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유대인과 우리는 대홍수 때 헤어진 같은 민족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HJGUccKB4A

 

2부 타림분지에서 만난 4천 년 전 백인 미라의 환단고기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alzFWETQHkU

 

3부 동이족의 어원은 퉁구스이며 아홉 개의 한국을 의미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a-a0sKUNrk&t=80s

 


민족의 뿌리, 상고사를 말하다: 고조선과 고인돌

https://www.youtube.com/watch?v=r8HEaL6C-yo&t=225s

 


환단고기 / 4천년전 단군조선

https://www.youtube.com/watch?v=SEt-jb9Jojk&t=1231s

 

환단고기(桓檀古記)

https://namu.wiki/w/%ED%99%98%EB%8B%A8%EA%B3%A0%EA%B8%B0

 

환단고기

『환단고기』는 1979년에 출판된 한국의 대표적인 위서 이다. 1986년 임승국이 한글 번역본 원문은 마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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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환단고기』는 1979년에 출판된 한국의 대표적인 위서이다. 1986년 임승국이 한글 번역본[1] 『한단고기』를 내놓은 이후 『환단고기』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환단고기』의 열광적인 반응 때문에 『환단고기』 이전에 활약했던 유사역사가들의 존재는 잘 부각되지 않고 있다. 『환단고기』는 오랜 세월 축적된 국수주의 역사관의 결집체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그 동안 유사역사학이 주장해 온 국수주의 역사관은 영향력을 확산해가고 있다.
 
이문영 『환단고기』의 성립 배경과 기원. 역사비평, no.118, pp.40-73
환단고기(桓檀古記)는 1979년 이유립이 출간한 유사역사학 위서다. 이유립과 그 추종자들은 환단고기가 1911년 계연수라는 인물에 의해 저술되었으며, 소위 환국이라고 하는 단군 이전의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역사를 모아 편찬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용어와 문체가 주장하는 시대의 문헌과 맞지 않고, 다른 위서와 비슷한 내용이 발견되는 등 사료의 진실성이 부정되는 근거가 매우 많다.

이러한 소설에 가까운 사서가 왜 생겼나를 생각해보면[2] 당시 시대상은 일제강점기 혹은 해방 후 얼마 되지 않은 혼란기였고, 새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민족주의 사관이 대세였다. 여기에는 화려했던 과거사에 대한 향수도 가미되어 있다. 지금에서야 대한민국은 민족주의 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경향이 과거에 비하여 옅어졌지만, 당시에는 민족의식 고취와 단결, 통제를 위한 집단주의 등을 위해 역사 연구의 '정치적 목적성'이 강한 편이었다. 한국의 역사학의 갈피를 잡은 단재 신채호도 한국 역사학계의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지만 그와 동시에 노골적인 민족주의 사관으로 비판도 많이 받는다. 그러한 시대상이 반영되어 환단고기 역시 노골적인 민족주의적 관점을 띄게 되었고 작가 개인의 종교적인 가치관도 맞물려 신화적인 성격도 띄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명칭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명칭을 그대로 풀이하면 대략 '환웅 단군에 대한 오래된 기록'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엽기적인 사실은 정작 이 괴문헌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대가 단군은 아득히 초월한 채 위로는 세계와 인류의 창조부터 아래로는 고려 시대의 위화도 회군 전야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원래라면 고조선의 건국만 서술해야 하지만, 고조선 이전에 태고의 왕조들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며 고려 말까지 엄청나게 오래된 기간을 서술한 것이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어디까지나 위서()이다.

1986년에 환단고기를 일본에서 국내에 역수입한 임승국이 "환인은 우리말 하느님을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고, 따라서 환이란 하늘의 준말인 한이다."라고 주석을 단 이래 이 괴문헌의 이름을 '한단고기'라고 읽는 경향이 생겨났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임승국의 주장은 그 어떠한 학문적 근거도 없는 견강부회이다. 오히려 고대 한민족 관련 한자 표기가 사실 순우리말의 음차라는 사례가 수없이 발견됨에도 이 환=한이라는 환단고기발 주장 때문에 환인의 하느님 음차설이 환단고기발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만악의 근원이기도 하다.

한자의 옛 독음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운서들을 보아야 하는데 당운(732)과 광운(1008) 모두 桓의 독음이 호관절(胡官切)임을 분명히 명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절법이라 하여 '호'의 성모(초성) 'ㅎ'과 '관'의 운모(중성과 종성) 'ㅘㄴ'을 결합하여 '환'이라는 음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참고로 이 운서들에는 환(丸)도 똑같이 호관절(胡官切)이라 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당운보다 먼저 만들어진 절운(601)과 옥편(543)에서 각각 桓의 독음을 호만절(戶瞞切)과 호단절(胡端切)이라 하고 있기는 한데... 瞞은 모관절(母官切)로서 당시엔 '뫈'이었고, 端은 도환절(都丸切)로서 당시엔 '돤'이었다. 당장 지금도 중국에서는 端을 '돤(duān)'이라 발음하며, 한국에서도 동국정운(1448)에서 '돤'이라는 소릿값이 확인된다. 瞞 역시 중국어의 옛 형태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광동어에서는 '문'(mun⁴)이라고 발음해 桓(wun⁴)과 같은 모음을 쓰고 있다.

한편 한국어의 '한'이 하늘의 준말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어에서 '한'은 '넓다, 크다'는 뜻이지 '하늘'이란 뜻은 없다. 따라서 올바르게 선후관계를 따진다면 차라리 '하늘'이라는 말이 '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야 논리관계가 맞는다. 고로 '한'이라는 음소 자체에 하늘이라는 의미가 함축된다고 본 임승국 등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따라서 '한단고기'는 족보에도 없는 이름이라고 판정할 수 있다.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설명한 귀선(龜船)의 제도를 보건대, 배는 널빤지로 꾸미고 철판으로 꾸민 것이 아닌 듯하니, 이순신을 장갑선의 비조라고 함은 옳으나 철갑선의 비조라 함은 옳지 않을 것이다. 철갑선의 창조자라 함이 보다 더 명예가 되지마는, 창조하지 않은 것을 창조하였다고 하면 이것은 진화(進化)의 계급을 어지럽힐 뿐이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가, 고려의 어떤 명장(名匠)이 증기선을 창조하였다는 문구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신채호, 『조선상고사』

 

 

5. 구성

환단고기는 개화기 계연수(桂延壽)라는 사람이 자신이 수집한 문헌 5권을 하나로 묶어 출간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 한 부가 이유립(李裕岦)의 손에 들어갔고 이것을 이유립이 다시 찍어내어 출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에 따라 저마다 범주나 지향이 다른 문헌 5권이 제각기 따로 있다 보니 내용을 비교 해보면 서로 말이 다르거나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정작 그 흩어진 내용을 통합적으로 파악하기 무척 어렵다.

어쨌든 내용은 아래 분석에서 차차 정리하기로 하고 환단고기의 서문에 해당하는 '범례'에서 언급되는 5권의 문헌은 차례대로 다음과 같다.
  • 삼성기(三聖記) / 안함로(安含老) 찬
    • 삼성기 전 상편(全上篇)
      • 계연수의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 오던 문헌이라고 한다.
      • 쉽게 말해 간단하게 쓰인 바쁜 사람들을 위한 환단고기. 때문에 총 704자로 가장 적은 분량이다. 그렇기에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신화적인 원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따라서 문헌 자체로서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은 파악되기 어렵다. 다만 문제는 문헌의 이름이 분명히 '삼성기'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환인, 환웅, 단군을 넘어서[6] 해모수 고주몽까지 거론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사실 삼국유사의 고구려 조에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딸 유화를 가까이하여 주몽을 낳았다는 기록의 주석으로, 단군 역시 하백의 딸 유화를 가까이하여 부루를 낳았다는 말이 쓰였긴 하다. 이에 따르면 주몽과 부루는 씨 다른 형제가 된다.[7] 삼성기에 해모수와 주몽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이 이런 식으로 단군과 엮여 있는 점을 반영하였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 삼성기(三聖記) / 원동중(元董仲) 찬
    • 삼성기 전 하편(全下篇)
    •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 태천의 진사 백관묵(白寬黙)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 대체로 위의 삼성기 상편과 같지만, 지적된 해모수와 고주몽의 이야기가 포함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를 편집하는 김에 단군까지 덩달아 편집되어서 '이성기'면 모를까 여전히 '삼성기'는 아니다. 대신에 인류의 탄생부터 중국 신화의 신화소들이 대폭 수용되어 이야기가 훨씬 더 풍성해졌는데, 이것이 중요한 연유는 환국의 초현실적인 강역이 바로 여기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 1214자로 오히려 상편보다 분량이 많다. 부록으로 역대 환웅들을 나열한 신시역대기는 총 424자다.
  • 단군세기(檀君世紀) / 행촌 이암(杏村 李嵒) 찬
    • 단군세기 서
    • 단군세기
      • 태천의 진사 백관묵(白寬黙)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 고조선의 역대 단군에 대한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단기고사  규원사화와 같이 47대 단군들의 연대기를 전하는 내용이지만, 이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정작 연대부터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다. 단군 47대가 재위한 시기를 두고 환단고기는 기원전 2333~기원전 238년(2096년간), 단기고사는 기원전 2512~ 기원전 416년(2096년간), 규원사화는 기원전 2333~기원전 1128년(1205년간)이라고 제시한다. 이유립은 규원사화를 위서라 주장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 역대 단군들을 일일이 적어넣다 보니 분량은 많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풍부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37대 단군부터 43대 단군까지는 근 200년간 주욱 '즉위했다'와 '죽었다'가 기록의 전부인데, 자료가 적기로 소문난 삼국사기 백제본기도 이 정도는 아니다.
  • 북부여기(北夫餘紀) /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
    • 북부여기 상
    • 북부여기 하
    •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
      • 삭주의 진사 이형식(李亨栻)이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 단군이 나라를 해산한 뒤, 해모수 이래 북부여와 가섭원부여에 대한 내용. 환단고기의 설정에서는 기자조선이니 위만조선이 없고, 단군조선이 공화정치를 거쳐 그대로 북부여로 넘어갔다가 다시 정통이 고구려에 계승된 것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상당히 중요하지만 환빠들 사이에서 취급은 그냥 쩌리다. 이전까지만 해도 심심하면 중국을 쥐어패고 다니던 조선이, 이제는 위만 하나도 처리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인 듯하다.
  • 태백일사(太白逸史) /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 태백일사 목록(目錄)
    •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 환국본기(桓國本紀)
    • 신시본기(神市本紀)
    •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8]
    •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 태백일사 발
      • 해학 이기(李沂)가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 환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이르는 통사적 성격을 띤다. 그런데 이 태백일사 최대의 미스터리는 단연 삼한관경본기로, 엄연히 기전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 본기면 본기지, 본기 안에 세가가 들어있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삼한본기라면서 정작 진한본기는 어디로 실종되어서, 이건 뭐 기전체도 아니고 편년체도 아닌 구성이다. 또한 소도경전본훈에는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수록되어 있어 환단고기의 종교경전적 면모를 잘 보여준다.

7. 분석과 비판

일부 아마추어 역사가들과 종교 단체에서는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담은 역사서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조작된 위서(僞書)다.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위서란 저자나 저술연대와 같은 서지사항이 위조된 책을 의미한다.[13] 환단고기는 여기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예컨대 지금 누군가가 고구려사를 기전체로 정리했는데 제목을 '신집'이라고 하고 필명을 '이문진'이라고 했다고 해 보자. 물론 그 안에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서기 600년에 고구려인 이문진이 쓴 신집은 아니다. 그리고 이덕일은 이걸 두고 '이유립이 1970년에 쓰긴 했지만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으니 위서는 아니다.' 주장하며 용어를 혼란시킨다.

반면 서지사항이 위조되지 않았어도 내용은 지어내거나 왜곡된 가짜 역사일 수 있기에 진서라고 무조건 추종하거나 위서라고 무조건 배척하는 게 아니라 다각적인 사료 비판을 통해 내용을 검증해야만 한다. 대표적인 게 일본서기(日本書紀)다. 일본서기 자체는 대단히 이른 시기에 집필되었고 서지사항도 명확한 진서지만, 그 안에는 진구 황후 임나일본부설 등 너무나도 분명하게 거짓인 기술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서기를 역사적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역사가에 의한 조심스러운 문헌비평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14][15]

하지만 환단고기에 있는 내용은 인류의 단계적 발전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사적 추세로서 물질문명의 발달, 국가의 형성과 조직 과정을 정면으로 무시한다. 대표적인 게 저 유명한 환국(桓國). 그밖에도 16세기나 20세기가 되어야 나타나는 지명[16]이라든가, 틀린 것으로 드러난 학설들이 버젓이 차용되어 있다. 여기에 기원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종족들이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것까지 들면 한도 끝도 없다. 환단고기는 확실히 가짜 역사라고 관련 전문가들이 입을모아 확언한다. 당장 역사스페셜이 환단고기를 다룬다고 했을 때 방영년도가 1999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이 협조를 거부한 것만 봐도 이 '역사서'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환단고기의 서지사항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결부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종합해보면 독립운동의 당면과제는 배제되고 오히려 일본 대동아 공영권 사상과 흡사한 확장적 · 공격적 민족주의 의식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환단고기를 올바른 애국심의 발로로 볼 수 없는 근거가 된다. 실제로 임승국 등 환단고기의 초기 추종자들은 독재정권에 협력을 자청한 이들이었다. 임승국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전두환에게 "공산주의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국수주의 독재를 해야 한다!"고 진언하기도 했다. 전두환단고기 정말 임승국의 생각대로 한국이 굴러갔다면 대한민국 북한의 닮은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단군교의 천부경 대종교의 삼일신고를 무단으로 베껴다가 싣고 있으니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핵심에는 자신의 가문을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선양하려던 이유립의 흑심이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것을 총칭하여 거짓 포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12환국 명칭도 실제 역사랑 시기가 다르다. 중국 진서 사이전에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일군국'이 등장하고 삼국사기에는 '구다천국, 매구여국, 구다국'이 등장, 광개토대왕비문에는 '비리, 객혁한, 구모객두, 매구여'라고 나온다. 하지만 12환국 시기보다 훨씬 후대에 언급된 명칭들이고 비리국의 경우 서기 395년에 비리가 조공을 하지 않아서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했다고 나온다.

한편, 일각에선 환단고기의 실제 저자가 허술한 이유립이었으니 망정이지 화랑세기 필사본의 실제 저자로 추정되는 박창화였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얘기도 한다. 이유립의 환단고기는 전문가들이 금방 위서로 판정할 정도로 질이 떨어지는 책이지만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은 현재까지도 진위 논쟁이 벌어질 정도[17]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따라서 어설픈 이유립이 아니라 나름 역사적 지식이 있는 치밀한 박창화가 환단고기 비슷한 가짜 역사책을 썼으면 분명 일시적으로나마 역사학자들 중에서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나왔을 수도 있으니 악영향이 훨씬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유립은 모든 이야기를 창작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는 않았다. 이유립이 원본 환단고기를 보며 기억한 것이 아니라 순수 기억력으로 100% 똑같이 적었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다. 또 환단고기와 유사한 내용들은 이미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었다. 1914년에 나온 대종교 책 '신단실기'에 환단고기랑 일부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이래 고사(古史)와 경전(經傳: 聖賢이 지은 책)이 전하여져 부여나 고구려 때에 번역, 간행된 것이 많았으나 병화로 소실되고, 일부 남은 것들은 조선시대에도 전하여졌다. 그러나 이것마저 세조·예종·성종 때에 왕명으로 8도관찰사에게 명하여 대궐로 거두어 들였다가 뒤에 병화로 소실되었다.'라고 적혀있는데 거기서 소실된 책을 보면 '조대기,삼성밀기,삼성기 등'으로 나오는데 20세기 초에도 삼성기를 본 사람이 없다고 봐야 정확하다. 근데 계연수가 삼성기를 환단고기에 포함시켰다는 말은 말이 안되는 거다. 1950년대 이고선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단서대강'에 환단고기를 참고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일부 왕들의 호칭을 기록하지 않고 그저 몇 세 환웅, 환검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만약 환단고기를 참고했다면 똑같이 적었어야 했는데 내용 일부가 빠졌다. 이 책은 1981년에 출판된 '심당전서'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환단고기와 달리 치우가 조선이 아니라 '단국'을 세웠다고 적혀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MFrc1qKsE&t=278s

 

고조선인은 어떻게 살았나?

https://www.youtube.com/watch?v=qeDIeWe1h9s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서 800년논쟁 삼국사기의 진실은?

https://www.youtube.com/watch?v=zbfrW3TZozw

 

 

https://www.youtube.com/watch?v=AgcCFZGJ7Gg

 

 

https://www.youtube.com/watch?v=Btaj7tlKyoY

 

 

https://www.youtube.com/watch?v=UjRlepBMlyY&t=1606s

 

 

朝鮮 Sapiens 梵語 조선사피엔스 범어

https://www.youtube.com/watch?v=FfyUerTlaXc

 

한글창제의 주역, 

세종이 말년에 유언을 남겨 문종이 즉위년(1452년) 7월 6일에,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者
선교종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者

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러나  논쟁으로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다. 고딕체 글씨는 변경되거나 추가된 부분이다.

大曹溪 禪敎宗都總攝 密傳正法 承揚祖道 體用一如 悲智雙運 度生利物 圓融無礙 惠覺宗師 

대조계  선교종도총섭  밀전정법  승양조도  체용일여  비지쌍운  도생이물  원융무애 혜각종사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2594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kydong77.tistory.com/22594

 

훈민정음창제와 신미대사/禪敎宗都摠攝密傳正法悲智雙運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者

세종이 말년에 유언을 남겨 문종이 즉위년(1452년) 7월 6일에,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礙 慧覺尊者선교종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라는 시

kydong77.tistory.com

 

신숙주(申叔舟, 1417년 8월 2일(음력 6월 20일) ~ 1475년 7월 23일(음력 6월 21일))

https://www.youtube.com/watch?v=CgGGi_ATrX8&t=228s

 

 

https://namu.wiki/w/%EC%8B%A0%EB%AF%B8(%EC%8A%B9%EB%A0%A4)

 

신미(승려)

信眉 조선 초기인 15세기경에 활동한 승려 . 본관은 영동(永同)이었으며, 속명은 김수성(金守省)이었고, 영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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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信眉

조선 초기인 15세기경에 활동한 승려. 본관은 영동(永同)이었으며, 속명은 김수성(金守省)이었고,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 김수온(金守溫)의 형이었다.

2. 상세

신미의 정확한 생몰년은 모른다.《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면 세종 28년(1446년)부터 기록이 나온다. 성종 22년(1491년)에 신미가 이미 세상을 떴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동생 김수온의 생몰년(1410년~1481년)을 감안하면 대략 1400년대(태종 재위기)에 출생하여 1470년대(성종 재위기)쯤에 사망한 듯하다. 90대에 세상을 떠난 효령대군이나 황희만큼은 아니더라도 70대 후반까지 산 것은 확실하니 당시로서는 꽤 장수한 셈이다.

언어학에 능통했다고 하는데, 수양대군 안평대군이 신미를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세종대왕의 눈에도 들었다. 그 덕택에 말년의 세종대왕에게 총애를 받으며 한글 보급 업무를 맡았고, 문종과 세조도 신미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그 결과로 조선 초기의 수많은 한글서적들이 신미의 손을 거쳐갔는데, 현존하는 주요 저서로는 《능엄경언해》, 《목우자수심결언해》,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불설수생경》, 《사법어언해》, 《석보상절》, 《선종영가집언해》, 《원각경언해》, 《법화경언해》,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창원 금룡사 입능가경》 등이 있다.

다만 위 책의 대부분을 신미 혼자 저술하진 않았다. 수양대군이 주도적으로 책을 저술했으며, 효령대군과 신미, 학조 등이 교정 또는 주해 작업을 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저평가될 일은 아니기에, 초기 한글 보급에 큰 도움을 준 승려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종이 말년에 유언을 남겨 문종이 즉위년(1452년) 7월 6일에,
'선교종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礙) 혜각존자(慧覺尊者)'
라는 칭호를 내렸다. 신하들은 아무리 선왕(세종)의 뜻이라고는 하나 중에게 이런 칭호를 내림은 부당하다고 문종에게 상소했다. 사대부들은 특히 '우국이세'(祐國利世)를 하사한 것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박팽년이 같은 달 15일에 올린 상소에서#
'우국이세(祐國利世)는 설령 조정의 장상(將相)이나 대신에게 주려고 하더라도 조정에서 논의를 해야 마땅한데, 이런 대단한 호칭을 늙은 중에게 주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라고 주장한 데서도 조정의 여론을 알 수 있다. 우국이세(祐國利世)는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했다.'는 뜻인데, 유교국가에서 줄 수 있는 칭호로선 극찬이었다. 다른 칭호는 모두 '불교적으로 대단하다.'라는 뜻인데 반해 우국이세는 심지어 '유교적으로도 대단하다.'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성리학을 신봉하는 조정의 대신들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문종은 그해 8월 신미의 칭호에서 '우국이세'를 삭제하되 다른 글자를 덧붙여서
'대조계(大曹溪) 선교종도총섭(禪敎宗都總攝) 밀전정법(密傳正法) 승양조도(承揚祖道) 체용일여(體用一如) 비지쌍운(悲智雙運) 도생이물(度生利物) 원융무애(圓融無礙) 혜각종사(惠覺宗師)'
라고 했다. 문종 나름대로 조정의 여론과 타협한 것이다.

다만 신미는 밑에 제자 관리는 잘 못했는지, 학열에게 토지 경작을 맡겼다가 관리를 엉망으로 하는 통에, 곡식을 마음대로 늘려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다는 기록이 있다.

 

* 문자로 통용되던 한문시대에 소리글자에 대한 인식을 제공한 분은 신미대사라 나는 확신한다.

불교에서는 지금까지도 산스크리트로 된 진언을 사용하고 있다. 천수경

 

강상원, 조선朝鮮의 재해석

https://www.youtube.com/watch?v=W-cLI6i7x1Q

 

'아리랑'의 재해석

https://www.youtube.com/watch?v=c_QJ40VrXyY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https://www.youtube.com/watch?v=1vD6E-1OMgc



강상원 , 34강 01 "단군 및 몽골의 어원"

https://www.youtube.com/watch?v=hFFPAtFZjUU

 

 

https://www.youtube.com/watch?v=49EkSH8XBLc

 

http://www.daehansinbo.com/bbs/board.php?bo_table=46&wr_id=31352

 

한글학자 강상원박사 별세(2022-12-28)

한글학자 강상원박사 별세(2022-12-28)한글학자 강상원박사강상원(姜相源)박사(博士)(1938.12.10~2022-12-28=84세)(本名姜平洙)훈민정음학자 동양철학자 서양철학자 사학자1. 약력1938 충남천안출생1963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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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자 강상원박사 별세(1938 천안 ~2022-12-28)
한글학자 강상원박사
강상원(姜相源)박사(博士)(1938.12.10~2022-12-28=84세)(本名姜平洙)
훈민정음학자, 동양철학자, 서양철학자, 사학자

1. 약력
1938 충남천안출생
1963 한국외국어대학교영어과졸업
1963.8.31. 공군소위임관
1967.8. 공군전역
1989.9.1. 뉴욕시립대학교(석사학위)
1994.3. 동국대학교(철학박사학위, 원효대사의중도사상연구)

2. 경력
주한미국대사관근무(1969-1971)
뉴욕평생대학-학장 및 뉴욕 TV영어강사
콜롬비아대학교수
1993~1998. 전중앙승가대학/한국불교대학/동국대학교강사
2000.5. 대한불교현수복지재단부설 한국세종한림원 창설
2003.4 한국세종한림원학회장
현경주박물관대학-초청강사

3. 저서
천축실담상형문자주석(2001.12.3.)
한글고어사전채담어주석(2002.6.14)
왕손정통언어실담어복원주석(2003.4.25)
훈민정음 28자 어원적신해석(2005.4.28)
한자는 동이족문자주석(2007.2.20)
세종대왕창제훈민정음
주역혜각존자신미대사(主役慧覺尊者信眉大師)(2008.9.27)
우리말불휘(根) 실담어어원대사전
법화경영역
금강경영역

4. 주요 논문
소끄라데스국가론, 플라톤교육론(석사논문)
노자의 도덕관/스피노자도덕적 자유/니체의 신론/외다수.

https://youtu.be/qBkAd-rbLsg

 

https://www.youtube.com/watch?v=0MEvP48j6gs

 

https://www.youtube.com/watch?v=4k3YU2_nSyM

 

각필

 천 년 전 이 땅에 또 다른 문자가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EcOR-Sc2Ac

 

https://www.youtube.com/watch?v=IcUvNHagBRI&t=2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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