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

-홍윤숙

이제는 너 아닌 누구라도

함께 떠나야 할 마지막 시간인데

나는 아직 물풀같이 떠도는

기녀의 마음일까


그리움에 맴도는 나뭇잎 하나

붉은 색지처럼 손끝에 돌리며

멋없이 멋없이 배회하는 날


외로움이 진하면 거울을 보고

거울 속 눈물에 번져나는

희미한 얼굴


붉은 연지꽃처럼 진하게 칠하며

웃어도 보는

뉘라서 알까만 배율의 양심


보랏빛 새옷이랑 갈아 입고

검은 머리 꽃이랑 꽂고

나비 같은 마음으로 나서 보건만

짐짓 갈 곳이 없는...


너 없는 이 거리 어디로도

갈 곳이 없는

내 마음은 부칠 데 없는

가랑잎 엽서 한 장

바람에 돌고 도는 장난감 풍차


이제는 너 아닌 누구라도

함께 떠나야 할 마지막 시간인데

나는 아직 물풀같이 떠도는

기녀의 마음일까


붉은 양관 긴 층계를 내리면서

문득 내 나이 이미 젊지 않음을

생각하는 날

[양평 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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