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帝城樓(백제성루) 

ㅡ 杜甫

江度寒山閣

(강도한산각) 강은 차가운 산 아래 西閣(서각)을 비껴 흐르고

城高絶塞樓

(성고절새루) 성 높은 곳엔 외딴 변경의 누각

翠屛宜晩對

(취병의만대) 푸른 병풍 같은 절벽은 저녁놀에 대하기 좋고

白谷會深遊

(백곡회심유) 백제성 골짝은 깊이 들어 노닐기 좋아라

急急能鳴雁

(급급능명안) 기러기는 울어 예며 바삐 바삐 날아가고

輕輕不下鷗

(경경불하구) 갈매기는 내려오질 않고 가볍게 가볍게 떠있네

夷陵春色起

(이릉춘색기) 이릉의 봄빛 바야흐로 무르익어 가는데

漸擬放扁舟

(점의방편주) 점점 조각배 띄우고 싶은 마음 일어라

* 병산과 만대루 이름은 두보의 시 <白帝城樓(백제성루)>의 '翠晩對'에서 취함.

 

 

https://www.youtube.com/watch?v=4ej4C4gEsbs 

 

 

https://www.youtube.com/watch?v=O-ZtyITAiPQ 

 

 

https://www.youtube.com/watch?v=ed8PBIbbw6I 

 

 

https://www.youtube.com/watch?v=o8vE7L4mCis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3102

 

안동 병산서원(安東屛山書院)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본 서원의 전신은 고려 말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풍산유씨(豊山柳氏)의 교육기관이었는데, 이를 1572년(선조 5) 유성룡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613년(광해군 5) 정경세(鄭經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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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원의 전신은 고려 말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풍산유씨(豊山柳氏)의 교육기관이었는데, 이를 1572년(선조 5) 유성룡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613년(광해군 5)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유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존덕사(尊德祠)를 창건였고, 이곳에 위패를 모셨다.
1620년(광해군 12)에는 유림의 공론에 따라 이황(李滉)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유성룡의 위패가 옮겨지게 되었다. 그 뒤 1629년(인조 9) 별도로 유성룡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모셨으며, 그의 셋째 아들 유진(柳袗)을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1863년(철종 14) ‘병산(屛山)’이라고 사액(賜額)되었으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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