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虵福不言>

사복불언-사복이 말하지 않다.

京師萬善北里有寡女, 不夫而孕,

서울 만선북리에 한 과부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도 없이 아이를 배어 낳았는데

旣産, 年至十二歲, 不語亦不起, 因號虫也童.

그 아이는 나이 12세가 되도록 말도 하지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사동이라 불렀다.

(下或作虫也卜, 又巴又伏等, 皆言「童」也.)

(아래에서는 혹 사복이라고도 하고, 또 사파, 사복이라고 썼다.

이것은 모두 사동의 이름이다.)

一日其母死,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時元曉住高仙寺. 曉見之迎禮, 福不答拜而曰:

그 때 원효가 고선사에 거주했었다. 원효는 그를 보고 맞이하여 예를 올렸으나

사복은 답례도 없이 말했다.

「君我昔日駄經牸牛, 今已亡矣, 偕葬何如?」

"그대와 내가 옛날에 경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지금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지냄이 어떠한가?"

曉曰諾. 遂與到家,

원효가 말했다. “좋습니다.”

드디어 함께 사복의 집으로 갔다.

令曉布薩授戒. 臨尸祝曰:

여기에서 사복은 원효에게 포살(布薩)시켜 계를 주게 하니,

원효는 그 시체 앞에서 빌었다.

*포살(布薩)-불교의식의 하나로 출가한 이에게 중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戒經을 들려주고

죄를 참회시켜 선을 기르고 악을 없애는 일.

「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다.

그 죽는 것이 괴로움이라.

죽지 말 것이니라.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

福曰: 「詞煩.」

사복이 말했다.

“가사가 너무 길어 번거롭소.”

更之曰: 「死生苦兮!」

원효가 고쳐 말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괴로움이로다."

二公轝歸活里山東麓,

그리고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 동쪽 기슭으로 갔다.

曉曰: 「葬智惠虎於智惠林中, 不亦宜乎?」

원효가 말했다.

"지혜있는 범을 지혜의 숲 속에 장사지냄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福乃作偈曰:

사복은 이에 게(偈)를 지어 읊었다.

「往昔釋迦牟尼佛,

「왕석석가모니불, 그 옛날 석가모니불께서는

裟羅樹間入涅槃,

사나수간입열반, 사라수 사이에 열반하셨네.

于今亦有如彼者,

우금역유여피자, 그 같은 이 지금 또 있어

欲入蓮花藏界寬.」

욕입련화장계관.」 연화장 세계로 들려고 하네.

言訖拔茅莖, 下有世界, 晃朗淸虛, 七寶欄楯, 樓閣莊嚴, 殆非人間世.

읊기를 마치고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밑에 명랑하고 청허한 세계가 있었고,

칠보로 장식된 난간에 누각이 장엄한데 아마 인간의 세계는 아닌 것 같았다.

福負尸共入, 其地奄然而合, 曉乃還.

사복이 시체를 업고 그 속으로 들어가자 문득 땅이 합쳐졌다.

이것을 보고 원효는 혼자 돌아왔다.

後人爲創寺於金剛山東南, 額曰道場寺.

후세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금강산의 동남쪽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도장사라 했다.

每年三月十四日, 行占察會爲恒規,

해마다 3월 14일이 되면 점찰회(占察會-점찰경에 의한 법회)를 여는 것을

항규(恒規)로 삼았다.

福之應世, 唯示此爾,

사복이 세사에 영검을 나타낸 것은 오직 이것뿐인데,

俚諺多以荒唐之說託焉, 可笑!

세간에서는 황당한 얘기를 덧붙였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讚曰:

기리어 읊는다.

淵黙龍眠豈等閑,

연묵룡면개등한, 잠잠히 자는 용이 다 등한할까,

臨行一曲沒多般.

림항일곡몰다반. 임종에 부른 한 곡 간단하기도 해라.

苦兮生死元非苦,

고혜생사원비고, 고통스러운 생사는 원래 고통이 아니 어니,

華藏浮休世界寬.

화장부휴세계관. 연화장(蓮花藏) 세계 넓기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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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유신로]

구토설화/ 삼국사기 김유신전 41

善德大王十一年壬寅 百濟敗大梁州

선덕대왕 11년 임인에 백제가 대량주를 격파하였다.

春秋公女子古陁炤娘從夫品釋死焉

그 때, 춘추공의 딸 고타소낭이 남편 품석을 따라 죽었다.

春秋恨之 欲請高句麗兵以報百濟之怨 王許之

춘추는 이를 한탄하며 고구려에 청병하여 백제에 대한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將行 謂庾信曰 吾與公同體 爲國股肱 今我若入彼見害 則公其無心乎

길을 떠나기 전에 춘추가 유신에게 말했다. "나와 공은 일심동체로서 나라의 기둥이오. 이번에 내가

만약 고구려에 들어가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공이 무심할 수 있겠오?"

庾信曰 公若往而不還 則僕之馬跡必踐於麗濟兩王之庭 苟不如此 將何面目以見國人乎

유신이 대답하였다. "공이 만일 돌아오지 못한다면 저의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백제 두 왕의 궁정을

짓밟을 것이오.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백성들을 대하겠오?"

春秋感悅 與公互噬手指 歃血以盟曰

춘추가 감격하고 기뻐하여 공과 함께 서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며 맹세하였다.

吾計日六旬乃還 若過此不來 則無再見之期矣

"내가 60일이면 돌아올 것이오. 만일 이 기한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기약이 없을 것이오."

遂相別後 庾信爲押梁州軍主

그들은 드디어 작별하였다. 그 뒤에 유신은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春秋與訓信沙干 聘高句麗 行至代買縣 縣人豆斯支沙干 贈靑布三百步

춘추가 훈신 사간과 함께 고구려에 사절로 가는 도중 대매현에 도착하였다. 그 때 고을 사람 두사지

사간이 푸른 베 3백 보를 그에게 주었다.

旣入彼境 麗王遣太大對盧蓋金館之 燕饗有加 或告麗王曰

고구려 경내에 들어가니 고구려 왕이 태대대로 개금을 보내 객관을 정해주고 또한 연회를 열어 우대해

주었다. 어떤 사람이 고구려 왕에게 말했다.

新羅使者非庸人也 今來殆欲觀我形勢也 王其圖之 俾無後患

"신라 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에 그가 온 것은 아마도 우리의 형세를 정탐하려는 것 같으니

왕께서는 잘 처리하시어 후환이 없게 하소서."

王欲橫問因其難對而辱之 謂曰 麻木峴與竹嶺本我國地 若不我還 則不得歸

왕은 춘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여 그를 곤혹스럽게 하고자 하여 그에게 물었다.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 나라 땅이니 만약 이를 우리에게 돌려 주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못하리라."

春秋答曰 國家土地 非臣子所專 臣不敢聞命

춘추가 대답하였다. "국가의 영토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신은 감히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王怒囚之 欲戮未果

왕이 분노하여 그를 가두고 죽이려 하다가 미처 죽이지 않고 있었다.

春秋以靑布三百步 密贈王之寵臣先道解

춘추는 푸른 베 3백 보를 왕의 총신 선도해에게 몰래 주었다.

道解以饌具來相飮 酒酣 戱語曰

도해가 음식을 준비해와서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자 농담으로 말했다.

子亦嘗聞龜兎之說乎

"그대도 일찌기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오.

昔東海龍女病心 醫言 得兎肝合藥則可療也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에 병이 났는데,

의사가 '토끼의 간을 얻어 약에 섞어 먹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오.

然海中無兎 不奈之何

그러나 바다에는 토끼가 없으니 어찌할 수 없었오.

有一龜白龍王言 吾能得之

그 때 마침 거북 한 마리가 용왕에게 아뢰었다오. '제가 그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遂登陸見兎 言

그리고 거북이는 마침내 육지로 나와서 토끼를 보고 말했소.

海中有一島 淸泉白石 茂林佳菓 寒暑不能到 鷹隼不能侵

'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맑은 샘과 흰 돌이 있고 무성한 숲과 맛있는

과실이 있다. 추위와 더위도 없고, 맹금도 침범할 수 없다.

爾若得至 可以安居無患

네가 갈 수만 있다면 근심걱정 없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다.'

因負兎背上 游行二三里許

그리고 거북이는 토끼를 등에 업고 2∼3리쯤 헤엄쳐 갔다오.

龜顧謂兎曰 今龍女被病 須兎肝爲藥 故不憚勞 負爾來耳

그제서야 거북이가 토끼를 돌아보며 '지금 용왕의 딸이 병에 걸렸는데 토끼 간으로

약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수고를 마다않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라고 말했소.

兎曰 噫吾神明之後 能出五藏 洗而納之

이를 듣고 토끼가 말했다오. '아! 나는 천지신명의 후예인지라 오장을 꺼내어 씻어서

다시 넣을 수 있다.

日者小覺心煩 遂出肝心洗之 暫置巖石之底

일전에 속이 약간 불편한 듯하여 잠시 간과 심장을 꺼내어 씻은 후에 바위 밑에 두었다.

聞爾甘言徑來 肝尙在彼 何不廻歸取肝

그런데 너의 달콤한 말을 듣고 곧 바로 오는 바람에 간이 아직도 거기에 있으니,

어찌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오지 않으리?

則汝得所求 吾雖無肝尙活 豈不兩相宜哉

그렇게 하면 너는 구하려는 약을 얻게 되고, 나는 간이 없더라도 살 수 있으니 어찌

둘이 서로 좋은 일이 아니랴?'

龜信之而還 纔上岸 兎脫入草中 謂龜曰

거북이 그 말을 곧이 듣고 돌아갔는데, 언덕에 오르자 마자 토끼가 풀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했다오.

愚哉汝也 豈有無肝而生者乎

'어리석기도 하구나. 네놈은! 어찌 간이 없이 사는 놈이 있겠느냐?'

龜憫黙而退

거북은 이 말을 듣고 멍청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는 말이 있다오."

春秋聞其言 喩其意 移書於王曰

춘추는 이 말을 듣고 그의 뜻을 알아 차렸다. 그는 왕에게 글을 보내 말했다.

二嶺本大國地分 臣歸國 請吾王還之 謂予不信 有如皦日

"두 영은 본래 대국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여 우리 왕에게 이를 돌려 보내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미덥지 않다면 저 태양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王迺悅焉

왕은 그 때서야 기뻐하였다.

春秋入高句麗 過六旬未還 庾信揀得國內勇士三千人 相語曰

춘추가 고구려에 간 지 60일이 지나도록 안돌아오자 유신은 국내의 용사 3천 명을 선발하여 놓고 말했다.

吾聞見危致命 臨難忘身者 烈士之志也

"위기를 당하면 목숨을 내놓고, 어려움을 당하면 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 열사의 뜻이라고 나는 들었다.

夫一人致死當百人 百人致死當千人 千人致死當萬人 則可以橫行天下

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백 명을 대적하고, 백 명이 목숨을 바쳐서 천 명을 대적하고,

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만 명을 대적한다면 천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今國之賢相被他國之拘執 其可畏不犯難乎

지금 이 나라의 어진 재상이 타국에 구금되어 있는데 어찌 두렵다 하여 일을 도모하지 않겠느냐?"

於是衆人曰 雖出萬死一生之中 敢不從將軍之令乎

이에 모든 사람들이 "비록 만 번 죽고 한 번 사는 일에 나아갈지라도, 어찌 감히 장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遂請王以定行期

유신은 마침내 왕에게 떠날 날짜를 정해주기를 요청하였다.

時高句麗諜者浮屠德昌使告於王

이 때 고구려의 간첩인 중 덕창이 고구려에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고구려의 왕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王前聞春秋盟辭 又聞諜者之言 不敢復留 厚禮而歸之

고구려 왕은 전날 춘추의 맹세를 들었고, 또한 첩자의 말을 들은지라 그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후한

예로 대우하여 춘추를 귀국케 하였다.

及出境謂送者曰 吾欲釋憾於百濟 故來請師 大王不許之 而反求土地

고구려 국경을 벗어나자 춘추가 전송하러 나온 자에게 말했다. "내가 백제에 원수를 갚기 위하여 고구려에

와서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대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땅을 요구하였다.

此非臣所得專 嚮與大王書者 圖逭死耳

그러나 이것은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전에 대왕에게 보낸 글은 죽음을 모면하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此與本言眞平王十二年所書〔言 當作書〕〔眞平王十二年 亦當作善德王十一年(見本紀)〕

一事而小異 以皆古記所傳 故兩存之)

이것은 본기 중 진평왕12년에 있던 바 ‘言’은 ‘書’로 바로잡아야 한다.

진평왕12년 역시 본기 선덕왕 11년 기록과 같은 사건인데 내용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모두 고기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그대로 기록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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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山二大聖 관음. 정취, 조신

정취보살 -굴산조사 범일

後有굴山祖師梵日. 大和年中入唐. 到明州開國寺. 有一沙彌截左耳. 在衆僧之末.

그 후에 굴산조사 범일이 태화 연간(827-835)에 당나라에 들어가 명주 개국사에 이르니

왼쪽 귀가 잘린 한 중이 여러 중들의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與師言曰.

그는 조사에게 말했다.

吾亦鄕人也. 家在溟州界翼嶺縣德耆坊. 師他日若還本國. 須成吾舍.

"저도 또한 고향사람입니다. 집은 명주의 경계인 익령현 덕기방에 있습니다.

조사께서 후일 고향에 돌아가시거든 반드시 내 집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旣而遍遊叢席. 得法於鹽官.[事具在本傳.]

이윽고 조사는 총석(叢席-많은 승려들이 모여있는 곳)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염관(중국 항주 염관현 진국해창원에 있었던 제안禪師)에게서 법을 얻고 [사적은 모두 본전에 있다.]

以會昌七年丁卯還國. 先創崛山寺而傳敎.

회창(會昌-당나라무종의 연호, 841-846년) 7년 정묘년(847, 당나라 선종 대중원년이 맞다)에 본국으로 돌아오자 먼저 굴산사를 세워서 불교를 전했다.

大中十二年戊寅二月十五日. 夜夢昔所見沙彌到窓下. 曰.

대중 12년 무인(858) 2월 보름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전에 보았던 중이 창문 밑에 와서 말했다.

昔在明州開國寺. 與師有約. 旣蒙見諾. 何其晩也.

"지난 날 명주 개국사에서 조사와 약속하여

이미 승낙을 얻었는데, 어찌 이리 늦는 것입니까?"

祖師驚覺. 押數十人, 到翼嶺境. 尋訪其居.

조사는 놀라 꿈에서 깨자 사람들 수십 명을 데리고

익령 경계로 가 그가 사는 곳을 찾았다.

有一女居洛山下村. 問其名. 曰德耆.

낙산 아랫마을에 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름을 물으니 덕기라고 했다.

女有一子 年才八歲. 常出遊於村南石橋邊.

그 여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 겨우 여덟 살에

늘 마을 남쪽 돌다리 가에 나가 놀았다.

告其母曰.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吾所與遊者. 有金色童子.

"나와 같이 노는 아이 중에 금빛이 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母以告于師.

아이의 어머니는 그 말을 조사에게 알렸다.

師驚喜. 與其子尋所遊橋下.

조사는 놀래고 기뻐하며 그 아이가 함께 놀았다는 다리 밑을 찾았다.

水中有一石佛. 舁出之 截左耳. 類前所見沙彌. 卽正趣菩薩之像也.

물 속에 돌부처 하나가 있었다. 마주 들어 꺼내보니 왼쪽 귀가 끊어져 있고 전에 만난 중과 같았다. 바로 정취보살의 불상이었다

乃作簡子, 卜其營構之地. 洛山上方吉. 乃作殿三間安其像.

이에 간자(簡子-점치는 대나무 조각)를 만들어 절을 지을 곳을 점쳐보니 낙산 위가 가장

좋으므로 그 곳에 불전 세 칸을 짓고 그 불상을 모셨다.

[古本載梵日事在前. 湘曉二師在後.

[고본에는 이 일을 실었으되, 범일의 일은 앞에 두고, 의상 원효의 일은 뒤에 두었다.

然按湘曉二師미□於高宗之代. 梵日在於會昌之後. 相去一百七十餘歲. 故今前却而編次之.

그러나 상고해 보건대 의상과 원효는 고종 때이고, 범일은 회창 뒤에 있던 사람인 만큼 서로 거리가 170여 년이나 되므로 이제 앞으로 물려 편차하였다.

或云. 梵日爲湘之門人. 謬妄也.]

혹은 이르기를 범일은 의상의 문인이라 하나 그릇된 것이다.]

두 성인의 불상과 두 보주

後百餘年. 野火連延到此山. 唯二聖殿獨免其災. 餘皆煨燼.

그후 백여 년이 지나 들에 불이 나서 이 산까지 번졌으나

오직 관음, 정취 두 성인을 모신 불전만은 그 화재를 면했으며, 나머지는 전부 다 타버렸다.

及西山大兵已來. 癸丑甲寅年間. 二聖眞容及二寶珠. 移入襄州城.

몽고의 병란 이후 계축 갑인연간(1253-54)에

두 성인의 참모습과 두 보주를 양주성으로 옮겼다.

大兵來攻甚急. 城將陷時.

몽고 군사가 심히 급하게 공격하므로 성이 바야흐로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住持禪師阿行[古名希玄.]以銀合盛二珠. 佩持將逃逸.

주지인 선사 아행[古名希玄]이 은으로 만든 함에 두 보주를 넣어 가지고

몸에 차고 도망하려고 했다.

寺奴名乞升奪取. 深埋於地. 誓曰.

이것을 절에 있는 중 걸승이 빼앗아 땅속 깊이 묻고 맹세했다.

我若不免死於兵. 則二寶珠終不現於人間. 人無知者.

'내가 만일 이 병란에 죽음을 면치 못한다면

두 보주는 끝내 아는 사람이 없어 인간세상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요,

我若不死. 當奉二寶獻於邦家矣.

내가 만일 죽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두 보물을 받들어 나라에 바칠 것이다.'

甲寅十月二十二日城陷.

갑인(1254) 10월 22일에 이 성은 함락되었다.

阿行不免而乞升獲免.

아행은 죽음을 면치 못했으나 걸승은 죽지 않았다.

兵退後掘出. 納於溟州道監倉使.

적의 군사가 물러가자 그는 이것을 파내어 명주도 감창사에게 바쳤다.

時郎中李祿綏爲監倉使. 受而藏於監倉庫中. 每交代傳受.

이때 낭중 이녹수가 감창사였는데

이것을 받아 감창고 안에 간직해 두고 교대할 때마다 서로 이어받았다.

至戊午十月. 本業老宿祗林寺住持大禪師覺猷奏曰.

무오(1258) 11월에 이르자 본업의 늙은 중 지림사 주지인 대선사 각유가 임금께 아뢰었다.

洛山三珠. 國家神寶.

"낙산사의 두 보주는 국가의 신보입니다.

襄州城陷時. 寺奴乞升埋於城中. 兵退. 取納監倉使. 藏在溟州營庫中.

양주성이 함락될 때 절의 중 걸승이 성안에 묻었다가

적군이 물러간 뒤 파내어 감창사에게 바쳐서 명주영 창고에 간직하여 왔습니다.

今溟州城殆不能守矣. 宜輸安御府.

이제는 명주성도 지킬 수 없사오니

마땅이 어부(御府)로 옮겨 모시는 것이 옳겠습니다."

主上允可.

임금은 이를 허락했다.

發夜別抄十人, 率乞升. 取於溟州城. 入安於內府.

야별초 10명과 걸승이 명주성에 가서 두 보주를 갖다가 내부에 안치해 두었다.

時使介十人各賜銀一斤, 米五石.

그 때 사자로 간 10명에게는 각각 은 1근과 쌀 5섬씩을 주었다.


[주]조신설화의 출전은 유사,권3, 탑상() 제4,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조인데 앞의 관음, 정취보살 설화도

나누어 소개한다.

洛山二大聖 관음. 정취, 조신

낙산의 관음보살 1 -의상법사

昔義湘法師. 始自唐來還. 聞大悲眞身住此海邊窟內. 故因名洛山.

옛날 의상법사가 처음 당나라에서 돌아와

관음보살의 진신이 이 해변의 어느 굴속에 산다는 말을 듣고 이 곳을 낙산이라 이름했다.

盖西域寶陀洛伽山.

이는 대개 서역에 보타낙가산(관세음보살이 있다는 산)이 있는 까닭이다.

此云小白華. 乃白衣大士眞身住處. 故借此名之.

이것을 소백화라고도 했는데, 백의대사의 진신이 머물러 있는 곳이므로

이것을 빌어다 이름을 지은 것이다.

齋戒七日. 浮座具晨水上. 龍天八部侍從. 引入崛內.

의상은 재계한 지 7일 만에 좌구를 새벽 일찍 물 위에 띄웠더니

용천팔부(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神將)의 시종들이 그를 굴 속으로 안내했다.

參禮空中. 出水精念珠一貫給之.

공중을 향하여 참례하니 수정 염주 한 꾸러미를 내주었다.

湘領受而退. 東海龍亦獻如意寶珠一顆. 師捧出.

의상이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동해의 용이 또한 여의보주 한 알을 바치니 의상이 받들고 나왔다.

更齋七日. 乃見眞容.

다시 7일 동안 재계하고 나서 이에 관음의 참 모습을 보았다.

謂曰. 於座上山頂雙竹湧生. 當其地作殿宜矣.

관음이 말했다.

"좌상의 산 꼭대기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불전을 마땅히 지어야 한다."

師聞之出굴. 果有竹從地湧出.

법사가 말을 듣고 굴에서 나오니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나왔다.

乃作金堂. 塑像而安之. 圓容麗質. 儼若天生.

이에 금당을 짓고, 관음상을 만들어 모시니

그 둥근 얼굴과 고운 모습이 마치 천연적으로 생긴 것 같았다.

其竹還沒. 方知正是眞身住也.

그리고 대나무는 즉시 없어졌으므로

그제야 관음의 진신이 살고 있는 곳인 줄을 알았다.

因名其寺曰洛山. 師以所受二珠. 鎭安于聖殿而去.

이런 까닭에 그 절 이름을 낙산사라 하고,

법사는 자기가 받은 두 가지 구슬을 성전에 봉안하고 떠났다.

낙산의 관음보살 2 - 원효대사와 두 여인

後有元曉法師. 繼踵而來. 欲求瞻禮.

그 후에 원효 법사가 뒤이어 와서 여기에 예하려고 하였다.

初至於南郊水田中. 有一白衣女人刈稻.

처음에 남쪽 교외 논 가운데에 이르자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벼를 베고 있었다.

師戱請其禾. 女以稻荒戱答之.

법사가 희롱삼아 그 벼를 달라고 청하자,

여인은 벼가 영글지 않았다고 농담으로 대답했다.

又行至橋下. 一女洗月水帛.

법사가 또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니

한 여인이 월수백(月水帛-월경때 입었던 옷)을 빨고 있었다.

師乞水. 女酌其穢水獻之.

법사가 물을 달라고 청하니 여인을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다.

師覆棄之. 更酌天水而飮之.

법사는 그 물을 엎질러 버리고 다시 천수(天水)를 떠서 마셨다.

時野中松上有一靑鳥. 呼曰

이 때 들 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마리가 그를 불러 말했다.

休醍□和尙.

"제□ (醍호[이재호 역본] -원문에 한글자가 빠져있음)화상은 가지 마십시오."

忽隱不現. 其松下有一隻脫鞋.

그리고는 문득 숨어 보이지 않는데 그 소나무 밑에는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師旣到寺. 觀音座下又有前所見脫鞋一隻. 方知前所遇聖女乃眞身也.

법사가 절에 이르니 관음보살상의 자리 밑에 아까 보았던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그제야 아까 만난 성녀가 관음의 진신임을 알았다.

故時人謂之觀音松.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관음송이라 했다.

師欲入聖崛. 更覩眞容. 風浪大作. 不得入而去.

또 법사가 성굴로 들어가서 다시 관음의 진용을 보려 했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나므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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