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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연구회

1931년 국어학의 연구와 한글맞춤법의 정리를 목적으로 박승빈(朴勝彬)이 조직한 학술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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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학회
 
조선어학회는 일제강점기(1931~1949) 우리말과 글을 연구·정리하고 표준어 제정과 사전 편찬을 주도한 민간 학술 단체입니다. 주시경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국어 연구를 이어갔으며,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공표하고 1942년 사전 편찬을 시도하다 일제의 탄압(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항일 문화 독립 운동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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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활동 및 업적
  •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1933): 현대 한글 표기의 기초가 된 통일안을 발표했습니다.
  • 표준어 사정 (1935):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확정하여 표준어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 외래어 표기법 제정 (1940): 체계적인 우리말 사용을 위한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추진: 우리말 사전을 만들어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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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어학회 사건 (1942~1945)
  • 내용: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항일 민족운동 단체로 규정하여 회원 33명을 검거 및 투옥한 사건입니다.
  • 피해: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이 투옥되었으며, 이윤재, 한징 등은 옥사했습니다.
  • 결과: 사전 편찬 작업이 중단되었으나, 1945년 광복 후 원고가 발견되어 1957년 《큰사전》 완간의 결실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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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적 의의
  • 문화 독립운동: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맞서 언어와 문자를 지켜낸 대표적인 민족 문화 운동입니다.
  • 한글학회로 계승: 해방 후, 1949년 한글학회로 명칭을 바꾸어 현재까지 우리말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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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중에서 1908년 8월 31일 설립된 한국어 와 한글 을 연구하는 민간 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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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1년 12월 3일 설립된 한글을 연구하는 민간 단체. 1931년 조선어연구회에서 조선어학회로 이름이 한차례 바꾸었다가 1945년 한글학회로 변경하였다.

2. 학회의 시작

1921년 12월 3일,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로 처음의 명칭은 <조선어연구회>였다. 장지영(張志暎)·김윤경(金允經)·이윤재·이극로·최현배·이병기 등을 회원으로 하여 연구발표회와 강연회를 갖고 한글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한편, 1927년 2월부터 기관지 <한글>을 발간했다.

3. 역사

1921년 12월 3일,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로 처음의 명칭은 <조선어연구회>였다. 장지영(張志暎)·김윤경(金允經)·이윤재·이극로·최현배·이병기 등을 회원으로 하여 연구발표회와 강연회를 갖고 한글의 우수성을 선전하는 한편, 1927년 2월부터 기관지 <한글>을 발간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인 관변학자들을 모아 똑같은 이름의 '조선어 연구회'를 만들자, 1931년 명칭을 '조선어학회'로 바꾼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역사에 대해서는 조선어학회 문서와 조선어학회 사건 문서 참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이윤재 등은 옥중에서 사망했으나,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조선어학회의 주축을 이루던 학자들이 석방되면서 조선어학회는 조직을 재건하고,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던 '조선말 큰사전' 사업을 재개한다. 이는 광복 이후 서울역 창고에서 유실된 줄 알았던 큰사전 원고가 온전히 발견되어서 가능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을 재판에 넘긴 일제당국이 증거품으로 법원에 제출할 요량이었는데, 태평양전쟁 막바지 난리통에 그냥 서울역 창고에 처박힌 채 잊혀졌던 것이다.

조선말 큰사전은 1947년 10월 9일(한글날) 제1권이 간행되었고, 1957년 총 6권으로 완간되었다. 조선말 큰사전은 현재도 '우리말 큰사전'이란 이름으로 배포되고 있다.

이후 1949년 한글날을 기해 이름을 '한글 학회'로 바꾸고.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아마도 1948년 고착화된 남북 분단이 계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의 경우는 월북[1] 김두봉이 따로 우리 말글 사업을 주도하여 분단 이후 남과 북의 말이 표준어 문화어로 달라지는 계기가 된다.

조선어학회 사건이 나름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한글학회가 조선어학회의 후신인 줄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한글학회는 옛 조선어학회가 광복 이후 이름이 바뀐 것일 뿐 그 시절 그 단체의 명맥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즉 '조선어학회 = 한글학회'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조선어학회가 일제의 치안유지법으로 박해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일부 회원이 고문을 받았고 일부는 옥사하였으며 그간 추진되었던 우리말큰사전 계획이 무산되어 버렸다. 항목 참조.

4. 1945년 독립 이후

해방 직후 석방된 학자들을 중심으로 학회를 재건하고 조선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재개했다. 조선어 학회는 1947년 한글날을 기념하여 조선말 큰사전 1권을 간행하였으며, 이후 1957년 6권 발간을 마지막으로 한글 사전 편찬을 마무리한다. 1949년 10월 학회의 명칭을 '한글 학회'로 바꾸게 되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x5DEqOFOnc

 

https://www.youtube.com/watch?v=Oyv88KWZy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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