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최부(崔溥)의 자는 연연(淵淵)이요 나주인(羅州人)으로 호는 금남(錦南)이다. 문장에 능하여 문과와 문과중시에 거듭 급제하여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제주도에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갔다가, 부친상을 당하여 바다를 건너오다 풍랑을 만나 표류한 지 40일 만에 태주부(台州府) 임해현(臨海縣) 우두(牛頭) 외양(外洋) 땅에 배가 닿게 되었다.

당두채(塘頭寨) 천호(千戶)가 왜구(倭寇)라 무고하였으나 최보가 질문에 척척 응답하였으므로 화를 모면하였다. 항주(杭州)에 이르자, 삼사관(三司官)이 본국의 역대 흥망과 군현의 건치(建置), 산천ㆍ예악ㆍ인물에 대하여 매우 꼼꼼히 물었으나 최부의 대답이 마치 대를 쪼개듯 하므로, 삼사관이 모두 감탄하였다.

돌아오자 성종이 일기를 쓰도록 명하므로 이를 써서 바치니, 모두 3권이다. 최부의 시는 흔히 볼 수 없는데, 송사를 읽다[讀宋史]라는 시에,

挑燈輟讀便長吁 도등철독변장우

天地間無一丈夫 천지간무일장부

三百年中國土 삼백년중국토

如何付與老單于 여하부여노단우

등잔불 돋우고 다 읽고 나선 문득 긴 한숨 짓노니

중국 천지엔 대장부랄 사람 하나 없구나

삼백 년 내려온 중국 전토를

어쩌자고 늙은 선우에게 내어 주었나

하였다. 시가 침착하고 노련하니, 그 사람 됨됨이를 짐작할 만하다.

최보의 벼슬은 사간(司諫)인데 연산군 갑자년(1504)에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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