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치원, 신선으로 유람하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201026.22016006734
불가·도가의 근본은 다르지 않아
칠불암 산문을 나서고도 치원은 행로를 정하지 못한다. 쌍계사를 찾아 선종(禪宗)을 논해볼까 생각도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을 듯싶다. 교종이니 선종이니, 대승이니 소승이니, 남악이니 북악이니 길을 달리하지만 그 끝은 모두 석가의 가르침을 따라 중생을 구제하려 함이다. 개중에 왕실, 귀족, 부자 등의 세속에 치우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부이거나 방편일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기에 현상일 수 있다’는 ‘반야심경’의 구절이다. 마치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놀다 깨니 자신이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신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말한 ‘호접몽(胡蝶夢·나비의 꿈)’을 연상케 한다. 얼핏 허무(虛無)를 말하는 것 같지만 반야심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공’은 각자 본래의 마음으로 걸림이나 공포, 교만 없이 맑고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마음으로 부정을 넘어 대긍정으로 가라는 것이다. 노자와 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또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무(無)’에서 ‘유(有)’, 다시 ‘무’로 순환되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자는 것이니 불가나 도가의 근본이나 지향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문득 윤회의 업을 끊어 열반에 들기보다 신선이 되어 영원히 소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치원은 자신의 엉뚱함에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진작부터 가보고 싶던 금오산으로 길을 잡는다. 하동 남쪽 바다가와 면한 금오산에 오르면 푸른 다도해가 시원스레 한눈에 보인다니 가슴이 탁 트일는지….
<39> 홍류동계곡 서당과 원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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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을 떠나 가야산에 든 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치원은 해인사의 모형(母兄) 현준이 관아와 상의해 세운 서당에서 유학(幼學)의 나이에 든(10세) 학동과 배움에 뜻을 둔 이들에게 유학(儒學)을 강론하며 수시로 지리산 자락을 유람했다. 유가·불가·도가에 신선사상까지 모두 인간을 구제하려 함이지만 세상은 여전히 혼탁하고 민생은 도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인사 선안주원 벽기
‘예기(禮記) 왕제(王制)’편에 동방을 ‘이(夷)’라 한다. 후한의 문장가 범엽은 ‘‘이’는 뿌리라는 뜻이다. 어질어 살리기를 좋아하니 만물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자란다. 그러므로 천성이 유순하여 도리로써 사람들을 인도한다’라 시작하여 ‘이아(爾雅·사전적 성격의 유교경전)’ ‘상서(尙書·중국 상고시대 정치를 기록한 경전으로 서경을 말한다)’ 등 사서의 글을 들어 ‘이’를 밝힌다. 이어 ‘그러므로 우리 대왕의 나라는 날(日)로 상승하고 달(月)로 왕성하여 물은 순조롭고 바람은 온화하니 어찌 깊숙이 겨울잠을 자던 것이 다시 떨치고 소생하는 것뿐이겠는가. 아마도 싹을 잡아당겨 무성히 자라도록 하니 생기고 변화하며, 생기고 변화하는 것이 진(震·동방)을 터전으로 하는 것이다’라 적는다. 이는 동국(東國·신라)의 사람으로 동국의 기운에 의지해 큰 뜻을 밝히겠다는 포부이리라.
‘위대하도다.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이요, 사람이 근본(宗)으로 삼는 것은 도(道)이다.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요,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도가 높아진다면 사람은 저절로 귀하게 된다. 도를 자조(資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도덕 있는 이를 존숭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가 높아지고 덕 있는 사람이 귀하게 될 것이니, 돌아보건대 법수(法首)라야 물정(物情)을 흡족하게 할 수 있고, 반드시 명칭을 바로 하고서야 대덕(大德)이라 일컫는다. 대덕이란 말은 도를 이름하여 대(大)라 하고, 덕이 이루어지면 윗자리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본문에 해당하는 글의 시작으로 유가·불가의 경전과 ‘노자’ 등을 인용하여 사람의 존귀함과 도를 밝힌 것이니 유·불·도를 아우르는 큰 구상을 밝힌 것이다. 또 ‘가야산의 승경(勝境)은 도를 성취하는 터전에 잘 들어맞으며, 해인(海印)의 특별한 보배는 더욱 으뜸가는 보배의 가치를 빛냈다’하여 해인사의 근기를 당당하게 했다.
글을 마친 치원은 잠시 생각한 뒤 글머리에 ‘신라 가야산 해인사 선안주원 벽기(新羅迦耶山海印寺善安住院璧記)’라 써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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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201116.2201600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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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풍류도는 고려 초기 잠시 ‘선랑’으로 이어졌지만 곧 맥이 끊어졌다. 팔만대장경은 불심이 풍류정신이 되어 세계제국 원나라로부터 나라를 지킨 상징이고 유산이다.
사진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 장경각 판전 내부. 합천군 제공
고려 때 ‘백운거사’ ‘삼혹호’란 호를 가졌던 불우한 천재 지식인 이규보와 그의 저서 ‘동국이상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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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당대 세계를 호령한 원(元)나라의 집요한 침략에도 허리는 굽혔으나 나라를 내주지는 않았다. 그들의 말발굽이 휘몰아치는 곳마다 수많은 나라가 파국을 맞았으나 기어이 살아냈으니 허리를 굽힌 것은 권력의 치자(治者)요, 지켜낸 것은 만백성의 정신이다.
3.1 만세운동(왼쪽)과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척살은 한민족 풍류정신의 발현이다. 오른쪽 사진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사형 집형에 앞서 조선 가톨릭교회의 평생 멘토인 빌렘 신부와 두 동생에게 유언을 하는 모습. 이후 빌렘 신부는 살인자를 만나지 말라는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명령을 어기고 안중근에게 성사에 베풀었다고 처벌을 받았다.
승려는 창칼을 들어 대적하며 대장경 불사를 일으키고 백성은 한마음으로 따랐으니 부처의 가피 이전에 정신의 승리인 것이다. 그러나 중심이었던 도량이 타락해 불전(佛殿)에 황금빛이 넘실거리고 승려는 부처를 팔아 뱃속을 채우니 기어이 나라가 망했다. 오호, 고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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