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Lh0q4H_E4o0
https://www.youtube.com/watch?v=rOpY5nnxcDM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23_0030_0050_0030
https://ko.wikipedia.org/wiki/%EB%AC%98%ED%98%B8
묘호(廟號)는 중국, 한국, 베트남 등 동양의 봉건 왕조 국가에서 황제 또는 국왕과 같은 군주에게만 붙인 칭호로 군주가 승하한 뒤 태묘(太廟, 또는 종묘)에서 군주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었다. 두 글자로 이루어졌는데 앞자는 시호법에 따라 군주의 치세와 업적을 뜻하는 글자인 시자(諡字)이고 뒷자는 ‘조’(祖) 또는 ‘종’(宗)을 붙이는 종호(宗號)이다. 군주와 신하 모두에게 바쳐질 수 있는 시호와는 달리, 묘호는 오로지 종묘에 그 위패가 합사된 군주만이 받을 수 있었던 미칭이다. 본래 묘호는 개국 군주와 같이 공과 업적이 큰 소수의 군주들에게만 허락된 칭호였다. 그리하여 중국의 고대 왕조인 상대에서 한대까지는 묘호를 가진 군주가 많지 않았으나, 점차 모든 군주들의 위패를 태묘에 모시면서 일반화되어 중국 당대 이후에는 거의 모든 군주에게 붙여졌다. 이로 인해 당나라 이후 중국의 군주는 글자 수가 많고 복잡한 시호 대신 묘호로 주로 알려져 있다.[1]
https://www.youtube.com/watch?v=V1d7GeWJk0M
https://www.youtube.com/watch?v=Djft1iZjlfo
https://news.imaeil.com/page/view/2019111518132962472
묘호- 祖> 宗> 君(君은 왕자시절의 호칭 그대로임)
* 'ㅡ君'은 사후에 묘호를 받지 못한 왕으로, 성품이나 시대 여건 상 왕다운 왕의 역할을 못한 王으로 제도권의 사관과 대신들에 의해 평가되었다. 묘호를 받지 못한 두 분의 위패는 당연히 종묘에 모셔지지 않았다.
묘호 측면에서 세종과 세조는 바뀌었어야 마땅하다.
세종은 한글창제로 한문 기록밖에 없던 시대를 뛰어넘어 마침내 유길준의 <서유견문>(1889년 탈고)이후에는 국한문 혼용이나마 우리말을 기술하는 새시대의 기틀을 마련했으니 건국에 해당하는 새역사의 원초를 만드셨다.
따라서 묘호는 '祖'일 수밖에.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97%B0%EC%82%B0%EA%B5%B0
*연산군은 사후에 추증되는 사관들의 묘호를 받지 못하고 왕자시절의 호칭을 유지하고, 왕릉의 '릉'이라 칭하지 않고 일반인들과 같이 묘(墓)라 칭한다.
10대 연산군과 15대 광해군은 묘호를 받지 못해 왕자시절의 호칭을 그대로 유지한 채 '릉'이 아닌 '묘'에 묻혔다.
https://www.youtube.com/watch?v=KN_khwjUJVk
良孝安公墓碑, 안맹담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神道碑)
1466년(세조 12) 묘소 동남쪽 아래에 신도비를 세웠다. 정인지가 비문을 지었고 안맹담의 4남 안빈세가 비문과 전액의 글씨를 썼다. 비는 이수, 비신, 귀부로 되어 있다.[1]
불심이 깊었던 정의공주는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1469년 『지장보살본원경』(보물 제966호)이라는 불경을 간행하기도 했다.
무덤 앞에는 안맹담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神道碑), 석등(石燈), 문관의 형상을 한 문인석(文人石), 묘 앞에 세우는 비석인 묘갈(墓碣) 등이 세워져 있다.
* '소귀'란 한자어인 우이(牛耳)의 원형인 우리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Od8oMXF1Q8
https://www.youtube.com/watch?v=Ku6egcj_L30
https://www.youtube.com/watch?v=oCOERPlenKk
https://kydong77.tistory.com/21498
https://cafe.daum.net/mj13h/QnS6/16891
https://www.youtube.com/watch?v=-yzAcONK7WY
https://www.youtube.com/watch?v=_xdyRTmEpZk
https://www.youtube.com/watch?v=Ex0RNVG2XVc
https://www.youtube.com/watch?v=RWq9sVfRHQE
https://www.youtube.com/watch?v=GqZrlBm2Ygk
https://www.youtube.com/watch?v=ovdaimhdKq4
" 去歲年饑, 羣兒爭餠, 而歸察之, 鼻液糊矣.
지난해 기근이 들었을 때 아이들이 떡을 두고 다투길래
가서 살펴보니 콧물이 미끈거립디다.
夢寅處江湖, 閑無事.
몽인은 강호에 살면서 한가하여 아무 일이 없습니다.
前年讀左氏, 今年誦杜詩,
지난해에는 '춘추좌씨전'을 읽고, 올해는 두보의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此眞臨年者伴也,
이는 참으로 노년의 벗이라 하겠습니다.
以此餞餘生足矣.
이것으로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합니다.
如與群兒爭鼻液之餠, 非所願也."
아이들과 콧물 묻은 떡을 다투는 일 같은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
https://www.youtube.com/watch?v=8efIBIhoi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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