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노천명은 <푸른 오월>에서 계절의 여왕 오월의 꽃으로 라일락꽃을 노래했지만 진한 향기를 풍기는 등꽃과 오동나무꽃의 보랏빛 향기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이팝나무꽃을 첫째로 꼽는다. 신록의 녹색잎을 헤치고 잎을 덮어버리는 순백의 백의(白衣)는 화사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소박한, 내부로부터 베어나는 귀족의 품위도 풍긴다.
2주전 청계천을 지나다가 키작은 이팝나무에 꽃이 피는 걸 목도했다. 지난 주에 학교 캠퍼스의 이팝나무를 살폈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경주 시가지 대릉원 앞 가로수들도 꽃을 피웠으나 하교 것은 거름이 부족해서 금년에는 꽃을 피우지 않으려나 하고 몹시 섭섭하면서도 한 주 내내 행여나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그러나 이번 주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이팝나무꽃의 향연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팝이란 입쌀로 만든 밥이고, 입쌀은 찹살이 아니 멥살을 지창하니 그냥 흔히 말하는 쌀집이라고 할 때의 쌀이 입쌀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팝이란 사발 소복히 퍼올린 쌀밥을 말하는 셈이다. 꽃을 보고 그릇에 봉곳이 담긴 쌀밥을 생각한 사람들. 지금 시기가 춘궁기로 보리는 이삭을 패기는 했으나 아직 여물지는 않았다. 한 달이나 지나면 겉보리방아라도 찧어서 먹을 수 있을라나?
신록이 퍼진 가운데 피는 순백의 이팝나무꽃 꽃이름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다음회에 싣는 그림은 연꽃과 어울려 또다른 색감을 자아낸다.
3년전에 찍은 캠퍼스의 이팝나무꽃 사진이 아래 창에 실려 있습니다.
http://blog.paran.com/kydong/25196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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