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5월26일부터 경주박물관에서 사천왕사 특별전이 있었다. 여기 사진은 특별전 때 찍어둔 것이다.

진흙으로 소조한 사천왕의 조각상의 사실성이 기존의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다. 몸체에 비해 머리가 커서 동자상을 연상시키던 불상은 비로소신체구조가 균형잡힌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모와 사실성의 확보는 인도 불교미술의 영향으로 추단된다.

낭산의 발굴현장 사진을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다. 사천왕사지는 낭산 선덕여왕릉 가는 길의 낭산 입구에 있다.

http://blog.paran.com/kydong/3226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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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사천왕사와 문두루(文豆婁) 비법

원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28/2009052801800.html

668년(문무왕 8년), 신라의 운명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기쁨도 잠깐, 당나라 군대는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친김에 신라까지 쳐서 아예 한반도 전체를 복속시킬 기세였다. 문무왕은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이를 막았다. 당나라가 배은망덕이라며 발끈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670년 당 고종은 장수 설방(薛邦)에게 50만 대군을 주어 신라를 침공케 했다.

대군의 침공을 앞두고 전전긍긍하던 왕에게 명랑(明朗) 법사는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하고 법도량을 베풀 것을 주문했다. 사정은 급박했다. 당의 대군을 실은 배들이 벌써 가까운 바다를 가득 덮고 있었다. 명랑은 채색 비단을 둘러 임시변통으로 없던 절을 만들었다. 오방신상(五方神像)은 풀로 엮어 대신했다. 그리고는 단 위로 올라가 문두루 비법을 베풀었다. 문두루의 위력은 놀라웠다. 난데없는 바람과 파도가 당나라 50만 대군을 실은 배를 일제히 침몰케 해 몰살시켰다.

문두루는 밀교의 결인(訣印)을 뜻하는 범어의 음역이다. '불설관정복마봉인대신주경(佛說灌頂伏魔封印大神呪經)'에 구체적 방법이 보인다. 문두루비법은 국가적 위난과 재액을 당했을 때 중앙에 높게 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서 방위에 따라 각종 진언을 베푸는, 대단히 장엄하고 거창한 의식이었다. 이후 당나라에서 신라를 결코 얕잡아볼 수 없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 사천왕사의 문두루 도량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26일부터 사천왕사 특별전이 개최된다. 여러 해 계속해온 발굴조사를 망라하는 전시가 될 듯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녹유전(綠釉塼·녹색 유약을 입혀 구운 벽돌판) 부조상(浮彫像)의 파편들도 비로소 한자리에 다시 모이게 되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따로 보관되어 있던, 투구 쓰고 갑옷 입고 화살과 칼을 든 채 악귀를 깔고 앉은 수호신상들이 90여 년 만에 합체되어 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안팎의 국가적 위난을 한마음으로 물리쳤던 사천왕사 문두루 도량의 상징성이 새삼스러운 요즘이다. 그 도량 터 부조상의 합체를 계기로, 흩어졌던 마음들이 하나로 되모이고, 뒤숭숭한 나라 안팎의 시름도 씻은 듯이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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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주]삼국유사의 양지사석 조는 이 블로그의 아래 주소창에서 소개한 바 있다.

http://blog.paran.com/kydong/27219707

원문 http://www.kbs.co.kr/1tv/sisa/tracehistory/vod/review/1592522_28170.html

KBS1 역사추적 제28회

신라의 메켈란젤로, 양지

통일 신라 시대의 기념비적인 사찰, 사천왕사(四天王寺)

거대한 절의 규모만큼이나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끌어온 것은
섬세하고 역동적인 녹유(綠釉)소조상 이었다.

지금까지는 조각편들로만 전해졌었던 녹유소조상편(片),
최근 진행된 발굴을 통해 드디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는데...

13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조각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흩어져 있던 녹유 조각의 퍼즐을 맞추다”
경주 낭산 사천왕사(四天王寺)의 비밀은?
1910년대 일제의 조사과정에서 발견된 사천왕사. 당시 묻혀있던 쌍탑지 주변에서 발견된 것이 녹유 소조상 조각이었다. 사실적이고 섬세한 조각은 그동안 많은 궁금증과 논란을 낳았다. 그러던 중 2006년 시작된 발굴 작업에서 더 많은 소조상의 조각과 위치가 확인 되었다. 마침내 200여점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그동안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상의 모습까지 드러나게 되었는데....
▲ 이번에 공개된 녹유소조상 중 A상(좌), B상(우)

“섬세하고 역동적인 조각세계, 녹유소조상”
기이한 조각상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 녹유소조상 중 C상과 아래 부분의 악귀상
녹유소조상을 살펴보면 하나의 거푸집으로 여러 편을 찍어 만든 형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거푸집만으로 손발톱까지 생생하게 드러나기는 어렵다. 손발톱까지 세심한 조각의 비결은 바로 거푸집으로 만든 작품에 다시 조각한 노력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성이 담긴 섬세한 조각은 왜 만들어진 것일까?
▲ 녹유소조상의 제작과정을 재현하는 과정
진흙대신 거푸집에 석고를 부었다

“기예에 통달한 신묘한 스님”
삼국유사 속의 양지(良志)는 누구인가?
▲ 석장사터에 남아있는 건축의 흔적과 석장사에서 출토된 조각틀 유물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녹유소조상이 신라 스님 양지의 작품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선덕여왕대부터 문무왕대까지 활동한 와공으로 글씨와 조각에 능통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지팡이가 저절로 시주를 받아 석장사(錫杖寺)를 지었다는 신묘한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출신과 구체적인 행적은 남아있지 않는데... 양지는 과연 실존인물이었을까?
▲ 양지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감은사지 사리함

“양지 미술의 비밀을 풀어라”
통일신라의 미술 천재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 백제의 제석사지 출토 유물 중 소조 악귀상

우리에게 알려진 양지의 미술은 서역(西域), 당(唐) 미술의 특징, 그리고 우리 민족 고유의 해학적 느낌까지 보여준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렇게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혁신적 작품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당시, 신라를 비롯한 삼국의 작품들을 통해 양지의 창조적 미술세계의 배경을 살펴본다.
▲ 고구려 장천1호분 벽화 중 서커스 장면
서역인들이 고구려에 직접 왔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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