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였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 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 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백록담 &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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