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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전
朴彭年傳 朴彭年字仁叟。世宗朝登第。 宣德壬子。生員。甲寅親試。正統丁卯重試。與成三問等嘗任集賢殿。見重於上。乙亥。光廟受禪。彭年知王事終不濟。臨慶會樓池欲自隕。三問固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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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德壬子。生員。甲寅親試。正統丁卯重試。與成三問等嘗任集賢殿。見重於上。
선덕(宣德) 임자년(1432, 세종 14)에 생원시에 입격하고, 갑인년(1434)에 친시(親試)에 급제하였으며, 정통(正統) 정묘년(1447, 세종 29)에 중시(重試)에 급제하였다. 성삼문(成三問) 등과 함께 일찍이 집현전(集賢殿)에 근무하며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乙亥。光廟受禪。彭年知王事終不濟。臨慶會樓池欲自隕。三問固止之曰。方今神器雖移。而尙有上王。我輩不死。猶且後圖。圖而不成。死亦未晩。今日之死。無益於國家。彭年從之。無何。出爲忠淸道觀察使。啓事於朝。不稱臣。但書曰某官某。朝廷不之知也。
"지금 비록 왕위(神器, 신기)가 옮겨갔으나 아직 상왕(단종)이 계시니, 우리들이 죽지 않고 남아 있다가 훗날을 도모해 봅시다. 도모하다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때 죽어도 늦지 않을 것이오. 오늘의 죽음은 국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하였다.
翌年。入爲刑曹參判。與三問及三問父勝,兪應孚,河緯地,李塏,柳誠源,金礩,權自愼等。謀復上王。時天使來。
다음 해에 박팽년이 조정으로 들어 와서 형조참판이 되니 성삼문 및, 삼문의 아버지 성승과 유응부,하위지,이개,유성원,김질,권자신등으로 더불어 상왕을 복위하기로 모의하고 그 때에 명나라 천사가 와 있었다.
光廟欲同上王請宴於昌德宮。彭年等謀曰。以勝及兪應孚爲別雲劍。當宴擧事。閉城門除羽翼。復立上王。謀已定。
適於其日。
세조가 상왕(단종)을 대동하고 천사를 청하여 창덕궁에서 연회를 베풀고자 했다. 팽년등이 모의하여 말하기를 성승 및 유응부로써 별운검을 삼고, 잔칫날에 거사하여 성문을 닫고 우익을 제거하여 단종을 다시 세우기로 하고 모의를 이미 정해 놓았거늘 마침, 그 날에
上命罷雲劍。世子亦以疾不從。應孚猶欲擧事。彭年,三問固止之曰。今世子在本宮。公之雲劍不用。天也。若擧事於此。而倘世子聞變。從景福宮動兵。則成敗未可知。不如俟他日。
세조가 운검을 파하라 명하니 세자 또한 질병으로써 연회석에 불참했다. 유응부는 이를 기회로 여기고 오히려 거사를 강행 하고자 하거늘 이에 박팽년과 성삼문이 완강하게 만류하고 말하기를,
지금, 세자가 본궁에 있고, 공의 운검을 쓰지 못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 하며 만약, 여기서 거사를 감행했다가 진실로 세자가 변이 일어났다 함을 듣고, 경복궁으로 좇아 군을 동원하여 온즉 성패를 가히 알 수가 없다하고 다른 날을 기다렸다가 거사를 실행함만 못하다 하거늘
應孚曰。事貴神速。若遲恐泄。今世子雖不來。羽翼皆在此。今日若盡誅之。衛上王號令。千載一時。不可失也。彭年,三問固不可曰。非萬全計也。遂止。
유응부가 말하기를 거사란 귀신처럼 신속하게 하는 것이 귀한 것이거늘 만약, 이 거사를 늦췄다가 모사가 누설 될까 두렵노라 하고 세자가 비록 이곳에 오지는 않았다 하나 그 우익이 다 여기에 있으니 오늘 모두 죽이고 상왕을 호위하고 호령을 하면 자연히 거사가 성사되리라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이 기회를 가히 놓칠 수 없다 한대, 팽년과 삼문이 완강하게 불가하다 하고 말하기를 만전의 계책이 아니라 하니 유응부가 마침내 거사감행을 철회하고 말았다.
金礩知事不成。馳與其妻父鄭昌孫謀曰。今世子不隨駕。特除雲劍。天也。不如先發告。僥倖得生。昌孫卽與礩馳。詣闕上變告曰。臣實不知。礩獨與焉。礩罪當萬死。
김질이 거사가 성공되지 못할 줄 알고 말을 타고 내달려 장인 정창손으로 더불어 모의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자가 어가를 따라오지 않고 특별히 운검을 제해 버린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먼저 이 거사를 발고하여 요행히 목숨을 얻는 것만 못하다 한대, 정창손이 즉시로 김질로 더불어 말을 타고 내달려 대궐에 나가 변고가 일어났음을 올려 말하기를 신은 진실로 모르옵고 김질만 홀로 그 거사에 참여 했습니다.김질의 죄는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上特赦礩,昌孫。收彭年等。辭服。上愛其才。密諭曰。汝能歸我。而諱初謀則得生。彭年笑而不答。稱上。必曰進賜。上令齪其口曰。汝旣稱臣於我。今雖不稱。無益也。
세조가 특별히 김질과 정창손을 사면해 주고 박팽년을 잡아 들여 자복하게 한대 세조가 박팽년의 재주를 아껴 은밀히 회유하여 말하기를 니가 나에게 돌아오고 처음에 거사 모의한 것만 숨기면 살 수가 있다 하거늘 팽년이 세조의 회유에 빙긋이 웃고 대답은 않고 세조를 일컬어 반듯이 말하기를 『나으리』라고 한대 세조가 이 말을 듣고 명령하여 박팽년의 입을 마구 후려치게 하고는 말하기를 니가 이미 나에게 신이라 칭하고 지금 와서 비록 신이라 칭하지 않았다 하나 이익이 없는 짓이니라
對曰。我是上王臣。豈爲進賜臣也。曾爲忠淸監司一年。凡於狀牘。未嘗稱臣。
박팽년이 이 말을 듣고 대답하기를 나는 이에 상왕의 신하이거늘 내가 어찌 “나으리”의 신하가 되리오? 일찍이 충청감사가 되어 나간지 일년에 무릇 장계를 올린 글에도 단, 한 번도 신이라 칭한 적이 없었다 하거늘
使人校其啓目。果無一臣字。弟大年子憲皆死。妻爲官婢。守節終身。憲中生員。亦正直。臨刑。顧謂人曰。毋以我爲亂臣。
세조가 사람으로 하여금 장계를 전부 비교하여 살펴보게 한대 과연 박팽년이 말 한 대로 한 글자의 신하신자가 없었다. 아우 대년과 아들 헌이 모두 죽고, 아내는 관비가 되어 몸을 마치도록 수절했다 헌중이 생원이 되어 또한 정직하더니 형에 임하여 돌아보며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날로 써 난신이라 하지 마시오? 하였다
金命重時爲禁府郞。私謂彭年曰。公何以致有此禍。
그 때에 김명중이 금부랑이 되어 사사로이 박팽년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은 어찌하여 이런 앙화가 이르게 되었습니까? 하니
嘆曰。中心不平。不得不爾。彭年性沈潛寡默。以小學律身。終日端坐。衣冠不解。令人起敬。
박팽년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속마음이 편치 못하여 어쩔 수가 없었느니라 박팽년의 천성이 침잠하고 과묵하여 소학으로써 몸을 다스리고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의관을 흩으리지 아니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공경심을 일으키게 했다
文章沖澹。筆法慕鍾,王云。光廟爲領議政。宴於府中。彭年有詩曰。廟堂深處動哀絲。萬事如今總不知。柳綠東風吹細細。花明春日正遲遲。先王大業抽金櫃。聖主鴻恩倒玉巵。不樂何爲長不樂。賡歌醉飽太平時。光廟愛賞之命繡板。懸諸府中壁上云。
문장은 담박하고 필법은 위(魏)나라의 종요(鍾繇)와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를 닮았다고 말들을 했다
翌年에 入爲刑曹參判하니 與三問及三問父勝과 兪應孚, 河緯地, 李塏, 柳誠源, 金質, 權自愼等으로謀復上王하고 時에 天使來라 光廟-欲同上王請宴於昌德宮한대 彭年等이 謀曰以勝及兪應孚로 爲別雲劍하고 當宴擧事하야 閉城門除羽翼하야 復立上王키로하고 謀已定이어늘 適於其日에
上이 命罷雲劍하라하니 世子亦以疾로 不從이라 應孚는 猶欲擧事어늘 彭年과 三問이 固止之하고 曰 今世子-在本宮하고 公之雲劍不用은 天也라하며 若擧事於此라가 而倘世子聞變하고 從景福宮으로 動兵則成敗를 未可知라하고 不如俟他日이라커늘
세조가 운검을 파하라 명하니 세자 또한 질병으로써 연회석에 불참했다. 유응부는 이를 기회로 여기고 오히려 거사를 강행 하고자 하거늘 이에 박팽년과 성삼문이 완강하게 만류하고 말하기를 지금, 세자가 본궁에 있고, 공의 운검을 쓰지 못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 하며 만약, 여기서 거사를 감행했다가 진실로 세자가 변이 일어났다 함을 듣고, 경복궁으로 좇아 군을 동원하여 온즉 성패를 가히 알 수가 없다하고 다른 날을 기다렸다가 거사를 실행함만 못하다 하거늘』
應孚曰事貴神速이어늘 若遲恐泄일까 하노라하고 世子-雖不來나 羽翼이 皆在此하니 今日盡誅之하고 衛上王號令하면 (여기에 自然成事 이 네글자가 누락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듦) 千載一時를 不可失也라한대 彭年三問이 固不可라하고 曰 非萬全之計라하니 遂止하다
유응부가 말하기를 거사란 귀신처럼 신속하게 하는 것이 귀한 것이거늘 만약, 이 거사를 늦췄다가 모사가 누설 될까 두렵노라 하고 세자가 비록 이곳에 오지는 않았다 하나 그 우익이 다 여기에 있으니 오늘 모두 죽이고 상왕을 호위하고 호령을 하면 자연히 거사가 성사되리라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이 기회를 가히 놓칠 수 없다 한대, 팽년과 삼문이 완강하게 불가하다 하고 말하기를 만전의 계책이 아니라 하니 유응부가 마침내 거사감행을 철회하고 말았다.
金礩이 知事不成하고 馳與其妻父鄭昌孫으로 謀曰今世子不隨駕하고 特除雲劍은 天也니이다 不如先發告하야 僥倖得生이라한대
김질이 거사가 성공되지 못할 줄 알고 말을 타고 내달려 장인 정창손으로 더불어 모의하여 말하기를 지금, 세자가 어가를 따라오지 않고 특별히 운검을 제해 버린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먼저 이 거사를 발고하여 요행히 목숨을 얻는 것만 못하다 한대,
昌孫이 卽與礩로 馳하야 詣闕하야 上變告曰臣實不知하고 礩獨與焉이니이다 礩罪는 當萬死로소이다
정창손이 즉시로 김질로 더불어 말을 타고 내달려 대궐에 나가 변고가 일어났음을 올려 말하기를 신은 진실로 모르옵고 김질만 홀로 그 거사에 참여 했습니다.김질의 죄는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上이 特赦礩昌孫하고 收彭年等하야 辭服케한대 上愛其才하야 密諭曰汝能歸我하고 而諱初謀則得生이라커늘 彭年이 笑而不答하고 稱上必曰進士라한대
세조가 특별히 김질과 정창손을 사면해 주고 박팽년을 잡아 들여 자복하게 한대 세조가 박팽년의 재주를 아껴 은밀히 회유하여 말하기를 니가 나에게 돌아오고 처음에 거사 모의한 것만 숨기면 살 수가 있다 하거늘 팽년이 세조의 회유에 빙긋이 웃고 대답은 않고 세조를 일컬어 반듯이 말하기를 『나으리』라고 한대
上이 令齪其口曰汝旣稱臣於我하고 今雖不稱이나 無益也니라
세조가 이 말을 듣고 명령하여 박팽년의 입을 마구 후려치게 하고는 말하기를 니가 이미 나에게 신이라 칭하고 지금 와서 비록 신이라 칭하지 않았다 하나 이익이 없는 짓이니라
對曰我是上王臣이어늘 豈爲進士臣也리오 曾爲忠淸監司一年에 凡於狀牘에 未嘗稱臣이라커늘
박팽년이 이 말을 듣고 대답하기를 나는 이에 상왕의 신하이거늘 내가 어찌 “나으리”의 신하가 되리오? 일찍이 충청감사가 되어 나간지 일년에 무릇 장계를 올린 글에도 단, 한 번도 신이라 칭한 적이 없었다 하거늘
使人校其啓目한대 果無一臣字라 弟大年과 子憲이 皆死하고 妻爲官婢하야 守節終身하다 憲中生員하야 亦正直이러니 臨刑에 顧謂人曰毋以我로 爲亂臣하라 金命重이 時에 爲禁府郞하야 私謂彭年曰公은 何以致有此禍오하니 歎曰中心이 不平하야 不得不爾니라 彭年의 性이 沈潛寡黙하야 以小學으로 律身하고 終日토록 端坐하야 衣冠을 不解하니 令人起敬이라 文章 은 沖澹하고 筆法은 慕鍾王云이러라
세조가 사람으로 하여금 장계를 전부 비교하여 살펴보게 한대 과연 박팽년이 말 한 대로 한 글자의 신하신자가 없었다. 아우 대년과 아들 헌이 모두 죽고, 아내는 관비가 되어 몸을 마치도록 수절했다 헌중이 생원이 되어 또한 정직하더니 형에 임하여 돌아보며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날로 써 난신이라 하지 마시오? 하였다 그 때에 김명중이 금부랑이 되어 사사로이 박팽년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은 어찌하여 이런 앙화가 이르게 되었습니까? 하니 박팽년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속마음이 편치 못하여 어쩔 수가 없었느니라 박팽년의 천성이 침잠하고 과묵하여 소학으로써 몸을 다스리고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의관을 흩으리지 아니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공경심을 일으키게 했다 문장은 담박하고 필법은 위(魏)나라의 종요(鍾繇)와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를 닮았다고 말들을 했다.』
光廟爲領議政에 宴於府中커늘 彭年이 有詩曰
세조(수양대군)가 영의정이 됨에 부중에서 잔치를 베풀거늘 박팽년이 시를 지어 이르길,
廟堂深處에 動哀絲하니 萬事如今摠不知로다
柳綠은東風吹細細하고 花明은春日正遲遲로다
先王大業은 抽金櫃하고 聖主鴻恩은 倒玉巵로다
不樂何爲長不樂가 更歌醉飽에 太平時로다.
廟堂深處動哀絲
묘당심처동애사 : 묘당 깊은 곳에 구슬픈 풍류소리 진동을 하니
萬事如今摠不知
만사여금총부지 : 만사가 지금과 같을 줄 도무지 알 수가 없도다
柳綠東風吹細細
류록동풍취세세 : 버들잎이 푸르른 것은 살랑살랑 부는 동녘 바람 때문이요
花明春日正遲遲
화명춘일정지지 : 꽃이 활짝 피는 것은 더디고 더딘 바로 봄날씨 때문이로다.
先王大業抽金櫃
선왕구업추금궤 : 선왕의 대업은 금궤에서 뽑아 낸 것이요
聖主鴻恩倒玉巵
성주홍사경옥치 : 성주의 큰 은혜는 옥 술잔을 기울임이로다
不樂何爲長不樂
불락하위장불락 : 즐겁지 않다하여 어찌하여 오래도록 즐기지 않을손가
賡歌醉飽太平時
갱가취포태평시 : 다시 노래 부르고 취하고 배부름에 태평한 시절이로다.
光廟愛賞之하야 命繡板하고 懸諸府中壁上云이러라
세조가 이 시를 사랑하여 감상에 젖어 목판에다 수를 놓으라 명하고 부중의 벽 위에다 걸어 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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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열전(淸白吏列傳) - 박팽년(朴彭年)
박 팽 년(朴 彭 年) 박팽년(朴彭年; 1407년∼1456년)의 자는 인수(仁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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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의 시
세조(世祖)가 단종(端宗)의 왕위(王位)를 빼앗으려 함에 의분을 느껴 다음과 같은 시(詩)을 지었다.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인들 뫼마다 옥이 나랴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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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世祖)가 단종(端宗)의 왕위(王位)를 빼앗으려 함에 의분을 느껴 다음과 같은 시(詩)을 지었다.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인들 뫼마다 옥이 나랴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님마다 쫓으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송죽(松竹) 같은 절개를 나타냈다.
세조(世祖)가 영상(領相)을 위한 부중(府中)의 잔치에서 박팽년(朴彭年)이 시를 지어 말하였다.
조정(朝廷)의 깊은 곳에서 슬픈 음악 소리가 들리고
만사를 모두 이제와서 모르는 것 같내
버들가지는 동풍(東風)이 불어 살살거리고
꽃이 만발한 봄날은 정이 더디기만 하네
선왕의 대업을 금궤어서 빼내어
성주(聖主)의 큰 은혜는 옥배를 넘어 뜨렸네
즐겁지 않으니 무엇이 길이 즐겁지 않게 하는가
합창 소리에 취하고 포식하니 태평세월인가
박팽년(朴彭年)이 옥중에 있을 때의 일이다.
김질(金瓆)이 세조(世祖)의 명(命)을 받고 술을 가지고 가서 태종(太宗)의 하여가(何如歌)로 넌지시 마음을 떠 보려 하니 그 대답으로 그의 굽힘이 없는 지조(志操)를 시(詩)로서 나타냈다.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오랴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그칠 줄이 아시랴 하였다.
이 울면서 아버지 중림(仲林)게 말하기를
『왕(王)에 충성(忠誠) 하려니 효(孝)에 어긋 난다고 말하니 중림(仲林)은 웃으며 말하기를 충성하지 않으면 효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출: 장능지」
박팽년(朴彭年)이 죽음에 이르러 임사시(臨死詩)가 있다.
擊鼓 催人命
격고 최인명 , 북을 치며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데
西山 日浴斜
서산 일욕사 , 서산에 해는 기울어지려고 하는구나
黃泉 知不遠
황천 지불원 , 황천 가는 길 멀지는 않은 줄 알지만
今夜 宿誰家
금야 숙수가 , 오늘밤은 누구의 집에서 잠을 자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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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박팽년 연려실기술 기록(정난에 죽은 신하들)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정난(靖難)에 죽은 여러 신하 박팽년(朴彭年) 박팽년은, 자는 인수(仁叟)이며, 호는 취금헌(醉琴軒)인데,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세종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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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박팽년전 해동잡록 기록(권별)
海東雜錄[一]○權鼈 本朝[一] 朴彭年 平陽人。字仁叟。性沈潛寡默。文章沖澹。筆法慕鍾王。我英廟朝再登第。與成三問等。同在集賢殿。及光廟丙子。爲刑曹參判。與成三問及河緯地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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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東雜錄[一]○權鼈 本朝[一]
朴彭年
平陽人。字仁叟。性沈潛寡默。文章沖澹。筆法慕鍾王。我英廟朝再登第。與成三問等。同在集賢殿。及光廟丙子。爲刑曹參判。與成三問及河緯地等。謀復魯山。與其弟大年及子憲皆死。公天性沈默。文章沖澹。不落中下人窠臼。常以小學律身。竟遭大禍。遺稿不傳。 本 我英廟朝文學之士。如朴仁叟成謹甫柳太初河仲章李伯高。皆擅名一時。而儕輩皆推仁叟集大成。以其經學文章俱優也 叢話 魯山癸酉。金宗瑞被誅。設宴于府中。朴彭年與焉。作詩云。廟堂深處動哀絲。萬事如今摠不知。柳綠東風吹細細。花明春日正遲遲。先王大業抽金櫃。聖主鴻恩倒玉巵。不樂胡爲長不樂。賡歌醉飽太平時。我光廟愛此詩。銘諸板懸于府中。後撤去之。 本傳 爲忠淸監司狀啓。不書臣字。受祿不食。封閉一庫。及事敗。光廟詰之曰。汝旣稱臣食祿。而復欲背之。反覆人也。彭年曰。吾未嘗稱臣食祿。使人校其啓目。果無一臣字。與弟大年及子憲皆死。妻爲官婢。守節終身。彭年臨刑顧謂人曰爾毋以我爲亂臣。我輩之死。非若癸酉之人焉。禁府郞金命中私謂彭年曰。公何不孝於君父。致有此禍。嘆曰。中心不平。不得不爾。 本傳 彭年之裔孫忠後居大丘爲賤役。府使朴應川落籍免役。宣廟初除職。同上 朴先生彭年有詩云。孰謂周公不以誠。冤無多少獻微爭。當年又未平斯憤。地下何顏更聖明。謂我光廟在潛邸。輔幼攝政之時。公將不利於孺子之意也。時人以朴先生庚字韻詩。爲速禍之本也。 雜記 我世宗時。朴彭年以集賢學士。買田於廣州。其友責之曰。祿足以代畊。買田何爲。彭年卽還賣之。其時士習可知。 儒先錄 乙亥光廟受禪。彭年知時事終不克濟。臨慶會樓池欲自殞。三問固止之曰。方今神器雖移。上尙爲上王。我等不死猶且後圖。圖而不成。死未晩也。今日之事。無益於國家。彭年從之。遂與三問潛謀。無何出爲忠淸監司。明年入爲刑曹參判。與三問及三問之父勝。武人兪應孚。文官河緯地李塏柳誠源金礩。上王之舅權自愼等。謀復上王。時天使來寓太平館。光廟欲同上王請使臣。宴於昌德宮。彭年等謀曰。以是日使勝及應孚爲別雲劍。當宴廳擧事。閉城門除羽翼。復上王猶反掌也。應孚曰。上與世子吾當之。餘在君等處之。謀已定。適於其日。上命罷雲劍不入。世子亦以疾不從。應孚猶欲入擊。三問彭年固止之曰。今世子在本宮。公之雲劍不用。是天也。若擧事於此。而世子從景福宮動兵。則成敗未可知也。不如俟他日擧事。應孚曰。事貴神速。若遲他日。則恐事泄。世子雖不在。其羽翼在此。今日盡誅之。奉上王號令。使武臣往彼除世子。千載一時。不可失也。彭年三問固不可曰。非萬全計也。遂止不發。金礩知事必不成。馳去與妻父鄭昌孫謀曰。今日世子不隨駕。特除雲劍。彭年三問止其謀。此天也。不如先發告僥倖得生。昌孫卽與礩馳詣闕。上變告曰。臣實不知。礩獨與焉。礩罪當萬死。上特赦礩。昌孫錄功。收彭年等辭服。上愛其才。密令人語彭年曰。汝能歸我而諱初謀。則得生。彭年笑而不答。稱上必曰進賜。 以宗室爲進賜方言也。 上使擊其口。曰汝旣稱臣於我。今雖不稱無益也。對曰彭年爲上王之臣。拜忠淸監司一年。啓目於進賜。未嘗稱臣也。我仁廟朝筵經官。韓澍啓曰。世祖於朴彰年等。心雖嘉之。而危疑之際。不得加罪。故嘗下敎曰。當代之亂臣。後世之忠臣。恐其泯滅於後世。故爲此微言。以曉後世子孫也。 幷東閣託 昌平縣令李公麟娶公女。生八男。曰黿。文科佐郞。曰鼉。生員無子。取黿子渤爲嗣。渤子憬胤。子大建進士。子時發判書。題剛仲家梅竹蓮海棠四詠云。剛仲吾執友。嗜好異尋常。竹愛霜餘靜。梅唫臘底香。水明搖凈植。▣溺泛崇光。揮洒閑中興。黃庭一兩章。 選 哭尹大提學淮詩云。孫桐祖栗繼箕裘。華國文章第一流。楊子夢中成吐鳳。庖丁眼底欠全牛。人間未畢抽金櫃。天上誰催記玉樓。惂悵九原難可作。遺書應傍茂陵求。 同上 題寒雲曉月圖詩云。紛紛衆卉覺芳辰。誰向窮陰風雪親。植物無知猶爾許。西山獨有採薇人。 同上 贈權秀才足下詩云。箕裘傳世業。才器冠群英。剛壓塵凡陋。偏憐山水淸。雪窓窮聖學。風月養詩情。愛得山人號。羞稱擧子名。雕蟲辭俗習。吐鳳擅雄聲。學海波瀾闊。詞鋒劍戟明。慚余拘鷁路。羡子展鵬程。拙句如燕山。那得得報瓊。 出大東詩林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정난(靖難)에 죽은 여러 신하
박팽년(朴彭年)
박팽년은, 자는 인수(仁叟)이며, 호는 취금헌(醉琴軒)인데,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세종 갑인에 문과에 오르고, 정묘에 중시에 뽑혔다. 병자에 형조 참판으로 아버지 판서중림(仲林)과 아우 네 사람과 아들 헌(憲) 등과 함께 모두 죽었다. 숙종 때에 시호를 충정(忠正)이라 내려 주고, 영조 무인(1758)에 이조 판서로 증직하였다.
○ 공은 성품이 침착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소학(小學)》책에 나오는 예법으로 몸을 단속하여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 의관을 벗지 아니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하였다. 문장이 온화하고 맑으며 필법은 종요(鍾繇)와 왕희지(王羲之)를 본받았다. 《추강집본전》
○ 공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충성심이 있어 명 나라의 천순(天順) 황제가 오랑캐에게 잡혔을 때에는 정침(正寢)에서 자지 않고 항상 지게문 밖에 짚자리를 깔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물으니 답하기를, “천자가 오랑캐 나라에 있어, 천하가 당황하니, 내가 비록 배신(陪臣)이나, 차마 마음이 편치 못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치재일기(耻齋日記)》 ○ 《무인기문(戊寅記聞)》에는 이것을 하위지의 말이라 하였고, 혹은 두 공이 다 행하였다 한다.
○ 집현전의 문학하는 선비에 신숙주ㆍ최항(崔恒)ㆍ이석형(李石亨)ㆍ정인지 등이 박팽년ㆍ성삼문ㆍ유성원ㆍ이개ㆍ하위지와 함께 모두 한때 이름을 날렸는데, 성삼문은 문란(文瀾)이 호방하나 시에는 재주가 짧고, 하위지는 대책(對策)과 소장(疏章)에는 능하나 시를 알지 못하고, 성원은 타고난 재주가 숙성하였으나, 견문이 넓지 못하고, 이개는 맑고 영리하여 발군의 재주가 있으며 시도 뛰어나게 맑았으나 제배들이 모두 팽년을 추앙하여 집대성(集大成)이라 하였으니, 그가 경학ㆍ문장ㆍ필법에서 모두 능함을 이름이다. 그러나, 모두 참화(慘禍)를 입어서 저술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 《용재총화》
○ 세조가 영의정이 되어서 부중(府中)에서 잔치하는데, 박팽년이 시를 짓기를,
廟堂深處動哀絲
묘당 깊은 곳에 풍악 소리 구슬프니
萬事如今摠不知
만사가 오늘에는 도무지 모를레라
柳綠東風吹細細
풍이 솔솔 불고 버들가지 푸르른데
花明春日正遲遲
꽃이 핀 밝은 봄날 길고 기네
先王大業抽金櫃
선왕이 이룬 대업은 금궤에 있는 책을 찾아 놓고
聖主鴻恩倒玉巵
성주의 큰 은혜는 옥잔에 취하도다
不樂何爲長不樂
즐기지 아니하고 어이하랴
賡歌醉飽太平時
취하고 배부르니 태평성대 노래하세
하였다. 세조가 그 시를 부중에 현판으로 걸게 하였다.
○ 세조가 육신들에게 형신할 때에 김질(金礩)을 시켜 술을 가지고 옥중에 가서 옛날 태종이 정몽주에게 불러준 노래를 읊어 시험하니, 성삼문은 정포은의 노래로 답하였고, 박팽년과 이개는 모두 스스로 단가(短歌)를 지어서 답하였다 한다.
○ 일찍이 단가(短歌)를 지어 이르되,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며,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임 마다 좇을소냐.” 하였다.
[金生麗水라 들 물마다 金이 나며
玉出崑崗이라 들 뫼마다 玉이 나며
女必從夫라 들 님마다 조츨소냐] 《추강집》
○ 공이 처형에 임하여 사람들을 돌아다보며 말하기를, “너희들은 우리들을 난신(亂臣)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들의 죽음은 계유년 때 사람(김종서 등을 말함)과 같지 않다.” 하였다.
금부랑김명중(金命重)이 사사로이 박팽년에게 말하기를, “공이 어찌 군부(君父)에게 불효를 저질러 이런 화를 당하는가.” 하니,
공이 탄식하되,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니 할 수 없다.” 하였다. 《추강집》
○ 공이 죽을 때에 아들 순(珣)의 아내 이씨(李氏)가 임신 중이었다.
대구(大邱)에 사는 교동(喬桐) 현감 이일근(李軼根)의 딸인데, 자청하여 대구로 갔다.
조정에서 명하기를, “아들을 낳거든 죽이라.” 하였다. 박팽년의 여종 또한 임신 중이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를, “주인이 딸을 낳으면 다행이요, 나와 똑같이 아들을 낳더라도 종이 낳은 자식으로 대신 죽게 하리라.” 하였는데,
해산을 하니, 주인은 아들을 낳고 종은 딸을 낳았다.
바꾸어 자기 자식을 삼고, 이름을 박비(朴婢)라 하였다.
장성한 뒤 성종조 때에 박순의 동서 이극균(李克均)이 본 도 감사로 와서 불러 보고 눈물을 씻으며 말하기를,
“네가 이미 장성하였는데, 왜 자수하지 않고 끝내 조정에 숨기는가.” 하며, 곧 자수시켰다.
임금이 특별히 용서하고 이름을 일산(壹珊)으로 고쳤다. 지금 박 동지(同知)충후(忠後)가 그 자손이다.
○《장빈호찬(長貧胡撰)》 《노릉지(魯陵誌)》
○ 부인 이씨(李氏)는 관비가 되어서 수절하며 평생을 마쳤다.
○ 공이 그 사위 이공린(李公麟)평안 감사 윤인(尹仁)의 아들이요, 재사당(再思堂) 원(黿)의 아버지이다. 을 맞던 날에 공청에서 물러 나와 묻기를, “납폐하였는가?” 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납폐는 하였지만 폐백을 대광주리에 담았으니, 이것이 무슨 무례인가요.”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내가 이 사람을 취한 것이 이 때문이요” 하였다. 《병자록》 ○ 공린이 무과를 하였는데, 장인에게 연좌되어 폐고(廢錮)되었다가 성종조에 서용되어 현령이 되었고 연산조(燕山朝)에 또 아들 원에 연좌되어 청주로 귀양갔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 뒤에 청주에 물러나서 살았다.
○ 공이 성삼문 등과 함께 집현전에서 번드는데, 세종이 친히 나와서 잔에 술을 부어 돌렸다. 공이 취하여 엎어져서 고꾸라지매, 세종이 비단 남빛 옷을 벗어서 덮어 주었다. 죽은 뒤에 공의 자손이 이 옷만을 여러 대 전하였는데, 임진왜란 때에 옷과 신주를 함께 땅에 묻었다가 왜적이 물러간 뒤에 파내어 보니, 신주는 완전하나 옷은 썩었다고 한다. 《병자록(丙子錄)》
○ 공의 후손 충후(忠後)가 대구에 살면서 천역에 들었는데, 부사박응천(朴應川)이 명부에서 빼어 천역을 면하게 하였고, 선조 초년에 관직을 제수하였다. 《동각잡기》
○ 선조가 하루는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박팽년이 일찍이 친구를 천거하였는데, 그 친구가 밭을 주려 하매, 박팽년이 말하기를, ‘친구간에 주고받는 것은 비록 거마라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옛 글이 있지마는 혐의스러우니 받을 수 없다.’ 하고, 거절하였다 하니, 이것이 청렴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하고 곧 명하여 그 자손을 녹용(錄用)하였다.
○ 공의 현손(玄孫) 계창(繼昌)이 선조 신미에 처음으로 녹용의 은전(恩典)을 입어서 소격서(昭格署)참봉을 제수 받았다. 일찍이 계창이 공의 기제사날 꿈에 여섯 사람이 사당 문 밖에 와서 서 있는 것을 보고 깨어나서 곧 여섯 분의 제사를 지냈다. 박숭장(朴崇章)이 기록한 것에 “한강(寒崗)정구(鄭逑)가 말하기를 ‘사대부 집에 훈공이 있어서 군을 봉한 조상은 의례 시조가 되어서 조천(祧遷)하지 않는 것인데, 지금 선생의 사업은 어찌 봉군뿐이겠는가’ 하며, ‘영원히 조천하지 말라’ 하였기 때문에, 정식(定式)삼았다.” 하였다.
○ 대대로 회덕(懷德)에 살다가, 뒤에 전의(全義)로 옮겼는데, 지금도 박동(朴洞)에 유지(遺址)가 있다. 《노릉지(魯陵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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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臣傳 - 南孝溫(1454-1492) - 秋江先生文集 卷之八 박팽년(朴彭年, 141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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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팽년
조선 전기의 문신 으로 사육신 의 1명. 본관은 순천 , 자는 인수(仁叟). 생애 충청도 회덕현 출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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