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老子韓非列傳 /사기 권63

3-2. 장자(莊子)

莊子者,蒙人也,〔一〕名周。

장자는 몽(蒙)4) 출신으로 이름은 주(周)다.

4)몽(蒙):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商丘市) 동북에 있었던 춘추전국 기간 동안 송(宋)나라 땅이다.

周嘗為蒙漆園吏,〔二〕

장주는 일찍이 송나라의 몽읍(蒙邑) 칠원성(漆園城)의 관리를 지냈다.

與梁惠王、齊宣王同時。

양혜왕(梁惠王)5)과 제선왕(齊宣王)6)과 같은 시대에 활약한 사람이다.

5) 양혜왕(梁惠王): 기원전 400년에 태어나서 319년에 죽은 전국 때 위나라 군주로 이름은 앵(罃)이다. 즉위 초 강대한 세력으로 한(韓)과 송(宋)을 차례로 공격했으며, 한조(韓趙) 연합군을 회수(澮水) 북안에서 대파하고 피뢰(皮牢)를 점령하는 등 패자로 군림했다. 주현왕 25년 기원전 344년 후(侯)를 바꾸어 왕호(王號)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외 관계에 있어서 합종과 연횡을 수시로 바꿔 제후국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 진나라와의 사움에서 3번이나 패하고 다시 계릉(桂陵)과 마릉(馬陵)의 싸움에서 제나라에게 대패했다. 진나라에게 하서와 하동의 7백리 땅을 빼앗기고 초나라에 패하여 국세가 쇠퇴했다. 세력을 만회하고자 몸을 낮추고 많은 재물을 들여 현사들을 초빙하여 추연(鄒衍), 순우곤(荀于髡), 맹가(孟軻) 등이 찾아왔으나 결국은 그들을 쓰지 못했다. 노환으로 죽었다.

6) 제선왕(齊宣王):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319년에 즉위하여 301년에 죽은 전국 때 제나라 군주다. 이름은 벽강(辟彊)이고 제위왕(齊威王)의 아들이다. 즉위 초, 전영(田嬰)을 상국으로 등용하여 내정 개혁에 힘쓰고 대외적으로는 함종을 강화하여 국세가 크게 신장되었다. 주난왕(周赧王) 14년 기원전 301년 연나라의 내정에 무력으로 개입하여 연나라의 혁신세력을 진압했다. 학술을 중시하여 천하에 유세객이나 학자들을 자신이 학술단지로 조성한 직하(稷下)라는 곳으로 초빙하여 학문을 진흥시켰다.

其學無所不闚,然其要本歸於老子之言。

그의 학문은 언급하지 않은 분야가 없지만

그 요체는 노자의 설에 귀착된다.

 

故其著書十餘萬言,大抵率寓言也。〔三〕

그래서 10여 만 자로 된 그의 저서는 거의 대부분이 우화로 채워져 있다.

 

作漁父、盜跖、胠篋,〔四〕

以詆訿孔子之徒,〔五〕以明老子之術。

그의 저서 중 <어부(漁夫)>, <도척(盜拓)>, <거협(胠篋)> 등의 편은

공자를 따르는 무리들을 배척하고

노자의 도를 밝혔다.

 

畏累虛、亢桑子之屬,皆空語無事實。〔六〕

<외루허(畏累虛)>, <항상자(亢桑子)> 등과 같은 편은

모두 꾸며낸 이야기로써 사실들이 아니다.

 

然善屬書離辭,〔七〕

指事類情,用剽剝儒、墨,〔八〕

雖當世宿學不能自解免也。

그러나 문장을 잘 짓고 문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사물을 생동감 있고 묘사하는 방법으로

당대의 유가와 묵자를 밝히 공격했으나

당대의 이름 높은 학자라 할지라도

자기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여 그의 비난을 밝히 벗어날 수 없었다.

 

其言洸洋 自恣以適己,〔九〕

故自王公大人不能器之。

장자가 밝히려 한 말들은 바닷물과 같이 양양하고

스스로 자유분방하고 자기 멋대로였으므로

왕공대인들로부터는 훌륭한 인재로 평가받지 못했다.

 

楚威王聞莊周賢,[一]

使使厚幣迎之,許以為相。

초위왕(楚威王)7)이 장주가 현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사자에게 많은 예물을 주어 그를 맞이해 오도록 하여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7) 초위왕(楚威王): 기원전 339년에 즉위하여 329년에 죽은 전국 때 초나라의 군주다. 미(羋) 성에 이름은 웅상(熊商)이다. 주경왕 36년 기원전 333년 제나라 군사와 서주(徐州)에서 싸워 이겼다. 서주는 지금의 산동성 등주시(滕州市) 동남이다.

 

莊周笑謂楚使者曰:

장주가 듣고 웃으면서 초나라 사자에게 말했다.

 

「千金,重利;卿相,尊位也。

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

“예물로 보낸 천금은 많은 재물이고,

경상(卿相)의 자리는 매우 존귀한 자리요.

그런데 그대는 교제(交祭)를 지낼 때

희생(犧牲)으로 바치는 소를 보지 못했소?

 

養食之數歲,衣以文繡,以入大廟。

當是之時,雖欲為孤豚,豈可得乎?[二]

맛 잇는 음식으로 몇 년 동안 먹이고

아름답게 수놓은 비단 옷을 몸에 두르고

태묘에 끌려갑니다.

그때를 당하여 비록 그가 어린 돼지가 되고 싶다한들

어찌 가능하겠소?

 

子亟去,[三]無污我。[四]

그대는 빨리 돌아가

나를 세속의 일로 더럽히지 마시오.

 

我寧游戲污瀆[五]之中自快,無為有國者所羈,

終身不仕,以快吾志焉。」[六]

나는 정녕코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거워할지언정

나라를 갖고 있는 자들에게 구속받지 않겠고.

종신토록 벼슬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살 것이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