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제목은 사육신묘인데 내용에는 김문기를 추가하여 死七臣을 만들었네요.
死六臣이란 남효온의 '六臣傳'이 그 어원인데 묘소가 7기여서 김문기를 추가한 듯.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본다.

김문기(金文基, 1399년 ~ 1456년)는  1455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공조판서겸삼군도진무로 있으면서 은밀히 단종 복위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김질,정창손의 밀고로 계획이 발각되자 김문기를 비롯하여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 · 이개 · 유응부 등은 체포되었으며, 유성원는 자결하였다.

사육신(死六臣, 문화어: 사륙신)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여섯 명의 신하인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사육신과 생육신 등의 신하들을 통칭하여 다른 훈구파와 구별하여 따로 절의파(節義派)로 부르기도 한다.[1] 이들의 시신은 노량진 근처에 매장되어 있다.

 

유성원(柳誠源, ?~ 1456년)은 조선의 문신이자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자는 태초(太初), 시호는 절의(節義), 뒤에 충경(忠景)을 더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C%84%B1%EC%9B%90

 1456년(세조 2) 성삼문·박팽년·하위지·유응부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일이 탄로되자 집에 돌아와 아내와 이별의 술잔을 나누고 조상의 사당에서 칼로 자결하였다.

자결을 한 후 시체는 1456년(세조 2) 6월 7일 거열형(車裂刑, 다리를 두 개의 수레에 각각 묶어 몸을 찢어 죽이던 형벌)을 당하였고[1], 같은 해 9월 7일에는 아내 미치(未致) 와 딸 백대(百代)는 좌승지(左承旨) 한명회(韓明澮)에게 분배되었다.[2] 1691년(숙종 17)에 복관(復官)되고, 영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었으며 1902년에 충신정려(忠臣旌閭)가 내려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qKeCGw470FM

 

https://www.youtube.com/watch?v=cewLpkOZc-k&t=48s

 

https://blog.naver.com/jbkim315/220724217840

 

육신전(六臣傳) - 남효온

六臣傳 - 南孝溫(1454-1492) - 秋江先生文集 卷之八         박팽년(朴彭年, 1417-145...

blog.naver.com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865

 

사육신(死六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조선전기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죽은 6명의 관리.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사육신은 조선전기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죽은 6명의 관리이다. 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 여섯 사람을 말한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사육신을 비롯한 많은 문무신은 단종 복위를 결의했다. 세조와 측근 관료들을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던 거사가 드러나 박팽년은 옥에서 죽고 나머지는 처형됐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처형된 사람은 더 있지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이 「육신전」에서 여섯 사람의 이름을 밝힘에 따라 사육신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육신은 1691년 12월에 정식으로 국가의 공인을 받고 복관되었다.

박팽년(朴彭年) · 성삼문(成三問) · 이개(李塏) · 하위지(河緯地) · 유성원(柳誠源) · 유응부(兪應孚) 등 여섯 사람을 말한다.

사육신 사건으로 김문기(金文起) · 박쟁(朴崝) · 권자신(權自愼) · 성승(成勝) · 윤영손(尹令孫) · 허조(許慥) 등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참혹한 죽음을 당하였다. 그리고 세조는 이 사건에 집현전학사 출신이 주동이 되었다 하여 집현전을 혁파하였다.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로 즉위한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 왕자로 야심 만만한 호걸이었다. 수양대군은 문종이 죽고 13세의 어린 나이로 단종이 즉위하자, 왕위에 야심을 품고 정인지(鄭麟趾) · 신숙주(申叔舟) · 한명회(韓明澮) 등을 당여(黨與)주1로 삼고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에 먼저 고명대신(顧命大臣)주2인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의정 김종서(金宗瑞) 등을 살해한 다음, 1455년(단종 3) 6월 드디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았다. 세조의 잔인한 왕위 찬탈에 분개한 6신을 비롯한 많은 문무신은 단종 복위를 결의하였다.

 

사육신 사당 의절사

사당 의절사 위패

 

남효온(南孝溫) 『추강집』 「육신전(六臣傳)」을 지으면서, 단종복위의 거사 주모역은 성삼문 · 박팽년이고, 행동책은 유응부로서, 이 세 사람이 한 일을 삼주역(三主役)으로 부각시켰다. 사육신이라는 명칭은 남효온의 「육신전」이 세상에 공포된 뒤 그대로 확정되어, 1691년(숙종 17)에 사육신의 절의를 국가에서 공인해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河緯地) · 이개(李塏) · 유성원(柳誠源) · 유응부 등 6인의 관작을 추복(追復)주1시켰다. 그 뒤 1791년(정조 15)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여러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정(編定)할 적에도 사육신으로 재차 확정되었다.

유성원: 단종 복위 운동이 사전에 발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성삼문 등과 함께 잡혀가 고문을 당하는 대신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결했다. 거렬형은 피하였지만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아래는 6각형 기둥에 새긴 사육신의 성함과 간략한 소개

성삼문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어시 될고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峰)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 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

하위지

  • 男兒得失古猶今 
  • (남아득실고유금) - 남자의 득실(성공과 실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요,
  • 頭上分明白日臨 
  • (두상분명백일림) - 머리 위에 분명한 백일(하늘의 해, 곧 올바른 도리/양심)이 임해 있네.
  • 持贈蓑衣應有意 
  • (지증쇠의응유의) - 도롱이(蓑衣사의)를 지어 보내는 것(숨어 지내라는 권유)에 응당 뜻이 있을 터이니,
  • 五湖煉雨好相尋 
  • (오호연우호상심)  - 오호(五湖)의 연우(비 내리는 풍경, 은거지)를 잘 찾아가리라.

 

男兒得失古猶今 (남아득실고유금)

頭上分明白日臨 (두상분명백일림) 

持贈蓑衣應有意 (지증쇠의응유의)

五湖煉雨好相尋 (오호연우호상심)

남아의 득실이 예나 지금이나 같도다

머리 위에는 분명히 백일이 임하였네

오호에 안개끼고 비 내리면 은거지에서 서로 찾으리 

 

유성원

白山控海磨天嶺
백산공해마천령, 장백산은 바다를 당겨 마천령에 이르고

黑水橫坤豆滿江
흑수횡곤두만강, 흑룡강은 땅을 가로질러 두만강에 이르네.

此是李侯飛騎處
차시이후비기처, 이곳은 이후가 날 듯 말 탄 곳으로

剩看胡虜自來降
잉간호로자래강, 오랑캐가 스스로 와 항복했던 것을 실컷 보리라. 

ㅡ『柳先生遺稿

 

박팽년

  •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간신들의 겉과 속이 다름을 비유)
  •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충신의 지조는 변함없음)
  •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고칠 줄이 있으랴 (단종에 대한 굳은 충절)

 

이개

창 안에 혓는 촉불 눌과 이별하엿관대,

것츠로 눈믈 디고 속 타는 쥴 모로는고.

뎌 촉불 날과 갓트여 속 타는 쥴 모로도다.

 

유응부

將軍待節鎭夷蠻

장군대절진이만, 장군의 기개로 오랑캐를 진압하니

閑外塵淸士卒眠

한외진청사졸면, 변방은 소요없이 맑아 병사들은 잠자네

晝永空庭何所玩

주영공정하소완, 긴긴 낮, 텅빈 뜰에 무슨 놀이 있으랴만

良鷹三百座樓前

양응삼백좌루전, 보라매 삼백 마리 망루 앞에 앉아 있다오

사당 담장 너머에는  7기의 묘소가 있었는데 성씨만 적은 묘표가 세워져 있었다.

사육신들은 노량진 부근에서 거령형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분들의 시신을 거둔이는 김시습이라고 전해진다.

삼각산 중흥사에서 과거준비를 하던 5세 천재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찬탈 수식을 듣고 책을 불사르고 전국을 떠돌다가 30대 초반 경주 남산 아래 용장사 부근에 서실을 짓고 금오신화 5편을 지었다 그것이 한문소설  [금오신화] 5편이다

 

 

귀로 로변에 세운 비에는 사육신을 명기 했으나 의문이다.

충의공김문기선생 사육신현창기념비

위의 게시판에 기문기를 넣은 것은  사육신공원을 조성하면서 김문기를 포함시키기로 햐면서 만든 비석으로 추정된다.

 

[김문기 해설]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AC%B8%EA%B8%B0

사육신 기준은 남효온의 '六臣傳'에 등재된 인물들을 기준으로 한다.

영화의 관객수가 천만명을 돌파했다니 기쁜 일이다. 관객들은 엄흥도의 의리에 매료된 덕분이라 한다. 의리란 정의를 말한다. 사회 정의가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거렬형을 당한 사육신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사육신중 아들을 둔 사람은 박팽년뿐이다. 삼족을 멸하던 시대였으니,,,. 박팽년 부인의 지혜가 감탄스럽다. 그 사연도 하단에 올린다.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2026/03/06/O7IDHS2AOVF33CGKYR2PUCDN7A/

 

‘왕사남’ 1000만명 돌파…역대 34번째, 한국영화 25번째

왕사남 1000만명 돌파역대 34번째, 한국영화 25번째

www.chosun.com

 

https://www.youtube.com/watch?v=9j0x61oKi1o

 

https://kydong77.tistory.com/22772

 

박팽년전朴彭年傳/ 남효온, 六臣傳

https://www.youtube.com/watch?v=m9NMuAi-tZ8 https://son13601.tistory.com/9303192 사육신 박팽년전朴彭年傳 朴彭年字仁叟。世宗朝登第。 宣德壬子。生員。甲寅親試。正統丁卯重試。與成三問等嘗任集賢殿。見重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qTMLk-stu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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