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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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나"라고 여기는게 바로 오온인데, 그 오온의 자성이 없어 실체가 공함을 조견했고,

그러므로써 색은 공을 여의지 않으며, 색은 공과 다르지 않으니, 색이 곧 공의 실상입니다.

색의 실상이 곧 공이다라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 입니다.

오온은 있되, 그 오온에 자성이 없어서 空입니다.

그리고나서 설명되어진 것이 그 空의 모습인데,

그것이 바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입니다.

그 후부터는 그 空 자체에 뭐가 있는지 설명이 시작됩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위에서 공중(空中)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이 뜻은 空 가운데...쉽게 말하면 空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온의 실체가 공한데, 그 공의 모습이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며,

이젠 그 공 자체에 뭐가 있냐.....이걸 설명하는 것 입니다.

딱 공 그것만을 분석하는 내용인거죠.

비유하자면, 도자기의 재료가 흙인데...그 흙만을 분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어떤 실체가 없이 텅 빈 것이 空입니다.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空이 아닌 것 입니다.

그러므로 空 그 자체엔 실체라고 여길 만한 것이 그 무엇도 없습니다. 또한 그 어떤 모습/형상도 없습니다.

是故 : 그래서

空中 : 공 가운데에는.......즉 공 그 자체에는

無色 : 색이 없고,

無受想行識 : 수상행식도 없다.

空 그 자체에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바로 전에는 <공즉시색>이란 문구가 나오는데,

그것의 뜻은 이전 편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공이 곧 색의 실상이다라는 뜻입니다.

공이 곧 색이다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면 완전히 도로묵이 됩니다.

색은 모습/형체가 있고, 공은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똑같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물론 따로 따로 살펴볼 때 색도 실체가 없어 공하고, 공도 역시 실체가 없어 공하기에 같다라고 한다면 그건 맞는 말 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색과 공의 불가분의 관계를 설명한 것 입니다.)

(색과 공은 따로 분리될 수 없으므로 色不離空 空不離色이며)

(그러므로써 색과 공이 다르지 않아 色不異空 空不異色이니)

(색의 본질이 곧 공이며, 공이 곧 색의 본질이라 色卽是空 空卽是色 입니다.)

색즉시공이라고 해서 단순히 색과 공이 똑같다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색즉시공에서의 卽은 똑같다라는 게 뜻이 아니고, 분리될 수 없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공중무색>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공과 색을 단순히 같다고 여기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공즉시색>의 뜻은 위에 설명한대로 공이 곧 색의 실상..즉 본래 모습이다..라는 뜻 입니다.

반야심경에 설해진 순서를 대단히 잘 이해해야 합니다.

위에 몇번을 반복해서 써놨듯이..

오온의 자성이 없어 공하며, 그 공의 모습이 불생불멸/불구부정/부증불감이며,

이제부터는 그 공 자체에 뭐가 있냐를 따지는 것 입니다.

왜 이걸 따지냐 하면, 공에도 뭐가 있는 줄 착각하는 경향이 대단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고정관념을 박살내기 위해서 공 가운데는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줄줄이 길게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이 空을 비유할 때, 가장 많이 비유하는 게 바로 허공입니다.

허공이란 텅비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바로 허공인거죠.

空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실체라고 여길만한 것이 그 무엇도 없기 때문에 空인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오온 및 만물의 실상이 空임을 깨닫고, 그 空에 집착해버립니다.

다른 걸 버리고, 또 다른 것에 집착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空을 깨닫고 나서, 그 空조차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다>입니다.

이걸 설명하는 것이 바로 반야심경입니다.

그래서 空 그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을 설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계속 없다. 없다..없다....무지 역무득까지 계속 없다...없다....그렇게 나갑니다.

공 그 자체엔 실체라고 여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자기의 비유를 다시 들어보겠습니다.

흙으로 빚은 도자기는 굉장히 여러 종류입니다.

그러나 도자기의 성품은 흙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게 도자기입니다.

이제부터는 흙 그 자체의 성품을 알아보겠습니다.

흙 그 자체에 둥근 도자기가 있을까요? 아니면 네모난 도자기가 있을까요?

흙속에 기다란 도자기가 있습니까?

흙 그 자체엔 그 어떠한 형태의 도자기도 없습니다.

주전자도 없고, 밥그릇도 없고, 컵도 없고, 항아리도 없고, 수저도 없습니다.

흙은 그냥 흙일 뿐 입니다.

그러므로 空에는 무상/고/무아가 먹히질 않습니다.

空 그 자체엔 그 무상/고/무아가 먹힐만한 실체가 단 하나도 없는 것 입니다.

그래서....

空은 항상(영원)한 것도 아니요,

空은 즐거움도 아니며,

空은 나가 있다고 따질만한 것도 없습니다.

空은 무상한 것도 아니요,

空은 고통도 아니며,

空은 무아라고 따질만한 것도 없습니다.

이런게 바로 중도(中道)입니다.

무상/고/무아가 먹히는 것은 속제입니다.

오온에서나 먹히는 것이지, 진제인 空 그 자체에서는 그 무엇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空이 곧 해탈의 문인데,

空이 무상하다면 그게 해탈입니까?

空이 고통이라면 그게 해탈문일까요?

空은 내가 있다고 따지거나 내가 없다고 따질만한 것 자체가 없으므로 무아라고 할 수 조차 없습니다.

반야심경에 무상/고/무아라는 용어는 전혀 안 나옵니다만, 그 내용이 없는 게 아닙니다.

색이 곧 무상한 것이며, 무상해서 고이며, 그러므로 무아입니다.

수상행식도 실체가 없어 무상한 것이며, 그러므로 고이며, 무아입니다.

다만 대승에서는 곧바로 空에 대해서 설명이 시작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소승이 맞는 자들을 위해서 주로 무상/고/무아를 주로 설하셨지만,

지혜가 큰 대승 보살들에게는 곧바로 열반의 본체인 空을 설하셨습니다.

왜냐면, 그만큼 보살들은 지혜가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반야심경은 대단한 경전입니다.

짧지만 부처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반야바라밀다>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그 <반야바라밀다>가 완성된 것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며,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바로 <일체종지>이며 그걸 성취한 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이 반야심경은 비방해서도 안되고, 흠을 잡아서도 안됩니다.

반야바라밀을 비방하는 것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죄는 오역죄보다 수천억 배 더 큰 죄입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소승불자들이 반야심경에 대해서 비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모르면 아무말없이 그냥 지내는게 상책입니다.

그렇다고 대승도 또한 소승을 얕잡아보고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도 큰 죄입니다.

소승이나 대승이나 모두 다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반야심경은 많이 읽고 외워야 합니다.

그 공덕이란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대반야바라밀다경에 그러한 내용이 아주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물론 공을 깨닫고 이해하면서 읽는 게 가장 좋습니다만,

몰라도 그냥 읽으면 그 인연으로 모든 고액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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