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5M1rYW5Jl_k 

 

나룻배와 행인
ㅡ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https://m.cafe.daum.net/vipassanacenter/MhEB/162

 

뱀의 비유 경(M22)-1

뱀의 비유 경(M22)Alagaddūpama Sutta 대림스님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533-568쪽 법문의 배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

m.cafe.daum.net

 

법문의 배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에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이런 아주 나쁜 견해[惡見]가 생겼다.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3. 많은 비구들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도반들이여.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비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러한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하려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다.

 

"도반 아릿타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은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고깃덩이 비유로 … 건초 횃불의 비유로 … 숯불 구덩이의 비유로 … 꿈의 비유로 …

빌린 물건의 비유로 … 과일이 열린 나무의 비유로 … 도살장의 비유로 … 칼과 쇠살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그 비구들과 더불어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지만

그 나쁜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하여 주장했다.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4. 그 비구들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그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할 수 없자

세존을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나릿타 비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가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세존이시여, 그러자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라는 비구는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도반들이여.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러한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하려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이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저희들이 계속해서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했지만

그는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그 나쁜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하여 주장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그 나쁜 견해를 멀리 여의게 할 수가 없어 이 사실을 세존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5.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른 비구를 부르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말이라 전하고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불러오라.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라고."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아릿타여, 스승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도반이여, 잘 알겠습니다."라고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그 비구에게 대답을 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자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릿타여, 그대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6. "쓸모없는 자여, 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쓸모없는 자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했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은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뼈다귀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고깃덩이 비유로 …건초횃불의 비유로 … 숯불구덩이의 비유로 …

꿈의 비유로 … 빌린 물건의 비유로 … 과일이 열린 나무의 비유로 … 도살장의 비유로 … 살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했다.


쓸모없는 자여, 그러나 그대는 그대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쓸모없는 자여, 그것은 그대에게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7.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이 아릿타 비구가 이 법과 율에서 조금이라도

[지혜의] 열기가 있다(usmī-kata)(*1)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어찌 그러하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했을 때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앉아있었다.


세존께서는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가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는 것을 아시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쓸모없는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의 아주 나쁜 견해를 이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비구들에게 물어보겠다."


8.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내가 설한 법에 대해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이 아릿타 비구가

자기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은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존께서는 뼈다귀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장하게도 그대들은 내가 설한 법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구나.

비구들이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했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나는 감각적 욕망은 달콤함은 적고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서 나는 뼈다귀의 비유로 …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는 자신이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그것은 그 쓸모없는 인간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9.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가 감각적 욕망 없이 감각적 욕망의 인식 없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일으킨 생각 없이 감각적 욕망에 탐닉할 것이다.'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2)

註.
(*1) “마치 큰 불무더기가 꺼지더라도 반딧불 정도의 불씨에 남아있어

그것으로 다시 큰 불무더기를 얻을 수 있듯이,

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지혜의 열기(ñāṇ-usmā)가 있어

그것을 의지하여 정진할 때 도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견해를 거머쥐고 있는 자에게

어떻게 그와 같은 지혜의 열기가 있겠습니까?”(MA.ⅱ.104)

 

(*2) “어떠한 비구라도 장애가 되는 법들을 수용해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이러한 견해를 거머쥐고 있는 자가

오염원으로서의 감각적 욕망(kilesa-kāma) 오염원으로서의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인식과 일으킨 생각(saññā-vitakkā) 

이, 이 법들을 버리고, 이 법들이 없이, 대상으로서의 감각적 욕망(vatthu-kāma)에 탐닉하고

성행위(methuna-samācara)에 빠진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말씀이다.”(MA.ⅱ.105)

 

 

https://m.cafe.daum.net/vipassanacenter/MhEB/163

 

Re:뱀의 비유 경(M22)-2

뱀의 비유 경(M22)Alagaddūpama Sutta 대림스님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533-568쪽 뱀의 비유10.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m.cafe.daum.net

 

뱀의 비유

 

10.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문답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1)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2)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1)  “다른 이들의 교리에 결점(dosa)을 제기하는 이점 때문에 교리를 배우고,

다른 이들이 자기의 교설(vāda)에 대해 결점을 제기하면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그 결점에서 벗어날 것(pamokkha)이라는 이유 때문에

교설을 배운다는 말이다.(MA.ⅱ.106~107)

 

(*2) “선남자들이 법을 배우는 것은 도(magga)와 과(phala)를 얻기 위함인데,

법을 잘못 파악한 자들은 그 도와 과를 체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MA.ⅱ.107)

이처럼 주석서는 궁극의 의미(attha)’를 도와 과로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땅꾼이 뱀을 원하고 뱀을 탐색하고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의 몸통이나 꼬리를 잡는다면 그 뱀은 되돌아서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물어버릴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 문답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11.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 문답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써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지 않으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한다.

그들이 잘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땅꾼이 뱀을 원하고 뱀을 탐색하고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을 염소발 모양의 막대기로 잘 누르고 그런 다음 그 뱀의 머리를 잘 붙잡는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뱀이 비록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몸통으로 휘감겠지만

그러나 그 때문에 그 사람이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 붙잡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 문답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써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지 않으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한다.

그들이 잘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12.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이 내 가르침의 뜻을 잘 이해하거든 그대로 잘 호지하라.

그러나 내 가르침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나에게 다시 묻거나 현명한 비구들에게 물어보아라.”

 

뗏목의 비유

 

13.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법을 설하리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쥐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길을 가다가 큰 강을 보았다 하자.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지만(*3)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저 언덕으로 건너기 위한 배도 다리도 없다. 그는 생각한다.

 '이 강은 참으로 크다.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지만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저 언덕으로 건너기 위한 배도 다리도 없다.

참으로 나는 풀과 잔가지와 큰 가지와 풀잎을 함께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리라.'

 그리하여 그 사람은 풀과 잔가지와 큰 가지와 풀잎을 함께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갈 것이다.

강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날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왔다.

참으로 나는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내가 갈 곳으로 가야겠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그렇게 해야 그 뗏목에 대해 할 바를 다 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서 할 바를 다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왔다.

참으로 나는 이 뗏목을 땅에 내려놓거나 물에 띄워놓고 내가 갈 곳을 가리라.'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는 자가 참으로 그 뗏목에 대해서 할 바를 다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법을 설했나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쥐기 위함이 아니다.”

 

14. "비구들이여, 뗏목에 비유하여 그대들에게 설한 법을(*4) 이해하는 자들은

법도 버려야 하거늘(*5)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리.“

 

(*3) “‘위험한(sāsanka)’이란 것은 도둑들이 머무는 곳이 보이고,

서있는 곳, 앉아있는 곳, 누워있는 곳이 보이는 것이고,

두려운(sappaṭibhaya)’이란 것은 그곳에서 도둑들에 의해

사람들이 죽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MA.ⅱ.109)

 

(*4) 또 다른 뗏목의 비유는 「독사 경」(S35:238) §§7~9에 나타나고

이 비유에 대한 설명은 그곳 §§16~21에 나타난다.

이 경 §19에서 부처님께서는 뗏목을 팔정도에 비유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5) “‘법들도 버려야 하거늘(dhammāpi pahātabbā)’에서

법들이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말한다.

세존께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해서도

그 열정과 욕망(chanda-rāga)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사마타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는가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 초선을 … 제2선을 … 제3선을 …  제4선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우다이여, 그러나 이것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나는 말한다.

버려야한다고 나는 말한다. 넘어서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본서 제2권 「메추라기 비유 경」(M66) §§26~33)


그러면 어디에서 위빳사나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는가?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이와 같이 깨끗한 견해를

집착하고 즐기고 재산으로 여기고 내 것으로 여긴다면,

법은 건너기 위한 것이지 움켜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뗏목에 비유해서 설한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본서 제2권 「갈애멸진의 긴 경」(M38) §14)


그러나 여기서는 둘 모두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하시면서

법들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dhammāpi vo pahatabbā pageva adhammā)’라고 하신 것이다.

이 뜻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와 같이 고요하고 수승한(santa-ppaṇītā)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법들에 대해서도

욕망과 탐욕을 버릴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물며 천하고 비열하고 사악하고 성행위에 빠지게 하는

비법(asaddhamma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것에 대해 미혹하여 결점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niddosa-saññī) 아릿타는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릿타처럼 그대들은 나의 교법(sāsana)에 진흙이나 쓰레기를 던지지 말라고

세존께서 이 교계(ovāda)로 아릿타를 꾸짖으셨다.“(MA.ⅱ.109)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석서는 법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해석하고 있지

법 자체를 버리라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법들도 버려야 한다.‘는 부처님 말씀은 도덕적 허무주의를 조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깨달은 사람은 선과 악을 초월했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번뇌가 멸한 비구, 즉 아라한은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쌓아두고 즐기기라는

다섯 가지를 범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본서 「산다까 경」(M786) §51을 참조하기 바란다.

초기불교에 관한 한 무애도인의 막행막식 따위는 그 어디에도 발붙일 틈이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veuBUwfmjhU 

 

[참고]

https://panocafe.tistory.com/entry/%EB%B2%95%EA%B5%AC%EA%B2%BD-%EC%A0%9C21%EC%9E%A5-%EC%97%AC%EB%9F%AC-%EA%B0%80%EC%A7%80?category=496246 

 

법구경 제21장 여러 가지

290. 조그만 즐거움을 버림으로써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따면 현명한 이는 미련 없이 적은 즐거움을 버리고 저 크나큰 즐거움을 향해 나아간다. * * 저 큰 즐거움을 알기 전에 먼저 조그만 즐거움

panocafe.tistory.com

 

https://panocafe.tistory.com/entry/%EB%B2%95%EA%B5%AC%EA%B2%BD-%EC%A0%9C22%EC%9E%A5-%EC%96%B4%EB%91%A0?category=496246 

 

법구경 제22장 어둠

306.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 어떤 짓을 하고도 "나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잡아떼는 사람,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저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307. 여기 많은

panocafe.tistory.com

 

https://panocafe.tistory.com/entry/%EB%B2%95%EA%B5%AC%EA%B2%BD-%EC%A0%9C23%EC%9E%A5-%EC%BD%94%EB%81%BC%EB%A6%AC?category=496246 

 

법구경 제23장 코끼리

320. 전장에 나가 싸우는 코끼리* 화살을 맞아도 참고 견디듯 나도 사람들의 비난을 참고 견디며 묵묵히 내 갈 길을 가자. * 코끼리가 실제로 전쟁에서 말처럼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힌두교와 불교

panocafe.tistory.com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4190 

 

“뱀이 허물을 벗듯이 수행자는 새 세상을…” - 현대불교신문

〈숫타니파타〉에선 수행에 비유 은혜 갚는 뱀도 자주 등장 부처님, 법을 뱀에 비유 설법 “잘못 파악하면 독에 물리는 격” 뱀은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동물이다. 남남동을 지키는 방위의 신이

www.hyunbulnews.com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히말라야에 흐르는 물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이는 똑같은 물이라도 누가 먹느냐에 따라서 그 쓰임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소가 먹는 물은 젖이라는 긍정적인 것을 낳고 뱀이 먹는 물은 독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뱀의 독은 부정적 측면의 표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뱀의 습성은 법에 비유되기도 한다.

〈맛지마니까야〉에는 ‘뱀의 비유의 경’이 있다. 여기서는 이전에 독수리 사냥꾼이었던 아릿타 비구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릿타 비구는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장애가 되는 법들이라고 설하신 것을 수용해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비구들은 아릿타 비구에게 나쁜 견해를 고쳐주려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하며 그를 설득한다.
“도반 아릿타여,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십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 아릿타여,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장애가 되는 법들을 설하셨고, 그것을 수용하면 반드시 장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뱀 머리의 비유로 감각적 욕망은 많은 괴로움과 많은 절망을 주고 거기에는 재난이 더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설득에도 불구하고 아릿타 비구는 그의 견해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고집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비구들을 불러 법을 잘못 파악한 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준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땅군이 뱀을 원하고 뱀을 탐색하고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고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의 몸통이나 꼬리를 잡는다면 그 뱀은 되돌아서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물어버릴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중략)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자로서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럴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 파악한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처님은 땅군을 수행자에 뱀을 법에 비유해 비구들에게 설명하셨다. 결국 법이라는 것은 제대로 살펴야 그 진정한 뜻을 궁극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혹여나 잘못 파악하면 뱀의 독에 물리는 격이 된다는 것을 당부하고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은혜 갚는 이야기 속의 뱀
〈경률이상〉에서는 은혜를 입은 뱀이 자신의 독으로 이를 보은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경률이상 11권’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보살이 큰 재판관이 되어 재산을 엄청나게 많이 쌓았는데, 언제나 3존(尊)을 받들었고 중생들을 사랑으로 대하였다. 그는 중생의 고통을 함께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날 홍수를 예언하고 배를 타고 거처를 떠나고 있는데, 물에 떠내려 가는 뱀과 여우와 사람을 구하게 된다.


이후 보살은 구해준 사람 때문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자 뱀이 나서게 된다. 뱀은 보살을 찾아가 약을 건네준다. ‘내가 태자를 물테니 이 약으로 태자를 구해 목숨을 구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이후 뱀은 태자를 물게 되고 태자는 곧 죽음 직전에 이르게 된다.

왕은 명했다.

‘태자의 목숨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상국(相國) 벼슬을 봉하여 나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겠느니라’
보살이 뱀에게 들은 대로 약을 전했더니 태자는 감쪽같이 병이 낫게 되었다. 이후 보살의 진실이 밝혀지고 죄를 면하게 된다. 이후 왕은 보살의 조언을 받들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게 된다. 홀아비와 과부, 고아들을 어여삐 여기기를 꼭 자기의 친아들처럼 하였으니, 온 나라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웃음을 머금고 행하였다고 한다.


26권에 나오는 이야기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한 도사가 뱀, 까마귀, 사냥꾼을 구해주게 된다. 이후 도사는 오해를 사게 돼 감옥에 갖힌다. 이때 뱀이 태자를 물어 뱀이 준 약을 통해 도사가 풀려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의 공통점은 인간은 보살이나 도사를 해치는 존재로 나오고 뱀은 보은의 동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뱀의 독은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뱀은 자신의 독을 이용해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의 뱀은 부정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상상 세계의 뱀은 그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십이지 동물 가운데 뱀처럼 상상의 세계에서 많은 이야기를 가진 동물도 없었다. 경전 속에서 설화속에서 뱀은 인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대리자로서 인간 내면의 여러 요소가 뱀의 입과 몸을 빌려서 나타난다. 은혜를 갚는 선한 존재로, 복수의 화신으로, 때로는 탐욕스런 절대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래 묵은 구렁이인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상징이다. 또한 저승 세계에서 뱀은 악인을 응징하는 절대자로 나타나며, 악한 사람은 뱀이 되어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