妙法蓮華經 卷第五

 

안락행품(安樂行品) 第十四

1. 법화경은 어떻게 설하는가

爾時 文殊師利法王子菩薩摩訶薩白佛言, 世尊! 是諸菩薩 甚爲難有 敬順佛故 發大誓願 於後惡世 護持讀說是法華經. 世尊, 菩薩摩訶薩 於後惡世 云何能說是經? 佛告文殊師利, 若菩薩摩訶薩 於後惡世 欲說是經 當安住四法.

 

2. 수행방법(修行方法)을 해석하다.

一者 安住菩薩行處 及親近處 能爲衆生演說是經. 文殊師利, 云何名菩薩摩訶薩行處? 若菩薩摩訶薩住忍辱地 柔和善順 而不卒暴 心亦不驚. 又復於法無所行 而觀諸法如實相 亦不行不分別. 是名菩薩摩訶薩行處.

 

云何名菩薩摩訶薩 親近處? 菩薩摩訶薩 不親近國王 王子 大臣 官長. 不親近諸外道 梵志 尼犍子等 及造世俗文筆 讚詠外書 及路伽耶陁 逆路伽耶陁者, 亦不親近諸 有兇戲相扠 相撲及那羅等 種種變現之戲. 又不親近旃陁羅 及畜猪羊鷄狗 畋獵漁捕 諸惡律儀. 如是人等 或時來者 則爲說法 無所悕望. 又不親近求聲聞 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亦不問訊. 若於房中 若經行處 若在講堂中 不共住止. 或時來者 隨宜說法 無所悕求.

 

文殊師利, 又菩薩摩訶薩 不應於女人身 取能生欲想相 而爲說法 亦不樂見. 若入他家不與小女 處女 寡女等共語. 亦復不近 五種不男之人 以爲親厚. 不獨入他家 若有因緣 須獨入時 但一心念佛. 若爲女人說法 不露齒笑 不現胸臆 乃至爲法 猶不親厚 況復餘事? 不樂畜年少弟子 沙彌 小兒 亦不樂與同師. 常好坐禪 在於閑處 修攝其心. 文殊師利 是名初親近處.

 

復次 菩薩摩訶薩 觀一切法空 如實相, 不顚倒 不動 不退 不轉. 如虛空無所有性 一切語言道斷 不生 不出 不起. 無名 無相 實無所有 無量 無邊 無礙 無障. 但以因緣有 從顚倒生 故說. 常樂觀如是法相 是名菩薩摩訶薩 第二親近處.

 

爾時 世尊欲重宣此義 而說偈言.

若有菩薩 於後惡世 無怖畏心 欲說是經

應入行處 及親近處 常離國王 及國王子

大臣官長 兇險戲者 及旃陁羅 外道梵志.

 

亦不親近 增上慢人 貪著小乘 三藏學者

破戒比丘 名字羅漢 及比丘尼 好戲笑者

深著五欲 求現滅度 諸優婆夷 皆勿親近.

 

若是人等 以好心來 到菩薩所 爲聞佛道

菩薩則以 無所畏心 不懷悕望 而爲說法

寡女處女 及諸不男 皆勿親近 以爲親厚

亦莫親近 屠兒魁膾 畋獵漁捕 爲利殺害

販肉自活 衒賣女色 如是之人 皆勿親近.

 

兇險相撲 種種嬉戲 諸婬女等 盡勿親近

莫獨屛處 爲女說法 若說法時 無得戲笑

入里乞食 將一比丘 若無比丘 一心念佛

是則名爲 行處近處 以此二處 能安樂說.

 

又復不行 上中下法 有爲無爲 實不實法

亦不分別 是男是女 不得諸法 不知不見

是則名爲 菩薩行處 一切諸法 空無所有

無有常住 亦無起滅 是名智者 所親近處.

 

顚倒分別 諸法有無 是實非實 是生非生

在於閑處 修攝其心 安住不動 如須彌山

觀一切法 皆無所有 猶如虛空 無有堅固

不生不出 不動不退 常住一相 是名近處.

 

若有比丘 於我滅後 入是行處 及親近處

說斯經時 無有怯弱 菩薩有時 入於靜室

以正憶念 隨義觀法 從禪定起 爲諸國王

王子臣民 婆羅門等 開化演暢 說斯經典

其心安隱 無有怯弱 文殊師利 是名菩薩

安住初法 能於後世 說法華經.

 

又 文殊師利, 如來滅後 於末法中 欲說是經 應住安樂行.

若口宣說 若讀經時 不樂說人及經典過. 亦不輕慢 諸餘法師 不說他人好惡長短. 於聲聞人 亦不稱名說其過惡 亦不稱名讚歎其美. 又亦不生怨嫌之心. 善修如是安樂心故 諸有聽者 不逆其意 有所難問 不以小乘法答 但以大乘 而爲解說 令得一切種智.

 

爾時 世尊欲重宣此義 而說偈言.

菩薩常樂 安隱說法 於淸淨地 而施牀座

以油塗身 澡浴塵穢 著新淨衣 內外俱淨.

安處法座 隨問爲說 若有比丘 及比丘尼

諸優婆塞 及優婆夷 國王王子 群臣士民

以微妙義 和顏爲說 若有難問 隨義而答

因緣譬喩 敷演分別 以是方便 皆使發心

漸漸增益 入於佛道 除懶惰意 及懈怠想

離諸憂惱 慈心說法.

 

晝夜常說 無上道教 以諸因緣 無量譬喩

開示衆生 咸令歡喜 衣服臥具 飮食醫藥

而於其中 無所悕望 但一心念 說法因緣

願成佛道 令衆亦爾 是則大利 安樂供養.

 

我滅度後 若有比丘 能演說斯 妙法華經

心無嫉恚 諸惱障礙 亦無憂愁 及罵詈者

又無怖畏 加刀杖等 亦無擯出 安住忍故

智者如是 善修其心 能住安樂 如我上說

其人功德 千萬億劫 算數譬喩 說不能盡.

 

又 文殊師利, 菩薩摩訶薩 於後末世 法欲滅時 受持讀誦斯經典者 無懷嫉妒謟誑之心. 亦勿輕罵學佛道者 求其長短. 若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求聲聞者 求辟支佛者 求菩薩道者 無得惱之 令其疑悔 語其人言, 汝等去道甚遠 終不能得一切種智. 所以者何? 汝是放逸之人 於道懈怠故. 又亦不應戲論諸法 有所諍競.

 

當於一切衆生 起大悲想 於諸如來 起慈父想 於諸菩薩 起大師想. 於十方諸大菩薩 常應深心 恭敬禮拜. 於一切衆生 平等說法 以順法故 不多不少 乃至深愛法者 亦不爲多說.

 

文殊師利, 是菩薩摩訶薩 於後末世 法欲滅時 有成就是第三安樂行者 說是法時 無能惱亂 得好同學 共讀誦是經 亦得大衆 而來聽受. 聽已能持 持已能誦 誦已能說 說已能書 若使人書 供養經卷 恭敬尊重讚歎.

 

爾時 世尊欲重宣此義 而說偈言.

若欲說是經 當捨嫉恚慢 謟誑邪僞心 常修質直行

不輕蔑於人 亦不戲論法 不令他疑悔 云汝不得佛.

 

是佛子說法 常柔和能忍 慈悲於一切 不生懈怠心

十方大菩薩 愍衆故行道 應生恭敬心 是則我大師

於諸佛世尊 生無上父想 破於憍慢心 說法無障礙

第三法如是 智者應守護 一心安樂行 無量衆所敬.

 

又 文殊師利, 菩薩摩訶薩 於後末世 法欲滅時 有持是法華經者 於在家出家人中 生大慈心. 於非菩薩人中 生大悲心 應作是念, 如是之人 則爲大失. 如來方便 隨宜說法 不聞不知 不覺不問 不信不解 其人雖不問 不信 不解是經 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 隨在何地 以神通力 智慧力 引之令得住是法中.

 

文殊師利, 是菩薩摩訶薩 於如來滅後 有成就此第四法者 說是法時 無有過失. 常爲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國王 王子 大臣 人民 婆羅門 居士等 供養恭敬 尊重讚歎. 虛空諸天 爲聽法故 亦常隨侍. 若在聚落 城邑 空閑 林中 有人來欲難問者 諸天晝夜常爲法故 而衛護之 能令聽者 皆得歡喜. 所以者何? 此經是一切過去 未來 現在諸佛 神力所護故.

 

3. 법화경의 존귀함을 말하다.

文殊師利, 是法華經 於無量國中 乃至名字不可得聞 何況得見 受持讀誦?

文殊師利, 譬如强力 轉輪聖王 欲以威勢 降伏諸國 而諸小王不順其命, 時轉輪王 起種種兵 而往討罰. 王見兵衆戰有功者 卽大歡喜 隨功賞賜 或與田宅 聚落 城邑 或與衣服 嚴身之具 或與種種珍寶 金 銀 琉璃 車璖 馬腦 珊瑚 虎珀 象馬 車乘 奴婢 人民, 唯髻中明珠 不以與之. 所以者何? 獨王頂上 有此一珠 若以與之 王諸眷屬 必大驚怪.

 

文殊師利, 如來亦復如是 以禪定智慧力 得法國土 王於三界 而諸魔王不肯順伏 如來賢聖諸將 與之共戰. 其有功者 心亦歡喜 於四衆中 爲說諸經 令其心悅 賜以禪定 解脫 無漏根力 諸法之財. 又復賜與涅槃之城 言得滅度 引導其心 令皆歡喜 而不爲說是法華經.

 

文殊師利, 如轉輪王 見諸兵衆 有大功者 心甚歡喜 以此難信之珠 久在髻中 不妄與人 而今與之. 如來亦復如是 於三界中 爲大法王 以法教化一切衆生 見賢聖軍 與五陰魔, 煩惱魔, 死魔共戰 有大功勳 滅三毒 出三界 破魔網, 爾時 如來亦大歡喜. 此法華經 能令衆生 至一切智 一切世間 多怨難信 先所未說 而今說之. 文殊師利, 此法華經 是諸如來第一之說 於諸說中 最爲甚深 末後賜與. 如彼强力之王 久護明珠 今乃與之. 文殊師利, 此法華經 諸佛如來秘密之藏 於諸經中 最在其上. 長夜守護 不妄宣說 始於今日 乃與汝等 而敷演之.

 

4. 게송으로 거듭 밝히다.

爾時 世尊欲重宣此義 而說偈言.

常行忍辱 哀愍一切 乃能演說 佛所讚經

後末世時 持此經者 於家出家 及非菩薩

應生慈悲 斯等不聞 不信是經 則爲大失

我得佛道 以諸方便 爲說此法 令住其中.

 

譬如强力 轉輪之王 兵戰有功 賞賜諸物

象馬車乘 嚴身之具 及諸田宅 聚落城邑

或與衣服 種種珍寶 奴婢財物 歡喜賜與

如有勇健 能爲難事 三解髻中 明珠賜之.

 

如來亦爾 爲諸法王 忍辱大力 智慧寶藏

以大慈悲 如法化世 見一切人 受諸苦惱

欲求解脫 與諸魔戰 爲是衆生 說種種法

以大方便 說此諸經 旣知衆生 得其力已

末後乃爲 說是法華 如三解髻 明珠與之

此經爲尊 衆經中上 我常守護 不妄開示

今正是時 爲汝等說.

 

5. 안락행을 성취한 공덕상

我滅度後 求佛道者 欲得安隱 演說斯經

應當親近 如是四法 讀是經者 常無憂惱

又無病痛 顏色鮮白 不生貧窮 卑賤醜陋.

 

衆生樂見 如慕賢聖 天諸童子 以爲給使

刀杖不加 毒不能害 若人惡罵 口則閉塞

遊行無畏 如師子王 智慧光明 如日之照.

 

若於夢中 但見妙事 見諸如來 坐師子座

諸比丘衆 圍繞說法 又見龍神 阿修羅等

數如恒沙 恭敬合掌 自見其身 而爲說法.

 

又見諸佛 身相金色 放無量光 照於一切

以梵音聲 演說諸法 佛爲四衆 說無上法

見身處中 合掌讚佛 聞法歡喜 而爲供養

得陁羅尼 證不退智 佛知其心 深入佛道

卽爲授記 成最正覺 汝善男子 當於來世

得無量智 佛之大道 國土嚴淨 廣大無比

亦有四衆 合掌聽法.

 

又見自身 在山林中 修習善法 證諸實相

深入禪定 見十方佛.

 

諸佛身金色 百福相莊嚴 聞法爲人說 常有是好夢

又夢作國王 捨宮殿眷屬 及上妙五欲 行詣於道場

在菩提樹下 而處師子座 求道過七日 得諸佛之智

成無上道已 起而轉法輪 爲四衆說法 經千萬億劫

說無漏妙法 度無量衆生 後當入涅槃 如煙盡燈滅

若後惡世中 說是第一法 是人得大利 如上諸功德.

 

 

제 14장 안락한 삶(安樂行品)

그때 문수사리보살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 보살들이 세존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 법문
을 널리 펴기 위해 한결같은 노력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저 보살들이 어떻게 하면 후세에 이
법문을 널리 펼 수 있겠사옵니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문수사리보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사법으로 자신을 확립한다면, 보살은 후세에
이 법문을 널리 펼 수 있다. 문수사리여, 사법은 무엇인가. 첫
째로 이 세상에서 보살이 선행(善行)과 바른 교제범위에 안주
할 수 있는가 하면, 보살이 인내심 깊고 온화하며 마음이 다스
려진 경지에 이르러 부들부들 떨거나 분노를 나타내는 일이 없
고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모든 모습(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때, 비로소 모든 것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지 않고 분별
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보살의 선행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보살의 바른 교제범위란 어떤 것인가 하면, 보
살은 국왕이나 왕자, 대신, 그리고 그 시종들과 사귀거나 방문
하거나 섬기거나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다. 또 유행자, 아지바
카 교도, 니르그란타 교도 등의 이교도들이나 시서(詩書)나 세
속의 논서에 탐닉하는 사람들이나 세상일에 관한 주문을 신봉
하는 로카야타 교도와도 사귀거나 방문하거나 섬기거나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찬달라, 마우슈티카, 돼지고기점,
새고기점, 사냥을 하는 자, 도살꾼, 배우, 예능인, 봉술을 하
는 자, 격투를 하는 자와도 가까이하지 않고, 오락이나 유흥장
에도 가까이 가지 않으며, 그들이 다가오면 그때 그때에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가르침을 설할 뿐, 그들과 친하지 않
는 것이다. 또 성문에 속하는 비구, 비구니, 신남, 신녀 들과
도 사귀거나 방문하거나 섬기거나 친하게 지내지 않으며, 그들
이 다가오면 그때 그때에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가르침
을 설할 뿐, 경행(經行)의 장소든 정사 안이든 그들과 만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보살대사의 교제범위이다.
문수사리여, 또 보살은 언제나 여성의 환심을 사려고 가르침
을 설하지도 않으며, 여성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품지 않으
며, 남의 집을 방문해서 젊은 처녀와 말을 나누고 싶은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녀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는다. 또 거세당한 자
에게 가르침을 설하지 않으며,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도 않으
며, 인사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래의 억념(億念)을 수습하
고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밥을 얻기 위해서도 혼자는 남의 집
에 들어가는 일이 없다. 설사 여성에게 가르침을 설하게 되더
라도, 그는 본래 가르침에 집착해서 설해서는 안 되며, 부인에
게 집착해서 설해서도 안 되며, 설할 때 웃느라고 이빨을 보이
는 일조차 없으므로 얼굴에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일도 없다.
그는 가만히 앉아 선정을 닦는 데 전념하며, 항상 선정 속에
잠겨 생활한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의 첫번째 교제범위라
고 불린다.
문수사리여, 또 보살은 모든 것을 공(空)이라고 관찰한다.
즉 모든 것은 바르게 확립되어, 무도착(無倒錯)의 상태에 있으
며,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며, 자타에 의해서도 움직이
지 않고 역전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고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며, 허공과 같은 본성으로 말의 해석이나 표현을
떠나 생기지 않으며,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만들어진 일이 없
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닌, 말로 나타
낼 수 없는 집착을 떠난 상태에 있는, 관념의 도착에 의해 나
타내어진 것이라고 관찰한다.
문수사리여, 보살은 언제나 모든 것을 이처럼 관찰하며 생활
한다. 이렇게 사는 보살은 바른 교제범위에 안주하고 있는 것
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보살의 두 번째 교제범위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상세히 알리시려고 이런 게송을 설
하셨다.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뒤 무서운 시대에
보살이 겁내지 않고 두려움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 경전을 널리 펴려고 한다면
그는 선행과 바른 교제범위를 지키고
세속적인 교제를 끊고
몸을 청정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즉 언제나 국왕이나 왕자들과의 교제를
끊어야 할 것이다.
왕의 시종들, 찬달라, 마우슈티카, 주정뱅이
이교도들과도 사귀어서는 안 된다.
소승의 율이나 경전에 집착해
자신을 아라한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비구들과도 사귀지 말며
파계한 비구들도 피하는 것이 좋다.
마음이 들떠 웃거나 수다를 좋아하는
비구니들은 언제나 피하며
속악한 것에 빠진 재가의 여성도
피해야 한다.
현세의 안온한 상태를 구하는
재가의 여성들과도 교제를 끊어야 한다.
이것이 보살의 선행이라고 불린다.
그들 중 최고의 깨달음을 구해 보살을 찾아와
가르침을 구하는 자가 있다면
현자는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언제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 좋다.
부인이나 거세된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고
타인의 집에 있더라도
젊은 처녀나 딸들을 피해야 한다.
정중하게 안부를 물으며
그녀들과 말을 나누어서도 안 된다.
돼지고지점이나 양고기점과의 교제도
끊어야 한다.
향락을 위해 여러 가지 산 것을 죽이거나
도살장에서 고기를 파는 자들과의 교제도
끊어야 한다.
포주, 연예인, 몽둥일을 휘두르는 자
격투하는 자, 그와 유사한 자들과의 교제도
끊어야 한다.
유녀나 쾌락을 팔아서 생계로 삼는 자들과도
사귀어서는 안 되며
인사조차도 해서는 안된다.
현자는 여성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
혼자 그 방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며
웃음을 띠어서도 안 된다.
탁발을 하려고 마을로 들어갈 때는
동반의 비구에게 동행을 부탁하거나
부처님을 억념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은 것이 첫째 선행과
바른 교제범위라고 나는 설한다.
이런 경전을 수지하는 지혜를 갖춘 사람들은
이것을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보살은 영등한 자, 뛰어난 자, 보통인 자
만들어진 것, 만들어지지 않은 것
진실한 것, 허망한 것에도
결코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이 사람은 여자다’
‘이 사람은 남자다’라고
분별해서도 안 된다.
모든 것은 불생(不生)이므로
그것을 구하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
이것이 보살들의 선행이라고 불리는 전부이다.
보살의 바른 교제범위란 어떤 것인가?
설명할 테니 그대들은 들으라.
이 모든 것은 실재가 아니며
나타난 것도 아니며
생긴 것도 아니며
공이며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서
언제나 현존하고 있다고 설해졌다.
이런 것이 현자들의 바른 교제범위라고 불린다.
그런데 도착된 생각을 지닌 자들은
이 모든 것이 실재하지 않는데도 실재로 여기며
허망한데도 진실이라고 여기며
생기지도 않는 것을 생겼다고 망상해서 분별한다.
한편 보살은 언제나 마음을 한 점에 집중해서
선정을 들고 수미산처럼 부동으로 안주하며
모든 것을 허공처럼 관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언제나 허공과 같으며
내실이 없으며 움직이지 않으며
망상을 떠나면서도 언제나 현존해 있다고 관찰한다.
이것이 현자들의 바른 교제범위라고 불린다.
내가 열반에 든 뒤
나의 행동을 지키고 따르는 비구야말로
세간에서 이 경전을 설해야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현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안으로 생각을 집중하고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이 문의 근본을 관찰한 뒤
선정으로부터 깨어나
두려워하지 말고 가르침을 설하라.
그로부터 가르침을 듣는 국왕이나 왕자들은
이 세상에서 그를 비호할 것이며
다른 가장이나 바라문들도
항상 그를 섬길 것이다.

“문수사리여, 또 여래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 후 오백년
동안에 바른 가르침이 소멸하고 있을 때(末法), 이 가르침을
널리 펴려고 애쓰는 보살은 안락한 경지에 있을 것이다. 그는
안락한 경지에서 신체에 집착하지 않으며, 경전에 나타난 가르
침을 설하며, 타인에 대해 말할 때에도 그들의 결점을 들추는
일이 없으며, 다른 설법자인 비구를 욕하거나 비난하는 일도
없으며, 책망하는 일도 없다. 또 다른 성문에 속하는 비구들의
이름을 들추어 비난하는 일도 없고, 책망하는 일도 없으며, 그
들에 대해 적대심을 품는 일도 없다.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안락한 경지에 안주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법화(法話)를
듣고 싶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정중하고 친절한 태도로 가
르침을 설한다. 말싸움을 하는 일도 없고, 질문받더라도 성문
의 길에 의해 답하는 일이 없으며, 어떻게 해서든 부처님의 지
혜를 깨닫기를 바라면서 답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런 게송을 설하셨다.

현명한 이는 언제나 안락한 경지에 들어
깨끗하고 상쾌한 장소에 높은 자리를 마련해서
그 위에 편안히 앉아 평온한 가르침을 설한다.
그는 아주 좋은 염료로 잘 염색된 법의를 두르고
마찬가지로 검은 옷도 몸에 걸치고
또 헐거운 속옷도 입고
여러 색의 천을 아름답게 겹치고
발 디딤대가 붙은 자리에 앉아
발을 씻고 머리나 얼굴에도 기름을 바르고
자리에 올라가
법좌에 앉아
모인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비구들에게도, 비구니들에게도
신남, 신녀, 왕, 왕자 들에게도
그 현자는 언제나 아주 친근한 태도로
여러 가지 뜻을 지닌 매력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좋다.
그때 그들의 질문을 받더라도 그들에게
적절한 의미를 한 번 더 설명해 주어라.
그것도 그들이 들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 의미를 모두 설해 주는 것이 좋다.
현자는 나태한 마음을 없애며
권태로운 생각을 하지 않으며
청중에게 자비로운 힘을 발휘해야 한다.
현자는 저녁에 수많은 비유로써
최고의 가르침을 설해
청중을 기쁘게 하고 만족시켜라.
그러나 그는 그 일에 대해
결코 어떤 것도 바라서는 안 된다.
딱딱하거나 부드러운 식사, 의복, 침대, 자리, 법의
혹은 병을 낳게 하는 약에 신경 쓰지 말아라.
청중에게 아무것도 바라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현명한 이는
‘나와 같이 이 중생들도 함께 부처님이 될지어다.
내가 이 바른 가르침의 백련을
세간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설한다면
나에 의해 모든 안락을 가져오는 도구가 된다’고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내가 열반에 든 뒤, 남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이 가르침을 설하는 비구는
괴로움도 장애도 근심도 망설임도
모두 없어질 것이다.
누구도 그를 두렵게 하거나 때릴 수도 없으며
비난하는 이도 없다.
그는 결코 추방당하는 일도 없다.
그는 확고한 인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가 말한 대로 처신해서
안락한 경지에 든 현자에게는
수없이 많은 공덕이 있어서
수백 겁이 지나더라도
그것을 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수사리여, 또 여래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 바른 가르
침이 소멸할 최후의 시대에 이 경전을 수지하고 있는 보살은,
남을 원망하거나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않으며, 남을 비난하지
않고 욕하지 않고 경멸하지 않는다.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는
성문의 길에 속하는 이든 독각의 길에 속하는 이든 보살의 길
에 속하는 이든, 그들은 다른 비구나 비구니, 신남, 신녀 들에
게 마음의 곤혹을 일으키게 하는 일이 없다.
‘선남자들이여, 그대들은 위없는 바른 깨달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대들에게 깨달음이 나타나는 일은 없다. 그
대들은 완전히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여래의 지혜를 깨
달을 수는 없다’고 해서 보살의 길에 속하는 자에게도 마음의
곤혹을 일으키는 일은 없다. 또 가르침에 대한 논쟁을 좋아하
지도 않고, 싸우려고 하지도 않고, 모든 중생들에 대한 자비로
운 힘을 버리지 않는다. 모든 여래에 대해 아버지라는 생각을
품고 모든 보살에 대해 스승이라는 생각을 품는다. 또 세간에
있는 모든 보살들을 깊은 뜻과 존경심으로 끊임없이 경례한다.
또 가르침을 설할 때도, 그는 가르침을 평등히 사랑하므로 가
르침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설한다. 또 그는 이 법문을 설할
때, 어느 누구에게도 호의를 품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이상의 세 번째 방법을 갖춘 보살이 여래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 바른 가르침이 소멸하려는 최후의 시대
에 이 법문을 널리 편다면, 그는 기분 좋은 만남 속에서 살며
어떠한 해로움을 받지 않고 이 법문을 널리 펼 수가 있다. 그
가 가르침을 읊을 때에는 함께 읊는 이가 생길 것이다. 또 그
의 주위에는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며, 그
들은 그로부터 법문을 듣고 믿고 수지하며, 옮겨 적고 남에게
도 옮겨 적게 해 책으로 만들어서 공경하며 공양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이처럼 설하신 뒤, 이렇게 게송을 읊으셨다.

이 경전을 널리 펴려고 하는 설법자는
기만과 교만한 마음과 나쁜 생각을 버려야 하며
질투심도 지녀서는 안 된다.
그는 결코 어떤 사람도 책망해서는 안 되며
견해를 세워서 논쟁해서도 안 된다.
또 ‘당신이 위없는 지혜를 얻는 일은
없겠지요’라고 해서
남의 마음을 곤혹하게 해서도 결코 안 된다.
그 선서의 아들은 언제나
올바르며 부드럽고 인내심이 강하다.
이 가르침을 계속해서 몇 번이나 설하여라.
그렇다고 해서 그가 권태를 느끼는 일은 전혀 없다.
‘중생을 자비롭게 여겨
세간에 돌아다니는 보살들은
모두 나의 스승이다’라고 생각해서
이 현자는 그들에게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품어야 한다.
인간의 최고자이신 부처님을 마음에 염해서
그 승리자들을 언제나 아버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또 교만한 마음을 모두 끊는다면
그때 그에게는 장해는 없다.
이렇게 방법을 듣고
현자는 그때 그 방법을 지켜야 한다.
안락한 경지를 얻는 데 마음을 집중한 이는
수많은 생명 있는 것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는다.

‘문수사리여, 또 여래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 바른 가
르침이 소멸할 최후의 시대에 이 법문을 수지하는 비구는, 재
가의 사람들이나 출가한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자비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깨달음을 향해 뜻을 세우
지 않은 모든 중생들에 대해 자애를 품고 이렇게 발심해야 한
다.
‘아아, 이 중생들은 참으로 지혜가 떨어지는 이들이다. 그들
은 여래의 절묘한 방편인 깊은 뜻이 담긴 말을 듣지 못하고 알
지 못하고 묻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따르지 못한다. 더욱이 이
중생들은 이 법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그러
나 나는 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은 뒤, 어느 곳에 중생이
있든 그곳에서 그들을 신통력으로 회심시켜, 믿게 하고 깨달음
으로 들어가게 하고 성숙시킬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상의 네 번째 방법을 갖춘 보살은 여래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 이 법문을 널리 펴고 있을 때, 남을 상
처 입히는 일이 없으며, 비구, 비구니, 신남, 신녀, 국왕, 왕
자. 대신, 고관 들이나 마을사람들, 바라문, 가장들에게도 공
경받고 공양받을 것이다. 중공(中空)에 사는 천신들은 청정한
믿음으로 가르침을 듣기 위해 그의 뒤를 따를 것이며, 천자들
도 호위하며 따르고 있을 것이다. 마을에 있든 정사에 있든 가
르침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밤낮으로 그를 방문할 것인데, 그
들도 그의 설법을 듣고 만족해서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
수사리여, 많은 세계에서는 이 법문을 설하는 소리나 곡조, 그
이름을 듣는 일도 드물다.
예를 들면 문수사리여, 군대를 통솔하는 전륜왕이 있어 무력
으로 자신의 왕국을 평정한다면, 그와 대적하는 왕들도 그와
싸우게 된다. 그때 전륜왕에게는 많은 전사가 있어서 적과 싸
운다. 그러면 전륜왕은 전사들이 분전하고 있는 것을 보고 기
뻐한다. 그는 즐거이 전사들에게 여러 가지 상을 준다. 예를
들면 마을이나 마을의 토지를 주거나 도성이나 도성의 토지를
주거나 의복을 주거나 허리띠, 팔찌, 목걸이, 귀고리, 황금,
진주 목걸이, 금괴, 보석구슬, 진주, 유리, 나패, 수정, 산호
를 주거나 코끼리, 말. 전차, 보병, 노비를 주거나 탈것이나
가마를 준다. 그러나 상투에 붙인 보석구슬은 누구도 받지 못
한다. 왕의 머리를 장식하는 상투에 달린 보석구슬은 단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만일 왕이 상투에 달린 그
보석구슬마저 준다면, 왕의 군대는 모두 놀라서 감명받을 것이
다.
그와 마찬가지로 문수사리여, 법의 소유주이며 법의 왕이신
여래께서도 복덕의 힘이라는 군대로 얻은 법에 의해 삼계에서
법의 왕국을 통치하고 계시는 것이다. 한편 마왕 파순이 그의
세계에 침입할 때, 여래의 성스러운 전사들도 마군과 싸운다.
문수사리여, 그때 여래께서는 성스러운 전사가 싸우는 것을 보
시고 사중들을 기쁘게 하시기 위해 백천 가지 경전을 설하시
며, 열반의 도성이라는 위대한 법의 도성을 주시며, 열반의 안
락함을 주시어 그들을 깨달음으로 이끄신다. 그러나 묘법연화
경과 같은 법문은 설하시지 않으셨다.
문수사리여, 군대를 통솔하는 전륜왕은 분전하고 있는 전사
들의 영웅적 행위에 놀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것을 모
두 주는데, 이는 세간사람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일이다. 왕의
상투를 장식했던 보석구슬은 오랫동안 왕이 지녔던 것이어서
더 그렇다. 문수사리여, 그와 마찬가지로 여래께서는 삼계의
법의 왕이시며 법으로써 왕국을 통치하고 계시므로, 성문이나
보살들이 오온과 번뇌라는 마(摩)와 싸우고 있으며, 또 애착이
나 증오, 미혹의 삼독(三毒)을 멸하고, 삼계의 모든 것으로부
터 떠났으며, 모든 마를 물리치는 위대한 영웅적인 행위를 했
을 때, 여래께서도 전륜왕처럼 만족하셔서 그 전사들에게 이
세간에서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고 믿기 어렵고 지금까지 설
한 적이 없는 법문을 설하시는 것이다. 모든 중생들에게 일체
지자인 것을 보이는 이 법문을, 여래께서는 제자들에게 선물하
신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야말로 여래들의 최고의 설법이
며 최후의 법문이다. 이 법문은 모든 법문 중에서 가장 심원하
며, 모든 세간에서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다. 문수사
리여, 지금 여래께서는 마치 전륜왕이 오랫동안 지녔던 보석구
슬을 전사에게 주는 것처럼, 오랫동안 비장되어 온 이 법의 깊
은 뜻을 모든 법문의 최고위에 놓으시며, 여래의 의해서만 알
려진 이 법문을 설하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뜻을 상세히 알리시려고 이런 게송을 설
하셨다.

언제나 자비로운 힘을 발휘하고
언제나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겨
미래의 보살은 선서들께서 찬탄하신
훌륭한 경전인 이 가르침을 설해야 할 것이다.
후세에 재가든 출가든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 이든
모든 이들에게 자비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 좋다.
그들이 가르침을 듣고 비방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니까.
‘내가 깨달음을 얻어 여래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그들에게 여러 가지 황금으로 된 장식이나
코끼리, 말, 전차, 보병, 도성, 마을을 줄 것이다.
전륜왕은 어떤 이에게는 팔찌, 은, 황금실, 진주
보석구슬, 나패, 산호, 노예를 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전사가 최고로 공훈을 세우면
왕은 거기에 경탄해서 왕관을 풀어
보석구슬을 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인 나는 법의 왕으로
인내심을 갖추며 많은 지혜를 지녔으며
세간의 행복을 원해 자애 깊게 자비심을 품으며
이 세간을 모두 법으로 다스린다.
나는 고뇌하는 중생들을 보고
수많은 경전을 설한다.
이 세상에게 번뇌를 끊은 청정한 중생들이
용맹 정진하는 것을 알고
그때 위대한 의사이며 법의 왕인 나도 또한
수많은 법문을 설하며
중생들 역시 능력도 있고 지혜도 갖춘 것을 알아
상투에 달린 보석구슬과 같은
이 경전을 설한다.
나는 최후의 이 경전을 이 세상에서 설한다.
이것은 나의 모든 경전 가운데에서 최고의 것으로
내가 비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설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지금 설할 테니 그대들은 들으라.
내가 열반에 든 뒤
가장 훌륭한 최고의 깨달음을 구해
나를 위해 일을 하는 이들은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방법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실행하는 이는
걱정하거나 방해받는 일도 없고
추해지지도 않고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피부가 검어지는 일도 없으며
참혹한 마을에 사는 일도 없다.
그 위대한 성선은
언제 보아도 기쁜 모습을 하고
여래처럼 공양을 받는다.
그에게는 천자들의 시종이 있을 것이다.
칼이나 독약, 몽둥이, 흙덩이가
어느 때에도 그의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다.
그에게 심한 욕설을 하는 자는
입이 막히게 될 것이다.
내가 열반에 든 뒤
이 경전을 수지하는 이는
이 세상에서 생명 있는 것의 친족이다.
그는 광명으로 가득 차 수많은 사람들의
어둠을 제거하면서 지상을 돌아다닌다.
그는 꿈속에서 상서로운 환영을 본다.
즉 비구나 비구니를 보며 자신의 신체가
사자좌에 올라 그들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고 있는 것을 본다.
또 그는 꿈속에서 강가 강의 모래알 수처럼 많은
천신들, 야차, 아수라, 용을 보며
합장하고 있는 그들에게 최고의 가르침을
설하고 있는 것을 본다.
또 그는 꿈속에서 여래를 본다.
즉 수많은 생명 있는 것들에게 가르침을 설하며
수천의 광명을 뿜으며 감미로운 소리를 내시는
금색의 신체인 보호자를 본다.
또 꿈속에서 그는 합장하여
인간의 최고자이신 현자를 칭찬하며
한편 그 위대한 의사이신 승리자는
사중에게 최고의 가르침을 설하신다.
그는 그 가르침을 듣고 기쁨으로 가득 차
여래께 공양한다.
또 꿈속에서 불퇴전의 지혜를 신속히 얻고
다라니를 얻는다.
세간의 보호자는 그의 뜻을 아시고
그에게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리라고 예언하신다.
‘선남자여, 그대도 또한 이 미래세에
위없는 훌륭한 지혜를 얻을 것이다.
그대의 불국토는 광대할 것이다.
그리고 사중은 나의 경우처럼
참으로 경건하게 합장하며
광대한 맑은 가르침을 들을 것이다’라고
또 그는 꿈속에서 자기 자신을 본다.
즉 동굴 속에서 법을 닦아
본래의 모습에 이르러 삼매를 얻고
그 속에서 승리자를 뵙고 있는 자신을 본다.
꿈속에서 몸은 금색이며
백 가지 상서로운 복덕의 상을 갖춘
부처님을 뵙고 가르침을 들은 뒤
그것을 법회에서 설한다.
실로 그의 꿈은 이런 것이다.
꿈속에서조차도 그는 왕의 지위도
후궁도 친족도 모두 버리고
모든 애욕을 끊고 출가해서
깨달음의 자리로 다가간다.
보리수의 밑동에 있는 사자좌에 앉아
깨달음을 구하는 그는
이렇게 해서 7일 간을 보낸 뒤
여래의 지혜를 얻을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뒤 그 자리에서 일어나
더러움이 없는 가르침의 바퀴를 굴리고
생각을 초월한 여러 겁 동앙
사중들에게 가르침을 설한다.
더러움 없는 가르침을 설해
수많은 생명 있는 것들을 제도시킨 뒤
기름이 다한 등잔불처럼 열반에 든다.
그가 꾸는 꿈은 이런 것이다.
문수사리여, 내가 절묘하게 설한
최고의 가르침인 이 경전을
후세에 설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무한한 공덕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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