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산스크리트경명은 Buddhacarita이다. 줄여서 『본행경』이라 하고, 별칭으로 『불본행찬경(佛本行讚經)』,『불본행찬경전(佛本行讚經傳)』,『불본행찬전(佛本行讚傳)』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그의 생애를 찬탄하는 전기(傳記)이다. 매우 유려한 게송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불소행찬(佛所行讚)』과 더불어 부처님에 관한 대표적인 전기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러 불전 문학 가운데서도 이 경은,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불소행찬』과 더불어 불전전(佛全傳)에 속한다. 즉, 부처님의 전기를 부분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전 생애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이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2. 성립과 한역
유송(劉宋)시대에 보운(寶雲)이 424년에서 453년 사이에 양도(楊都)에서 번역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마명(馬鳴, Aśvaghoṣa)이 지은 『불소행찬(佛所行讚)』(K-980)의 이역본이라는 설이 있으나 양자는 내용상 차이가 매우 현저하다. 다만 두 경의 일치점은 전체 문장이 모두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상 일치하는 부분이 많지 않은 두 경이 동일한 원본에 대한 이역본이라는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4. 구성과 내용

『불소행찬』은 전체가 5권 28품으로 나뉘어 있는데, 『불본행경』은 전체가 7권 31품으로 나뉘어 있다. 각 품의 제목은 그 품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제1 「인연품(因緣品)」에서는 이 경이 구성된 까닭을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육왕(阿育王)이 8만4천의 탑(塔)을 세우고 불교를 부흥시킴으로, 천ㆍ용(天龍)ㆍ귀신들까지 크게 기뻐하자, 그 우레같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세존을 추념(追念)하면서 번민하니 천인들이 그 까닭을 물어 보았는데, 천상과 인간을 교화하시던 불성존(佛聖尊)을 추모함이라 하였다.
 
이때 모든 천상 사람들은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천상에 태어난지라, 부처님이란 말을 듣고 크게 기뻐 공경하는 마음으로 금강신(金剛神)에게 묻되,
‘부처님은 어떤 분이며, 무슨 좋고 묘한 덕이 있으며, 어떤 지혜의 힘이 있고, 그 형상은 어떠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장엄하였는지 저희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하였다.
 
이와 같이, 금강신이 하늘 사람들을 위해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고 본생담을 노래한 것으로 꾸며져 있으니, 이것은 다른 경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제2 「칭탄여래품(稱歎如來品)」에서는 부처님의 지혜와 위력, 그의 자비심을 찬탄하고 있다.
 
제3 「강태품(降胎品)」에서부터 제4 「여래생품(如來生品)」,
 
제5 「범지점상품(梵志占相品)」에서는 부처님이 입태하여 탄생한 뒤 부왕이 기뻐하는 장면까지 묘사되어 있다.
 
제6 「아이결의품(阿夷決疑品)」에서는 아이(阿夷)라는 선인(仙人)이 태자의 비범한 상을 보고 찬탄하는 내용이다.
 
제7 「입예론품(入譽論品)」부터 제10 「염부제수음품(閻浮提樹蔭品)」까지는 성장한 태자가 세속의 향락에 물들지 않고 출가의 길로 근접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제11 「출가품(出家品)」부터 제16 「항마품(降魔品)」까지는 출가한 뒤 수행하는 여정에서 겪은 일과 마침내 온갖 고난을 극복한 뒤 깨달음을 성취하는 장면이 서술되어 있다.
 
제17 「도오비구품(度五比丘品)」에서부터 제25 「항상품(降象品)」까지는 부처님이 설법을 통해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데 전생을 바친 일이 사건들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제26 「마권사수품(魔勸捨壽品)」에서는 부처님에게 악마 파순이 권하기를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마쳤으니 그만 세상을 떠나라고 한다. 부처님은 석 달 뒤에 세상을 뜨겠다고 하자 아난이 매우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이 품에 담겨 있다.
 
제27 「조달입지옥품(調達入地獄品)」에서는 조달이 지옥에 떨어지게 된 인연을 통해 생전에 지은 악업이 어떤 과보를 낳는지 보여 주고 있다.
 
제28 「현유포품(現乳哺品)」에서는 부처님의 복덕과 지혜, 신통력과 선정(禪定)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 설명하고 있다.
 
제29 「대멸품(大滅品)」에서는 부처님이 입멸한 전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제30 「탄무위품(歎無爲品)」에서는 부처님이 입멸한 뒤 다비하여 사리를 수습한 뒤 공양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제31 「팔왕분사리품(八王分舍利品)」에서는 부처님의 사리를 인접한 일곱 나라의 왕들과 나누어, 결국 8분하였다는 이야기를 서술하며 끝맺고 있다.

 

https://kydong77.tistory.com/22014

 

마명보살(馬鳴菩薩), 佛所行讚[佛本行經], 三藏曇無讖譯/ 한문본

http://buddhism.lib.ntu.edu.tw/BDLM/sutra/chi_pdf/sutra2/T04n0192.pdf 佛所行讚 卷第一(亦云佛本行經) 馬鳴菩薩造 北涼天竺三藏曇無讖譯 生品第一 甘蔗之苗裔 釋迦無勝王 淨財德純備 故名曰淨飯 群生樂瞻仰 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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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28품 

生品 第一  

處宮品 第二  

厭患品 第三 

厭患品 第三  

離欲品 第四  

出城品第五  

 

車匿還品第六  

入苦行林品 第七 

合宮憂悲品第八  

推求太子品 第九  

瓶沙王詣太子品 第十  

 

答瓶沙王品 第十一  

阿羅藍欝頭藍品 第十二  

 破魔品 第十三  

阿惟三菩提品第十四  

轉法輪品 第十五  

 

瓶沙王諸弟子品 第十六  

大弟子出家品 第十七 

化給孤獨品 第十八

父子相見品第十九

佛所行讚受祇桓精舍品第二十

 

守財醉象調伏品 第二十一 

菴摩羅女見佛品 第二十二  

神力住壽品 第二十三  

離車辭別品  第二十四  

涅槃品第二十五  

大般涅槃品  第二十六  

歎涅槃品 第二十七  

分舍利品 第二十八 

 

分舍利品 第二十八

http://buddhism.lib.ntu.edu.tw/BDLM/sutra/chi_pdf/sutra2/T04n0192.pdf

 

佛所行讚 分舍利品 第二十八  

彼諸力士眾  奉事於舍利   以勝妙香花  興無上供養   

時七國諸王  承佛已滅度   遣使詣力士  請求佛舍利   

彼諸力士眾  敬重如來身   兼恃其勇健  而起憍慢心   

寧捨自身命  不捨佛舍利   彼使悉空還  七王大忿恨   

興軍如雲雨  來詣鳩夷城   人民出城者  悉皆驚怖還   

告諸力士眾  諸國軍馬來   象馬車步眾  圍遶鳩夷城   

城外諸園林  泉池花果樹   軍眾悉踐蹈  榮觀悉摧碎   

力士登城觀  生業悉破壞   嚴備戰鬪具  以擬於外敵   

弓弩 石車  飛炬獨發來   七王圍遶城  軍眾各精銳   

羽儀盛明顯  猶如七耀光   鍾鼓如雷霆  勇氣盛雲霧   

力士大奮怒  開門而命敵   長宿諸士女  心信佛法者   

驚怖發誠願  伏彼而不害   隨親相勸諫  不欲令鬪戰   

勇士被重鉀  揮戈舞長劍   鍾鼓而亂鳴  執仗鋒未交   

有一婆羅門  名曰獨樓那   多聞智略勝  謙虛眾所宗   

慈心樂正法  告彼諸王言   觀彼城形勢  一人亦足當   

況復齊心力  而不能伏彼   正使相摧滅  復有何德稱   

利鋒刃既交  勢無有兩全   困此而害彼  二俱有所傷

  P. 132

鬪戰多機變  形勢難測量   或有強勝弱  或弱而勝強   

健夫輕毒蛇  豈不傷其身   有人性柔弱  群女子所獎   

臨陣成戰士  如火得膏油  鬪莫輕弱敵  謂彼無所堪   

身力不足恃  不如法力強   古昔有勝王  名迦蘭陀摩   

端坐起慈心  能伏大怨敵   雖王四天下  名稱財利豐   

終歸亦皆盡  如牛飲飽歸   應以法以義  應以和方便   

戰勝增其怨  和勝後無患   今結飲血讐  此事甚不可   

為欲供養佛  應隨佛忍辱   如是婆羅門  決定吐誠實   

方宜義和理  而作無畏說   爾時彼諸王  告婆羅門言   

汝今善應時  黠慧義饒益   親密至誠言  順法依強理   

且聽我所說  為王者之法   或因五欲諍  嫌恨競強力   

或因其嬉戲  不急致戰爭   吾等今為法  戰爭復何怪   

憍慢而違義  世人尚伏從   況佛離憍慢  化人令謙下   

我等而不能  亡身而供養   昔諸大地主  弼瑟阿難陀   

為一端正女  戰爭相摧滅   況今為供養  清淨離欲師   

愛身而惜命  不以力爭求   先王驕羅婆  與般那婆戰   

展轉更相破  正為貪利故   況為無貪師  而復貪其生   

羅摩仙人子  瞋恨千臂王

  P. 133  

破國殺人民  正為瞋恚故   況為無恚師  而惜於身命   

羅摩為私陀  殺害諸鬼國   況無攝受師  不為其沒命   

阿利及婆俱  二鬼常結怨   正為愚癡故  廣害於眾生   

況為智慧師  而復惜身命   如是比眾多  無義而自喪   

況今天人師  普世所恭敬   計身而惜命  不勤求供養   

汝若欲止爭  為吾等入城   勸彼令開解  使我願得滿   

以汝法言故  令我心小息   猶如盛毒蛇  呪力故暫止   

爾時婆羅門  受彼諸王教   入城詣力士  問訊以告誠   

外諸人中王  手執利器仗   身被於重鉀  精銳耀日光   

奮師子勇氣  咸欲滅此城   然其為法故  猶畏非法行   

是故遣我來  旨欲有所白   我不為土地  亦不求錢財   

不以憍慢心  亦無懷恨心   恭敬大仙故  而來至於此   

汝當知我意  何為苦相違   尊奉彼我同  則為法兄弟   

世尊之遺靈  一心共供養   慳惜於錢財  此則非大過   

法慳過最甚  普世之所薄   決定不通者  當修待賓法   

無有剎利法  閉門而自防   彼等悉如是  告此吉凶法   

我今私所懷  亦告其誠實   莫彼此相違  理應共和合   

世尊在於世  常以忍辱教

  P. 134  

不順於聖教  云何名供養   世人以五欲  財利田宅諍   

若為正法者  應隨順聖理   為法而結怨  此則理相違   

佛寂靜慈悲  常欲安一切   供養於大悲  而興於大害   

應等分舍利  普令得供養   順法名稱流  義通理則宣   

若彼非法行  當以法和之   是則為樂法  令法得久住   

佛說一切施  法施為最勝   人斯行財施  行法施者難   

力士聞彼說  內愧互相視   報彼梵志言  深感汝來意   

親善順法言  和理雅正說   梵志之所應  隨順自功德   

善和於彼此  示我以要道   如制迷塗馬  還得於正路   

今當用和理  從汝之所說   誠言而不顧  後必生悔恨   

即開佛舍利  等分為八分   自供養一分  七分付梵志   

七王得舍利  歡喜而頂受   持歸還自國  起塔加供養   

梵志求力士  得分舍利瓶   又從彼七王  求分第八分   

持歸起支提  號名金瓶塔   俱夷那竭人  聚集餘灰炭   

而起一支提  名曰灰炭塔   八王起八塔  金瓶及灰炭   

如是閻浮提  始起於十塔   舉國諸士女  悉持寶花蓋   

隨塔而供養  莊嚴若金山   種種諸伎樂  晝夜長讚嘆   

時五百羅漢  永失大師蔭

  P. 135  

恇然無所恃  還耆闍崛山   集彼帝釋巖  結集諸經藏   

一切皆共椎  長老阿難陀   如來前後說  巨細汝悉聞   

鞞提醯牟尼  當為大眾說   阿難大眾中  昇於師子座   

如佛說而說  稱如是我聞   合坐悉涕流   感此我聞聲  

如法如其時   如處如其人  隨說而筆受   究竟成經藏  

勤方便修學   悉已得涅槃  今得及當得   涅槃亦復然  

無憂王出世   強者能令憂  劣者為除憂   如無憂花樹  

王於閻浮提   心常無所憂  深信於正法   故號無憂王  

孔雀之苗裔   稟正性而生  普濟於天下   兼起諸塔廟  

本字強無憂   今名法無憂  開彼七王塔   以取於舍利  

分布一旦起   八萬四千塔  唯有第八塔   在於摩羅村  

神龍所守護   王取不能得  雖不得舍利   知佛有遺骼  

神龍所供養   增其信敬心  雖王領國土   逮得初聖果  

能令普天下   供養如來塔  去來今現在   悉皆得解脫  

如來現在世   涅槃及舍利  恭敬供養者   其福等無異  

明慧增上心   深察如來德  懷道興供養   其福亦俱勝  

佛得尊勝法   應受一切供  已到不死處   信者亦隨安  是故諸天人

  P. 136  

悉應常供養   第一大慈悲  通達第一義   度一切眾生  

孰聞而不感   生老病死苦  世間苦無過   死苦苦之大  

諸天之所畏   永離二種苦  云何不供養   不受後有樂  

世間樂無上   增生苦之大  世間苦無比   佛得離生苦  

不受後有樂   為世廣顯示  如何不供養   讚諸牟尼尊  

始終之所行   不自顯知見  亦不求名利   隨順佛經說  以濟諸世間 

 
1. 개요
산스크리트경명은 Buddhacarita이다. 줄여서 『본행경』이라 하고, 별칭으로 『불본행찬경(佛本行讚經)』,『불본행찬경전(佛本行讚經傳)』,『불본행찬전(佛本行讚傳)』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그의 생애를 찬탄하는 전기(傳記)이다. 매우 유려한 게송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불소행찬(佛所行讚)』과 더불어 부처님에 관한 대표적인 전기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러 불전 문학 가운데서도 이 경은,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불소행찬』과 더불어 불전전(佛全傳)에 속한다. 즉, 부처님의 전기를 부분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전 생애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이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2. 성립과 한역
유송(劉宋)시대에 보운(寶雲)이 424년에서 453년 사이에 양도(楊都)에서 번역하였다.
3. 주석서와 이역본
마명(馬鳴, Aśvaghoṣa)이 지은 『불소행찬(佛所行讚)』(K-980)의 이역본이라는 설이 있으나 양자는 내용상 차이가 매우 현저하다. 다만 두 경의 일치점은 전체 문장이 모두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상 일치하는 부분이 많지 않은 두 경이 동일한 원본에 대한 이역본이라는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4. 구성과 내용
『불소행찬』은 전체가 5권 28품으로 나뉘어 있는데, 『불본행경』은 전체가 7권 31품으로 나뉘어 있다. 각 품의 제목은 그 품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제1 「인연품(因緣品)」에서는 이 경이 구성된 까닭을 설명하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육왕(阿育王)이 8만4천의 탑(塔)을 세우고 불교를 부흥시킴으로, 천ㆍ용(天龍)ㆍ귀신들까지 크게 기뻐하자, 그 우레같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세존을 추념(追念)하면서 번민하니 천인들이 그 까닭을 물어 보았는데, 천상과 인간을 교화하시던 불성존(佛聖尊)을 추모함이라 하였다. 이때 모든 천상 사람들은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천상에 태어난지라, 부처님이란 말을 듣고 크게 기뻐 공경하는 마음으로 금강신(金剛神)에게 묻되 ‘부처님은 어떤 분이며, 무슨 좋고 묘한 덕이 있으며, 어떤 지혜의 힘이 있고, 그 형상은 어떠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장엄하였는지 저희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하였다. 이와 같이, 금강신이 하늘 사람들을 위해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고 본생담을 노래한 것으로 꾸며져 있으니, 이것은 다른 경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제2 「칭탄여래품(稱歎如來品)」에서는 부처님의 지혜와 위력, 그의 자비심을 찬탄하고 있다.
제3 「강태품(降胎品)」에서부터
제4 「여래생품(如來生品)」,
제5 「범지점상품(梵志占相品)」에서는 부처님이 입태하여 탄생한 뒤 부왕이 기뻐하는 장면까지 묘사되어 있다.
제6 「아이결의품(阿夷決疑品)」에서는 아이(阿夷)라는 선인(仙人)이 태자의 비범한 상을 보고 찬탄하는 내용이다.
제7 「입예론품(入譽論品)」부터 제10 「염부제수음품(閻浮提樹蔭品)」까지는
성장한 태자가 세속의 향락에 물들지 않고 출가의 길로 근접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제11 「출가품(出家品)」부터 제16 「항마품(降魔品)」까지는
출가한 뒤 수행하는 여정에서 겪은 일과 마침내 온갖 고난을 극복한 뒤 깨달음을 성취하는 장면이 서술되어 있다.
제17 「도오비구품(度五比丘品)」에서부터 제25 「항상품(降象品)」까지는 부처님이 설법을 통해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데 전생을 바친 일이 사건들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제26 「마권사수품(魔勸捨壽品)」에서는 부처님에게 악마 파순이 권하기를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마쳤으니 그만 세상을 떠나라고 한다. 부처님은 석 달 뒤에 세상을 뜨겠다고 하자 아난이 매우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이 품에 담겨 있다.
제27 「조달입지옥품(調達入地獄品)」에서는 조달이 지옥에 떨어지게 된 인연을 통해 생전에 지은 악업이 어떤 과보를 낳는지 보여 주고 있다.
제28 「현유포품(現乳哺品)」에서는 부처님의 복덕과 지혜, 신통력과 선정(禪定)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 설명하고 있다.
제29 「대멸품(大滅品)」에서는 부처님이 입멸한 전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제30 「탄무위품(歎無爲品)」에서는 부처님이 입멸한 뒤 다비하여 사리를 수습한 뒤 공양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제31 「팔왕분사리품(八王分舍利品)」에서는 부처님의 사리를 인접한 일곱 나라의 왕들과 나누어, 결국 8분하였다는 이야기를 서술하며 끝맺고 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374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大般涅槃經

https://suttacentral.net/t7/lzh/taisho?reference=none&highlight=false 

담무참(曇無讖)이 416년에서 423년 사이에 번역한 40권본(北本)과 혜엄(慧嚴) 등이 420년에서 479년 사이에 번역한 36권본(南本)이 있다. 이 중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통되어 왔던 것은 북본이다.

북본은 ① 수명품(壽命品), ② 금강신품(金剛身品), ③ 명자공덕품(名字功德品), ④ 여래성품(如來性品), ⑤ 일체대중소문품(一切大衆所問品), ⑥ 현병품(現病品), ⑦ 성행품(聖行品), ⑧ 범행품(梵行品), ⑨ 영아행품(嬰兒行品), ⑩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光明遍照高貴德王菩薩品), ⑪ 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 ⑫ 가섭보살품(迦葉菩薩品), ⑬ 교진여품(憍陳如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은 대승불교의 몇 가지 중요한 사상을 천명하였고, 이들은 우리나라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채택되고 있다. 첫째는 불신(佛身)이 상주(常住)한다는 사상이다.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불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비탄에 잠겨 있던 성문(聲聞)들에게 불신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 주고 있다. 즉, 여래(如來)의 몸은 법신(法身)이기 때문에 색신(色身)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래의 법신이 상락아정(常樂我淨)임을 밝혀서 『열반경』 이전의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었던 무상·무아·고(苦)·공(空)의 입장을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또한, 여래의 몸은 금강신으로서 상주하는 몸이요 허물어지지 않는(不壞) 몸이며 법신이라는 불신관(佛身觀)을 천명하였다.

둘째는 이와 같은 불신관에 따라서 열반의 긍정적인 가치를 선언하였는데, 열반에는 상(常)·항(恒)·안(安)·청량(淸凉)·불로(不老)·불사(不死)·무구(無垢)·쾌락(快樂)의 팔미(八味)가 있다고 하였다.

셋째는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는 사상이다. 대승불교 초기에 성불할 수 없다고 보았던 성문·연각(緣覺) 등의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죄 많은 존재로서 도저히 구제할 길이 없다고 낙인찍혀 온 일천제(一闡提)까지도 성불할 수 있다는 폭넓은 사상이다. 이것이 후기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의 중심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이 경에서는 금강삼매(金剛三昧)와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열반경』의 성격을 다른 경전과 견주어 검토할 학문적 필요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경은 열반의 어의, 불성의 의미 등 대승철학의 여러 개념에 관한 세밀한 현대적 분석을 가함에 있어서 매우 풍부한 자료를 수용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고승, 특히 삼국 및 신라의 고승들에 의해서 깊이 연구되었다.

이 경에 대한 한국인의 주석서는 [표]와 같다.

저 자 서 명
원효(元曉) 열반종요(涅槃宗要) 1권
열반경소(涅槃經疏) 5권
경흥(憬興) 대반열반경술찬(大般涅槃經述贊) 14권
대반열반경요간(大般涅槃經料簡) 1권
열반경소(涅槃經疏) 14권
지통(智通) 열반경라습역출십사음변(涅槃經羅什譯出十四音辨) 16권
의적(義寂) 열반경의기(涅槃經義記) 5권
열반경강목(涅槃經綱目) 2권
열반경소(涅槃經疏) 16권
열반경운하게(涅槃經云何偈) 1권
현일(玄一) 대열반경요간(大涅槃經料簡) 1권
태현(太賢) 열반경고적기(涅槃經古迹記) 3권 혹은 8권
승랑(僧朗) 대반열반경집해(大般涅槃經集解) 72권

이 가운데 승랑(僧朗)의 『대반열반경집해(大般涅槃經集解)』에 대해서는 이 문헌을 저술한 승랑이 같은 이름의 중국 승려일 수도 있고, 삼론학(三論學)의 대가였던 승랑이 삼론학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열반경』의 주석서를 지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승랑을 제외한 신라 승려 6인의 12종 저술 가운데 원효(元曉)의 『열반종요』 1종만이 남아 있어 신라 승려의 『열반경』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살필 수는 없지만, 『열반종요』만으로도 『열반경』에 대한 깊은 식견을 읽을 수 있다. 이 경에 대한 연구는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사상은 불교의 교학연구의 중심을 이루었다.

참고문헌
『불전해설(佛典解說)』(이기영, 한국불교연구원, 1978)
『한국불교찬술문헌목록(韓國佛敎撰述文獻目錄)』(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6)
 
 
 
국역본 대반열반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1 – 디지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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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 – 디지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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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 – 디지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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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 909] 쪽

대반열반경 제 34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4. 가섭보살품 ④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온갖 중생들이 다 번뇌로부터 과보를 얻나니, 번뇌는 악이라 하오며, 악한 번뇌로부터 생긴 번뇌도 악이라 하나이다. 이런 번뇌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인(因)이요, 또 하나는 과(果)입니다. 인이 악하므로 과가 악하고 열매가 좋지 않으므로 씨가 좋지 않나니, 마치 임파(임婆) 열매는 씨가 쓴 까닭에 꽃과 열매와 줄기와 잎이 모두 쓴 것과 같으며, 독한 나무는 씨가 독하므로 열매도 독한 것입니다. 인이 중생이매 과도 중생이며, 인이 번뇌이매 과도 번뇌니, 번뇌의 인과 과가 곧 중생이요, 중생이 곧 번뇌의 인과 과라 하나이다. 이러하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먼저 비유하시기를, ‘설산에 독한 풀과 미묘한 약왕이 있다’ 하셨나이까? 만일 번뇌가 곧 중생이요 중생이 곧 번뇌라 할진댄 어찌하여 중생의 몸 속에 묘한 약왕이 있다고 말씀하셨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선남자여, 한량없는 중생들이 모두 그 의심과 같거늘, 그대가 능히 물어서 해답을 구하였고, 나도 능히 결단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이제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설산이라 비유한 것은 곧 중생이요, 독한 풀은 곧 번뇌요, 미묘한 약왕은 곧 깨끗한 범행이니라.

[826 / 909] 쪽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이렇게 깨끗한 범행을 닦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몸에 묘한 약왕이 있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에게 깨끗한 범행이 있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세상에 씨로부터 열매가 나거든, 이 열매가 씨에게 인이 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거니와, 능히 인이 되는 것은 열매인 씨[果子]라 하고, 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열매라고만 하고, 씨라고는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다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번뇌의 과로서 번뇌의 인인 것이요, 또 하나는 번뇌의 과로서 번뇌의 인이 아닌 것이니라. 이 번뇌의 과로서 번뇌의 인이 아닌 것을 깨끗한 범행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은 수(受)를 관찰하여 이것이 온갖 번뇌의 가까운 인임을 아나니, 이른바 안팎 번뇌니라. 수의 인연인 연고로 온갖 번뇌를 끊지 못하고, 삼계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중생이 수로 인하여 나와 내 것에 집착하며,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뀜을 내느니라.
그러므로 중생은 먼저 수를 관찰하되, 이 수가 온갖 애(愛)에게 가까운 인이 된다 하리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가 애를 끊으려 하면 먼저 수를 관찰할지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12인연으로 짓는 선과 악은, 모두 수하는 때로 인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아난에게 말하기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짓는 선과 악은 모두 수하는 때이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먼저 수를 관찰할 것이요, 수를 관찰하고는 다시 관찰하되 ‘이러한 수는 무슨 인연으로 생기는가, 만일 인연으로 생긴다면, 이런 인연은 무엇으로 생기는가, 만일 인이 없이 생긴다면, 인이 없는 것이 무슨 연고로 수가 없음[無受]은 내지 않는가’ 하느니라. 또 관찰하기를 ‘이 수는 자재천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장정[士夫]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미진(微塵)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시절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생각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성품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자기로부터 나지도 않고, 다른 이로부터 나지도 않고, 자기와 다른 이로부터 나지도 않고, 인이 없이 나는 것도 아니요, 이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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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니, 인연은 곧 애니라. 이 화합 중에는 수가 있는 것도 아니요 수가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화합을 끊을 것이요, 화합을 끊으면 수가 생기지 않으리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나니, 중생이 수로 인하여 지옥·아귀·축생과 나아가 삼계의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으며, 수의 인연으로 무상한 즐거움을 받으며, 수의 인연으로 선근을 끊으며, 수의 인연으로 해탈을 얻는다 하느니라.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수의 인을 짓지 아니하나니, 무엇을 이름하여 수의 인을 짓지 않는다 하는가. 수를 분별하되 ‘어떠한 수가 애(愛)의 인을 지으며, 어떠한 애가 수의 인을 짓는가’ 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이 능히 이렇게 애의 인과 수의 인을 깊이 관찰하면, 능히 나와 내 것을 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이러한 관찰을 지으면, 마땅히 애와 수가 어디에서 멸하는가를 분별할 것이니, 애와 수가 조금 멸하는 곳을 본다면, 역시 끝까지 멸함을 알 것이니라. 그러하면 해탈에 대하여 믿는 마음을 낼 것이요, 믿는 마음을 내고는 이 해탈하는 곳은 무슨 인연으로 얻는가 하며, 8정도로부터인 줄 알고 곧 닦을 것이니라. 무엇을 8정도라 하는가. 이 도로 수를 관찰하는 데 세 가지 모양이 있으니, 하나는 괴로움이요, 둘은 즐거움이요, 셋은 괴로움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니라. 이 세 가지가 모두 몸과 마음을 증장하나니, 무슨 인연으로 증장하는가. 촉(觸)하는 인연이니라. 촉이 세 가지니, 하나는 무명촉(無明觸)이요, 둘은 명촉(明觸)이요, 셋은 명도 무명도 아닌 촉[非明無明觸]이니라. 명촉은 곧 8정도요, 다른 두 촉은 몸과 마음과 세 가지 수를 증장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두 가지 촉의 인연을 끊으리니, 촉이 끊어지면, 세 가지 수가 생기지 아니하리라.
선남자여, 이와 같은 수는 인이라고도 이름하고 과라고도 이름하나니,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인도 되고 과도 되는 줄을 관찰할 것이니라. 무엇을 인이라 하는가. 수로 인하여 애를 내는 것을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과라 하는가. 촉으로 인하여 생기므로 과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수를 인도 되고 과도 된다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이와 같이 수를 관찰하고는, 다시 애를 관찰할지니 과보를 받으므로 애라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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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있는 이가 애를 관찰하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잡식(雜食)이요, 하나는 무식(無食)이니라. 잡식애(雜食愛)라 함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유를 인함이요, 무식애(無食愛)라 함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유를 끊고 무루의 도를 탐함이니라. 지혜 있는 이는 또 이렇게 생각할지니, 내가 만일 잡식애를 내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끊지 못할 것이며, 내가 비록 무루의 도를 탐하지만 수의 인을 끊지 못하면 무루의 도과를 얻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촉을 먼저 끊어야 하며, 촉이 끊어지면 수가 스스로 멸하며, 수가 멸하면 애도 따라서 멸할 것이니, 이것을 8정도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이렇게 관찰하면 비록 몸에 독이 있으나 미묘한 약왕도 있느니라.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이 있지만 미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런 중생은 비록 번뇌로부터 과보를 얻더라도, 이 과보는 다시 번뇌의 인이 되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깨끗한 범행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수와 애의 두 가지가 무슨 인연으로 생기는가를 관찰하면, 생각으로 인하여 생기는 줄을 알지니, 왜냐 하면 중생이 색을 보아도 탐심을 내지 아니하고, 수를 관찰할 때에도 탐심을 내지 아니하지만 만일 색에 대하여 뒤바뀐 생각을 내어 색이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며, 수가 항상하여 변역함이 없다 하면, 이 뒤바뀐 생각으로 인하여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내게 되나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생각을 관찰할지니라. 어떻게 생각을 관찰하는가. 생각하기를 모든 중생이 바른 도를 얻지 못하면, 다 뒤바뀐 생각이 있나니, 무엇을 뒤바뀐 생각이라 하는가. 항상하지 아니한데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고, 즐거움이 아닌데 즐겁다는 생각을 내고, 깨끗하지 아니한데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고, 공한 법에 나라는 생각을 내고, 남자·여자·큰 것·작은 것·낮·밤·해·달·의복·집·와구가 아닌데 남자·여자, 나아가 와구란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이 생각이 세 가지니, 하나는 작은 것, 둘은 큰 것, 셋은 그지없는 것이니라. 작은 인연으로 작은 생각을 내고, 큰 인연으로 큰 생각을 내고, 그지없는 인연으로 그지없는 생각을 내느니라. 또 작은 생각이 있으니 선정에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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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함이요, 큰 생각이 있으니 이미 선정에 듦이요, 그지없는 생각이 있으니 열 가지 온갖 곳[一切處]에 들어감이니라. 또 작은 생각이 있으니 욕계의 모든 생각들이요, 큰 생각이 있으니 색계의 모든 생각들이요, 그지없는 생각이니라. 세 가지 생각이 멸하므로 수가 스스로 멸하고, 생각과 수가 멸하므로 해탈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온갖 법이 멸한 것을 해탈이라 하옵는데 여래께서 어찌하여 생각과 수가 멸한 것을 해탈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가 어떤 때에 중생으로 인하여 말하거든 듣는 이는 법이라고 이해하며, 어떤 때에 법으로 인하여 중생을 말하거든 듣는 이도 중생을 말한다고 이해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중생으로 인하여 말하거든 듣는 이는 법이라고 이해한다’ 하는가. 내가 예전에 대가섭에게 말하기를 ‘가섭아, 중생이 멸할 때에 선한 법이 멸하느니라’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으로 인하여 말하거든 듣는 이는 법이라 해석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법으로 인하여 중생을 말하거든 듣는 이도 중생을 말한다고 이해한다’ 하는가. 내가 전에 아난에게 말하기를 ‘나는 온갖 법을 친근한다고 말하지도 않고, 또 온갖 법을 친근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도 않나니, 만일 법을 친근하여서 선한 법이 쇠약하고 불선한 법이 치성하면, 그런 법은 친근하지 말아야 하고, 법을 친근하여서 불선한 법이 쇠약하고 선한 법이 증장하면, 그런 법은 친근하여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되 법으로 인하여 중생을 말하거든 듣는 이도 중생을 말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비록 생각과 수 두 가지가 멸함을 말하였으나 이미 온갖 것을 끊는다 말한 것이니, 지혜 있는 이가 이러한 생각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생각의 일을 관찰하되, ‘이 한량없는 생각이 무엇을 인하여 생기는가’ 하면, 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줄을 알 것이니라. 촉은 두 가지니, 하나는 번뇌의 촉이요, 또 하나는 해탈의 촉이니라. 무명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을 번뇌의 촉이라 하고, 명(明)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을 해탈의 촉이라 하나니,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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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촉으로 인하여서 뒤바뀐 생각이 생기고, 해탈의 촉으로 인하여서 뒤바뀌지 않은 생각이 생기느니라. 생각의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할지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번뇌의 생각으로 인하여 뒤바뀐 생각이 생긴다면, 모든 성인이 실로 뒤바뀐 생각이 있으면서도 번뇌가 없사오니, 이 이치는 어떠하겠습니까?”
“선남자여, 어찌하여 성인이 뒤바뀐 생각이 있다 하는가?”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성인들이 소[牛]에 소라는 생각을 내고는 소라고 말하고, 말이라는 생각을 내고는 말이라고 말하며, 남자·여인·큰 것·작은 것·집·수레·가고, 오는 데도 그러하니, 이것을 뒤바뀐 생각이라 하나이다.”
“선남자여, 모든 범부는 두 가지 생각이 있으니, 하나는 세간에 퍼지는 생각이요, 또 하나는 집착하는 생각이니라. 모든 성인들은 세간에 퍼지는 생각만 있고, 집착하는 생각이 없느니라. 모든 범부들은 나쁜 각관(覺觀)이므로 세간에 퍼지는 것에 집착하는 생각을 내거니와, 모든 성인들은 좋은 각관이므로 세간에 퍼지는 것에 집착하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범부는 뒤바뀐 생각이라 하고, 성인은 비록 알지만 뒤바뀐 생각이라 하지 않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생각의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되 나쁜 생각의 과보는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에서 받는다 하느니라. 내가 나쁜 각관을 끊음으로 인하여 무명과 촉이 끊어지고, 그리하여 생각이 끊어지며, 생각이 끊어짐으로 인하여 과보도 끊어지나니,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생각의 인을 끊기 위하여 8정도를 닦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이러한 관찰을 하는 이가 있으면, 청정한 범행이라 할 것이니,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의 독한 몸에 미묘한 약왕이 있다 하나니,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이 있지만 미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으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탐욕을 관찰하나니, 탐욕은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은 곧 여래가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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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니, 이 다섯 가지로부터 탐욕을 내는 것이요, 실로 탐욕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것을 받으려고 탐하여 구하는 연고로 이 빛에 대하여 뒤바뀐 생각을 내며, 나아가 촉에 대하여서도 뒤바뀐 생각을 내고, 뒤바뀐 생각의 인연으로 수(受)를 내나니, 그래서 세상에서 말하기를 ‘뒤바뀐 생각으로 인하여 열 가지 생각을 낸다’고 하느니라. 탐욕의 인연으로 세간에서 나쁜 과보를 받고, 나쁜 것을 부모와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가하기도 하고, 짓지 않아야 할 일을 짐짓 지으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나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나쁜 생각의 인연으로 탐욕의 마음을 내게 하는 줄을 관찰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탐욕의 인연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되, 이 탐욕으로 모든 나쁜 과보가 많으니,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이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과보를 관찰한다 하느니라. 만일 나쁜 생각을 제멸하면 욕심이 생기지 아니하고, 욕심이 없으므로 나쁜 수를 받지 아니하며, 나쁜 수가 없으므로 나쁜 과보가 없으리니, 그러므로 내가 먼저 나쁜 생각을 끊어야 하며, 나쁜 생각이 끊어지면 이런 법이 자연히 없어진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가 나쁜 생각을 없애기 위하여 8정도를 닦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청정한 범행이라 하며,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의 독한 몸 가운데 묘한 약왕이 있는 것이,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도 있지만 묘한 약도 있음과 같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탐욕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업을 관찰하나니, 왜냐 하면 지혜 있는 사람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수와 생각과 촉의 탐욕이 곧 번뇌며, 이 번뇌는 능히 나는 업은 지으나 받는 업은 짓지 못한다 하느니라. 이러한 번뇌가 업과 함께 행해지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나는 업을 지음이요, 또 하나는 받는 업을 지음이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업을 관찰할 것이니라. 업에 세 가지가 있으니, 몸과 입과 뜻이니라.
선남자여, 몸과 입의 두 업은 업이라고도 하고, 업의 과보라고도 하거니와 뜻은 업이라고만 이름하고, 과보라고는 이름하지 않나니, 업의 인이므로 업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몸과 입의 두 업은 바깥 업이라 하고, 뜻의 업은 안의 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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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이 세 가지 업이 번뇌와 함께 행해지므로 두 가지 업을 짓나니, 하나는 나는 업이요, 또 하나는 받는 업이니라.
선남자여, 정업(正業)은 뜻으로 짓는 업이요, 기업(期業)은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이니라. 먼저 나는 것이므로 뜻의 업이라 하고, 뜻으로부터 생기므로 몸의 업, 입의 업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뜻의 업을 정업이라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업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업의 인을 관찰하나니, 업의 인은 무명과 촉이며, 무명과 촉으로 인하여 중생이 유(有)를 구하고, 유를 구하는 인연이 곧 애(愛)니라. 애의 인연으로 몸·입·뜻의 세 가지 업을 짓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업의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느니라. 과보에 넷이 있으니, 하나는 흑흑과보(黑黑果報)요, 둘은 백백(白白)과보요, 셋은 잡잡(雜雜)과보요, 넷은 불흑불백불흑불백(不黑不白不黑不白)과보니라. 흑흑과보라 함은 업을 지을 때도 더럽고, 과보도 더러운 것이요, 백백과보라 함은 업을 지을 때도 깨끗하고 과보도 깨끗한 것이요, 잡잡과보라 함은, 업을 지을 때도 섞였고 과보도 섞인 것이요, 불백불흑불백불흑과보라 함은, 무루의 업을 이름하는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먼저 말씀하시기는 무루는 과보가 없다 하시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불백불흑과보라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여, 이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과도 되고 보도 되며, 다른 하나는 과뿐이요 보는 아니니라. 흑흑과보는 과도 되고 보도 되나니, 검은 인으로 생겼으므로 과라 하고, 능히 인을 지으므로 보라 하며, 깨끗함과 섞인 것도 그러하니라. 무루의 과라 함은, 유루로 인하여 생겼으므로 과라 하고, 다른 인을 짓지 아니하므로 보라고는 이름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과라고 이름하고 보라고는 이름하지 않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무루의 업이 흑법이 아니온데, 무슨 인연으로 백(白)이라고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보가 없으므로 백이라고 이름하지 아니하고, 흑(黑)을 다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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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백이라고 이름하나니, 나는 지금 과보를 받는 것을 백이라고 이름하는데, 무루의 업은 보를 받지 아니하므로 백이라고 이름하지 않고, 적정(寂靜)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러한 업은 결정코 보를 받는 곳이 있나니, 10악법은 지옥·아귀·축생에 나고, 10선업은 인간과 천상에 나느니라. 10불선업에 상품·중품·하품이 있으니, 상품의 인연으로는 지옥의 몸을 받고, 중품의 인연으로는 축생의 몸을 받고, 하품의 인연으로는 아귀의 몸을 받느니라. 인간의 업인 10선업에 또 네 가지가 있으니, 하품·중품·상품·상상품이니라. 하품의 인연으로는 울단월(鬱單越)에 나고, 중품의 인연으로는 불바제(弗婆提)주에 나고, 상품의 인연으로는 구다니(瞿陀尼)주에 나고, 상상품의 인연으로는 염부제(閻浮提)주에 나느니라.
지혜 있는 사람이 이렇게 관찰하고는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어떻게 이 과보를 끊을 것인가’ 하고, 또 생각하기를 ‘이 업의 인연이 무명과 촉으로 생겼으니, 내가 만일 무명과 촉을 끊어 버린다면, 이런 업과는 멸하고 나지 아니하리라’ 하느니라. 그래서 지혜 있는 이는 무명과 촉을 끊으려는 인연으로 8정도를 닦나니, 이것이 곧 청정한 범행이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의 독한 몸 속에 묘한 약왕이 있는 것이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이 있지만 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으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업을 관찰하며 번뇌를 관찰하고는, 다음에 이 두 가지로 얻게 되는 과보를 관찰하나니, 두 가지의 과보는 곧 고통이니라. 이미 고통인 줄을 알고는, 온갖 것에 태어나는 일을 버리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되 ‘번뇌의 인연으로 번뇌를 내고, 업의 인연으로도 번뇌를 내고, 번뇌의 인연으로 다시 업을 내며, 업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내고, 괴로움의 인연으로 번뇌를 내며, 번뇌의 인연으로 유(有)를 내고, 유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내며, 유의 인연으로 유를 내고, 유의 인연으로 업을 내며, 업의 인연으로 번뇌를 내고, 번뇌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내며, 괴로움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낸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능히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이 사람은 능히 업과 괴로움을 관찰하리니, 왜냐 하면 위에서 말한 것은 곧 나고 죽는 12인연이니, 만일 사람이 나고 죽는 12인연을 관찰하면, 이 사람은 새로운 업은 짓지 아니하고 낡은 업은 깨뜨릴 것임을 알지니라.

[834 / 909] 쪽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은 지옥의 고통을 관찰하나니 한 지옥으로부터 136지옥까지를 관찰하되 ‘낱낱 지옥에 가지가지 고통이 있는 것이 모두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난다’ 하리라. 지옥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아귀와 축생 등의 고통을 관찰하며, 이렇게 관찰하고는 인간과 천상에 있는 모든 고통을 관찰하되 ‘이런 고통들이 모두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천상에는 크게 괴롭고 시끄러운 일은 없지만 그러나 몸이 보드랍고 매끄러워서 다섯 가지 모양을 보게 될 때에는, 지극히 괴로운 것이 지옥의 고통과 같아서 차별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삼계의 모든 고통이 다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생기는 줄을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날기와가 부서지기 쉽듯이 중생의 몸을 받음도 그와 같으니라. 이미 몸을 받으면 이는 괴로움의 그릇이니, 마치 큰 나무에 꽃과 열매가 번성하면 새의 무리가 쪼아 먹듯이, 마른 풀 무더기를 조그만 불이 태울 수 있듯이 중생이 받는 몸이 괴로움 때문에 부수어지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여덟 가지 괴로움을 관찰할 때에 성인의 행과 같이 하면, 이 사람은 능히 모든 괴로움을 끊을 것이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 여덟 가지 괴로움을 깊이 관찰하고는, 다음에 괴로움의 인을 관찰할지니, 괴로움의 인은 곧 애와 무명이니라. 애와 무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몸을 구함이요, 또 하나는 재물을 구함이니라. 몸을 구함과 재물을 구함이 모두 괴로움이니, 그러므로 애와 무명이 괴로움의 인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이 애와 무명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이요, 또 하나는 밖이니라. 안의 것은 능히 업을 짓고, 바깥 것은 능히 증장케 하느니라. 또 안의 것은 업을 짓고, 바깥 것은 업의 과보를 짓나니, 안의 애를 끊으면 업이 끊어지고, 바깥 애를 끊으면 과보가 끊어지느니라. 안의 애는 오는 세상의 괴로움을 내고, 바깥 애는 지금 세상의 괴로움을 내나니, 지혜 있는 이는 애가 괴로움의 인임을 관찰하느니라. 이미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할지니, 괴로움의 과보는 곧 취(取)니라. 애의 과보를 취라 이름하나니, 취의 인연이 곧 안팎의 애이므로 애의 고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애는 취의 인연이요 취는 애의 인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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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관찰할 것이니, 만일 내가 애와 취의 두 가지를 끊으면, 업을 짓고 괴로움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애의 괴로움을 끊기 위하여 8정도를 닦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깨끗한 범행이라 이름하며,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의 독한 몸 속에 묘한 약이 있는 것이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이 있지만 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다고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깨끗한 범행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법이 그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온갖 법이라 함은 뜻이 결정되지 않았나니, 왜냐 하면 여래께서 혹은 선과 불선을 말씀하시고, 혹은 4념처관(念處觀)을 말씀하시고, 혹은 12입(入)을 말씀하시고, 혹은 선지식을 말씀하시고, 혹은 12인연을 말씀하시고, 혹은 중생이라 말씀하시고, 혹은 바른 소견과 삿된 소견을 말씀하시고, 혹은 12부경을 말씀하시고, 혹은 2제(諦)를 말씀하시더니 여래께서 이제는 온갖 법이 깨끗한 범행이라 말씀하시니, 어떠한 온갖 법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이 미묘한 대열반경이 모든 선한 법의 보배 광이니라. 마치 큰 바다가 여러 가지 보배의 광이듯이 이 열반경도 그와 같아서 온갖 글자와 뜻의 비밀한 광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수미산이 모든 약의 근본이듯이 이 경도 그와 같아서 보살계(菩薩戒)의 근본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허공이 온갖 물건이 있는 곳인 것처럼 이 경도 그와 같아서 온갖 선한 법이 머무는 곳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맹렬한 바람을 붙들어 맬 수 없듯이 모든 보살로서 이 경을 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의 나쁜 법에 얽매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금강을 깨뜨릴 수 없듯이 이 경도 그와 같아서 외도나 나쁜 사람들이 깨뜨릴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항하의 모래를 셀 수 없듯이 이 경의 뜻도 그와 같아서 셀 사람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이 경전이 모든 보살에게 법의 짐대[幢]가 되는 것이 제석의 짐대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열반의 성에 나아가는 장사꾼의 우두머리니, 마치 길잡이가 장사꾼들을 데리고 큰 바다로 가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이 모든 보살들에게 법의 광명이 되는 것이 마치 세상의 해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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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둠을 깨뜨림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병들어 고생하는 중생들에게 훌륭한 약이 되나니, 마치 향산 속에 있는 미묘한 약왕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일천제의 지팡이가 되나니, 마치 쇠약한 사람이 짚고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모든 나쁜 사람에게 다리가 되나니, 마치 세간의 다리가 모든 사람을 건너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3유(有)에 다니는 이로서 번뇌의 뜨거움을 만난 이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나니, 마치 세간의 일산이 햇볕을 가리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두려움이 없는 큰 왕이어서 모든 번뇌의 악마를 깨뜨릴 수 있으니, 마치 사자 왕이 뭇 짐승을 항복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신기한 주문의 스승이어서 온갖 번뇌의 마귀들을 부수나니, 마치 세간의 주문하는 사람이 도깨비를 쫓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더할 수 없는 우박이어서 모든 생사의 과보를 파괴하나니, 마치 세간의 우박이 모든 과실을 부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계율의 눈[戒目]이 망가진 이에게 좋은 약이 되나니, 마치 세간의 안사타약(安闍陀藥)이 안질을 치료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모든 선한 법을 머물게 하나니, 세간의 땅이 모든 물건을 머물러 두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계율을 깨뜨린 중생에게 밝은 거울이 되나니, 세상의 거울이 모든 모양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이에게 의복이 되나니, 세간의 옷이 몸을 가리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선한 법이 부족한 이에게 큰 보물이 되나니, 마치 공덕천(功德天)이 가난한 이를 이익케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법에 목마른 중생에게 감로수가 되나니, 마치 여덟 가지 맛을 가진 물이 목마른 이를 만족케 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번뇌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법상(法床)이 되나니, 세상의 궁핍한 사람이 편안한 평상을 만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초지 보살로부터 10지 보살에 이르기까지 영락·향기 있는 꽃·바르는 향·가루향·사르는 향과 청정한 성품을 구족한 수레가 되어 모든 6바라밀을 지나서 훌륭한 즐거움을 받는 곳이니, 마치 도리천의 파리질다라나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금강처럼 잘 드는 도끼니, 모든 번뇌의 나무를 찍으며, 잘 드는 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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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를 베며, 날쌘 장사니 원수를 부수며, 지혜의 불이니 번뇌의 섶을 태우며, 인연의 광이니 벽지불을 내며, 성문의 광이니 성문인을 내며, 모든 하늘들의 눈이며, 모든 사람의 바른 길이며, 모든 축생이 의지할 곳이며, 아귀가 해탈할 곳이며, 지옥의 위없는 어른이며, 모든 시방 중생의 위없는 그릇이며, 시방의 과거·미래·현재의 여러 부처님의 부모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이 경은 모든 법을 포섭하였느니라. 내가 전에 말하기를 이 경이 비록 모든 법을 포섭한다 하였으나, 내가 말하는 범행은 곧 37조도법(助道法)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이 37품을 여의고는, 마침내 성문의 바른 과(果)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를 얻지 못하며, 불성과 불성의 과를 보지 못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범행이 곧 37품이라 하느니라. 왜냐 하면 37품은 성품이 뒤바뀐 것이 아니매 능히 뒤바뀐 것을 깨뜨리며, 성품이 나쁜 소견이 아니매 능히 나쁜 소견을 깨뜨리며, 성품이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매 능히 공포스러움을 깨뜨리며, 성품이 깨끗한 행이매 중생으로 하여금 끝까지 청정한 범행을 짓게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유루법도 능히 무루법의 인을 지을 수 있거늘, 여래께서 어찌하여 유루가 청정한 범행이라 말씀하시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모든 유루는 곧 뒤바뀐 것이므로, 유루는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세제일법(世第一法)은 유루가 되나이까, 무루가 되나이까?”
“선남자여, 그것은 유루니라.”
“세존이시여, 비록 유루라 하지만 성품은 뒤바뀐 것이 아니온데, 무슨 연고로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무루의 인이므로 무루와 비슷하고, 무루로 향하는 것이므로 뒤바뀌었다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청정한 범행은 마음을 내어 서로 계속하여 필경까지 이르거니와, 세제일법은 한 생각뿐이므로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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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의 5식(識)도 유루이지만 뒤바뀌지 아니하였사오며, 또 한 생각도 아니온데, 무슨 연고로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중생의 5식은 비록 한 생각은 아니나, 유루이고 또 뒤바뀐 것이라 모든 누(漏)를 더하게 하므로 유루라 이름하고, 자체가 진실하지 아니하고 생각에 집착하였으므로 뒤바뀐 것이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자체가 진실하지 아니하고 생각에 집착하였으므로 뒤바뀌었다 하였는가. 남녀가 아닌데 남녀라는 생각을 내고, 나아가 집과 수레와 질그릇과 옷에도 그와 같으므로 뒤바뀌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37품은 성품이 뒤바뀌지 않았으므로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37품에 대하여 근본을 알고 원인을 알고 섭취함을 알고 증장함을 알고 주인됨을 알고 인도함을 알고 훌륭함을 알고 진실함을 알고 필경을 안다면, 이런 보살은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할 수 있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근본을 알며, 나아가 필경을 안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훌륭한 말이다. 보살이 묻는 것이 두 가지 일을 위하여서니, 하나는 스스로 알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다른 이를 알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대는 지금 이미 알았지만 한량없는 중생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묻는 것이므로 내가 그대를 찬탄하노라.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37품의 근본은 욕망이요, 원인은 밝은 촉[明燭]이요, 섭취함은 수(受)라 하고, 증장함은 잘 생각함이라 하고, 주인되는 것은 억념(憶念)이라 하고, 인도함은 선정이라 하고, 휼륭함은 지혜라 하고, 진실함은 해탈이라 하고, 필경은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한 욕망은 처음 도심(道心)을 내는 것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의 근본이니, 그러므로 내가 욕망이 근본이라 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세간에서 말하기를 ‘모든 번뇌는 애가 근본이요, 모든 병은 식체가 근본이요, 모든 결단하는 일은 투쟁(鬪諍)이 근본이요, 모든 악한 일은 허망함이 근본이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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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이 경에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선한 법에는 방일하지 아니함이 근본이 된다’ 하시더니, 이제 욕망이라 말씀하시니, 무슨 뜻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내는 인[生因]을 말하면 선한 욕망이요, 나타내는 인[了因]을 말하면 방일하지 않음이니라. 마치 세간에서 말하기를 ‘모든 열매에는 씨가 인이 된다’ 하거니와, 혹은 말하기를 ‘씨는 내는 인이요, 땅은 나타내는 인이라’ 하나니, 이 뜻도 그와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전에 다른 경에서는, ’37품은 부처가 근본이라’고 말씀하셨사온데, 이 뜻이 어떠하옵니까?”
“선남자여, 여래가 전에는 ‘중생이 처음 37품을 아는 데는 부처가 근본이라’ 하였거니와, 스스로 증득하는 것은 욕망이 근본이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밝은 촉이 원인이 된다 이름하시나이까?”
“선남자여, 여래가 어떤 때에는 밝은 것이 지혜라 말하고, 어떤 때는 믿음이라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믿는 인연으로 선지식을 친근하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친근하는 인연으로 바른 법[正法]을 듣게 되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바른 법을 들음으로 인하여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하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3업이 깨끗함으로 인하여 바른 생명[正命]을 얻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바른 생명으로 인하여 근을 깨끗하게 하는 계율[淨根戒]을 얻고, 근을 깨끗하게 하는 계율로 인하여 고요한 곳을 좋아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함으로 인하여 잘 생각하고, 잘 생각함으로 인하여 법답게 머물게 되고, 법답게 머무름으로 인하여 37품을 얻어서 한량없는 나쁜 번뇌를 깨뜨리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수(受)를 섭취라 이름하느니라. 중생이 수할 때에 선과 악을 짓나니, 그러므로 수를 이름하여 섭취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수하는 인연으로 모든 번뇌를 내거든 37품이 능히 깨뜨리나니, 그러므로 수하는 것을 섭취라 하느니라. 잘 생각함으로 인하여 능히 번뇌를 깨뜨리나니, 그러므로 증장한다 이름하느니라. 왜냐 하면 부지런히 닦는 연고로 이러한 37품을 얻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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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만일 관찰하여 나쁜 번뇌를 깨뜨리려 하면, 반드시 오로지 생각하여야 하나니, 그래서 생각하는 것으로 주인을 삼느니라. 마치 세간에서 네 가지 군대들이 주장(主將)의 뜻을 따르듯이 37품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는 주장을 따르느니라. 선남자여, 이미 선정에 든 뒤에 37품이 모든 법의 행상(行相)을 잘 분별하나니, 그러므로 선정으로 인도를 삼느니라. 37품이 법의 행상을 분별함에는 지혜가 가장 뛰어나므로 지혜를 훌륭하다 하느니라. 이렇게 지혜가 번뇌를 안 뒤에는 지혜의 힘으로 번뇌가 소멸되느니라. 마치 세상의 네 가지 군대가 원수를 하나나 둘이나 파괴하려면 용맹한 이라야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37품도 그와 같아서 지혜의 힘으로 번뇌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지혜를 훌륭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37품을 닦음으로 인하여 4선정의 신통과 안락을 얻더라도 진실하다 이름하지 않거니와, 번뇌를 깨뜨리고 해탈을 증득할 때에야 진실하다 이름하느니라. 이 37품에 마음을 내고 도를 닦아서, 세상의 즐거움이나 출세간의 즐거움이나 네 가지 사문의 과나 해탈을 얻더라도 필경이라 이름하지 못하거니와, 만일 37품으로 행하는 일을 끊어 버려야 열반이라 이름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필경이란 것은 곧 대열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잘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곧 욕망이니 잘 사랑하고 생각함으로 인하여 선지식을 친근하므로 촉이라 이름하며, 이것을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을 친근함으로 인하는 연고로 수라 이름하며, 이것을 섭취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을 친근함으로 인하여 잘 생각하나니, 그러므로 증장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네 가지 법으로 인하여 도를 생장케 하나니, 욕망과 생각과 선정과 지혜며, 이것을 이름하여 주인이라 인도[導]라 훌륭하다 이름하느니라. 이 세 가지 법으로 인하여 두 해탈을 얻나니, 애를 끊어 버리므로 마음의 해탈을 얻고, 무명을 끊어 버리므로 지혜의 해탈을 얻나니, 이것을 진실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러한 여덟 가지 법으로 필경에 과를 얻음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이름하나니, 그러므로 필경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욕망이라 함은, 마음을 내어 출가하는 것이요, 촉은 곧 백사 갈마(白四羯磨)니, 이것을 인이라 이름하며, 섭취한다 함은 곧 두 가지 계를 받는 것이니, 하나는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又戒)요, 또 하나는 정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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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根戒)라, 이것을 수라 하며, 이것을 섭취라 하느니라. 증장한다 함은 4선을 닦음이요, 주인이라 함은 수다원과와 사다함과요, 인도라 함은 아나함과요, 훌륭하다 함은 아라한과요, 진실하다 함은 벽지불과요, 필경이라 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니라.
또 선남자여, 욕망은 식이라 이름하고, 촉은 6입이라 이름하고, 섭취는 수라 이름하고, 증장함은 무명이라 이름하고, 주인은 명색(名色)이라 이름하고, 인도함은 애라 이름하고, 훌륭함은 취라 이름하고, 진실함은 유라 이름하고, 필경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근본과 인과 증장하는 이 세 가지 법이 어떻게 다르나이까?”
“선남자여, 근본이라 함은 곧 처음 마음을 내는 것이요, 인은 비슷하게 끊어지지 않음이요, 증장함은 비슷한 것을 멸하고는 능히 비슷한 것을 내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근본은 곧 짓는 것이요, 인은 곧 과요, 증장함은 곧 쓸 수 있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미래의 세상에 과보가 있더라도 받지 못하였으므로 인이라 이름하였다가, 받을 때에는 증장한다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근본은 곧 구함이요, 얻으면 곧 인이요, 작용은 곧 증장이니라. 선남자여, 이 경에서 근본은 도를 보는 것이요, 인은 도를 닦는 것이요, 증장은 무학의 도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근본은 정인(正因)이요, 인은 방편인(方便因)이니, 이 두 인으로부터 과보를 얻는 것을 증장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필경이 곧 열반이오면, 이런 열반은 어떻게 얻겠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열 가지 생각을 닦아 익히면, 이 사람은 열반을 능히 얻으리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무상하다는 생각이요, 둘은 괴롭다는 생각이요, 셋은 내가 없다는 생각이요, 넷은 먹기를 싫어하는 생각이요, 다섯은 모든 세간이 즐거울 것 없다는 생각이요, 여섯은 죽는다는 생각이요, 일곱은 죄가 많다는 생각이요, 여덟은 여의려는 생각이요, 아홉은 멸한다는 생각이요, 열은 사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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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는 생각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이 열 가지 생각을 닦으면, 이 사람은 필경에 열반을 얻어서 다른 이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능히 선한 것과 선하지 못한 것을 분별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진실하게 비구의 뜻에 적합하며, 나아가 우바이의 뜻에 적합하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보살로부터 우바이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는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보살이 두 가지니, 하나는 처음 마음을 낸 이요, 또 하나는 이미 도를 행하는 이니라. 무상하다는 생각이 두 가지니, 하나는 거친 것이요, 또 하나는 미세한 것이니라. 처음 마음을 낸 보살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관찰할 때에 생각하기를, ‘세간의 물건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의 것이요, 또 하나는 바깥 것이라. 이 안의 물건이 무상하게 변하여 달라지느니라. 내가 보건댄 날 때·어렸을 때·컸을 때·장성하였을 때·늙은 때·죽을 때, 그런 시절들이 각각 같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안의 물건이 무상한 줄을 아느니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내가 보건댄 중생이 어떤 이는 비대하고 얼굴빛과 기운을 구족하였으며, 가고 오는 행동이 자재하여 장애가 없으며, 혹은 병들어 시달리고 얼굴빛과 기운이 쇠약하고 얼굴이 초췌하여 자재하지 못하며, 혹은 재물이 많아서 창고에 가득하고, 혹은 빈궁하여 간 데마다 궁색하며, 혹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고 혹은 한량없이 나쁜 법을 구족하나니, 그러므로 안의 법이 결정코 무상한 줄을 아느니라’ 하느니라.
또 밖의 법을 보건댄 종자 때·싹틀 때·줄기 때·잎필 때·꽃필 때·열매 때, 그런 시절들이 각각 같지 아니하니라. 이러한 바깥 법들을 혹은 구족하고 혹은 구족하지 못하므로, 온갖 바깥 것이 결정코 무상한 줄을 알지니라. 보는 법이 무상함을 관찰하고는, 다시 듣는 법을 관찰하나니, 모든 하늘들은 묘한 쾌락을 구족하게 성취하고 신통이 자재하거니와, 다섯 가지 쇠하는 모양이 있다 하니, 그러므로 바깥 법이 무상한 줄을 아느니라. 또 듣건댄 겁이 처음 생길 때의 중생들은 훌륭한 공덕을 각각 성취하여 제 몸의 광명으로 비추고 일월을 빌리지 아니하다가 무상한 세력으로 광명이 없어지고 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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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손하였다 하며, 또 들으니 옛적에는 전륜성왕이 있어 사천하를 통솔하고 7보를 성취하여 크게 자재하지만 무상한 모양을 깨뜨리지 못한다 하며, 또 땅을 보더라도 옛적에는 한량없는 중생들을 평안히 널리 퍼져서 살게 하되, 수레바퀴 둘 만한 빈 곳도 없었으며, 온갖 기묘한 약이 모두 생장하고 숲과 나무에는 과실이 무성하더니, 중생이 점점 박복하게 되어 이 땅도 다시 세력이 없어지고 나는 물건들도 저절로 소모되었다 하니, 이런 것으로 안팎의 물건들이 모두 무상한 줄을 알 것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거친 무상이라 하느니라.
거친 것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미세한 것을 관찰하나니, 무엇을 미세하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온갖 팎의 물건들과 나아가 티끌까지도 미래의 세상에 있어서 벌써 무상함을 관찰하나니, 왜냐 하면 파괴한 모양을 구족하게 성취한 연고니라. 만일 미래의 색신이 무상하지 않다면, 색신에 열 가지 차별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리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나는 액체이던 때, 둘은 망울질 때, 셋은 껍질 생겼을 때, 넷은 살덩이 때, 다섯은 사지가 생겼을 떄, 여섯은 갓난아이 때, 일곱은 어린이 때, 여덟은 소년 때, 아홉은 장년 때, 열은 늙은이 때니라. 보살이 관찰하기를, 액체이던 것이 무상하지 않다면 망울 지는 데 이르지 못하고, 나아가 장정 때가 무상하지 않다면 마침내 늙은 데 이르지 못할 것이며, 이 여러 시절이 찰나찰나 멸하지 않는다면, 점점 자라지 않고 일시에 성장할 것이나, 이런 일이 없으므로 찰나찰나 미세하게 무상한 줄을 알지니라.
또 어떤 사람이 모든 근이 구족하고 안색이 충실하였다가 나중에 초췌하여짐을 보고는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결정코 찰나찰나 동안에 무상하였으리라’ 하며, 다시 4대와 4위의(威儀)를 관찰하고, 또 안팎의 각각 두 가지 괴로움의 인을 관찰하나니,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더움이니라. 또 이 네 가지를 관찰하되, 만일 찰나찰나 미세하게 무상하지 아니하면, 이 네 가지 괴로움을 말할 수 없으리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미세하게 무상함을 관찰한다 하느니라. 안팎의 색법과 같이 마음도 그러하니, 왜냐 하면 여섯 군데에 행하는 연고니라. 여섯 군데에 행할 때에, 기쁜 마음도 내고 성내는 마음도 내고 사랑하는 마음도 내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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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내어서 여러 가지 다른 마음이 생기어 한결같지 못하니, 그러므로 온갖 색법과 색법 아닌 것이 모두 무상한 줄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한 생각 가운데서 온갖 법의 나고 멸함이 무상한 것을 본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갖추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익히고는, 항상하다는 교만과 항상하다는 뒤바뀜과 생각의 뒤바뀜을 멀리 여의느니라.
다음에 괴롭다는 생각을 닦나니,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괴로움이 있는가. 이 괴로움이 무상을 인하여 있는 줄을 깊이 아나니, 무상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받고,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연으로 무상하다 이름하는 것이며, 무상한 인연으로 안팎의 괴로움을 받나니,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덥고 채찍으로 때리고 꾸짖고 욕하는 이런 괴로움이 모두 무상으로 인하는 것이라 하며, 다음에는 지혜 있는 이가 이 몸이 무상한 그릇이니, 그릇이 곧 괴로움이며, 그릇이 괴로움인 연고로 담는 법도 괴로운 줄을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또 나는 것이 괴로움이며 멸하는 것이 괴로움인 줄을 관찰하나니, 괴로움이 나고 멸하는 것이므로 무상한 것이며, 나와 내 것이 아니라 하여 내가 없다는 생각을 닦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다시 관찰하되 괴로움이 곧 무상이요, 무상이 곧 괴로움이니, 만일 괴롭고 무상하다면, 지혜 있는 이가 어찌하여 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괴로움이 내가 아니며 무상도 그러하여 이와 같이 5음도 괴로움이며 무상하거늘, 중생이 어찌하여 내가 있다고 말하는가 하느니라. 다음에는 온갖 법이 다른 화합이 있다고 관찰하나니, 한 화합으로부터 모든 법이 나는 것 아니고, 한 법이 모든 화합의 과(果)도 아니며, 모든 화합은 다 제 성품이 없고, 한 성품도 없고 다른 성품도 없으며, 물건의 성품도 없고 자재함도 없느니라. 모든 법이 만일 이러한 모양이라면, 지혜 있는 이가 어찌하여 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온갖 법 가운데 한 법도 능히 지을 이가 없나니, 만일 한 법을 지을 이가 없다면, 모든 법이 화합하는 것도 짓지 못하리라’ 하느니라. 온갖 법의 성품이 마침내 홀로 났다가 홀로 멸하지 못할 것이요, 화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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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로 멸하고 화합하는 연고로 날 것이니라. 이 법이 난 뒤에는 중생들이 뒤바뀐 생각으로 말하기를, ‘이 화합도 화합으로부터 나리라’ 하여, 중생의 생각이 뒤바뀌고 진실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진실한 내가 있으리요.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내가 없다고 관찰하느니라. 또다시 자세하게 관찰하기를, 무슨 인연으로 중생들이 나라고 말하는가. 내가 만일 있다면 하나인가 여럿인가. 내가 만일 하나라면 어떻게 찰리(刹利)·바라문·비사(毘舍)·수타(首陀)·인간·천상·지옥·아귀·축생과 크고 작고 늙고 장성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하나가 아닌 줄을 알지로다 하며, 내가 만일 여럿이라면 어찌하여 말하기를 중생의 나란 것이 하나이며 두루하여 가[邊際]가 없다 하겠는가. 하나거나 여럿이거나 모두 내가 없다고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내가 없다고 관찰하고는 다시 먹기를 싫어하는 생각을 관찰하면서 생각하기를 ‘만일 온갖 법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면, 어찌하여 먹는 것을 위하여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업을 일으키는가’ 하느니라. ‘만일 중생이 먹는 것을 탐하여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업을 일으킨다면, 얻는 재물은 여럿이 다 한가지로 하는데, 뒤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은 함께 나누지 않는가’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음식을 위하여 몸과 마음으로 괴로움을 받나니, 만일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음식을 얻는다면, 내가 어찌하여 먹는 데에 탐착을 내겠는가. 그러므로 먹는 데에 탐심을 내지 아니하리라’ 하느니라.
또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음식으로 인하여 몸이 증장함을 관찰하되, ‘내가 이제 출가하여 계를 받고 도를 닦는 것은 몸을 버리기 위함이거늘, 이제 음식을 탐한다면 어떻게 이 몸을 버릴 수 있겠는가’ 하느니라. 이렇게 관찰하고는 비록 음식을 받더라도, 마치 빈 벌판에서 아들의 살을 먹듯이 마음에 싫고 미운 생각이 나서 조금도 달게 여기지 아니하며, 뭉쳐 먹음[摶食]이 이런 허물이 있음을 관찰하느니라. 다음에는 즐겨 먹음[觸食]을 관찰하되, 벗겨진 소가 무수한 벌레에게 먹힘과 같이 하며, 다음에는 생각으로 먹음[思食]이 큰 불더미 같고, 식의 먹음[識食]이 3백 자루 창과 같음을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네 가지 먹음을 관찰하고는 음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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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탐하는 생각을 내지 않느니라. 그러다가도 탐심이 생기거든 부정한 줄을 관찰할지니, 왜냐 하면 탐욕을 여의기 위하여 모든 음식에 부정하다는 생각을 잘 분별하고는 모든 부정한 것과 같이 여기느니라. 이렇게 관찰하면 좋은 음식이나 나쁜 음식을 만나더라도, 받을 때에는 창병에 붙였던 고약과 같이 여기고 탐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먹기를 싫어하는 생각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지혜 있는 이가 음식을 관찰하고 부정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진실한 관찰입니까, 빈 생각만의 관찰입니까? 만일 진실한 관찰이라면 관찰하는 음식이 실제로 부정한 것이 아니요, 빈 생각만이라면 이런 법을 어떻게 잘하는 생각이라 하오리까?”
“선남자여, 이런 관찰은 진실한 관찰도 되고, 빈 생각만이기도 하나니, 음식에 대한 탐욕을 없애는 편으로는 진실한 관찰이라 하고, 벌레가 아닌 것을 벌레라고 보는 편으로는 빈 생각뿐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유루(有漏)를 모두 빈 생각이라고도 하고, 진실한 것이라고도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걸식하려는 마음을 낼 때에 미리 생각하기를 ‘내가 걸식하는데 맛좋은 음식을 얻고, 험악한 것을 얻지 말며, 많이 얻고 적게 얻지 말며, 빨리 얻고 더디게 얻지 말라’고 원한다면, 이 비구는 음식에 싫어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이름하지 못하며, 수행하는 선한 법은 밤낮으로 소모되고, 선하지 못한 법은 점점 증장되느니라. 선남자여, 비구가 걸식하려 할 때에는 먼저 원하기를 ‘여러 걸식하는 이가 다 배가 부르게 되고, 밥을 주는 이는 한량없는 복을 받을지이다. 내가 밥을 얻으면 독한 몸을 치료하고 선한 법을 닦아서 시주를 이익케 하리라’ 하라. 이렇게 원할 때에 닦는 선한 법은 밤낮으로 증장되고, 선하지 못한 법은 점점 소멸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이렇게 수행하면, 이 사람은 온 나라 안 시주들의 보시를 부질없이 먹지 않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 네 가지 생각을 갖추면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온갖 세간에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지 않는 데가 없으며, 내 몸은 태어나지 않는 데가 없나니, 이 세간에서 한 곳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여읠 데가 없다면, 나는 어찌하여 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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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좋아하겠는가. 모든 세간에 나아가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는 데가 없나니, 그러므로 세간은 결정코 무상한 것이며, 만일 무상하다면 지혜 있는 이가 어찌 세간을 즐거워하겠는가. 낱낱 중생들이 모든 세간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갖추어 받나니, 비록 범천의 몸이나 나아가 비상비비상천의 몸을 받더라도, 목숨을 마치면 3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며, 설사 사왕천이나 나아가 타화자재천에 나더라도, 목숨을 마치면 축생 중에 태어나서, 혹은 사자 혹은 범·들소·이리·늑대·코끼리·말·소·나귀 따위가 되리라’ 하느니라.
다음에는 관찰하기를 ‘전륜성왕은 사천하를 통솔하여 호화롭고 귀하여 자재하지만 복이 다하면 빈곤하여져서 의식을 계속하기 어려우니라’ 하여,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깊이 관찰하고는,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또 관찰하기를 ‘세간에 있는 집이나 의복이나 음식이나 와구, 의약, 향, 꽃, 영락이나 가지가지 풍류, 재물, 보배 등이 모두 괴로움을 여의려는 것이지만 이런 물건 자체가 괴로운 것이니, 어떻게 괴로움으로 괴로움을 여의리요’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관찰하고는, 세상 물건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겁다는 생각을 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몸에 중병이 생겼을 때에는, 아무리 여러 가지 음악과 연극과 향과 꽃과 영락이 있더라도 탐애를 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지혜 있는 이가 물건을 관찰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온갖 세간을 깊이 관찰하되 ‘귀의할 곳이 아니며 해탈하는 곳이 아니며 고요한 곳이 아니며 사랑할 만한 곳이 아니며 저 언덕이 아니며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곳이 아니거늘, 내가 만일 이런 세간을 탐한다면, 내가 어떻게 법을 떠나겠는가’ 하나니, 어두운 데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광명을 구하면서 도리어 어두운 데로 가는 것과 같으니라.
어두운 데는 세간이요 밝은 데는 출세간이니, 만일 내가 세간을 좋아하면 어둠은 증장되고 밝은 것을 멀리 여의리라. 어둠은 무명(無明)이요 밝음은 지혜의 광명이며, 밝은 지혜의 인은 곧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는 생각이니라. 온갖 탐욕의 번뇌가 비록 속박한다 하거니와, 이제는 지혜의 밝음을 탐하고 세간은 탐하지 아니하리라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이런 법을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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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하고는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구족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이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닦고는, 다음에 죽는다는 생각을 닦되, 이 목숨이 항상 한량없는 원수에게 둘러싸여서 찰나찰나 감손하고 증장하지 못함이 마치 산에 있는 홍수가 머물러 있지 못함과 같고, 아침 이슬이 오래가지 못함과 같고, 사형수가 저자로 나아감이 걸음마다 죽음에 가까워지듯 하며, 소나 양을 끌고 푸주로 나아가는 듯하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지혜 있는 이가 찰나찰나 멸하는 것을 관찰하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네 사람이 활을 잘 쏘는데, 한 곳에 모여서 제각기 한 방위씩 쏘면서 모두 생각하기를 ‘우리들의 네 화살이 함께 나가서 함께 떨어지리라’ 하거든, 또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네 개의 살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내가 한꺼번에 손으로 살을 잡으리라’ 한다면, 선남자여, 이런 사람을 빠르다 하겠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여, 땅으로 다니는 귀신[地行鬼]은 이 사람보다 더 빠르고, 날아다니는 귀신은 땅으로 다니는 귀신보다 더 빠르고, 사천왕은 날아다니는 귀신보다 더 빠르고, 해와 달은 사천왕보다 더 빠르고, 행견질천(行堅疾天)은 해와 달보다 더 빠르고, 중생의 수명은 행견질천보다 더 빠르니라. 선남자여, 눈 한 번 깜짝할 동안에 중생의 수명이 4백 번 났다 없어졌다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수명을 관찰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을 찰나찰나 멸함을 관찰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목숨이 사왕(死王)에게 매인 것을 관찰하고, 내가 능히 이런 사왕을 여의기만 하면, 무상한 수명을 영원히 끊으리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관찰하기를 ‘목숨이란 것은 강 언덕에 위태롭게 서 있는 큰 나무와 같으며, 큰 역적죄를 지은 사람이 사형을 당할 때에 불쌍히 여길 이가 없는 것과 같으며, 사자왕이 오래 굶었을 때와 같으며, 독사가 큰 바람을 삼켰을 때와 같으며, 목마른 말이 물을 아끼는 것과 같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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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귀신이 성낼 때와 같나니, 중생의 사왕도 이와 같으리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만일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죽는다는 생각을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기를 ‘내가 지금 출가하여 수명이 7일 7야가 된다 하여도, 나는 그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법을 말하여 교화하며 중생을 이익케 하리라’ 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 있는 이가 죽는다는 생각을 닦는다 하느니라. 다시 7일 7야도 많다 하여, 설사 엿새·닷새·나흘·사흘·이틀·하루·한 시간, 나아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동안만이라 하여도 나는 그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법을 말하여 교화하며 중생을 이익케 하리라 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 있는 이가 죽는다는 생각을 잘 닦는다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위에서 말한 여섯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일곱 가지 생각의 인이 되나니, 무엇을 일곱 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항상 닦는다는 생각, 둘은 닦기를 좋아하는 생각, 셋은 성내는 일 없는 생각, 넷은 질투함이 없는 생각, 다섯은 선하게 원하는 생각, 여섯은 교만이 없는 생각, 일곱은 삼매에 자재한 생각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일곱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이를 이름하여 사문이라 하고, 바라문이라 하고, 고요함이라 하고, 깨끗함이라 하고, 해탈이라 하고, 지혜 있는 이라 하고, 바른 지견이라 하고, 저 언덕에 이름이라 하고, 큰 의원이라 하고, 큰 상단의 주인이라 하고, 여래의 비밀을 잘 안다 하고, 모든 부처님들의 일곱 가지 말을 안다 하고, 바른 소견으로 안다 하고, 일곱 가지 말에 생기는 의심을 끊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여섯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이 사람은 능히 삼계를 꾸짖으며 삼계를 멀리 여의며 삼계를 없애 버리며 삼계에 대하여 애착을 내지 아니할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 있는 이가 열 가지 생각을 구족하였다 하느니라. 만일 비구가 열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사문의 모습에 적합하다 하리라.”


이 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이 세상을 연민(憐愍)하는 큰 의왕이여,
몸과 지혜 모두 다 고요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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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법 가운데 참나 있나니
그러므로 위없이 존귀하신 분 예배합니다.

첫 발심과 마지막이 다르지 않건만
이 가운데 첫 발심이 더욱 어려워
자기 제도 못하고도 남을 제도해
그러므로 첫 발심께 예배합니다.

첫 발심에 천상 인간 스승이 되니
성문보다 연각보다 뛰어나시며
이런 발심 삼계보다 훨씬 뛰어나니
그러므로 가장 높다 이름합니다.

구세(救世) 보살 청구해야 얻어지건만
여래께선 안 청해도 스승이 되어
세상을 따르시기 송아지처럼
그러므로 대비우(大悲牛)라 이름합니다.

여래의 크신 공덕 시방에 가득
범부들은 지혜 없어 찬탄 못하나
내가 지금 자비한 맘 찬탄하여서
몸과 입의 두 가지 업 갚으렵니다.

세상 사람 제 이익만 좋아하지만
여래께선 이런 일을 뜻하지 않고
중생들의 세간 업보 끊어 주시니
자리이타(自利利他)하는 이께 예배합니다.

세상 사람 친한 이만 이익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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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선 친한 이도 원수도 없어
세상처럼 그런 차별 아니하실새.
그 마음 평등하사 둘이 없나니.

세간에선 말 다르고 업도 다르나
여래께선 말도 업도 차별이 없어
행을 닦아 모든 행을 끊으시나니
그러므로 여래라고 이름합니다.

번뇌 허물 미리부터 아시지만
중생들을 위하여서 거기 계시며
오래전에 세간에서 해탈을 얻으시고도
생사에 나시는 건 자비의 연고.

천상 몸과 인간 몸을 나타내지만
자비로 따르시기 송아지 같네,
여래는 중생들의 어머니시매
자비하신 마음을 송아지라고.

모든 고통 받으시며 중생을 염려
가엾이 여기는 맘 뉘우침 없고
자비심이 많사올새 괴로움도 몰라
고통 구해 주는 이께 예배합니다.

여래께서 무량한 복 지으시지만
몸과 입과 마음이 늘 청정하고
항상 중생들만 위하시고 당신을 몰라
그러므로 맑은 업에 예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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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선 많은 괴로움 받으셔도 괴로운 줄 몰라
중생들의 괴로움을 내가 당한 듯
중생을 위하여선 지옥에 가도
괴로움도 뉘우침도 내지 않으며

온갖 중생들이 받고 있는 갖가지 고통
모두 다 부처님의 괴로움이나
깨닫고는 마음이 더욱 견고해
부지런히 위없는 도 닦으시도다.

부처님의 자비하신 마음 갖추고
중생들을 아들처럼 사랑하지만
중생들은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여래와 법보와 승보 비방만 하네.

세상 사람 모든 번뇌 구족하였고
한량없는 죄와 허물 수가 없지만
이러하게 많은 번뇌 많은 죄악도
부처님이 첫 맘으로 소멸하시네.

부처만이 부처님을 찬탄하나니
다른 이는 찬탄할 줄 아는 이 없어
내가 지금 한 가지 법 찬탄하오니
자비하신 마음으로 세간에 오심.

여래는 대자비가 큰 법 덩어리
자비로써 많은 중생 제도하시며
이것이 위가 없는 참해탈이며
해탈이 곧 대반열반경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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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5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5. 교진여품(憍陳如品) ①

이 때에 세존께서 교진여(憍陳如)에게 말씀하셨다.
“색법[色]이 무상하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항상 있는 색[解脫常住之色]을 얻으며,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도 무상하니, 식을 멸하면 해탈의 항상 있는 식을 얻느니라. 교진여여, 색법이 괴로움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안락한 색[解脫安樂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법이 공한 것이니 공한 색을 멸하면 해탈의 공이 아닌 색[解脫非空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법이 나가 없나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참나인 색[解脫眞我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법이 부정하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청정한 색[解脫淸淨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양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아닌 색[解脫非生老病死相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무명의 인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무명의 인이 아닌 색[解脫非無明因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나아가 색법이 내는 인이니, 색이 멸하면 해탈의 내는 인이 아닌 색[解脫非生因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곧 네 가지 뒤바뀐 인이니 뒤바뀐 색을 멸하면 해탈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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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뒤바뀜이 아닌 색[解脫非四倒因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한량없는 나쁜 법의 인이니, 남자의 몸, 여인의 몸, 식욕, 애욕, 탐욕, 성내는 일, 질투, 악한 마음, 아끼는 마음, 뭉치어 먹음, 식으로 먹음, 생각으로 먹음, 즐겨 먹음, 알로 나는 것, 태로 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화하여 나는 것, 5욕, 5개(蓋) 이런 법들이 모두 색으로 인하는 것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이런 한량없는 악한 색[解脫無如是等無量惡色]이 없음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속박이니 속박인 색을 멸하면 해탈의 속박 없는 색[解脫無縛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흐름이니 흐름을 멸하면 해탈의 흐르지 않는 색[解脫非流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귀의할 데가 아니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귀의할 색[解脫歸依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부스럼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부스럼 없는 색[解脫無瘡疣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고요하지 못한 것이니 색을 멸하면 열반의 고요한 색[涅槃寂靜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어떤 사람이 이렇게 알면 사문이라 하고 바라문이라 하여, 사문과 바라문의 법을 구족하였다고 하느니라. 교진여여, 만일 부처님 법을 여의면 사문도 없고 바라문도 없고 사문·바라문의 법도 없느니라. 모든 외도들은 비었고 거짓이고 속이는 것이어서 진실한 행이 없으며, 비록 모양을 지어서 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하나, 실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사문·바라문의 법이 없다면, 어떻게 사문·바라문이 있다 하겠느냐. 내가 항상 이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師子吼)를 하는 것이니, 너희들도 대중 속에 있어서 사자후를 지을 것이니라.”
이 때에 한량없는 외도들이 이 말을 듣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어 말하였다.
“구담이 지금 말하기를 ‘우리 대중 가운데 사문과 바라문이 없고, 사문·바라문의 법도 없다’고 하니, 우리는 마땅히 방편을 베풀어 구담에게 ‘우리 대중에도 사문이 있고 사문의 법이 있으며, 바라문이 있고 바라문의 법이 있다’고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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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 대중 가운데 어떤 범지가 외쳐 말하였다.
“여러분이여, 구담의 말은 미친 이의 말이나 다름없거늘 탓할 것 무엇인가. 세상에 미친 사람이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울고 웃고 꾸짖고 칭찬하면서 원수도 친한 이도 분별하지 못하나니, 사문 구담도 그와 같아서, 혹은 내가 정반왕의 궁전에서 태어났다 하고, 혹은 그렇게 나지 않았다 하며, 혹은 나면서 곧 일곱 걸음을 걸었다 하고, 혹은 걷지 않았다 하며, 혹은 어려서부터 세간 일을 배웠다 하고, 혹은 나는 온갖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 하며, 혹은 어느 때에는 궁전에서 향락을 받고 아들을 낳았다 하고, 혹은 싫증나고 미워서 꾸짖고 천하게 여기며, 어떤 때는 친히 6년 동안 고행을 하였다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외도의 고행함을 꾸짖기도 하며, 어떤 때는 울두람불(鬱頭藍弗)·아라라(阿羅邏) 등을 따라가서 듣지 못하던 것을 배웠다 하고, 어떤 때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어떤 때는 보리수 밑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노라 말하고, 어떤 때는 나는 그 나무 밑에 가지 아니하였으며 얻은 것이 없노라 하며, 어떤 때에는 나의 이 몸이 곧 열반이라 하고, 어떤 때는 몸이 없어지는 것이 열반이라고 말하느니라.
구담이 말하는 것이 미친 사람이나 다름이 없거늘,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바라문들이 대답하였다.
“대사(大士)여, 우리가 어찌하여 걱정하지 않겠는가. 사문 구담이 먼저 출가하고서 말하기를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고 부정하다’ 하는 것을, 나의 제자들이 듣고 무서워하는 마음을 내기에 ‘중생이 어찌하여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고 부정하리요’ 하고, 그 말을 받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구담이 다시 와서 사라숲 속에 있으면서 대중을 위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이 있다’고 말하여, 나의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는 나를 버리고 가서 구담의 말을 듣지 않는가. 이런 인연으로 매우 걱정하노라.”
그 때에 또 다른 바라문이 말하였다.
“여러분들 자세하게 들으시오. 사문 구담은 말로는 자비를 닦는다 하지만, 이는 허망한 말이고 진실이 아니오. 만일 자비가 있다면 어째서 우리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법을 받게 하겠소? 자비의 과(果)는 남의 뜻을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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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인데, 지금 우리의 원을 어기니 어떻게 있다 하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사문 구담이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물들지 않는다’면 이것도 허망한 것이며, 만일 구담이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안다면 지금 어째서 우리의 이익을 빼앗겠소? 만일 가문이 훌륭하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허망하니, 왜냐 하면 옛날부터 대사자왕이 조그만 쥐를 죽인다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는데, 구담이 참으로 훌륭한 문벌이라면 어째서 지금 우리를 시끄럽게 하겠소? 만일 구담이 큰 세력을 갖추었다면 그것도 허망하니, 왜냐 하면 옛날부터 금시조왕이 까마귀와 싸운다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소. 만일 기운이 세다면 우리와 함께 다투겠는가. 구담이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갖추었다면 그것도 허망이니, 왜냐 하면 그런 지혜가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우리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여러분들이여, 내가 예전에 지혜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는데, 백 년 후에 이 세간에는 요망한 환술쟁이가 나리라 하더니, 그것이 구담이오. 이런 요망한 것이 이제 이 사라숲 속에서 오래지 않아 멸망할 것이니, 여러분들은 그다지 걱정할 것이 없소.”
이 때에 또 어떤 니건자가 대답하였다.
“그대여, 우리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자신과 제자의 공양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간이 어두컴컴하고 눈이 없어 복밭과 복밭 아닌 것을 알지 못하며, 오래 되고 지혜 있는 바라문을 버리고 젊은이에게 공양함을 걱정하는 것이오. 사문 구담은 주문의 술법을 알고, 주문의 힘으로 인하여 한 몸이 한량없는 몸이 되기도 하고, 한량없는 몸이 도로 한 몸이 되기도 하며, 혹은 자기의 몸으로 남자나 여인의 모양이 되기도 하고, 소·양·코끼리·말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힘은 그런 주술을 소멸할 수 있으니, 구담 사문의 주술이 소멸되면 당신들은 공양을 많이 얻으며 안락을 받을 것이오.”
이 때에 또 어떤 바라문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들, 사문 구담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니, 당신들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대중들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아, 무엇으로 사문 구담이 대공덕을 갖추었다 하는가? 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가 죽었으니, 이것을 복덕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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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은 이렇게 대답했다.
“꾸짖어도 성내지 않고 때려도 앙갚음하지 않으니, 이것이 큰 복덕 모양이니라. 몸에는 32상과 80종호와 한량없는 신통을 구족하였으니, 이것으로 복덕의 모양을 알 것이며, 마음에는 교만이 없어 먼저 문안하고, 말이 부드러워 거칠지 아니하며, 나이와 생각이 장성하되 마음이 갑자기 화를 내지 아니하고, 국왕의 부귀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버리고 출가하기를 침뱉듯 하였으매, 내가 말하기를 ‘사문 구담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다’ 하느니라.”
대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좋은 말이오. 그대여, 사문 구담이 진실로 말씀과 같이 참으로 한량없는 신통과 변화를 성취하였다면, 우리는 그와 더불어 이런 일을 겨루지는 않겠소만 사문 구담이 성품이 유순하여 고행을 견디지 못하며, 깊은 궁궐에서 생장하여 바깥 일에 능란하지 못할 것이요, 다만 말만이 부드러울 것이나, 기술과 공부와 논의하는 일을 알 수 없는 터이니, 그와 더불어 바른 법의 요령을 토론하여 보아서 그가 우리를 이기면 우리가 그를 섬길 것이고, 우리가 그를 이기면 그가 우리를 섬겨야 할 것이오.”
이 때에 한량없는 외도들이 함께 모여서 마가다(摩伽陀)의 왕 아사세(阿闍世)에게 가니, 왕이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들, 당신들은 제각기 성인의 도를 닦는 출가한 사람들이라, 재물과 집에서 살림하는 일을 버렸으므로, 이 나라 인민들이 모두 공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르며 범접하지 못하는 터이거늘, 무슨 일로 함께 오셨는가. 여러분들, 당신들은 각각 다른 법과 다른 계율을 받으며, 출가하는 일도 같지 아니하며, 또 각각 자기의 계법을 따라서 출가하고 수도하는 터인데, 이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 화합함이, 마치 떨어지는 잎이 바람에 불려서 한 곳에 모이듯이 무슨 인연을 말하려고 여기 왔는가? 나는 매양 출가한 사람들을 보호하되, 나아가 몸이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아니하노라.”
이 때에 모든 외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대왕께서는 지금 대법의 다리며 대법의 숫돌이며 대법의 저울이며, 모든 공덕의 그릇이며 모든 공덕의 진실한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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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며 바른 법의 길이시니, 곧 종자의 좋은 밭이며 모든 국토의 근본이며 모든 국토의 거울이며 모든 천인의 형상이며 온 나라 사람의 부모입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세간에서 공덕의 보배 광이 곧 대왕의 몸이십니다.
공덕의 보배 광이라 함은, 대왕께서는 나라 일을 판단하시되 원수와 친한 이를 가리지 아니하시며, 마음이 평등하심이 땅·물·불·바람과 같사올세, 대왕을 이름하여 공덕의 광이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현재의 중생들은 비록 장수하기도 하고 단명하기도 하거니와, 대왕의 공덕은 옛적에 장수하고 안락하던 때의 임금과 같사오며, 또한 정생왕(頂生王)·선견왕(善見王)·인욕왕(忍辱王)·나후사왕(那睺沙王)·야야제왕(耶耶帝王)·시비왕(尸毗王)·일차구왕(一叉鳩王) 들과 같사오니, 이런 임금들은 선한 법을 구족하였나이다.
지금 대왕도 그와 같나이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인연으로 나라가 태평하고 인민이 번성하오매, 모든 출가한 사람들이 이 나라를 사모하여 계율을 지니고 부지런히 수행하고 바른 도를 닦나이다. 대왕이시여, 우리의 경전에서 말하기를 ‘만일 출가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계율을 지니고 부지런히 수행하고 바른 도를 닦으면, 그 임금도 선한 일을 닦는 것이라’ 하였나이다.
대왕께서 모든 도둑을 이미 정리하셨사오매, 출가한 사람들이 조금도 두려움이 없사오나, 한 가지 나쁜 사람인 구담 사문이 있사온데, 대왕께서 아직 금지하시지 아니하오니, 저희들이 매우 두려워하나이다. 그 사람은 호화로운 집 자손이요 문벌이 훌륭하고 몸이 잘생긴 것을 믿사오며, 또 과거에 보시한 과보로 공양하는 이가 많사오며 이런 일을 믿고 교만이 대단하오며, 혹은 주문의 힘으로 인하여 거만한 생각을 내며, 이런 인연으로 고행을 하지 못하고 부드러운 의복과 와구를 많이 받나이다. 그래서 모든 세간의 나쁜 사람들이 이익을 위하여서 그에게 모여 가서 권속이 되었지만 고행을 하지 아니하오며, 주문을 외워서 가섭·사리불·목건련 등을 조복하더니, 요사이는 저희들이 있는 사라숲에 와서 있으면서 이 몸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선전하여 저희들의 제자들을 꾀어 가나이다. 대왕이시여, 구담이 먼저는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을 저희들이 참았거니와, 지금 와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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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 없나이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저희들이 구담과 더불어 논란하는 일을 허락하여 줍소서.”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러 대사들, 당신들은 지금 누구의 부추김을 받고 마음이 산란하여 진정하지 못하는가. 마치 물의 파도 같으며, 불 바퀴[旋火輪] 같으며, 원숭이가 나무를 던지는 것 같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오. 지혜 있는 이가 들으면 가엾은 마음을 낼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이 들으면 빈정거릴 것이오. 당신들이 하는 말이 출가한 사람답지 못하오. 당신들이 풍병(風病)이 들렸거나 황수병[黃水患]에 걸렸으면, 내게 좋은 약이 있으니 치료할 수 있고, 만일 귀신이 준 병이라면 나의 형 기바(耆婆)가 고칠 수 있을 것이오. 당신들이 지금 하려는 것은 손톱으로 수미산을 헐려는 것이며, 이빨로 금강을 씹으려는 것이오. 여러 대사들, 비유하면 어떤 바보가 사자가 굶어서 자는 것을 보고 깨우려는 것 같으며, 손가락을 독사의 입에 넣는 것 같으며, 재를 덮어 놓은 불을 손으로 헤치려는 것과 같이 당신들도 지금 그러하오. 선남자여, 비유하면 마치 여우가 사자의 소리를 하려는 듯, 모기가 금시조와 달음박질 내기를 하려는 듯, 토끼가 바다의 밑바닥을 밟고라도 건너려는 듯이 당신들도 지금 그와 같소. 당신들이 만일 꿈에라도 구담을 이겼다면 그 꿈은 허망하여 믿을 수 없을 것이오. 여러분이 지금 그 생각을 낸 것은 마치 나비가 불더미에 뛰어드는 격이니, 당신들은 내 말을 따르고 다시 말하지 마시오. 당신들이 나를 칭찬하기를 평등하기 저울 같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이런 말을 듣게 하지 마시오.”
이 때에 외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구담 사문이 짓는 환술이 왕에게까지 이르렀나이까? 대왕의 마음을 의심케 하여 이런 성인을 믿지 않게 하겠나이다. 대왕께서는 이런 대사(大士)를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달이 둥글었다 이지러졌다 하고, 바닷물이 짜고, 마라연산(摩羅延山) 같은 것이 누가 짓는 일입니까? 우리의 바라문이 아니오니까? 대왕이시여, 아갈다(阿竭多) 신선이 12년 동안 항하의 물을 귀 속에 넣어 둔 일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구담 선인이 큰 신통으로 12년 동안 제석의 몸으로 변화하였고, 아울러 제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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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는 숫양[羝羊]의 모양을 만들고, 천 개의 여근(女根)이 제석의 몸에 있게 한 것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기누(耆·) 선인이 하루 동안에 사해의 물을 마셔 땅이 마르게 된 일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바수(婆藪) 선인이 자재천을 위하여 세 눈을 지었던 것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라라(羅邏) 선인이 가부라성(迦富羅城)을 변화하여 개펄로 만든 일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바라문들 가운데는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진 선인들이 많사오니, 지금도 증거할 수 있거늘, 대왕께서 어찌하여 멸시하시나이까?”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내 말을 믿지 않고 기어이 겨루어 보려면, 여래 정각께서 지금 사라숲 안에 계시니, 당신들이 가서 마음대로 문난하여 보라. 여래께서는 당신들을 위하여 분별하며, 당신들의 뜻에 맞도록 대답할 것이오.”
이 때에 아사세왕이 외도들의 무리를 데리고 부처님 계신 데 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서 예경하기를 마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외도들이 마음대로 문난하려 하오니, 원컨대 여래께서 뜻을 따라 대답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만하시오. 내가 스스로 때를 아나이다.”
이 때에 대중 가운데 한 바라문이 있었으니, 이름이 사제수나(闍提首那)였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당신은 열반이 항상한 법이라 하나이까?”
“그렇노라, 대바라문이여.”
“구담이여, 만일 열반이 항상하다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오. 왜냐 하면 세상의 법은 종자에서 열매가 생기며,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나니, 마치 흙반죽에서 질그릇이 생기고, 실에서 옷을 얻는 것과 같소. 당신이 항상 말하기를 ‘무상한 생각을 닦아서 열반을 얻는다’ 하였으니, 인이 무상인데 결과가 어떻게 항상하겠는가. 당신이 또 말하기를 ‘욕계의 탐[欲貪]에서 해탈하면 곧 열반이요, 색계의 탐과 무색계의 탐에서 해탈하면 곧 열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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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등의 모든 번뇌를 멸하면 곧 열반이라’ 하였으니, 욕계의 탐으로부터 무명 번뇌에 이르기까지가 다 무상한 것이니, 인(因)이 무상하면 얻는 열반도 반드시 무상할 것이 아니겠소? 당신은 또 말하기를 ‘인으로 말미암아 천상에 나고, 인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지고, 인으로부터 해탈을 얻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이 다 인으로부터 생긴다’ 하였으니, 만일 인으로부터 해탈을 얻는다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말하겠는가.
당신이 또 말하기를 ‘색이 인연으로부터 났으므로 무상하다 이름하며, 수·상·행·식도 그러하다’ 하였으니, 해탈이 만일 색이라면 무상할 것이며, 수·상·행·식도 그러할 것이오. 만일 5음을 여의고 해탈이 있다면 해탈은 마땅히 허공과 같을 것이며, 만일 허공이라면 인연으로부터 생겼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왜냐 하면 허공은 항상하고 하나이고 온갖 곳에 두루한 까닭이오. 당신은 또 말하기를 ‘인연으로 생긴 것은 괴로움이라’ 하였으니, 만일 괴로움이라면 어찌하여 해탈이 즐거운 것이라 말하겠소? 당신이 또 말하기를 ‘무상한 것이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이면 나가 없다’고 하였으니, 만일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다면 곧 부정한 것이므로 모든 인으로부터 난 모든 법이 모두 무상하고 어찌하여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가. 만일 당신이 말하기를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고 내가 없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다고 하면, 이런 것은 두 가지 말이 아니겠는가. 나도 일찍이 옛날 지혜 있는 이에게 들으니, 부처님께서 만일 세상에 나시면 말씀에 두 가지가 없다고 하였소. 당신은 지금 두 가지 말을 하면서 부처님이 곧 내 몸이라 하니, 그 뜻이 어떠하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의 말과 같이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대답하시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구담이여.”
“바라문이여, 그대의 성품이 항상한가, 무상한가?”
“내 성품은 항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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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이여, 그 성품이 모든 안팎 법의 인이 되는가?”
“그렇소, 구담이여.”
“바라문이여, 어떻게 인이 되는가?”
“구담이여, 성품으로부터 대(大)가 생기고, 대로부터 아만[慢]이 생기고, 아만으로부터 16법이 생기니, 이른바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과, 5지근(知根)인 눈·귀·코·혀·몸과, 5작업근(作業根)인 손발·입 소리·남녀의 근[男女二根]과 심평등근(心平等根)이오. 이 16법은 5법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빛·소리·냄새·맛·닿임이오. 이 21법의 근본은 셋이니, 물드는 것[染]과 거친 것[麤], 검은 것[黑]인데, 물드는 것은 탐애[愛]라 하고, 거친 것은 성내는 것이라 하고, 검은 것은 무명이라 하나니, 구담이여, 이 24법이 모두 성품으로부터 나는 것이오.”
“바라문이여, 이 대(大)라는 법들이 다 항상한가, 무상한가?”
“구담이여, 나의 법에는 성품은 항상하고, 대라는 등의 모든 법은 무상한 것이오.”
“바라문이여, 그대의 법에서 인은 항상하고, 과는 무상한 것처럼, 나의 법에서 인은 무상하나 과는 항상한 것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바라문이여, 그대의 법에 두 가지 인이 있는가.”
“있지요.”
“무엇이 둘인가?”
“하나는 내는 인[生因]이고, 둘은 나타내는 인[了因]이오.”
“어떤 것을 내는 인이라 하고, 어떤 것을 나타내는 인이라 하는가?”
“내는 인이라 함은 흙반죽에서 질그릇을 내는 것과 같고, 나타내는 인이라 함은 등불로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두 가지 인이 인 되는 성품은 하나인가? 만일 하나라면 내는 인으로 하여금 나타내는 인이 되게 할 수도 있고, 나타내는 인으로 내는 인이 되게 할 수도 있는가?”
“그렇지 못합니다, 구담이여.”
“만일 내는 인으로 나타내는 인이 되게 할 수 없고, 나타내는 인으로 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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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되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비록 서로 될 수는 없지만 인이라고는 하나이다.”
“바라문이여, 나타내는 인으로 나타낸 것이 내는 인과 같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구담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이 비록 무상으로부터 열반을 얻지만 무상한 것이 아니니라. 바라문이여, 나타내는 인으로부터 얻었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이요, 내는 인으로부터 얻었으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하니라. 그러므로 여래의 말이 두 가지가 있으나, 이 두 가지 말은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여래를 이름하여 두 말이 없다 하느니라. 그대의 말과 같이, 옛날에 지혜 있는 사람에게 들으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면 두 말이 없다고 한 말은, 진실로 훌륭한 말이니라. 모든 시방 3세의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것은 차별이 없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두 말이 없다고 하시느니라. 어찌하여 차별이 없다 하는가. 있는 것은 동일하게 있다 말하고, 없는 것은 동일하게 없다고 말하나니, 그러므로 한 뜻이라 이름하느니라. 바라문이여, 여래 세존이 비록 두 말이라 하나 한 가지 말을 나타내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두 말이 한 가지 말을 나타낸다 하는가. 마치 눈이라, 빛이라 하는 두 말이 식(識)이란 한 가지 말을 나타내는 것이며, 나아가 뜻이라, 법이라 함도 그와 같으니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이여, 이러한 말과 뜻을 잘 분별하시오나, 지금 말씀하신 바 두 말이 한 말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나이다.”
이 때에 세존께서 그를 위하여 4진제법(眞諦法)을 말씀하셨다.
“고제(古諦)란 것이 둘도 되고 하나도 되며, 나아가 도제(道諦)도 둘도 되고 하나도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이미 알았나이다.”
“선남자여, 어떻게 알았는가?”
“세존이시여, 고제를 범부들은 둘이라 하고 성인은 하나라 하오며, 나아가 도제도 그와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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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일이다, 이미 알았음이여.”
바라문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법을 듣고 바른 지견을 얻었사오며, 이제 불보·법보·승보에 귀의하려 하오니, 바라건대 대자대비로 저의 출가를 허락하옵소서.”
이 때에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사제수나의 머리를 깎아 주고 출가하게 하여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명령을 받잡고 머리를 깎으려고 손을 대는 때에 두 가지가 떨어졌으니, 하나는 수염과 머리카락이요, 하나는 번뇌였으며, 앉은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또 범지가 있었으니, 성은 바사타(婆私吒)였는데, 그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열반이 항상하다고 말하는가?”
“그러하오, 범지여.”
“구담이여, 번뇌가 없는 것을 열반이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하오, 범지여.”
“구담이여, 세상에서 네 가지를 없다고 이름합니다. 하나는 아직 나오지 아니한 법을 없다고 하나니, 마치 질그릇이 흙반죽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를 질그릇이 없다 하는 것과 같고, 둘은 이미 멸한 법을 없다고 하나니, 마치 병이 깨어진 후를 병이 없다 하는 것과 같고, 셋은 다른 모양이 서로 없는 것을 없다고 하나니, 마치 소에게는 말이 없고 말에게는 소가 없는 것 등과 같은 것이요, 넷은 끝까지 없는 것을 없다고 하나니, 마치 거북의 털, 토끼의 뿔 등과 같은 것이다. 구담이여, 만일 번뇌를 없애 버린 것을 열반이라 한다면 열반이 곧 없는 것이니, 만일 없다면 어떻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열반은 먼저 없었던 것이 흙반죽 때의 질그릇과 같지 않고, 멸하여 없어진 것이 병이 깨어진 때와 같지도 않고, 끝까지 없는 것이 거북의 털, 토끼의 뿔과도 같지 않고, 다른 모양이 서로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소에게는 말이 없거니와 소까지 없다고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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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으며, 말에게는 소가 없거니와 말까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느니라. 열반도 그와 같아서 번뇌 가운데는 열반이 없고 열반 가운데는 번뇌가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다른 모양이 서로 없다고 이름하느니라.”
바사타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을 열반이라 한다면, 다른 모양이 없으니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도 없을 것이거늘, 구담이여, 어떻게 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는 다른 모양이 없다는 데는, 세 가지 없음이 있느니라. 소나 말은 다 먼저는 없다가 뒤에 있는 것이니 이것은 먼저 없다고 이름하며, 이미 있다가 도로 없어지는 것은 깨어져서 없다고 이름하며, 다른 모양이 없다는 것은 그대가 말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세 가지 없음이 열반 가운데는 없나니, 그러므로 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니라. 마치 세상에서 병난 사람이 하나는 열병이요, 둘은 풍병이요, 셋은 냉병이라면, 이 세 가지 병은 세 가지 약으로 다스리는 것과 같으니라. 열병 앓는 이는 소(蘇)로 다스리고, 풍병은 기름으로 다스리고, 냉병은 꿀로 다스리나니, 이 세 가지 약으로 세 가지 나쁜 병을 다스리느니라.
선남자여, 풍병에는 기름이 없고, 기름에는 풍병이 없으며, 나아가 꿀에는 냉병이 없고, 냉병에는 꿀이 없나니, 그러므로 능히 다스리느니라. 모든 중생도 이와 같아서 세 가지 병이 있으니, 하나는 탐욕이요, 둘은 성내는 것이요, 셋은 어리석음이니라. 이 세 가지 병에도 세 가지 약이 있나니, 부정관(不淨觀)은 탐욕에 약이 되고, 자심관(慈心觀)은 성내는 데 약이 되고, 인연을 관찰하는 지혜는 어리석은 데 약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탐욕을 없애기 위해서는 탐욕이 아닌 관찰[非貪觀]을 하고, 성내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성내지 않는 관찰[非瞋觀]을 하고, 어리석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리석지 않은 관찰[非癡觀]을 하느니라. 세 가지 병 가운데는 세 가지 약이 없고, 세 가지 약 가운데는 세 가지 병이 없나니, 선남자여, 세 가지 병 가운데는 세 가지 약이 없으므로 항상함이 없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거니와, 세 가지 약 가운데는 세 가지 병이 없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일컫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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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저를 위하여 항상함과 무상함을 말씀하시니, 무엇을 항상하다 하고, 무엇을 무상하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색은 무상하고 해탈의 색은 항상하며, 나아가 식은 무상하고 해탈의 식은 항상하니라. 선남자여,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색이 무상하며, 나아가 식이 무상한 줄을 관찰하면, 이 사람은 항상한 법을 얻을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항상하고 무상한 법을 알았나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항상한 법과 무상한 법을 어떻게 알았는가?”
“세존이시여, 지금 저의 색은 무상하고, 해탈을 얻는 것이 항상함을 알았사오며, 나아가 식도 그와 같나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잘 되었으니, 이미 이 몸에 과보를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이 바사타가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니, 너는 3의(衣)와 발우를 주어라.”
교진여는 부처님의 명령에 따라 가사와 발우를 주었다.
바사타는 가사와 발우를 받고 이렇게 말하였다.
“큰스님 교진여여, 제가 이제 추악한 몸으로 선한 과보를 얻었나이다. 원컨대 큰스님께서 저를 위하여 뜻을 굽히시고, 세존 계신 데 가서 저의 마음을 여쭈어 주십시오. 제가 나쁜 사람이 되어서 여래의 존엄을 모독하옵고 구담이란 성을 일컬었사오니, 바라옵건대 이 죄를 참회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저는 또 이 독한 몸을 오래 머물러 둘 수 없사오니, 이제 열반에 들겠나이다.”
이 때에 교진여는 부처님 계신 데 가서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사타 비구가 부끄러운 마음을 내고 스스로 말하기를 ‘무지하고 악한 놈이 되어서 여래의 존엄을 모독하옵고 구담이란 성을 일컬었노라’ 하오며, 이 독사 같은 몸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없어 지금 몸을 멸하겠다 하면서 저에게 의뢰하며 참회를 원하더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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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진여여, 바사타 비구는 지난 세상 한량없는 부처님 계신 데서 선근을 성취하였고, 이제 내 말을 듣고 법답게 머물렀으며, 법답게 머물렀으므로 바른 과를 얻었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그의 몸에 공양하여라.”
이 때에 교진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바사타의 몸이 있는 데 와서 공양을 베풀었다. 바사타는 몸을 화장할 때에 가지가지 신통을 지었다. 외도들은 이것을 보고 외치며 말하였다.
“바사타가 이미 구담 사문의 주문하는 술법을 얻었으니, 이 사람이 오래지 않아서 구담보다 수승하리라.”
이 때에 대중 가운데 다시 한 범지가 있었으니, 이름이 선니(先尼)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내[我]가 있습니까?”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구담이여, 내가 없습니까?”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두 번 세 번 이렇게 물었으나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선니는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온갖 중생이 내가 있다면, 모든 곳에 두루하였을 것이며, 하나일 것이며, 짓는 이일 것이거늘, 구담이여, 무슨 연고로 잠자코 대답하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니여, 그대는 내가 모든 곳에 두루하였다고 말하는가?”
“구담이여, 내가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갖 지혜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오.”
“선남자여, 만일 나가 모든 곳에 두루하였다면, 마땅히 5도(道)에서 한꺼번에 과보를 받을 것이며, 만일 5도에서 한꺼번에 과보를 받는다면, 그대 범지들은 무슨 인연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함은 지옥을 막기 위함이요, 선한 법을 닦는 것은 천상의 몸을 받기 위함이라 하는가?”
“구담이여, 우리의 법 가운데는 두 가지 내가 있으니, 하나는 짓는 몸인 나[作身我]요, 다른 하나는 항상한 몸인 나[常身我]요, 짓는 몸인 나를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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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악을 여의는 법을 닦아서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선한 법을 닦아서 천상에 나는 것이오.”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내가 온갖 곳에 두루하였다 하거니와 이러한 내가 짓는 몸 가운데는 항상함이 없을 것이니, 만일 짓는 몸에 없다면 어떻게 두루하였다 하겠는가?”
“구담이여, 내가 세우는 나는 짓는 몸 가운데 있으면서도 역시 항상한 법이오. 구담이여, 어떤 사람이 실수로 불을 내어 집이 탈 때에 주인이 나갔다 하면, 집이 탈 때에 주인도 탔다고 말하지 아니할지니, 나라는 법도 그와 같아서 이 짓는 몸이 비록 무상하지만 무상할 때에는 나는 나간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의 나는 두루하기도 하고 항상하기도 한 것이오.”
“선남자여, 그대의 말에 내가 두루하기도 하고 항상하기도 하다는 말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두루함이 두 가지니, 하나는 항상함이요 하나는 무상함이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색이요 하나는 무색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온갖 것에 있다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며, 색이기도 하고 무색이기도 할 것이며, 만일 집 주인이 나갔으므로 무상하다고 이름하지 않는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집은 주인이라 이름하지 않고 주인은 집이라 이름하지 아니하여 타는 것이 다르고 나가는 것이 다르므로 그러할 수가 있거니와, 나는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내가 곧 색이요, 색이 곧 나이며, 무색이 곧 나이고, 내가 곧 무색이거늘, 어떻게 색이 무상할 때에 내가 나갔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모든 중생이 다 같이 한 나’라면, 이것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어기는 것이니, 왜냐 하면 세간법으로는 아비·어미·아들·딸이라 하나니, 만일 내가 하나라면, 아비가 곧 아들이요, 아들이 곧 아비일 것이며, 어미가 곧 딸이요, 딸이 곧 어미일 것이며, 원수가 곧 친한 이요, 친한 이가 곧 원수일 것이며, 이 사람이 곧 저 사람이요, 저 사람이 곧 이 사람일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모든 중생이 다 같이 한 나라면, 이것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어긴다 하느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나도 모든 중생이 같이 한 나라고 말한 것이 아니요, 한 사람마다 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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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한 사람마다 한 내가 있다면, 이것은 내가 여럿이니,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대가 먼저 말하기를 ‘내가 온갖 것에 두루하였다’ 하였으니, 만일 온갖 것에 두루하다면 모든 중생의 업과 근이 같을 것이니, 천득(天得)이 볼 때에는 불득(佛得)도 볼 것이요, 천득이 지을 때에는 불득도 지을 것이며, 천득이 들을 때에는 불득도 들을 것이니, 온갖 법이 모두 그와 같으니라. 만일 천득이 보는 것을 불득이 보지 못한다면, 내가 온갖 곳에 두루하였다고 말할 수 없으며, 만일 두루하지 않았다면 그는 곧 무상하니라.”
“구담이여, 모든 중생의 나는 온갖 것에 두루하였고, 법과 법 아닌 것은 온갖 것에 두루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런 뜻으로 불득의 지음이 다르고, 천득의 지음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구담이여, 불득이 보는 때에 천득도 보아야 하고, 불득이 들을 때에 천득도 들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외다.”
“선남자여, 법과 법 아닌 것이 업으로 짓는 것이 아닌가?”
“구담이여, 업으로 짓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법과 법 아닌 것이 업으로 짓는 것이라면, 곧 같은 법이거늘, 어찌하여 다르다 하겠는가. 왜냐 하면 불득의 업이 있는 데 천득의 내가 있고, 천득의 업이 있는 데 불득의 내가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불득이 업을 지을 때에 천득도 지을 것이요, 법과 법 아닌 것도 마땅히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런 연고로 온갖 중생의 법과 법 아닌 것이 만일 그러하면, 얻는 과보도 다르지 아니하리라. 선남자여, 종자로부터 열매가 나지만 이 종자가 생각하고 분별하기를 ‘나는 다만 바라문의 과만 짓고, 찰리나 비사나 수타의 과는 짓지 않으리라’ 하지는 아니할 것이니, 왜냐 하면 종자에서 열매를 낼 때에 이러한 네 계급을 장애하지 아니하나니, 법과 법 아닌 것도 그와 같아 능히 분별하기를 ‘나는 다만 불득의 과만 짓고, 천득의 과는 짓지 않겠다거나, 천득의 과는 짓되 불득의 과는 짓지 아니하리라’ 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업이 평등한 연고니라.”
선니는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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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이여, 마치 한 방에 백천 개의 등불이 있다면, 심지는 비록 각각이나 광명은 차별이 없는 것과 같나니, 등잔과 심지가 각각인 것은 법과 법 아닌 데 비유하고, 광명이 차별 없는 것은 중생의 나에 비유하는 것이오.”
“선남자여, 그대가 등의 광명으로 나에 비유함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방이 다르고 등이 다르니, 이 등의 광명이 심지에도 있고 방 안에도 두루하느니라. 그대가 말하는 내가 이와 같다면, 법과 법 아닌 데 모두 내가 있어야 하고, 나에도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어야 하리라. 만일 법과 법 아닌 데에 내가 없다면, 온갖 곳에 두루하였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모두 있다면 어떻게 심지와 광명으로 비유할 수 있겠는가. 선남자여, 그대의 생각에 심지와 광명이 진실로 다르다고 한다면, 무슨 연고로 심지가 커지면 광명이 성하고, 심지가 마르면 광명이 꺼지는가. 그러므로 법과 법 아닌 것으로 심지에 비유하고, 광명이 차별 없는 것으로 나에 비유하지 못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법과 법 아닌 것과 나의 셋이 곧 하나인 연고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당신이 인증(引證)하는 등불 비유는 불길한 것이오. 왜냐 하면 등불 비유가 길하다면 내가 먼저 끌어 온 것이요, 만일 불길하다면 어찌하여 다시 말하는가?”
“선남자여, 내가 인증하는 비유는, 길하고 불길함과 관계된 것이 전혀 아니고, 그대의 뜻을 따라 말하는 것이니라. 이 비유는 심지를 여의고 광명이 있다 할 수도 있고, 심지에 즉(卽)하여 광명이 있다 말할 수도 있건만 그대의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여서 심지로는 법과 법 아닌 데 비유하였고, 광명으로는 나에 비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를 책망하되 ‘심지가 곧 광명이냐, 심지를 여의고 광명이 있느냐, 법이 곧 나이냐, 내가 곧 법이냐, 법 아닌 것이 곧 나이냐, 내가 곧 법 아닌 것이냐’ 하는 것인데, 그대는 무슨 이유로 한쪽만을 인정하고 한쪽은 인정하지 않는가. 이런 비유는 그대에게 불길한 것이므로, 내가 도로 그대에게 가르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런 비유는 잘못된 비유니, 잘못된 비유이므로, 내게는 길하고 그대에게는 불길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내게 불길하면 당신에게도 불길하리라’ 한다면, 그 이치가 옳지 아니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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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왜냐 하면 세상 사람이 자기의 칼로 자기를 해하여 자기의 짓는 일이 남에게 소용됨을 보나니, 그대가 끌어 온 비유도 그와 같아서 내게는 길하지만 그대에게는 불길하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당신이 먼저는 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다고 책망하더니,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도 평등하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구담이여, 지금 길한 것은 자기에게 돌리고 불길한 것은 내게 돌리니,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진실로 평등하지 못합니다.”
“선남자여, 나의 불평등으로 그대의 불평등을 깨뜨리나니, 그러므로 그대의 평등과 나의 불평등이 모두 길한 것이니라. 나의 불평등으로 그대의 불평등을 깨뜨려서 그대로 하여금 평등을 얻게 함이 곧 나의 평등이니, 왜냐 하면 여러 성인들과 같이 평등을 얻는 연고니라.”
“구담이여, 나는 항상 평등하거늘, 당신은 어찌하여 나의 불평등을 깨뜨린다 하는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내가 있거늘, 어찌하여 내가 평등하지 않다 하는가?”
“선남자여, 그대도 말하기를 ‘마땅히 지옥을 받고, 마땅히 아귀를 받고, 마땅히 축생을 받고, 마땅히 인간과 천상을 받는다’ 하였으니, 내가 먼저 5도에 두루하였다면, 어찌하여 마땅히 모든 갈래를 받으라고 말하는가. 그대도 말하기를 ‘부모가 화합하여 아들을 낳는다’ 하였으니, 만일 아들이 먼저부터 있었다면 어찌하여 화합한 뒤에야 있다 하는가.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다섯 갈래의 몸이 있는 것이니, 만일 다섯 곳에 먼저부터 몸이 있었다면 무슨 인연으로 몸을 위하여 업을 짓겠는가. 그러므로 평등하지 못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내가 짓는 것[作者]이라’ 한다면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내가 짓는다면, 무슨 연고로 스스로 괴로운 일을 짓겠는가. 그러나 지금 중생들이 실로 괴로움을 받는 터이니, 이런 연고로 내가 짓는 것이 아닌 줄을 알지니라. 만일 말하기를 ‘이 괴로움은 내가 짓는 것이 아니요, 인으로부터 나지도 않는다’ 하면, 온갖 법이 모두 그러하여, 인으로부터 나지 아니하리니, 무슨 인연으로 내가 짓는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중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실로 인연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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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은 능히 근심과 기쁨을 지어서 근심할 때에는 기쁨이 없고 기쁠 때에는 근심이 없으며, 혹은 기뻐하고 혹은 근심하나니, 지혜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이것을 항상하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내가 항상하다’ 하거니와, 만일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열 가지 시절의 다름이 있겠는가. 항상한 법이라면, 가라라 시절로부터 늙은 시절까지가 있지 아니할 것이며, 허공은 항상한 법이므로 한 때도 없는데, 하물며 열 시절이 있겠는가. 선남자여, 나는 가라라 시절도 아니고, 나아가 늙은 시절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열 시절의 차별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만일 내가 짓는 것이라면, 이 내가 성할 때와 쇠할 때가 있고, 중생도 성할 때와 쇠할 때가 있으니, 만일 내가 그렇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내가 만일 짓는 것이라면, 어째서 한 사람에게 영리하고 둔함이 있는가. 선남자여, 내가 만일 짓는 것이라면, 이 내가 능히 몸으로 짓는 업과 입으로 짓는 업과 뜻으로 짓는 업을 짓나니, 만일 이런 것이 내가 짓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입으로 내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어찌하여 스스로 있느냐 없느냐를 의심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눈을 여의고 봄이 있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눈을 여의고 따로 보는 것이 있다면, 왜 눈을 필요로 하는가. 나아가 몸도 그와 같으니라. 그대의 생각에 ‘내가 능히 본다’고 하지만 반드시 눈으로 인하여 본다면, 그것도 그렇지 아니하니, 무슨 까닭이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수만나꽃[須曼那花]이 큰 마을을 태운다 하고, 어떻게 태우느냐 하면 불을 일으켜 태운다 하는 것같이, 그대가 말하는 내가 본다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구담이여, 마치 사람이 낫을 들고 풀을 베는 것처럼, 내가 5근(根)으로 인하여 보고 듣고, 나아가 닿이는 것도 그와 같나이다.”
“선남자여, 사람과 낫은 각각 다르므로 낫을 들고 작용할 수 있지만 근을 여의고는 따로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내가 근으로 인하여 작용함이 있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낫으로 풀을 베듯이 나도 그와 같다’ 하면, 이 내가 손이 있느냐, 손이 없느냐. 만일 손이 있다면, 어째서 제가 들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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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냐. 만일 손이 없다면 어떻게 내가 짓는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능히 풀을 베는 것은 곧 낫이고, 나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니라. 만일 나나 사람이 능히 벤다면, 어찌하여 낫을 필요로 하는가. 선남자여, 사람에게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풀을 잡고, 하나는 낫을 드나니, 이 낫은 능히 끊는 공만 있느니라. 중생이 법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눈이 능히 빛을 보는 것은 화합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만일 인연이 화합함으로 인하여 본다면, 지혜 있는 사람이야 어찌 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몸이 짓고 내가 받는다’ 하면,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이 세상에서 천득이 업을 짓고 불득이 과보를 받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몸으로 짓는 것이 아닌데, 나도 인이 아닌 것으로 받는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어찌하여 인연으로부터 해탈을 구하느냐. 그대의 몸이 인연이 아닌 것으로 났다면, 해탈을 얻고 나서도 역시 인연이 아닌 것으로 다시 몸이 나야 할 것이며, 몸과 같아서 모든 번뇌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나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앎이 있고, 또 하나는 앎이 없나이다. 앎이 없는 나는 능히 몸을 얻거니와, 앎이 있는 나는 능히 몸을 버리나니, 마치 날기와를 가마에 구우면 본 빛을 잃고, 다시는 생기지 아니하는 것과 같나니, 지혜 있는 이의 번뇌도 그와 같아서 한번 멸하고는 다시 생기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안다고 하는 것은 지혜가 아는 것인가, 내가 아는 것인가. 만일 지혜가 아는 것이라면, 무슨 연고로 내가 아는 것이라고 말하며, 만일 내가 안다면 무슨 연고로 방편으로 지혜를 구하는가. 그대가 생각하기를, ‘내가 지혜로 인하여 안다’고 하면, 꽃이 태운다는 비유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찔레나무의 성질이 찌르는 것을, 나무가 가시를 잡고 찌른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지혜도 그와 같아서 지혜가 스스로 아는 것인데, 어떻게 내가 지혜를 가지고 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의 법에서는 내가 해탈을 얻는 것을 앎이 없는 내가 얻는다 하는가, 앎이 있는 내가 얻는다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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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만일 앎이 없는 것이 얻는다면, 예전대로 번뇌를 구족하였을 것이요, 만일 앎이 있는 것이 얻는다면, 이미 5정(情)이 있을 것이니, 왜냐 하면 근을 떠나서는 따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근을 갖추었다면, 어떻게 해탈을 얻었다 하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나의 성품이 청정하여 5근을 여의었다’ 한다면, 어찌하여 5도(道)에 두루하였다 하며, 무슨 인연으로 해탈하기 위하여 선한 법을 닦겠느냐? 선남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에서 가시를 뽑는다는 것처럼, 그대도 그러하니, 내가 만일 청정하다면, 어찌하여 번뇌를 끊는다고 말하는가. 그대가 또 생각하기를, ‘만일 인연을 반연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 하면, 모든 축생들은 어찌하여 얻지 못하느냐?”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능히 기억합니까?”
부처님께서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잊어버리는가. 선남자여, 만일 기억하는 것이 나라면, 무슨 인연으로 나쁜 생각을 기억하며, 기억하지 않을 것은 기억하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지 않는가?”
선니가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보고 누가 듣나이까?”
“선남자여, 안으로는 6입(入)이 있고, 밖으로는 6진(塵)이 있으며, 안과 밖이 화합하여 여섯 가지 식을 내나니, 이 여섯 가지 식이 인연으로 이름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다 같은 불이로되 나무로 인하여 생겼으면 장작불이라 하고, 짚으로 인하여 생겼으면 짚불이라 하고, 겨로 인하여 생겼으면 겻불이라 하고, 쇠똥으로 인하여 생겼으면 쇠똥불이라 하듯이, 중생의 알음알이도 그와 같아서 눈으로 인하고 빛으로 인하고 밝음으로 인하고 의욕(意欲)으로 인한 것은 안식(眼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안식은 눈에 있지도 않고, 나아가 의욕에 있지도 않고, 네 가지가 화합하여서 이 식이 생긴 것이며, 나아가 의식도 그와 같으니라. 만일 인연이 화합하여서 지혜가 생겼으면, 마땅히 보는 것이 나라, 나아가 닿임이 나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안식으로부터 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이 다 환(幻)이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환이라 하는가.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고, 이미 있다가도 도로 없어지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마치 소면(蘇麵)·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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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蜜薑)·후추·필발(蓽茇)·포도·호도·석류·유자(桵子)가 화합하여 된 것을 환희환(歡喜丸)이라 하거니와, 이렇게 화합한 것을 여의고는 환희환이 없는 것처럼, 안팎 6입을 중생·나·사람·사내라 이름하나니, 이 안팎 6입을 여의고는 따로 중생이라, 나라, 남이라, 사내라 할 것이 없느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어찌하여 말하기를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 내가 괴롭다, 내가 즐겁다, 내가 근심한다, 내가 기쁘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내가 보고 내가 듣는다고 해서 내가 있다고 한다면, 무슨 인연으로 세상에서 말하기를 ‘네가 짓는 죄를 나는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하는가. 선남자여, 마치 네 가지 병사가 화합한 것을 군대라 이름하는 것과 같나니, 이 네 가지 병사를 하나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하기를 ‘우리 군대가 용맹하다, 우리 군대가 이겼다’ 하나니, 안팎 입(入)이 화합하여 짓는 것도 그와 같아서 비록 하나가 아니지만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짓는다, 내가 받는다,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 내가 괴롭다, 내가 즐겁다’ 하느니라.”
“구담이여, 당신의 말과 같이 안팎이 화합하였다면, 누가 소리를 내어 내가 짓는다, 내가 받는다고 말하나이까?”
“선니여, 애와 무명의 인연으로 업이 생기고, 업으로부터 유(有)가 생기고, 유로부터 한량없는 심수(心數)가 생기고, 심수로부터 각관(覺觀)이 생기고, 각관이 풍(風)을 동하고, 풍이 마음을 따라서 인후[喉]와 혀와 이와 입술을 접촉하거든, 중생의 생각이 뒤바뀌어서 소리가 나는 것을 내가 짓는다, 내가 받는다,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짐대[幢] 끝에 달린 풍경이 바람의 인연으로 소리를 낼 때에, 바람이 크면 소리가 크고 바람이 작으면 소리가 작지만 짓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뜨거운 쇠를 물 속에 넣으면 여러 가지 소리가 나지만 그 가운데는 소리를 짓는 이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범부들은 이런 일을 생각하고 분별하지 못하므로, 내가 있고, 내 것이 있고,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고 말하느니라.”
“구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내가 없고, 내 것이 없다면, 무슨 연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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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씀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나도 안팎 6입과 6식(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지 아니하였고, 안팎 6입으로 생긴 6식을 멸한 것이 항상하다 이름하고, 항상하므로 나라 이름하고, 항상하고 내가 있으므로 즐겁다 이름하고, 항상하고 나이고 즐거우므로 깨끗하다 이름한다고 말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중생들은 괴로움을 싫어하고, 괴로움의 인을 끊어서 자재하게 여의는 것을 나라 하거니와, 이런 인연으로 내가 지금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느니라.”
선니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대자대비로 저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어찌하오면 그러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온갖 세간 사람들이 본래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큰 교만을 구족하고 교만을 증장하였으며, 또 교만한 인과 교만한 업을 지었으므로, 지금 교만의 과보를 받느라고, 모든 번뇌를 여의지 못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지 못하나니, 만일 모든 중생들이 온갖 번뇌를 멀리 여의려거든, 먼저 교만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그러하옵니다. 진실로 성인의 가르침과 같사와 저는 먼저 교만이 있었나이다. 교만한 인연으로 여래를 일컬어 당신 구담이라 불렀사오나, 저는 이미 이런 교만을 여의었으므로, 정성된 마음으로 법을 구하옵나니, 어떻게 하오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겠나이까?”
“선남자여,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만일 능히 자기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중생도 아닌 이면, 이 법을 멀리 여의리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고 이해하여 바른 법 눈[正法眼]을 얻었나이다.”
“선남자여, 너는 어떻게 알고 이해하여 바른 법 눈을 얻었느냐?”
“세존이시여, 말한 바 색이란 것이 자기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중생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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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며, 나아가 식도 그와 같사오니, 저는 이렇게 관찰하고 바른 법 눈을 얻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출가하여 수도하기를 지극히 원하오니, 바라옵건대 허락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 비구여”라고 말씀하시니, 즉시에 청정한 범행을 구족하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외도들 중에 또 성(姓)이 가섭씨(迦葉氏)인 범지가 있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몸이 곧 수명인가,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른가?”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셨고, 두 번째 세 번째도 그와 같이 하셨다.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몸을 버리고 아직 뒤의 몸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그동안을 말하여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만일 다르다면, 구담은 어찌하여 잠자코 대답하지 않는가?”
“선남자여, 나는 말하기를 ‘몸과 수명은 모두 인연으로 있는 것이요, 인연 아닌 것이 아니라’ 하였노니, 몸이나 수명과 같아서 모든 법도 그와 같으니라.”
범지는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보건댄 세간에는 인연을 따르지 않는 법이 있더이다.”
“범지여, 그대는 세간의 어떤 법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았는가?”
“저는 큰불이 나서 개암나무를 태울 때에 바람이 불면 불길이 끊어져서 다른 곳으로 날아감을 보았나니, 이런 것은 인연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선남자여, 나는 이 불길도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이라 말하고, 인연이 없이 생겼다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구담이여, 불길이 끊어져 갈 때에는, 섶이나 숯을 인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인연을 인하였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비록 섶이나 숯은 없으나 바람을 인하여 날아간 것이니, 바람의 인연으로 불길이 꺼지지 않는 것이니라.”
“구담이여, 사람이 몸을 버리고 뒤의 몸을 얻지 못하였을 동안의 수명은, 무엇이 인연이 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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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지여, 무명과 애가 인연이 되나니, 무명과 애의 두 가지 인연으로 수명이 머물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인연이 있으므로 몸이 곧 수명이요 수명이 곧 몸이며, 인연이 있으므로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니, 지혜 있는 이는 한결같이 말하여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다 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범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시고 해설하시어 인과 과를 분명히 알게 하시옵소서.”
“범지여, 인(因)도 5음(陰)이요, 과(果)도 5음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불을 사르지 아니하면 연기가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알았으며 이미 이해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세존이시여, 불은 곧 번뇌인지라,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을 사르는 것이오며, 연기는 곧 번뇌의 과보인지라, 무상하고 부정하고 냄새가 더러워서 미운 것이오매 연기라 하나이다. 만일 중생이 번뇌를 짓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번뇌의 과보가 없을 것이오니, 그러므로 여래께서 ‘불을 사르지 아니하면 연기가 없다’ 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바르게 보았사오니, 원컨대 대자대비로 제가 출가함을 허락하옵소서.”
이 때에 세존께서는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이 범지가 출가하여 계를 받음을 허락하노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을 모으고 그로 하여금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게 하였더니, 닷새를 지나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다시 범지 중에 부나(富那)라는 범지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구담이여, 당신은 세간에 항상한 법을 보고 항상하다고 말하였는가? 그런 이치가 진실한가 헛된가, 항상한가 무상한가,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닌가, 가[邊]가 있는가 가가 없는가, 가가 있기도 하고 가가 없기도 한가, 가가 있음도 아니고 가가 없음도 아닌가, 몸인가 수명인가,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른가, 여래가 멸도한 후에는 여여히 가는가[如去], 여여히 가지 않는가[不如去], 여여히 가기도 하고 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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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가지 않기도 하는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닌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나여, 세간의 항상함이 헛되다, 진실하다, 항상하다,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다, 가가 있다 가가 없다, 가가 있기도 하고 가가 없기도 하다, 가가 있음도 아니고 가가 없음도 아니다, 몸이다 수명이다,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다, 여래가 멸도한 후에 여여히 간다 여여히 가지 않는다, 여여히 가기도 하고 여여히 가지 않기도 한다,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부나는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지금에 무슨 허물을 보고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부나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세간이 항상하니 이것만이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 한다면, 이것은 소견이라 하고, 소견으로 보는 곳은 견의 행[見行]이라 하고, 견의 업이라 하고 견의 집착이라 하고, 견의 속박이라 하고, 견의 괴로움이라 하고, 견의 취[見取]라 하고, 견의 공포[見怖]라 하고, 견의 열[見熱]이라 하고, 견의 얽힘이라 하느니라. 부나여, 범부는 견의 얽힘이 되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여의지 못하고, 6취(趣)로 돌아다니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부나여, 나는 소견이 이러한 허물이 있음을 보았으므로 집착하지 않고 사람에게 말하지 아니하노라.”
“구담이여, 만일 이러한 허물을 보고 집착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무엇을 보고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선남자여, 보고 집착함은 나고 죽는 법이라 하나니, 여래는 나고 죽는 법을 이미 여의었으므로 집착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능히 본다, 능히 말한다 이름하고, 집착한다 이름하지 않느니라.”
“구담이여, 어떤 것을 능히 본다 하고, 어떤 것을 능히 말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나는 고·집·멸·도를 능히 보았고, 이러한 4제를 능히 분별하여 해설하느니라. 나는 이런 것을 보았으므로 모든 소견과 모든 애와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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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流]과 모든 교만을 멀리 여의었나니, 그러므로 나는 청정한 범행과 위없이 고요함을 갖추어 항상한 몸을 얻었으며, 이 몸은 동·서·남·북이 아니니라.”
“구담이여, 무슨 인연으로 항상한 몸은 동·서·남·북이 아니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대답하라. 그대의 마음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남자여, 그대 앞에서 불더미를 사른다면, 한창 탈 때 그대가 타는 줄을 아는가?
“그러하오, 구담이여.”
“불이 꺼질 때 그대가 꺼지는 줄을 아는가?”
“그러하오, 구담이여.”
“부나여, 만일 어떤 이가 묻기를 ‘그대 앞에서 불더미가 타는데, 그것은 어디서 왔으며, 꺼져서는 어디로 가는가’ 하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구담이여, 그렇게 묻는 이가 있으면 나는 대답하기를 ‘이 불이 생길 때에는 모든 인연을 말미암았고, 본래의 인연이 이미 다하고 새 인연이 오지 아니하면 불이 꺼진다’고 하겠소.”
“또 묻기를 ‘이 불이 꺼져서는 어느 방면에 이르는가’ 하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구담이여, 나는 대답하기를 ‘인연이 다하여서 꺼지는 것이므로 어느 방소에도 이르지 않는다’고 하리라.”
“선남자여,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만일 무상한 색으로부터 무상한 식에 이르기까지 있는 것은 애로 인하여 타는 것이니, 타는 것은 25유(有)를 받는 것이므로 탈 때에는 불의 동·서·남·북을 말할 수 있거니와, 현재의 애가 멸하면 25유의 과보가 타지 않나니, 타지 아니하므로 동·서·남·북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무상한 색으로부터 무상한 식에 이르기까지를 이미 멸하였으므로 몸이 항상하며, 몸이 항상하므로 동·서·남·북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부나는 말하였다.
“한 비유를 말하오리니 바라옵건대 들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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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일이다. 마음대로 말하여라.”
“세존이시여, 마치 큰 마을 앞에 사라나무숲이 있고 그 가운데 한 나무가 숲보다 먼저 난 지 백 년이 넘었습니다. 그 때에 숲 주인은 물을 주면서 철을 따라 가꾸었는데, 그 나무가 오래되어서 껍질과 가지와 잎은 다 떨어지고 굳은 고갱이만 남아 있습니다. 여래께서도 그와 같아서 낡은 것은 모두 제하여 없어지고, 온갖 진실한 법만 남아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출가하여 수도하기를 진정으로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 비구여” 하고 말씀하시니, 이 말을 마치자 곧 출가하여 번뇌가 다하였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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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6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5. 교진여품 ②

또 범지(梵志)가 있으니, 이름은 청정부(淸淨浮)라.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모든 중생들은 무슨 법을 알지 못하여서 세간이 항상하다,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아니함도 아니라 보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색을 알지 못하는 연고며, 나아가 식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느니라.”
범지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중생들이 무슨 법을 알면,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지 않겠나이까?”
“선남자여, 색을 아는 연고며, 나아가 식을 아는 연고로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세간이 항상함과 무상함을 분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선남자여, 만일 사람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이 사람이 항상하고 무상함을 아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고 보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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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보았는가?”
“세존이시여, 낡은 것은 무명과 애라 하옵고, 새것은 취(取)와 유(有)라 하나니, 사람이 만일 무명과 애를 멀리 여의고, 취와 유를 짓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진실하게 항상함과 무상함을 아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바른 법의 깨끗한 눈을 얻삽고 3보에 귀의하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제가 출가함을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이 범지가 출가하여 계를 받음을 허락하여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에게로 데리고 가서 갈마(羯磨)를 행하여 출가하게 하였더니, 보름 후에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독자(犢子) 범지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물으려는데 허락하겠습니까?”
여래는 잠자코 계셨고, 두 번째 세 번째도 그리하셨다.
독자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여, 저는 오래전부터 당신의 친구가 되었으며, 당신은 나와는 둘이 아닌데, 내가 묻는 것에 어찌 잠자코 계십니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범지는 성품이 선비답고 아담하며 착하고 질직(質直)하여서 매양 알기 위하여 묻는 것이요, 남을 시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 저가 물으면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독자여, 훌륭한 일이다. 의심나는 대로 물으면 내가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세상에 선(善)이 있는가?”
“그러니라, 범지여.”
“불선이 있는가?”
“그러니라, 범지여.”
“구담이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말하여서 저로 하여금 선과 불선의 법을 알게 하소서.”
“선남자여, 나는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하여 말할 수 있거니와, 이제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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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간략히 말하리라. 선남자여, 탐욕을 불선이라 하고, 탐욕에서 해탈함을 선이라 하며,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으니라. 살생을 불선이라 하고, 살생하지 않음을 선이라 하며, 나아가 삿된 소견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하여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으며, 또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노라. 만일 나의 제자가 이러한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 나아가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능히 분별하면, 이 사람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온갖 번뇌를 다하였고 온갖 유를 끊은 것이니라.”
“구담이여, 불법 가운데 한 비구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다한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비구들이 이러한 탐욕과 생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하였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는 한 비구니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한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비구니들이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와 한 비구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한 우바새(優婆塞)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고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새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오하분결(五下分結)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 한 우바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서 한 우바이(優婆夷)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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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이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5하분결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가 온갖 번뇌를 다하거나, 한 우바새, 한 우바이가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을 끊은 이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우바새로 5욕락을 받으면서 마음에 의심이 없는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새가 세 가지 결박을 끊고 수다원을 얻었으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을 얻었으며, 우바새와 같이 우바이도 그러하니라.”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비유를 말하려 하나이다.”
“좋은 말이다. 말하려거든 말하여 보아라.”
“세존이시여, 마치 난타(難陀)와 바난타(婆難陀) 용왕들이 큰비를 내리듯이 여래의 법비도 그와 같아서 우바새·우바이에게 평등하게 내리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들이 와서 출가하려 하오면, 여래께서는 몇 달 동안이나 시험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다 넉 달씩 시험하거니와, 한결같지는 아니하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한결같지 않사오면, 바라건대 대자대비로 제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이 때에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독자가 출가하여 계를 받는 것을 허락하라.”
그 때에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 가운데서 갈마를 하였더니, 보름이 찬 뒤에 수다원과를 얻었다. 수다원과를 얻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혜를 배워서 얻을 것은 내가 이미 얻었으니, 이제는 부처님을 뵈올 만하다.’
곧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예경을 마치고는 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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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배워서 얻을 모든 지혜를 제가 이미 얻었나이다.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다시 분별하여 말씀하시어, 저로 하여금 무학의 지혜를 얻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두 가지 법을 닦을지니, 하나는 사마타(奢摩他)요, 또 하나는 비바사나(毘婆舍那)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수다원과를 얻으려면, 이 두 법을 부지런히 닦아야 하고, 사다함과나 아나함과나 아라한과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4선정·4무량심·6신통·8배사(背捨)·8승처(勝處)·무쟁지(無諍智)·정지(頂智)·필경지(畢竟智)·4무애지(無礙智)·금강삼매·진지(盡智)·무생지(無生智)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10주지(住地)·무생법인(無生法忍)·무상법인(無相法忍)·불가사의법인(不可思議法忍)·성행(聖行)·범행(梵行)·천행(天行)·보살행·허공삼매·지인삼매(智印三昧)·공(空)삼매·무상(無相)삼매·무작(無作)삼매·지(地)삼매·불퇴(不退)삼매·수릉(首楞)삼매·금강삼매·아뇩다라삼먁삼보리·불행(佛行)을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독자가 듣고는 예배하고 나와서 사라숲 속에서 이 두 법을 닦더니,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 때에 또 한량없는 비구들이 부처님 계신 데 가려고 하는 것을 독자가 보고 물었다.
“큰스님들 어디로 가십니까?”
“부처님 계신 데 가렵니다.”
“큰스님들, 부처님께 가시거든 원컨대,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하여 반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어 주십시오.”
비구들은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독자 비구가 저희들에게 부탁하기를 ‘세존이시여,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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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라 하더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독자 범지가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너희들은 함께 가서 그 몸에 공양하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그 시신이 있는 데 가서 크게 공양을 베풀었다.
납의(納衣) 범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의 말과 같이 ‘한량없는 세상에서 선과 불선을 지었으므로 오는 세상에서 선한 몸과 불선한 몸을 얻는다’ 하였으나,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구담이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이 몸을 얻는다’ 하였으니, 번뇌로 인하여 몸을 얻는다면, 몸이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다면, 누가 지었으며 어디 머물러 있었던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면, 어떻게 번뇌로 인하여 얻는다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번뇌가 먼저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고, 몸이 먼저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고, 한꺼번에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니라. 먼저 있었다, 나중에 있었다, 한꺼번에 있었다 함이 모두 옳지 못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는 것이고,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 하오.
또 구담이여, 굳은 것은 땅의 성품이요, 젖는 것은 물의 성품이요, 더운 것은 불의 성품이요, 동함은 바람의 성품이요, 걸림이 없는 것은 허공의 성품이니, 이 5대의 성품은 인연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만일 세간에서 한 가지 법의 성품이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법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니라. 만일 한 가지 법이라도 인연으로 있는 것이라면, 무슨 연고로 5대의 성품은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는가.
구담이여, 중생들이 선한 몸으로나 불선한 몸으로나 해탈을 얻는 것은 모두 자기의 성품이요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법들이 제 성품으로 있는 것이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오.
구담이여, 세간의 법들이 일정하게 쓰는 곳이 있나니, 마치 목수는 말하기를 ‘이 나무로는 수레를 만들고, 이 나무로는 창호나 책상을 만들 것이라’ 하며, 금사(金師)가 만드는 것도 이마에 두르는 것은 화만[鬘]이라 하고, 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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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뜨리는 것은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은 팔찌라 하고, 손가락에 끼는 것은 가락지라 하듯이, 쓰는 곳이 일정한 연고로 결정된 성품이라 합니다. 구담이여,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5도의 성품이 있으므로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하여 인연을 따른다 하겠는가.”
구담이여, 모든 중생의 성품이 제각기 다르므로 온갖 가지 제 성품이라 합니다. 구담이여, 거북은 육지에 나서도 스스로 물에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젖을 먹을 수 있고, 물고기가 낚시의 미끼를 보고는 스스로 삼키며, 독사가 나서는 자연히 흙을 먹나니, 이런 것은 아무도 가르치는 이가 없는 것이며, 가시는 나면서 끝이 뾰족하고, 나는 새는 털빛이 제각기 다르나니, 세간의 중생들도 그러하여 영리한 이도 있고 둔한 이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이도 있고, 잘난 이도 있고 못난 이도 있으며,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나쁜 데 사는 이도 있나이다. 그러므로 온갖 법 중에는 제각기 제 성품이 있는 것이오.
또 구담이 말하기를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인연으로 생긴다’ 하며, 이 3독(毒)이 5진(塵)을 인연한다 하거니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합니다. 왜냐 하면 중생들이 잘 때에는 5진을 멀리 여의었지만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고, 태 속에 있을 때도 그러하며, 태에서 처음 나와서는 5진이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신선이나 성현들이 한적한 곳에 있을 때에는 5진이 없지만 그래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어떤 이는 5진으로 인하여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음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인연으로부터 온갖 법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제 성품이 있는 까닭입니다.
또 구담이여, 제가 보건대 세상 사람들이 5근을 구족하지 못하고도 재물이 많고 자재한 이가 있으며, 5근을 구족하고도 빈궁하고 하천하여 자재로 하지 못하고 남의 하인이 되는 이가 있으니, 만일 인연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이러합니까?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인연을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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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구담이여,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5진을 분별할 줄 모르면서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웃을 때에는 기쁜 줄 알고, 울 때에는 걱정하는 줄 아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모두 제 성품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또 구담이여, 세상 법이 두 가지니, 하나는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없는 것입니다. 있는 것은 허공이요, 없는 것은 토끼의 뿔이니, 이 두 가지 법에서 하나는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고, 또 하나는 없는 것이므로 인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이 5대의 성품과 같아서 모든 법도 그러하다 하거니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그대의 법에서 5대가 항상한 것이라면, 무슨 인연으로 온갖 법이 모두 항상하지 아니하며, 만일 세상 물건이 무상하다면, 5대의 성품은 무슨 인연으로 무상하지 아니한가. 만일 5대가 항상하다면, 세상 물건도 항상하여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5대의 성품은 제 성품이 있으므로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여 온갖 법으로 하여금 5대와 같게 하리라’ 함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쓰는 곳이 일정하므로 제 성품이 있다’는 것도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모두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 연고니라. 만일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면, 역시 인연으로부터 뜻을 얻어야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 하는가. 마치 이마 위에 있는 것을 화만이라 이름하고, 목에 있는 것을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을 팔찌라 하고, 수레에 있는 것을 바퀴라 하고, 초목에 불이 있는 것을 초목의 불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거니와, 선남자여, 나무가 처음 날 때에는 화살이나 창대의 성품이 없었지만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살을 만들고,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창대를 만드는 것이니,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거북은 육지에서 났으나 성품이 물로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먹을 수 있다 함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물에 들어가는 것이 인연이 아닐진댄 마찬가지 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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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어찌하여 불에는 들어가지 않는가. 송아지가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빨 수 있는 것이 인연이 아닐진댄 마찬가지 인연이 아닌데 어찌하여 뿔은 빨지 않는가. 선남자여, 만일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으므로 가르칠 필요도 없고 증장할 것도 없다’ 하는 것은,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지금 보건대 가르침이 있으며, 가르침으로 인하여 증장하나니, 그러므로 제 성품이 없음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바라문들이 마땅히 청정한 몸을 위하여 양을 잡아서 제사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일 몸을 위하여 제사한다면, 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간에서 말하는 법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으려 함이요, 둘은 짓는 때요, 셋은 지어 마친 때니라.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세상에 세 가지 말이 있겠는가. 세 가지 말이 있으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없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법이 각각 일정한 성품이 있을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사탕수수라는 한 물건이 무슨 연고로 즙이 되고, 꿀이 되고 얼음사탕[石蜜]이 되고 술이 되고 초[苦酒]가 되는가. 만일 한 가지 성품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여러 가지 맛이 되는가. 만일 한 물건 가운데서 이런 것들이 난다면, 모든 법은 일정하게 각각 한 성품이 있지 아니한 줄을 알 것이다.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성인이 무슨 연고로 사탕수수 즙이나 얼음사탕이나 흑설탕은 먹고, 술이었을 때에는 먹지 않다가, 초가 된 뒤에는 다시 먹는가. 그러므로 일정한 성품이 없는 줄을 알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인연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 하거니와, 어떻게 비유를 말하겠는가. 만일 비유할 것이 있다면,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며,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비유가 없음을 알지니라. 세간에 지혜 있는 이는 모두 비유를 말하는 터인즉,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으며 일정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몸이 먼저 있는가, 번뇌가 먼저 있는가’ 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내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고 말하였다면, 그대가 그렇게 문난할 수 있거니와, 그대도 나와 같아서 몸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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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있던 것이 아니거늘, 무슨 인연으로 그런 문난을 짓는가.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몸과 번뇌가 다 먼저 있던 것도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시에 있는 것이며, 일시에 있더라도 반드시 번뇌로 인하여 몸이 있는 것이요, 마침내 몸으로 인하여 번뇌가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대가 생각하기를, ‘마치 사람의 두 눈이 일시에 있던 것이요 서로 인한 것이 아니니, 왼 눈이 오른 눈을 기다리지 않았고, 오른 눈이 왼 눈을 기다리지 않은 것처럼, 번뇌와 몸도 그와 같다’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볼 때에는 심지와 광명이 비록 일시이지만, 광명이 심지로 인하여 있고 광명으로 인하여 심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몸이 먼저 있지 아니하였으므로 인이 없는 줄을 안다’ 하면,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몸보다 먼저는 인연이 없으므로 없다고 이름한다면, 그대도 온갖 법이 다 인연이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보지 못하였으므로 말하지 못한다 할진대, 지금 병(甁) 등이 인연으로 생긴 줄을 보거늘, 어찌하여 병과 같이 몸보다 먼저의 인연도 그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선남자여, 보거나 보지 않거나, 온갖 법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요, 제 성품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다 제 성품이 있고, 인연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왜 인연으로 5대를 말하는가. 이 5대의 성품이 곧 인연이니라. 선남자여, 5대의 인연이 비록 이러하지만 역시 모든 법이 다 5대의 인연과 같다고도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마치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출가한 이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지나니, 전다라들도 그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5대가 결정코 굳은 성품이 있다고 말하거니와, 나는 그 성품이 변하는 것이어서 일정하지 않다고 보느니라. 선남자여, 소랍(酥蠟)과 호교(胡膠)를 그대의 법에서는 지대라 하지만 이 지대[地]란 것이 일정치 아니하여 혹은 물과도 같고, 혹은 땅과도 같으므로 제 성품이 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백랍(白鑞)과 납과 땜납[錫]과 동과 철과 금과 은을 그대의 법에서는 화대[火]라 말하지만 이 화대가 네 가지 성품이 있으니, 흐를 때에는 물의 성품이요, 동할 때에는 바람의 성품이요, 더울 때에는 불의 성품이요, 굳을 때에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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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품이거늘, 어떻게 결정코 화대의 성품이라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물의 성품은 흐르는 것이라 하면서 물이 얼었을 때에도 땅이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물이라 한다면, 무슨 인연으로 파도가 동할 때를, 바람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만일 동하는 것을 바람이라 이름하지 않는다면, 얼었을 때도 물이라고 이름하지 말아야 할지니라. 만일 이 두 가지 뜻이 인연을 따르는 것이라 할진댄 무슨 연고로 온갖 법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선남자여, 만일 5근의 성품이 능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감촉하는 것이므로 모두 제 성품이요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 하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제 성품이란 성품은 변동할 수 없는 것이니, 만일 눈의 성품이 보는 것이라면 항상 보아야 할 것이요, 보는 때도 있고 보지 못할 때도 있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인연을 따라서 보는 것이요,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닌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함은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5진의 인연으로 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쁜 각관(覺觀)인 연고로 탐욕을 내고, 선한 각관인 연고로 해탈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안의 인연으로 탐욕과 해탈을 내고, 바깥 인연으로 증장케 하나니,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각각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모든 근을 구족하고도 재물이 없어 자재하지 못하기도 하고, 모든 근을 구족하지 못하였는데도 재물이 많고 자재하기도 한다’고 하며, 이런 것으로써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중생들이 업을 따라서 과보를 받거니와, 이 과보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에 받는 과보요, 둘은 다음 생에 받는 과보요, 셋은 후생에 받는 과보니라.
빈궁하거나 부자거나 근을 구족하였거나 구족하지 못한 것은 업이 각각 다른 까닭이니라.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근을 구족한 이가 마땅히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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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부유하고, 재물이 부유한 이는 마땅히 근을 구족할 것이나, 이제 그렇지 아니하므로 결정코 제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요,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5진의 인연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제 성품이라면 웃는 이는 항상 웃고, 우는 이는 항상 울어야 할 것이요, 한 번 웃고 한 번 울지 않을 것이니라. 만일 한 번 웃다가 한 번 운다면 이것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어서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범지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법이 인연으로 있다면, 이 몸은 무슨 인연이오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몸의 인연은 번뇌와 업이니라.”
“세존이시여, 이 몸이 번뇌와 업을 따른 것이라면, 이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나이까?”
“그러하니라.”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여 말씀하시어서 제가 듣고 이 자리에서 모두 끊게 하시옵소서.”
“선남자여, 만일 두 끝과 중간이 장애되지 않는 줄을 알면 이 사람은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았사옵고 바른 법의 눈을 얻었나이다.”
“너는 어떻게 알았느냐?”
“세존이시여, 두 끝은 색과 색의 해탈이옵고, 중간은 8정도(正道)이오며,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러하나이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선남자여, 두 끝을 잘 알아서 번뇌와 업을 끊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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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제가 출가하여 계를 받을 것을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 비구여” 하시니, 즉시에 삼계의 번뇌를 끊어 버리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 때에 다시 홍광(弘廣) 바라문이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지금 생각하는 것을 아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열반은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요, 곧은 것은 성인의 도니라.”
“구담이여, 무슨 인연으로 이런 말씀을 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대가 항상 생각하기를, ‘걸식은 항상하고 별청(別請)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자물쇠[戶鑰]요, 곧은 것은 제석의 짐대’라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열반이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이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요, 곧은 것은 8정도니라’라고 하였나니, 그대가 먼저 생각하던 것은 법에 맞지 않느니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이여, 진실로 제 마음을 아시나이다. 이 8정도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멸하게 할 수 있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께서는 이미 저의 마음을 아셨나이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은 무슨 연고로 잠자코 대답하지 않나이까?”
이 때에 교진여가 말하였다.
“대바라문이여, 만일 세상의 가가 있고 가가 없음을 물으면, 여래께서는 항상 잠자코 계시고 대답하지 않으시오. 8정도는 곧은 것이요, 열반은 항상한 것이니, 8정도를 닦으면 곧 멸진(滅盡)함을 얻으려니와, 닦지 아니하면 얻지 못하는 것이오. 대바라문이여, 마치 큰 성이 있는데, 사면 성벽에는 모두 구멍이 없고, 오직 한 문이 있으며, 그 문지기가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분별하여서 출입할 이는 출입하게 하고 거절할 이는 거절하는데, 출입하는 이가 얼마인지는 알지 못하거니와, 모든 출입하는 이는 반드시 이 문으로만 드나드는 것처럼, 선남자여, 여래도 그와 같나니, 성은 열반에 비유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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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은 8정도에 비유한 것이고, 문지기는 여래에게 비유한 것이오. 선남자여, 여래께서 지금 그대에게 멸진하고 멸진하지 아니함을 대답하지 아니하셨으나, 멸진하는 이는 모름지기 8정도를 닦아야 하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대덕 교진여여, 여래께서 미묘한 법을 잘 말씀하셨사오며, 저는 지금 성(城)을 알고 도(道)를 알며 스스로 문지기가 되려 하나이다.”
교진여가 말하였다.
“훌륭한 일이오. 그대 바라문이 능히 위없고 넓고 큰 마음을 내었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교진여여. 이 바라문은 오늘에만 이런 마음을 낸 것이 아니니라. 지나간 세상 한량없는 겁에 부처님 세존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보광명(普光明)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니라. 이 사람이 그 부처님 계신 곳에서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이 현겁에서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며, 오래전부터 법의 행상을 통달하여 분명하게 알았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현재 외도에 있으면서 알지 못하는 척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교진여여, 그대는 ‘훌륭한 일이오. 그대가 능히 이러한 큰 마음을 내었소’라고 칭찬할 것이 아니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아시면서도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아난 비구가 지금 어디 있느냐?”
교진여가 여쭈었다.
“아난 비구는 사라숲 밖에 있사온데, 이 대회에서 12유순이 되오며, 6만 4천억 마군의 요란함을 받나이다. 이 마군들은, 모두 여래의 형상처럼 몸을 변화하고서, 혹은 말하되, 온갖 법이 인연으로 생긴다 하고, 혹은 온갖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 하고, 혹은 온갖 인연이 다 항상한 법이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은 모두 무상하다 하고, 혹은 5음이 진실한 것이라 하고, 혹은 허망한 것이라 하며, 6입과 18계도 그러하다 하고, 혹은 12인연이 있다 하고, 혹은 네 가지 인연이라 하고, 혹은 모든 법이 환술 같고 변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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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고 아지랑이 같다 하고, 혹은 들음[聞]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생각함[思]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닦음[修]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부정관(不淨觀)하는 법을 말하고, 혹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법을 말하고, 혹은 4념처관(念處觀)을 말하고, 혹은 세 가지 관하는 뜻과 일곱 가지 방편을 말하고, 혹은 난법(煖法)·정법(頂法)·인법(忍法)·세제일법(世第一法)·학지(學地)·무학지(無學地)와 보살의 초주(初住)로부터 10주까지를 말하고, 혹은 공(空)·무상(無相)·무작(無作)을 말하고, 혹은 수다라(修多羅)·기야(祇夜)·비가라나(毗伽羅那)·가타(伽陀)·우타나(憂陀那)·니타나(尼陀那)·아파타나(阿波陀那)·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사타나(闍陀伽)·비불략(毗佛略)·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우바제사(優波提舍)를 말하고, 혹은 4념처·4정근(正勤)·4여의족(如意足)·5근·5력·7각분(覺分)·8성도를 말하고, 혹은 내공(內空)·외공(外空)·내외공(內外空)·유위공(有爲空)·무위공(無爲空)·무시공(無始空)·성공(性空)·원리공(遠離空)·산공(散空)·자상공(自相空)·무상공(無相空)·음공(陰空)·입공(入空)·계공(界空)·선공(善空)·불선공(不善空)·무기공(無記空)·보리공(菩提空)·도공(道空)·열반공(涅槃空)·행공(行空)·득공(得空)·제일의공(第一義空)·대공(大空)을 말하고, 혹은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몸에서 물과 불을 내되, 몸 위로는 물을 내고 몸 아래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몸 아래로는 물을 내고 몸 위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왼 옆구리가 아래 있고 오른 옆구리에서 물을 내며, 오른 옆구리가 아래 있고 왼 옆구리에서 물을 내기도 하며, 한 옆구리로는 천둥을 내고 한 옆구리로는 비를 내리며, 혹은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나타내고, 혹은 보살이 처음 탄생하여 일곱 걸음을 걷는 때와, 깊은 궁궐에서 5욕락을 받는 때와, 처음 출가하여 고행을 닦는 때와, 보리수 아래 나아가 삼매에 들던 때와 마(魔)의 군중을 항복받고 법수레를 굴릴 때와, 대신통을 보여 열반에 들 때를 나타내기도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비구는 이런 일들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러한 신통 변화는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인데, 누가 짓는 것인가. 석가세존께서 지으시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일어나려 하여도 말을 하려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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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 아난 비구는 마군의 그물에 들었으므로 생각하기를 ‘여러 부처님의 말씀이 각각 같지 아니하시니, 나는 이제 누구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은 지금 엄청난 고통을 받사오며, 아무리 여래를 생각하오나 구원할 이가 없나이다. 이런 인연으로 이 대중 가운데 오지 못하였나이다.”
이 때에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대중 속에 있는 모든 보살들은 이미 한 생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나아가 한량없는 생에서 보리의 마음을 내어 이미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사오며, 마음이 견고하여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까지를 구족하게 수행하여 공덕을 성취하였사오며, 오래전부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고 범행을 깨끗이 닦았으며, 물러나지 않는 보리의 마음을 얻었으며, 불퇴인(不退忍)과 불퇴전지(不退轉持)를 얻었으며, 여법인(如法忍)과 수릉엄(首楞嚴) 등의 한량없는 삼매를 얻었나이다.
이런 무리들이 대승 경전을 듣고도 의심을 내지 아니할 것이며, 3보가 한 가지 성품과 모양이어서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함을 잘 분별하여 해설할 것이며, 부사의한 것을 듣고도 놀라지 아니할 것이며, 가지가지 공(空)함을 듣고도 마음으로 무서워하지 아니하며, 모든 법의 성품을 분명하게 통달하고, 모든 12부경을 능히 지니고 뜻을 자세히 해설하며, 한량없는 부처님의 12부경이라도 능히 받아 지닐 것이옵거늘, 이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는 것이야 무엇이 근심되오리까? 무슨 인연으로 교진여에게 아난이 있는 데를 물으시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들으라. 선남자여, 내가 성불한 지 20년쯤 지나서 왕사성에 있었더니, 그 때에 내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이여, 이 대중 가운데서 누가 능히 나를 위하여 여래의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좌우에서 필요한 일을 공급하여 주며, 그러고도 자기의 좋은 이익을 잃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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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교진여가 대중 속에 있다가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제가 능히 12부경을 받아 지니며, 좌우에서 시봉하면서 저에게 이익될 일을 잃지 않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노라.
‘교진여여,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할 터인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겠느냐?’
이 때에 사리불이 또 말하였다.
‘제가 능히 부처님의 온갖 말씀을 받아 지니오며, 필요하신 대로 시중들겠사옵고, 저에게 이익된 일을 하는 것도 잃지 않겠나이다.’
나는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고자 하느냐?’
이리하여 나아가 5백 아라한들까지도 모두 이렇게 말하였으나, 나는 모두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 때에 목련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이제 5백 비구들이 시중하려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니, 부처님 뜻에 누구를 시중을 들게 하시려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문득 선정에 들어서 여래를 관하니, 마음이 아난에게 있는 것이, 마치 해가 처음으로 뜰 때에 빛이 서쪽 벽에 비치는 것과 같았다. 이런 것을 보고, 선정에서 일어나 교진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제가 여래를 뵈오니 아난으로 하여금 좌우에서 시중들게 하려 하더이다.’
그 때에 교진여는 5백 아라한과 함께 아난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이 이제 여래의 시중을 들어야 하겠으니, 이 일을 승낙하라.’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큰스님들이시여, 저는 참으로 여래의 시중을 들 수가 없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존종하시기 사자왕 같사옵고 용과 불과 같사온데, 저는 더럽고 미약하오니, 어떻게 책임을 감당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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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은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은 우리 말을 듣고, 여래를 모시면 큰 이익을 얻을 것이오.’
두 번 세 번 이렇게 말하였으나, 아난은 말하였다.
‘여러 큰스님들이여, 저는 큰 이익을 구함도 아니오며, 진실로 좌우에서 시중드는 일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이 때에 목련은 또 아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그대는 아직 모르는구나.’
‘큰스님, 바라건대 말씀하십시오.’
‘여래께서 저번에 대중 가운데서 시중들 사람을 구하시기에 5백 아라한이 모두 시중을 들려 하였으나, 여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였소. 내가 정에 들어서 여래의 뜻을 살펴뵈오니, 그대로 하여금 시자를 삼으려 하시는 것인데, 그대가 어찌하여 받들지 않는가?’
아난이 이 말을 듣고는 합장하고 꿇어앉아 말했다.
‘여러분 큰스님들, 일이 그러하다면, 여래 세존께서 저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시면, 승가의 명령을 받들어 좌우에서 모시겠나이다.’
목련이 말하였다.
‘세 가지 소원이 무엇인가?’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는 여래께서 설사 낡은 옷을 저에게 주셔도 제가 받잡지 아니함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둘은 여래께서 단월의 별청(別請)을 받게 될 때에 제가 따라가지 아니함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셋은 저의 출입이 일정한 시간이 없음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부처님께서 허락하시면 승가의 명령을 따르겠나이다.’
교진여 등 5백 비구는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아난 비구에게 권하였더니,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서 부처님께서 들어주시면 대중의 명을 따르겠노라 하였습니다.’
문수사리여, 나는 그 때에 아난을 이렇게 칭찬했노라.
‘훌륭하도다.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여 미리 혐의가 있을 것을 보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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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의식을 위하여 여래의 시중을 드는 것이냐?’ 하겠으므로, 먼저 낡은 옷이라도 받지 않고 별청에 따라가지 않겠다 한 것이니라. 교진여여,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였으니, 들고 나는 시간이 한정되면 4부 대중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널리 지을 수 없으므로, 출입하는 시간이 제한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니라.
교진여여, 내가 아난을 위하여 그 세 가지 일을 허락하여 그 소원을 따르리라.’
이 때에 목련은 아난에게 가서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말대로 세 가지 일을 여쭈었더니, 여래께서 대자비로 모두 들어 주셨느니라.’
아난이 대답하였다.
‘큰스님이여, 만일 부처님께서 허락하셨으면 가서 모시겠나이다.’
문수사리여, 아난이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에 여덟 가지 불가사의한 것을 구족하였느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나는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에 한 번도 나를 따라서 별청식(別請食)을 받지 아니한 것이고, 둘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한 번도 나의 옷을 받지 아니한 것이고, 셋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마침내 때 아닌 때에 나에게 온 적이 없는 것이고, 넷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번뇌를 구족하였으면서도 나를 따라서 임금과 찰리와 훌륭한 대갓집에 드나들면서 여러 여인과 천녀·용녀들을 보았지만 탐욕을 내지 아니한 것이고, 다섯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내가 말한 12부경을 받아 지니되, 한번 들은 것은 다시 묻지 아니하고도 병에 든 물을 다른 병에 붓듯이 한 것이다. 다만 한 번 물은 적이 있었으니, 선남자여, 유리(琉璃) 태자가 석씨들을 모두 죽이고 가비라성을 파괴할 때에 아난이 걱정하여 울면서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여래와 제가 함께 이 성에서 태어났고, 같은 석가 종족이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화평한 얼굴이 평상시와 같으신데, 저는 초조하나이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난아, 나는 공정(空定)을 닦았으므로 너와는 같지 아니하니라.’
3년이 지난 뒤에 다시 와서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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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번 가비라성에 있을 때에, 여래께서 공삼매를 닦으신다는 말씀을 들었사온데, 그 일이 진실하오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아난아, 그렇다. 네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여섯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얻지 못하였으나, 여래가 드는 선정을 항상 안 것이고, 일곱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소원대로 아는 지혜[願智]는 얻지 못하였으나, 여러 중생들이 여래에게 와서는, 현재에 네 가지 사문의 과를 얻기도 하고, 나중에 얻는 이도 있고, 사람의 몸을 얻을 이와 천인의 몸을 얻을 이들을 분명하게 안 것이고, 여덟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여래의 비밀한 말을 다 안 것이니라. 선남자여, 아난 비구가 이렇게 여덟 가지 부사의한 일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아는 광[多聞藏]이라고 칭찬하는 바니라.
선남자여, 아난 비구는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여 12부경을 갖추어 지녔으니, 무엇이 여덟인가. 하나는 신심이 견고한 것이고, 둘은 마음이 질직(質直)하고, 셋은 몸에 병고가 없는 것이고, 넷은 항상 부지런히 정진한 것이고, 다섯은 기억하는 마음을 구족한 것이고, 여섯은 교만한 마음이 없는 것이고, 일곱은 선정과 지혜를 성취한 것이고, 여덟은 들음을 따라 생기는 지혜를 구족한 것이니라.
문수사리여, 비바시(毘婆尸)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아숙가(阿叔迦)인데, 역시 이런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고, 시기(尸棄)여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차마가라(差摩迦羅)요, 비사부(毗舍浮)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우파선타(優波扇陀)요, 가라구촌타(迦羅鳩村馱)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발제(跋提)요, 가나함모니(迦那含牟尼)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소지(蘇坁)요, 가섭(迦葉)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섭파밀다(葉婆蜜多)인데, 모두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는데, 지금 나의 아난도 이와 같이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아는 광이라고 칭찬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이 대중 중에서 한량없는 보살들이 있으나, 이 보살들은 다 중대한 책임이 있나니, 이른바 대자대비니라. 이 대자대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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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으로 각각 일이 바쁘고 권속을 조복하고 몸을 장엄하여야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내가 열반한 뒤에 12부경을 선전하고 유통할 수 없으며, 어떤 보살이 혹시 연설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으리라.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는 나의 동생이고, 나를 시중한 지 20여 년에 들을 만한 법은 모두 구족하게 지니었으매, 마치 물을 부어 한 그릇에 담는 듯하느니라. 그래서 내가 지금 아난이 어디 있는가 물은 것은, 이 열반경을 받아 지니게 하려는 것이로다.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후에 아난 비구가 듣지 못한 것은 홍광(弘廣)보살이 유포할 것이요, 아난이 들은 것은 스스로 유통하리라.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가 지금 다른 곳에 있는데, 이 회상에서 12유순이 된다고 하며, 6만 4천억 마군에게 시달린다 하니, 그대는 그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라.
‘모든 마군들은 자세히 들으라. 여래께서 지금 대다라니(大陀羅尼)를 말씀하시나니, 모든 천인·용·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사람·사람 아닌 이[非人]와 산신·목신·수신·해신·가택신 들이 이 지명(持名)을 듣고는 공경하여 받아 지니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이 다라니는 10항하사 부처님 세존들이 함께 말씀하시는 것이어서 여인의 몸을 전환시킬 수 있으며, 스스로 숙명(宿命)을 알게 하느니라.
만일 다섯 가지 일을 받되, 하나는 범행이요, 둘은 어육을 끊는 것이고, 셋은 술을 끊는 것이고, 넷은 5신채(辛菜)를 끊는 것이고, 다섯은 고요한 데 있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를 받고 지성으로 이 다라니를 믿으며 읽고 외우고 쓰면, 이 사람은 즉시에 77억 더러운 몸을 초월하게 되느니라.'”
이 때에 세존께서 다라니를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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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다라니를 받잡고, 아난이 있는 곳에 이르러 마군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마와 권속들아,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다라니주를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들으라.”
마왕들이 이 다라니를 듣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마의 업을 버리고 아난을 놓았다. 문수사리가 아난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니, 아난은 부처님을 뵈옵고 지성으로 예경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분부하셨다.
“이 사라숲 밖에 수발타라는 범지가 있는데, 나이는 120세이다. 비록 5통(通)을 얻었으나 교만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을 얻고는 일체지(一切智)라는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는 생각을 일으켰느니라. 네가 거기 가서 수발타에게 말하였다.
‘여래가 세상에 나심이 우담바라꽃과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들리니, 만일 하려는 일이 있거든 이 때에 하고,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
아난아, 너의 말이면 그가 믿을 것이니, 왜냐 하면 네가 지나간 옛적 5백 세 동안에 수발타의 아들이 되었는데, 그 사랑하는 애정이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인연으로 너의 말을 믿을 것이니라.”
그 때에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수발타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마땅히 알라. 여래께서 세상에 나심이 우담바라꽃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드실 것이니, 하려는 일이 있거든 이 때에 하고,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아난이여. 제가 지금 여래께서 계신 곳에 가겠습니다.”
아난은 수발타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이 때에 수발타는 문안을 여쭙고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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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이여, 제가 지금 물으려 하오니, 제 뜻을 따라 대답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발타여, 지금이 바로 그 때니, 그대의 마음대로 물으라. 나는 방편으로 그대의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여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온갖 중생들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음은 모두 지난날에 지은 업의 인연이니, 만일 계행을 지니고 정진하여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받으면 본래의 업이 없어지고, 본래의 업이 다하면 모든 고통이 멸하고, 고통이 멸하면 곧 열반을 얻는다’ 하오니, 이 이치가 어떠하오니까?”
“선남자여,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런 사람에게 갈 것이요, 가서는 물을 것이다.
‘당신이 참으로 이런 말을 하였는가?’
그 사람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였소. 왜냐 하면 구담이여, 내가 보니 중생들이 나쁜 짓을 행하면서도 재물이 넉넉하고 몸이 자재한 이가 있으며, 또는 선한 일을 닦으면서도 빈궁하고 자재하지 못한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갖은 애를 써서 재물을 구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구하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얻는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을 하지 아니하여도 도리어 단명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살생을 좋아하여도 장수하는 이가 있으며, 또 어떤 이는 범행을 깨끗이 닦고 정진하며, 계행을 지니면서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얻지 못하는 이도 있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중생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은 다 지난날의 본래 업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수발타여, 나는 다시 묻을 것이다.
‘당신은 참으로 과거의 업을 보았는가? 만일 과거의 업이 있다면 얼마나 되는가. 현재의 고행으로 얼마나 깨뜨릴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하고 다하지 못함을 알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한다면 온갖 것이 다하느냐?’
저 사람이 ‘나는 진실로 알지 못하노라’라고 대답하면,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비유를 말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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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몸에 독한 화살을 맞았을 때에 집안 권속들이 의사를 청하여 살을 뽑게 하였고, 살을 뽑은 후에 몸이 편안해졌다면 10년 후에도 이 사람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오. 이 의사가 나의 독한 살을 뽑고 약을 붙여 주었으므로 나의 살 맞은 자리가 나아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당신은 과거의 본래 업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현재의 고행으로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아는가?’
저가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당신도 지금 과거의 본래 업이 있다고 하면서, 무슨 연고로 나의 과거 업을 책망하는가? 구담의 경전에서도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호화롭게 자재함을 보거든, 이 사람은 지난 세상에서 보시하기를 좋아한 줄을 알라 하였으니, 이런 것이 과거의 업이 아닌가?’ 하면,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하리라.
‘그대여, 그렇게 아는 것은 비겨서 아는 것[比知]이요, 참으로 아는 것[眞知]이라 하지 않느니라. 나의 불법에는 혹은 인으로 말미암아 과를 알기도 하고, 혹은 과를 따라서 인을 알기도 하는 것이며, 나의 불법 중에는 과거의 업도 있고 현재의 업도 있거니와, 그대는 그렇지 아니하여 오직 과거의 업뿐이요 현재의 업은 없으며, 그대들의 법에는 방편을 따라서 업을 끊지 않거니와, 나의 법은 그렇지 아니하며, 방편으로 끊느니라. 그대는 업이 다하면 곧 괴로움이 다한다 하거니와, 나는 그렇지 아니하여 번뇌가 다하여야 업과 고가 다한다 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지금 그대의 과거의 업을 책망하는 것이라.’
저 사람이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나는 실로 알지 못하거니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요, 스승이 이런 말을 한 것이므로 나는 허물이 없노라’ 하면, 나는, ‘그대의 스승이 누구냐?’ 하겠고, 저가 대답하기를 ‘부란나요’ 하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은 과거의 업을 아느냐고 낱낱이 묻지 않았느냐. 그대의 스승이 만일 나는 알지 못하노라 한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의 말을 믿으며, 만일 내가 아노라 하거든, 다시 묻기를 (하품 고[下苦]의 인연으로 중품과 상품의 고도 받나이까? 중품 고의 인연으로 하품과 상품의 고도 받나이까? 상품 고의 인연으로 중품과 하품의 고도 받나이까?) 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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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아니라 하거든, 다시 묻기를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는 오직 과거의 업뿐이요, 현재가 아니라고 하나이까?) 할 것이며, 또 묻기를 (이 현재의 괴로움이 과거에 있었나이까? 만일 과거에 있었다면, 과거의 업은 다 없어졌을 것이요, 만일 다 없어졌다면, 어찌하여 또 오늘의 몸을 받나이까? 만일 과거에는 없었고 현재에만 있다면, 어찌하여 중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과거의 업이라 하나이까?) 할 것이니라.
그대여, 만일 현재의 고행이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안다면, 현재의 고행은 또 무엇으로 깨뜨리겠는가. 만일 깨뜨리지 못한다면 괴로움이 항상할 것이요, 괴로움이 만일 항상하다면, 어떻게 괴로움에서 해탈함을 얻는다 하겠는가. 만일 다른 행이 고행을 깨뜨릴수 있다면 과거에 이미 다하였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괴로움이 있는가.
그대여, 이런 고행은 즐거운 업으로 하여금 괴로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또 괴로운 업으로 하여금 즐거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업으로 하여금 받지 않는 과를 짓게 할 수 있는가. 현재의 업보로 하여금 다음 생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다음 생의 업보로 하여금 현재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업보로 하여금 없는 보[無報]를 짓게 할 수 있는가. 결정된 보로 없는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없는 보로 결정된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할 것이니라.’
저가 만일 ‘구담이여, 그러할 수가 없노라’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여, 만일 그러할 수 없다면, 무슨 인연으로 이 고행을 받는가. 그대는 결정코 과거의 업과 현재의 인연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할지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업을 내고, 업으로 인하여 보를 받는다고 했느니라. 그대여, 모든 중생이 과거의 업이 있고, 현재의 인이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중생이 비록 과거에 장수할 업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현재에 음식의 인연을 힘입어야 하느니라.
그대가 만일 말하기를, 중생이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음이 결정코 과거의 본래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는다 하면, 그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대여, 마치 어떤 사람이 왕을 위하여 원수를 없애고, 그 인연으로 재물을 많이 받았다면, 이 재물로 인하여 현재의 즐거움을 받는 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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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 이런 사람은 현재에 즐거운 인을 짓고, 현재에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또 어떤 사람이 왕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고, 그 인연으로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이 사람은 현재에 괴로운 인을 짓고, 현재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그대여, 모든 중생들이 현재에 4대(大)와 시절과 토지와 인민들로 인하여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중생이 모두 과거의 본업만으로 인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였노라.
만일 업을 끊는 인연의 힘으로 해탈을 얻는다 할진대, 모든 성인이 해탈을 얻지 못함은 무슨 까닭인가. 모든 중생의 과거의 본래 업이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성인이 도를 닦을 때에, 이 도가 능히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업을 막는다 했느니라. 만일 고행을 받는 것으로 도를 얻는다 하면, 온갖 축생들이 다 도를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할 것이요, 몸을 조복할 것이 아니니라. 이런 인연으로 나의 경전에서 말하기를, 숲을 찍을 것이언정 나무를 찍을 것이 아니라 하였으니, 왜냐 하면 숲으로부터 공포가 생길지언정 나무로부터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몸을 조복하려면 먼저 마음을 조복할 것이라 하나니, 마음은 숲에 비유한 것이고, 몸은 나무에 비유한 것이니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나는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나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마음을 먼저 조복하였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먼저 생각하오니, 욕계는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지 아니하옵기에 색계가 항상하고 즐겁고 깨끗한 줄을 관찰하였사오며, 이런 관찰을 하여 마치니, 욕계의 결박이 끊어졌고 색처(色處)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 이름하였나이다. 다음에 또 색계를 관찰하니, 색계가 무상하여 등창과 같고 창질과 같고 독약과 같고 화살과 같사오며, 무색계가 항상하고 청정하고 고요하더이다. 이렇게 관찰하여 마치니, 색계의 결박이 다하였고 무색계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 이름하였나이다. 다음에 또 생각[想]을 관찰하니, 곧 무상하고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더이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비상비비상처를 얻었사오니, 이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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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상처는 곧 일체지며 고요하며 청정하여 타락함이 없고,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오매, 그러므로 제가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가 어찌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다 하겠느냐. 그대가 얻은 비상비비상정도 오히려 생각이라 이름하는 것이요, 열반이라야 생각이 없는 것이거늘, 그대가 어떻게 열반을 얻었다 말하겠느냐. 선남자여, 그대가 먼저는 능히 거친 생각을 꾸짖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미세한 생각에 애착하느냐. 이 비상비비상처를 꾸짖을 줄을 알지 못하므로, 생각을 이름하여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스승인 울두람불은 영리하고 총명하지만 그래도 이 비상비비상처를 끊지 못하고 나쁜 몸을 받았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일까 보냐.”
“세존이시여, 어찌하오면 모든 유를 능히 끊겠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실상(實相)을 관찰하면, 이 사람이 능히 모든 유를 끊게 되느니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실상이라 이름하나이까?”
“선남자여, 모양이 없는 모양[無相之相]을 실상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모양이 없는 모양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법이 제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고, 저와 남의 모양도 없고 인이 없는 모양도 없으며, 짓는 모양도 없고 받는 모양도 없고, 짓는 이의 모양도 없고 받는 이의 모양도 없으며, 법의 모양도 없고 법 아닌 모양도 없으며, 남녀 모양도 없고 장정 모양도 없으며, 티끌 모양도 없고 시절 모양도 없으며, 자기를 위하는 모양도 없고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고, 자기와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으며, 있는 모양도 없고 없는 모양도 없으며, 나는 모양도 없고 내는 이 모양도 없으며, 인(因) 모양도 없고 인의 원인 모양도 없고, 과(果) 모양도 없고 과의 결과 모양도 없고, 낮과 밤의 모양도 없고 어둡고 밝은 모양도 없으며, 보는 모양도 없고 보는 이 모양도 없으며, 듣는 모양도 없고 듣는 이 모양도 없으며, 깨닫는 모양도 없고 깨닫는 이 모양도 없으며, 보리의 모양도 없고 보리를 얻은 이 모양도 없으며, 업 모양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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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주인 모양도 없으며, 번뇌 모양도 없고 번뇌 주인 모양도 없나니, 선남자여, 이런 모양들이 멸한 곳을 진실한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이 모두 헛된 가짜이거든, 그것이 없어진 데를 참이라 하나니 이것을 실상(實相)이라 하고, 법계(法界)라 하고, 필경지(畢竟智)라 하고,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고,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실상·법계·필경지·제일의제·제일의공을 하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성문보리(聲聞菩提)를 얻고, 중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연각보리(緣覺菩提)를 얻고, 상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느니라.”

이 법을 연설할 때에, 10천 보살이 1생에 실상을 얻었고, 1만 5천 보살이 2생에 법계를 얻었고, 2만 5천 보살이 필경지를 얻었고, 3만 5천 보살이 제일의제를 깨달았으니, 이 제일의제를 제일의공이라고도 하고, 수릉엄삼매라고도 하느니라. 4만 5천 보살이 허공삼매를 얻었으니, 이 허공삼매를 광대(廣大)삼매라고도 하고, 지인(智印)삼매라고도 하느니라. 5만 5천 보살이 불퇴인(不退忍)을 얻었으니, 이 불퇴인을 여법인(如法忍)이라고도 하고, 여법계(如法界)라고도 하느니라. 6만 5천 보살이 다라니를 얻었으니, 이 다라니를 대염심(大念心)이라고도 하고, 걸림없는 지혜라고도 하느니라. 7만 5천 보살이 사자후(師子吼)삼매를 얻었으니, 이 사자후삼매를 금강삼매라고도 하고, 오지인(五智印)삼매라고도 하느니라. 8만 5천 보살이 평등삼매를 얻었으니, 이 평등삼매를 대자대비라고도 하느니라.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연각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성문의 마음을 내었고, 세간의 여자와 천상의 여자 2만억 사람들이 현재에서 여인의 몸을 변하여 남자의 몸을 얻었고, 수발타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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