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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0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유병록 /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
딱, 뚜껑을 따듯
오리의 목을 자르자 붉은 고무 대야에 더 붉은 피가 고인다
목이 잘린 줄도 모르고 두 발이 물칼퀴를 젓는다
습관의 힘으로 버티는 고통
곧 바닥날 안간힘
오리는 고무 대야의 벽을 타고 돈다
피를 밀어내는 저 피의 힘으로 한때 오리는 구름보다 높이 날았다
죽은 바람의 뼈를 고향으로 운구하거나
노을을 끌고 둔드라 지대를 횡단하기도 하였다
그런 날로 돌아가자고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더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피
날고 헤엄치고 걷게 하던 힘이 쏟아진다
아니, 벌써 따듯한 호수에 도착했나
발아래가 방금 전까지 제 안쪽을 흘러 다니던 뜨거운 기운인 줄 모르고
두 발은 계속 물갈퀴를 젓는데
조금씩 느려지는데
오래 쓴 연필처럼 뭉뚝한 부리가 붉은 호수에 떠 있는 흰 병을 바라본다
한때는 제 몸통이었던 물체를
붉은 잉크처럼 쏟아지는 내용물을 본다
길고 길었던 여정이 이처럼 간단히 요약된다니!
목 아래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발 담갔던 호수들을 차례로 떠올리는 오리는
목이 마르다
흰 병은 바닥난 듯 잠잠하지만
가을이면그래도 몇 모금의 붉은 잉크가 더 쏟아질 것이다
심사평
생물의 마지막 순간 끈질기게 천착
예심에서 골라준 시 작품들 가운데서 다섯 분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거론했다. 성동혁의 '렌터카를 타고’ 외 4편은 장식적이거나 매끄럽지 않은 조립이 있지만 고통스러운 순간을 유희로 전환하는 유머가 돋보였다. 안웅선의 ‘미션스쿨의 하루’ 외 4편은 간혹 서사를 기록할 때 어색한 문장들이 들어있는 시편이 있었지만 미성숙한 사춘기 화자를 내세워 오히려 내면적 고투의 나날이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방법이 눈길을 끌었다.
강윤미의 ‘소심한 소녀의 소보루 굽기’외 4편은 암시성이 확장하는 폭은 좁았지만 지루한 일상에 발랄한 리듬과 어조의 고명을 얹어 아기자기한 서술이 되게 하는 상쾌함이 장점이었다. 박은지의 ‘서랍의 눈’ 외 4편은 시에 산문적이고 설명적인 언술들이 섞여 들었지만 한 가지 사물이나 현상을 끈질기게 해석해 보려는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가 눈길을 오래 머무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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