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화 - 한 잔 술에도 크게 취하는도다 (飮一盃大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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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밖에서 돌아오면

집안에 사람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언제나 처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한번 해야만 했다.

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민망하여 남편에게,

"혹시 사람이 있으면

저에게 '한 잔 마시자' 라는 말로 신호를 하시면

제가 곧 작은 방으로 들어가겠으니

당신이 한참 후에 그 뒤를 따라 들어오면

사람들은 술을 한 잔 마시는 줄만 알 따름이지

어찌 그 짓을 하는 줄 알겠습니까?" 하니

남편은 "그게 좋겠소"

하고 그로부터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약속하였다.

하루는 장인이 왔는데

밖에서 돌아온 사위가 건성으로 몇 마디 인사를 한 후

처에게

"한 잔 마시는 것이 어떻소?" 하니

그러자 사위도 따라 들어가서 얼마 후에 나오는데

장인이 보니 두 사람의 얼굴이 모두 붉그레 홍조를 띠고 있었다.

장인이 노하여 집으로 돌아가 장모에게

"딸이란 것이 남만도 못하오.

당신도 이제부터는 딸년집에 가지 마시오" 하였다.

이에 장모가 "무슨 까닭이요?" 하고 물으니

장인은

"내가 술을 좋아하는 것은 딸년도 알고 있는데,

술은 작은 방에다 담궈놓고 저희 내외만 들어가 마시면서

나에게는 한 잔도 권하지 않으니

세상 천하에 이렇게 몰인정한 딸자식이 어디 있겠소?

절대로 딸년 집에 가지 마시오" 하였다.

장모가 이 말을 듣고 남편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딸네 집에 살짝 가서 딸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크게 노하셨다" 하니

"무엇 때문에 노하셨소?" 하고 딸이 물었다.

장모가

"어느날 네 아버지가 여기 왔을 때

네 내외가 작은 방에 들어가서 너희들끼리만 술을 마시고

아버지께는 한 잔도 권하지 않았다고 크게 노하고 계신다" 하니,

딸이

"아버님은 잘 아시지 못하셨어요.

본래 그 일은 여차여차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실제로는 술이 없었어요.

만일 술이 있었더라면 어찌 드리지 않고 기다리시게 했겠습니까?

이 일을 아버님께 잘 말씀드려서 노여움을 풀게 해주세요" 하고 말하니

장모가 집으로 돌아와서 장인에게 말했다.

내 오늘 딸네 집에 갔다가 전번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가지고 왔지요.

일이 여차여차해서 그리 되었을 뿐 실제로는 술이 없었다고 합디다" 하니

그 말을 들은 장인이

"내 미처 그걸 몰랐군. 딸네 부부의 방법이 실로 묘하니

나도 지금 한 잔 마심이 어떻겠소?" 하자

장모가 곧 자리를 폈고,

일이 끝난 조금 후에 장모가 한 잔을 더 권하자 장인은,

"늙은 탓에 이제는 한 잔 술에도 크게 취하는구려." 하고

장탄식을 하였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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