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옥전5

<끝>

 

5)稠坐蹤跡畢露 芳年妻妾俱歡

많은 사람들이 앉은자리에서 발자취가 죄다 드러나니 꽃다운 나이의 처첩들이 함께 기뻐하다

鍾玉還歸蓮亭, 金燭欲穗, 玉漏猶滴. 是月也, 公欲作九日之遊, 與賓僚會宴于東山之山, 擧州人內外遠近, 罔不從之而遊焉.

종옥이 연정으로 돌아오니, 촛불은 깜빡이고 물시계는 물방울은 아직도 떨어지고 있었다. 이달에, 김 공은 구일의 중양절 놀이를 준비하고자 하여, 빈객 관료들과 함께 동산 위에 모여 잔치를 하는데, 온 고을 사람과 관내 원근의 사람이 와서 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香娘謂鍾玉曰: “今日吉辰良, 使道設宴於東山, 管絃之嘔啞, 酒肉之狼藉, 前所未有. 願郞與余偕往, 參其宴觀其光如何?”향란이 종옥에게 물었다.

“오늘 같이 좋은 날, 사또께서 동산에 잔치를 베풀어, 관현의 연주가 요란하고 술과 안주가 낭자한 것이 전에는 없던 것입니다. 원컨대 낭군과 제가 함께 가서 잔치에 참여하여 그 광경을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鍾玉曰:“東山之宴, 樂則樂矣. 香娘之言, 美則美矣. 我鬼非人, 安能足躡華筵, 口喫珍饌?”

종옥이 대답했다.“동산이 잔치는 즐겁고도 즐거울 것이고, 너의 말은 아름답고도 아름답구나. 그러나 나는 귀신이지 사람이 아닌데, 어찌 능히 화려한 잔치자리에 발로 걸어갈 수 있으며, 입으로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겠느냐?”

香娘曰:“郎君何走隶 走束哉! 人不知吾之足之行之, 人不知吾之口之喫之, 吾旣鬼也, 人何疑乎?”

향란이 말했다.“낭군은 어찌 그리도 구차하십니까! 사람들은 우리들이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또 사람들은 우리들이 입으로 먹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이미 귀신인데 사람들이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遂與鍾玉騈肩聯步, 往東山之上. 百千種樂, 同時俱作, 稻麻吏民, 左右堵立, 老少雲集, 男女驂奔. 溪濱之畫鵠, 野谷之烏牛, 往來相續, 呼應不絶.

드디어 향란은 종옥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걸어서 동산 위의 잔치에 갔다. 온갖 풍악을 한꺼번에 연주하고, 수많은 관원과 고을사람들이 좌우에 도열하여 섰는데, 어른과 아이들이 구름같이 모였고, 남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시냇가의 그림 같은 따오기와 들 골짜기의 검은 소들은 왔다갔다하며 서로 이은 것이 호응되어 끊어지지 않았다.

水陸之品具備, 絲竹之音雜奏, 盃酌無巡, 觥籌交錯, 半醉半醒, 或歌或舞.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물품을 다 갖추었고, 현악과 관악이 어지럽게 연주되었다. 술잔이 무수히 돌아 반은 취하고 반은 깨어 있고, 혹은 노래를 부르고 혹은 춤을 추고 있었다.

於是香娘與鍾玉或先或後, 左瞻右顧, 謂鍾玉曰: “今日之遊何如? 此間不可無一詠也.”

이에 향란은 종옥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좌우를 돌아보다가, 종옥에게 말했다.“오늘의 놀음이 어떠합니까? 이러한 때에 시 한번 읊조림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香娘先吟一章詩曰:

향란이 먼저 시 한 수를 읊었다.

妓參安石會, 

기녀들이 동산의 잔치에 참여하니,

帽落孟公筵.

모자가 떨어졌다는 맹가의 주연이로고.

此日誰無會?

이날 누구인들 모이지 않았겠는가.

玆遊莫非天.

이 놀이야 하늘이 베푸심이라.

鍾玉和之曰:
종옥이 화답했다.

挿茱登絶頂,

수유를 꽃고 꼭대기에 올라,

泛菊醉華筵.

국화를 술잔에 띄우고 화려한 잔치에서 취하네.

佳節人間宴,

인간 잔치의 좋은 절기는

重陽霽後天.

중양절 비 갠 뒤의 날씨라네.

香娘謂鍾玉曰

향란이 종옥에게 물었다

:“人知人之樂, 而不知吾之嬉戱之樂, 吾喜吾之遊, 而未參之醉飽之筵.

吾今無形, 人旣不知, 則暗搜適口之物, 俾作充腸之味何如.”

.“사람들은 그들의 즐거움만 알지 우리 귀신들의 즐거운 장난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귀신도 우리들의 놀음만 기뻐하지 인간들의 마음껏 취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잔치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형체가 없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몰래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서 배를 채우는 맛을 아는 것이 어떠합니까?”

鍾玉曰:“雖然, 叔父在座, 諸賓參旁, 若或跡露而事泄, 則得不恐而畏乎?”

종옥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무방하나, 숙부가 자리에 계시고 여러 이 참여하고 있는 판에 만약 자취가 드러나고 일이 누설되면 두렵고도 두렵지 않겠느냐?”

香娘曰: “妾已料之審矣, 郎君勿慮也.”

향란이 말했다.“제가 이미 잘 살펴 놓았으니, 낭군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乃鍾玉彷徨乎南北, 逗遛乎東北, 或撤張三之盤肴, 或斟李四之樽醪, 相笑相戱, 旁若無人, 然而人皆黙黙, 視若不見. 鍾玉信其爲鬼, 心乃無疑, 惟意周行, 無處不到.

이에 향란은 종옥과 함께 남북으로 왔다갔다하고 동서로 기웃거리면서, 혹은 앞에 있는 소반의 안주를 거두어 담기도 하고 혹은 앞에 있는 술그릇의 술을 부어 맛보기도 하며, 서로 웃기도 하고 서로 희롱도 하니, 곁에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묵묵히 보고도 보지 못하는 듯이 했다. 종옥은 귀신이 된 줄로 믿고 마음속으로 전혀 의심하지 않으면서 오직 마음대로 돌아디니, 가보지 않는 곳이 없었다.

香娘曰:“吾觀使道之前, 嘉肴美酒, 香潔可口. 欲與郎君偕往而偕食也.”

향란이 말했다.“제가 사도 앞에 놓여 있는 맛있는 안주와 좋은 술을 보니, 향기롭고 깨긋해서 먹을 만했습니다. 낭군과 함께 가서 같이 먹고 싶습니다.”

鍾玉曰:“叔父雖不見知於我心, 獨不愧乎?”

종옥이 대답했다.“숙부가 비록 내 마음을 보거나 알지는 못하시겠지만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겠느냐?”

乃隨香娘幷坐於公之前, 或切肉而相啗, 或投果而相贈.

이에 종옥은 향란을 따라 김공 앞에 나란히 앉아서, 혹은 고기를 끓여 서로 먹여주고 혹은 과일을 집어 서로 주기도 하였다.

公忽起而把鍾玉之手曰:“汝非鍾玉乎! 胡爲乎來此? 汝狂耶? 非狂耶? 稠人列坐之宴, 何如是放縱無禮也.”

이때 김공이 갑자기 일어나 종옥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너는 종옥이 아니냐! 어찌하여 여기에 왔느냐? 네가 미쳤느냐? 미치지 아니하였느냐? 많은 사라들이 빽뺵히 벌여 앉은 잔치에 어찌하여 이와같이 제 멋대로이고 무례하느냐?”

一座皆大笑. 鍾玉不勝愧赧, 顧見香娘, 香娘已無去處. 已而西日將暮, 人影散亂, 公遂罷宴而歸.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종옥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향란을 돌아보니 향란은 이미 간 곳이 없었다. 조금 있으니 서쪽에는 해가 장차 저물고 사람의 그림자도 어지러이 흩어지니, 김공도 드디어 잔치를 파하고 돌아갔다.

是日鍾玉獨還蓮亭, 自嘆自責曰: “吾以未成之兒, 爲妖鬼所欺, 貽笑於衆人, 逢怒於叔父. 吾何面目復容於世乎?”

이날, 종옥은 홀로 연정에 돌아와 스스로 탄식하고 스스로 책망하며 말했다.“내가 성숙하지 못한 아이로서 요귀에게 속은 바가 되어, 여러 사람으로부터 웃음을 샀고, 숙부로부터 노여움을 만났으니 내 무슨 면목으로 다시 세상에 용납되겠는가?”

思之又思, 悅若南柯一夢, 而如從邯鄲枕中而來矣. 且憤且愧, 達宵不寐.

종옥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황당하기가 남가일몽(南柯一夢)과 같고, 한단의 베게 위에서 꿈을 깬 것과 같았으나,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여 밤이 새도록 자지 못했다.

明日, 公於衙退之後, 召鍾玉, 從容謂之曰: “吾觀汝之昨日行止, 吾觀汝之今日容貌, 邪色浮於天堂, 穢氣藏於膏肓, 汝無乃近昵鬼妖者耶?

다음날 김공은 관아(官)에서 물러나온 후에, 종옥을 불러 조용히 일렀다.“내가 너의 어제 행동거지를 보고, 너의 오늘 용모를 살피니, 한 기색이 얼굴에 어려 있고, 더러운 기운이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어 보이는데, 너는 요사이 요귀(妖鬼)를 가까이하지 않았느냐?

今若告實, 生可望矣, 如不吐情, 死可必矣. 與其不告而死, 孰若告之而生乎! 吾知降魔之術, 亦有招魂之符, 汝毋隱汝心, 汝毋諱汝言.”

지금 만약 사실을 말한다면 살기를 바랄 수 있지만, 만약 말하지 않는다면 죽기를 각오해야 하리라. 아뢰지 않고 죽기보다는 차라리 아뢰고서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나는 마귀를 항복시키는 술법을 알고 있고, 또한 혼백을 불러내는 부적도 갖고 있으니, 너는 너의 마음을 숨기지 말고, 또 너는 네가 해야 할 말을 꺼리지 말아라.”

鍾玉自度不得免, 避席端跪, 悉陳厥由.

종옥이 스스로 헤아려 보아도 죄를 면할 수 없을 것 같아, 자리를 옮겨 단정히 꿇어앉아 그 곡절을 다 말했다.

公曰:“怪哉怪哉! 殆哉殆哉! 我今招鬼, 汝第視之.”

이에 김공이 말했다.“괴이하고 괴이하며, 위태하고도 위태하다. 내 이제 귀신을 불러낼 터이니, 너는 그것을 보도록 해라.”

以玉麈麾打屛風而呼之, 有一美姝自屛後而出, 含嬌含羞, 拜於公之前. 鍾玉視之, 乃香蘭也.

김공이 옥으로 만든 먼지떨이 끝을 휘둘러 병풍을 치면서 부르니, 한 미인이 병풍 뒤로부터 나와서 교태를 머금고 수줍어하며 김공 앞에 와서 절을 하였다. 종옥이 보니 곧 향란이었다.

公指香蘭而謂鍾玉曰: “此鬼耶? 人耶? 此非鬼也, 乃吾之妓香蘭也.”

김공이 향란을 가리키며, 종옥에게 말했다.“이것이 귀신이냐? 사람이냐? 이것은 귀신이 아니라 바로 나의 향란이란다.”

公笑, 香蘭亦笑. 公曰: “古雖有色界上英雄節士之言, 豈有汝之甚者哉! 汝知香蘭之死而爲鬼, 而其蠱惑如此, 其在香蘭之生而爲人之時, 基沈溺可知也. 吾前春勸汝成婚, 而汝固辭不聽, 故吾使香蘭欲試汝心.

김공이 웃으니 향란도 또한 웃었다. 김공이 말했다.“옛부터 비록 색계상에는 영웅 절사가 없다고는 하나, 어찌 너처럼 심한 사람이 있겠느냐! 너는 향란이 죽어서 귀신이 되었음을 알고서도 그 미혹됨이 이와 같으니, 향란이 살아서 사람으로 있을 때에는 너의 빠져듦을 알 만하구나. 내가 지난 봄에 너에게 성혼하기를 권했는데도 네가 한사코 사양하고 듣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향란을 시켜 너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자 하였다.

汝自今以後, 更有辭婚之心耶! 香蘭之不死而死, 吾之所嗾而然也. 汝之非鬼而鬼者, 香蘭之所囮而然也.

 

너는 지금 이후로도 다시 혼인을 사양하는 마음이 있느냐? 향란이 죽지 않고서도 죽었다고 한 것은 내가 시켜서 그런 것이다. 네가 귀신이 아닌데도 귀신이라 한 것은 향란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런 것이다.
然而香蘭性旣溫和, 才又精敏, 汝勿以一時欺汝爲嫌, 憐而率之, 勿棄於有妻之後也.”

그러나 향란의 성품이 온화하고, 재주 또한 정교하고 민첩하다. 너는 한때에 너를 속였다고 해서 혐의를 두지 말고 가련하게 여겨 그녀를 거두어, 아내를 취한 후에도 버리지 말아라.”

且曰: “酒乃伐性, 色必敗身, 戒之戒之! 恒思基吹冷虀驚曲木之心也.”

또 말했다.“술은 성품을 헤치고, 은 반드시 몸을 망치게 하니, 경계하고 또 경계하여라. 염교()풀이 불어노는 찬바람에 쉽게 쓰러지고, 굽은 나무에 앉은 새가 놀라는 마음을 늘 생각하여라.”

是時, 家書復自京第而來. 云: “結婚於某處.”

이때 본댁의 편지가 서울 집으로부터 왔는데, ‘모처에 혼처가 정해졌다’고 씌여 있었다.

公以此意諭之, 種玉不敢出一言. 方爲上京, 

김공이 이러한 뜻을 타일러 알리니, 종옥은 감히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바야흐로 상경하려고 하는데,

香蘭謂種玉曰: “小妾雖奉使道之命而欺謾郎君, 小妾之罪大矣. 然勿爲槪懷宴爾, 新婚之後, 毋忘舊人也.”

향란이 종옥에게 말했다.“제가 비록 사도의 명을 받들어서 그랬다 하더라도, 낭군을 기만한 저의 죄는 큽니다. 그러나 숙부님 잔치 때의 일일랑 가슴에 품어두지 마시고, 신혼한 후에도 저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種玉曰: “今吾之速婚, 因汝而成之, 汝乃吾之良媒也.” 遂相笑而別.

종옥이 대답했다.“오늘 내가 빨리 결혼할 수 있게 됨은 너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니, 너는 바로 나의 좋은 중매인이로구나.”드디어 서로 웃으며 작별하였다.

種玉上京後, 擇日成禮於魯琮之女. 魯琮者, 爲時名卿, 權傾一朝矣. 種玉以香蘭仍以爲寵妾, 率吾一室, 門無河獅之吼, 家有阜螽之慶, 閨門淸肅, 上下和樂,

종옥이 상경한 후에 길일을 택하여 노종의 딸과 결혼하였다. 노종은 당시에 이름 있는 재상이며, 권세가 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종옥이 향란을 총애하는 첩으로 삼아서 한 집에 거느리고 살았다. 문에서는 서로 질투하여 큰 소리 나는 일도 없고, 집안에는 하는 경사가 이어지며, 안채에는 맑고 정숙하니, 상하가 서로 화락했다.

越明年, 種玉戰藝於京師, 登進士. 後二年, 選及第. 後十三年, 爲翰林學士. 賢而有文章, 有八男二女. 五男一女, 魯氏之所生也. 三男一女, 香娘之所生也. 基子孫皆仕於朝, 光顯矣, 而門名赫赫於一世, 世人皆爲奇之, 而傳之於記云. <東洋文庫本>

다음해에 종옥은 서울에서 재주를 다투었는데, 진사가 되었다. 이년 후에 급제하고, 십삼 년 후에 한림학사가 되었다. 어질면서도 문장을 짓는 재능이 있었으며, 팔남이녀를 두었다. 오남 일녀는 노씨가 낳았고, 삼남 일녀는 향란이 낳았다. 그 자손들은 모두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하고 덕망이 높았고 빛났다. 그리고 가문의 명예도 一世에 찬란하게 빛나서 세상사람들은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이에 기록하여 후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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