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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애[풋사랑]-울산 농장, 결혼-홍건적의 난에 피살, 인귀교환-명수 다해 영별. 이 작품은 세 차례에 걸친 만남과 이별의 변주곡이다.
2]이생, 최랑과 이별하다
1)이생의 행동이 탄로나 울주로 보내지다
一夕
(일석) : 어느 날 저녁에
李生之父
(이생지부) : 이생의 아버지가
問曰
(문왈) : 이생을 꾸짖으며 말하였다.
汝朝出而暮還者
(여조출이모환자) : "네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은
將以學先聖仁義之格言
(장이학선성인의지격언) : 옛 성인의 어질고 의로운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昏出而曉還
(혼출이효환) : 그런데 요즘은 저녁에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니,
當爲何事
(당위하사) : 이게 어찌 된 일이냐?
必作輕薄子
(필작경박자) : 반드시 경박한 놈들의 행실을 배워
踰垣牆
(유원장) : 남의 집 담을 넘어서
折樹壇耳
(절수단이) : 아가씨나 엿보고 다닐게다.
事如彰露
(사여창로) : 이런 일이 만일 탄로되면
人皆譴我敎子之不嚴
(인개견아교자지불엄) : 남들은 모두 내가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했다고 책망할 것이다.
而如其女
(이여기녀) : 또 그 처녀도
定是高門右族
(정시고문우족) :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라면
則必以爾之狂狡
(칙필이이지광교) : 반드시 네 미친 짓 떄문에
穢彼門戶
(예피문호) : 그 집안을 더럽히게 될 것이다.
獲戾人家
(획려인가) : 남의 집에 죄를 지었으니,
其事不小
(기사불소) : 이 일이 작지 않다.
速去嶺南
(속거영남) : 너는 빨리 영남으로 내려가서
率奴隷監農
(솔노례감농) : 종들을 데리고 농사나 감독하거라.
勿得復還
(물득복환) :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卽於翌日
(즉어익일) : 그 이튿날
謫送蔚州
(적송울주) : 이생의 아버지가 이생을 울주로 내려보냈다.
2)최랑이 상사병이 나다
女每夕
(녀매석) : 최랑은 저녁마다
於花園待之
(어화원대지) : 화원에서 이생을 기다렸지만,
數月不還
(수월불환) : 여러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女意其得病
(녀의기득병) : 최랑은 이생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여,
命香兒
(명향아) : 향아를 시켜
密問於李生之鄰
(밀문어이생지린) : 이생의 이웃들에게 물래 물어 보게 하였다.
鄰人曰
(린인왈) : 이웃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李郞
(이랑) : "이도령은
得罪於家君
(득죄어가군) : 그 아버지에게 죄를 지어
去嶺南
(거영남) : 영남으로 떠난 지가
已數月矣
(이수월의) : 벌써 여러 달이나 되었다오."
女聞之
(녀문지) : 최랑은 이 소식을 듣고
臥疾在床
(와질재상) : 병을 얻어 침상에 누웠다.
轉轉不起
(전전불기) : 엎치락뒤치락하며 일어나지 못하고,
水醬不入於口
(수장불입어구) : 음식도 먹지 못하였다.
言語支離
(언어지리) : 말도 앞뒤가 맞지 않았으며,
肌膚憔悴
(기부초췌) : 얼굴이 초췌해졌다.
父母怪之
(부모괴지) : 최랑의 부모가 이상하게 여겨
問其病狀
(문기병상) : 그 병의 증상을 물었지만,
喑喑不言
(암암불언) : 묵묵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搜其箱篋
(수기상협) :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더니,
得李生前日唱和詩
(득이생전일창화시) : 이생과 지난날에 주고받은 시들이 있었다.
擊節驚訝曰
(격절경아왈) : 최랑의 부모들이 그제야 놀라서 무릎을 치며 말하였다.
幾乎失我女子矣
(기호실아녀자의) : "어이구. 우리 딸자식을 잃어버릴 뻔했구려."
問曰
(문왈) : 그리고는 딸에게 물었다.
李生誰耶
(이생수야) : "이생이 누구냐?"
至是
(지시) : 이렇게 되자
女不能復隱
(녀불능부은) : 최랑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細語在咽中
(세어재인중) : 목구멍에서 겨우 나오는 소리로
告父母曰
(고부모왈) : 부모에게 아뢰었다.
父親母親(부친모친) :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鞠育恩深(국육은심) : 길러 주신 은혜가 깊으니,
不能相匿(불능상닉) : 어찌 사실을 슴기겠습니까?
竊念男女相感(절념남녀상감) : 저 혼자 생각해보니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끼는 것은
人情至重(인정지중) : 인정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합니다.
是以(시이) : 그러므로
摽梅迨吉
(표매태길) : '결혼할 좋은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말은
咏於周南
(영어주남) : "『시경(詩經)』의 주남(周南)편에도 나타나고,
咸腓之凶
(함비지흉) :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말은
刑於羲易
(형어희역) : 『주역(周易)』에서도 경계하였습니다.
自將蒲柳之質
(자장포류지질) : 저는 버들처럼 가냘픈 몸으로
不念桑落之詩
(불념상낙지시) : 얼굴빛이 시드는 것은 생각지 않고서
行露沾衣
(행로첨의) :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竊被傍人之嗤
(절피방인지치) : 옆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絲蘿托木
(사라탁목) : 새삼 덩굴이 다른 나무에 의지해서 살듯이
已作渭兒之行
(이작위아지행) : 저는 벌써 위당(渭塘)의 처녀 노릇을 가게 되었으니,
罪已貫盈
(죄이관영) : 죄가 이미 가득 차
累及門戶
(루급문호) : 집안에까지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然而彼狡童兮
(연이피교동혜) : 그러나 저 아름다운 도련님과
一偸賈香
(일투가향) : 한 번 정을 통한 뒤부터는
千生喬怨
(천생교원) : 도련님께 대한 원망이 천만 번 생기게 되었습니다.
以眇眇之弱軀
(이묘묘지약구) : 연약한 몸으로
忍悄悄之獨處
(인초초지독처) : 괴로움을 참으며 홀로 살아가려니,
情念日深
(정념일심) : 그리운 정은 나날이 깊어 가고
沈痾日篤
(침아일독) : 아픈 상처를 나날이 더해 가서
濱於死地
(빈어사지) :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將化窮鬼
(장화궁귀) : 이제는 원한 맺힌 귀신으로 화(化)해 버릴 것 같습니다.
父母如從我願
(부모여종아원) : 부모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終保餘生
(종보여생) : 남은 목숨을 보존하게 되고,
倘違情款
(당위정관) : 이 간절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斃而有已
(폐이유이) :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當與李生
(당여이생) : 이생과
重遊黃壞之下
(중유황괴지하) : 저승에서 다시 만나 노닐지언정,
誓不登他門也
(서불등타문야) : 맹세코 다른 가문에는 오르지 않겠습니다.ꡓ
於是
(어시) : 그러자
父母已知其志
(부모이지기지) : 부모도 이미 그의 뜻을 알았으므로
不復問病
(불부문병) :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았다.
且警且誘
(차경차유) : 타이르고 달래면서
以寬其心
(이관기심) :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3]끊어진 사랑이 이어지다
1)이랑집에 중매를 보내 성혼, 이생 문과급제하여 입신양명하다
復修媒妁之禮
(복수매작지례) : 그리고는 중매쟁이의 예를 갖추어
問于李家
(문우이가) : 이생의 집으로 보냈다.
李氏問崔家門戶優劣曰
(이씨문최가문호우열왈) : 이생의 아버지가 최씨 집안이 얼마나 번성한지 물은 뒤에 말하였다.
吾家豚犬
(오가돈견) : "우리 집 아이가
雖年少風狂
(수년소풍광) : 비록 어린 나이에 바람이 났지만,
學問精通
(학문정통) : 학문에 정통하고
身彩似人
(신채사인) : 사람답게 생겼소.
所冀捷龍頭於異日
(소기첩용두어이일) : 앞으로 장원급제할 것이며
占鳳鳴於他年
(점봉명어타년) : 훗날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니,
不願速求婚媾也
(불원속구혼구야) : 서둘러 혼처를 정하고 싶지 않소."
媒者
(매자) : 중매장이가
以言返告
(이언반고) : 돌아가서 그대로 아뢰자,
崔氏復遣曰
(최씨복견왈) : 최씨가 다시 중매인을 이씨 집으로 보내어 말하게 하였다.
一時朋伴
(일시붕반) : "한 시대의 친구들이
皆稱令嗣才華邁人
(개칭령사재화매인) : 모두들 '그 댁의 영식(令息)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다'고 칭찬하였습니다.
今雖蟠屈
(금수반굴) : 아직은 또아리를 틀고 있지만,
豈是池中之物
(기시지중지물) : 어찌 끝까지 연못 속에 잠겨만 있겠습니까?
宜速定嘉會之晨
(의속정가회지신) : 빨리 혼삿날을 정해
以合二姓之好
(이합이성지호) : 두 집안의 즐거움을 이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媒者
(매자) : 중매쟁이가
又以其言
(우이기언) : 또 그 말을
返告李生之父
(반고이생지부) : 돌아가서 이생의 아버지에게 전하였더니,
父曰
(부왈) : 이생의 아버지가 말하였다.
吾亦自少
(오역자소) : "나도 젊었을 때부터
把冊窮經
(파책궁경) : 책을 잡고 학문을 닦았지만,
年老無成
(년노무성) : 나이 늙도록 성공하지 못하였소.
奴僕逋逃
(노복포도) : 종들도 흩어지고
親戚寡助
(친척과조) : 친척의 도움도 적어,
生涯疎闊
(생애소활) : 생업이 신통치 않고
家計伶俜
(가계령빙) : 살림도 궁색해졌소.
而況巨家大族
(이황거가대족) : 그러니 문벌 좋고 번성한 집안에서
豈以一人寒儒
(기이일인한유) : 어찌 한갓 빈한한 선비를
留意爲贅郞乎
(유의위췌랑호) : 사위로 삼으려 하시겠소?
是必好事者
(시필호사자) : 이는 반드시 일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過譽吾家
(과예오가) : 우리 집안을 지나치게 칭찬해서
以誣高門也
(이무고문야) : 귀댁을 속이려는 것일 거요."
媒又告崔家
(매우고최가) : 중매쟁이가 돌아와서 또 최씨 집안에 전하자.
崔家曰
(최가왈) : 최씨 집안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納采之禮
(납채지례) : "예물 드리는 모든 절차와
漿束之事
(장속지사) : 옷차림은
吾盡辨矣
(오진변의) : 모두 저희 집에서 갖추겠습니다.
宜差穀旦
(의차곡단) : 좋은 날을 가려서
以定花燭之期
(이정화촉지기) : 화촉의 시기만 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媒者
(매자) : 중매쟁이가
又返告之
(우반고지) : 또 돌아가서 이 말을 전하였다.
李家至是
(이가지시) : 이씨 집안에서도 이렇게까지 되자
稍回其意
(초회기의) : 뜻을 돌려,
卽遣人
(즉견인) : 곧 사람을 보내어
召生問之
(소생문지) : 이생을 불러다 그의 생각을 물었다.
生喜不自勝
(생희부자승) : 이생을 스스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乃作詩曰
(내작시왈) : 곧 시 한 수를 지었다.
破鏡重圓會有時
(파경중원회유시) : 깨어진 거울이 다시 둥글게 되니 만남도 때가 있어
天津烏鵲助佳期
(천진오작조가기) : 은하의 까마귀와 까치들이아름다움 기약을 도와주었네.
從今月老纏繩去
(종금월노전승거) : 이제야 월하노인(月下老人)이 붉은 실을 잡아매었으니
莫向東風怨子規
(막향동풍원자규) : 봄바람이 건듯 불더라도 소쩍새를 원망 마소.
女聞之
(여문지) : 최랑이 이 시를 듣고는
病亦稍愈
(병역초유) : 병도 차츰 나아져,
又作詩曰
(우작시왈) : 자기도 시를 지었다.
惡因緣是好因緣
(악인연시호인연) : 나쁜 인연이 바로 좋은 인연이던가?
盟語終須到底圓
(맹어종수도저원) : 그 옛날 맹세가 마침내 이루어졌네.
共輓鹿車何日是
(공만녹차하일시) : 어느 때나 님과 함께 작은 수레를 끌고 갈까?
倩人扶起理花鈿
(천인부기리화전) : 아이야, 나를 일으켜 다오 꽃비녀를 손질하련다.
於是
(어시) : 이에
擇吉日
(택길일) : 좋은 날을 가려
遂定婚禮
(수정혼례) : 마침내 혼례를 이루니,
而續其絃焉
(이속기현언) :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自同牢之後
(자동뢰지후) :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
夫婦愛而敬之
(부부애이경지) : 서로 사랑하면서도 공경하여
相待如賓
(상대여빈) : 마치 손님처럼 대하니,
雖鴻光鮑桓
(수홍광포환) : 비록 양홍 . 맹광이나 포선(鮑宣).환소군(桓少君)이라도
不足言其節義也
(부족언기절의야) :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가 없었다.
生翌年
(생익년) : 이생이 이듬해
捷高科
(첩고과) : 문과에 급제하여
登顯仕
(등현사) : 높은 벼슬에 오르자,
聲價聞于朝著
(성가문우조저) : 그의 이름이 조정에 알려졌다.
4]최랑,홍건적의 난에 정조를 지켜 목숨을 잃다
辛丑年
(신축년) : 신축년(1361)에
紅賊據京城
(홍적거경성) : 홍건적이 서울을 점거하자
王移福州
(왕이복주) : 임금은 복주(福州)로 피난 갔다.
賊焚蕩室廬
(적분탕실려) : 적들은 집을 불태워 없애버렸으며,
臠炙人畜
(련자인축) : 사람을 죽이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夫婦親戚
(부부친척) : 부부와 친척끼리도
不能相保
(불능상보) : 서로 보호하지 못했고
東奔西竄
(동분서찬) :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各自逃生
(각자도생) : 제각기 살길을 찾았다.
生挈家
(생설가) : 이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隱匿窮崖
(은닉궁애) : 외진 산골로 숨었는데,
有一賊
(유일적) : 한 도적이
拔劍而逐
(발검이축) : 칼을 빼어들고 뒤를 쫓아왔다.
生奔走得脫
(생분주득탈) : 이생은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女爲賊所虜
(여위적소로) : 최랑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欲逼之
(욕핍지) : 도적이 최랑의 정조를 빼앗으려 하자,
女大罵曰
(여대매왈) : 최랑이 크게 꾸짖었다.
虎鬼殺啗我
(호귀살담아) : "창귀같은 놈아. 나를 죽여 먹어라.
寧死葬於豺狼之腹中
(영사장어시랑지복중) : 내 차라리 죽어서 시랑(豺狼)의 밥이 될지언정
安能作狗彘之匹乎
(안능작구체지필호) : 어찌 개돼지 같은 놈의 짝이 되겠느냐?"
賊怒
(적노) : 도적이 노하여
殺而剮之
(살이과지) : 최랑을 죽이고 살을 도려내었다.
生竄于荒野
(생찬우황야) : 이생은 거친 들판에 숨어서
僅保餘軀
(근보여구) : 겨우 목숨을 보전하다가,
聞賊已滅
(문적이멸) : 도적이 이미 다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遂尋父母舊居
(수심부모구거) : 부모님이 사시던 옛집을 찾아갔다.
其家已爲兵火所焚
(기가이위병화소분) : 그러나 그 집은 이미 싸움 통에 불타 없어졌다.
又至女家
(우지녀가) : 또 최랑의 집에도 가보았더니
廊廡荒凉
(랑무황량) : 행랑채는 황량했으며,
鼠喞鳥喧
(서즐조훤) : 쥐와 새들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悲不自勝
(비부자승) : 이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登于小樓
(등우소루) : 작은 누각으로 올라가서
收淚長噓
(수루장허) : 눈물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奄至日暮
(엄지일모) : 날이 저물도록
塊然獨坐
(괴연독좌) : 우두커니 홀로 앉아
佇思前遊
(저사전유) :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니
宛如一夢
(완여일몽) :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5]이생, 최랑의 환신과 만나다
將及二更
(장급이경) : 이경쯤 되자
月色微吐
(월색미토) : 달빛이 흐릿하게 토하여
光照屋梁
(광조옥량) : 빛이 들보를 비추는데
漸聞廊下有跫然之音
(점문랑하유공연지음) : 낭하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自遠而近
(자원이근) :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이 다가왔다.
至則崔氏也
(지칙최씨야) : 이르고 보니 바로 최랑이었다.
生雖知已死
(생수지이사) : 이생은 그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愛之甚篤
(애지심독) :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에
不復疑訝
(부복의아) : 의심하지도 않고
遽問曰
(거문왈) : 급히 물어 보았다.
避於何處
(피어하처) : "당신은 어디로 피난 가서
全其軀命
(전기구명) : 목숨을 보전하였소?"
女執生手
(여집생수) : 여인이 이생의 손을 잡고
慟哭一聲
(통곡일성) : 한바탕 통곡하더니,
乃敍情曰
(내서정왈) : 이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妾本良族
(첩본량족) : "저는 본디 양가의 딸로서
幼承庭訓
(유승정훈) :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工刺繡裁縫之事
(공자수재봉지사) : 수놓기와 바느질에 힘썼고,
學詩書仁義之方
(학시서인의지방) : 시서(詩書)와 예법을 배웠어요.
但識閨門之治
(단식규문지치) : 그래서 규방의 법도만 알뿐이지,
豈解境外之修
(기해경외지수) : 그 밖의 일이야 어찌 알겠어요?
然而一窺紅杏之墻
(연이일규홍행지장) : 마침 당신이 붉은 살구꽃이 핀 담 안을 엿보았으므로,
自獻碧海之珠
(자헌벽해지주) : 제가 푸른 바다의 구슬을 바친 거지요.
花前一笑
(화전일소) : 꽃 앞에서 한번 웃고
恩結平生
(은결평생) : 평생의 가약을 맺었고,
帳裏重遘
(장리중구) : 휘장 속에서 다시 만날 때에는
情愈百年
(정유백년) : 정이 백년을 넘쳤었지요.
言至於此
(언지어차) :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悲慙曷勝
(비참갈승) : 슬프고도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군요.
將謂偕老而歸居
(장위해로이귀거) : 장차 백년을 함께 하자고 하였는데,
豈意橫折而顚溝
(기의횡절이전구) : 뜻밖에 횡액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終不委身於豺虎
(종불위신어시호) : 늑대 같은 놈들에게 끝까지 정조를 잃지 않았지만,
自取磔肉於泥沙
(자취책육어니사) : 제 몸은 진흙탕에서 찢겨졌답니다.
固天性之自然
(고천성지자연) : 천성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匪人情之可忍
(비인정지가인) : 인정으로야 어찌 그럴 수 있었겠어요?
却恨一別於窮崖
(각한일별어궁애) : 저는 당신과 외딴 산골에서 헤어진 뒤에
竟作分飛之匹鳥
(경작분비지필조) : 짝 잃은 새가 되었었지요.
家亡親沒
(가망친몰) :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으니,
傷殢魄之無依
(상체백지무의) : 피곤한 혼백을 의지할 곳도 없는 게 한스러웠답니다.
義重命輕
(의중명경) : 절의(節義)는 중요하고 목숨은 가벼우니,
幸殘軀之免辱
(행잔구지면욕) : 쇠잔한 몸뚱이일망정 치욕을 면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지요.
誰憐寸寸之灰心
(수련촌촌지회심) : 그러나 마디마디 끊어진 제 마음을 그 누가 불쌍하게 여겨 주겠어요?
徒結斷斷之腐腸
(도결단단지부장) : 한갓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이지요.
骨骸暴野
(골해폭야) : 해골은 들판에 내던져졌고
肝膽塗地
(간담도지) : 간과 쓸개는 땅바닥에 널려졌으니,
細料昔時之歡娛
(세료석시지환오) : 가만히 옛날의 즐거움을 생각해 보면
適爲當日之愁寃
(적위당일지수원) : 오늘의 슬픔을 위해 있었던 것 같군요.
今則鄒律已吹於幽谷
(금칙추률이취어유곡) :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오기에,
倩女再返於陽閒
(천녀재반어양한) : 저도 이승으로 돌아왔지요.
蓬萊一紀之約綢繆
(봉래일기지약주무) : 봉래산 십이년의 약속이 얽혀 있고
聚窟三生之香芬郁
(취굴삼생지향분욱) : 삼세(三世)의 향이 향그러우니,
重契闊於此時
(중계활어차시) :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期不負乎前盟
(기부부호전맹) :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어요.
如或不忘
(여혹불망) : 당신이 지금도 그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면,
終以爲好
(종이위호) : 저도 끝까지 잘 모시고 싶답니다.
李郞其許之乎
(이랑기허지호) : 당신도 허락하시겠지요?"
生喜且感曰
(생희차감왈) : 이생이 기쁘고도 고마워하며 말하였다.
固所願也
(고소원야) : "그게 애당초 내 소원이오."
相與款曲抒情
(상여관곡서정) : 그리고는 서로 정답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言及家産被寇掠有無
(언급가산피구략유무) : 재산을 얼마나 도적들에게 빼앗겼는지 이야기가 나오자,
女曰
(녀왈) : 여인이 말하였다.
一分不失
(일분부실) : "조금도 잃지 않고
埋於某山某谷也
(매어모산모곡야) :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묻어 두었답니다."
又問
(우문) : 이생이 또 물었다.
兩家父母骸骨安在
(양가부모해골안재) :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어디에 모셨소?"
女曰
(여왈) : 여인이 말하였다.
暴棄某處
(폭기모처) : "어느 곳에다 그냥 버려 두었지요."
敍情罷
(서정파) : 정겨운 이야기를 끝낸 뒤에
同寢極歡如昔
(동침극환여석) :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明日
(명일) : 이튿날
與生俱往尋瘞處
(여생구왕심예처) : 여인이 이생과 함께 자기가 묻혀 있던 곳을 찾아갔는데,
果得金銀數錠及財物若干
(과득금은수정급재물약간) : 과연 금과 은 몇 덩어리가 있었고, 물도 약간 있었다.
又得收拾兩家父母骸骨
(우득수습양가부모해골) :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고
貿金賣財
(무김매재) : 금과 재물을 팔아
各合葬於五冠山麓
(각합장어오관산록) : 각각 오관산 기슭에 합장하였다.
封樹祭獻
(봉수제헌) :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皆盡其禮
(개진기례) : 예절을 모두 다 마쳤다.
其後
(기후) : 그 뒤에
生亦不求仕官
(생역불구사관) : 이생도 또한 벼슬을 구하지 않고
與崔氏居焉
(여최씨거언) : 최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幹僕之逃生者
(간복지도생자) : 목숨을 구하려고 달아났던 종들도
亦自來赴
(역자래부) : 또한 스스로 돌아왔다.
生自是以後
(생자시이후) : 이생은 이때부터
懶於人事
(라어인사) :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으며,
雖親戚賓客賀弔
(수친척빈객하조) : 아무리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가 있더라도
杜門不出
(두문불출) : 방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常與崔氏
(상여최씨) : 언제나 최씨와 더불어
或酬或和
(혹수혹화) :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琴瑟偕和
(금슬해화) : 금실 좋게 지내었다.
6]이생, 최랑과 영별하다
荏苒數年
(임염수년) : 그럭저럭 몇 년이 지난
一夕
(일석) : 어느 날 저녁에
女謂生曰
(녀위생왈) :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三遇佳期
(삼우가기) : "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世事蹉跎
(세사차타) :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歡娛不厭
(환오불염) :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哀別遽至
(애별거지) : 슬프게 헤어져야만 하겠어요."
遂嗚咽
(수오인) : 여인이 목메어 울자
生驚問曰
(생경문왈) : 이생이 놀라면서 물었다.
何故至此
(하고지차) : "어찌 이렇게 되었소?"
女曰
(녀왈) : 여인이 대답하였다.
冥數不可躱也
(명수불가타야) :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답니다.
天帝以妾與生
(천제이첩여생) :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의
緣分未斷
(연분미단) :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又無罪障
(우무죄장) : 또 전생에 아무런 죄도 지지 않았다면서,
假以幻體
(가이환체) : 이 몸을 환생시켜
與生暫割愁腸
(여생잠할수장) : 당신과 잠시라도 시름을 풀게 해주었었지요.
非久留人世
(비구류인세) : 그러나 제가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면서
以惑陽人
(이혹양인) :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
命婢兒進酒
(명비아진주) : 그리고는 몸종 향아를 시켜서 술을 올리게 하고는,
歌玉樓春一闋
(가옥루춘일결) : 「옥루춘곡(玉樓春曲)」에 맞추어 노래 한 가락을 지어 부르며
以侑生
(이유생) : 이생에게 술을 권하였다.
歌曰
(가왈) : 노래는 이러했다
干戈滿目交揮處
(간과만목교휘처) : 칼과 창이 어우러져 싸움이 가득한 판에
玉碎花飛鴛失侶
(옥쇄화비원실려) : 옥 부서지고 꽃 떨어지니 원앙도 짝을 잃었네.
殘骸狼籍竟誰埋
(잔해랑적경수매) : 흩어진 해골을 그 누가 묻어 주랴.
血汚遊魂無與語
(혈오유혼무여어) : 피에 젖어 떠도는 혼이 하소연할 곳도 없었네.
高唐一下巫山女
(고당일하무산녀) : 무산의 선녀가 고당에 한번 내려온 뒤에
破鏡重分心慘楚
(파경중분심참초) : 깨어진 종(鐘)이 거듭 갈라지니 마음 더욱 쓰라려라.
從玆一別兩茫茫
(종자일별양망망) : 이제 한번 작별하면 둘이 서로 아득해질 테니
天上人間音信阻
(천상인간음신조) : 하늘과 인간세상 사이에 소식마저 막히리라.
每歌一聲
(매가일성) : 노래를 한마디 부를 때마다
飮泣數下
(음읍수하) : 눈물이 자꾸 내려
殆不成腔
(태불성강) :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하였다.
生亦悽惋不已曰
(생역처완불이왈) :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하며 말하였다.
寧與娘子
(영여낭자) :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同入九泉
(동입구천) : 황천(荒天)으로 갈지언정
豈可無聊獨保殘生
(기가무료독보잔생) : 어찌 무료하게 홀로 여생을 보전하겠소?
向者
(향자) : 지난 번
傷亂之後
(상난지후) : 난리를 겪고 난 뒤에
親戚僮僕
(친척동복) : 친척과 종들이 저마다
各相亂離
(각상난리) : 서로 흩어지고
亡親骸
(망친해) :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狼籍原野
(랑적원야) : 들판에 내버려져 있었는데,
儻非娘子
(당비낭자) : 당신이 아니었다면
誰能奠埋
(수능전매) : 그 누가 장사를 지내 드렸겠소?
古人云
(고인운) : 옛 사람 말씀에,
生事之以禮
(생사지이례) :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死葬之以禮
(사장지이례) : 돌아가신 뒤에는 예로써 장사지내라' 하셨는데,
盡在娘子
(진재낭자) : 이런 일을 모두 당신이 감당해 주었소.
天性之純孝
(천성지순효) : 당신은 정말 천성이 효성스럽고
人情之篤厚也
(인정지독후야) : 인정이 두터운 사람이오.
感激無已
(감격무이) : 나는 당신에게 고맙기 그지없고,
自愧可勝
(자괴가승) :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소.
願娘子
(원낭자) : 원하기는 당신도
淹留人世
(엄류인세) : 인간 세상에 더 오래 머물다가
百年之後
(백년지후) : 백년 뒤에
同作塵土
(동작진토) : 나와 함께 티끌이 되었으면 좋겠구려."
女曰
(녀왈) : 여인이 말하였다.
李郞之壽
(이랑지수) : "당신의 목숨은
剩有餘紀
(잉유여기) : 아직 남아 있지만,
妾已載鬼籙
(첩이재귀록) :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冥府)에 실려 있답니다.
不能久視
(불능구시) : 그래서 더 오래 볼 수가 없지요.
若固眷戀人間
(약고권련인간) : 제가 굳이 인간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가진다면
違犯條令
(위범조령) : 명부의 법도를 어기게 되니,
非唯罪我
(비유죄아) : 저에게만 죄가 미치는 게 아니라
兼亦累及於君
(겸역누급어군) : 당신에게도 또한 누가 미치게 된답니다.
但妾之遺骸
(단첩지유해) : 저의 유골이
散於某處
(산어모처) : 어느 곳에 흩어져 있으니,
倘若垂恩
(당약수은) : 만약 은혜를 베풀어주시려면
勿暴風日
(물폭풍일) : 그 유골이나 거두어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해주세요."
相視泣下數行云
(상시읍하수행운) :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李郞珍重
(이랑진중) :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言訖漸滅
(언흘점멸) : 말이 끝나자 차츰 사라지더니
了無踪迹
(료무종적) :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生拾骨
(생습골) : 이생은 여인의 말대로 유골을 거두어
附葬于親墓傍
(부장우친묘방) : 부모님의 무덤 곁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旣葬
(기장) : 장사를 지낸 뒤에는
生亦以追念之故
(생역이추념지고) : 이생도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다가
得病數月而卒
(득병수월이졸) : 병을 얻어, 몇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聞者莫不傷歎而慕其義焉
(문자막불상탄이모기의언) :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마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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