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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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답게 살다 간 철학자 종교인 30인의 ‘유훈’ - 불교신문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소크라테스 사르트르 니체 장자 틱낫한…그들이 마지막 남긴 가장 빛나는 말로위대한 인물들의 삶, 철학을 들여다본다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갚아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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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소크라테스, 사르트르, 니체, 장자, 틱낫한…
그들이 마지막 남긴 가장 빛나는 말로
위대한 인물들의 삶, 철학을 들여다본다
 


이일야, 마지막 말의 철학,  김영사, 2023.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갚아주면 고맙겠네.”(소크라테스)

“유언은 살아 있을 때 할 말을 다 못 한 얼간이들이나 하는 거야.”(마르크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공자)

“태양과 대지가 나의 관이다.”(장자)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이황)

“간다, 봐라.”(법정스님)

이일야 전북불교대학장이 최근 펴낸 <마지막 말의 철학>은 불교신문 연재 후 단행본으로 펴냈던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의 확대판이라 할 수 있다. 대상 인물 전체 수는 줄었지만 서양인으로 폭을 확대했다.

소크라테스, 스피노자, 니체, 사르트르, 공자, 장자, 법정스님, 틱낫한 스님 등 한국인이 사랑하는 동서양 철학자와 종교인 30인. 그들이 남긴 유훈, 묘비명, 임종게 등을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그들의 생애와 사상을 눈앞에 펼쳐낸다. 그리고 그 말들이 오늘을 정신없이 살아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알아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답을 찾는 여정이다.

유훈, 임종게, 묘비명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해 하직하는 마지막 인사다. 여기엔 한 사람의 치열했던 인생 기록이 압축되어 있기도 하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고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기기도 한다. 따라서 그것들을 다시금 들추어내는 건 떠난 자의 생애와 생각을 엿보는 일이자, 그들과 내 삶을 견주어봄으로써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로써 이들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에 함께하게 된다.

이 책 <마지막 말의 철학>은 죽음이라는 낯선 상황과 만나 우리의 삶을 일깨우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삶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삶과 죽음은 이어져 있다. 어떤 사람이 30년을 살았다면, 그것은 죽음을 향해 30년을 나아갔다는 뜻이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삶의 지혜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은 인물들의 죽음을 돌아보는 것은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니체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비굴하게 행동하면 다음에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문제의식이 생겼을 때 앞뒤 재지 말고 자유 의지가 명령하는 대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용기다.”

“붓다의 마지막 유훈은 우리에게 인문학의 근본 물음인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직접적인 답을 준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이란 본래 우주의 주인공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과 진리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이다.”

이 책에는 서양편 15인, 동양편 15인 총 30명의 인물이 시간 순으로 등장한다. 각각의 장마다 전반부에서는 등장인물의 인상적인 생애와 대표적인 사상을 소개해, 그들이 남긴 혹은 그들을 기리는 마지막 말이 나온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카뮈처럼 묘비명이 없거나 순자처럼 유훈을 남기지 않고 떠난 인물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글을 뽑아 비명으로 삼았다. 후반부에서는 그들이 남긴 마지막 유훈이나 임종게, 묘비명을 오늘날의 시선에서 입체적으로 해석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그 해답을 찾아 철학과 종교 등 다양한 방면의 공부를 했다. 이를 통해 생과 사는 둘이 아니라는 성찰을 하게 되었고, 신문이나 잡지 등에 삶과 죽음을 철학하는 글을 써왔다. 또한 영화나 시, 대중가요 속에 담긴 의미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연구 및 저술에 집중하고 있다. 제13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을 수상한 저서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와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지금 본지에 이어가고 있는 ‘가요, 불교를 만나다’ 연재도 그 가운데 일부이다.

김선두 선임기자 sdkim25@ibulgyo.com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https://www.youtube.com/watch?v=m1yoC0VzTEs 

 

 

https://www.youtube.com/watch?v=ScT7DcBApMA&t=2s 

 

 

https://www.youtube.com/watch?v=SszMA3bJ5oY 

 

 

https://www.youtube.com/watch?v=byKakoo4XuA 

 

 

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D%9A%8C

 

윤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선 세종 때의 명신ㆍ학자에 대해서는 윤회 (조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삼사라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삼사라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

ko.wikipedia.org

윤회 또는 삼사라(輪廻, 산스크리트어: संसार 삼사라, reincarnation, rebirth, cyclicality of life or existence)는 다르마 계통 종교들의 주요 교리로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그깨달음, 경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하여 이 세상으로 재탄생한다는 내용의 교리이다. 이 세상에서 겪는 삶의 경험이 자신의 발전에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상태 또는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이 세상으로의 윤회가 끝난다. 윤회, 즉, 삶과 죽음의 인생사는 어둠을 극복하여 깨달음 또는 구원에 이르는 여정이다.

힌두교 · 자이나교 · 불교 · 시크교등 주로 인도계 종교에서 윤회를 믿으며 중요한 교의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서양의 경우, 고대 이집트종교 · 피타고라스학파 ·영지주의 · 헤르메스주의 등에서 윤회를 믿었거나 믿고 있다.

힌두교와 불교에 따르면, 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인과응보 또는 우 원인 결과 인과법칙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과법칙을 부정하게 되면 인간이 도덕적 행위를 해야 하는 근거가 무너진다고 본다.[1] [2] 힌두교의 윤회의 교의에 따르면, 탄생 영혼 육체 ·감각기관 · 마음과 연결되는 것으로, 따라서 탄생은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을 맺는 것이며, 죽음은 완전한 소멸 또는 파괴가 아니라 영혼 육체와 분리되는 것이다.[2] 힌두교에서는 이러한 윤회의 교의를 부정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카르마에 따라 정당한 과보를 받아 자신의 삶의 모습을 벌어들이게 된다는 도덕적 법칙을 부정 또는 무시하는 것이라고 본다[2]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죽은 후에도 존재할 영혼 또는 자아 또는 상속 또는 연기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직 현생의 물질적 존재만이 전부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삶이 자연의 우연의 산물이며 "가질 수 있을 때 최대한 가지자"는 생각 발전시킬 가능성이 아주 크며 그 결과 동료들과 이웃들에게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또한 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였던 여러 위대한 성인들의 가르침을 무의미한 헛된 일로 치부하는 것이라고 본다.[2]

각 종교별 윤회

힌두교

힌두교의 교리에 의하면 해탈에 도달하지 못한 자들은 우주 안에서 끊임없이 낳고 죽기를 반복하며 윤회한다. 인간이라 하더라도 다음 생애에는 짐승으로 태어나기도 하며 신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수없이 많은 윤회의 과정에서 사람은 한 인생을 살면서 쌓은 카르마에 의해 다음 생애가 결정된다. 다르마에 따른 삶을 살다 죽으면 다음 생애에는 보다 존귀한 카스트  출신으로 태어나지만 다르마에 어긋나는 삶을 살면 다음 생애에는 더 비천한 카스트 출신으로 태어나게 된다.

불교

 

3계,6도, 3세, 현법  12연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불교에 따르면, 부처의 지위("열반")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의 삶은 여기에서 저기로 혹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돌아가며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 불교에서 윤회는 당연한 기본 전제이다. 예를 들어, 《

디가니까》 제22경 〈

대념처경

에서 고타마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태어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태어남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한다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괴로움이다.

또한 고타마 붓다는 정견(바른 견해)을 포함한 8정도와 같은 선법을 행하면 비록 윤회하지만 지금 보다 더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으며 또는 8정도와 같은 선법을 통해 윤회 자체를 벗어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T02n0099_p0203a21║何等為正見?謂正見有二種,有正見,是
T02n0099_p0203a22║世、俗,有漏、有取,轉向善趣;有正見,是聖、出世
T02n0099_p0203a23║間,無漏、無取,正盡苦,轉向苦邊。何等為正
T02n0099_p0203a24║見有漏、有取,向於善趣?若彼見有施、有說,
T02n0099_p0203a25║乃至知世間有阿羅漢,不受後有,是名世
T02n0099_p0203a26║間正見,世、俗,有漏、有取,向於善趣。何等為正
T02n0099_p0203a27║見是聖、出世間,無漏、不取,正盡苦,轉向苦邊?
T02n0099_p0203a28║謂聖弟子苦苦思惟,集、滅、道道思惟,無漏思
T02n0099_p0203a29║惟相應,於法選擇,分別推求,覺知黠慧,開
T02n0099_p0203b01║覺觀察,是名正見是聖、出世間,無漏、不取,正
T02n0099_p0203b02║盡苦,轉向苦邊。

何等為正見?謂正見有二種,有正見,是世、俗,有漏、有取,轉向善趣;
有正見,是聖、出世間,無漏、無取,正盡苦,轉向苦邊。

어떤 것이 바른 견해인가?

바른 견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상 사람과 세속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漏]가 있고 취함[取]이 있으면서 좋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성인과 출세간(出世間)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없고 취함이 없어, 바로 괴로움을 없애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는 것이다.

何等為正見有漏、有取,向於善趣?若彼見有施、有說,乃至知世間有阿羅漢,
不受後有,是名世間正見,世、俗,有漏、有取,向於善趣。

어떤 것을 세상 사람과 세속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있고 취함이 있으면서 좋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만일 그가 보시[施]가 있고 주장[說]이 있음을 보고,……(내지)……이 세상에 어떤 아라한이 있어 후생(後生)에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이 세간의 바른 견해요, 세상 사람과 세속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있고 취함이 있으면서 좋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何等為正見是聖、出世間,無漏、不取,正盡苦,轉向苦邊?
謂聖弟子苦苦思惟,集、滅、道道思惟,無漏思惟相應,於法選擇,分別推求,覺知黠慧,
覺觀察,是名正見是聖、出世間,無漏、不取,正盡苦,轉向苦邊

어떤 것을 성인과 출세간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없고 취함이 없어, 바로 괴로움을 없애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괴로움을 괴로움이라 생각하고, 괴로움의 발생[集]ㆍ소멸[滅]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며,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생각하여, 번뇌가 없는 생각과 서로 호응하여, 법을 선택하고 분별하여 깨달아 앎을 구하고 지혜로 깨닫고 관찰한다. 이것을 성인과 출세간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없고 취함이 없어 바로 괴로움을 없애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 《잡아함경》 제28권 제785경 〈광설팔성도경〉(廣說八聖道經)  한문본 & 한글본
 

윤회(輪廻)는 산스크리트어 삼사라(Samsāra: "계속된 흐름 · Continuous flow")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윤회전생(輪廻轉生) 또는 생사유전(生死流轉)이라고도 한다.[3] 마치 수레바퀴가 회전하여 멎지 않는 것처럼 중생 번뇌 업(業)으로 인하여 "길잃은 세계"(미계 · 迷界), 즉 3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 6도(六道: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 수라도·인간도 · 천신도)에 다시 태어나고 죽는 것이 끝없는 것을 말한다.[3] 이 괴로운 존재에서 벗어나는 경지가 열반(涅槃)이다.[3] 윤회 사상은 인도 사상의 현저한 특색이었으며, 불교 역시 이 사상을 가졌다.[3] 윤회를 반복하는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있는 모습"(Bhava · 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3계중 이 세상인 욕계에 태어난 중생(衆生 · Sattva)은 여기에서 한 일(業)에 따라서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 · 인간 · 천신의 여섯 가지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를 취하완전지여 저곳에서 돌아 넘어가게 된다. 이들 중 뒤의 세 가지 삶은 좋은 업을 이룬 이들이 돌아가는 길("삼선도 · 三善道")라 부르며, 앞의 세 가지 삶은 나쁜 업을 이룬 이들이 지나가야 할 길("삼악도 · 三惡道")라 부른다.

또한 깨달음을 성취해 감에 따라, 욕계를 벗어나 3계(三界)의 다른 두 계인 색계 또는 무색계에 이르게 되며, 부처의 지위("열반")에 도달하면 3계 속에 윤회하는 일이 그치게 된다. 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삼계육도(三界六道)는 우주가 욕계 ·색계 ·무색계 3계(三界)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에서 욕계는 다시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천신의 6도(六道)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직 부처의 지위에 도달하지 못한 중생들이 끊임없이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태어나고를 무한히 반복하는 곳이다.

자이나교

자이나교는 자르바카(인도 유물론자)를 제외한 고대 인도의 모든 영적 전통과 마찬가지로 해탈을 목표로 한다. 자이나교에 따르면, 해탈은 윤회의 사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해탈은 영혼이 환전지를 성취함으로써 이루어진다.[4] 영혼의 본래 상태는 완전한 믿음, 완전한 지식, 완전한 능력, 완전한 기쁨이지만, 해탈하지 못한 영혼은 무지 격정을 원인으로 하여 형성된 카르마가 영혼과 결합되어 있어서 이러한 본래 상태가 가려져 있는 상태이다,[5] 새로운 카르마의 유입을 차단하고 이미 유입된 모든 카르마를 제거함으로써 본래의 상태인 완전지를 회복한 영혼은 생존 시에는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고 현생이 끝났을 때 세계의 가장 꼭대기로 올라가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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