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stLmJpJfMAs
https://www.fnnews.com/news/202206231815172667
23일 타계한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저서 '경제학원론'(율곡출판사)은 경제학도들이 탐독하는 경제학 분야의 대표적 교과서다. 1974년 처음 발간된 이 책은 2020년 11판까지 나와 애독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5판부터는 고인의 수제자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어 전성인 홍익대 교수, 김영식 서울대 교수도 공저자로 나서 최신 이론을 반영한 개정판을 펴냈다.
조순, 노회(老懷)
平生構想未全空
평생구상미전공, 평생의 내 구상 아주 공허한 것은 아니었구나.
隨運微機遇適中
수운미기우적중, 운수에 따라 작은 기회에 우연히 적중한 것도 있다네
望九老身留本性
만구노신류본성, 구십을 바라보며 몸은 늙어도 본성은 그대로 남아
年重日課少時同
년중일과소시동, 해가 가도 하루 일과는 젊을 때와 같구나
* 老懷 : 노년의 생각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821
조순, 인생의 지혜/ 2021. 5. 10.
https://www.youtube.com/watch?v=TSo_JxyaEh4&t=201s
* 여의도 공원화 정책 실패, 공무원수의 과다 등의 지적이 인상적이네요.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20624/114087046/1
조순 前경제부총리 1928∼2022
정운찬-이창용 등 제자 배출… ‘경제학원론’은 학생 필독서 꼽혀
서울시장때 여의도 공원 조성, 한나라당 초대 총재도 지내
尹 “학자-공직자로 큰 족적” 조문
2017년 구순을 맞은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DB
고인은 노태우 정부 시절(1988∼1993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서울시장에 당선돼 행정가로 변신했다. 시장 재임 후에는 한나라당 초대 총재를 맡았다.
평생 학자로 살 것 같았던 고인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현실 참여형 학자’로 변신했다. 육사 영어 제자였던 노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88년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다. 1992년부터 1년간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를 두고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사표를 냈다. 이후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대쪽 학자’ 이미지를 갖게 됐다.
정계에 발을 디딘 것은 1993년 당시 아태평화재단 김대중 이사장의 권유였다. 재단 자문위원을 맡아 활동한 고인은 이후 민주당에 입당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다.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첫 출근길에 종로구 혜화동 공관에서 시청까지 버스를 타는 등 ‘소통’을 강조했다. 당시 아스팔트로 덮여 있던 여의도광장을 나무가 우거진 여의도공원으로 조성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많은 이들이 그의 길고 빽빽한 흰 눈썹과 번뜩이는 눈빛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그런 그를 일컬어 ‘백미(白眉·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라고 했고, 판관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가 한창 인기일 때는 ‘서울 포청천’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산행을 즐겨 ‘산신령’이라고도 했다. 그는 산신령이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했다.
2017년 구순을 맞은 고인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쓴 ‘노회(老懷)’라는 제목의 한시(漢詩)를 들려줬다. ‘평생의 내 구상 아주 공허한 것은 아냐(平生構想未全空)/운에 따라 작은 기회에 우연히 적중한 것도 있다네(隨運微機遇適中)/구십을 바라보며 몸은 늙어도 본성은 그대로 남아(望九老身留本性)/해가 가도 하루 일과는 젊을 때와 같구나(年重日課少時同).’ 나이가 들었음에도 항상 젊을 때처럼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빈소에서 유족 곁을 지킨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올해 5월 내놓은 책 ‘나의 스승, 나의 인생’에서 “90세가 훨씬 넘으셨으나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보가 많다. 아무리 써도 고갈되지 않는 용지불갈(用之不渴)이라고나 할까. 우리에게도 항상 용지불갈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고 적었다. 부총리 재직 때 비서관이었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매사에 사사로움 없이 사안을 판단하시고 우리 경제가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고 올바르게 갈 수 있을지 늘 고민하셨다”고 회고했다.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48170.html
조 전 부총리는 1968년부터 20년간 모교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좌승희 전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등 ‘조순학파’ 제자들을 가르치며 정 전 총리와는 ‘경제학 원론’을 공저했다.고인은 노태우씨 제의를 받아들여 1988년 노태우 정부의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발탁됐다. 이후 한국은행 총재, 민선 1기 서울시장, 15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총재만 3번 맡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참고]
https://kydong77.tistory.com/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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