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eritage.go.kr/heri/html/HtmlPage.do?pg=/palaces/palacesArchitecture.jsp 

 

국가문화유산포탈 |

궁궐건축의 특징은 뒤로는 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 궁궐을 바라보며 왼쪽에는 사직단, 오른쪽에는 종묘가 있는 좌묘우사를 지켰으며, 왕실의 존엄성과 권위를 상징하기

www.heritage.go.kr

건물명사진설명전(殿)당(堂)합(閤)/각(閣)재(齋)/헌(軒)누(樓)정(亭)

  가장 경식이 높고 규모도 큰 여러 건물들 중 으뜸인 건물이다. 왕, 왕비 또는 상왕 대비, 왕대비등 궐 안의 웃어른이 사용하는 건물에 붙는다. 예)근정전/강령전/교태전/자경전 등
◁ 경복궁 근정전
  전(殿)에 비해 규모는 비슷하나 격은 한단계 낮은 건물이다. 전은 공식적 성격을 띈다면 당은 좀더 사적인 건물에 쓰이며 전데 딸린 부속건물이거나 부속공간의 중심건물을 부르는 말이다. 예)양화당/희정당/명륜당 등
◁ 창덕궁 희정당
  모두 그러는 것은 아니나 전(殿)과 당(堂)의 부속건물이나 혹 은 그것을 보위하는 건물이다. 양정합/일신합/덕성합/규장각/동십자각/곤령합 등
◁ 창덕궁 규장각
  모두 왕실의 주요인물보다는 왕실가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물에 붙여지는데 재(齋)는 주로 일상적 주거용으로, 헌(軒)은 공무적 기능을 가진경우가 많다. 예)낙선재/집옥재/영춘헌/정관헌 등
◁ 창덕궁 낙선재
  원두막처럼 마루를 지면으로부터 높이 띄워 습기를 피하고 통풍이 원활하도록 만든 건물로 휴식과 유희를 주목적으로 하는 건물이다. 예)경회루, 광한루, 용무루 등
◁ 경복궁 경회루
  흔히 정자이며, 휴식이나 연회공간으로 활용된다. 누(樓)와 사용의 목적은 비슷하나 정(亭)은 규모가 작고 개인적인데 비해 누(樓)는 건물이 크고 공공성을 가지며 사적인 행사보다는 공적인 행사를 위한 시설이다. 예)향원정/청의정/상양정 등
◁ 경복궁 향원정

 

교태전 뒤 아미산정원의 멋진 굴뚝들

https://kydong77.tistory.com/15209?category=487412 

 

아미산정원2/경복궁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VZviq_hu7RQ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B%8F%84%EC%A0%84

 

정도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도전(鄭道傳, 1342년[2] ~ 1398년 10월 6일(음력 8월 26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유학자, 혁명가이다. 본관은 봉화이다.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峯)

ko.wikipedia.org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자 최고 권력자였던 그는 조선의 이념적 바탕을 마련하고 모든 체제를 정비하여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으며, 한양 시내의 전각과 거리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제1차 요동 정벌(1388년 음력 6월)과 제2차 요동 정벌(1392년)에 반대하였으나 요동을 정벌할 계획을 세워 명나라와 외교 마찰을 빚었고, 공신과 왕자들이 사적으로 보유한 사병을 혁파하려다가 갈등한다. 그 뒤 요동 정벌을 계획하여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갈등하던 중, 이방원이 정변을 일으킨 뒤 1398년 8월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의 군사들에게 피살되었다. 성리학 이념을 보급하였으며, 그는 안향-백이정-이제현의 학통을 계승한 목은 이색의 문하생이자 정몽주권근의 동문이다.

조선사회에 성리학을 정착, 국교화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정도전은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조정에서 배격되었다. 태종은 그를 역적으로 만든 뒤 정몽주를 추상하였으며, 이후 그는 포은 정몽주와 달리 역적으로 매도되어 오다가 고종 때 복권되었다.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2&cp_code=cp0528&index_id=cp05280176&content_id=cp052801760001&search_left_menu=5 

 

무학대사 - 문화콘텐츠닷컴

무학대사 무학(無學)은 고려 말엽에 태어나 나옹(懶翁)의 법맥을 이어 조선 불교의 터전을 닦은 고승(高僧). 스님의 법명은 자초(自超), 법호는 무학이며 속성은 박(朴)씨로서 삼기군(三岐郡) 즉

www.culturecontent.com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03700&code=kc_age_30 

 

우리역사넷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는 고려 말~조선 초에 활동한 불교 승려이다. 지공(指空)에서 나옹혜근(懶翁慧勤)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전해 받아 저들과 함께 고려 말 삼화상(三和尙)으로 일컬어

contents.history.go.kr

 

무학대사는 생전에 영아행(嬰兒行)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보살의 다섯 가지 행 중 하나로 어린 아이 같은 지혜와 행동을 비유한 것이다. 원래 보살의 지혜는 수승하나 지혜가 얕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그들과 같이 작은 선행을 하는 것이다. 무학의 영아행은 지공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무학대사의 행적을 보면 스승인 지공과 혜근, 특히 혜근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 임제선풍을 견지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일단 그의 출가가 이미 송광사여서 수선사 계통의 임제종(臨濟宗) 간화선(看話禪)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스승 혜근이 조주(趙州)의 돌다리 쌓는 화두를 꺼내어 선문답을 던졌을 때 조주의 수좌도 답하지 못했던 것을 무학이 받아 답했다는 것은 그 깨달음의 경지가 높았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혜근에게 임제선풍을 사사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무학대사는 수선사 계통의 임제종 간화선풍 위에 지공의 선사상을 수용하여 조선 초 불교계의 선풍을 진작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무학대사의 대표적 문도로 기화(己和)가 있으며, 저서로는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 외에 『인공음(印空吟)』 이 있어 목은 이색(李穡)이 그 서문과 발문을 썼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왕십리(往十里)의 유래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cp0433&index_id=cp043309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cp0433&index_id=cp043309

 

www.culturecontent.com

조선 건국초. 송도 도창관에서 등극한 이성계는 조정 대신들과 천도를 결정하고 무학대사에게 도읍지를 찾아달라고 청했다.
무학대사는 옛 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와 지세를 살폈으나 아무래도 도읍지로는 적당치 않았다.
발길을 북으로 옮겨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지세를 자세히 살핀 스님은 그곳이 바로 새 도읍지라고 생각했다.
「음, 땅이 넓고 강이 흐르니 과연 새 왕조가 뜻을 펼만한 길상지로구나.」
무학대사는 흐뭇한 마음으로 걸어오는데 한 노인이 소를 몰면서 소리쳤다.
「꼭 무학 같구나. 왜 바른 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
순간 무학대사의 귀가 번적 뜨였다.
고개를 들고 돌아보니 길 저쪽으로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이 채찍으로 소를 때리며 꾸짖고 있었다.
스님은 얼른 노인 앞으로 달려갔다.
「노인어른, 지금 소더러 뭐라고 하셨는지요?」
「미련하기가 무학 같다고 했소.」
「그건 무슨 뜻의 말씀이신지요? 」
「아마 요즘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공손히 합장하고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제가 바로 그 미련한 무학이옵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곳이 좋은 도읍지라고 보았는데 노인장께서 일깨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좋은 도읍지가 있으면 이 나라 천년대계를 위하여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은 채찍을 들어 서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10리를 더 들어가서 주변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노인어른, 참으로 감사합니다.」
무학대사가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순간, 노인과 소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스님은 가벼운 걸음으로 서북쪽을 향해 10리쯤 걸었다.
그때 스님이 당도한 곳이 바로 지금의 경복궁 자리 근처였다.
「과연 명당이로구나.」
삼각산, 인왕산, 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땅을 보는 순간 무학대사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만면에 미소를 띠운 스님은 그 길로 태조와 만나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여 도성을 쌓고 중궐을 짓기로 했다.
「스님, 성은 어디쯤을 경계로 하면 좋겠습니까?」
태조는 속히 대역사를 시작하고 싶었다.
「북쪽으로는 삼각산 중바위 밖으로 도성을 축성하십시오. 삼각산 중바위(인수봉)는 노승이 5백 나한에게 예배하는 형국이므로 성을 바위 밖으로 쌓으면 나라간 평안하고 흥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학대사의 뜻과는 달리 조정의 일파는 이를 반대, 인수봉안으로 성을 쌓아야한다고 강경히 주장했다.
태조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존경하는 스님의 뜻을 따르고 싶었으나 1등 개국공신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학대사와 대신들의 도성 축성에 관한논쟁은 날이 갈수록 심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학대사는 인수봉 안으로 성을 쌓으면 중바위가 성만을 넘겨다보는 형국이므로 불교가 결코 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도전 일파 역시 인수봉안으로 성을 쌓아야 유교가 흥할 수 있다는 지론이었으므로 무학대사 의견에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입장이 난처해진 태조는 천재를 지내 결정키로 했다.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낸 이튿날이었다.
밤새 내린 눈이 봄볕에 다 녹아내리는데 축성의 시비가 되고 있는 인수봉 인근에 마치 선을 그어 놓은 듯 눈이 녹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정도전 등 대신들은 이 이야기를 태조에게 즉시 고하고 이는 하늘의 뜻이므로 도성을 인수봉 안으로 쌓아야 한다고 거듭 주청했다.
「거참 신기한 일이로구나. 그 선대로 성을 쌓도록 하시오.」
이 소식을 들은 무학대사는 홀로 탄식했다.
「억불의 기운이 감도니 이제 불교도 그 기운이 다해가는구나.」
성이 완성되자 눈이 울타리를 만들었다 하여 눈「설」자와 삥둘러 쌓는다는 울타리「원」자를 써서. 「설울」이란 말이 생겼고 점차 발음이 변하여「서울」로 불리어졌다는 설도있다.
그리고 노인이 무학대사에게 10리를 더들어가라고 일러준 곳은 갈왕자와 십리를 써서 왕십리라고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소를 몰고 가다 무학대사의 길을 안내한 노인은 바로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국사의 후신이라 한다. 이런 이유로 왕십리에 속했던 일부지역이 도선동으로 분할됐다.
도선동은 1959년부터 행정동으로 불리다가 1963년 법정동이 됐다.
왕십리 청련사 부근에는 무학대사가 수도하던 바위터가 있었고 주위에는 송림이 울창했다고 하나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청련사 밑에는 무학과 발음이 같고 글씨는 다른 청련봉에서 도선국사가 수도했다는 전설도 있어 왕십리는 도선·무학 두 스님의 인연지인 것이 같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B%B3%B5%EA%B6%81

 

경복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경복궁(景福宮)은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에 있는 대조선국 왕조의 법궁(法宮, 정궁)이다. 근정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1395년(태조 4년)에 창건하였다. ‘경복(

ko.wikipedia.org

1392년 조선 왕조를 개창한 태조는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1394년(태조 3년) 한양에 천도하자 먼저 종묘 및 사직의 건설에 착수한 다음, 청성백 심덕부에게 명하여 궁궐을 짓게 했다.[1][2] 처음 새 궁궐을 지으려고 잡은 터는 고려 때의 남경 이궁(南京 離宮) 자리였으나 너무 협소하여, 거기서 남쪽으로 조금 옮겨 지금의 경복궁 자리에 건물을 배치하고 전각을 세웠다.태조실록 6권 3년 9월 9일[3] 새 궁궐 경복궁은 태조 4년(1395년) 8월 경기좌도의 인부 4,500명, 경기우도 인부 5,000명, 충청도 인부 5,500명을 징용하면서 시작되어, 같은 해 9월 29일에 1차로 완성되었다.[4] 그러나 이 때는 궁궐 내부 중심부만 이루어졌고, 궁궐을 감싸는 궁성이나 궁궐 앞에 세워지는 의정부나 육조 등의 관청은 몇 해 뒤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5]

그 해인 1395년 음력 10월 태조는 입궐하면서 정도전에게 새 궁궐과 주요 전각의 명칭을 지어 올리게 하였는데, 이때 경복궁의 명칭을 비롯하여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근정문, 정문(현재 광화문) 등 주요 건물의 명칭이 지어졌다. 정도전은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나오는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에서 2자를 따서 “景福宮”(경복궁)이라고 지었다.[2][6] 

 

旣醉以酒(기취이주)-임금이 내리신 술 나 이미 취했네

旣飽以德(기포이덕)-임금의 큰 덕에 배가 이미 부르다네

君子萬年(군자만년)-원컨대 우리 임 천년만년 사시고

介爾景福(개이경복)-큰 복 누리사와 만수무강하옵소서

[출처: 중앙일보] <한자여행>景福-임금의 덕과 만수무강을 기원

 

253 詩經-大雅-生民之什기취(旣醉)-이미 취하여

[대아(大雅) / 생민지십(生民之什) 제3편 기취8장(旣醉八章)]

(1장)

旣醉以酒ㅣ오 旣飽以德호니 (기취이주ㅣ오 기포이덕호니

君子萬年에 介爾景福이로다군자만년에 개이경복이로다 賦也ㅣ라)

이미 술에 취했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가 만년토록 네 큰 복을 크게 하리로다.

○賦也ㅣ라 德은 恩惠也ㅣ라 君子는 謂王也ㅣ라 爾는 亦指王也ㅣ라

○此는 父兄所以答行葦之詩라 言享其飮食恩意之厚하고 而願其受福이 如此也ㅣ라

○부라. 덕은 은혜라. 군자는 왕을 이름이라. 이는 또한 왕을 가리킴이라.

○이는 부형들이 행위의 시에 답한 것이라. 그 음식과 은의의 두터움을 누리고, 그 복을 받음이 이와 같도록 원함이라.

(2장)

旣醉以酒ㅣ오 爾殽旣將하니 (기취이주ㅣ오 이효기장하니

君子萬年에 介爾昭明이로다 군자만년에 개이소명이로다 賦也ㅣ라)


이미 술에 취했고, 네 안주를 이미 올리니

군자가 만년토록 네 밝음을 크게 하리로다.

○賦也ㅣ라 殽는 俎實也ㅣ라 將은 行也ㅣ니 亦奉持而進之意라 昭明은 猶光大也ㅣ라

○부라. 효는 제기에 담아놓은 것이라. 장은 행함이니 또한 받들어 올리는 뜻이라. 소명은 광대함과 같으니라.

俎 : 도마 조, 제기 조

(3장)

昭明有融하니 高朗令終이로다 (소명유융하니 고랑영종이로다

令終有俶하니 公尸嘉告이로다 영종유숙하니 공시가곡이로다 賦也ㅣ라)


밝음이 더욱 성하니 높고 밝아서 마침을 잘하리로다.

마침을 잘함은 시작이 있으니 공의 시동이 좋은 말로 고하도다.

○賦也ㅣ라 融은 明之盛也ㅣ니 春秋傳曰明而未融이라 朗은 虛明也ㅣ라 令終은 善終也ㅣ니 洪範에 所謂考終命이오 古器物銘에 所謂令終令命이 是也ㅣ라 俶은 始也ㅣ라 公尸는 君尸也ㅣ라 周稱王而尸에 但曰公尸는 蓋因其舊니 如秦已稱皇帝而其男女猶稱公子公主也ㅣ라 嘉告는 以善言告之니 謂嘏辭也ㅣ라 蓋欲善其終者는 必善其始하나니 今固未終也ㅣ나 而旣有其始矣니 於是에 公尸ㅣ 以此告之라

○부라. 융은 밝음의 성함이니 『춘추전』에 가로대 밝되 환하지는 않음이라. 랑은 허명이라. 영종은 선종이니 (『서경』) 「홍범」에 이른바 고종명이라. 『고기물명』에 이른바 영종영명이 이것이라. 숙은 비로소라. 공시는 임금의 시동이라. 주나라가 왕이라고 일컫는데 시에 다만 공시라고 이른 것은 대개 그 옛날로 인함이니 마치 진나라가 이미 황제라고 일컬으면서 그 남녀를(아들딸을) 공자와 공주라고 일컫는 것과 같으니라. 가고는 좋은 말로써 고한다는 것이니 복된 말을 이름이라. 대개 그 마침을 잘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그 시작을 잘하니 지금 진실로 마침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이미 그 시작이 있으니 이에 왕의 시동이 이로써 고했느니라.

(4장)

其告維何오 籩豆靜嘉ㅣ어늘 (기곡유하오 변두정가ㅣ어늘

朋友攸攝이 攝以威儀로다붕우유섭이 섭이위의(아)로다 賦也ㅣ라)


그 고함이 무엇인고. 제기가 정결하고 아름답거늘

붕우가 돕는 바가 위의로써 하도다.

○賦也ㅣ라 靜嘉는 淸潔而美也ㅣ라 朋友는 指賓客助祭者ㅣ니 說見楚茨篇하니라 攝은 檢也ㅣ라

○公尸ㅣ 告以汝之祭祀籩豆之薦하니 旣靜嘉矣요 而朋友相攝佐者는 又皆有威儀하야 當神意也ㅣ라 自此至終篇은 皆述尸告之辭니라

○부라. 정가는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움이라. 붕우는 빈객으로 제사를 돕는 자를 가리킴이니, 설명이 초자편에 나타나니라. 섭은 살핌이라.

○공의 시동이 네 제사와 변두에 올린 것으로써 고하니 이미 정결하고 아름답고, 붕우가 서로 잡고 돕는 것은 또한 다 위의가 있어서 신의에 합당하니라. 이로부터 끝 편에 이르기까지는 모두가 시동이 고한 말을 기술한 것이니라.

(5장)

威儀孔時어늘 君子有孝子ㅣ로다 (위의공시어늘 군자유효자(지)ㅣ로다

孝子不匱하니 永錫爾類ㅣ로다효자불궤하니 영석이류ㅣ로다 賦也ㅣ라)

위의가 심히 때에 맞거늘 군자가 효자를 두었도다.

효자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길이 너에게 선함을 주리로다.

○賦也ㅣ라 孝子는 主人之嗣子也ㅣ라 儀禮에 祭祀之終에 有嗣擧奠이라 匱는 竭이오 類는 善也ㅣ라

○言汝之威儀ㅣ 旣得其宜요 又有孝子以擧奠하니 孝子之孝ㅣ 誠而不竭이면 則宜永錫爾以善矣라 東萊呂氏曰君子旣孝而嗣子又孝하니 其孝可謂源源不竭矣로다

○부라. 효자는 주인을 잇는 (큰) 아들이라. 『의례』에 제사를 마침에 유사가 술을 들고 올리니라. 궤는 다함이고, 류는 선함이라.

○너의 위의가 이미 그 마땅함을 얻고, 또 효자가 있어서 술잔을 들어올리니, 효자의 효도가 정성스럽고 끊어지지 아니하면 마땅이 길이 너에게 선으로써 주리라. 동래여씨 가로대 군자가 이미 효도하고 뒤를 이은 아들이 또 효도하니 그 효가 가히 근원하고 근원하여 다하지 않음을 이르도다.

(6장)

其類維何오 室家之壼에 (기류유하오 실가지곤에

君子萬年을 永錫祚胤이로다군자만년을 영석조윤이로다 賦也ㅣ라)

그 선함은 무엇인고. 궁안이 심원하고 엄숙함에

군자가 만년토록 길이 복과 자손을 주리로다.

○賦也ㅣ라 壼은 宮中之巷也ㅣ니 言深遠而嚴肅也ㅣ라 祚는 福祿也ㅣ라 胤은 子孫也ㅣ라 錫之以善이 莫大於此니라

○부라. 곤은 궁중의 후미진 곳이니 심원하고 엄숙함을 말함이라. 조는 복록이라. 윤은 자손이라. 선으로써 줌이 이보다 큼이 없느니라.

(7장)

其胤維何오 天被爾祿하야 (기윤유하오 천피이록하야

君子萬年을 景命有僕이로다 군자만년을 경명유복이로다 賦也ㅣ라)

그 자손은 무엇인고. 하늘이 네게 복을 입혀

군자가 만년토록 큰 명이 따라붙음이 있으리로다.

○賦也ㅣ라 僕은 附也ㅣ라

○言將使爾有子孫者는 先當使爾被天祿하야 而爲天命之所附屬하고 下章은 乃言子孫之事하니라


○부라. 복은 따라붙음이라.

○장차 너로 하여금 자손을 두게 하는 것은 먼저 마땅히 너로 하여금 천록을 입혀서 천명이 따라 붙게 되도록 함을 말하고, 아래 장은 이에 자손의 일을 말함이라.

(8장)

其僕維何오 釐爾女士ㅣ로다 (기복유하오 이이여사ㅣ로다

釐爾女士ㅣ오 從以孫子ㅣ로다 이이여사ㅣ오 從以孫子ㅣ로다 賦也ㅣ라)

그 따라붙음은 무엇인고. 너에게 여사를 주리로다.

너에게 여사를 주고 자손으로써 따르게 하리로다.

○賦也ㅣ라 釐는 予也ㅣ라 女士는 女之有士行者ㅣ니 謂生淑媛하야 使爲之妃(배)也ㅣ라 從은 隨也ㅣ니 謂又生賢子孫也ㅣ라 (旣醉八章이라)

○부라. 이는 줌이라. 여사는 여자가 선비다운 행동이 있는 자이니, 현숙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낳게 하여 배필이 되게 함이라. 종은 따름이니 또 어진 자손을 낳음을 이름이라. (기취8장이라)

旣醉八章 章四句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5023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qVm-IgUp0nY 

 

https://www.youtube.com/watch?v=d-f0-b8vj8U 

 

 

https://www.youtube.com/watch?v=XlNd6vO1KtI 

 

 

https://www.youtube.com/watch?v=QalpUsHBnQg 

 

 

https://www.youtube.com/watch?v=vBSXA6AdI1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