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pRf0ZHwBt2w&list=RDpRf0ZHwBt2w&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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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불기(元曉不羈)/설총 이두, 향가25수;삼국유사 14수, 균여전 보현행원품11수 재록

https://kydong77.tistory.com/21082 원효불기(元曉不羈)/설총 이두, 향가25수;삼국유사 14수, 균여전 보현행원품11수 https://kydong77.tistory.com/21606 마명보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한문 번역, 용성당 진종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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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卷第四

元曉不羈

 [원효불기, -   원효, 구애되지 않다]

ㅡ 영원한 自由人[不羈]

 

聖師元曉 俗姓薛氏 祖仍皮公 亦云赤大公 今赤大淵側有仍皮公廟 父談捺乃末

성사 원효(聖師元曉)의 속성은 설씨(薛氏)이다. 그의 조부는 잉피공(仍皮公) 또는 적대공(赤大公)이라고도 한다. 지금 적대연(赤大淵) 곁에 잉피공의 사당[廟]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내말 담날(乃末談捺)*이다.

* 신라 관등 11등급에 해당하는 내마(柰麻)벼슬을 한 지방관리로서, 이름은 담날(談捺)이다.

初示生于押梁郡南(今章山郡) 佛地村北 栗谷娑羅樹下 村名佛地 或作發智村(俚云弗等乙村)

(원효스님은) 압량군[押梁郡: 지금의 장산군(章山郡)] 남쪽, 불지촌(佛地村)의 북쪽에 있는 율곡(栗谷: 밤나무골)의 사라수(娑羅樹)* 아래에서 태어났다. 불지촌이란 마을 이름은 발지촌[發智村: 속언에는 불등을촌(弗等乙村)이라 함]이라고도 쓴다.

 

* 석가모니께서 열반한 장소에 있던 나무. 

娑羅樹者 諺云

師之家本住此谷西南 母旣娠而月滿 適過此谷栗樹下 忽分産 而倉皇不能歸家 且以夫衣掛樹 而寢處其中 因號樹曰娑羅樹

사라수(娑羅樹)의 유래에 대해서 세속에 전하는 바로는 이러하다.

원효스님의 집이 본래 율곡의 서남쪽에 있었다. 그 어머니가 [스님을] 잉태, 만삭이 되어 마침 그 골짜기, 즉 율곡의 밤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홀연 해산을 했다. 너무 급해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그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어두고 그 속에 누워 해산했다[寢處其中]. 그래서 그 밤나무를 사라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其樹之實亦異於常 至今稱娑羅栗 古傳 昔有主寺者 給寺奴一人 一夕饌栗二枚 奴訟于官 官吏怪之 取栗檢之 一枚盈一鉢 乃反自判給一枚 故因名栗谷

그 나무의 열매가 또한 보통 나무와 달리 특이하여 지금도 그것은 사라율(娑羅栗)이라 불리고 있다. 옛부터 전하기를, 옛적 어떤 주지[主寺者]가 그 사노(寺奴)들에게 하룻저녁의 저녁밥거리[一夕饌]로 한 사람 앞에 밤 두 알씩 나누어 주곤 했다. 사노들이 불만을 품고서 관가에 고소를 했다. 관리가 이상스러워 그 밤을 가져다가 검사해 보았더니, 밤 한 개가 발우(鉢盂) 하나에 가득 찼다. 그러자 그 관리는 도리어 사노 한 사람에게 한 개씩만 주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그 밤나무가 있는 산골짜기를 율곡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

 

師旣出家 捨其宅爲寺 名初開 樹之旁置寺曰娑羅

원효스님은 출가하고 나서 그의 집을 희사하여 절로 만들어 이름을 초개사(初開寺)라고 했다. 그리고 원효스님이 태어났던 그 밤나무 곁에도 절을 지어 사라사(娑羅寺)라고 했다.

 

師之行狀云 是京師人 從祖考也

원효스님의 행장(行狀: 전기)에는 서울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 조부의 본거지를 따른 것이다.

唐僧傳云 本下湘州之人 按麟德二年間 文武王割上州下州之地 置歃良州 則下州乃今之昌寧郡也 押梁郡本下州之屬縣 上州則今尙州 亦作湘州也

당<승전(僧傳)>에는 본래 하상주(下湘州)사람이라고 했다. 살펴보건대[按] 당 고종 16년[麟德 2年] - 즉 문무왕 즉위 5년(A.D. 665) 중에 문무왕이 상주(上州)와 하주(下州)의 땅 일부를 떼어서 삽량주(歃良州)를 설치했으니, 하주는 바로 오늘날의 창녕군에 해당하고, 압량군은 본래 하주에 소속된 고을[屬縣]이다. 상주는 지금의 상주(尙州)이니 또한 상주(湘州)라고도 쓴다.

佛地村今屬慈仁縣 則乃押梁之所分開也

[원효스님이 태어난] 불지촌은 지금 자인현(慈仁縣)에 속해 있으니 곧 압량군에서 나누어진 한 구역이다.

 

師生小名誓幢 第名新幢(幢者俗云毛也)

初母夢流星入懷 因而有娠 及將産 有五色雲覆地

원효스님의 아명은 서당(誓幢)이요, 제명(第名)은 신당[新幢: <당>은 세속에선 털(毛)이라고 한다]이다. 당초 그 어머니는 별똥[流星]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나서 [스님을] 잉태했는데, 해산하려고 할 때에는 오색구름이 땅을 뒤덮었다.

眞平王三十九年 大業十三年丁丑歲也

스님의 탄생은 진평왕 즉위 39년, 수나라 양제 대업(大業) 13년(丁丑年: A.D. 617)에 있었다.

生而穎異 學不從師

其遊方始末 弘通茂跡 具載唐傳與行狀 不可具載

唯鄕傳所記有一二段異事 

그는 나면서부터 총명하기가 남달라서[穎異] 스승을 모시지 않고 독력으로 배웠다. 그가 수도를 위해 사방으로 구름 가는 듯한 행적[遊方]의 시말과 불교의 홍통(弘通)에 남긴 그의 성대한 업적은 당<승전>과 그의 행장에 모두 실려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일일이 다 지적하지 않고, 단지 <향전(鄕傳)>에 실린 한두 가지의 특이한 일만을 기록하겠다.

 

師嘗一日風顚唱街云 

어느 날, 스님은 춘의(春意)가 발동하여[風顚] 다음과 같은 시가를 지어 부르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

    누가 자루 없는 도끼[沒柯斧]를 주려나,

    하늘 받칠 기둥[支天柱]을 찍어내련다.

人皆未喩 時太宗聞之曰

此師殆欲得貴婦 産賢子之謂爾 國有大賢 利莫大焉

 사람들은 모두 이 시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다만 그때 태종 무열왕이 듣고서 말했다.

 "이 스님이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고 싶어 하는구나. 나라에 훌륭한 인물이 있으면 이익이 그보다 클 수가 없지!"

 

時瑤石宮(今學院是也)有寡公主 勅宮吏覓曉引入

그때 요석궁[지금의 학원(學院)이 그곳이다]에 홀로 된 공주가 있었다. 무열왕은 궁리(宮吏)를 시켜 스님을 찾아 요석궁으로 인도해 들이게 했다. 

宮吏奉勅將求之 已自南山來過蚊川橋(沙川 俗云牟川 又蚊川 又橋名楡橋也)遇之 佯墮水中濕衣袴

吏引師於宮 褫衣曬㫰 因留宿焉

궁리가 왕명을 받들고 원효를 찾아 다니다가, 이미 남산에서 내려와 문천교[<사천>이니, 속담에는 <모천> 또는 <문천>이라 하고, 다리 이름은 유교(楡橋)라 한다]를 지나는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일부러[佯] 물에 빠져서 함빡 옷을 적셨다. 궁리는 스님을 요석궁으로 데리고 가 거기서 옷을 끌러 말리도록 했다. 이리하여 스님은 그 요석궁에 유숙하게 되었다.

 

公主果有娠 生薛聰

聰生而睿敏 博通經史 新羅十賢中一也

以方音通會華夷方俗物名 訓解六經文學 至今海東業明經者 傳受不絶

요석공주는 과연 임신을 하더니 설총(薛聰)을 낳았다.

설총은 천생(天生)의 자질이 영민했다. 널리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통달했으니 신라 10현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방음[方音: 우리나라 말. 여기서는 <이두>를 가리킴]으로 중국과 우리나라[華夷]의 풍속과 사물 이름에 통회(通會)하고 육경(六經) 문학을 훈해(訓解)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이 땅의 경서 수업자[業明經者]들이 전수하여 이어 오고 있다.

 

曉旣失戒生聰 已後易俗服 自號小姓居士

원효스님은 이미 파계하여 총을 낳은 뒤로는 세속의 복장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사기에는 <小性居士>로 되어 있음]라 일컬었다. 

偶得優人舞弄大瓠 其狀瑰奇 因其形製爲道具 以華嚴經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命名曰無碍 仍作歌流于世

우연히 광대[優人]들이 가지고 노는 큰 박을 얻었는데 그 형상이 진기했다. 스님은 광대의 그 박의 형상을 따라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의 <一切無碍人 一道[一乘]出生死>에 의거하여 무애(無碍)란 이름으로 그 도구를 명명하고 거기에 해당하는 노래 <무애가>를 지어 세상에 퍼트렸다.

嘗持此 千村萬落且歌且舞 化詠而歸 使桑樞瓮牖玃猴之輩 皆識佛陀之號 咸作南無之稱 曉之化大矣哉

일찍이 이 도구를 가지고 스님은 많은 촌락을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춤추고 널리 교화를 펼치고 돌아왔다. 이리하여 저 오두막집의 더벅머리 아이들[桑樞瓮牖玃猴상추옹유확후]까지도 모두 불타의 명호를 알게 하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부르게 했으니, 원효스님의 교화는 참으로 크기도 하다.

 

其生緣之村名佛地 寺名初開 自稱元曉者 蓋初輝佛日之意爾

그가 태어난 마을을 불지촌이라 이름하고, 그의 집을 희사하여 만든 절을 초개사라 이름하고, 그리고 또 자칭 원효(元曉)라고 한 것들은 모두 불일(佛日)을 처음으로 빛나게 했다는 뜻이다. 

元曉亦是方言也 當時人皆以鄕言稱之始旦也

원효라는 말도 또한 우리나라 말[方言]에서 뜻이 취해진 것이니

당시 사람들은 모두 우리나라 말[鄕言]로써 [원효스님을] 새벽[始旦]이라고 불렀다.

 

曾住芬皇寺 纂華嚴䟽 至第四十廻向品 終乃絶筆

일찍이 분황사(芬皇寺)에 머물러 있으면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저술했는데 제4권 십회향품(十廻向品)에 이르러 그만 붓을 그쳤다. 

又嘗因訟 分軀於百松 故皆謂位階初地矣

또 언젠가는 공적인 일[]로 인해서 몸을 일백 소나무[百松]에 나누었으므로 모두들 위계(位階)의 초지(初地: 환희지)라고 일렀다. 

亦因海龍之誘 承詔於路上 撰三昧經疏 置筆硯於牛之兩角上 因謂之角乘 亦表本始二覺之微旨也

스님은 또한 바다용의 권유에 의하여 노상에서 조서(詔書)를 받고 <금강삼매경소(金剛三昧經疏)>를 저술했다. 그것을 저술할 때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위에 놓아 두고 했다고 해서 그것을 각승(角乘)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각승이란 또한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의 오묘한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大安法師排來而粘紙 亦知音唱和也

대안(大安)법사가 와서 종이를 붙였으니[경의 차례를 매김] 역시 의미를 알고 둘이서 주고받은 것[知音唱和]이다.

 

旣入寂 聰碎遺骸 塑眞容 安芬皇寺 以表敬慕終天之志 聰時旁禮 像忽廻顧 至今猶顧矣

스님이 입적하자 아들 그 유해를 가루내어서 진용(眞容)을 만들어 분황사에 봉안해 두고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뜻을 표했다. 설총이 그때 스님의 소상(塑像) 곁에서 배례했더니, 소상이 홀연 돌아다 보았다. 지금도 소상은 여전히 돌아다 보는 모습 그대로 있다.

曉嘗所居穴寺旁 有聰家之墟云

원효스님이 일찍이 거처한 적이 있던 혈사(穴寺) 곁에 설총의 집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讚曰 

그를 찬(讚)한다.

角乘初開三昧軸  舞壺終掛萬街風

月明瑤石春眠去  門掩芬皇顧影空 

    각승(角乘)을 지어 삼매경의 중추되는 뜻 처음 열어 보이고

    표주박 들고 춤을 추며 거리마다 교화를 베풀었네.

    달 밝은 요석궁에 봄잠이 깊더니

    문 닫힌 분황사엔 돌아다 보는 소상만 쓸쓸하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536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namu.wiki/w/%EC%9B%90%ED%9A%A8

 

원효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 고려 숙종 이 원효에게 내린 시호 . 자기 동생이자 해동 천태종 을 연 대각국사

namu.wiki

성씨: 설씨
요석공주를 맞아 설총을 낳으심.
설총은 한자를 빌어 한국어를 기록한 이두의 개발자임. 천재는 천재를 낳는군요.

향가 25수는 한자의 음과 뜻을 사용한 이두 표기임.
삼국유사:14수
보현십원가: 11수

 

서거정의 경주12영(詠)  가운데

'분황폐사(芬皇廢寺)'

芬皇寺對黃龍寺

분황사대황룡사,  분황사가 황룡사와 마주해 있어

千載遺基草自新

천재유기초자신, 천년 묵은 옛터에 풀만 무성히 자랐구나.

白塔亭亭如喚客

백탑정정여환객, 흰 탑은 우뚝 서서 나그네를 부르는 듯하고

靑山點點已愁人

청산점점이수인,  띄엄띄엄 푸른 산은 사람을 시름케 한다.

無僧能解前三語

무승능해전삼어,  전삼(前三)[4]이란 말을 알아들을 중들은 없고

有物空餘丈六身

유물공여장륙신, 부질없이 장륙 부처의 몸만 남아 있구나.


始信閭閻半佛宇

시신려염반불우,  여염집의 절반은 절이었음을 비로소 믿겠네

法興何代似姚秦

법흥하대사요진,  법흥왕의 어느 대가 요진(姚秦)과 같았으려나.[5]

 

서거정의 경주12영(詠) 가운데  '분황폐사(芬皇廢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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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십이영(慶州十二詠) - 서거정/사가시집보유 3권

● 계림(鷄林)의 영이(靈異)함금계는 울어 대고 나무는 푸르디푸르더니 / 金鷄啁哳樹蒼蒼구백 년이 지나서는 잎이 모두 노래졌네 / 九百年來葉盡黃박조(박혁거세)는 나라 열어 석씨(석탈해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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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림(鷄林)의 영이(靈異)함

金鷄啁哳樹蒼蒼

금계조찰수창창, 금계는 울어 대고 나무는 푸르디 푸르더니 / 

九百年來葉盡黃

구백년래엽진황, 구백 년이 지나서는 잎이 모두 노래졌네 / 

朴祖開邦傳鵲祖

박조개방전작조, 박조(박혁거세)는 나라 열어 석씨(석탈해왕)에게 전하였고 / 

金王納土似錢王

김왕납토사전왕, 김왕(신라왕)은 국토 바친 게 전왕(당나라때 왕)과 똑같았네 /

傷心三姓皆顚蹶

상심삼성개전궐, 상심스러워라 삼성(박,석,김)이 모두 다 전복되어 / 

滿目諸陵已廢荒

만목제릉이폐황, 눈 가득 여러 왕릉이 이미 황폐해졌구려 / 

千古英雄無限恨

천고영웅무한한천고 영웅의 끝없는 한스러움 있으니 / 

淡煙衰草更斜陽

담연쇠초갱사양, 엷은 연기 시든 풀 그리고 석양이로다 / 

 

● 오산(鼇山.금오산)의 기이한 경치

海上金鼇眺望宜

해상금오조망의, 동해 가의 금오산은 조망이 참 좋건만 / 

風流文物異前時

풍류문물리전시, 풍류와 문물이 예전과는 다르고말고 / 

破碑或見金生字

파비혹견김생자, 깨진 비석엔 간혹 김생의 글씨가 보이고 / 

古寺曾留致遠詩

고사증류치원시, 옛 절엔 일찍이 최치원의 시를 남기었네 / 

甲第有基荒薺合

갑제유기황제합, 큰 저택은 터만 남아서 냉이 풀이 우거졌고 / 

名園無主短墻危

명원무주단장위, 이름난 동산은 주인 없이 담장만 위태롭네 / 

春愁如許深於海

춘수여허심어해, 봄 시름이 이렇듯 바다보다 깊은 차에 / 

鐵笛何人滿意吹

철저하인만의취, 그 누구가 철저를 마음껏 불어 대는고 / 

 

● 포석정(鮑石亭)에 대한 감회

鮑石亭前立馬時

포석정전립마시, 포석정 앞에 말을 막 세우자마자 / 

沈吟懷古思依依

침음회고사의의, 깊은 생각에 잠겨 옛일을 그리워하네 / 

流觴曲水基猶在

류상곡수기유재, 유상곡수 터는 아직 남아 있는데 / 

醉舞狂歌事已非

취무광가사이비, 실컷 취해 가무하던 일은 이미 글렀네 / 

未有荒淫不亡國

미유황음불망국, 황음하고도 안 망한 나라 없는 법이거니 / 

那堪慷慨獨沾衣

나감강개독첨의, 홀로 눈물져라 강개한 심정 어이 견딜꼬 / 

行行吟過五陵路

행행음과오릉로, 걸어걸어 오릉 길을 읊조리며 가노라니 / 

石堡金城共落暉

석보금성공락휘, 석보와 금성 여기저기 모두가 석양일세 / 

 

● 문천(蚊川)에서 멀리 바라봄

 行渡蚊川過別村

행도문천과별촌, 가다가 문천을 건너서 별촌을 지나갈 제 /

古都遐想不勝繁

고도하상불승번, 번화하던 옛 도읍 그리움을 감당 못하겠네 / 

烏啼深樹思金甲

오제심수사금갑, 까마귀 나무에서 울어라 금갑이 생각나고 / 

蛙吠寒塘憶玉門

와폐한당억옥문, 개구리 못에서 울어라 옥문지가 생각나네 / 

白乳荒唐崇像敎

백유황당숭상교, 흰 젖은 황당하여라 불교를 숭상했었고 / 

黃童慷慨報君冤

황동강개보군원, 황동은 강개하여 임금의 원수 갚았었지 / 

水流不洗前朝恨

수류불세전조한, 물이 흘러도 전조의 한을 씻을 수 없으니 / 

蕩滌須憑北海樽

탕척수빙북해준, 북해의 술 항아리로 깨끗이 씻어야겠네 / 

 

● 반월고성(半月古城)

半月城頭日欲西

반월성두일욕서, 반월성 머리에 해가 점차 저물어 가니 / 

遠遊情思轉凄凄

원유정사전처처, 멀리 노닌 길손의 심정 더욱 처량하여라 / 

靑浮楊麓雲煙老

청부양록운연로, 푸르른 양산 기슭엔 운연이 잠긴 지 오래요 / 

黃落始林歲月迷

황락시림세월미, 노란 잎 떨어진 시림은 세월이 아득하구나 / 

明活村南雲渺渺

명활촌남운묘묘, 명활촌 남쪽에는 구름이 아득하고 / 

興輪寺北草萋萋

흥륜사북초처처, 흥륜사 북쪽에는 잡초가 무성하네 / 

百年坎軻知何用

백년감가지하용, 평생을 불우한 신세 장차 어디에 쓰랴 /

嬴得尊前醉似泥

영득존전취사니, 술이나 실컷 마시고 곤드레로 취해 볼까 / 

 

● 첨성노대(瞻星老臺)

古臺牢落號瞻星

고대뢰락호첨성, 옛 대가 우뚝 서 있어 그 이름은 첨성인데 / 

遺跡依然近月城

유적의연근월성, 유적이 예전 그대로 월성 가까이에 있네 / 

地悴天荒年已久

지췌천황년이구, 천지가 시들도록 세월이 이미 오래이라 / 

風摧雨剝勢曾傾

풍최우박세증경, 비바람에 꺾이고 깎여 형세가 기울었도다 / 

孤山落日金仙影

고산락일금선영, 외로운 산 지는 해에 금부처의 그림자요 / 

故壘悲秋玉笛聲

고루비추옥적성, 옛 성루에 가을 슬퍼하는 옥적의 소리로다 / 

三姓千年曾一瞥

삼성천년증일별, 삼성의 천년 세월이 고작 한 순간이어라 / 

不堪登眺更傷情

불감등조갱상정, 올라 바라보니 상심스러움을 못 견디겠네 / 

 

분황폐사(芬皇廢寺)

芬皇寺對黃龍寺

분황사가 황룡사와 서로 마주해 있어 / 

千載遺基草自新

천년 묵은 옛터에 풀만 절로 무성하구나 / 

白塔亭亭如喚客

흰 탑은 우뚝 서서 나그네를 부르는 듯 / 

靑山點點已愁人

띄엄띄엄 푸른 산은 사람을 시름케 하네 / 

無僧能解前三語

능히 전삼의 말을 알 만한 중은 없는데 / 

有物空餘丈六身

부질없이 장륙 부처의 몸만 남아 있구려 / 

始信閭閻半佛宇

여염이 반은 절이었음을 비로소 믿겠네 / 

法興何代似姚秦

법흥왕 그 어느 대가 요진과 같았던고 /

芬皇寺對黃龍寺

분황사대황룡사,  분황사가 황룡사와 마주해 있어

千載遺基草自新

천재유기초자신, 천년 묵은 옛터에 풀만 무성히 자랐구나.

白塔亭亭如喚客

백탑정정여환객, 흰 탑은 우뚝 서서 나그네를 부르는 듯하고

靑山點點已愁人

청산점점이수인,  띄엄띄엄 푸른 산은 사람을 시름케 한다.

無僧能解前三語

무승능해전삼어,  전삼(前三)[4]이란 말을 알아들을 중들은 없고

有物空餘丈六身

유물공여장륙신, 부질없이 장륙 부처의 몸만 남아 있구나.


始信閭閻半佛宇

시신려염반불우,  여염집의 절반은 절이었음을 비로소 믿겠네

法興何代似姚秦

법흥하대사요진,  법흥왕의 어느 대가 요진(姚秦)과 같았으려나.[5]

 

● 영묘구찰(靈妙舊刹)

舊刹岧嶢接上蒼

구찰초요접상창, 옛 절은 높다랗게 하늘에 가닿았는데 / 

千年往事已凄涼

천년왕사이처량, 천년의 지난 일들은 이미 처량해졌네 / 

石龕零落埋幽徑

석감령락매유경, 돌 감실은 퇴락하여 오솔길이 묻혀 버렸고 / 

銅鐸丁當語夕陽

동탁정당어석양, 구리쇠 풍경은 댕그랑 석양을 울려 대누나 / 

遺老至今談女主

유로지금담녀주, 노인들은 지금까지 여주를 말하거니와 / 

古鍾依舊記唐皇

고종의구기당황, 옛 종에는 여전히 당황이 기록되어 있네 / 

摩挲短碣移時立

마사단갈이시립, 짧은 비석 어루만지며 한참 동안 섰노라니 / 

剝落莓龍字半荒

박락매룡자반황, 벗겨지고 이끼 끼어 글자가 반은 이지러졌네 / 

 

● 오릉비조(五陵悲弔)

徐伐千秋王氣銷

서벌천추왕기소, 서라벌 천년 세월에 왕기가 사라지니 / 

五陵深處弔前朝

오릉심처조전조, 오릉 깊숙한 곳에 전조를 조상하노라 / 

馬嘶龍誕曾荒怪

마시룡탄증황괴, 말이 울고 용이 낳았단 말은 황당커니와 / 

鵲浦鷄林共寂寥

작포계림공적요, 작포와 계림은 모두 적막하기만 하구려 / 

玉帶寶隨金櫃盡

옥대보수금궤진, 옥대의 보배는 금궤와 함께 사라졌고 / 

銅駝影接石羊搖

동타영접석양요, 동타의 그림자는 석양 곁에서 흔들리네 / 

更無齒餠能傳祚

갱무치병능전조, 다시 치병으로 왕위를 전할 수는 없고 / 

春樹年年語伯勞

춘수년년어백로, 해마다 봄 나무에 때까치만 울어대누나 / 

 

● 남정청상(南亭淸賞)

城郭人民是又非

성곽인민시우비, 성곽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옛사람 아니라 / 

倚欄豪嘯淡忘歸

의란호소담망귀, 난간 기대 휘파람 불며 돌아가길 잊고 있네 / 

閼英殿裡龍應去

알영전리룡응거, 알영전 안에는 용이 응당 떠났으려니와 / 

脫解海邊鵲不依

탈해해변작불의, 탈해가 나온 해변에는 까치도 사라졌구나 / 

蘿井樹陰依舊暗

라정수음의구암, 나정의 나무 그늘은 예전대로 어둑하고 / 

竹陵筍籜至今肥

죽릉순탁지금비, 죽릉의 죽순은 지금도 살이 통통 쪘도다 / 

可憐當日繁華地

가련당일번화지, 가련도 하여라 당년에 그 번화했던 곳에 / 

天地無情幾夕暉

천지무정기석휘, 하늘 땅은 무정하여 석양이 그 몇 번이었나 / 

 

● 옥젓대 소리를 듣다

故國興亡一笑新

고국흥망일소신, 고국의 흥망 생각하며 한번 웃음 짓노니 / 

當時三寶盡成塵

당시삼보진성진, 당시의 삼보가 이젠 다 티끌이 돼 버렸네 / 

金輿自屈知何主

금여자굴지하주, 금여 타고 스스로 항복한 게 어떤 임금이며 / 

玉笛仍傳又幾春

옥저잉전우기춘, 옥저가 그대로 전해 온 지는 또 몇 해이던고 / 

愛惜只堪存古物

애석지감존고물, 아까우니 옛 보물이나 보존할 뿐이요 / 

風流不必效前人

풍류불필효전인, 풍류는 굳이 옛사람 본받을 것 없어라 / 

殘城落日休三弄

잔성락일휴삼롱, 무너진 성 지는 해에 삼롱을 연주하여 / 

長使英雄淚滿巾

장사영웅루만건영웅의 눈물이 건을 적시도록 말아 다오 / 

 

● 김유신(金庾信)의 묘를 지나다

金老墳前石獸危

김로분전석수위, 김유신의 무덤 앞에 석수가 우뚝하여라 / 

千年劍氣尙奇奇

천년검기상기기, 천년 뒤까지 검기는 아직도 뛰어나구려 / 

綸巾白羽追前業

륜건백우추전업, 윤건 백우로 전현의 공업 이루었는데 / 

丹荔黃蕉起後思

단려황초기후사, 단려 황초는 후인의 그리움 일으키네 / 

有客題詩誇壯烈

유객제시과장렬, 시 지어 장렬함 과시해 준 길손은 있건만 / 

無人穿塚近要離

무인천총근요리, 요리 무덤 가까이 들어간 사람은 없구려 / 

天官寺古知何處

천관사고지하처, 옛날의 천관사는 어드메에 있느뇨 / 

萬古蛾眉姓字隨

만고아미성자수, 만고에 미인의 성명까지 따라 전하누나 /  (끝)

 

 

 

일반적인 경우 종각의 주련은 4기둥에 한문으로 적는 게 일반적이나 여기는 아래의 글귀가 아니네요.

종을 치는 참배객들에게 안내문을 적었네요.

      願此鐘聲遍法界           원차종성변법계

      鐵圍幽暗悉皆明           철위유암실개명

      三途離苦破刀山           삼도이고파도산

      一切衆生成正覺           일체중생성정각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

          철위산의    어두움이    햇빛처럼    밝아지고

          삼악도는    고통벗고    도산지옥    부숴지고

          모든 중생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소서.

 

 
 


당간지주 -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B%8B%B9%EA%B0%84%EC%A7%80%EC%A3%BC

 

당간지주

불교 의 주요 건조물 중 하나. 상세 절 에 법회 등의 행사가 있을 때 입구에 당(幢)이라는 긴 깃발을 걸어두는데

namu.wiki

사찰의 행사를 알리는 불화를 걸어두던 두 개의 기둥으로 그 크기로 사찰의 규모를 추정히기도 한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3868

 

당간지주(幢竿支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걸던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 좌 · 우에 세우는 기둥.

 

위는 원효 초상

 

 
복원한 안압지는 <동궁과 월지>로 이름을 바꾸어 야간 관광지로 재탄생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xNXBl_3mY

 

 

통일신라의 3대 문장가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제6.  강수(强首), 최치원(崔致遠), 설총( 薛聰)

이 세 사람은 모두 문장을 잘 짓기로 소문나 신라의 3대 문장가라 일컬어졌다.

신라 3문장(三文章 : 強首-강수·薛聰·崔致遠-최치원) 중 한 사람이자 신라 10현의 한 사람으로 꼽히며, 벼슬은 한림(翰林)에 이르렀다. 

 

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B%B0%A9_18%ED%98%84

 

동방 18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동방 18현(東方 十八賢)은 신라·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의 최고 정신적 지주에 올라 문묘에 종사(從祀)된 18명의 한국의 유학자들을 말한다. 동국 18현(

ko.wikipedia.org

선정 인물

  • 동배향 제1위 : 홍유후(弘儒侯) 설총
  • 동배향 제2위 : 문성공(文成公) 안유
  • 동배향 제3위 : 문경공(文敬公) 김굉필
  • 동배향 제4위 : 문정공(文正公) 조광조
  • 동배향 제5위 : 문순공(文純公) 이황
  • 동배향 제6위 : 문성공(文成公) 이이
  • 동배향 제7위 : 문원공(文元公) 김장생
  • 동배향 제8위 : 문경공(文敬公) 김집
  • 동배향 제9위 : 문정공(文正公) 송준길

  • 서배향 제1위 : 문창후(文昌侯) 최치원
  • 서배향 제2위 : 문충공(文忠公) 정몽주
  • 서배향 제3위 : 문헌공(文憲公) 정여창
  • 서배향 제4위 : 문원공(文元公) 이언적
  • 서배향 제5위 : 문정공(文正公) 김인후
  • 서배향 제6위 : 문간공(文簡公) 성혼
  • 서배향 제7위 : 문열공(文烈公) 조헌
  • 서배향 제8위 : 문정공(文正公) 송시열
  • 서배향 제9위 : 문순공(文純公) 박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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