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l0F27hrddY

 

https://www.youtube.com/watch?v=jGj-9gJsHvA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547

 

삼각산 화계사(三角山 華溪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화계사는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있는 조선 전기 승려 신월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광종 때 법인대사 탄문이 지금의 화계사 근처인 삼각산 부허동에 보덕암을 창건하였다. 1522년 신월이 서평군 이공과 협의하여 지금의 화계사 자리로 옮기고 법당과 요사채를 지어 화계사라고 고쳐 불렀다. 1880년에는 조대비가 명부전의 불량답(佛糧畓)을 시주했다. 이 무렵 화계사에는 대비와 상궁들의 왕래가 잦아 사람들이 ‘궁(宮)절’이라고 불렀다. 화계사는 숭산(崇山: 1927∼2004)이 1984년 개원한 국제선원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 포교로 유명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BWz9sYEbZio

 

 

https://www.youtube.com/watch?v=GLgHNP-7XPA

 

 

 

산을 보며

ㅡ이해인(수녀, 시인)

늘 그렇게
고요하고 든든한
푸른 힘으로 나를 지켜주십시오

기쁠 때나 슬플 때
나의 삶이 메마르고
참을성이 부족할 때
오해 받은 일이 억울하여
누구를 용서할 수 없을 때

나는 창을 열고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름만 불러도 희망이 되고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산
그 푸른 침묵 속에
기도로 열리는 오늘입니다.

다시 사랑할 힘을 주십시오.

 

반야심경 주문(呪文)은 산스크리트어(영어의 뿌리)

산스크리트어> 한자 음역> 한글 독음, 따라서 한자나 한국어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음.

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 가, 깨달음에 뿌리를 내려 주소서.)


*위 주문(呪文)의 산스크리트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토말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와하 <=== 억양을 부드럽게 했을 때

 

(산스크리트어 한역)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한자음 한국어 음역)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한국말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영   어 :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해   석 : 
Gate Gate          가라. 가라. 
paragate            피안으로 건너가라.
parasamgate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bodhi svaha      깨달음에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 bodhi > 보리(菩提) - 불타 정각(正覺)의 지혜. 

* svaha - 기독교의 기도 끝에 붙이는 아멘과 같은 주문

가라. 가라. 
피안으로 건너가라. 
피안으로 완전히 건너가라. 
깨달음에 뿌리를 내리게 하소서.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2591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www.youtube.com/watch?v=-fTbS3HfDSI

 

https://ko.wikipedia.org/wiki/%ED%9D%A5%EC%84%A0%EB%8C%80%EC%9B%90%EA%B5%B0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1년 1월 24일(1820년 음력 12월 21일)[1] ~ 1898년 2월 22일(음력 2월 2일)은 조선 후기의 왕족이자 정치가, 대한제국의 추존왕이다.

본명은 이하응(李昰應)이다. 부인은 여흥부대부인 민씨이다. 남연군(원래는 인평대군의 6대손이나 후에 양자 입적)과 군부인 민씨의 넷째 아들이며,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부친이다. 영향력이 있었던 풍양 조씨 세도 집안과 양주 조씨 고급 관료 집안, 신 안동 김씨 세도 집안에게 각기 서예(붓글씨)를 써서 바치고 서화(그림) 등을 그려다가 바쳐 보신책을 강구한 그는 1864년 1월 21일 어린 고종 대신하여 국정을 이끌었으며, 안으로는 유교의 위민정치를 내세워 전제왕권의 재확립을 위한 정책을 과단성 있게 추진하였고[2] :343, 밖으로는 개항을 요구하는 서구 열강의 침략적 자세에 대하여 척왜강경정책으로 대응하였다.[2] :343

또한 서원을 철폐하고 정리해 양반·기득권 토호들의 민폐와 노론의 일당 독재를 타도하고 남인 북인을 채용하였으며, 동학 천주교를 탄압, 박해하였다. 1864년 1월부터 1873년 11월까지 조선의 국정을 이끌었다. 직접 며느리 명성 황후를 간택하였으나[3], 도리어 명성황후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었다. 1873년 11월 명성황후와 유학자 및 (신)안동 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등에 의해 축출된 이후 명성 황후와 권력투쟁을 벌였다. 일본인과 결탁하여 며느리 명성황후의 암살을 기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길준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은 차라리 명성황후를 제거해 달라고 일본 공사관에 수시로 부탁했다고 한다.[4][5]

명성황후와 민씨 일족 및 고종을 폐출하고 완흥군, 이재선 등을 조선 군주로 옹립하려는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손자 영선군 이준용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여러 번 정변을 기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을미사변을 주도한 조선인 주요 협력자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통상 수교 거부 정책 천주교도 대량 학살, 무리한 경복궁 중건, 일본에 명성황후의 제거를 청탁한 점 등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성 출신으로 는 시백(時伯), 는 석파(石坡)·해동거사(海東居士)이며, 본관 전주(全州)이다. 1907년 10월 1일 대원왕(大院王)으로 추봉되었고 헌의(獻懿)를 시호로 받아 흥선헌의대원왕(興宣獻懿大院王)이 되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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