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암정(舟庵亭)"은 경북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웅창마을 강가의 배 모양의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로,
문경 금천에는 "석문구곡"이 있고 그중 제2곡이 주암정(舟庵亭) 이기도 합니다.
주암정이 있는 웅창 마을 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 백성들에게 거둬들인 양곡을 보관하는 곰처럼 큰 창고가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M0hH-8rop0
華樹軒(화수헌)
*전각의 글씨체는 현행 한자체인 예서(隸書) 이전의 한자인 篆書(전서)체의 글꼴.
'볕드는 산'[*운영자 註, 山陽]에서 근대의상을 대여해 입고 촬영한 리플레이스 팀. 리프레이스는 당일치기 문경 여행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다.[사진 리플레이스]
문경 양파밭 폐가에 8만명 몰렸다…90년대생 5인의 기적
https://news.joins.com/article/24052211
https://www.youtube.com/watch?v=jVcfxdUQaPg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knkim2&logNo=221070036458
https://www.youtube.com/watch?v=V-Iz3CpdkHw
https://www.youtube.com/watch?v=doS0Usd9XBw
https://aejiri.tistory.com/entry/%EA%B2%BD%EC%B2%B4%EC%A0%95-%EA%B2%BD%EB%B6%81%EB%AC%B8%EA%B2%BD
문경 청대구곡(淸臺九曲)중 2곡인 벽정(碧亭)에 세워놓은 경체정은 1935년 채묵진과 아들 채홍의가 할아버지인 채성우를 비롯한 7형제를 기리기위해 지은 정자라 하는데 '경체'라는 이름은 시경의 소아편 '상체지화'에서 따온말로 "형제간 우애가 깊어 집안이 번성 한다는 뜻" 이라 한다.
https://kydong77.tistory.com/5122
소아(小雅)
[녹명지십(鹿鳴之什) 제4편 상체8장(常棣八章)]
(1장)
常棣之華ㅣ여 (상체지화ㅣ여 鄂不韡韡아 악불위위아凡今之人은 범금지인은 莫如兄弟니라막여형제니라 興也ㅣ라)
아가위 꽃이여, 환히 드러나 밝지 아니한가. 무릇 이제 사람들은 형제만 같지 못하니라.
(2장)
死喪之威애 (사상지위애 兄弟孔懷하며 형제공회하며 原隰裒矣애 원습부의애 兄弟求矣하나니라 형제구의하나니라 賦也ㅣ라)
죽고 초상나는 두려움에 형제가 심히 생각하며, 언덕이나 진펄에 송장이 쌓임에 형제가 구해주느니라.
(3장)
脊令在原하니 (척령재원하니 兄弟急難이로다 형제급난이로다每有良朋이나 매유양붕이나 況也永歎이니라황야영탄이니라 興也ㅣ라)
할미새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급하고 어렵게 되었도다. 매양 좋은 벗이 있으나 무심코 길이 탄식만 하니라.
(4장)
兄弟鬩于牆이나 (형제혁우장이나 外禦其務ㅣ니라 외어기모ㅣ니라 每有良朋이나 매유양붕이나 烝也無戎이니라 증야무융(우)이니라 賦也ㅣ라)
형제가 담장 안에서 싸우나 밖으로는 그 수모를 막느니라. 매양 어진 벗이 있으나 도와주지 않느니라
(5장)
喪亂旣平하야 (상난기평하야 旣安且寧하면 기안차녕하면雖有兄弟ㅣ나 수유형제ㅣ나不如友生이로다불여우생이로다 賦也ㅣ라)
초상과 어지러움이 이미 평정되어 이미 편안하고 편안하면 비록 형제가 있으나 벗만 같지 못하니라.
(6장)
儐爾籩豆하야 (빈이변두하야 飮酒之飫ㅣ라두 음주지어ㅣ라두 兄弟旣具ㅣ라아 형제기구ㅣ라아 和樂且孺ㅣ니라 화락차유ㅣ니라 賦也ㅣ라)
네 변두를 진열하여 술을 마심을 싫도록 하더라도 형제가 이미 갖추어져야 화락하고 또 사모하느니라.
(7장)
妻子好合이 (처자호합이 如鼓瑟琴이라두여고슬금이라두 兄弟旣翕이라아 형제기흡이라아 和樂且湛이니라 화락차담이니라 賦也ㅣ라)
처자가 좋아하고 합함이 비파와 거문고를 뜯는 것과 같아도 형제가 이미 화합하여야 화락하고 또한 즐거우니라.
(8장)
宜爾室家하며 (의이실가하며 樂爾妻帑를 낙이처노를 是究是圖ㅣ면 시구시도ㅣ면 亶其然乎ㅣㄴ저 단기연호ㅣㄴ저 賦也ㅣ라)
네 실가를 착하게 하며, 네 아내와 자식을 즐거워함을 이에 궁구하고 이에 도모하면 그 그러함을 믿을진저.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5122
*시경을 배운 적이 없는 부모님들께서 그토록 형제우애를 일렀건만, 결혼하고 나면 여러 가지 이유로 남남이 되는 세태를 생각하며 '경체정' 덕분에 [상체8장(常棣八章)]을 다시 읽어 본다.
景棣亭記 4개에다 관련 글 1편까지 편액해 걸어 둔 걸 보면 어지간히 떵떵거리고 살던 부유한 집안의 정자임을 추정할 수 있다. 정자 앞 바위들도 제대로 품격을 갖추었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ws2655&logNo=220774797055
舟巖亭記(주암정기)
웅연의 남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모양이 흡사 배가 언덕에 정박하여 길게 매여 있는것 같았다.
옛날에 나의 선조 상사 부군(채익하 1633~1675) 일찍이 시내를 거슬러 오르며 노날고 즐기면서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붙였다.
이로 인해 주암으로 자신의 호를 삼았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이 바위를 찿아와 유람하는 사람은 모두,사람은 가고 없고 이름만 남은 데 대한 감회를 가지게 되었다.
옛날 집안일로 모임을 열었는데 사손인 蔡宗鎭(1907~1958)씨가 슬픈 기색을 띠고 나에게 "대게 사람은 선조가 지나 다니던 곳이라도 그 유적을 보호하기 위하여 혹 글씨를 새기고 집을 지어 그 뜻을 기념하고자 하는 일이 허다하다.
하물며 이 주암은 선대에서 뜻을 기탁한 곳으로 마을 곁에 가까이 있어서 날마다 접하지 않는 날이 없다.
그러하니 어찌 정자 하나를 경영하여 국을 봐도 조상이 보이는 사모의 정을, 진氏의 思亭처럼 의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옳다, 옳다! 다만 각 집안이 힘이 약하여 크게 펼 수 없어 몇 대가 지나도록 그저 마음으로 계획할 뿐이었다.
만약 다시 시일을 끌면 내년이 올해와 같고 또한 그 후년이 또한 이와 같을 것임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곧바로 서로 의논하여 약간의 재물을 모았는데 마침 이웃 마을의 빈 관청을 매입하여 짧은 목재는 버리고 긴 것을 취하고 때를 깍아내고 틈을 채웠다. 동서로 방을 두고 가운데 마루를 두었는데 칸이 비좁아 겨우 무릎을 들일 수 있는 정도였다.
지은 것 중에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혹 있을 것이나 난간에 기대어 조망하면 천주봉이 북쪽에 우뚝하여 완연히 만 길의 돛을 걸어놓은 듯하고, 금강이 남쪽으로 흘러 의영히 한 줄기 닻줄처럼뻗어 있었다.
그 밖의 천석의 아름다웁과 연하의 빼어난 경관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우리 집안에 전하는 하나의 명승이 되기에 충분 하였다.
지금 이곳에 정자를 세운 것은 다만 그런대로 갗춤을 취한 것이지 선대의 유업을 잘 계승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선조를 위하는 방법이 어찌 건물의 넓고 좁음에 달려 있겠는가?
오직 유지를 우러러 채득하며 잘 계승할 길을 생각하면 이것이 이른바 "너의 선조를 욕되게 함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 된다.
대게 부군이 굳세고 분명한 의지와 달통하고 명확한
학식을 지니고 주암에 인연하여 그것을 아호로 삼은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아! 부군은 밝은 시대에 나라를 경영할 목적으로 큰 강을 지나갈 배와 노가 되어 한 시대를 안전한 반석에 둘 수 잇었으니,이것이 공의 본분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중도에서 갑자기 돌아가셨으니(1675년 43세), 지금껏 무궁한 한이 되었도다.
모든 우리 후손들은 선조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삼아 본분을 지키고 행실을 삼가서 선조가 남긴 법도를 실추 시키지 않고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하니 어찌 다만 정자 하나를 자은 것을 오 일을 마쳤다고 할 수 있겠느가?
시험삼아 저 바위의 형상을 살펴 보면 비록 사납게 출렁이는 물결 위에 떠 있는 듯하나 중후하여 옮겨지지 않으며,
설령 배를 유지로 옮길 힘이 있더라도 움직일 수 없다.
혹 배에 물이 새는 시대가 될지라도 영원히 가라앉을 염려가 없다. 그렇다면 하늘이 이 바위 배를 은밀하게 숨겨 두었다가 일찍이 우리 상사 선조를 기다려 오늘에 전한 것이 아니겠는가?
대게 이곳에 오르고 이곳에 노니는 사람들은, 한갓 서까래가 그다지 화려하지 않음과 원림이 광할하지 않음에 마음을 두지말고, 다만 물결을 따라 아래위로 흔들리지 않고 또 세상과 더불어 부침하지 않으며 우뚝이 마치 큰 강 중류의 지주석과 같음을 보라.
돌이켜 이 몸이 세상을 건너감도 또한 이 정자가 주암에 실린 것과 같음을 생각하고 가벼이 움직이지 않는 까닭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믈이 모두 제 자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하기를 바라노라 망령되고 경솔함을 헤아리지 않고 간략히 전말을 서술하여 기문(記文)으로 삼는다
공사 기간: 1942 3~1942.9
嗣孫 菜宗鎭(사손 채종진(1907~1958) 舟巖亭記 9대손 채홍탁(蔡鴻鐸) 撰
배 모양의 바위에다 정자를 앉힌 것이 신기했는데 그 안내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번역소설을 남긴 채수의 6세손의 아이디어라니 채수의 DNA는 주암정에 고스란히 유전된 듯하여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https://kydong77.tistory.com/20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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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산양면 현리는 인천 채(蔡)씨 집성촌으로 근대 정치인물로는 6선 국회의원으로, 11대 국회의장을 역임한 채문식(蔡汶植, 1925년 1월 16일 ~ 2010년 6월 26일)씨가 이곳 현리 출신이다.
*내가 철부지 어렸을 적에, 친정오신 고모님께서 입이 닳도록 자랑하시던 산양 현리여서 절경 9谷까지 갖춘 이곳이 마치 고향 같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C%B1%84%EB%AC%B8%EC%8B%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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