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 <종옥전>은 5회로 구성된 회장체소설이다. 인터넷에는 올라온 작품이 없어 내가 처음으로 올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원문의 오자를 바로잡는데 아래 책에서 도움을 받았다. 신해진님의 꼼곰한 원문주석과 번역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한다. 번역이 완성되는 대로 5회로 나눠 실을 예정이다. 먼저 1회분을 선보인다.
신해진,역주조선후기세태소설선,월인,1999.
종옥전1 鍾玉傳1
-목태림 睦台林
1)愛侄別起書樓 耽讀固辭婚禮조카를 사랑해 따로 서루를 지어주니 독서에 탐닉하여 혼례를 고사하다
雍正間, 楊州士人有金公者, 簪纓族也. 名聲振, 字而遠, 以能詩鳴於世. 兄之子鍾玉, 年纔二八, 容貌秀麗, 才藝工敏, 以長短之製, 亦稱於鄕, 妙章佳句, 傳播人口. 公鍾愛之, 敎勸不懈, 視同己子.
옹정년간 양주의 사인 김공은 잠영지족으로 이름은 성진(聲振)이고 자는 이원(而遠)인데 시에 능함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형의 아들 종옥은 나이 겨우 16세로 용모가 수려하고 재예가 공교 민첩하여 장단구의 지음으로 또한 향리에서 칭송되었고 절묘한 문장과 아름다운 구절은 인구에 전파되었다. 김공은 그를 사랑하여 가름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돌보기를 자기 자식 같이 했다.
丙子十九年春, 公仕原州, 鍾玉從之. 公至州之明年, 課農桑, 輕徭賦, 臨下以簡, 御衆以寬, 州民旣皆悅喜. 公於堂之北爲亭焉, 以爲鍾玉講習之所, 花階蓮潭, 極爲簫酒.
병자년 19년 봄에 공이 원주고을에 출사하여 종옥이 시종했다. 공은 원주에 이른 이듬해 농잠을 일삼게 하고 부역을 가볍게 하고, 아랫사람에 임하기를 간소히 하고 백성들 거느리기를 관대히 하니, 고을 백성들이 모두 기뻐했다. 김공은 정당의 북쪽에 정자를 짓고 종옥을 위한 강습소로 하여 꽃이 핀 계단에다 연꽃을 심은 연못에 극히 운치 있고 깨끗했다.
奧越明年, 鍾玉家書自京師至, 吏以時告公. 公於退之暇, 召鍾玉出示曰: “汝當束髮之歲, 而家書再至, 以爲結婚於某處, 汝往可也.”
이듬해 종옥의 가서가 서울에서 이르렀다고 아전이 공에게 알렸다. 김공은 퇴청 후 한가한 때에 종옥을 불러 편지를 꺼내어 보였다.“네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 가서가 다시 이르러 모처에 결혼하라고 하니 너는 서울로 감이 마땅하다.”
鍾玉避席再拜曰: “家書頻到, 父敎雖嚴, 小子年未及冠, 預欲成婚, 人倫之始, 雖云重矣, 夭札之萌, 亦可畏也. 佇待年壯而學就, 合巹行醮, 恐未晩也.”
종옥은 자리를 피하며 재배했다.“가서가 자주 오고 아버님의 가르침이 비록 엄할지라도 소자의 나이 약관에 미치지 못했고, 미리 성혼하여 인륜의 시작이 비록 중요하다 말할지라도 요절의 싹이 됨도 또한 두렵습니다. 나이 들어 장성하고 학문이 성취하기를 기다려 합환 초례해도 늦지 않을까 합니다.”
公拍案大笑曰: “汝來前, 吾語汝. 父母, 人之天地也, 婚姻, 禮之綱領也. 父母有命, 則可唯而無諾, 婚姻有時, 則可行而勿失. 且親年已高, 日迫桑楡, 汝以獨子, 尤宜早娶, 使佳兒佳婦, 共歡於膝下, 則悅親之孝, 孰過於此!”
김공은 책상을 치며 큰 소리로 웃었다.“너는 앞으로 오너라. 내 너에게 말하겠다. 부모는 사람에겐 천지와 같고 혼인은 예절의 강령이다. 부모님이 명하시면 ”예”라고 해야지 응락하는 것이 아니며, 혼인은 때가 있으니 행해야지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어버이 연세 이미 높고 해가 집 주위 뽕나무와 느릅나무에 바짝 다가왔으니[돌아가실 날이 머지 않으시니], 너는 외아들로 일직 혼인함이 더욱 마땅하다. 예쁜 아이와 아리다운 며느리로 하여금 슬하에 두고 함께 기뻐한다면 어버이를 기쁘게 하는 효로 무엇이 이보다 낫겠는가?”
鍾玉乃起而拜曰: “父母, 天地也, 而傳曰: 父母有非則諫. 婚姻, 綱領也, 而記曰: 年當三十則娶. 且孔子有三戒, 小子以血氣未定之兒, 豈不知聖師之戒乎? 是以區區恐不敢從命.” 公若是者三, 終不可誘, 而素愛其才, 不忍奪其志, 乃以此言書于京第.
종옥이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부모는 천지와 같다고 하셨지만 <서경>에서는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간하라.”고 했으며, 혼인은 강령이라지만 <예기>에는 “나이 서른이 되면 아내를 맞이하라.”고 했습니다. 공자님께서는 세 가지 경계[여색, 다툼, 탐욕]를 두셨는데 소자는 혈기 미정의 아이지만 어찌 성현의 경계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이런 구구한 일로 감히 명을 따르지 못하겠나이다.”공은 이와 같이 하기를 세 번이나 하였지만 끝내 더 권유할 수 없었고, 평소 그의 재주를 아끼는지라 차마 그의 뜻을 빼앗지 못하고 이런 말들을 적어 서울 본가에 편지를 보냈다.
是時鍾玉獨在蓮堂, 手不停披百家之編, 口不絶吟六藝之文, 焚油繼晷, 潛心靡懈, 匡山之十載磨杵, 廣川之三年下帷, 不足以喩其勤也. 鄕人相謂曰: “雖有絶代女, 難移鍾玉心.”
이때 종옥은 홀로 연당에서 손에 백가의 책을 놓지 않았고 입으로는 육예의 글 읊조림이 끊어지지 않았다. 새벽까지 등불을 밝히고 독서에 잠심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바늘을 만들려고] 광산에서 십 년간 절구를 갈고, [용맹정진하여] 광천에서 삼 년간 장막을 치고 지낸 것도 그의 부지런함에 비유하기에는 부족했다. 이웃사람들도 서로 말했다.“비록 절대가인이 있더라도 종옥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어려울 게야.”
春三月初八日, 公之誕日也. 備酒殽, 設妓樂, 與鍾玉登望月樓, 指點山川, 歷覽風物. 公先口占四韻詩曰:
춘삼월 초여드렛날은 김공의 생일이었다. 술과 안주를 갖추고 기악을 배설하여 종옥과 망월루에 올랐다. 산천을 가리키고 풍물을 두루 구경하다가 김공이 먼저 사운시를 지었다.
淸明桃李節, 복사꽃 피는 청명절에望月一層樓. 망월루 일층에 오르니且日如前歲, 오늘도 지난 해와 같아서今朝又此遊. 오늘 아침도 이렇게 노니네.擧頭瞻北關, 머리 들어 북쪽 궁궐 우러르고矚目俯南州. 눈독 들여 남쪽고을 내려다본다.花柳東溪雨, 꽃과 버들이 피어난 동쪽 시내에는 봄비 내리고牧童弄笛謳. 목동은 피리 불며 노래한다.
鍾玉起而拜謝, 走製古風長短句 一章曰: 종옥이 일어나 절하고는 고풍 장단구 일장을 지었다.
張樂携酒, 望月登樓. 기악 베풀고 술을 들고 망월루에 오르니天借百年間, 吉日地開. 하늘이 빌어준 백년에 길일에 땅이 열렸네.千里外勝, 郢門時逢. 천리 밖 승지 유람은 영도성문 시절을 만난 듯.初度交趾路, 出名區石瀉. 처음 원주길을 지나 돌틈에 물이 쏟아지는 명소에 나서니淸流白玉花, 含春意紅珠. 맑은 시냇가의 백옥 같은 꽃은 춘심을 머금은 붉은 구슬일레.斜陽路上, 問酒家何客. 해질 녘 길에서 술집을 묻는 자 누구인가?細雨溪邊, 吹葉樵童. 가는 비 내리는 시냇가엔 풀잎으로 피리 부는 초동들.煙沉芳草靑羅織, 風簸細柳碧絲濃. 노을 속 방초는푸른 비단 같고 바람에 하늘거리는 가는 버들은 푸른 실을 드리운 듯.抽毫濡墨, 含英咀華. 붓을 먹물에 적셔 아름다운 문장 짓네.桃李盈門, 今夕何夕. 복사꽃 오얏꽃 대문에 가득하니 오늘 밤은 어떤 밤인고?桑麻翳野, 千家萬家. 뽕나무와 삼대가 들을 가리우니 보이는 건 천가만호.四時佳景, 一幅錦囊.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은 한 폭의 비단주머니[시의 원고가 가득한 주머니]今日之樂, 樂且無央. 오늘의 즐거움, 즐겁고도 끝이 없어라.
公撫掌而笑曰: “奇哉! 汝之文章也.” 一詠三贊, 樂而忘返. 忽有一童妓, 抱綠綺琴, 故故進前, 時時拂絃, 暗中注目於鍾玉. 鍾玉知其意, 艴然變容.
김공은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웃었다.“기특하도다, 너의 문장이여!”한 번 읊조리고 세 번 칭찬하며 즐거워서 돌아가는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문득 한 동기가 녹의금을 안고 자주 앞으로 나아가 가끔 현을 켜며 몰래 종옥을 주목했다. 종옥은 그 뜻을 알고 발끈하여 얼굴빛을 바꾸었다.
公笑謂鍾玉曰: “今日汝心中得無妓乎? 汝但知書中之女, 不識琴中之妓也.”
김공은 웃으며 종옥에게 말했다.“오늘 너의 마음 속에 새겨 둔 기녀가 없는가? 너는 다만 책 속의 미인만 알지 거문고를 안은 기녀는 모르는구나.”
鍾玉低頭不答. 已而, 陰移階面, 露生荷心, 相隨下樓, 各歸其處. 公觀鍾玉, 潛心經傳, 不慕酒色, 嘉尙其志, 而以其年淺, 亦不强勸媒妁之說. 然欲使娼妓中絶妙者, 暗較其心未果.
종옥은 머리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달그림자 섬돌에 비치고 이슬이 연잎에 맺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누각을 내려와 각기 자기 처서로 돌아갔다.김공은 종옥이 경전에 잠심하여 주색을 멀리하는 그 뜻을 가상히 여기면서도 그의 나이가 어려서 또한 중매하는 말을 억지로 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창기 가운데 빼어나게 아름다운 아이로 하여금 몰래 그의 마음이 그렇지 않은 걸 시험하게 했다.
有童妓玉娘者, 姓玉, 名香蘭, 年甫十六. 才色俱妙, 以工於歌, 工於詩, 鳴於妓流. 遊人豪士, 願一見贈, 而艶態嬌言, 千金猶輕. 公命召而視, 雪膚花容, 果若人言. 公備述厥由, 香蘭含羞底眉, 微笑而退矣.
동기 옥랑은 성이 옥이고 이름이 향랑인데, 나이 열여섯에 재주와 미색이 모두 절묘하고 노래에 뛰어나고 시에 뛰어나 기녀들 사이에서 이름을 떨쳤다. 풍류를 즐기는 사내들과 호방한 선비들이 한 번 만나보기를 원하면, 그녀는 요염한 태도와 교태 떠는 말로 천금도 가볍게 여겼다. 김공이 불러보니 눈 같은 피부와 꽃 같은 얼굴은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았다. 김공이 부른 사유를 갖춰 설명하니 향란은 부끄러움울 머금고 아미를 숙이고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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