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벚꽃이 지니 연산홍과 산아가위꽃[과꽃]이 세상을 밝히네요.
꿈도 일회성(一回性)인가?
나는 동일한 이미지의 꿈을 꾼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꿈도 우리네 인생처럼 일회성인가?
흔히 인생을 한바탕 꿈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러한 명제는 우리의 경험세계를 제공하는
현실이 일회성을 지니기 때문에 재현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한다. 우리의 삶에 시간과
공간 개념을 대입해 보면 인생은 일회성이 확실하다.
그 화사하던 벚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비에 떨어지고 바람에 쓸려갔는가? 돌이켜 생각
해보면 비바람이 아니더라도 벚꽃잎들은 가시적 세계에서 사라질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것은 벚꽃잎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모든 존재의 숙명이기도 하다.
다시 봄이 오면 벚꽃은 다시 그 화사함을 자랑하겠지만 그것은 이미 금년의 벚꽃잎은 아니고
지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존재로서의 벚꽃이다. 그것이 존재의 일회성이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라고도 말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에겐 엄연한 현실이다.
한자문화권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또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삼국유사에는 조신의 꿈 애기가 있는데 춘원 이광수 선생은 이를 확대부연하여 <꿈>이라는
소설을 지었다.
내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과제물로 <조신설화>의 한문 원문을 적고 번역문을
달아 제출하게 한다. 현상 외에 본질은 있는 것인지,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지 한 번쯤 생각케
하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호접몽(胡蝶夢)’의 출처는 아래와 같다.
昔者 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1)栩栩(후후):기뻐하는 모양, 황홀한 모양. 2)蘧蘧(거거):놀라 깨닫는 모양, 마음 든든한 모양.
3)物化(물화):사물의 변화, 곧 만물의 끝없는 流轉.
(엣날 장주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그는 훨훨 나는 나비였다.
스스로 즐겁고 마음대로 날아다녀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조금 후 문득 깨어보니 자신은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건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건지 알지 못하겠다.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분이 있을 것이니 이를 물화라고 한다.)
내가 즐겨하는 장자의 말 중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함축적으로 극명하게 표현한 다음
진술도 절창에 속한다.
오리다리가 비록 짧으나 이으면 근심이요 학의 다리가 비록 기나 끊으면 섧다.
--≪莊子≫--
이것은 내가 생긴 대로 사는 게 몸에는 가장 좋다는 주장을 할 때 원용하는 말이다.
배우, 탈렌트, 모델 등은 상품이다. 그들은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를 버리고
미의 눈높이에 맞추어 자기몸을 만들어간다. 말하자면 이미 그네들은 생활인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도 일반 아이들이 그들을 기준으로 자기 모습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데에 문제의
단초가 있다. 오리는 오리다리로, 학은 학의 다리로 살아야 제격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예쁜 아이들이 성형 생각에 골목하는가 말이다.
건강이 먼저고, 다이어트는 2차적 문제이다.
20세 전후의 나이에는 육체적으로 종족 보존의, 다윈의 법칙에 따라 생기발랄하여 어느
여성이나 할 것없이 눈길만 주면 사내들이 따라온다. 모든 동물들이 짝짓기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봄을 빙자한 사랑의 감정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생리적 변화에
따른 동물적, 생태적 본능에 속하는 문제이다.
우리가 콩깍지니 명태껍질이니 하는 말은 실상 페파민인가 하는 물질이 뇌 속에 생성되어
모든 걸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 관대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인데, 그게 동물적 본능의
다른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의 육신은 생태적으로 그렇게 창조되었다.
미래의 가능성, 잠재력까지 포함한, 자신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 -유가들은 이를 仁이라고
하고, 불가에서는 이를 佛性이라고 한다-을 신장하고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