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흔히 무당이나 스님이 거행하는 의식으로써 사십구재와 별개로 망자의 영혼 천국이나 천상의 좋은 곳에 왕생하기를 바라며 따로 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를 천도재(薦度齋)라고 부른다. 연원을 따지자면 불교의 우란분재가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상좌부 불교의 우란분재는 아귀로 윤회한 중생에게 음식을 베푸는 의미가 강하며 망자를 인도한다는 느낌은 강하지 않다. 반면 대승 불교는 설일체유부의 중유(antarabhava) 개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중유 상태에 있는 중생을 선처로 이끌기 위한 의식으로서 천도재를 연다.

https://folkency.nfm.go.kr/topic/%EC%9A%B0%EB%9E%80%EB%B6%84%EC%9E%AC

 

한국민속대백과사전

 

folkency.nfm.go.kr

죽은 사람이 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후손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것. 우란분재(盂蘭盆齋)는 흔히 백중이라 부르는 음력 7월 15일에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 행사이다. 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우란분이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에서 나온 말인데 ‘avalambana’가 전화(轉化)하여 생긴 말로서 거꾸로 매달려 있다[倒懸]는 뜻이다.

우란분재는 불교 경전인 『우란분경(盂蘭盆經)』과 『목련경(目連經)』에서 비롯되었다. 『우란분경』에 의하면, 부처의 십대 제자 중에 신통력이 뛰어난 제자인 목련(目連)은 어머니가 선행을 닦지 못해 아귀도에 떨어져 배가 고파 피골이 상접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목련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으나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새까맣게 타서 먹을 수가 없었다. 목련이 비통해하며 그 원인을 물으니 부처는 죄업의 뿌리가 너무 깊어 그렇게 된 것이므로, 시방의 여러 승려들의 위신력(威神力)만이 구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방법으로 모든 승려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점검하는 자자(自恣)를 행하는 7월 15일에, 과거의 7세 부모와 현세의 부모 중에 재앙에 빠진 자가 있으면 밥을 비롯한 백 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을 우란분(盂蘭盆)에 담고 향과 촛불을 켜서 시방의 승려들에게 공양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수행하고 교화하는 모든 승려들이 이 공양을 받으면, 현재의 부모가 무병장수하며 복락을 누리고, 돌아가신 조상은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 끝없는 복락을 누린다고 하였다.

『목련경』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ntn3Q28BD4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범어의 한자어 음역을 한국어로 음역한 것)

각 단어의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아제(揭諦) : 가자.

바라(波羅) : 피안.

승(僧) : 완전히.

모지(菩提) : 깨달음(보리)

사바하(娑婆訶) : 뿌리를 내리게 해 주소서.

 

*사바하(娑婆訶),   범어로는 Svaha 

기도문의 끝에 붙이는 관용구로, 범어로는 Svaha 사박하, 사하라고도 쓰며,

구경(九竟), 원만(圓滿), 성취(成就), 산거(散去)의 뜻이 있으니,

진언의 끝에 붙여 성취를 간절히 비는 말. 또 부처님들을 경각(敬覺)하는 말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신(神)에게 물건을 바칠 때 인사로 쓰던 어구(語句)라 함.

기독교의 기도문 끝에 붙이는  'Amen'과 동일한 의미와 기능을 가진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불교의 기도문에는 Svaha로 마무리해야 한다.

굳이 따지자면 유일신과 다신론의 차이 때문이라고나 할까?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2912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6057

 

삼각산 흥천사(三角山 興天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흥천사(興天寺)는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태조의 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된 사찰이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직할 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末寺)이다. 조선 전기에 폐사되었다가 1669년(현종 10), 정릉(貞陵)을 새로 꾸미면서 능 밖으로 절을 이건하고 신흥사라 이름하였다. 1865년(고종 2)에 다시 흥천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Q9k6X9gtJJI

 

흥천사 무량수전

무량수전 우측벽 중앙에는명부전 외벽의 반야용선도를 모사하여 제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멋진 아이디어였다.

불교에서 룡은 신비로운 길상의 상징이다. 

반야(般若, Prajñā)는 불교에서 모든 존재와 현상의 실상(공, 무아, 무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근원적인 '초월적 지혜'를 의미한다. 

반야룡선의 목적지는 천국 말고는 없다.

언제나 정의의 길을 선택했던 이명주 시인의 극락왕생을 빌 뿐이다.

 

~

흥천사의 '영가시어'는 너무 길어 아래의 것으로 대신합니다.

https://blog.naver.com/kenjisama/221506514888

 

[종교][불교][불경] 영가시어

靈 駕 示 語(영가시어) 저희들이 지극정성 염불하고 독송하니 사바인연 마치시고 저승가실 영가시여 염불공...

blog.naver.com

靈 駕 示 語(영가시어)

저희들이 지극정성 염불하고 독송하니 사바인연 마치시고

저승가실 영가시여 염불공덕 인연으로 삼독심을 여의옵고

무명업장 소멸하여 생사고해 벗어나서 염불하는 공덕으로

반야지혜 들어내서 영가위한 묘한법문 모두통달 하옵시고

해탈열반 성취하사 아미타불 계시옵는 극락정토 왕생하고

모두성불 하옵소서 인연따라 모인것은 인연따라 흩어지니

오는것도 인연이요 돌아감도 인연인걸 나서부터 맺은인연

인연다해 떠나가니 그무엇에 애착하고 그무엇을 슬퍼하랴

인연다한 육신에다 일체집착 마옵시고 허물벗은 매미같이

훌훌벗고 떠나가소 한번오면 가야하는 정한이치 변함없어

태어나면 죽는일을 그누구나 격는다네 모든것은 무상하여

생한자는 필멸이라 태어나고 죽는것은 모든인생 정한이치

살아생전 집착하던 사대육신 무엇인고 한순간에 숨거두니

주인떠난 송장일세 일가친척 많이있고 부귀영화 누렸어도

동서고금 통털어서 아니죽은 사람없어 인연다한 이세상에

사대육신 흩어질때 어느누가 달려들어 가는길을 막을손가

사대라니 무상토다 저녁나절 바람이요 오온이란 허망하니

대낮에의 꿈일터라 이럴진데 참된나는 어느곳에 있으려나

안과밖에 있지않고 가운데도 안있다네 몸뚱이를 가진자는

그림자가 따르듯이 한세상을 살다보면 죄가없다 말못하리

살아생전 모든죄업 탐진치로 말미암아 신구의로 지었으니

모두참회 하옵소서 죄의실체 본래없어 마음따라 생겨나니

마음씀이 없어질때 죄업또한 사라지네 죄란생각 없어지고

마음또한 텅비워서 무념처에 도달하면 진실참회 했다하리

마음성품 바로지켜 즉시밝게 관을하면 본래슬기 뚜렷밝아

모든죄업 끊어진다 번뇌보리 구분함은 한생각속 일인지라

낳고죽고 가고옴이 그대로가 삼매라네 모든생각 혼돈하면

번뇌라서 생겨나고 이한마음 깨치며는 묘한씀이 생겨난다

중생부처 다른것은 미오차로 더불으니 이양끝을 놓을때에

지성뚜렷 밝으리라 본마음은 고요하여 옛과지금 없다하니

태어남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고죽는 생사윤회

허공속에 아지랑이 원수거나 천한이나 죄와복도 꿈이로다

만약몸과 그마음이 항상아님 깨달을제 삼계에핀 헛꽃처럼

거짖됨이 틀림없네 죽고삶이 실다웁지 아니함을 알적에는

육진환영 끓은물에 얼음녹듯 하리로다 알지어다 이당처에

몸을크게 굴리며는 원한이라 친분이라 헛된마음 놀음이며

미움이라 사랑이라 들뜬생각 날뜀이라 본래맑은 그성품에

티끌만을 더함이네 이승이라 저승이라 본래둘이 아닌지라

색신이라 망념이라 그출처가 분명컨만 모든중생 미오차로

일만상을 불러내니 윤회함은 제가낳고 스스로가 감이로다

뜬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짐이 인연이듯 중생들의 생과사도

인연따라 나타나니 좋은인연 간직하고 나쁜인연 버리시면

이다음에 태어날때 좋은세상 만나리라 돌고도는 생사윤회

업식대로 따라가니 오고감을 슬퍼말고 환희로서 발심하여

무명업장 밝히시고 무거운짐 모두벗고 삼계고를 뛰어넘어

해탈열반 성취하오 사랑하고 미워하는 증애심을 버리시고

이세상과 육신에다 집착미련 떨처내어 삿된마음 멀리하고

미혹함을 벗어나서 청정하신 마음으로 극락세계 살펴보소

물이얼어 얼음되고 얼음녹아 물이되듯 이세상에 삶과죽음

물과얼음 같아오니 육친으로 맺은정은 가벼웁게 거두시고

청정해진 업식으로 극락왕생 하옵소서 이름없고 형체없어

찾을깊이 없는것을 온천하를 같이갈새 만나고도 못봤구나

좋고싫음 경계속에 너와내가 분리되어 항상같이 짝임에도

쓰면서도 몰랐구나 겹겹쌓인 푸른산은 부처님의 도량이요

맑은하늘 흰구름은 부처님의 발자취며 뭇생명의 노래소리

부처님의 설법이고 대자연의 장엄함은 부처님의 마음이네

부처님의 관밖으로 양쪽발을 내미셨고 달마대사 총령으로

짚신한짝 메고갔네 이와같은 높은도리 영가님이 깨달으면

이미생사 넘었거늘 그무엇을 슬퍼하랴 죽음이라 두려워서

삶을찾아 헤메는자 재탄생의 길을열어 윤회고를 받게되며

초연하게 죽음맞는 지혜롭고 용감한자 삶과죽음 뛰어넘어

해탈열반 성취하네 이삼계를 우물속의 두레박이 신세같이

천만겁을 오르내려 끊임없이 윤회하니 금생에서 이제이몸

제도하지 못할시면 언제다시 어느생을 가다려서 제도할까

법신불을 깨달을제 한물건도 없게되니 본원이라 자성자리

천진면목 부처로다 오음이라 뜬구름은 공연히도 오고가고

삼독심의 물거품이 헛되이도 출몰하네 이세상에 처음올때

영가님은 누구셨고 사바일생 마치시고 가는이는 누구신가

이세상에 오실때는 어디에서 오셨으며 가시는곳 어디인줄

영가님은 아시는가 옛사람과 지금사람 어느곳이 다르던고

평등하온 성품중에 너와내가 없는것을 삼세관이 본래부터

空인줄을 알게되면 옛사람과 지금사람 돌이켜서 둘아닌걸

번뇌보리 뉘우침은 한생각의 차이니리 취사선택 하는것은

제스스로 결정하소 옛과지금 부수며는 너와내가 空일지니

동과서와 남과북은 하나뿐인 천지러라 보살님은 생각생각

중생제도 뿐이거늘 바탕빔을 깨치며는 중생이란 마친거니

생각이미 맑혔을새 중생이란 없는거라 어느곳에 제도받을

중생이라 있을손가 육문이다 청정하니 너와내가 비인것을

건곤밖을 홀로가니 서와동이 없는지라 뉘라먼저 깨쳤는고

초당안의 이큰꿈을 본래달이 뚜렷하여 법신중에 빛을놓네

다함없는 세계라서 또한다함 없는것이 쓰고가며 쓰며옴에

그몇해나 걸렸던고 안사놓은 청~산에 녹수마져 놓였으니

조사뜻을 듬뿍실은 돗단배가 절로오네 저희들이 일심으로

독송하는 인연따라 맺은원결 모두풀고 지옥세계 무너지며

지극하온 정성으로 삼계고해 벗어나서 아미타불 극락세계

상품상생 하옵소서!

파지옥 진언 [ 옴~가라지야 사바하 ] 3번  *주1)

해원결진언 [ 옴~ 삼다라 가다약 사바하 ] 3번  *주2)

상품상생진언 [ 옴~ 마리다리 훔훔 바탁 사바하 ] 3번 *주3)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마타불~~~

[출처] [종교][불교][불경] 영가시어|작성자 박상우

 

* 주1)

옴 가라지야 사바하는 파(破)지옥진언으로...

죽은 사람의 영가가 지옥으로 가지 않기를 비는 마음에서...

지옥이 깨져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는 진언이라고 생각됩니다.

*2) 뜻: '옴(Om)'은 우주의 근원적인 소리, '삼다라(Samtara)'는 원한을 푸는 도리, '가닥(Gada)'은 묶인 것을 푼다, '사바하(Svaha)'는 원만성취를 뜻하여 전체적으로 "원결이 깨끗이 풀어져 원만하게 성취되소서"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 주3) 불교에서 극락세계에 태어날 때, 특히 9품 연대 중 가장 높은 등급인 '상품상생(上品上生)'으로 태어나기를 발원하며 외우는 진언입니다. 아미타불의 가르침을 믿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번뇌를 없애고 청정한 공덕을 성취하고자 할 때 암송합니다.

 

李明柱(1948~1926)

출생1948.2.13. 서울 출생

임종 2026.1.30. 02시 46분

운영자는 이 시인과 동국대 국문과 입학동기로 졸업 후 입대하여 등단 소식을 후에 알게 됨.

서울에서 태어나 1973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전국국어교사모임 회장, 전국교과모임연합 의장을 역임함.

서울 성북구 고명중학교에서 국어교사 정년퇴임.

[여담] 현대문학 주간 조연현 선생님과 미당 서정주 선생님이 계셨을 때니까 3학년쯤 되면 시인이 한 학년에 두어 명이나 되던 시절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는 시인들도 있었고.

[저서]

<이명주 시집, 그리움의 작은 나라>(나남, 1988,)

<너희를 위하여> ( 전원출판사, 1992 )

<국어시간에 시읽기 2> 이명주 편집(휴머니스트,2015)

 )

 

[기고] 이명주 고명중 교사... 국회라는 '감옥'에 갇힌 사학법 개정안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80832

 

사립교사 31년, 참 희한한 전쟁

실상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내용이 담겨 있다. 밀실에 창문을 좀 만들어서 공기가 통하게 하고 투명 유리창이라도 달자는 그런 내용이다. 그러면

www.ohmynews.com

 

https://kydong77.tistory.com/20581

 

이명주, 꽃에 관한 사유·비트겐슈타인의 서부극& 조병옥, 잠자리/ 白石, 흰 바람벽이 있어.

www.youtube.com/watch?v=KnHgG8pImbk www.youtube.com/watch?v=hSlkK3Cw3VU 이화자, 花柳春夢 (화류춘몽) www.youtube.com/watch?v=Ki71O52kPEg 꽃에 관한 사유 ㅡ이명주 우리 동네 아리랑고개 비탈진 도로 옆 빈터엔 튤립이 핀

kydong77.tistory.com

 

꽃에 관한 사유 

ㅡ이명주

 

우리 동네 아리랑고개

비탈진 도로 옆 빈터엔 튤립이 핀다.

봄이면 좁다랗게 조성된 화단에

단색의 싸구려 튤립뿐만 아니라

황제, 총독, 제독, 영주, 대장 따위의 등급이 매겨졌다던

귀족풍의 다채로운 기품들이

희희낙락 피어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신흥 부르주아들은

터키 산 튤립에 목숨을 걸었다.

귀족이나 대부호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최고가의 취향에 생사결단으로 달려든 튤립 버블.

변종 튤립 알뿌리 한 알에 3,000만 원을 호가하여

꽃 한 송이의 무게가 천금이었단다.

 

수 세기 만에 꽃의 황제는

배기가스 충만한 대한민국 서울 변두리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길바닥에도 피는

민주적인 천격이 되었다.

나 같은 늙은이의 어슴푸레한 정감에나

겨우 알은 체하는 구닥다리 향수가 반갑다.

역사란 이래서 천박하기도 오묘하기도 한 것이다.

 

꽃은 본디 누군가가 기를 쓰고 피우는

인공 작물이 아니라

저 혼자 그냥 피어나는

빛이거나 그늘이다.

멀쩡히 모르는 척하는 건 고사하고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注,1)

끄떡없는 무명의 빛깔이요 향기요 바람이다.

 

그런데도 저 혼자 세상에 난 줄 아는

시러베 인간들은 기를 쓰고 주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름 없이 피는 꽃은 없다고.

이름 없는 꽃은 꽃이 아니라고.

 

이름 불리지 못한 꽃은

아예 피지 않은 거라고 지랄을 떠는

세상이 꼴불견인 꽃들도 있다.

그걸 모르는 이들에겐 차라리

꽃 없는 세상을 던져주는 게 어떨까.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야 저답다는 듯

오늘도 꽃은 어디에서나

그냥 줄기차게 제멋대로 핀다. 

* 注1)김춘수 시인의 '꽃'에 대한 변주

   

비트겐슈타인의 서부극

ㅡ이명주  

오스트리아 출신의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서부 영화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철강 재벌의 2세로 태어나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형제자매를 비롯해 릴케 같은 가난한 문인들에게 재산을 모조리 나누어 준 뒤 쓸모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산골 초등학교 교사로 취업했다. 나중에 러셀의 제자가 되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철학 교수가 되기도 하지만 그 짓이 '살아 있는 죽음'이라며 노동자로 나섰다.

클라리넷 연주에 탁월했고 휘파람으로 웬만한 소나타와 교향곡을 불어댈 수 있었다는 이 거부의 막내아들은 수학과 철학에 심취한 뒤엔 아예 장식과 허례를 모조리 제거해버린 검약과 정확성과 확실성을 신조로 삼았다. 러셀에게서 진정한 천재의 표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이 언어철학의 거인이 왜 얼핏 천박해 보이는 서부 영화에 환장했을까?

어린 시절에 매료된 '베라 크루스'나 'OK 목장의 결투'를 필두로, 적응하는 데 세월이 꽤 소모된 '황야의 무법자'나 '석양의 건맨' 같은 마카로니웨스턴을 다시 보게 될 때마다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린다.

아무리 선악의 구별이 불투명할망정 분명하게 갈리는 한 가지 확실성이 있다. 삶과 죽음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단순 명확한 폭력 미학은 왜 찬양받는가? 안개 속처럼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 욕망의 몽환적 타협을 결투로 한 방에 날려 버리기 때문이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581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위는 불교의 향기가 묻어 있는, 흥천사 화장실에서 만난 명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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