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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묘 아래 있는 공원 호수의 수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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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답지 않은 왕이라하여 사후에 받는 왕의 시호를 받지 못해 왕자시절의 이름을 고수한 채 왕릉으로 격상되지 못하고 일반인의 무덤 호칭인 묘에 머물렀다.
이것이 한자문화권의 역사의식이다.
참고로 <연산군일기>의 총론을 옮긴다.
연산군, 휘(諱) 융(㦕)은 성종 강정 대왕의 맏아들이며, 어머니 폐비 윤씨, 판봉상시사 윤기무의 딸이 성화 병신년 11월 7일(정미)에 낳았다.
계묘년 2월 6일(己巳)에 세자로 책봉하고, 영중추부사 한명회 등을 북경에 보내어 고명을 청하니, 5월 6일(丁酉)에 황제가 태감 정동 등을 보내어 칙봉을 내렸다.
소시(少時)에, 학문을 좋아하지 않아서 동궁(東宮)에 딸린 벼슬아치로서 공부하기를 권계(勸誡)하는 이가 있으매,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즉위하여서는, 궁안에서의 행실이 흔히 좋지 못했으나, 외정(외정)에서는 오히려 몰랐다. 만년(晩年)에는, 주색에 빠지고 도리에 어긋나며, 포학한 정치를 극도로 하여, 대신·대간·시종을 거의 다 주살(誅殺)하되 불로 지지고 가슴을 쪼개고 마디마디 끊고 백골을 부수어 바람에 날리는 형벌까지도 있었다.
드디어 폐위하고 교동에 옮기고 연산군으로 봉하였는데, 두어 달 살다가 병으로 죽으니, 나이 31세이며, 재위 12년이었다.
즉 세종이 우리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서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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