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한 사람에게서 모든 덕을 구하지 말라 "는 공자의 명언을 만난다.

 

君子는 求諸己요 小人은 求諸人이니라

군자      구저기      소인       구저인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애개서 구한다.

 

子曰: 君子, 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자왈: 군자, 병무능언, 불병인지부기지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능력이 없음을 근심하지,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은 근심하지 않는다.'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00125/25670535/2

 

[한자 이야기]君子는 求諸己요 小人은 求諸人이니라

군자는 잘잘못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만 소인은 그 반대다.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은 자율적 인간의 존재방식을 간명하게 제시했다. 楊時(양시)는 이 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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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잘잘못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만 소인은 그 반대다.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은 자율적 인간의 존재방식을 간명하게 제시했다. 楊時(양시)는 이 章을 앞 장의 ‘君子는 病無能焉이요 不病人之不己知也니라’에 연결시켰다. 즉, 군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병으로 여기지 않지만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음을 싫어하며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음을 싫어하지만 원인을 찾는 것은 자기 몸에 돌이켜 할 뿐이라고 했다.

諸(저)는 之와 於를 합한 글자다. 求諸己는 모든 일을 자기 책임으로 삼는 것, 求諸人은 나쁜 일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단, 정약용은 求諸己를 ‘仁의 단초를 자기에게서 찾음’으로 보고 이 章을 ‘顔淵(안연)’의 克己復禮章(극기복례장)에 연결시켰다. 공자는 克己復禮가 仁이라 말하고는 ‘爲仁(위인)이 由己(유기)니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아’라고 했다. 그 ‘인을 행함이 자기로부터 말미암는 것이지, 남으로부터 말미암겠는가’의 뜻이 求諸己와 같다고 본 것이다. 일설로서 갖추어 둘 만하다.

‘중용’은 선비들이 활쏘기에서 正鵠(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 일이 군자답다고 했다. 군자의 求諸己를 활쏘기에 비유한 것이다. ‘맹자’는 남을 사랑하는 데도 그가 나와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仁을 돌이켜 보고, 남을 다스리는 데도 그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智를 돌이켜 보며, 남을 禮로 대하는 데도 그가 예로 답하지 않으면 자신의 敬을 돌이켜 보라고 했다. 곧 ‘反求諸己’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反求諸己는 병적인 自責(자책)이 아니다. 최한기는 反求諸己하는 데에도 過不及의 병폐가 있으니 주의하라고 지적했다. 求諸己한다면서 증험할 수 없는 일에 심력을 쏟아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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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쓰기] 논어(論語) 15 위령공편(衛靈公篇) 1 ~ 4장

논어(論語) 필사(筆寫) / 해석(解釋)     <해서는 북위해서, 초서는 손과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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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衛靈公篇(위령공편) 1 ~ 4章
凡四十一章이라.
모두 41장이다.
★ 위령공편은 대부분 글이 단문(短文)이라 해석이 어렵다.
[一章]
衛靈公 問陳(陣)於孔子한대 孔子對曰 俎豆之事는 則嘗聞之矣어니와 軍旅之事는 未之學也라하고 明日 遂行하시다。
위령공 문진(진)어공자한대 공자대왈 조두지사는 즉상문지의어니와 군려지사는 미지학야라하고 명일 수행하시다。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가 대답하시기를 “조두(예법)에 관한 일은 일찍이 알고 있습니다 만은 군려에 대한 일은 아직 그것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고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 ​
<옛 논어에는 별장(別章)으로 되어있다.>
在陳絶糧하니 從者病하여 莫能興이러니
재진절량하니 종자병하여 막능흥이러니 
진나라에 계실때 양식이 떨어지니 시종(侍從) 제자들이 병이 들어서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子路 愠見曰 君子도 亦有窮乎잇가 子曰 君子 固窮이어니와 小人은 窮斯濫矣니라。
자로 온현왈 군자도 역유궁호잇가 자왈 군자 고궁이어니와 소인은 궁사람의니라。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품고 뵙고서 말하기를 “군자도 곤궁(困窮)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곤궁할 때가 있지만〔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소인은 곤궁하면 바로 법을 벗어나는 짓을 한다.”
 주자가 분장(分章) 하지 않은 옛 논어는 “明日 遂行”에서 한 장이 끝나는데 주자는 “明日遂行”다음에 “在陳絶糧”을 연결했다. 심지어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라고 하니 갑자기 떠났기 때문에 진(陳) 나라에 이르러서 양식이 끊어졌다.라는 논리를 펼치는데 위나라에서 떠난 것과 진나라에서 양식이 끊어진 것은 7년의 상거(相距)가 있다. 이때 위나라를 떠나서 조나라로 갔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송나라로 갔고, 송나라에서는 광인(匡人)의 난리를 만나서 다시 진나라로 갔는데, 광땅 사람들의 포위를 뚫고 나오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진나라에 와서는 양식이 다 떨어진 것이다.
  1. 固窮 : 주자는「본래 곤궁할 때가 있지만」으로, 정자는「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로 해석했다. 똑같은 固窮을 주자가 맹자에서는 “固守其窮(자신의 곤궁함을 굳게 지킨다)”으로 해석한다.
  • 陳은 謂軍師行伍之列이라 : 진은 군사항오(군에서 진치는 열)의 열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2,500명이 軍이고, 2,500명이 師이고 25명이 항(行)이고, 5명이 伍이다.
  • 俎豆는 禮器라 :조두는 조두는 제례(祭禮)에 쓰이는 기물(器物)이다.  俎는 도마인데 주로 적이나 떡을 올리고, 豆는 나무로 된 제기인데 물기가 있는 제물을 담고, 변(籩)은 대나무로 만든 것인데 마른 제수를 올린다.
尹氏曰 衛靈公 無道之君也어늘 復有志於戰伐之事라 故 答以未學而去之니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위나라 영공은 무도한 임금인데 다시 전벌(戰伐) 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그러므로 아직 배우지 않았다는 것으로 대답해 주시고서 떠난 것이다.
 
  • 孔子去衛適陳이라 :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이 사이에 조나라와 송나라로 갔다가 진나라로 갔는데 주자는 바로 갔다고 보고 해석한 것이다.
  • 興은 起也라 :흥은 일어나는 것이다.
 
何氏曰 濫은 溢也라 言君子固有窮時하니 不若小人窮則放溢爲非라.
하 씨(何晏)가 말하기를​ 람은 넘치는 것이니 군자는 본래 곤궁할 때가 있으니 소인이 곤궁하면 법의 테두리를 흘러넘쳐서 비행(非行)을 행하는 것과 같지 않다.
程子曰 固窮者는 固守其窮이라하니 亦通이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고궁이라는 것은 자신의 곤궁(困窮) 함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통한다.
【章下註】
愚謂 聖人은 當行而行하여 無所顧慮하고 處困而亨하여 無所怨悔를 於此 可見이니 學者宜深味之니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성인은 떠날 때를 당하면 떠나서 뒤돌아보거나 생각하는 바가 없고, 곤궁(困窮) 함에 처해서도 형통(亨通: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잊지 않음) 하게 해서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것이 없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수 있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깊이 음미(吟味) 해야 될 것이다.

 

[二章]
子曰 賜也아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아。
자왈 사야아 여이여위다학이지지자여아。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너는 나를 많이 배우 고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느냐?”
 
對曰 然하이다 非與잇가。
대왈 연하이다 비여잇가。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曰 非也라 予 一以貫之니라。
왈 비야라 여 일이관지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내가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서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1.  : 자공(子貢)의 이름이다. 貢이라는 것은 세법(稅法)이므로 국가에 바치는 것이고, 국가는 그 세금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려 줘야 한다. 그래서 바치고(貢) 내려주다(賜)라고 해서 자(字)와 이름으로 된 것이다.
  2.  : 汝(너 여)이다.
  3. 以予 :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법이 “以~爲(~으로 여기다)”인데 다른 여러 가지로 변형해서 표현하게 되는데 기본적인 것이 많다.
  4.  : 기억하다의 뜻이다.
  5. 一以貫之 : 一理以貫之(모든 것이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 관통되어 있는 것)이다.
子夏之學 多而能識矣 夫子欲其知所本也 故 問以發之니라.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것이니 공자께서 그(자공)로 하여금 근본이 되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해서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다.
  1. 子貢之學 :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데에 그치므로「博學無約禮 : 박학은 하였는데 약례(約禮: 배운 것을 요약하고 내 몸을 단속함)가 없는 것」이다.
方信而忽疑하니 蓋其積學功至而亦將有得也.
처음에는 믿었다가 문득 의심이 들었으니 아마도 자공은 학문을 축적한 공부가 지극해서 자공도 역시 도를 터득(攄得)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1.  : 처음이다. 지금이다. 바야흐로. 일 때 다 쓴다.  方今(방금) 

說見第四篇이라 然 彼以行言하고 而此以知言也라. 

<一以貫之에 대한> 설명은 제4편 <里仁>에 보인다. 그러나 저기(4편에서 증자에게 말해준 것)에서는 실천을 가지고 말해준 것이고, 여기에서는 지식(知識)을 가지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章下註】
謝氏曰 聖人之道 大矣라 人不能遍觀而盡識하니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라 然 聖人이 豈務博者哉리오 如天之於衆形에 匪物物刻而雕之也라 故 曰 予一以貫之라하니 德輶如毛나 毛猶有倫하니 上天之載 無聲無臭라야 至矣니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성인의 도는 크다. 일반 사람들은 두루 살펴보고서 모두 알 수 없으니 그가(자공)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인이 어찌 박학(博學)을 힘쓰신 분이겠는가? 마치 천지(天地)가 중형(온갖 만물의 형상)에 대하여 그 물건마다 새기고 다듬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고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同類가 있어> 비교할 것이 있고,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자연스러워야 지극(至極) 한 것이 되는 것이다.
尹氏曰 孔子之於曾子엔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로되 曾子復深喩之曰唯라하고 若子貢則先發其疑而後 告之로되 而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하니 二子所學之淺深을 於此 可見이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공자가 증자에게는 증자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고도 곧바로 이것(一以貫之)을 가지고 말씀해 주셨는데 증자는 다시 깊이 깨우치고 서 유(예)라고 말하였고, 자공과 같은 경우에는 먼저 자공의 의문을 유발(誘發) 시킨 이후에 말씀해 주셨는데도 자공은 끝내 증자와 같이 유(예)라고 대답하지 못하였으니 두 사람(증자와 자공)이 학문을 한 깊이를 여기에서 알 수 있다.
愚按 夫子之於子貢에 屢有以發之나 而他人 不與焉하니 則顔曾以下諸子所學之淺深도 又可見矣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공자가 자공에 대하여 자주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끼지 못했으니 안자(顔子), 증자(曾子) 이하로 여러 제자들이 학문을 한 깊이도 또한 알 수가 있다.
  1. 刻而雕 : 刻은 나무에 새기는 것이고, 雕는 옥을 다듬는 것이다. 그러므로 刻, 雕 모두 어떠한 형체를 만드는 작업을 표현하는 글자이다.
  2. 德輶如毛 毛猶有倫 :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비교할 것이 있다. ← 시경(詩經) 증민편(蒸民篇)에 나오는 말이다. 倫은 비교하다의 뜻이다.
  3. 有以 : 방법이 있다. 할 수 있다. 할 것이 있다. 無以는 반대이다.
 
[三章]
子曰 由아 知德者鮮矣니라。
자왈 유아 지덕자선의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유(자로)야 덕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구나.” 
  1. 知德 : 주자는『德者 行道而有得於心 : 덕은 도(의리)를 실천하여 내 마음에 얻어진 것이 있는 것』이라는 德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렸다. 일반적으로 덕을 자신에게서 닦는 것을 수덕[修於己曰 修德]이라 하고, 다른 사람이 덕을 지닌 것을 아는 것을 지덕[察於人曰 知德]이라 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일에 앞서서 알면 “지도(知道)”이고, 일을 행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이 “지덕(知德)”이다.由는 呼子路之名而告之也라 : 유는 자로의 이름을 불러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謂義理之得於己者 非己有之 不能知其意味之實也라 : 덕은 의리가 자신에게서 얻어진 것을 말하니 자신이 그것을 지니지 않았다면 덕의 실제의 미를 알 수가 없다.
【章下註】
自 第一章으로 至此는 疑皆一時之言이니 此章은 蓋爲慍見發也라. 
제1장으로부터 여기까지는 아마도 모두 한때에 하신 말씀인듯하니 이장은 아마도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띠고 뵙는 것 때문에 말씀한듯하다.  이 말은 사족(蛇足)이다. 안 했으면 하는 말인데 해서 비평을 받는다. 시기가 다 다른데 같은 시기라고 해서이다. 

 

15, 衛靈公篇(위령공편) 1 ~ 4章
 
凡四十一章이라.
모두 41장이다.
 
★ 위령공편은 대부분 글이 단문(短文)이라 해석이 어렵다.
[一章]
衛靈公 問陳(陣)於孔子한대 孔子對曰 俎豆之事는 則嘗聞之矣어니와 軍旅之事는 未之學也라하고 明日 遂行하시다。
위령공 문진(진)어공자한대 공자대왈 조두지사는 즉상문지의어니와 군려지사는 미지학야라하고 명일 수행하시다。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가 대답하시기를 “조두(예법)에 관한 일은 일찍이 알고 있습니다 만은 군려에 대한 일은 아직 그것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고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 ​
<옛 논어에는 별장(別章)으로 되어있다.>
在陳絶糧하니 從者病하여 莫能興이러니
재진절량하니 종자병하여 막능흥이러니 
진나라에 계실때 양식이 떨어지니 시종(侍從) 제자들이 병이 들어서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子路 愠見曰 君子도 亦有窮乎잇가 子曰 君子 固窮이어니와 小人은 窮斯濫矣니라。
자로 온현왈 군자도 역유궁호잇가 자왈 군자 고궁이어니와 소인은 궁사람의니라。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품고 뵙고서 말하기를 “군자도 곤궁(困窮)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곤궁할 때가 있지만〔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소인은 곤궁하면 바로 법을 벗어나는 짓을 한다.”
 주자가 분장(分章) 하지 않은 옛 논어는 “明日 遂行”에서 한 장이 끝나는데 주자는 “明日遂行”다음에 “在陳絶糧”을 연결했다. 심지어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라고 하니 갑자기 떠났기 때문에 진(陳) 나라에 이르러서 양식이 끊어졌다.라는 논리를 펼치는데 위나라에서 떠난 것과 진나라에서 양식이 끊어진 것은 7년의 상거(相距)가 있다. 이때 위나라를 떠나서 조나라로 갔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송나라로 갔고, 송나라에서는 광인(匡人)의 난리를 만나서 다시 진나라로 갔는데, 광땅 사람들의 포위를 뚫고 나오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진나라에 와서는 양식이 다 떨어진 것이다.
  1. 固窮 : 주자는「본래 곤궁할 때가 있지만」으로, 정자는「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로 해석했다. 똑같은 固窮을 주자가 맹자에서는 “固守其窮(자신의 곤궁함을 굳게 지킨다)”으로 해석한다.
  • 陳은 謂軍師行伍之列이라 : 진은 군사항오(군에서 진치는 열)의 열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2,500명이 軍이고, 2,500명이 師이고 25명이 항(行)이고, 5명이 伍이다.
  • 俎豆는 禮器라 :조두는 조두는 제례(祭禮)에 쓰이는 기물(器物)이다.  俎는 도마인데 주로 적이나 떡을 올리고, 豆는 나무로 된 제기인데 물기가 있는 제물을 담고, 변(籩)은 대나무로 만든 것인데 마른 제수를 올린다.
尹氏曰 衛靈公 無道之君也어늘 復有志於戰伐之事라 故 答以未學而去之니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위나라 영공은 무도한 임금인데 다시 전벌(戰伐) 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그러므로 아직 배우지 않았다는 것으로 대답해 주시고서 떠난 것이다.
 
  • 孔子去衛適陳이라 :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이 사이에 조나라와 송나라로 갔다가 진나라로 갔는데 주자는 바로 갔다고 보고 해석한 것이다.
  • 興은 起也라 :흥은 일어나는 것이다.
 
何氏曰 濫은 溢也라 言君子固有窮時하니 不若小人窮則放溢爲非라.
하 씨(何晏)가 말하기를​ 람은 넘치는 것이니 군자는 본래 곤궁할 때가 있으니 소인이 곤궁하면 법의 테두리를 흘러넘쳐서 비행(非行)을 행하는 것과 같지 않다.
程子曰 固窮者는 固守其窮이라하니 亦通이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고궁이라는 것은 자신의 곤궁(困窮) 함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통한다.
 
【章下註】
愚謂 聖人은 當行而行하여 無所顧慮하고 處困而亨하여 無所怨悔를 於此 可見이니 學者宜深味之니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성인은 떠날 때를 당하면 떠나서 뒤돌아보거나 생각하는 바가 없고, 곤궁(困窮) 함에 처해서도 형통(亨通: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잊지 않음) 하게 해서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것이 없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수 있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깊이 음미(吟味) 해야 될 것이다.

 

[二章]
子曰 賜也아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아。
자왈 사야아 여이여위다학이지지자여아。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너는 나를 많이 배우 고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느냐?”
對曰 然하이다 非與잇가。
대왈 연하이다 비여잇가。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曰 非也라 予 一以貫之니라。
왈 비야라 여 일이관지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내가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서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1.  : 자공(子貢)의 이름이다. 貢이라는 것은 세법(稅法)이므로 국가에 바치는 것이고, 국가는 그 세금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려 줘야 한다. 그래서 바치고(貢) 내려주다(賜)라고 해서 자(字)와 이름으로 된 것이다.
  2.  : 汝(너 여)이다.
  3. 以予 :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법이 “以~爲(~으로 여기다)”인데 다른 여러 가지로 변형해서 표현하게 되는데 기본적인 것이 많다.
  4.  : 기억하다의 뜻이다.
  5. 一以貫之 : 一理以貫之(모든 것이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 관통되어 있는 것)이다.
子夏之學 多而能識矣 夫子欲其知所本也 故 問以發之니라.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것이니 공자께서 그(자공)로 하여금 근본이 되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해서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다.

 

  1. 子貢之學 :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데에 그치므로「博學無約禮 : 박학은 하였는데 약례(約禮: 배운 것을 요약하고 내 몸을 단속함)가 없는 것」이다.
方信而忽疑하니 蓋其積學功至而亦將有得也.

처음에는 믿었다가 문득 의심이 들었으니 아마도 자공은 학문을 축적한 공부가 지극해서 자공도 역시 토를 터득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라고 여긴 것이다.

  1.  : 처음이다. 지금이다. 바야흐로. 일 때 다 쓴다.  方今(방금) 

說見第四篇이라 然 彼以行言하고 而此以知言也라. 

<一以貫之에 대한> 설명은 제4편 <里仁>에 보인다. 그러나 저기(4편에서 증자에게 말해준 것)에서는 실천을 가지고 말해준 것이고, 여기에서는 지식(知識)을 가지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章下註】
謝氏曰 聖人之道 大矣라 人不能遍觀而盡識하니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라 然 聖人이 豈務博者哉리오 如天之於衆形에 匪物物刻而雕之也라 故 曰 予一以貫之라하니 德輶如毛나 毛猶有倫하니 上天之載 無聲無臭라야 至矣니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성인의 도는 크다. 일반 사람들은 두루 살펴보고서 모두 알 수 없으니 그가(자공)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인이 어찌 박학(博學)을 힘쓰신 분이겠는가? 마치 천지(天地)가 중형(온갖 만물의 형상)에 대하여 그 물건마다 새기고 다듬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고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同類가 있어> 비교할 것이 있고,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자연스러워야 지극(至極) 한 것이 되는 것이다.
尹氏曰 孔子之於曾子엔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로되 曾子復深喩之曰唯라하고 若子貢則先發其疑而後 告之로되 而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하니 二子所學之淺深을 於此 可見이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공자가 증자에게는 증자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고도 곧바로 이것(一以貫之)을 가지고 말씀해 주셨는데 증자는 다시 깊이 깨우치고 서 유(예)라고 말하였고, 자공과 같은 경우에는 먼저 자공의 의문을 유발(誘發) 시킨 이후에 말씀해 주셨는데도 자공은 끝내 증자와 같이 유(예)라고 대답하지 못하였으니 두 사람(증자와 자공)이 학문을 한 깊이를 여기에서 알 수 있다.
愚按 夫子之於子貢에 屢有以發之나 而他人 不與焉하니 則顔曾以下諸子所學之淺深도 又可見矣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공자가 자공에 대하여 자주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끼지 못했으니 안자(顔子), 증자(曾子) 이하로 여러 제자들이 학문을 한 깊이도 또한 알 수가 있다.
  1. 刻而雕 : 刻은 나무에 새기는 것이고, 雕는 옥을 다듬는 것이다. 그러므로 刻, 雕 모두 어떠한 형체를 만드는 작업을 표현하는 글자이다.
  2. 德輶如毛 毛猶有倫 :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비교할 것이 있다. ← 시경(詩經) 증민편(蒸民篇)에 나오는 말이다. 倫은 비교하다의 뜻이다.
  3. 有以 : 방법이 있다. 할 수 있다. 할 것이 있다. 無以는 반대이다.
 
[三章]
子曰 由아 知德者鮮矣니라。
자왈 유아 지덕자선의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유(자로)야 덕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구나.” 
  1. 知德 : 주자는『德者 行道而有得於心 : 덕은 도(의리)를 실천하여 내 마음에 얻어진 것이 있는 것』이라는 德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렸다. 일반적으로 덕을 자신에게서 닦는 것을 수덕[修於己曰 修德]이라 하고, 다른 사람이 덕을 지닌 것을 아는 것을 지덕[察於人曰 知德]이라 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일에 앞서서 알면 “지도(知道)”이고, 일을 행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이 “지덕(知德)”이다.

 

  •  呼子路之名而告之也 : 유는 자로의 이름을 불러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  謂義理之得於己者 非己有之 不能知其意味之實也 : 덕은 의리가 자신에게서 얻어진 것을 말하니 자신이 그것을 지니지 않았다면 덕의 실제의 미를 알 수가 없다.
 
【章下註】
自 第一章으로 至此는 疑皆一時之言이니 此章은 蓋爲慍見發也라. 
제1장으로부터 여기까지는 아마도 모두 한때에 하신 말씀인듯하니 이장은 아마도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띠고 뵙는 것 때문에 말씀한듯하다.  이 말은 사족(蛇足)이다. 안 했으면 하는 말인데 해서 비평을 받는다. 시기가 다 다른데 같은 시기라고 해서이다. 

 

[四章]
子曰 無爲而治者는 其舜也與신저 夫何爲哉시리오 恭己正南面而已矣시니라。
자왈 무위이치자는 기순야여신저 부하위재시리오 공기정남면이이의시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작위(作爲)가 없으면서도 치세(治世)를 이룬 분은 아마도 순임금일 것이다. 저(순임금께서) 무엇을 하셨겠는가? 자신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임금노릇)을 하였을 뿐이었다.”
  1. 無爲 : 도가(道家)의 무위는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고, 유가(儒家)의 무위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 조작적인 행위가 없는 것이다. 행위를 하긴 하는데 공(公)을 바탕에 두면 무위이고, 사(私)를 바탕에 두고서 하는 것은 “작위(作爲)”이다.
 
  • 無爲而治者는 聖人德盛而民化하여 不待其有所作爲也라 : 작위(作爲)가 없으면서 치세를 이루었다는 것은 성인은 덕이 성대(盛大) 하여 백성들이 감화(感化) 되어 성인께서 작위 하는 바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獨稱舜者는 紹堯之後하고 而又得人以任衆職이라 故 尤不見其有爲之迹也라

유독 순임금만 칭송(稱頌) 한 것은 요의 뒤를 계승하였고, 또 인재를 얻어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겼다. 그러므로 더욱이 순임금이 조작적인 행위가 있는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이다.

  •  
  • 恭己者는 聖人敬德之容이니 旣無所爲면 則人之所見 如此而已니라 : 자신을 공손히 하였다는 것은 성인이 자신의 덕을 공경(恭敬) 히 한 모습이니 이미 작위(作爲) 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것(恭己正南面) 뿐이다.
[四章]
子曰 無爲而治者는 其舜也與신저 夫何爲哉시리오 恭己正南面而已矣시니라。
15, 衛靈公篇(위령공편) 1 ~ 4章
 
凡四十一章이라.
모두 41장이다.
 
 위령공편은 대부분 글이 단문(短文)이라 해석이 어렵다.

 

 
[一章]
衛靈公 問陳(陣)於孔子한대 孔子對曰 俎豆之事는 則嘗聞之矣어니와 軍旅之事는 未之學也라하고 明日 遂行하시다。
위령공 문진(진)어공자한대 공자대왈 조두지사는 즉상문지의어니와 군려지사는 미지학야라하고 명일 수행하시다。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가 대답하시기를 “조두(예법)에 관한 일은 일찍이 알고 있습니다 만은 군려에 대한 일은 아직 그것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고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 ​
<옛 논어에는 별장(別章)으로 되어있다.>
 
在陳絶糧하니 從者病하여 莫能興이러니
재진절량하니 종자병하여 막능흥이러니 
진나라에 계실때 양식이 떨어지니 시종(侍從) 제자들이 병이 들어서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子路 愠見曰 君子도 亦有窮乎잇가 子曰 君子 固窮이어니와 小人은 窮斯濫矣니라。
자로 온현왈 군자도 역유궁호잇가 자왈 군자 고궁이어니와 소인은 궁사람의니라。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품고 뵙고서 말하기를 “군자도 곤궁(困窮)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곤궁할 때가 있지만〔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소인은 곤궁하면 바로 법을 벗어나는 짓을 한다.”
 주자가 분장(分章) 하지 않은 옛 논어는 “明日 遂行”에서 한 장이 끝나는데 주자는 “明日遂行”다음에 “在陳絶糧”을 연결했다. 심지어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라고 하니 갑자기 떠났기 때문에 진(陳) 나라에 이르러서 양식이 끊어졌다.라는 논리를 펼치는데 위나라에서 떠난 것과 진나라에서 양식이 끊어진 것은 7년의 상거(相距)가 있다. 이때 위나라를 떠나서 조나라로 갔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송나라로 갔고, 송나라에서는 광인(匡人)의 난리를 만나서 다시 진나라로 갔는데, 광땅 사람들의 포위를 뚫고 나오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진나라에 와서는 양식이 다 떨어진 것이다.
  1. 固窮 : 주자는「본래 곤궁할 때가 있지만」으로, 정자는「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로 해석했다. 똑같은 固窮을 주자가 맹자에서는 “固守其窮(자신의 곤궁함을 굳게 지킨다)”으로 해석한다.

 

  • 陳은 謂軍師行伍之列이라 : 진은 군사항오(군에서 진치는 열)의 열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2,500명이 軍이고, 2,500명이 師이고 25명이 항(行)이고, 5명이 伍이다.
  • 俎豆는 禮器라 :조두는 조두는 제례(祭禮)에 쓰이는 기물(器物)이다.  俎는 도마인데 주로 적이나 떡을 올리고, 豆는 나무로 된 제기인데 물기가 있는 제물을 담고, 변(籩)은 대나무로 만든 것인데 마른 제수를 올린다.
尹氏曰 衛靈公 無道之君也어늘 復有志於戰伐之事라 故 答以未學而去之니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위나라 영공은 무도한 임금인데 다시 전벌(戰伐) 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그러므로 아직 배우지 않았다는 것으로 대답해 주시고서 떠난 것이다.
 
  • 孔子去衛適陳이라 :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이 사이에 조나라와 송나라로 갔다가 진나라로 갔는데 주자는 바로 갔다고 보고 해석한 것이다.
  • 興은 起也라 :흥은 일어나는 것이다.
 
何氏曰 濫은 溢也라 言君子固有窮時하니 不若小人窮則放溢爲非라.
하 씨(何晏)가 말하기를​ 람은 넘치는 것이니 군자는 본래 곤궁할 때가 있으니 소인이 곤궁하면 법의 테두리를 흘러넘쳐서 비행(非行)을 행하는 것과 같지 않다.
程子曰 固窮者는 固守其窮이라하니 亦通이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고궁이라는 것은 자신의 곤궁(困窮) 함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통한다.
 
【章下註】
愚謂 聖人은 當行而行하여 無所顧慮하고 處困而亨하여 無所怨悔를 於此 可見이니 學者宜深味之니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성인은 떠날 때를 당하면 떠나서 뒤돌아보거나 생각하는 바가 없고, 곤궁(困窮) 함에 처해서도 형통(亨通: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잊지 않음) 하게 해서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것이 없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수 있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깊이 음미(吟味) 해야 될 것이다.

 

 
[二章]
子曰 賜也아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아。
자왈 사야아 여이여위다학이지지자여아。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너는 나를 많이 배우 고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느냐?”
對曰 然하이다 非與잇가。
대왈 연하이다 비여잇가。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曰 非也라 予 一以貫之니라。
왈 비야라 여 일이관지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내가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서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1.  : 자공(子貢)의 이름이다. 貢이라는 것은 세법(稅法)이므로 국가에 바치는 것이고, 국가는 그 세금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려 줘야 한다. 그래서 바치고(貢) 내려주다(賜)라고 해서 자(字)와 이름으로 된 것이다.
  2.  : 汝(너 여)이다.
  3. 以予 :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법이 “以~爲(~으로 여기다)”인데 다른 여러 가지로 변형해서 표현하게 되는데 기본적인 것이 많다.
  4.  : 기억하다의 뜻이다.
  5. 一以貫之 : 一理以貫之(모든 것이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 관통되어 있는 것)이다.
子夏之學은 多而能識矣니 夫子欲其知所本也라 故 問以發之니라.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것이니 공자께서 그(자공)로 하여금 근본이 되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해서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다.
  1. 子貢之學 :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데에 그치므로「博學無約禮 : 박학은 하였는데 약례(約禮: 배운 것을 요약하고 내 몸을 단속함)가 없는 것」이다.
方信而忽疑하니 蓋其積學功至而亦將有得也라.
처음에는 믿었다가 문득 의심이 들었으니 아마도 자공은 학문을 축적한 공부가 지극해서 자공도 역시 도를 터득(攄得)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1.  : 처음이다. 지금이다. 바야흐로. 일 때 다 쓴다.  方今(방금) 

 

說見第四篇이라 然 彼以行言하고 而此以知言也라. 
<一以貫之에 대한> 설명은 제4편 <里仁>에 보인다. 그러나 저기(4편에서 증자에게 말해준 것)에서는 실천을 가지고 말해준 것이고, 여기에서는 지식(知識)을 가지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章下註】
謝氏曰 聖人之道 大矣라 人不能遍觀而盡識하니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라 然 聖人이 豈務博者哉리오 如天之於衆形에 匪物物刻而雕之也라 故 曰 予一以貫之라하니 德輶如毛나 毛猶有倫하니 上天之載 無聲無臭라야 至矣니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성인의 도는 크다. 일반 사람들은 두루 살펴보고서 모두 알 수 없으니 그가(자공)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인이 어찌 박학(博學)을 힘쓰신 분이겠는가? 마치 천지(天地)가 중형(온갖 만물의 형상)에 대하여 그 물건마다 새기고 다듬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고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同類가 있어> 비교할 것이 있고,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자연스러워야 지극(至極) 한 것이 되는 것이다.
尹氏曰 孔子之於曾子엔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로되 曾子復深喩之曰唯라하고 若子貢則先發其疑而後 告之로되 而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하니 二子所學之淺深을 於此 可見이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공자가 증자에게는 증자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고도 곧바로 이것(一以貫之)을 가지고 말씀해 주셨는데 증자는 다시 깊이 깨우치고 서 유(예)라고 말하였고, 자공과 같은 경우에는 먼저 자공의 의문을 유발(誘發) 시킨 이후에 말씀해 주셨는데도 자공은 끝내 증자와 같이 유(예)라고 대답하지 못하였으니 두 사람(증자와 자공)이 학문을 한 깊이를 여기에서 알 수 있다.
愚按 夫子之於子貢에 屢有以發之나 而他人 不與焉하니 則顔曾以下諸子所學之淺深도 又可見矣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공자가 자공에 대하여 자주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끼지 못했으니 안자(顔子), 증자(曾子) 이하로 여러 제자들이 학문을 한 깊이도 또한 알 수가 있다.
  1. 刻而雕 : 刻은 나무에 새기는 것이고, 雕는 옥을 다듬는 것이다. 그러므로 刻, 雕 모두 어떠한 형체를 만드는 작업을 표현하는 글자이다.
  2. 德輶如毛 毛猶有倫 :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비교할 것이 있다. ← 시경(詩經) 증민편(蒸民篇)에 나오는 말이다. 倫은 비교하다의 뜻이다.
  3. 有以 : 방법이 있다. 할 수 있다. 할 것이 있다. 無以는 반대이다.
 
[三章]
子曰 由아 知德者鮮矣니라。
자왈 유아 지덕자선의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유(자로)야 덕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구나.” 
  1. 知德 : 주자는『德者 行道而有得於心 : 덕은 도(의리)를 실천하여 내 마음에 얻어진 것이 있는 것』이라는 德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렸다. 일반적으로 덕을 자신에게서 닦는 것을 수덕[修於己曰 修德]이라 하고, 다른 사람이 덕을 지닌 것을 아는 것을 지덕[察於人曰 知德]이라 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일에 앞서서 알면 “지도(知道)”이고, 일을 행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이 “지덕(知德)”이다.

 

  • 由는 呼子路之名而告之也라 : 유는 자로의 이름을 불러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 德은 謂義理之得於己者니 非己有之면 不能知其意味之實也라 : 덕은 의리가 자신에게서 얻어진 것을 말하니 자신이 그것을 지니지 않았다면 덕의 실제의 미를 알 수가 없다.
 
【章下註】
自 第一章으로 至此는 疑皆一時之言이니 此章은 蓋爲慍見發也라. 
제1장으로부터 여기까지는 아마도 모두 한때에 하신 말씀인듯하니 이장은 아마도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띠고 뵙는 것 때문에 말씀한듯하다.  이 말은 사족(蛇足)이다. 안 했으면 하는 말인데 해서 비평을 받는다. 시기가 다 다른데 같은 시기라고 해서이다. 

 

 
[四章]
子曰 無爲而治者는 其舜也與신저 夫何爲哉시리오 恭己正南面而已矣시니라。
자왈 무위이치자는 기순야여신저 부하위재시리오 공기정남면이이의시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작위(作爲)가 없으면서도 치세(治世)를 이룬 분은 아마도 순임금일 것이다. 저(순임금께서) 무엇을 하셨겠는가? 자신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임금노릇)을 하였을 뿐이었다.”
  1. 無爲 : 도가(道家)의 무위는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고, 유가(儒家)의 무위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 조작적인 행위가 없는 것이다. 행위를 하긴 하는데 공(公)을 바탕에 두면 무위이고, 사(私)를 바탕에 두고서 하는 것은 “작위(作爲)”이다.
 
  • 無爲而治者는 聖人德盛而民化하여 不待其有所作爲也라 : 작위(作爲)가 없으면서 치세를 이루었다는 것은 성인은 덕이 성대(盛大) 하여 백성들이 감화(感化) 되어 성인께서 작위 하는 바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獨稱舜者는 紹堯之後하고 而又得人以任衆職이라 故 尤不見其有爲之迹也라

유독 순임금만 칭송(稱頌) 한 것은 요의 뒤를 계승하였고, 또 인재를 얻어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겼다. 그러므로 더욱이 순임금이 조작적인 행위가 있는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이다.

  • 恭己者는 聖人敬德之容이니 旣無所爲면 則人之所見 如此而已니라 : 자신을 공손히 하였다는 것은 성인이 자신의 덕을 공경(恭敬) 히 한 모습이니 이미 작위(作爲) 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것(恭己正南面) 뿐이다.
     
     
    15, 衛靈公篇(위령공편) 1 ~ 4章
     
    凡四十一章이라.
    모두 41장이다.
     
    ★ 위령공편은 대부분 글이 단문(短文)이라 해석이 어렵다.
     
    [一章]
    衛靈公 問陳(陣)於孔子한대 孔子對曰 俎豆之事는 則嘗聞之矣어니와 軍旅之事는 未之學也라하고 明日 遂行하시다。
    위령공 문진(진)어공자한대 공자대왈 조두지사는 즉상문지의어니와 군려지사는 미지학야라하고 명일 수행하시다。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가 대답하시기를 “조두(예법)에 관한 일은 일찍이 알고 있습니다 만은 군려에 대한 일은 아직 그것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고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 ​
    <옛 논어에는 별장(別章)으로 되어있다.>
    在陳絶糧하니 從者病하여 莫能興이러니
    재진절량하니 종자병하여 막능흥이러니 
    진나라에 계실때 양식이 떨어지니 시종(侍從) 제자들이 병이 들어서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子路 愠見曰 君子도 亦有窮乎잇가 子曰 君子 固窮이어니와 小人은 窮斯濫矣니라。
    자로 온현왈 군자도 역유궁호잇가 자왈 군자 고궁이어니와 소인은 궁사람의니라。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품고 뵙고서 말하기를 “군자도 곤궁(困窮)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곤궁할 때가 있지만〔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소인은 곤궁하면 바로 법을 벗어나는 짓을 한다.”
     주자가 분장(分章) 하지 않은 옛 논어는 “明日 遂行”에서 한 장이 끝나는데 주자는 “明日遂行”다음에 “在陳絶糧”을 연결했다. 심지어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라고 하니 갑자기 떠났기 때문에 진(陳) 나라에 이르러서 양식이 끊어졌다.라는 논리를 펼치는데 위나라에서 떠난 것과 진나라에서 양식이 끊어진 것은 7년의 상거(相距)가 있다. 이때 위나라를 떠나서 조나라로 갔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송나라로 갔고, 송나라에서는 광인(匡人)의 난리를 만나서 다시 진나라로 갔는데, 광땅 사람들의 포위를 뚫고 나오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진나라에 와서는 양식이 다 떨어진 것이다.
    1. 固窮 : 주자는「본래 곤궁할 때가 있지만」으로, 정자는「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로 해석했다. 똑같은 固窮을 주자가 맹자에서는 “固守其窮(자신의 곤궁함을 굳게 지킨다)”으로 해석한다.

     

    • 陳은 謂軍師行伍之列이라 : 진은 군사항오(군에서 진치는 열)의 열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2,500명이 軍이고, 2,500명이 師이고 25명이 항(行)이고, 5명이 伍이다.
    • 俎豆는 禮器라 :조두는 조두는 제례(祭禮)에 쓰이는 기물(器物)이다.  俎는 도마인데 주로 적이나 떡을 올리고, 豆는 나무로 된 제기인데 물기가 있는 제물을 담고, 변(籩)은 대나무로 만든 것인데 마른 제수를 올린다.
    尹氏曰 衛靈公 無道之君也어늘 復有志於戰伐之事라 故 答以未學而去之니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위나라 영공은 무도한 임금인데 다시 전벌(戰伐) 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그러므로 아직 배우지 않았다는 것으로 대답해 주시고서 떠난 것이다.
     
    • 孔子去衛適陳이라 :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이 사이에 조나라와 송나라로 갔다가 진나라로 갔는데 주자는 바로 갔다고 보고 해석한 것이다.
    • 興은 起也라 :흥은 일어나는 것이다.
     
    何氏曰 濫은 溢也라 言君子固有窮時하니 不若小人窮則放溢爲非라.
    하 씨(何晏)가 말하기를​ 람은 넘치는 것이니 군자는 본래 곤궁할 때가 있으니 소인이 곤궁하면 법의 테두리를 흘러넘쳐서 비행(非行)을 행하는 것과 같지 않다.
    程子曰 固窮者는 固守其窮이라하니 亦通이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고궁이라는 것은 자신의 곤궁(困窮) 함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통한다.
     
    【章下註】
    愚謂 聖人은 當行而行하여 無所顧慮하고 處困而亨하여 無所怨悔를 於此 可見이니 學者宜深味之니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성인은 떠날 때를 당하면 떠나서 뒤돌아보거나 생각하는 바가 없고, 곤궁(困窮) 함에 처해서도 형통(亨通: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잊지 않음) 하게 해서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것이 없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수 있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깊이 음미(吟味) 해야 될 것이다.

     

     
    [二章]
    子曰 賜也아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아。
    자왈 사야아 여이여위다학이지지자여아。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너는 나를 많이 배우 고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느냐?”
    對曰 然하이다 非與잇가。
    대왈 연하이다 비여잇가。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曰 非也라 予 一以貫之니라。
    왈 비야라 여 일이관지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내가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서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1.  : 자공(子貢)의 이름이다. 貢이라는 것은 세법(稅法)이므로 국가에 바치는 것이고, 국가는 그 세금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려 줘야 한다. 그래서 바치고(貢) 내려주다(賜)라고 해서 자(字)와 이름으로 된 것이다.
    2.  : 汝(너 여)이다.
    3. 以予 :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법이 “以~爲(~으로 여기다)”인데 다른 여러 가지로 변형해서 표현하게 되는데 기본적인 것이 많다.
    4.  : 기억하다의 뜻이다.
    5. 一以貫之 : 一理以貫之(모든 것이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 관통되어 있는 것)이다.
    子夏之學은 多而能識矣니 夫子欲其知所本也라 故 問以發之니라.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것이니 공자께서 그(자공)로 하여금 근본이 되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해서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다.
    1. 子貢之學 :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데에 그치므로「博學無約禮 : 박학은 하였는데 약례(約禮: 배운 것을 요약하고 내 몸을 단속함)가 없는 것」이다.
    方信而忽疑하니 蓋其積學功至而亦將有得也라.
    처음에는 믿었다가 문득 의심이 들었으니 아마도 자공은 학문을 축적한 공부가 지극해서 자공도 역시 도를 터득(攄得)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1.  : 처음이다. 지금이다. 바야흐로. 일 때 다 쓴다.  方今(방금) 

     

    說見第四篇이라 然 彼以行言하고 而此以知言也라. 
    <一以貫之에 대한> 설명은 제4편 <里仁>에 보인다. 그러나 저기(4편에서 증자에게 말해준 것)에서는 실천을 가지고 말해준 것이고, 여기에서는 지식(知識)을 가지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章下註】
    謝氏曰 聖人之道 大矣라 人不能遍觀而盡識하니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라 然 聖人이 豈務博者哉리오 如天之於衆形에 匪物物刻而雕之也라 故 曰 予一以貫之라하니 德輶如毛나 毛猶有倫하니 上天之載 無聲無臭라야 至矣니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성인의 도는 크다. 일반 사람들은 두루 살펴보고서 모두 알 수 없으니 그가(자공)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인이 어찌 박학(博學)을 힘쓰신 분이겠는가? 마치 천지(天地)가 중형(온갖 만물의 형상)에 대하여 그 물건마다 새기고 다듬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고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同類가 있어> 비교할 것이 있고,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자연스러워야 지극(至極) 한 것이 되는 것이다.
    尹氏曰 孔子之於曾子엔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로되 曾子復深喩之曰唯라하고 若子貢則先發其疑而後 告之로되 而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하니 二子所學之淺深을 於此 可見이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공자가 증자에게는 증자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고도 곧바로 이것(一以貫之)을 가지고 말씀해 주셨는데 증자는 다시 깊이 깨우치고 서 유(예)라고 말하였고, 자공과 같은 경우에는 먼저 자공의 의문을 유발(誘發) 시킨 이후에 말씀해 주셨는데도 자공은 끝내 증자와 같이 유(예)라고 대답하지 못하였으니 두 사람(증자와 자공)이 학문을 한 깊이를 여기에서 알 수 있다.
    愚按 夫子之於子貢에 屢有以發之나 而他人 不與焉하니 則顔曾以下諸子所學之淺深도 又可見矣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공자가 자공에 대하여 자주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끼지 못했으니 안자(顔子), 증자(曾子) 이하로 여러 제자들이 학문을 한 깊이도 또한 알 수가 있다.
    1. 刻而雕 : 刻은 나무에 새기는 것이고, 雕는 옥을 다듬는 것이다. 그러므로 刻, 雕 모두 어떠한 형체를 만드는 작업을 표현하는 글자이다.
    2. 德輶如毛 毛猶有倫 :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비교할 것이 있다. ← 시경(詩經) 증민편(蒸民篇)에 나오는 말이다. 倫은 비교하다의 뜻이다.
    3. 有以 : 방법이 있다. 할 수 있다. 할 것이 있다. 無以는 반대이다.
     
    [三章]
    子曰 由아 知德者鮮矣니라。
    자왈 유아 지덕자선의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유(자로)야 덕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구나.” 
    1. 知德 : 주자는『德者 行道而有得於心 : 덕은 도(의리)를 실천하여 내 마음에 얻어진 것이 있는 것』이라는 德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렸다. 일반적으로 덕을 자신에게서 닦는 것을 수덕[修於己曰 修德]이라 하고, 다른 사람이 덕을 지닌 것을 아는 것을 지덕[察於人曰 知德]이라 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일에 앞서서 알면 “지도(知道)”이고, 일을 행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이 “지덕(知德)”이다.

     

    • 由는 呼子路之名而告之也라 : 유는 자로의 이름을 불러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 德은 謂義理之得於己者니 非己有之면 不能知其意味之實也라 : 덕은 의리가 자신에게서 얻어진 것을 말하니 자신이 그것을 지니지 않았다면 덕의 실제의 미를 알 수가 없다.
     
    【章下註】
    自 第一章으로 至此는 疑皆一時之言이니 此章은 蓋爲慍見發也라. 
    제1장으로부터 여기까지는 아마도 모두 한때에 하신 말씀인듯하니 이장은 아마도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띠고 뵙는 것 때문에 말씀한듯하다.  이 말은 사족(蛇足)이다. 안 했으면 하는 말인데 해서 비평을 받는다. 시기가 다 다른데 같은 시기라고 해서이다. 

     

     
    [四章]
    子曰 無爲而治者는 其舜也與신저 夫何爲哉시리오 恭己正南面而已矣시니라。
    자왈 무위이치자는 기순야여신저 부하위재시리오 공기정남면이이의시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작위(作爲)가 없으면서도 치세(治世)를 이룬 분은 아마도 순임금일 것이다. 저(순임금께서) 무엇을 하셨겠는가? 자신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임금노릇)을 하였을 뿐이었다.”
    1. 無爲 : 도가(道家)의 무위는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고, 유가(儒家)의 무위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 조작적인 행위가 없는 것이다. 행위를 하긴 하는데 공(公)을 바탕에 두면 무위이고, 사(私)를 바탕에 두고서 하는 것은 “작위(作爲)”이다.
     
    • 無爲而治者는 聖人德盛而民化하여 不待其有所作爲也라 : 작위(作爲)가 없으면서 치세를 이루었다는 것은 성인은 덕이 성대(盛大) 하여 백성들이 감화(感化) 되어 성인께서 작위 하는 바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獨稱舜者는 紹堯之後하고 而又得人以任衆職이라 故 尤不見其有爲之迹也라

    유독 순임금만 칭송(稱頌) 한 것은 요의 뒤를 계승하였고, 또 인재를 얻어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겼다. 그러므로 더욱이 순임금이 조작적인 행위가 있는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이다.

    • 恭己者는 聖人敬德之容이니 旣無所爲면 則人之所見 如此而已니라 : 자신을 공손히 하였다는 것은 성인이 자신의 덕을 공경(恭敬) 히 한 모습이니 이미 작위(作爲) 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것(恭己正南面) 뿐이다.
      15, 衛靈公篇(위령공편) 1 ~ 4章
       
      凡四十一章이라.
      모두 41장이다.
       
      ★ 위령공편은 대부분 글이 단문(短文)이라 해석이 어렵다.
       
      [一章]
      衛靈公 問陳(陣)於孔子한대 孔子對曰 俎豆之事는 則嘗聞之矣어니와 軍旅之事는 未之學也라하고 明日 遂行하시다。
      위령공 문진(진)어공자한대 공자대왈 조두지사는 즉상문지의어니와 군려지사는 미지학야라하고 명일 수행하시다。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가 대답하시기를 “조두(예법)에 관한 일은 일찍이 알고 있습니다 만은 군려에 대한 일은 아직 그것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고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 ​
      <옛 논어에는 별장(別章)으로 되어있다.>
      在陳絶糧하니 從者病하여 莫能興이러니
      재진절량하니 종자병하여 막능흥이러니 
      진나라에 계실때 양식이 떨어지니 시종(侍從) 제자들이 병이 들어서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子路 愠見曰 君子도 亦有窮乎잇가 子曰 君子 固窮이어니와 小人은 窮斯濫矣니라。
      자로 온현왈 군자도 역유궁호잇가 자왈 군자 고궁이어니와 소인은 궁사람의니라。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품고 뵙고서 말하기를 “군자도 곤궁(困窮)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곤궁할 때가 있지만〔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소인은 곤궁하면 바로 법을 벗어나는 짓을 한다.”
       주자가 분장(分章) 하지 않은 옛 논어는 “明日 遂行”에서 한 장이 끝나는데 주자는 “明日遂行”다음에 “在陳絶糧”을 연결했다. 심지어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라고 하니 갑자기 떠났기 때문에 진(陳) 나라에 이르러서 양식이 끊어졌다.라는 논리를 펼치는데 위나라에서 떠난 것과 진나라에서 양식이 끊어진 것은 7년의 상거(相距)가 있다. 이때 위나라를 떠나서 조나라로 갔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송나라로 갔고, 송나라에서는 광인(匡人)의 난리를 만나서 다시 진나라로 갔는데, 광땅 사람들의 포위를 뚫고 나오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진나라에 와서는 양식이 다 떨어진 것이다.
      1. 固窮 : 주자는「본래 곤궁할 때가 있지만」으로, 정자는「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로 해석했다. 똑같은 固窮을 주자가 맹자에서는 “固守其窮(자신의 곤궁함을 굳게 지킨다)”으로 해석한다.

       

      • 陳은 謂軍師行伍之列이라 : 진은 군사항오(군에서 진치는 열)의 열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2,500명이 軍이고, 2,500명이 師이고 25명이 항(行)이고, 5명이 伍이다.
      • 俎豆는 禮器라 :조두는 조두는 제례(祭禮)에 쓰이는 기물(器物)이다.  俎는 도마인데 주로 적이나 떡을 올리고, 豆는 나무로 된 제기인데 물기가 있는 제물을 담고, 변(籩)은 대나무로 만든 것인데 마른 제수를 올린다.
      尹氏曰 衛靈公 無道之君也어늘 復有志於戰伐之事라 故 答以未學而去之니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위나라 영공은 무도한 임금인데 다시 전벌(戰伐) 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그러므로 아직 배우지 않았다는 것으로 대답해 주시고서 떠난 것이다.
       
      • 孔子去衛適陳이라 :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이 사이에 조나라와 송나라로 갔다가 진나라로 갔는데 주자는 바로 갔다고 보고 해석한 것이다.
      • 興은 起也라 :흥은 일어나는 것이다.
       
      何氏曰 濫은 溢也라 言君子固有窮時하니 不若小人窮則放溢爲非라.
      하 씨(何晏)가 말하기를​ 람은 넘치는 것이니 군자는 본래 곤궁할 때가 있으니 소인이 곤궁하면 법의 테두리를 흘러넘쳐서 비행(非行)을 행하는 것과 같지 않다.
      程子曰 固窮者는 固守其窮이라하니 亦通이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고궁이라는 것은 자신의 곤궁(困窮) 함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통한다.
       
      【章下註】
      愚謂 聖人은 當行而行하여 無所顧慮하고 處困而亨하여 無所怨悔를 於此 可見이니 學者宜深味之니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성인은 떠날 때를 당하면 떠나서 뒤돌아보거나 생각하는 바가 없고, 곤궁(困窮) 함에 처해서도 형통(亨通: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잊지 않음) 하게 해서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것이 없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수 있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깊이 음미(吟味) 해야 될 것이다.

       

       
      [二章]
      子曰 賜也아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아。
      자왈 사야아 여이여위다학이지지자여아。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너는 나를 많이 배우 고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느냐?”
      對曰 然하이다 非與잇가。
      대왈 연하이다 비여잇가。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曰 非也라 予 一以貫之니라。
      왈 비야라 여 일이관지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내가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서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1.  : 자공(子貢)의 이름이다. 貢이라는 것은 세법(稅法)이므로 국가에 바치는 것이고, 국가는 그 세금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려 줘야 한다. 그래서 바치고(貢) 내려주다(賜)라고 해서 자(字)와 이름으로 된 것이다.
      2.  : 汝(너 여)이다.
      3. 以予 :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법이 “以~爲(~으로 여기다)”인데 다른 여러 가지로 변형해서 표현하게 되는데 기본적인 것이 많다.
      4.  : 기억하다의 뜻이다.
      5. 一以貫之 : 一理以貫之(모든 것이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 관통되어 있는 것)이다.
      子夏之學은 多而能識矣니 夫子欲其知所本也라 故 問以發之니라.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것이니 공자께서 그(자공)로 하여금 근본이 되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해서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다.
      1. 子貢之學 :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데에 그치므로「博學無約禮 : 박학은 하였는데 약례(約禮: 배운 것을 요약하고 내 몸을 단속함)가 없는 것」이다.
      方信而忽疑하니 蓋其積學功至而亦將有得也라.
      처음에는 믿었다가 문득 의심이 들었으니 아마도 자공은 학문을 축적한 공부가 지극해서 자공도 역시 도를 터득(攄得)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1.  : 처음이다. 지금이다. 바야흐로. 일 때 다 쓴다.  方今(방금) 

       

      說見第四篇이라 然 彼以行言하고 而此以知言也라. 
      <一以貫之에 대한> 설명은 제4편 <里仁>에 보인다. 그러나 저기(4편에서 증자에게 말해준 것)에서는 실천을 가지고 말해준 것이고, 여기에서는 지식(知識)을 가지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章下註】
      謝氏曰 聖人之道 大矣라 人不能遍觀而盡識하니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라 然 聖人이 豈務博者哉리오 如天之於衆形에 匪物物刻而雕之也라 故 曰 予一以貫之라하니 德輶如毛나 毛猶有倫하니 上天之載 無聲無臭라야 至矣니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성인의 도는 크다. 일반 사람들은 두루 살펴보고서 모두 알 수 없으니 그가(자공)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인이 어찌 박학(博學)을 힘쓰신 분이겠는가? 마치 천지(天地)가 중형(온갖 만물의 형상)에 대하여 그 물건마다 새기고 다듬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고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同類가 있어> 비교할 것이 있고,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자연스러워야 지극(至極) 한 것이 되는 것이다.
      尹氏曰 孔子之於曾子엔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로되 曾子復深喩之曰唯라하고 若子貢則先發其疑而後 告之로되 而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하니 二子所學之淺深을 於此 可見이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공자가 증자에게는 증자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고도 곧바로 이것(一以貫之)을 가지고 말씀해 주셨는데 증자는 다시 깊이 깨우치고 서 유(예)라고 말하였고, 자공과 같은 경우에는 먼저 자공의 의문을 유발(誘發) 시킨 이후에 말씀해 주셨는데도 자공은 끝내 증자와 같이 유(예)라고 대답하지 못하였으니 두 사람(증자와 자공)이 학문을 한 깊이를 여기에서 알 수 있다.
      愚按 夫子之於子貢에 屢有以發之나 而他人 不與焉하니 則顔曾以下諸子所學之淺深도 又可見矣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공자가 자공에 대하여 자주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끼지 못했으니 안자(顔子), 증자(曾子) 이하로 여러 제자들이 학문을 한 깊이도 또한 알 수가 있다.
      1. 刻而雕 : 刻은 나무에 새기는 것이고, 雕는 옥을 다듬는 것이다. 그러므로 刻, 雕 모두 어떠한 형체를 만드는 작업을 표현하는 글자이다.
      2. 德輶如毛 毛猶有倫 :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비교할 것이 있다. ← 시경(詩經) 증민편(蒸民篇)에 나오는 말이다. 倫은 비교하다의 뜻이다.
      3. 有以 : 방법이 있다. 할 수 있다. 할 것이 있다. 無以는 반대이다.
       
      [三章]
      子曰 由아 知德者鮮矣니라。
      자왈 유아 지덕자선의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유(자로)야 덕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구나.” 
      1. 知德 : 주자는『德者 行道而有得於心 : 덕은 도(의리)를 실천하여 내 마음에 얻어진 것이 있는 것』이라는 德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렸다. 일반적으로 덕을 자신에게서 닦는 것을 수덕[修於己曰 修德]이라 하고, 다른 사람이 덕을 지닌 것을 아는 것을 지덕[察於人曰 知德]이라 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일에 앞서서 알면 “지도(知道)”이고, 일을 행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이 “지덕(知德)”이다.

       

      • 由는 呼子路之名而告之也라 : 유는 자로의 이름을 불러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 德은 謂義理之得於己者니 非己有之면 不能知其意味之實也라 : 덕은 의리가 자신에게서 얻어진 것을 말하니 자신이 그것을 지니지 않았다면 덕의 실제의 미를 알 수가 없다.
       
      【章下註】
      自 第一章으로 至此는 疑皆一時之言이니 此章은 蓋爲慍見發也라. 
      제1장으로부터 여기까지는 아마도 모두 한때에 하신 말씀인듯하니 이장은 아마도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띠고 뵙는 것 때문에 말씀한듯하다.  이 말은 사족(蛇足)이다. 안 했으면 하는 말인데 해서 비평을 받는다. 시기가 다 다른데 같은 시기라고 해서이다. 

       

       
      [四章]
      子曰 無爲而治者는 其舜也與신저 夫何爲哉시리오 恭己正南面而已矣시니라。
      자왈 무위이치자는 기순야여신저 부하위재시리오 공기정남면이이의시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작위(作爲)가 없으면서도 치세(治世)를 이룬 분은 아마도 순임금일 것이다. 저(순임금께서) 무엇을 하셨겠는가? 자신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임금노릇)을 하였을 뿐이었다.”
      1. 無爲 : 도가(道家)의 무위는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고, 유가(儒家)의 무위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 조작적인 행위가 없는 것이다. 행위를 하긴 하는데 공(公)을 바탕에 두면 무위이고, 사(私)를 바탕에 두고서 하는 것은 “작위(作爲)”이다.
       
      • 無爲而治者는 聖人德盛而民化하여 不待其有所作爲也라 : 작위(作爲)가 없으면서 치세를 이루었다는 것은 성인은 덕이 성대(盛大) 하여 백성들이 감화(感化) 되어 성인께서 작위 하는 바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獨稱舜者는 紹堯之後하고 而又得人以任衆職이라 故 尤不見其有爲之迹也라

      유독 순임금만 칭송(稱頌) 한 것은 요의 뒤를 계승하였고, 또 인재를 얻어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겼다. 그러므로 더욱이 순임금이 조작적인 행위가 있는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이다.

      • 恭己者는 聖人敬德之容이니 旣無所爲면 則人之所見 如此而已니라 : 자신을 공손히 하였다는 것은 성인이 자신의 덕을 공경(恭敬) 히 한 모습이니 이미 작위(作爲) 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것(恭己正南面) 뿐이다.

 

15, 衛靈公篇(위령공편) 1 ~ 4章

 
凡四十一章이라.
모두 41장이다.
 
★ 위령공편은 대부분 글이 단문(短文)이라 해석이 어렵다.
 
[一章]
衛靈公 問陳(陣)於孔子한대 孔子對曰 俎豆之事는 則嘗聞之矣어니와 軍旅之事는 未之學也라하고 明日 遂行하시다。
위령공 문진(진)어공자한대 공자대왈 조두지사는 즉상문지의어니와 군려지사는 미지학야라하고 명일 수행하시다。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가 대답하시기를 “조두(예법)에 관한 일은 일찍이 알고 있습니다 만은 군려에 대한 일은 아직 그것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고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 ​
<옛 논어에는 별장(別章)으로 되어있다.>
在陳絶糧하니 從者病하여 莫能興이러니
재진절량하니 종자병하여 막능흥이러니 
진나라에 계실때 양식이 떨어지니 시종(侍從) 제자들이 병이 들어서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子路 愠見曰 君子도 亦有窮乎잇가 子曰 君子 固窮이어니와 小人은 窮斯濫矣니라。
자로 온현왈 군자도 역유궁호잇가 자왈 군자 고궁이어니와 소인은 궁사람의니라。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품고 뵙고서 말하기를 “군자도 곤궁(困窮)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곤궁할 때가 있지만〔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소인은 곤궁하면 바로 법을 벗어나는 짓을 한다.”
 주자가 분장(分章) 하지 않은 옛 논어는 “明日 遂行”에서 한 장이 끝나는데 주자는 “明日遂行”다음에 “在陳絶糧”을 연결했다. 심지어 "이튿날 마침내 떠나셨다.”라고 하니 갑자기 떠났기 때문에 진(陳) 나라에 이르러서 양식이 끊어졌다.라는 논리를 펼치는데 위나라에서 떠난 것과 진나라에서 양식이 끊어진 것은 7년의 상거(相距)가 있다. 이때 위나라를 떠나서 조나라로 갔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송나라로 갔고, 송나라에서는 광인(匡人)의 난리를 만나서 다시 진나라로 갔는데, 광땅 사람들의 포위를 뚫고 나오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진나라에 와서는 양식이 다 떨어진 것이다.
  1. 固窮 : 주자는「본래 곤궁할 때가 있지만」으로, 정자는「곤궁한 것을 지키고 있으나」로 해석했다. 똑같은 固窮을 주자가 맹자에서는 “固守其窮(자신의 곤궁함을 굳게 지킨다)”으로 해석한다.

 

  • 陳은 謂軍師行伍之列이라 : 진은 군사항오(군에서 진치는 열)의 열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12,500명이 軍이고, 2,500명이 師이고 25명이 항(行)이고, 5명이 伍이다.
  • 俎豆는 禮器라 :조두는 조두는 제례(祭禮)에 쓰이는 기물(器物)이다.  俎는 도마인데 주로 적이나 떡을 올리고, 豆는 나무로 된 제기인데 물기가 있는 제물을 담고, 변(籩)은 대나무로 만든 것인데 마른 제수를 올린다.
尹氏曰 衛靈公 無道之君也어늘 復有志於戰伐之事라 故 答以未學而去之니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위나라 영공은 무도한 임금인데 다시 전벌(戰伐) 하는 일에 뜻을 두었다. 그러므로 아직 배우지 않았다는 것으로 대답해 주시고서 떠난 것이다.
 
  • 孔子去衛適陳이라 :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이 사이에 조나라와 송나라로 갔다가 진나라로 갔는데 주자는 바로 갔다고 보고 해석한 것이다.
  • 興은 起也라 :흥은 일어나는 것이다.
 
何氏曰 濫은 溢也라 言君子固有窮時하니 不若小人窮則放溢爲非라.
하 씨(何晏)가 말하기를​ 람은 넘치는 것이니 군자는 본래 곤궁할 때가 있으니 소인이 곤궁하면 법의 테두리를 흘러넘쳐서 비행(非行)을 행하는 것과 같지 않다.
程子曰 固窮者는 固守其窮이라하니 亦通이라.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고궁이라는 것은 자신의 곤궁(困窮) 함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역시 통한다.
 
【章下註】
愚謂 聖人은 當行而行하여 無所顧慮하고 處困而亨하여 無所怨悔를 於此 可見이니 學者宜深味之니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성인은 떠날 때를 당하면 떠나서 뒤돌아보거나 생각하는 바가 없고, 곤궁(困窮) 함에 처해서도 형통(亨通: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잊지 않음) 하게 해서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것이 없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수 있으니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깊이 음미(吟味) 해야 될 것이다.

 

 
[二章]
子曰 賜也아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아。
자왈 사야아 여이여위다학이지지자여아。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너는 나를 많이 배우 고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느냐?”
對曰 然하이다 非與잇가。
대왈 연하이다 비여잇가。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曰 非也라 予 一以貫之니라。
왈 비야라 여 일이관지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내가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서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1.  : 자공(子貢)의 이름이다. 貢이라는 것은 세법(稅法)이므로 국가에 바치는 것이고, 국가는 그 세금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내려 줘야 한다. 그래서 바치고(貢) 내려주다(賜)라고 해서 자(字)와 이름으로 된 것이다.
  2.  : 汝(너 여)이다.
  3. 以予 :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법이 “以~爲(~으로 여기다)”인데 다른 여러 가지로 변형해서 표현하게 되는데 기본적인 것이 많다.
  4.  : 기억하다의 뜻이다.
  5. 一以貫之 : 一理以貫之(모든 것이 하나의 이치를 바탕에 두어 관통되어 있는 것)이다.
子夏之學은 多而能識矣니 夫子欲其知所本也라 故 問以發之니라.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것이니 공자께서 그(자공)로 하여금 근본이 되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해서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다.
  1. 子貢之學 : 자공의 학문은 많이 배우고 잘 기억하는 데에 그치므로「博學無約禮 : 박학은 하였는데 약례(約禮: 배운 것을 요약하고 내 몸을 단속함)가 없는 것」이다.
方信而忽疑하니 蓋其積學功至而亦將有得也라.
처음에는 믿었다가 문득 의심이 들었으니 아마도 자공은 학문을 축적한 공부가 지극해서 자공도 역시 도를 터득(攄得)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여긴 것이다.
  1.  : 처음이다. 지금이다. 바야흐로. 일 때 다 쓴다.  方今(방금) 

 

說見第四篇이라 然 彼以行言하고 而此以知言也라. 
<一以貫之에 대한> 설명은 제4편 <里仁>에 보인다. 그러나 저기(4편에서 증자에게 말해준 것)에서는 실천을 가지고 말해준 것이고, 여기에서는 지식(知識)을 가지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章下註】
謝氏曰 聖人之道 大矣라 人不能遍觀而盡識하니 宜其以爲多學而識之也라 然 聖人이 豈務博者哉리오 如天之於衆形에 匪物物刻而雕之也라 故 曰 予一以貫之라하니 德輶如毛나 毛猶有倫하니 上天之載 無聲無臭라야 至矣니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성인의 도는 크다. 일반 사람들은 두루 살펴보고서 모두 알 수 없으니 그가(자공)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여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인이 어찌 박학(博學)을 힘쓰신 분이겠는가? 마치 천지(天地)가 중형(온갖 만물의 형상)에 대하여 그 물건마다 새기고 다듬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이치로 관통하고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同類가 있어> 비교할 것이 있고,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자연스러워야 지극(至極) 한 것이 되는 것이다.
尹氏曰 孔子之於曾子엔 不待其問而直告之以此로되 曾子復深喩之曰唯라하고 若子貢則先發其疑而後 告之로되 而子貢終亦不能如曾子之唯也하니 二子所學之淺深을 於此 可見이라. 
윤 씨(尹焞)가 말하기를 공자가 증자에게는 증자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고도 곧바로 이것(一以貫之)을 가지고 말씀해 주셨는데 증자는 다시 깊이 깨우치고 서 유(예)라고 말하였고, 자공과 같은 경우에는 먼저 자공의 의문을 유발(誘發) 시킨 이후에 말씀해 주셨는데도 자공은 끝내 증자와 같이 유(예)라고 대답하지 못하였으니 두 사람(증자와 자공)이 학문을 한 깊이를 여기에서 알 수 있다.
愚按 夫子之於子貢에 屢有以發之나 而他人 不與焉하니 則顔曾以下諸子所學之淺深도 又可見矣라. 
내가(朱子) 살펴보건대 공자가 자공에 대하여 자주 유발(誘發) 시켜준 것이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끼지 못했으니 안자(顔子), 증자(曾子) 이하로 여러 제자들이 학문을 한 깊이도 또한 알 수가 있다.
  1. 刻而雕 : 刻은 나무에 새기는 것이고, 雕는 옥을 다듬는 것이다. 그러므로 刻, 雕 모두 어떠한 형체를 만드는 작업을 표현하는 글자이다.
  2. 德輶如毛 毛猶有倫 : 덕이 가볍기는 털과 같으나 털은 그래도 비교할 것이 있다. ← 시경(詩經) 증민편(蒸民篇)에 나오는 말이다. 倫은 비교하다의 뜻이다.
  3. 有以 : 방법이 있다. 할 수 있다. 할 것이 있다. 無以는 반대이다.
 
[三章]
子曰 由아 知德者鮮矣니라。
자왈 유아 지덕자선의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유(자로)야 덕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구나.” 
  1. 知德 : 주자는『德者 行道而有得於心 : 덕은 도(의리)를 실천하여 내 마음에 얻어진 것이 있는 것』이라는 德에 대한 정의(定義)를 내렸다. 일반적으로 덕을 자신에게서 닦는 것을 수덕[修於己曰 修德]이라 하고, 다른 사람이 덕을 지닌 것을 아는 것을 지덕[察於人曰 知德]이라 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일에 앞서서 알면 “지도(知道)”이고, 일을 행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이 “지덕(知德)”이다.

 

  • 由는 呼子路之名而告之也라 : 유는 자로의 이름을 불러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 德은 謂義理之得於己者니 非己有之면 不能知其意味之實也라 : 덕은 의리가 자신에게서 얻어진 것을 말하니 자신이 그것을 지니지 않았다면 덕의 실제의 미를 알 수가 없다.
 
【章下註】
自 第一章으로 至此는 疑皆一時之言이니 此章은 蓋爲慍見發也라. 
제1장으로부터 여기까지는 아마도 모두 한때에 하신 말씀인듯하니 이장은 아마도 자로가 불평한 기색을 띠고 뵙는 것 때문에 말씀한듯하다.  이 말은 사족(蛇足)이다. 안 했으면 하는 말인데 해서 비평을 받는다. 시기가 다 다른데 같은 시기라고 해서이다. 

 

 
[四章]
子曰 無爲而治者는 其舜也與신저 夫何爲哉시리오 恭己正南面而已矣시니라。
자왈 무위이치자는 기순야여신저 부하위재시리오 공기정남면이이의시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작위(作爲)가 없으면서도 치세(治世)를 이룬 분은 아마도 순임금일 것이다. 저(순임금께서) 무엇을 하셨겠는가? 자신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임금노릇)을 하였을 뿐이었다.”
  1. 無爲 : 도가(道家)의 무위는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고, 유가(儒家)의 무위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 조작적인 행위가 없는 것이다. 행위를 하긴 하는데 공(公)을 바탕에 두면 무위이고, 사(私)를 바탕에 두고서 하는 것은 “작위(作爲)”이다.
 
  • 無爲而治者는 聖人德盛而民化하여 不待其有所作爲也라 : 작위(作爲)가 없으면서 치세를 이루었다는 것은 성인은 덕이 성대(盛大) 하여 백성들이 감화(感化) 되어 성인께서 작위 하는 바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獨稱舜者는 紹堯之後하고 而又得人以任衆職이라 故 尤不見其有爲之迹也라

유독 순임금만 칭송(稱頌) 한 것은 요의 뒤를 계승하였고, 또 인재를 얻어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겼다. 그러므로 더욱이 순임금이 조작적인 행위가 있는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이다.

  • 恭己者는 聖人敬德之容이니 旣無所爲면 則人之所見 如此而已니라 : 자신을 공손히 하였다는 것은 성인이 자신의 덕을 공경(恭敬) 히 한 모습이니 이미 작위(作爲) 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것(恭己正南面) 뿐이다.

 

자왈 무위이치자는 기순야여신저 부하위재시리오 공기정남면이이의시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작위(作爲)가 없으면서도 치세(治世)를 이룬 분은 아마도 순임금일 것이다. 저(순임금께서) 무엇을 하셨겠는가? 자신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임금노릇)을 하였을 뿐이었다.”
  1. 無爲 : 도가(道家)의 무위는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고, 유가(儒家)의 무위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 조작적인 행위가 없는 것이다. 행위를 하긴 하는데 공(公)을 바탕에 두면 무위이고, 사(私)를 바탕에 두고서 하는 것은 “작위(作爲)”이다.
 
  • 無爲而治者는 聖人德盛而民化하여 不待其有所作爲也라 : 작위(作爲)가 없으면서 치세를 이루었다는 것은 성인은 덕이 성대(盛大) 하여 백성들이 감화(感化) 되어 성인께서 작위 하는 바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獨稱舜者는 紹堯之後하고 而又得人以任衆職이라 故 尤不見其有爲之迹也라

유독 순임금만 칭송(稱頌) 한 것은 요의 뒤를 계승하였고, 또 인재를 얻어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겼다. 그러므로 더욱이 순임금이 조작적인 행위가 있는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이다.

  • 恭己者는 聖人敬德之容이니 旣無所爲면 則人之所見 如此而已니라 : 자신을 공손히 하였다는 것은 성인이 자신의 덕을 공경(恭敬) 히 한 모습이니 이미 작위(作爲) 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것(恭己正南面) 뿐이다.

 

[美 이란 전쟁중]

https://www.youtube.com/watch?v=YMkujEmjEnM

 

https://www.youtube.com/watch?v=O2c0EUOoHOE

 

https://www.youtube.com/watch?v=U7XVlFwSiW8

 

https://www.youtube.com/watch?v=yquX58jcl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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