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萬壽節, 칠순 잔치) 축하 사절로 베이징에 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견문기이다. 박지원은 자신의 삼종형(8촌 형)이자 사절단의 수장인 금성위 박명원의 자제 군관 자격으로 일행에 합류할 수 있었고 러허강(열하강)까지 다녀온 감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열하일기는 베이징에 다녀온 지 3년이 지난 1783년 집필 되었는데 채 완성도 되기 전에 큰 화제를 불러 여러 문인들이 서로 필사하여 돌려 보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필사 되어 현재 전하는 판본은 모두 9 종이나 된다.
박지원은 여행 도중 만난 청나라 사람들의 대화를 되도록 중국어에 가깝게 기록하였다. 박지원이 살던 시기인 18세기 조선에서 사용하던 한문은 중국에서 오래 전부터 더 이상 사용하지 않던 문어체이다. 한편 박지원이 기록한 청나라 사람들의 구어체는 현대 중국어와 매우 유사하다.
지은이가 알려지지 않은 〈열하일기서〉는 후대에 열하일기를 본 사람이 적은 감상문으로 다른 판본에는 전하지 않고 연암산장본에만 수록되어 있다. 이것도 열하일기와 함께 전하는 옛 문헌이므로 함께 번역하였다. 열하일기에는 미완성으로 남아 더 손을 보아야 한다는 6가지 보유(補遺)가 있는데 이 가운데 〈금료소초〉가 연암집에 실려 있고 나머지 〈천애결린집〉, 〈양매시화〉, 〈열하궁전기〉, 〈열하태학기〉, 〈단루필담〉등은 전하지 않는다. 실전된 것은 목차에서 제외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ZHa0r_fAa1c
https://www.youtube.com/watch?v=NEixAZGfw04
https://www.youtube.com/watch?v=HLJ3y9x_sw8
목차
- 열하일기서
- 도강록
- 성경잡지
- 일신수필
- 관내정사
- 막북행정록
- 태학유관록
- 환연도중록
- 경개록
- 심세편
- 망양록
- 혹정필담
- 찰십륜포
- 반선시말
- 황교문답
- 피서록
- 동란섭필
- 옥갑야화
- 행재잡록
- 금료소초
- 환희기
- 산장잡기
- 구외이문
- 황도기략
- 알성퇴술
- 앙엽기
https://www.storyof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87
심재철 교수의 세계 여행기 ㉝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와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 스토리오
세계 최초의 기자는 누구일까. 언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페이디피데스를 꼽는다.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와의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아테네 시민에게 전달하고 숨을 거뒀다. 올림픽 마라톤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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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article/201811052126005
황제의 피서산장 호출…연암은 하룻밤에 9개의 강을 건넜을까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의 열하일기 답사팀이 지난달 24~28일 연암 박지원과 함께 걸었다. 지난 6월 1차(압록강~심양~산해관~통주)에 이은 두 번째 연행길 답사였다. 2차 답사는 북경의 초입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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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출고북구기’의 현장 고북구는 관광 명소다. 고북구는 산해관, 거용관과 함께 북경에서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만리장성 3대 관문 가운데 하나이다. 명대 이전에는 북방유목민족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지만, 청나라 강희제 이후에는 피서산장으로 통하는 행차길로 사용됐다. 지금은 황제가 다녔다는 고어도(古御道)와 크고 작은 사원들을 복원해 관광객을 부른다. 답사팀은 고어도와 고북구 장성길을 걸었다. 연암은 “짐승 같은 산과 귀신 같은 산봉우리들이 창과 방패를 벌여놓은 듯하다”고 고북구의 험난함을 묘사했지만, 답사팀이 걸은 고북구는 단풍이 물든 평온한 산촌이었다. 내친김에 고북구를 끼고 있는 반룡장성에 올랐다. 구불구불 용이 서려있다는 반룡장성은 장관이었다. 잘 다듬어진 팔달령장성과 달리 폐허의 장성에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북경에서 보기 어려운 파란 하늘은 답사팀을 더욱 설레게 했다.
황제의 여름별장 있는 열하에서 연암은 승려·사신·학자들 만나며 동아시아를 조망
그 배경인 문묘·태학관,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호텔로도 임대…당시의 풍취 사라져

열하는 황제의 여름별장 피서산장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연암에게 피서산장의 풍광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열하의 건륭제 생일잔치에 참여한 승려, 사신, 학자들을 주목하며 동아시아 세계를 조망했다. 열하는 세계의 형세를 살피는 심세(審勢)의 현장이었다. 그는 생각의 일단을 <열하일기> ‘심세편’에 담았다. 답사팀 역시 연암의 시각을 주목했다. 연암이 열하 체류 동안 숙소로 이용했던 태학관을 먼저 찾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태학관은 공자 문묘에 부속된 성균관을 말한다. 유생들의 학교이자 기숙사이니 연암의 숙소로는 안성맞춤이다. 그는 이곳에서 중국 학자들을 만나 인생과 자연과 철학을 논했다. 중국 3대 문묘의 하나인 열하 문묘는 문화대혁명 때 소실됐다가 2010년에 복원됐다.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문묘는 썰렁했다. 새로 세운 콘크리트 시설에서 연암의 체취를 맡기는 어려웠다. 성균관으로 복원된 태학관은 호텔로 임대해 줄 정도로 관리가 엉망이었다. 연암이 달빛 아래 담배 물고 거닐었던 풍취는 어디에도 없다. 중국 문화의 현주소다.

승덕 피서산장 앞 시민공원에 세워진 박지원기념비. 박지원의 성을 ‘樸’으로 잘못 적었다(위 사진). 열하일기 답사 참가자들이 지난달 26일 고북구 만리장성으로 통하는 옛 황제의 행차길인 고어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후마니타스연구소 제공
통일교 정치 개입 의혹
https://www.youtube.com/watch?v=ckl9ip-B7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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