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七賢山 七長寺
*한문 읽기는 右에서 左로. 칠장사 일주문
https://www.youtube.com/watch?v=7TaUiwf-y28&t=694s
https://kydong77.tistory.com/20952
불설비유경, 岸樹井藤(안수정등)/ 노자 도덕경 7장, 天長地久
*안수정등(岸樹井藤) ; 맹수에 쫓겨 낭떠러지의 등나무에 매달리니 위에는 흰 쥐와 검은 쥐가 등나무 줄기를 갉아 먹고 아래 우물 속에는 굶주린 네 마리의 독사들이 먹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
kydong77.tistory.com
*안수정등(岸樹井藤) ;
맹수에 쫓겨 낭떠러지의 등나무에 매달리니
위에는 흰 쥐와 검은 쥐가 등나무 줄기를 갉아 먹고
아래 우물 속에는 굶주린 네 마리의 독사들이 먹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네.
https://www.youtube.com/watch?v=Xk2vP2y7_88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952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우물 속 네 마리 독사는 四大로 인간의 육신을 이루는 地水火風을 상징한다. 이 대(大)는 mahat ; mahān의 번역된 말로, 자성(自性)에서 처음으로 생긴 까닭. 또 대(大)는 대종(大種, mahābhūta)의 준말. 또는 원소(元素, mahābhūta)의 준말, 또는 원소(元素, bhūta)의 일명으로 쓴다. 이 경우는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의 원소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5대(大)라 한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524
칠현산 칠장사(七賢山 七長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고려 초기에 혜소국사(慧炤國師)가 현재의 비각(碑閣) 자리인 백련암(白蓮庵)에서 수도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7인 모두가 도를 깨달아 칠현(七賢)이 되었으므로 산이름을 칠현산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1014년(현종 5)에 중창한 후 1308년(충렬왕 34)에 대규모로 중수하였다. 1506년(중종 1년)에 흥정대사가 중창하고 1623년(인조 1)에 인목대비가 중창하였다. 1674년(현종 15)에 어느 세도가의 방화로 불타자 사역을 북쪽으로 옮겨 중수하였으나 1694년(숙종 20)에 또 다른 방화로 불탔으며 1704년(숙종 30)에 옛 절터로 돌아와 대규모로 중수하였다.
이후 영조와 정조 연간에 원통전・미타전・명부전・천왕문 등을 건립하고 대웅전을 보수하였다. 1828년(순조 28)에 대웅전을 이건하고 1857년(철종 27)에 대웅전・원통전・시왕전・향로전 등에 기와를 수리하였는데 1887년(고종 24) 대화재로 불탄 후 다시 중창불사를 수행하여 1937년 대화주(大化主) 공덕비를 건립하였다. 1982년에 대웅전을 해체보수하고 2006년에 혜소국사비각을 해체보수하고 2008년에 단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TizqvC5X9o&list=RDE0hyV5EksFQ&index=2
일체를 초월하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가장 핵심되는 부처님의 말씀.
觀관自자在재菩薩보살 行행深심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時시 照조見견 五蘊오온皆개空공 度도一切일체苦고厄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7]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8]
舍利사리子자 色색不불異이空공 空공不불異이色색 色색卽즉是시空공 空공卽즉是시色색 受수想상行행識식 亦역復부如여是시
사리자여! 색[9]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10],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생각·행동·의식[11]도 그러하니라.
舍利사리子자 是시諸제法법空공相상 不불生생不불滅멸 不불垢구不부淨정 不부增증不불減감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형태는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是시故고 空공中중無무色색 無무受수想상行행識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생각·행동·의식도 없으며,
無무眼안耳이鼻비舌설身신意의 無무色색聲성香향味미觸촉法법 無무眼안界계 乃내至지無무意의識식界계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12]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13]도, 법[14]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15]
無무無무明명 亦역無무無무明명盡진 乃내至지 無무老노死사 亦역無무老노死사盡진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16]
無무苦고集집滅멸道도 無무智지亦역無무得득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以이無무所소得득故고 菩提薩埵보리살타 依의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故고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心심無무罣가礙애 無무罣가礙애故고 無무有유恐공怖포 遠원離리顚전倒도夢몽想상 究구竟경涅槃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17]
三삼世세諸제佛불 依의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故고得득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느니라.
故고知지 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 是시大대神신呪주 是시大대明명呪주 是시無무上상呪주 是시無무等등等등呪주 能능除제一切일체苦고 眞진實실不불虛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故고說설 般若반야波羅蜜多바라밀다呪주 卽즉說설呪주曰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揭諦아제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揭諦바라승아제 菩提모지 娑婆訶사바하
가자Gate 가자Gate 넘어서 가자Pāragate 완전히 넘어가Pārasaṃgate 영원한 깨달음으로Bodhi Svāhā[18][19][20]
揭諦아제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揭諦바라승아제 菩提모지 娑婆訶사바하
가자Gate 가자Gate 넘어서 가자Pāragate 완전히 넘어가Pārasaṃgate 영원한 깨달음으로Bodhi Svāhā
揭諦아제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揭諦바라승아제 菩提모지 娑婆訶사바하
가자Gate 가자Gate 넘어서 가자Pāragate 완전히 넘어가Pārasaṃgate 영원한 깨달음으로




https://buddhistculture.co.kr/25/?bmode=view&idx=21279966
안성 칠장사와 어사 박문수 | 사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다 : 월간불교문화
안성 칠장사어사 박문수와 나한전그림 | 한생곤암행어사 박문수, 불교와의 인연설화 속 인물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또한 현재 인물과 같으며, 설화는 다름 아닌 인간 이야기이다. 과거의 그때나
buddhistculture.co.kr
http://www.joongang.tv/news/articleView.html?idxno=55045
[드본세] 궁예와 임꺽정, 어사 박문수의 설화가 있는 천년고찰 ‘칠장사’ - 중앙신문
안성시 죽산면에 위치한 ‘칠장사’는 칠현산에 안겨있는 듯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다. 철 따라 바뀌는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숲 속 풍경은 칠장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18일
www.joongang.tv
‘칠장사’에는 궁예와 임꺽정, 어사 박문수 등 여러 구전이 내려오는데 궁예는 이곳에서 열 살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가 남아있고, 명부전 뒤 벽화 엔 궁예의 활쏘기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 조선 중기 황해도 함경도 등지에서 활동하던 도둑 임꺽정은 천민인 백정 출신으로,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줘 의적이라 불렸다. 칠장사에 기거하던 갖바치(가죽 신 만드는 사람)를 찾아온 임꺽정에게 절의 승려가 말 타는 법을 가르치고 자신의 말을 내주었다고 한다. 임꺽정은 이 말의 이름을 '칠장마'라고 불렀다는 설화가 있다.
임꺽정은 스승인 병해스님(갖바치)을 만나 이봉학 등과 의형제를 맺은 곳이기도 하다. 갖바치는 이곳에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가죽 신 깁는 법을 가르쳐 가죽신이 안성유기와 함께 안성 특산물이 됐다고 전해진다. 임꺽정이 난을 일으켰을 때 관군들을 피해 머물던 곳이며, 드라마 임꺽정은 이곳 칠장사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옛날 박문수라는 선비가 한양의 과거를 보러 가다가 출장사 나한전에서 묵게 됐다. 나한전에서 합격 기원 기도를 하고 잠에 들었는데 꿈에 나한님이 나타나서 시험 문제를 알려줘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했다고 한다. 나한전 앞에는 어사 박문수가 건넜다는 합격의 다리가 있다.
조선 영조 9년(1773년)에 간행한 칠장사 사적비(事蹟碑)에 따르면, 고려시대 혜소국사에 의해 중수된 기록이 있으나 초창된 시기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문헌 등을 통해 볼 때 10세기경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국보 제296호 오불회 괘불탱을 비롯해 혜소국사비, 철당간 등 지정문화재가 많다.
칠장사(七長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말사는 본사(本寺)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을 뜻한다.
출처 : 중앙신문(http://www.joongang.tv)



https://namu.wiki/w/%EC%95%84%EB%9D%BC%ED%95%9C
아라한
阿 羅 漢 Arhat(산스크리트어, 로마자표기), arahant(팔리어). 한자문화권에서는 한자로 음차하여 아라한(
namu.wiki
Arhat(산스크리트어, 로마자표기), arahant(팔리어).
한자문화권에서는 한자로 음차하여 아라한(阿羅漢), 흔히 줄여서 나한(羅漢)이라고 부른다.
팔리어로 '공경받을 자'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깨달음을 얻어 능히 다른 사람들에게 공경받을 만하다는 의미로, 이를 한자로 번역하여 응공(應供)이라고도 하였다. 불교에서는 수행 끝에 번뇌가 소멸되어 더이상 윤회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킨다.[1] 원래는 부처를 가리키는 10가지 칭호 중 하나였으나 점차 뜻이 달라졌다.
본래, 불교가 형성되기 전의 힌두교 전승에서 깨달음을 얻어 성품이 완벽한 사람을 뜻했다고 한다. 본디 부처도 넓은 의미에서 아라한이지만, 불교가 포교되는 과정에서 차츰 아라한이 붓다의 경지보다 낮은 의미로 전(傳)한 듯하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가르침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자 경(經)과 율(律)[2]을 모으려고 마하가섭이 석가모니의 제자들 중 아라한이 된 이들을 소집했다. 왕사성 인근 칠엽굴(七葉窟)에 그렇게 모인 이들이 약 500명이었다고 한다.[3]
불교(초기불교) 성립 당시에는 수행자들의 최종목표였고 상좌부 불교에서는 여전히 그러하다. 상좌부 불교의 해석에 따르면, 아라한은 석가모니 부처가 설한 가르침을 따라 깨달았으므로 더 이상 번뇌로 시달리지 않고 윤회하지 않으며 그 깨달음은 부처와 다를 바 없으나, 그때까지 쌓은 공덕의 깊이가 달라 깨달음을 얻은 뒤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힘이 부처만 못하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세월이 흐르며 불교는 인도의 각지에서 서로 다른 부파로 갈라졌고 그 가르침은 어려워졌다. 서력기원 무렵, 기본 불교 부파들을 중생구제보다 자기 자신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여 대승 불교가 시작되었다. 대승 불교도 처음에는 기존 부파불교의 사원에서 같이 머물고 포살하는 등 어느 정도는 혼합된 양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부파불교와 다른 또다른 불교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현재의 상좌부 불교는 인도 남쪽에 있던 분별설부의 후예이다.)
대승 불교에서는 이전의 부파불교 또는 현 상좌부 불교와는 달리 아라한은 단지 더이상 번뇌하지 않고 윤회하지 않을 만큼만 깨달았을 뿐, 부처만큼 깨닫지는 못했다고 하여 깨달음의 경지 자체가 다르다고 가르친다. 그뿐 아니라 만약 아라한이 되면 해탈하여 더이상 윤회할 수 없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는 이유로 아라한이 됨을 피하려는 경향도 있다.
본래 부파불교에서는 아라한의 경지에 다다르면 성욕이 소멸해서 몽정을 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기록에 따르면, 석가모니 사후 200여 년이 지나 마하데와(Mahadeva, 大天)라는 비구가 아라한을 두고 5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아라한이 되었다는 승려가 여전히 몽정을 하거나 괴롭다면서 탄식을 하는 등, '번뇌가 완전히 끊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보인다는 것이다. 마하데와가 5가지 의문을 제기한 사건을 한자로 대천오사(大天五事)라고 부른다. 붓다와 동등한 경지와 위상으로 대우받던 아라한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아라한의 권위에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인 대중부가 주축이 된 대승 불교 운동이 태동했다는 것이다.
반면 상좌부 불교 측에서 펴낸 논서 아비담마에서는 여전히 '아라한은 몽정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4] 마하데와가 당시 아라한을 사칭하던 일부 비구들의 실상을 폭로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인물이었다는 학설도 있으나, 어찌 되었든 이 대천오사 사건은 당시 상당한 논쟁거리가 되어 3차 결집을 하는 한 가지 원인이 되었다. 또한 부파불교 중 설일체유부에서는 아라한을 여섯 단계로 세분화하여, 그 중 처음 단계에 속한 아라한은 퇴법(parihana-dharman) 아라한이라고 불렀다. 설일체유부 교학에 따르면, 퇴법 아라한에게는 과거의 번뇌가 현재의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어 아라한 이전의 경지로 퇴보할 가능성이 있다.[5] 이렇듯 인도 북방불교와 그 교학적 성과를 이어받은 대승불교는 남방 상좌부 불교와 비교하면 아라한을 많이 낮춰 본다.
대승불교에서는 부파불교와 비교하여 자신들이야말로 '더 크고 우월한 가르침'이란 뜻에서 대승(大乘)이라, 기본 부파불교를 '열등한 가르침'이란 뜻에서 소승(小乘)이라 칭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전 부파불교에서는 말하지 않은, 경지를 성취한 상태에서 어려운 중생을 구하고자 진력하는 보살이란 존재 또한 끌어들였다.[6] 다만, 독화살의 비유처럼 '내가 먼저 깨닫기도 전에 남을 도우려는 행위'가 수행에 장애가 되므로 이는 잘못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편 대승불교에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 해서 깨달음과 중생구제를 함께 할 것을 강조하는데, 스님에 따라서는 이 한문 구절을 선후관계로 해석해서 '깨달음이 선행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7] 또한, 수행의 가장 기본 근저에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토대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마음을 품기는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다.
불경에선 수행자가 평상시에 어떤 수행을 했느냐에 따라 아라한과를 얻으며 6가지 신통력을 성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상좌부 교학에서는 재가자가 아라한이 되었다면 그 자리에서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출가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바로 반열반에 든다고 본다. 반면 대승 전통에서는 아라한의 경지를 능가하는 재가자도 있다고 여기며, 이러한 사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승 경전으로 유마경이 있다.
한국에는 "나한에도 모래 먹는 나한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라한인데도 신도들에게 공양을 받지 못해서 모래를 먹는다는 말인데, 높은 사람 중에도 고생하는 이가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아라한의 여러 이명 중에 '응공(應供: 공양받을 만큼 존경스러운 자)'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역설적인 속담인 셈이다. 니까야에는 전생의 업으로 인해 아라한과를 얻고도 보시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경멸당하는 아지나(Ajina) 존자와 시라마트(Siramat) 존자의 이야기가 있다. 로사까 띳사(Losaka Tissa)라는 아라한은 전생의 악업으로 인해 공양물을 대신 올리던 하인까지 음식을 다 먹어 버려서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사리불이 얻어온 공양물로 겨우 배를 채웠다.
1.1. 십육나한
아미타경에는 석존의 학식과 품행이 뛰어난 제자(高足弟子)들 또는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에는 부처의 명에 따라 영원히 사바세계에 왕래하며 정법을 지키는 성인들로 서술하는 존재들이다.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십대제자도 포함한다. 때로는 여기에 두 제자[8]를 더해 십팔나한(十八羅漢)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체로 알려진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
빈도라발라타자(賓度羅跋蘿惰闍, Piṇḍola Bhāradvāj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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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가벌차(迦諾迦伐蹉, Kanakavatsa)
-
가락가발리타자(迦諾迦跋釐惰闍, Kanaka Bhāradvāja/Kanaka)
-
소빈다(蘇頻陀, Subinda/Abhedya)
-
낙구라(諾矩羅, Nakula/Bakula)
-
발타라(跋陀羅, Śrībhadra/Bha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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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가(迦理迦, Mahākālika/Kāl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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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자라불다라(伐闍羅弗多羅, Vajripu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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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가(戍博迦, Gopaka/Jīv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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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탁가(半託迦, Panth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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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호라(羅怙羅, Rāhula)
-
나가서나(那伽犀那, Nāgasena)[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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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게타(因揭陀, Aṅga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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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나바사(伐那婆斯, Vanavāsin)
-
아씨다(阿氏多, Aj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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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다반탁가(注茶半託迦, Cūḍapanthaka/Kṣudrapanthaka)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8277
명부전(冥府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유명계주1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있으므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주3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이 밖에도 판관(判官) 2구, 녹사(錄事) 2구, 문 입구에 장군(將軍) 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尊像)을 갖추게 된다.
이들 중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왕 가운데 다섯번째 왕이다.
원래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 · 소상(小祥) · 대상(大祥)까지 열 번에 걸쳐 각 왕에게 살아 있을 때 지은 선악의 업을 심판받게 된다고 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위하여 절에서 재(齋)를 모시게 된다.




한국사찰의 종각에는 위 4구를 사용한다.
*한문은 右에서 左 반향으로 읽음.
- 원차종성변법계(願此鐘聲遍法界): 원컨대 이 종소리가 온 법계에 두루 퍼져나가기를.
- 철위유암실개명(鐵圍幽暗悉皆明): 철위산의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이 모두 밝아지기를.
- 삼도이고파도산(三途離苦破刀山):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과 도산(칼산)의 고통을 모두 벗어나기를.
- 일체중생성정각(一切衆生成正覺): 일체 중생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기를.

https://www.youtube.com/shorts/T28yBvjvzP0









https://www.youtube.com/watch?v=2J_KHmn5v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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