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北學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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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북학의서(北學議序)

불치하문의 정신으로 조금이라도 낫다면 배워야 한다 북학의서(北學議序) 박지원(朴趾源) 모르는 게 있으면 배우는 게 학문의 방법 學問之道無他,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可也, 僮僕多識我一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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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있으면 배우는 게 학문의 방법

 

學問之道無他,

학문하는 방법이란 다른 게 없다.

 

有不識, 執塗之人而問之可也,

알지 못하는 게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묻는 게 옳고

 

僮僕多識我一字姑學.

머슴이 나보다 한 자라도 많이 안다면 짐짓 배워야 한다.

 

汝恥己之不若人而不問勝己,

네가 ‘자기가 남만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하여 나보다 나은 이에게 묻질 않는다면

 

則是終身自錮於固陋無術之地也.

이것은 종신토록 스스로 고루하고 재술(才術)이 없는 지경에 갇히게 하는 것이다.

 

잘 배운 이는 순임금과 공자

 

舜自耕稼陶漁, 以至爲帝,

순이 밭갈고 질그릇 굽고 물고기 잡던 때부터 임금이 됨에 이르기까지

 

無非取諸人.

남에게 취하지 않은 게 없었다.

 

孔子曰: “吾少也賤多能鄙事.”

공자가 “나는 어려서 가난했기 때문에 비천한 일을 많이 잘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는데,

 

亦耕稼陶漁之類是也.

비천한 일이란 또한 밭갈고 질그릇 굽고 물고기 잡는 부류가 이것이다.

 

雖以孔子之聖且藝,

비록 순임금과 공자의 성스러움과 재예를 지닌 사람이라도

 

卽物而刱巧, 臨事而製器,

사물에 나아가 기교를 창조했고 일에 다다라 기물을 제조하니

 

日猶不足, 而智有所窮.

시간은 오히려 부족했고 지혜는 곤궁한 게 있었으리라.

 

孔子之爲聖,

그러므로 순과 공자가 성인이 된 것은

 

不過好問於人, 而善學之者也.

남에게 묻길 좋아하여 잘 배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배우려하지 않다

 

吾東之士, 得偏氣於一隅之土,

우리 동방의 선비들은 한쪽 모퉁이 땅에서 치우친 기운을 얻어서

 

足不蹈凾夏之地, 目未見中州之人,

발로는 큰 땅을 밟지 못했고 눈으론 중국 사람을 보지 못했으며

 

生老病死, 不離疆域.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을 때까지의 일생동안 영토를 떠나지 않는다.

 

鶴長烏黑, 各守其天,

학은 다리가 길고 까마귀는 검듯이 각자가 천성을 지켜

 

蛙井蚡田, 獨信其地.

우물의 개구리나 밭의 두더지처럼 홀로 자기의 영토만을 믿는다.

 

禮寧野, 認陋爲儉,

예는 거친 게 낫다고 여겨 비루한 걸 검소하다 여겼고

 

所謂四民, 僅存名目,

사(士)ㆍ농(農)ㆍ공(工)ㆍ상(商)의 사민(四民)은 겨우 명목만 남았으며

 

而至於利用厚生之具, 日趨困窮.

이용후생의 도구에 이르면 날로 곤궁해지고 궁벽해진 데로 나아갔다.

 

此無他, 不知學問之過也.

이것은 다른 게 없이 배우고 물을 줄 모르는 잘못인 것이다.

 

 

중국을 오랑캐나라라며 천시하는 풍조

 

如將學問, 舍中國而何?

장차 배워 물으려 한다면 중국을 버리고 어떤 나라에 하겠는가?

 

然其言曰: “今之主中國者, 夷狄也.”

그러나 그들은 “지금 중국에 주인된 사람들은 오랑캐다.”라고 말하며

 

恥學焉, 幷與中國之故常而鄙夷之.

배우길 부끄러워하고 중국의 옛법들도 아울러 비루하고 오랑캐스럽다고 한다.

 

彼誠薙髮左袵,

저들은 진실로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하고 있지만

 

然其所據之地,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곳이

 

豈非三代以來漢唐宋明之凾夏乎?

어찌 삼대 이후로 한ㆍ당ㆍ송ㆍ명의 큰 나라가 아니겠는가.

 

其生乎此土之中者,

이 땅 속에 사는 사람들이

 

豈非三代以來漢唐宋明之遺黎乎?

어찌 삼대 이후로 한ㆍ당ㆍ송ㆍ명의 남겨진 백성들이 아니겠는가.

 

苟使法良而制美,

진실로 법이 좋고 제도가 아름답다면

 

則固將進夷狄而師之,

참으로 장차 오랑캐에게 가서 그를 스승삼아야 하는데,

 

况其規模之廣大, 心法之精微,

하물며 규모가 광대하고 심법【심법(心法): 용심지법(用心之法)을 말한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청 나라 문물의 특장(特長)으로 ‘대규모(大規模) 세심법(細心法)’ 즉 규모가 크고 심법이 세밀한 점을 들었다】이 정미하며

 

制作之宏遠, 文章之煥爀,

제작한 것이 굉장하고 원대하며 문장이 찬란하며

 

猶存三代以來漢唐宋明固有之故常哉.

아직도 삼대 이후로 한ㆍ당ㆍ송ㆍ명의 고유한 옛 법을 보존하고 있는 경우라면 오죽할까.

 

以我較彼固無寸長,

우리나라를 중국과 비교하면 진실로 조금도 장점인 게 없지만

 

而獨以一撮之結, 自賢於天下曰:

홀로 한 움큼의 쌍투만으로 스스로 천하에 어질다고 여기며 말한다.

 

“今之中國, 非古之中國也”

“지금의 중국은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其山川則罪之以腥羶,

중국의 산천은 누린내가 난다고 그들을 탓하고

 

其人民則辱之以犬羊,

그곳에 사는 인민은 개와 양 같다고 욕하며

 

其言語則誣之以侏離,

그들의 언어는 사투리【주리(侏離): 방언(方言)을 뜻하는 말로, 소수민족 혹은 외국의 언어나 문자를 말한다】라고 무함하고

 

幷與其中國固有之良法美制而攘斥之.

중국 고유의 좋은 법과 미풍양속의 제도를 함께 배척해버린다.

 

則亦將何所倣而行之耶?

그러니 또한 장차 어디서 모방하며 실천해야 하는가?

 

 

열하일기와 완벽한 한 쌍인 북학의

 

余自燕還在先爲示其『北學議』內外二編,

내가 연경으로부터 귀국하자【연암은 정조 4년(1780) 5월부터 10월까지 진하 겸 사은별사(進賀兼謝恩別使)의 일원으로 중국 북경을 다녀왔다】 재선은 『북학의(北學議)』 내외 2편을 보여주니,

 

在先先余入燕者也.

대체로 재선은 나보다 앞서 연경에 들어갔던 사람이다【박제가는 정조 2년(1778)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일원으로 이덕무와 함께 북경을 다녀온 뒤 『북학의』를 저술하였다】.

 

自農蚕ㆍ畜牧ㆍ城郭ㆍ宮室ㆍ舟車, 以至瓦簟筆尺之制,

농잠ㆍ목축ㆍ성곽ㆍ궁실ㆍ배와 수레로부터 기와 대자리와 붓과 자 등의 제도에 이르기까지

 

莫不目數而心較.

눈으로 헤아리고 마음으로 비교하지 않은 게 없었다.

 

目有所未至, 則必問焉,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면 반드시 물었고

 

心有所未諦, 則必學焉.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은 것이면 반드시 배웠다.

 

試一開卷, 與余日錄,

시험삼아 한 번 책을 펴보니 나의 『열하일기(熱河日記)』와

 

無所齟齬, 如出一手

어긋나는 게【저어(齟齬): 이가 맞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물이나 일이 맞지 않고 어긋남’을 이르는 말】 없어 한 손에서 나온 것 같았다.

 

此固所以樂而示余,

이것은 진실로 즐거워하며 나에게 보여준 까닭이고

 

而余之所欣然讀之三日而不厭者也.

내가 기쁘게 3일 동안 읽으며 싫어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噫! 此豈徒吾二人者得之於目擊而後然哉.

아! 이것이 어찌 다만 우리 두 사람이 목격한 후에야 그러한 것이겠는가.

 

固嘗硏究於雨屋雪簷之下,

진실로 일찍이 비 내리는 집에서와 눈 내리는 처마 아래서 연구하고

 

抵掌於酒爛燈灺之際,

술에 고주망태되고 등불이 꺼질 때까지 이야기한 것【저당(抵掌): ① 기분좋게 이야기하다 ②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다】을

 

而乃一驗之於目爾.

곧 한 번에 눈으로 증험해본 것일 뿐이다.

 

要之不可以語人, 人固不信矣,

요컨대 남에게 말할 수 없고 남은 진실로 믿지 않을 것이고

 

不信則固將怒我.

믿지 못하면 진실로 장차 우리에게 화를 낼 것이다.

 

怒之性, 由偏氣,

화내는 성품은 치우친 기운에 따른 것이고

 

不信之端, 在罪山川. 『燕巖集』 卷之七

믿지 못하는 단서는 누린내 난다는 산천을 탓함에 있는 것이다

【북학의서(北學議序): 박제가의 『북학의』에 붙은 원래의 서문 말미에 신축년(1781, 정조 5) 중양절(重陽節)에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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