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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虎丘)
소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북서쪽으로 5㎞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원래 이름은
해용산(海涌山) 이었다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춘추시대 吳王인 합려(闔閭)가 이 곳 연못 아래에
묻혀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합려의 무덤을 만들 때 관
속에 검 3000개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이 검들 중에는 훗날 명검으로 전해지는 검들이 포함되어 있다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秦始皇은 이 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도굴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도굴은 중단되었다
지금은 이 곳에 물이 들어차서 연못이 되었고,
사람들은 검지(劍池)라고 부른다
송대 시인인 소동파(蘇東坡)는
[到蘇州而不遊虎邱乃是憾事
(소주에 와서 호구를 구경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라는 말을 했을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
40m 높이의 언덕 정상에는 호구탑이 있는데,
높이가 47.5m이며 수나라 때 지어진 것이다
소주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건축물로 몇 차례의
보수공사에도 불구하고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단 호구탑 내부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곳에 높은 탑만 호구를 비롯해 인민북로 북사탑,
서평로 서평탑 소주대학내 탑이있다
졸정원(拙政園)
중국 4대 정원 중 하나다
소주 동북쪽에 위치해 있고, 명 정덕(鄭德) 4년(1509년)에 지어졌다
유원(留園), 이화원, 승덕이궁(承德離宮)과 함께 중국 4대 정원에
꼽힐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이다
졸정원(拙政園)은 면적이 4ha(약 12,000평)로 중국
4대 명원 중에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정원이 조성된 것은 명대의 왕헌신(王獻臣)이 관직에서 추방되어
실의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온 때인 1522년이다
진대의 시 한 구절 [졸자지위정 拙者之爲政 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한다)]
에서 본 따이 정원을 졸정원(拙政園)이라고 이름 지었다
졸정원은 역사가 아주 깊으며 이곳을 거쳐 간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다
당나라 때에는 시인 육구몽(陸龜蒙)의 주택이었다가
원나라 때에는 ! 대굉사(大宏寺)로 되었다가
명대에는 왕헌신(王獻臣)의 주택이었다
현재의 졸정원을 설계한 사람은 왕헌신이다
왕헌신은 이 집을 짓기 위해 3년 동안 설계를 하고 다시
13년 동안이나공사를 하여 완공 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그 규모가 크며 느긋하게 보려면 하루는 꼬박 걸린다
기왓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감상하기 좋도록 만들었다고 하는
청우헌(聽雨軒)을 지나니 명대의 유물인 원향당(遠香堂)이 보인다
부지의 60% 정도가 연못으로, 물 주변으로 누각이나 정자 등이 있다
정원 안은 동, 중, 서원(西園) 3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각각의 변화가 풍부하다
연꽃의 향기가 퍼져 있다는 것에서 이름이 붙은 원향당(遠香堂)에서
바라보는 졸정원의 풍취도 일품이다
소설 홍루몽(紅樓夢)의 배경인 대관원의 모델 이라고도 한다
보대교(寶帶橋) 소주 남쪽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를 따라서
걸쳐 있는 길이 317m의 아치형 석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