람 중에 능히 선지식을 친근하는 이는, 지성으로 여래의 바른 법을 듣고 속으로 잘 생각하여 법답게 머물며, 몸과 계행과 마음과 지혜를 부지런히 닦나니, 그러므로 생사의 강을 건너서 저 언덕에 이른다 이름하느니라. 만일 말하기를, 일천제들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는 이는 잘못 집착한다 이름하고, ‘얻지 못한다’ 말하면 허망하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일곱 가지 사람은, 혹 한 사람이 일곱을 갖추기도 하고, 혹 일곱 사람이 각각 한 가지를 가지기도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마음과 입으로 달리 생각하고 달리 말하되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마음과 입으로 달리 생각하고 달리 말하되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말하기를, 8성도(聖道)는 범부가 얻을 것이라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며, 만일 말하기를, ‘8성도는 범부가 얻을 것이 아니라’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결정코 불성이 있다거나 결정코 불성이 없다’고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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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내가 경에서 말하기를, ‘두 가지 사람이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나니, 하나는 믿지 않고 성내는 마음이 있는 연고요, 둘은 믿으면서도 뜻을 알지 못하는 연고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사람이 신심은 있으나 지혜가 없으면, 이 사람은 무명을 증장하고, 지혜는 있으나 신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삿된 소견을 증장하느니라. 선남자여, 믿지 않는 사람은 성내는 마음 때문에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가 없다고 말하고, 믿는 이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뒤바뀌게 뜻을 해석하여 법을 듣는 이로 하여금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케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믿지 않는 사람은 성내는 마음이 있는 연고며, 믿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연고로 이 사람들이 불보·법보·승보를 비방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일천제들이 선한 법을 내지 못하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요, 또 말하기를 ‘일천제가 이 일천제를 버리고 다른 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한다 이름하거니와 만일 말하기를 ‘일천제가 능히 선근을 내며, 선근을 내고는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그러므로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말한다 하면, 이 사람은 3보를 비방하지 않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결정코 불성이 있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고 짓지도 않고 나지도 않지만 번뇌의 인연으로 보지 못한다’ 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줄을 알아야 하며, 만일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없는 것이 마치 토끼의 뿔과 같지만 방편으로 나는 것이어서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으며, 있고서는 도로 없어진다’ 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줄을 알아야 하는데, 만일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은 있어도 허공과 같은 것이 아니요, 없어도 토끼의 뿔과 같은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허공은 항상한 연고며, 토끼의 뿔은 없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하리니, 있으므로 토끼의 뿔을 깨뜨리고, 없으므로 허공을 깨뜨린다 하면 이런 말은 3보를 비방함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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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불성은 1법이라 말하지 않고 10법이라 말하지 않고 백 법이라 말하지 않고 천 법이라 말하지 않고 만 법이라 말하지도 않나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모든 선과 불선과 무기(無記)를 모두 불성이라 말하느니라. 여래가 어느 때에는 인 가운데 과를 말하고 과 가운데 인을 말하나니, 이것을 여래가 자기의 뜻을 말함이라 이름하느니라. 자기의 뜻을 따라 말하므로 여래라 이름하고, 자기의 뜻을 따라 말하므로 아라하라 이름하고, 자기의 뜻을 따라 말하므로 삼먁삼불타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이 중생의 불성이 허공과 같다 하시니, 어찌하여 허공과 같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여, 허공의 성품이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요 현재도 아니니,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허공이 과거가 아니니, 왜냐 하면 현재가 없는 연고니라. 법이 만일 현재하다면 과거를 말하려니와, 현재가 없는 연고로 과거가 없느니라. 또한 현재도 없나니 왜냐 하면 미래가 없는 연고니라. 법이 만일 미래라면 현재를 말하려니와, 미래가 없는 연고로 현재가 없느니라. 또한 미래도 없나니 왜냐 하면 현재와 과거가 없는 연고니라. 만일 현재와 과거가 있다면 미래가 있으려니와, 현재와 과거가 없는 연고로 미래가 없느니라. 이런 이치로 허공의 성품이 3세에 잡히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여, 허공이 없는 연고로 3세가 없는 것이요, 있음으로써 3세가 없는 것이 아니니라. 마치 허공화(虛空花)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3세가 없는 것처럼 허공도 그와 같아서 있는 것이 아니므로 3세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물건이 없는 것이 곧 허공이니,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허공은 없으므로 3세에 잡히지 아니하였고, 불성은 항상하므로 3세에 잡히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있는 바 불성과 모든 부처님의 법이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3세가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허공은 없는 연고로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불성은 항상한 연고로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니, 그러므로 불성이 허공과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세간에서 거리낄 것이 없는 데를 허공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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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는, 온갖 부처님 법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불성이 허공과 같다 하며, 이 인연으로 내가 말하기를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불성·열반이 3세에 잡히지 않았지만 있다고 이름하면서, 허공도 3세에 잡히지 아니하였는데, 무슨 연고로 있다고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열반 아닌 것을 위하여서 열반이라 이름하고, 여래 아닌 것을 위하여서 여래라 이름하고, 불성 아닌 것을 위하여서 불성이라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열반이 아니라 하는가. 모든 번뇌의 함이 있는 법이니, 이러한 함이 있는 번뇌를 깨뜨리기 위하여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여래 아니라 함은, 일천제로부터 벽지불에 이르기까지이니, 이런 일천제로부터 벽지불까지를 깨뜨리기 위하여 여래라 이름하느니라. 불성 아니라 함은, 온갖 장벽과 질그릇과 돌 등의 무정물(無情物)이니, 이러한 무정물을 깨뜨리기 위하여 불성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세간에는 허공 아닌 것으로 허공을 상대할 것이 없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에는 4대가 아닌 것으로 상대할 것이 없지만 4대가 있는 것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허공과 상대할 것이 없는 것은, 무슨 연고로 있는 것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열반이 3세에 잡히지 아니한 것처럼 허공도 그렇다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열반은 있는 것이매 볼 수 있고 증득할 수 있으며, 색이며 발자국이며 구절[章句]이며, 유(有)며 모양이며 반연이며 귀의할 곳이며 고요[寂靜]하며 밝게 빛나며 편안하며 저 언덕이니, 그러므로 3세에 잡히지 않는다 이름하려니와, 허공의 성품은 이런 법이 없나니, 그러므로 없다 하느니라. 만일 이러한 법들을 여의고 다시 있는 법이라면, 마땅히 3세에 잡힐 것이며, 허공이 만일 있는 법과 같을진대 3세에 잡히지 아니할 수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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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허공은 빛도 없고 대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고 하나니, 만일 빛이 없고 대할 수가 없고 볼 수가 없으면, 이것은 심수법(心數法)이요, 허공이 만일 심수법과 같다면, 3세에 잡히지 않는다고 할 수가 없으며, 만일 3세에 잡힌다면, 곧 4음(陰)이니, 그러므로 4음을 여의고는 허공이 없느니라. 또 선남자여, 외도들이 말하기를 ‘허공은 곧 광명이라’ 하거니와, 만일 광명이라면 그것은 색법(色法)이니, 허공도 그와 같이 색법이라면 곧 무상이며, 무상한 연고로 3세에 잡힐 것이거늘, 어째서 외도들은 3세가 아니라 하는가. 만일 3세에 잡힌다면 허공이 아닐 것이며, 또한 허공이 항상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선남자여, 또 어떤 이가 말하기를 ‘허공이 머물 곳’이라 하나니, 만일 머물 곳이 있다면 곧 색법일 것이며, 온갖 처소는 다 무상이어서 3세에 잡히는 것인데, 허공은 항상한 것이면서 3세에 잡히지 않겠는가. 만일 처소라 말한다면 허공이 없음을 알지니라. 또 어떤 이가 말하기를 ‘허공은 곧 차례[次第]라’ 말하나니, 만일 차례라면 이것은 셈하는 법이며, 만일 셀 수 있다면 3세에 잡힐 것이니, 3세에 잡힌다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또 말하기를 ‘허공은 세 법을 여의지 않았다’ 하나니, 공함[空]과 실함[實]과 공하고 실함[空實]이니라. 만일 공한 것이 맞다면, 허공이 무상한 법일 것이니, 왜냐 하면 실한 곳에는 없는 연고며, 만일 실한 것이 맞다면, 역시 허공이 무상한 것이니, 왜냐 하면 공한 곳에는 없는 연고며, 만일 공하고 실한 것이 맞다면 허공이 역시 무상한 것이니, 왜냐 하면 두 곳에 없는 연고니, 그러므로 허공을 이름하여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는 허공이 만들 수 있는 것[可作法]이라 하여 말하기를 ‘나무를 치우고, 집을 헐어서 허공을 만들며, 평탄하게 하여 허공을 만들고 허공의 빛을 그려 바닷물과 같이 할 수 있으므로, 허공을 만들 수 있는 법이라’ 한다면, 온갖 만든 법은 모두 무상함이 질그릇과 같나니, 허공도 만일 그럴진댄 반드시 무상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모든 법 가운데 걸림이 없는 곳을 허공이라 이름한다’고 할진댄 이 걸림없는 곳이 한 법 있는 곳에 구족하게 있느냐, 부분으로 있느냐. 만일 구족하게 있다면 다른 곳에는 허공이 없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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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부분으로 있다면 곧 이것과 저것이 셀 수 있는 법일 것이니, 만일 셀 수 있다면 무상한 줄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는 말하기를 ‘허공의 걸림없는 것이 있는 것과 함께 합해진다’ 하며, 또 말하기를 ‘허공이 물건에 있는 것이 마치 그릇 안의 과실과 같다’ 하거니와, 둘이 다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함께 합해진다고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다른 업이 합해진다면 나는 새가 나무에 모이는 것 같을 것이요, 둘은 같은 업이 합해진다면 두 양(羊)이 서로 받는 것과 같을 것이요, 셋은 이미 합해진 것이 함께 합해진다면 두 쌍의 손가락이 한 곳에 합해져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니라.
만일 다른 업이 함께 합해진다면, 다르다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물건의 업이요, 또 하나는 허공의 업이니라. 만일 허공의 업이 물건에 합해진다면 허공은 무상한 것이요, 물건의 업이 허공에 합해진다면 물건은 두루하지 못한 것이니, 두루하지 못하다면 그것도 무상한 것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허공은 항상하고 성품이 동하지 않는 것인데, 동하는 물건과 합해진다’면 그 이치가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허공이 만일 항상하다면 물건도 마땅히 항상할 것이요, 물건이 만일 무상하다면 허공도 무상할 것이며, 만일 허공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면 옳지 아니하니라. 만일 같은 업이 합해진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허공은 두루하다 이름하는 것인즉, 업과 더불어 합해진다면 업도 마땅히 두루할 것이며, 만일 두루하다면 온갖 것에 두루할 것이며, 온갖 것에 두루하다면 마땅히 온갖 것에 합해졌을 것이니, 그렇다면 합해지고 합해지지 않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만일 이미 합해진 것이 함께 합해진다면, 두 쌍의 손가락이 합해진다는 것과 같을 것이니,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먼저 합해짐이 없다가 뒤에 바야흐로 합해지는 까닭이니, 먼저 없다가 뒤에 있다면 이는 무상한 법이니라. 그러므로 허공이 이미 합해진 것이 함께 합한 것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마치 세간법이 먼저는 없다가 뒤에 있다면, 그 물건은 무상한 것임과 같아서 허공이 그렇다면 역시 무상할 것이니라. 만일 허공이 물건에 있는 것이, 마치 그릇 안의 과실과 같다고 말하면, 그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이 허공이 처음에 그릇에 없었을 때에는 어디에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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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가. 만일 있는 곳이 있다면 허공이 여럿이리라. 만일 여럿이라면 어떻게 항상하다 말하고, 하나다 말하고, 두루하다 말하겠는가. 만일 허공이 허공을 떠나서 있는 데가 있다면, 다른 물건도 허공을 떠나서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허공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머무는 데를 가리켜 허공이라 이름한다면, 허공이 무상한 법임을 알 것이니라. 왜냐 하면 가리키는 것은 사방이 있나니, 만일 사방이 있다면 허공도 사방이 있음을 알지니라. 모든 항상한 법은 모두 방소가 없거늘, 방소(方所)가 있는 연고로 허공이 무상할 것이며, 만일 무상하다면 5음을 여의지 못한 것이니, 5음을 여의려 하면 있는 데가 없을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법이 인연을 따라 머문다면, 이 법은 무상하다 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모든 중생이나 나무가 땅으로 인하여 머무는 것처럼, 땅이 무상한 연고로 땅으로 인한 물건도 차례로 무상하니라. 선남자여, 땅이 물로 인하였거든 물이 무상한 연고로 땅도 무상하며, 물이 바람으로 인하였다면 바람이 무상한 연고로 물도 무상하며, 바람이 허공으로 인하였다면 허공이 무상한 연고로 바람도 무상하니라. 만일 무상한 것이라면 어떻게 말하기를 허공이 항상하여서 온갖 곳에 두루한다 하겠는가.
허공이 없는 것이므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니, 마치 토끼뿔이 없는 물건이므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불성은 항상한 연고로 3세에 잡힌 것이 아니요, 허공은 없는 연고로 3세에 잡히지 않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세간과 더불어 함께 다투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고 말하면 나도 있다고 말하고,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없다고 말하면 나도 없다고 말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몇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 법에 더럽히지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 법에 더럽히지 아니하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나는 신심이요, 둘은 계율이요, 셋은 선지식을 친근함이요, 넷은 안으로 잘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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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 다섯은 정진을 구족함이요, 여섯은 바른 생각[正念]을 구족함이요, 일곱은 지혜를 구족함이요, 여덟은 바른 말을 구족함이요, 아홉은 바른 법을 좋아함이요, 열은 중생을 불쌍히 여김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러한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 법에 더럽히지 아니함이 우발라꽃과 같으리라.”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고 말하면 나도 있다고 말하고,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없다고 말하면 나도 없다고 말한다 하시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 없다 함이옵니까?”
“선남자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말하기를 ‘색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으며, 나아가 식도 그렇다’ 하나니,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고 말하고 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말하기를 ‘색은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이 없으며, 수·상·행·식도 그러하다’ 하나니,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없다고 말하고 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의 지혜 있는 이는 곧 부처님과 보살과 모든 성인이니, 모든 성인이 색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고 하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부처님의 색신이 항상하여 변역함이 없다 하시나이까?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말하는 바 없다는 법을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있다고 하시나이까? 여래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찌하여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의 법에 더럽히지 않는다 하시나이까? 여래께서 세 가지 뒤바뀜을 여의셨으니, 생각이 뒤바뀜, 마음이 뒤바뀜, 소견이 뒤바뀜이옵니다. 마땅히 부처님 색신이 무상하다고 말씀하실 것이거늘 이제 항상하다 하시니, 어떻게 뒤바뀜을 여의시고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는다 하시겠나이까?”
“선남자여, 범부의 색신은 번뇌로 생긴 것이매, 지혜 있는 이가 말하기를, ‘색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가 없다 하지만 여래의 색신은 번뇌를 여의었느니라. 그러므로 항상하고 변역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색이 번뇌로부터 생긴다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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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번뇌가 세 가지니, 욕루(欲漏)·유루(有漏)·무명루(無明漏)니라.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이 3루의 허물을 관찰할 것이니, 왜냐 하면 허물을 알고는 멀리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마치 의사가 먼저 병인의 맥을 짚어보고 병난 데를 알고야 약을 주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소경을 데리고 가시덤불 속에 갔다가 버리고 돌아온다면, 소경은 그 뒤에 헤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며, 설사 헤어나더라도 몸이 모두 찢겼을 것이니, 세간의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세 가지 번뇌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으면 따라다닐 것이며, 만일 보았으면 멀리 여읠 것이요, 허물을 알고는 과보를 받더라도 과보가 가벼울 것이니라. 선남자여, 네 가지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업을 지을 때는 중하고 과보를 받을 때에는 가벼우며, 둘은 업을 지을 적에는 가볍고 과보를 받을 때에는 중하며, 셋은 업을 지을 때도 중하고 과보를 받을 때도 중하며, 넷은 업을 지을 때도 가볍고 과보를 받을 때도 가벼우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만일 번뇌의 허물을 관찰하였으면, 이 사람은 업을 짓고 과보를 받음이 모두 가벼우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느니라.
‘나는 마땅히 이런 번뇌를 멀리 여의고, 다시는 이러한 나쁜 일을 짓지 않아야 할 것이니, 왜냐 하면 내가 지금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의 업보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며, 내가 만일 도를 닦으면 그 힘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괴로움을 파괴하리라.’
이 사람이 이렇게 관찰하고는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이 미약하여질 것이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가벼워짐을 보고는 마음이 기뻐지며,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이렇게 되는 것이 모두 도를 닦은 인연의 힘이니, 나로 하여금 불선한 법을 여의고 선한 법을 친근하게 할 것이며, 그리하여 현재에 바른 도를 보게 될 것이니,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야 하리라’ 하며, 이 사람이 이렇게 부지런히 도를 닦은 힘으로 한량없는 나쁜 번뇌를 멀리 여의며,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의 과보를 여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계경(契經)에서 말하기를 ‘마땅히 모든 유루의 번뇌와 유루의 인을 관찰할지니, 왜냐 하면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만일 유루만 보고 유루의 인을 보지 아니하면 모든 번뇌를 끊지 못하리라. 왜냐 하면 지혜 있는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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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하기를 ‘번뇌가 이 인으로부터 생기나니, 내가 이제 인을 끊으면 번뇌가 생기지 못하리라’ 하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의사가 먼저 병의 원인을 끊으면 병이 생기지 못하는 것처럼, 지혜 있는 이가 먼저 번뇌의 인을 끊음도 그와 같으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먼저 인을 관찰하고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되, 선한 인으로부터는 선한 과보가 생기는 줄을 알고, 나쁜 인으로부터는 나쁜 과보가 생기는 줄을 알며, 과보를 관찰하고는 나쁜 인을 멀리 여의느니라. 과보를 관찰하고는 다시 번뇌의 경중을 관찰하며 경중을 관찰하고는 먼저 중한 것을 여읠지니, 중한 것을 여의면 가벼운 것은 스스로 물러가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만일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면, 이 사람은 부지런히 도를 닦아서 쉬지도 아니하고 뉘우치지도 아니하며, 선지식을 친근하고 지성으로 법을 들으리니, 이러한 모든 번뇌를 멸하기 위한 연고니라. 선남자여, 마치 병자가 자기의 병이 가벼워 반드시 나을 줄을 알면, 비록 쓴 약을 먹더라도 먹고 후회하지 아니하나니, 지혜 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부지런히 성인의 도를 닦으면서 기뻐하고, 근심하지 않고 쉬지 않고 후회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사람이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면, 번뇌를 없애기 위하여 부지런히 성인의 도를 닦을 것이니, 이 사람은 번뇌로부터 색이 생기지 아니할 것이며,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와 같으려니와, 만일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지 못하면, 부지런히 닦지 아니하여 이 사람은 번뇌로부터 색이 생길 것이니,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고, 번뇌를 끊기 위하여 도를 닦는 이는 곧 여래니, 이런 인연으로 여래의 색이 항상하며, 나아가 식이 항상하니라. 선남자여,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지 못하는 이는, 곧 범부니, 그러므로 범부의 색이 무상하며, 나아가 수와 상과 행과 식도 모두 무상하니라.
선남자여, 세상의 지혜 있는 모든 성인과 보살과 부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이치를 말씀하셨고, 나도 그와 같이 두 가지 이치를 말하였나니, 그러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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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내가 말하기를 ‘세상의 지혜 있는 이와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의 법에 더럽히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가섭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유루란 것은 어찌하여 욕루·유루·무명루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욕루라 함은 안으로의 나쁜 각관(覺觀)이 바깥 인연으로 인하여 욕루를 낸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예전에 왕사성에서 아난에게 이르기를 ‘아난아, 네가 이제 이 여인이 말하는 게송을 들으라. 이 게송은 과거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니라. 그러므로 모든 안으로의 나쁜 각관과 밖으로의 모든 인연을 이름하여 탐욕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욕루니라. 유루라 함은 색계·무색계의 안으로의 나쁜 법들과 바깥의 인연들이니, 욕계 중의 바깥 인연들과 안의 각관들을 없앤 것을 유루라 하느니라. 무명루라 함은 나와 내 것을 알지 못하며, 안과 밖을 분별하지 못함을 무명루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명은 모든 번뇌의 근본이니, 왜냐 하면 모든 중생들이 무명의 인연으로 5음·6입·18계에 대하여 생각하고 모양을 짓는 것[作相]을 중생이라 이름하나니, 이것이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뀌었다는 것이니라. 이런 인연으로 모든 번뇌를 내나니, 그러므로 내가 12부경 중에서 말하기를 ‘무명이란 것은 곧 탐욕의 인이며 성내는 인이며 어리석음의 인이라’ 하였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예전에 12부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잘 생각하지 못하는 인연으로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이 생긴다’ 하시더니, 이제는 무슨 인연으로 무명이라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여, 이 두 가지 법은 서로 인이 되고 과가 되어서 서로서로 증장하게 하나니, 잘 생각하지 못하므로 무명을 내고, 무명의 인연으로 잘 생각하지 못함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능히 모든 번뇌를 자라게 하는 것은 다 번뇌의 인연이라 이름하고, 이 번뇌의 인연을 친근함을 무명이요 잘 생각하지 못함이라 하느니라. 종자가 싹을 내는 것과 같아서 종자는 가까운 인이요 4대는 먼 인이니, 번뇌도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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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명이 곧 누라’ 하시더니, 어찌하여 다시 말씀하시기를 ‘무명으로 인하여서 모든 누를 낸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내가 말한 바 무명루라는 것은 안의 무명이요, 무명으로 인하여 모든 누를 낸다는 것은 안과 바깥이니라. 만일 무명루라 말하면 이는 안으로 뒤바뀜[內倒]이라 하나니,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내가 없음을 알지 못함이요, 만일 모든 번뇌의 인연이라 하면 이는 바깥의 나와 내 것을 알지 못한다 이름하며, 만일 무명루라 하면 이는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다 이름하나니, 무명으로부터 5음·6입·18계 등을 내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는 사람은 번뇌의 인을 안다’ 하셨사오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번뇌의 인을 안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무슨 인연으로 이 번뇌를 내며, 무슨 행을 지어서 이 번뇌를 내며, 어느 때에 이 번뇌를 내며, 누구와 함께 있으면 이 번뇌를 내며, 어디에 있으면 이 번뇌를 내며, 무슨 일을 관찰하면 번뇌를 내며, 누구의 집과 와구와 음식과 의복과 탕약을 받았길래 번뇌를 내며, 무슨 인연으로 하품을 변하여 중품을 만들고, 중품을 변하여 상품을 만들며, 하품 업으로 중품을 짓고, 중품 업으로 상품을 짓는가’를 관찰할지니,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하면, 번뇌를 내는 인연을 여의게 되느니라.
이렇게 관찰할 때에 생기지 아니한 번뇌는 막아서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번뇌는 없애어 멸하게 되나니, 그러므로 내가 계경 중에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번뇌를 내는 인을 관찰할지라’ 하였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한 몸으로 어떻게 가지가지 번뇌를 일으키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한 그릇에 여러 가지 씨가 있는데, 물이나 비를 얻으면 제각기 싹이 나는 것과 같이 중생도 그와 같으니라. 그릇은 하나이지만 탐애의 인연으로 가지가지 번뇌를 생장시키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지혜 있는 이는 어떻게 과보를 관찰하여야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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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관찰하기를 ‘번뇌의 인연으로 지옥·아귀·축생을 내며, 번뇌의 인연으로 인간과 천상의 몸을 얻게 되나니, 이것이 곧 무상이요 괴로움이요 공함이요 내가 없음이로다’ 할 것이며, 이 몸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괴로움과 세 가지 무상을 얻는 것이며, 이 번뇌의 인연이 중생으로 하여금 5역죄를 짓고 나쁜 과보를 받게 하며, 선근을 끊고 4중죄를 범하고 삼보를 비방하게 한다 할 것이며, 지혜 있는 이는 내가 이미 이런 몸을 받았으니, 이런 번뇌를 다시 일으켜 나쁜 과보를 받지 않아야 하리라고 관찰할지니라.”
“세존이시여, 무루과(無漏果)도 있거늘, 다시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는 사람은 모든 과보를 끊는다’ 하시니, 무루의 과보도 끊는 가운데 드나이까? 도를 얻은 사람은 무루의 과가 있사오며, 지혜 있는 이는 무루의 과를 구할 것이온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지혜 있는 이는 모든 과보를 끊을 것이라’ 하오며, 만일 끊을 것이라면, 지금 성인들은 어찌하여 있나이까?”
“선남자여, 여래가 어떤 때에는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하고,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하느니라. 마치 세상 사람이 진흙 반죽을 질그릇이라 말하고, 실[縷]을 옷이라 하는 것 등을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한다 하느니라.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는 것은, 소를 보고 여물이라 하고, 사람을 보고 밥이라 하는 것이니, 나도 그와 같이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하느니라. 먼저 경에서 말하기를 ‘나는 마음과 몸[마음으로 인하여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라고 이름하였다]으로 좇아 범천의 곁에 이른다’ 한 것은,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한 것이요,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 함은, 6입은 과거의 업이라 하면, 이것을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성인이 진실로 무루의 과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모든 성인의 도를 닦는 과보에는 다시 누가 생기지 아니하므로 무루의 과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이 이렇게 관찰할 때에 곧 번뇌의 과보를 영원히 멸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관찰하고 나서는 이런 번뇌의 과보를 끊기 위하여 성인의 도를 닦나니, 성인의 도는 곧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이니라. 이 도를 닦고는 모든 번뇌의 과보를 멸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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